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사자의 서 (죽음에 대한 안내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에 대해 미리 알려줌으로써
현명하게 대처하게 만드는 지침서인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티벳 어로 사후 세계인 바르도는 우리 말로 하면 중음계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중음신이 된 사자가 이 세상에 미련을 못 버리고 떠돌게 되면
우리가 흔히 아는 '귀신'이 되므로
미련을 다 버리고 갈 곳으로 가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불가에서 하는 49재도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도록 제도하는 이런 풍습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 염불이나 독경 등의 수행을 많이 하면 이런 과정을 쉽게 통과해서
내생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지요.
(예전에 유튜브의 시간 제한 때문에 동영상을 잘라서 올렸던 것을
전체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다시 연결해서 올립니다.)
모두들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광명과 지혜광명에 귀의하여
해탈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발원합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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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가르침
서구 세계에서 윤회에 관한 가르침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신지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윤회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설명하는 그럴만한 유일한 설명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윤회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오해와 오류가 스며들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오래되고 폭 넓은 법칙의 기본적인 가정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너무도 적은 것이 현실이다.1
1875년에 뉴욕에서 설립된 신지학 운동의 공동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블라바츠키 여사는 윤회는 초기 기독교 가르침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으나, 그 이후로 기독교에서 “잃어버린 열쇠”들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서기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혼의 전생 교리를 반대함으로써 윤회의 가르침을 파문하였는데,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많은 논쟁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유럽 문화가 붕괴하고 암흑의 시대가 도래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이 원리와 쌍둥이격인 카르마에 대한 진정한 가르침의 부활을 통하여 현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이기주의와 비참함의 추세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이 원리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녀는 이 두 원리를 희망과 책임의 가르침이라고 불렀다.
1) 인간의 본성 중 어느 부분이 윤회하는가?
지난 100년 동안 학교나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물질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진짜 자신을 몸과 동일시해 왔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의 육체가 곧 우리 자신이라고 받아들임으로써 윤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바로 개성이라고 생각한다.2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단순히 우리의 몸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진짜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에 사용하는 도구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태어 나고 죽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자신이나 다른 실체에 의해 재사용되기 위하여 물질의 저장소로 되돌아 간다.
우리는 또한 어느 특정한 시간에 경험하는 감정들도 아니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각들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각들이나 감정들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떨어져 있으면서” 평가할 수 있는 대상들이다. 한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경험에서 경험으로 옮겨가는 의식은 어떤 다른 무엇, 즉 이러한 육체나 뇌 감정 등을 사용하지만 이러한 도구들과는 전혀 다른 보다 우수한 것임에 틀림없다. ULT의 창시자인 크로스비씨는 [보편 신지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24쪽)
“개개인 안에는 모든 육화를 통하여 지속되는 동일한 정체성인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 신지학은 보다 큰 견해를 제시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함이 없다. 몸도 환경도 변해왔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은 불변이며 앞으로도 육체나 정신 또는 환경의 변화와 관계없이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 안에서 변하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실재이다.”
진정한 “나” 또는 “자아”는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며, 수많은 육화 또는 개성들을 거치면서 계속 살아 있게 된다. 이 육화와 개성들은 모두 다르지만 영적인 진화를 위하여 모두 중요하다. 경험의 정수를 한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보존하여 갖고 다니는 것이 바로 영속하는 정체성인 자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재능이나 천재성 또는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수많은 삶을 통하여 얻은 경험의 과실이다. 한편 힘과 지혜와 영감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개성이라는 끈질긴 믿음이다. 이 개성은 카르마를 통하여 우리 자신들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고 성격은 그러한 기회들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또는 하지 않는가를 나타낸다.
2) 그렇다면 인간 전체는 무엇인가?
신지학은 이점에 대해 심리학과 종교에서 일어나는 의혹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 혼란스러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인간은 살아있을 때 불멸하는 상위 자아와 상위 자아의 임시적인 매체이자 도구로써 다른 모든 매체들처럼 결국엔 죽음으로 붕괴되는 하위 자아 혹은 개성으로 구성된 이중구조라고 답한다. 이를 좀더 살펴보자.
상위 자아는 영, 영적 혼, 마인드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다.(산스크리트어로 아트마, 붓디, 마나스이다) 이 3중체가 삶에서 삶으로 무한한 지식과 힘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가기 위해 화신하는 진짜 인간이다. 아트마는 정의할 수 없는 만물의 초월적 근원이다. 즉 인격적이고 유한한 ‘신’이 아니라 ‘보편적인 신성 실재’이다. 아트마는 경계 없이 영원하며 언제 어디에나 편재해있으며 무한한 성장력, 인식력, 생성력을 의미한다. 우리들 각자는 본질적으로 그것이다.
