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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역사적 사실인가 허구인가?
삼국지연의는 동이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황당무계한 역사소설
성훈 칼럼니스트
본 글은 장문이라 아래와 같이 3부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1부) 적벽대전, 역사적 사실인가 허구인가?
(2부) 삼국지연의는 역사서인가 소설책인가?
(3부) 불태워 없애버려야 할 동묘의 관우상
현재 시중에서 ‘적벽대전’이라는 중국영화가 상영중이다. 제작비가 무려 800억이나 든 대작이라 하는데, 큰 문제는 거기에 한국 측에서도 상당액이 투자 되었다는 것이다. 나관중의 황당무계한 과대망상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儀)는 동이족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명나라가 만든 소설이었다. 그런 역사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한국인들이 돈을 댔다?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닌가?
우리의 정신(혼, 역사)을 말살하기 위해 중국에서 정책적으로 만든 소설에 우리 한국인들은 환호를 보내며 열광하고 또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주고, 심지어는 이런 허황된 영화에까지 큰 돈을 투자하는 무지함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없고, 황금만능주의에 눈이 멀었다 해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고로 나관중의 원작명은 삼국연의이며, 국내에는 삼국지연의 또는 삼국지로 알려져 있다.
삼국연의는 한족이 동이족이었던 몽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면서 침체되어 있던 한족의 사기를 북돋우고 자부심을 살리기 위해 명왕조가 정책적으로 만들어낸 동이족 역사말살소설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우리는 삼국지연의를 최고의 역사소설로 알고 있다. 모두들 당시 대륙의 동부에 고구려와 백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흔히들 “삼국지를 10번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대화를 하지 말라”는 말을 쉽게 한다. 공공기관의 필독서로 지정된 것은 물론, 만화로 제작되어 초등학생들에게 조차도 이 과대망상 소설이 수백만 국민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60여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위.촉.오’ 삼국이 대류의 서쪽에서 죽어라고 싸움질만 한 보잘 것 없는 역사를 마치 중국대륙 전체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대망상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를 통해 배운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금권만능의 출세지향을 위한 중상모략과 부모도 몰라보는 배은망덕,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철학적 정신이 있고 사상이 있겠는가? 과대망상소설 삼국지연의 숭상 현상은 이 땅에서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며, 과대망상소설을 추종하며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정신을 죽이고 있는 소중화도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 적벽대전이 역사 속 가장 위대한 전쟁이라고? 엄청난 부풀리기로 과대포장되어 있는 역사소설일 뿐이다.
삼국지연의 속의 적벽대전
<삼국지연의> 속의 당시 상황은, 208년 겨울 위나라 조조의 100만 대군이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 침입했으나 ‘유비(5만) + 손권(5만)’의 연합군에게 적벽대전에서 패전하는데, 방통이 연환계를 써 조조의 배를 묶어두고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게 하여 화공으로 조조군을 거의 전멸시키고 조조가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적벽대전이 있고 얼마 후 위나라가 다시 대군을 거느리고 또 공격해 온다는 것이다. 정말 중국 땅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은 것이지? 100만 대군을 일순간에 잃고도 얼마 후 끄떡없이 다시 대군을 일으키는 조조의 괴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괴력이 아니라 소설속의 허구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참고로 실제 100만 대군을 동원한 수나라는 고구려에게 패하자 민란과 반역이 일어나 망하게 된다. 하물며 통일제국인 수나라도 이러하거늘, 삼국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매번 패전만 하는 조조가 적벽에서 백만명을 한번에 죽이고도 끄떡없다는 것은 소설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삼국지연의는 황당무계한 허구의 소설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연의가 황당무계 소설인 이유 중
첫째는 조조군은 100만 대군이 아니다.
정사인 <삼국지>에 나오는 인구수는 다음과 같다.
* 위 : 66만호 (인구 440만), 병력 20만~50만
* 오 : 52만호 (인구 230만), 병력 15만~20만
* 촉 : 28만호 (인구 94만), 병력 8만~12만
즉 조조의 20만 병력과 유비/손권의 연합군 10만의 싸움이었다.
둘째는 동남풍은 애초에 없었다.
<삼국지 위지>의 기록 : “적벽에 이르러 유비의 군사와 더불어 싸웠는데 불리하였으며, 이때 역병이 크게 돌아 관리와 선비들이 많이 죽어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고 한다.
