..

일대기 펴낸 이거룡 교수
"유교에 한무제(漢武帝), 그리스도교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있다면 불교를 세계화한 주역은 고대인도의 아소카 대왕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종교를 차별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던 그의 일대기를 본격적으로 다뤄 보고 싶었습니다."

인도철학자인 이거룡(李巨龍)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가 최근 《전륜성왕 아쇼까》(도피안사)를 펴냈다. 중학생 시절 참선 수행에 빠지면서 처음 아쇼카 대왕에 관심을 가진 이후 40여년 만에 그의 일대기를 펴낸 것이다.


▲ 《전륜성왕 아쇼까》를 펴낸 이거룡 교수는“종교의 벽을 넘어 보편종교로서 불교를 포교했던 아소카 대왕의 정신은 다종교사회인 오늘날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아소카 대왕은 인도 아대륙(亞大陸) 동북부의 지방·소수 종교이던 불교를 인도 아대륙 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전파시킨 왕이다. 부처님 사후(死後) 200여년이 지난 시점에 인도 통일왕조의 국왕으로 즉위한 그는 재위기간 동안 인도 전역에 8만4000개의 스투파[塔·탑]를 세우며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전파했다. 그의 발걸음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에서 열반지인 쿠시나가르까지 모든 성지(聖地)에 이르렀고, 부처님의 유적지마다 석주(石柱)를 세웠다. 지금도 세계의 불자(佛子)들이 부처님의 유적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둔 셈이다.

5세기의 법현(法顯), 7세기의 현장(玄奬) 등 중국 스님들과 혜초(慧超) 등 한국 스님들이 인도의 부처님 성지를 순례할 때에도 아소카 석주가 등대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불법(佛法)의 수레바퀴를 굴린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리며, 지금도 인도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에는 아소카 대왕이 세운 돌기둥에 새겨진 네 마리 사자상이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외 40여종의 참고서적을 뒤져도 2200년 전의 인물 아소카 대왕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10만명을 학살했다' '99명의 이복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등 확인하기 어려운 전설도 많았다. 이 교수는 "작업이 막힐 때면 인도의 유적지 현장을 가봤다"고 했다.


▲ 부처님 탄생지 네팔 룸비니 동산의 아소카왕 석주(石柱). 인도 대륙 전역의 부처 님 성지엔 이런 아소카 석주가 있다./김한수 기자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인도 마드라스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델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10여년을 인도에 머물렀던 이 교수는 지금도 매년 한두 차례 인도를 여행한다. 부처님의 8대 성지(聖地)는 모두 대여섯 차례씩 순례했다. 그는 "부처님 성지를 방문할 때마다 '이 벽돌, 이 난간이 2200년 전에 아소카와 얼굴을 마주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순례하면 매번 성지의 모습이 다르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은 종교의 개론서(槪論書)가 아니라 경전(經典)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정리된 개론서와 달리 생생한 일화를 담은 경전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처럼 부처님 성지도 순례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소카 대왕의 발자취를 순례할 당시의 세세한 느낌은 책 후반 '팔만 사천 스뚜빠를 찾아서' 장(章)에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이거룡 교수는 "불교를 중심에 두고 있으면서도 힌두교·자이나교 등의 가르침을 포용하고 관용한 결과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국경을 넘어 세계화시킬 수 있었던 아소카 대왕의 삶은 다종교사회인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도 뚜렷하다"고 말했다.

***
                


현대판 전륜성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