붓디는 졋지씨에 의하면 분별하고 판단하는 가장 높은 지성을 의미한다. 붓디는 우주심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획득한 신성 혹은 신성한 지성으로 인식된다. 마나스는 생각, 의지, 감정, 기억, 그리고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도구이며, 붓디 혹은 상위 본성을 위하여 사용되거나 카마 혹은 하위 본성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일시적인 하위 자아는 육체, 아스트랄체, 생명원리 그리고 열정과 욕망의 원리 4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이것은 각기 루파, 링가 샤리라, 프라나, 카마로 명명된다. 루파(육체)는 이러한 하위계의 물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외피에 해당된다. 링가 샤리라는 복잡한 자기장이 지속적으로 변하는 물질 분자들이 적절한 기능을 하도록 유지하고 있는 전자기적 형체이다. 이것은 육체보다 먼저 나타나고 더 오래 생존하는데, 감각들을 담고있는 실질적인 매체이며, 사실 진실한 의미의 육체이다. 아스트랄 물질은 육체보다 더욱 미세한 성질의 물질이다.
프라나는 생명 에너지이다. 이를 [신지학의 대해]에서 인용하면 “프라나는 보편적으로 스며있는 본질로, 지구가 떠다니는 대양과 같다. 그것은 지구와 지구 상의 모든 만물 속에 깃들어 있으며 쉼 없이 영원히 우리 주변에서 맥동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육체를 사용할 때, 우리는 단지 프라나나 지바(jiva)를 다루기 위해 더 특화된 도구를 사용한다. 지바는 보편적인 생명이다. 프라나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고 환생한 동안 살아있게 하는 개체화된 생명이다.
카마는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본질일 것이다. 이것은 열정과 욕구의 본질을 뜻하며 7중 구조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균형의 원리”로 불려진다. 일반적으로 카마는 가장 개발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행동의 기저를 형성하는 원리로 이것을 중심으로 성장하거나 퇴보하는 길이 있는 균형점이다.
졋지씨는 [신지학의 대해]에서 하위 자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네 개의 하위 물질은 서로 분리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이며 스스로 붕괴되기도 한다. 서로 분리될 시간이 되면, 결합이 해체되기 시작하고 육체는 죽으며 4중체를 구성하고 있던 원자들은 각각 분리되기 시작하여, 뿔뿔이 흩어진 전체 집합체는 이제 더 이상 진정한 인간의 매체로서 사용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죽음이라 불리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에게는 죽음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죽지 않는 영원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약해보자. 진정한 인간은 아트마-붓디-마나스의 3중체 혹은 영과 마인드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하여 자연과 접촉하는데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도구들은 4중체에서 발견되며 각각의 본질은 그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특별한 경험을 위한 도구가 된다. 그 중 육체는 가장 하위이며, 가장 일시적인 매체이다.
왜 윤회하는가?
환생은 우리로서는 매우 혜택이 많은 과정이다. 그것은 각자에게 그의 내면에 이루지 못한 채 남아있는 모든 열망들을 꽃피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몸과 두뇌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한편, 환생의 사이의 기간에 혼은 절실히 필요했던 휴식과 동화를 취할 시간을 갖는다. 환생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지난 생에서 그가 취했던 행동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와 환경도 제공한다. 환생을 통하여 대자연을 구성하며 자신들의 진화를 위하여 인간에게 의존하는, 의식을 가진 많은 “생명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환생은 자연 안의 모든 생명체들과의 관계를 주기적으로 쇄신하기 위하여 윤회가 필요하고 그러한 상호의존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는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은 바로 모든 생명의 근저에 있는 신의 실재 즉 신성과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신지학에서 “보편적 형제애는 자연계에서 하나의 사실이다.”라는 명제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 똑같은 두뇌와 인식 그리고 감정을 가진 신체 속에 언제나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주위의 삶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진보함에 따라 새롭고 보다 나은 건물들과 도구들 그리고 사회들을 건설하며, 옛것들은 재활용을 위하여 해체한다. 자연의 여러 가지 차원에 존재하는 생명과 접촉하기 위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똑같은 인격들이다.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 때마다 우리의 인식을 보다 더 넓히고 더 많은 효과를 주는 더욱 개선된 도구들을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 도구들을 구성하는 “생명체들”에게 보다 높은 충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적인 관점에서 조망해 볼 때, 진정으로 실제적인 삶을 사는 방법은 우리의 모든 생각들과 행위들을 가능한 한 도움이 되고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윤회를 통한 발전
인간은 본질적으로 인식하는 존재이다. 우리 존재의 뿌리에는 무한한 인지 능력과 탐구력 그리고 성장력인 아트마(혹은 영)가 있다. 이 힘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전능한 힘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진정한 자아로서 지식과 이해력을 끝임 없이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는 또한 붓디이다. 그것은 모든 과거 경험들의 총합 혹은 정수로서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지면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분별하고 판단하고 인지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붓디는 직관과 영감 양심의 근원이다. 그리고 그는 마나스이다. 마나스는 행위의 실제 영역인 멘탈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이것이 아트마-붓디-마나스 혹은 인식자 혹은 윤회하는 자아의 3 가지 측면이며, 모든 진실되고 영속적인 진보가 기록되어지는 것이 바로 이 삼위일체의 내면이다. 그리고 진정한 성장은 이 내적 자아의 지혜를 현상계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천재>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떠한 자아든 원초의 본질과 본성에서 다른 자아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떤 한 인간을 위대한 성인으로 만들거나 또는 강도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외피인 신체의 특질과 구성 및 두뇌와 육체가 진정한 내적 인간의 빛을 전달하거나 표현하는데 적합한가 부적합 한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이러한 적합성 혹은 부적합성은 카르마의 결과이다”
크로스비는 [신지학의 대해에 대한 질의응답]에서 이를 더욱 깊이 설명한다.