<삼국지 촉지>의 기록 : “조공(조조)과 더불어 적벽에서 싸워 조조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고 그 배를 불태웠으며 유비와 오나라 군사들이 수륙 양쪽으로 추격을 하여 남군에 다다랐을 때 역병이 돌아 군사가 많이 죽어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역병이 돌아 조조의 군사가 돌아간 것이지, 동남풍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위.오.촉 삼국은 후한이 망하고 진(晋)으로 통일되기 전에 잠시 존재한 나라들이었다. 그들은 60년도 존속하지 못한 보잘것없는 나라였으며, 60년 동안 중상모략과 전쟁만 일삼다 망해버린 하루살이(?) 집단인 것이다. 60년도 못 넘긴 나라를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는지?
- 위(AD.220~265) : 45년
- 촉(AD.221~263) : 42년
- 오(AD.222~280) : 58년 → 이게 무슨 나라인가?
위.오.촉 삼국을 우리 역사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 한 국 : 3,301년
- 배달국 : 1,565년
- 고조선 : 2,096년
- 고구려 : 705년 (북부여 합치면 900년)
- 백 제 : 678년
- 신 라 : 992년
- 대진국 : 229년
- 고 려 : 475년
- 조 선 : 518년
나라 같지도 않은 3국이 60년 동안 죽어라 중상모략과 전쟁만 일삼은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삼국지연의는 명나라 나관중이 한족의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낸 허구의 소설책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에서 일고 있는 황당무계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찬양하는 소리는 필자의 귀에는 광우병 걸린 소들의 울음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과연 그런지 근세조선 시대 학자인 기대승의 상소문을 보기로 하자.
▲ 강건너 붉은 암벽인 적벽이 보인다. 강폭이 이렇게 좁거늘, 여기서 백만대군이 싸웠다는 것은 허풍일 뿐이다.
삼국지연의에 대한 기대승의 상소문
기대승 (奇大升 1527∼1572 중종 22∼선조 5)은 조선시대의 문인이며 서예가로,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고봉(高峰)이고 본관은 행주이며 나주 출생이다. 퇴계 이황과 12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을 논했던 당대의 유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저서로는 시문집인《고봉집》15책,《논사록》,《주자문록》등이 있다.
조선조 선조 2년 당대의 석학 ‘기대승’이 임금께 올린 상소문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서토의 ‘삼국지연의’라는 황당한 소설책은
-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로 쓰여진 소설이고
-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고
-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치는 나쁜 책이고
- 괴상하고 탄망(誕妄)하고, 괴벽(怪癖)한 것뿐이므로 임금이나 백성들이 가까이 하면 안되는 책이라 멀리할 것을 상소한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년(1569년) 6월 20일>의 기록을 보면, 석강에서 <근사록>을 강하고 기대승과 윤근수 등이 역사를 공부하는 법을 논하다. 상이 문정전 석강에 나아갔다. 《근사록》 제2권을 진강하였다. 기대승이 나아가 아뢰기를, “지난번 장필무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삼국지연의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천문·지리에 관한 책은 이전에는 숨겨졌다가 나중에 드러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사기의 경우는 본래 실전되어서 뒤에 억측하기 어려운 것인데 부연하고 증익하여 매우 괴상하고 허탄하였습니다. 신이 뒤에 그 책을 보니 단연코 이는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칩니다.
위에서 우연히 한번 보셨으나 매우 미안스럽습니다. 그중의 내용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동승(董承)의 의대(衣帶) 속의 조서(詔書)라든가, 적벽(赤壁) 싸움에서 이긴 것 등은 각각 괴상하고 허탄한 일과 근거 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입니다. 위에서 혹시 이 책의 근본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감히 아룁니다.