“인식하는 자는 인식력과 인식범위에 대한 확장능력을 갖고 있다. 인식하고자 하는 힘은 후천적으로 획득한 인식들에 의해서 변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인식의 영역을 계속 확장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식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인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증대하는 지성과 더욱 나아지는 형태가 바로 진화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외적인 모습 안에는 언제나 더 큰 잠재력이 있다는 느낌을 경험해 왔다. 이것은 단순히 그냥 원하는 생각이 아니다. 이 느낌 속에는 거대한 진리가 담겨져 있다. 신지학은 모든 과거의 체험과 지식은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잠겨져 있지만 그것은 개개인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으며 따라서 올바른 노력을 통해서 그것을 캐내어 활용할 수 있다고 신지학은 가르친다. 진정한 진보는 수련에 의해서 그러한 지식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즉 하위 자아의 도구들을 훈련시켜서 완벽하게 조절함으로써 내면의 자아가 지닌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그러한 도구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번 생애에서라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보편적인 진정한 토대를 선택해서 확립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올바르고 효과적인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진실되며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는 그러한 근본적인 개념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만일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 생명의 법칙들에 어긋난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들은 그만큼의 실수로 아로 새겨지게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전체 본질을 이해하게 하는 보편적 원리들, 즉 우주에서의 자신의 목적과 운명을 알게 하는 영원 불멸한 생명의 법칙들에 대한 지식이다. 현현해 있는 모든 삼라만상에 적용되는 윤회의 보편적 법칙은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기본 토대들 중 한 부분으로 형성되어져야 할 근원적인 법칙들 중에 하나이다.
왜 이런 내면의 지혜를 사용하지 못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이 내면의 지식과 능력의 저장고는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만이 삶의 전부이며 혼이나 영은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라야 비로소 생각하는 것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실용적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 생각의 대부분이 거의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차원, 즉 이기적이며 육체적인 성질과 관계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삶을 통해서 계속 이렇게 훈련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의 두뇌는 이러한 성격을 갖는 인상이나 메세지들에만 반응을 보이게 된다. 크로스비씨는 말하길, “사람들에게 장벽이 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위의 토대가 되는 삶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있다.” 그렇지만 굳은 결심과 위대한 스승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고집해온 스스로를 제한하는 생각들을 내면의 존재의 세계와 조화를 더 잘 이루는 생각들로 대체할 수 있다.
이것 없이는 나머지 모두가 물거품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단계이자 첫걸음은 우리는 육체나 두뇌 혹은 인격이 아니라 윤회하는 자아, 즉 아트마-붓디-마나스로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위하여 다양한 인격들을 사용하는 영속적인 정체성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규칙적인 사고와 배움을 통하여 근본적인 본성에서 초월적이고 비이기적이며 자애적인 진정한 본성에 관한 내면의 기억을 일깨워야 한다. 결국에는 비이기적인 삶만이 유일한 실용적인 삶이라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그러한 성질을 띄게 될 것이고, 우리의 두뇌는 혼의 지시에 순응하게 되어 상위 자아로부터 오는 영감에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이다.
죽음과 재탄생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아마도 기억해야 할 첫 번째 것은 죽는 순간과 죽고 난 이후에도 우리의 의식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아(ego)는 인식자로써 어느 계에 있든지 인식 작용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로, 죽고 난 이후에 우리는 결코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어떤 특정한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식 상태”가 바뀌는 것임을 이해해야겠다. 그러나 이 상태는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에 자아는 지금 막 마감하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추출하고 간직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 신지학에서는 각각의 매체가 그 동안의 경험의 축적을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에 여러 번의 “죽음들”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졋지 씨는 그 과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몸이 차가와 지고 눈이 감겨졌을 때 몸과 마음 안에 있던 모든 힘들은 뇌를 통해 황급히 빠져나가는데, 이때 막 마감한 생애 전체가 그림처럼 펼쳐지면서 전체적인 개략뿐만 아니라 매우 세세한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갔던 아주 조그마한 인상들까지 모두 다 상세하게 내면의 인간에 지울 수 없도록 각인되어진다. 이 순간에 의사는 모든 징후들이 죽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죽었다고 말할지라도 진짜 인간은 뇌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으며 이 작업이 끝나서야 비로서 그 사람은 죽는 것이다.”
홈 스터디 시리즈의 다른 부분에서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자아는 겨울에 나무가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자. 잎사귀들은 떨어지고 꽃들은 시들어 죽지만, 그 해에 이룩한 성장의 정수는 응축되어 씨앗에 보존되어진다. 이 기간이 바로 자아가 지난 생을 반성해 보고 다음 생을 위하여 씨앗을 준비하고 있는 기간이다. 이것은 혼에게 있어서 필요한 시간이며 또 전 인생의 행로와 과정을 이해하고 휴식을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다.
졋지씨는 자아가 다시 화신할 때에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혼의 힘에 의해 주어진 데바챤(사후 상태 중의 하나)에서의 기간이 끝나게 되면 지구와 묶여 있던 자기적인 끈이 힘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때 자아는 꿈에서 깨어나 빠르게 새로운 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서 탄생하기 바로 전과 데바챤으로 이끌려서 지금 다시 시작할 새로운 삶으로 되돌아오게 된 모든 이유들을 한 순간에 잠시동안 보게 되고 그 모든 것이 정당하며 자신의 과거 삶의 결과로써 주어진 것임을 알게 되어 불평 없이 다시 삶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된다. 그러면 또 다른 혼이 되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각주 1
이 법칙의 기본적인 가정들을 보면, 실제로 환생하는 것은 우리의 어느 측면인가 혹은 우리의 어느 부분이 죽고 사라지는가 혹은 이 주기적인 환생의 법칙은 삶 전체 내내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리고 이 법칙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등이다.
각주 2
개성(personality)은 어원상 persona에서 유래하는 데 그 의미는 ‘마스크’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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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의 대스승들에 대한 기본 가르침
Judge 씨가 쓴 [신지학의 대양]의 첫 페이지에 신지학은 “자연과 인간의 육체적, 아스트랄적, 심령적 그리고 지성적인 요소들의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신지학은 지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지식을 아는 자들이 있음에 틀림없다.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동안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이 지식을 얻어서 보존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철학의 기본 가르침들 중에 하나이다.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우리들 보다 훨씬 진화한 그런 존재들이 없다면, 신지학의 철학 같은 지식이 없었을 것이다. 그 분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 “맏형”, “지혜의 대스승”, “초인”, “사제” 및 “마하트마” 등으로 불려졌으며, 마하트마 라는 말이 아마 가장 포괄적인 용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의미는 “위대한 혼”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하트마와 제자들”이라는 글에서 H.P.B. 는 “마하트마는 특수한 수련과 교육을 통해서 고차원의 능력들을 진화 시켰으며 영적인 지식을 성취한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지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진화 기간동안 대자연의 목적들에 반하는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윤회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만약 상위 자아의 전지와 전능 그리고 카르마와 윤회의 법칙을 적용하면 질서정연하고 완전한 진화의 결과로 그런 위대한 존재들이 나온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하고 영원한 우주에서 우리 인간들이 낮은 차원의 지성을 가진 형태보다 훨씬 진화해 있듯이, 인간들보다 훨씬 진화한 존재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낮은 차원의 지성체들이 우리의 생명과 경험의 일부분이듯이, 우리도 위대한 존재들의 생명이고 경험의 일부분임에 틀림없다.
“지혜의 대스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존재들은 자신들의 본성의 다양한 부분과 힘들을 모두 다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법칙들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통달한 존재들이다
[신지학의 대양(p.11)]에서 졋지 씨는 말하길..
공간, 시간, 마음, 그리고 물질에 대한 힘을 가진 마하트마는 완전하게 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은 이 위대한 입문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모든 능력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우리는 아직 일반적으로 그 씨앗을 개발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마하트마들은 훈련과 경험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능력을 키웠으며, 그 결과 그보다 덜 진화된 사람들의 눈에는 신처럼 보이는 선물까지 받았다
대스승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신지학의 대양]에서 그 답을 제시해 준다.
그들이야말로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진리의 횃불을 밝히는 자들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존재와 사물에 대해 연구한다. 그들은 인간의 가장 내면의 모습을 알며 인간의 능력과 운명을 이해한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상태와 육체가 죽은 후의 상태를 안다. 그들은 국가들의 요람 곁에 있었고, 고대 문명의 융기를 지켜보았으며, 흥망성쇠의 주기 법칙에 저항할 힘을 가지지 못했던 자들이 멸망해 가는 것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재앙이 예술, 건축, 종교 및 철학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들은 그 기록을 인간이나 시간이 파괴하지 못하도록 안전한 곳에 보전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훈련된 심령 능력을 통하여 자연과 마음의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세세하게 관찰하여, 그것들을 기록하고 보존하였다.
또 다른 관점에서 로버트 크로스비 씨는 인류를 위하여 위대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 주는 상태로 이끄는 길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말하길: (보편 신지학, p.3.)
진화의 사다리에서 우리들 보다 위에 있는 존재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신들”보다 위대한 존재들인 이들은 우리 인간이 겪고 있는 같은 고통들과 시험들을 지나와서 결국에는 자신들의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종교는 자신의 자아에 대한 지식이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존재의 근원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모든 존재들의 근원이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모든 존재들 사이에 차이는 단지 획득한 지식과 그 지식을 사용하는 정도에서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얻은 지식은 모든 진정한 종교의 바탕이 되는, 대자연 속에 있는 만물의 본질에 대한 절대적으로 정확한 지식이다.
그 분들이 하는 일은 우리들의 내면의 진정한 존재, 대자연의 법칙들과 진화, 인간의 운명과 모든 생명의 기본적인 단일성에 관한 위대한 진리들로 우리들의 관심을 돌리게 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졋지 씨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우주에서 가장 지성적인 존재인 인간은, 그러고 보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던 셈인데, 특히, 보다 덜 진화된 존재들의 진화 과정을 끊임없이 돌보아 주고, 수많은 세월에 걸쳐 숱한 시련과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보전하며, 이 지구나 다른 천체에서 발전해가는 인종의 지성을 끌어 모아 혼의 운명에 관한 위대한 진리들을 고찰할 수 있는 기회들을 구하는 일단의 스승들을 가지고 있다. (신지학의 대양 3p)
수 많은 세월에 걸쳐서 이 위대한 존재들의 도움은 삶의 절대 필수적인 부분으로 여겨져 왔다. 시네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같은 말을 했다:
진실로 이 지구에 인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아주 작은 관심거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성한 영웅들이 있다. 이 영웅족들은 이 지구에 보다 더 좋은 자연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건설한 집단이다.
이 영웅들은 니르마나카야(Nirmanakaya)ㅡ이전 주기의 대스승들ㅡ라고 불려지는 존재들로 인류를 돕기 위한 목적만으로 다양한 상태나 조건들 속에 있는 대스승들이다.
졋지 씨는 말한다.
“니르마나카야들은 추측하는 것보다 국가들의 역사에 참여했다. 그들 중에 어떤 분들은 미래에 위대한 영향을 끼칠 운명인 어떤 사람들을 태어날 때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그들은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그들을 안내하고 보호해 준다. 그리고 특히 19세기에 그 사람들은 그러한 영향력이 그들 주위에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른다.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 재료를 준비하고 베일 뒤에서 일하는 니르마나카야들은 그러한 도움을 주는 것과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동양으로부터의 메아리 p.34
이 세계의 역사에서 다양한 시기에 신성한 환생으로 오는 “완전한 존재들”은 그들이 원하는 시기에 오거나 안 오거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구에 출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특별한 조건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위대한 존재들이 언제 올지를 결정하는 것은 민족이나 국가를 구성하는 자아들(Egos)의 도덕적 영적인 조건이다.
크로스비씨는 말한다, “보편적인 법칙은 비현현의 시기가 있은 후에 현현의 시기가 있고, 빛의 시기가 있은 후에는 어둠의 시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영성이 더욱 더 퇴색되고, 지성과 물질주의가 득세하는 시기들이 있다. 그런 후에 영성의 새벽이 열려서 영성이 증가하는 시기들이 있다.” 심지어 몇몇의 혼들이라도 그들의 영적인 기억이 깨어날 때 이런 위대한 화신들이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시기이다. 그들을 다시 오게 만드는 것은 많은 세월의 기간이 아니라 자아들의 상태이다. 만약 회복하지 않으면 파멸로 이르는 조화의 완전한 파괴가 있을 때만 그 분들이 오게 된다고 말해진다.
바가바드 기타에 있는 크리슈나의 말을 여기서 인용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오! 바라타의 아들이여! 도덕이 퇴색하고 불의와 악이 만연할 때마다 나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내 자신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는 정의를 지키고 악을 파괴하여 정의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한 시대에서 또 다른 시대로 환생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크로스비 씨는 “질의에 대한 답변(p.190)”에서 말한다.
그러면 그런 위대한 존재들은 마치 1875년에서 1898년처럼 위대한 주기들이 서로 교차하는 시기에 출현한다. 바가바드 기타의 대스승인 크리슈나의 죽음으로 시작된 칼리유가의 기간인 5천년이 이 시기에 끝이 났다. 모든 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에 위대한 롯지는 대스승들을 통해서 혹은 그들의 제자들을 통해서 인류가 다시 활동하기 전에 더 나은 사상들을 인류 앞에 제시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태양은 물고기자리에서 물병자리고 지나갔으며 또한 표시가 있다. 이 세 가지 주기의 교차가 의미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말하면 그 시기의 문명과 정신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런 지식을 가진 위대한 존재가 출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자 한다면 우리가 공부하는 줄기를 따라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이 세계에 H.P. 블라바츠키로 알려진 존재는 대스승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 혹은 그에 의해서 제시된 지식은 지금 우리가 신지학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메세지는?
모든 행위는 멘탈계든 혹은 그보다 더 깊은 세계이든 내면의 세계에서 시작됨으로 대스승들은 인간의 도덕적인 본성을 일깨울 사상들을 되살리고 다시 심는데 주로 관심이 있다. 수많은 세월을 인류를 위해서 인류와 함께 일한 결과 그 분들은 문제들의 중심에 도달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개혁의 무의미함을 잘 안다.
[신지학의 열쇠(p.231)]에서 H.P.B.가 말한 것이 있다:
인간의 성질을 개혁하기 전에 정치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와인을 오래된 병에 담는 것과 같다.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무가 무엇인지 느끼고 인식하도록 하면 오래된 권력 남용이나 인간적 사회적 정치적인 이기심에 바탕을 둔 국가 정책에서의 사악한 모든 법이 스스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꽃밭에서 잡초를 뿌리 채 뽑지 않고 표면에 나와 있는 부분만 잘라내려고 하는 정원사는 정말로 어리석다.
그 분들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은 신성에 대한 생각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유일하고 진실한 신은 하나의 무한하고 영원한 원리로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 모두의 원인 없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복원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공간 속에 있는 어떤 점으로부터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는 그 속에 있으며, 그것의 일부분이며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유일의 대아는 인식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모든 힘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우리들 존재의 뿌리에는 누구나 이 무한한 힘과 무한한 가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원천자이자 유지자가 하나라는 사실이 신지학에서 가르치는 대자연 속에 있는 형제애가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가르침의 또 다른 면은 주기성, 윤회와 카르마라는 보편적인 법칙에서 나오는 사상을 명확히 하거나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인간의 동기들과 행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이런 법칙들이다. 이런 사상들의 중요성에 대하여 H.P.B.가 말한 것을 인용해 본다.
그녀가 말하길,
주요 요점은 자신의 행위들의 결과들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인 모든 범죄와 비도덕성의 근원을 뿌리 뽑는 것이다. 일단 모든 법칙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법칙들인 카르마와 윤회의 법칙을 가르치고 인간 본성의 진정한 존엄성을 느끼게 하면 마치 육체적인 위험을 피하듯이 악을 피하게 될 것이다.(신지학의 열쇠 p.248)
우리에게 제시된 세 번째 사상은 실제로는 위의 두 가지를 인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대스승들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상기 시켜 준다. 즉 모든 혼들은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대령(大靈)과 동일하며 그래서 우리는 무한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일부분인 하나의 생명, 즉 전체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근원인 전체와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체성이라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일련의 수 많은 환생 속에 삶이 펼쳐져 있으며 환생한 동안 카르마의 제한을 받으면서 무엇을 만들어낼지 선택할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진정한 영적 지혜”인 “성배”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대스승들이 가르치길, 이 똑 같은 진리들은 진화의 사다리에서 우리들 보다 멀리 뒤쳐져 있는 존재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 보다 멀리 앞서간 존재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영적인 법칙의 일부분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운명”은 우리들 손 안에 있으며, “운명”은 우리들 가슴 속에 있다.
특히 이 시기의 혜택은 우리가 이용하기만 한다면 지속적인 안내자로 원조자로 원래의 가르침이 인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스승들은 위대한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신지학은 그런 수 많은 존재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메시지는 근본적인 통일성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들이 제시되었던 문명 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세계를 걸쳐서 이런 가르침들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고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인간 속에 있는 기억을 일깨웠다는 것이며 신념과 희망을 불러 넣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 중에 어떤 분들은 신의 화신으로 알려진 아바타들이다. 그 존재들은 윤회의 필요성을 훨씬 넘어선 진보한 위대한 존재들이지만 인류를 위해서 환생한 존재들이다. 라마(Rama)는 비쉬뉴의 제 7번째 화신 혹은 아바타로 알려져 있고, 바가바드 기타의 신성한 스승인 크리슈나는 비쉬뉴의 제 8번째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나 노자처럼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존재들도 아즈텍 문명의 콰잘코들(Quetzalcoatle), 잉카 문명의 비라코챠(Viracocha), 미국 인디안들의 히아와타(Hiawatha)들과 같은 전설적인 인물과 같이 아바타들로 알려져 왔다. 졋지 씨는 “윤리를 통해서, 윤리에 영향을 준 위대한 3인을 부처, 공자 그리고 예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솔로몬은 특정한 민족들과 일을 한 입문한 초인들이라고 말한다.
이 분들 이외에도 “위대한 롯지”의 대리인들로 필요하며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서구 문명 사회에 출현했던 특출한 사람들의 리스트가 있다. 암모니우스 사카스,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 안톤 메즈머, 카글리오스트로, 생제르맹 백작, 지오르다노 부르노, 히파티아, 이암블리쿠스, 파라겔수스, 플라티누스, 성 마틴, 등등 그 이름들이 많이 있다.
또한 가르침은 “무의식적인 대리인들”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성향이나 비이기적인 동기들 때문에 어떤 나라나 민족들에게 중요한 핵심적인 일들을 수행하도록 대스승들에 의해서 안내되거나 영향을 받는다. 토마스 페인 혹은 이 나라가 만들어 지는데 사상이나 행동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개개인의 상위 자아는 위대한 존재들의 대아와 하나이며, 우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위대한 대스승들의 “대리인들”이다. 신지학 운동과 관계가 있는 대스승들 중의 한 분이 말씀하셨다: “오! 고상하고 비이기적인 사람들은 신성한 일을 하는데 효과적으로 우리들을 도와준다. 과거나 현재의 우리의 모든 지식은 그들을 보상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대스승들께서 그렇게 열심히 보호하고 도우려는 인류를 버리거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전체 철학에 모순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그 분들이 하는 일은 주기에 대한 지식과 인간들의 정신 상태 그리고 영적인 발전에 대한 심리학에 따라서 안내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강제적으로 배우도록 할 수는 없다.
한 세기의 마지막 25년간은 그 분들이 더 공개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몸을 통해서 일하는 때가 있다고 가르침은 말한다. 다른 때는 뒤에서 일하며 주로 개개인들과 함께 일한다. 언제나 그 분들의 일은 그 분들이 다가서는 사람들의 얼마나 잘 수용하는가에 따라 제한을 받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한 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에 그 분들과 그 분들의 도움으로 씨앗을 뿌린다. 즉 그 다음 기간 동안까지 성장하고 뿌리를 내려서 튼튼한 지식의 식물로 자라날 씨앗이 되는 사상들을 심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올 전달자가 성공적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 분들을 기꺼이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없던 적이 없다.
지구상에서의 그 분들의 일에 대해서 크로스비씨 만큼 더 잘 설명한 것이 없다:
그 분들의 신체가 우리들의 신체처럼 생겼지만 그 분들의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은 매우 높은 등급의 물질이다. 매우 강력한 전기성과 자성을 가진 환하게 빛나는 물질에 비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 분들이 이미 말한 매우 높은 힘들을 가지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런 힘들을 전달하고 그 힘들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신체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스승들은 보통 사람을 방문할 때 그 사람이 볼 수 없거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신체상의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분들이 사람들 사이에 갈 때는 언제나 보통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신체를 가짐으로써 그 분들의 힘들을 격리시키거나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서 필요한 예방조치를 취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적인 혼란을 미연에 없앨 수 있고, 파괴를 방지할 수 있다. 그 분들이 하는 일은 인간들의 개성을 통한 인간의 내적인 성질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빌려온 신체는 여러 가지 목적을 다한다. 그러나 한편 만약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그 분들의 자연스러운 신체로 나타난다면 대자연에 대한 힘들과 그 분들의 모습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 분들을 숭배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분들에 대한 미신적인 반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태도들은 인간의 신성한 본성을 일깨우는 목적에 반하는 것이다.
대스승들은 우리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기 위해서 신지학이라는 가르침을 통해서 인간들의 정신을 준비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인류 전체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들 자신에 달려 있다.
대스승을 만났을 때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들 내면에 그 분들의 위대함을 인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위대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을 알아 볼 수 있다. 우리들의 직관이 거짓된 지식으로 뒤덮여있지 않다면 어떤 위대함을 가진 사람에 대한 느낌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마하트마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이 그 분처럼 비슷해져야 한다고 한다.
H.P.B. 여사가 말했다.
진정한 마하트마는 그 분의 육체가 아니라 아트마와 붓디에 떨어질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는 상위 마나스이다. 그 합일은 오컬트 철학에서 제시한 자기 진화의 과정을 비교적 단기간에 거쳐서 이루어낸 합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마하트마를 보고” 싶어할 때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육체적인 시야를 초월한 것을 육체적인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마하트마의 육체를 본다고 가정해도 그가 마스크 뒤에 위대한 분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 어떤 기준으로 그들 앞에 있는 마야가 진정한 마하트마의 이미지를 반영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까? 상위의 존재는 상위의 것에 상응하는 감각으로만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신의 마나스를 고양시켜서 그 지각이 깨끗하고 마야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안개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그의 시각은 환해질 것이고 마하트마가 어디에 있던지 그는 마하트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하트마는 제 6원리와 7원리가 융합된 존재로 전능하며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하트마와 제자)
대스승들이 역사에 영향을 주었는가?
졋시 씨의 [동양으로부터의 메아리]에서 말하길,
몇 해 전에 한 영국인이 대스승들께 편지로 질문을 했다. 그 분들이 인간의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아해 하면서 그것이 사실인지 물어 보았다. 그 대답은 그가 대스승들을 심리할 수 있는 그 어떤 공개 법정도 없다는 것이고 그 분들은 인간의 역사라는 페이지에 중요한 선을 그었는데 그 형태가 눈에 보이는 형체로 통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최근까지 장막 뒤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더 명확하게 말해서 이 놀라운 분들은 국가들의 운명을 흔들었으며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만들고 있다. 비스마르크 같은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의 큰 기둥 같은 사람, 워싱턴이나 링컨 그리고 그랜트 같은 국가를 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양된 정신이나 힘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들에 적합한 적임자를 알아보는 이해력을 그들의 지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초인들, 그 어떤 영예도 원하지 않고 대중으로부터 찬사도 추구하지 않으며 어떤 인정도 원하지 않는 분들 때문이다. 이 위대한 인간 지도자들은 소위 미래의 위대한 전조들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나라에서 꿈틀거리는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 링컨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도구인 것 같다고 항상 느꼈다고 한다. 비스마르크가 이상하게 말한 것들도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은 침묵의 시간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 때 무엇이든 선한 것이면 하도록 재촉하는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1776년 미국에 있는 초인들”이라는 글에서 졌지 씨는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일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신지학의 대 스승들이 이 세계를 둘러보면서 그 당시에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반응을 할 수 있는 정신을 찾고 있던 중에서 토마스 페인을 영국에서 찾았다. 1774년에 그 분들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도움을 통해서 미국에 오도록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그는 미국에 와서 영국 황실의 식민지로부터 분리하는데 주동자가 되었다. 워싱턴, 프랭클린, 제퍼슨 그리고 다른 프리메이슨들은 상징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신학적인 보수성을 배제하고 올바르게 사고하기에 적합한 정신들로 그들의 제시로 그는 “상식(Common Sense)”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은 그 당시 영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태워 없애버리는 그 불길에 횃불이 되었다.
이 글에서 페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하게 구별되는 두 종류의 생각들이 있다; 반성 혹은 숙고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들과 저절로 정신 속으로 번개같이 뻔쩍 거리며 들어온 생각들. 나는 항상 이 생각들을 정중하게 다루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생각들로부터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얻었다.”
졋지씨는 계속해서 말한다. 이 “자발적인 방문자들”은 초인들에 의해서 그의 두뇌에 주입되었다. 새로운 질서의 시대가 막 시작하려 하고 있으며 인간을 위한 형제애와 자유라는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고 토마스 페인의 눈 앞에 “미국의 사건들 속에서 인류 자신에게 열리는 거대한 광경을 펼쳐 놓았다.” 자신들의 혼을 테스트라는 시기에 두려움으로 몸서리 칠 시기에 토마스 페인은 그들 사이에서 진리의 횃불을 움켜쥐고 홀로 설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 분들은 알았다.
대스승들은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서 할 수 있을까?
[씨크릿 독크린]의 세 번째 기본 명제에서 진화 상에서 개개인은 카르마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발전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힘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대신 할 수 없으며 우리의 진화는 순전히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신지학의 가르침은 가능할 때마다 우리 형제들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비와 희생의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맏형”들을 “진화의 꽃”으로 만든 것은 어린 형제들을 도와줄 목적으로 윤회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당연히 얻은 휴식을 포기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대답이 무엇인가?
어린 애가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부모가 대신 해 줄 때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가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만약 어린 애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의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 노력을 할 때 부모가 용기를 북돋아주고 암시를 해 줄 때 이것이 올바르고 좋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진화의 법칙이다. 이것이 바로 형제애의 법칙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스승들이 따르는 대법칙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때 더 진화한 존재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점에 있으며 그 도움은 카르마의 범위 내에서 받을 수 있다.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자신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한 방법이다.
한편 언급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부모나 연장자들을 존경하거나 믿지 않는 어린 애에게는 도움이나 충고를 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어떤 사람이 대스승들의 존재들을 믿지 않거나 그 분들이나 그 분들의 지식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대스승들이 그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대스승들로부터 오는 도움에 대해서 졋지 씨가 말한다: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힘이 작용할 수 있는 채널이나 연결고리를 만드는데 참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분들이 그것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분들의 존재를 믿는다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속에 잠재해 있는 생각들을 일깨우고 정신 속에서 그 채널을 열게 되며 마하트마들이 주기를 원하는 그 힘들을 사용할 수 있는 연결선들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그 분들의 노력은 항상 고귀한 열망들을 자극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감정들을 북돋우며 우리와 그 분들이 동조하게 하는 것이다. 크로스비 씨는 오컬트 가르침의 전과정은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 암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바른 지식은 물론 이 시대에 신지학으로 알려진 고대의 영원한 메시지이다.
우리들은 모두 내적으로 초인들이라고 말하는 데
이것이 사실인가?
잠재적인 면에서는 맞다. 우리들은 내면에 대스승 혹은 초인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분들도 한 때는 우리와 같은 단계에 있었으나 그 힘을 이용해서 현재의 그 분들이 된 것이다. 최고의 본성인 아트마에 내재하고 있는 것은 배우고 성장하고 알 수 있는 무한한 힘이다. 그리고 윤회와 카르마의 법칙 하에서 그 힘을 표현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한이 없는 기회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기회들은 있지만 그 기회들을 이용해서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들이 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가 아니다. 우리들 내면에 있는 윤회하는 자아는 이미 수 많은 윤회들을 경험했으며 각각의 윤회에서 교훈과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미래 윤회에서 가능하면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을 쌓았다. 우리들 모두는 과거에 이미 높은 수준의 완성을 성취했으며 개개 생명이 떠맡은 문제들 때문에 단지 제한된 양만 가지고 올 수 있을 뿐이다. 윤회하게 되면 어떤 한 시기에 나타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이다.
내면의 세계에서 완전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크로스비 씨는 말했다:
무한한 우주에서 될 수 있는 가능성들은 무한하다. 그래서 상위 세계에서 우리가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내면”이 “외면”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된다. 과거 경험들로부터 얻은 힘과 획득한 지혜를 가진 자아들로서 우리들 개개인의 제한된 범위에서는 신들로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물질계에서 만들어낸 카르마의 조건들이 우리들의 자아적인 성질들을 깨닫게 하거나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막고 있다.
신지학과 신지학 운동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졋지 씨가 언급한 파격적이고 용기를 주는 말이 있다. 그가 말하길:
“신성한 영웅 부족”으로 포함할 수 있는 다른 혼들이 있다. 그들은 비록 육체 속에 거주하며 인간들 사이를 다니지만 이전 생에서 많은 오컬트 입문을 거쳤으나 지금은 영광스러운 과거를 잊게 하며 그들을 가두고 있는 육체와 환경 속에서 살아갈 운명을 가진 혼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느껴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위 본성은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으며 모든 것이 무르익을 때 밤이나 낮이나 다른 본성들에게 영향을 준다. 이 알려지지 않은 초인들은 진정 자신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지나온 입문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다.
과거 지구 생에서 어떤 입문들을 겪었으며 자신들도 모르게 많은 영향을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살고 있다. 사실 그들은 “신성한 영웅 부족”의 오래된 친구들이고, 이 어둠의 시대에 영성을 보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효과들을 만들어 내고 영향력들을 끼치는 데 그들을 훨씬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the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