이 책은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가 의리를 심히 해치는 것들입니다. 시문·사화도 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더구나 《전등신화》나 《태평광기》와 같은 사람의 심지를 오도하는 책들이겠습니까. 위에서 무망함을 아시고 경계하시면 학문의 공부에 절실할 것입니다.”하고, 또 아뢰기를,
“정사(正史)는 치란·존망에 관한 것이 모두 실려 있어서, 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갓 문자만을 보고 사적을 보지 않는다면 역시 해가 있습니다. 경서는 심오하여 이해가 어렵고, 사기는 사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경서는 싫어하고 사기를 좋아함은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유사(儒士)가 잡박하기는 쉽고 정미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전등신화》는 놀라우리만큼 저속하고 외설적인 책인데도 교서관이 재료를 사사로이 지급하여 각판하기까지 하였으니, 식자들은 모두 이를 마음 아파합니다. 그 판본을 제거하려고도 하였으나 그대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일반 여염 사이에서는 다투어 서로 인쇄하여 보고 있으며 그 내용에는 남녀의 음행과 상도에 벗어나는 괴상하고 신기한 말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괴상하고 탄망함이 이와 같은데도 인출하기까지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어찌 무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문자를 보면 모두가 평범한 이야기이고 괴벽한 것뿐입니다.
옛사람들은 ‘첫째는 도덕이라.’ 하였고, 또 ‘첫째는 대통이라.’ 하였습니다. 동자도 ‘육경의 과목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은 모두 폐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자가 백성을 인도함에 있어 마땅히 바르지 않은 책은 금해야 합니다. 이는 그 해가 소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옛 임금 중에 가끔 사화를 좋아하고, 염려를 숭상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영명한 군주가 천분이 매우 높으면 후세에 유전하는 시편이 있는데, 저 수 양제·진 후주 같은 이는 지나치게 유의하다가 마침내는 망국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니, 인주(人主)가 사화에 전념한다는 것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가 가운데에는 옛사람의 성정을 읊은 글이 있기는 하나, 역시 과장 잡란한 말이 있으니 위에서도 아셔야 할 일입니다. 우리 유자의 학문 가운데에는 정(程) 주(朱)의 논의가 매우 옳은데, 근래 중원으로부터 유포되는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설문청의 《독서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현재 이를 인출하고 있으나, 그의 의논도 역시 흠이 없지 않으니 배우는 자는 참고해 보는 자료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근래 배우는 자가 정주의 글은 심상히 여기고 새로 나온 책을 보기 좋아 하니 이 또한 해가 많습니다. 위에서는 아셔야 할 일입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기대승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소설 <삼국지연의>를 최고의 역사책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와 조조의 백만대군을 불태운다는 것이 적벽대전의 하이라이트. 그러나 그건 허구일 뿐이다.
그러나 당시 기대승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국지연의의 엉터리 지리비정일 것이다. 대륙 서쪽에 있어야 할 지명이 동쪽으로 옮겨졌다든가 아니면 아예 삼국의 전쟁 지명이 정사와 다르게 표시된 것이었다. 이 말은 당시 대륙의 동쪽에 있던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고의로 지워버렸단 말이다.
여하튼 석학인 기대승이 동이가 대륙서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분서갱유가 일어나 많은 역사왜곡이 있었단 말과 같은 것이다. 명나라의 속국인 근세조선의 고대사서에 대한 사문난적(斯文亂賊)은 세종, 세조, 성종을 거쳐 중종 때까지 지속된다. 이 사이에 우리의 찬란한 상고사가 적혀있던 고서적들은 명나라의 압력에 의해 감금당하고 불태워지게 되며 많은 역사왜곡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이라는 쿠데타로 시작하여 역성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뒤엎고 이씨왕조를 세웠지만 대의명분이 없었다. 고려의 수뇌부를 힘으로 제거할 수 있었으나 백성들과 관리/선비들로부터 지지를 못 받게 되자 이성계는 강력한 외부의 힘을 끌어들인다. 그것이 바로 지극한 사대주의로 스스로 명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한 것이었다. 마침 명나라는 오랜만에 한족이 대륙을 통치하게 되었다.
한족이 통일국가를 이룬 것은 한(漢)나라 이후 740년 만인 960년 송(宋)나라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송나라도 통일 168년 만인 1127년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두 황제(휘종과 흠종)가 동이족인 금나라에게 포로로 잡혀가 무릎을 꿇리는 수모를 당하자, 남쪽으로 내려가 대륙이 둘로 갈라진다. 이후 역시 동이족인 몽고(원)의 지배를 받다가, 드디어 1368년에 명나라에 의해 한족에 의한 통일국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 빨간 선은 송나라의 영토이고 남쪽 오렌지 부분은 남송의 영토이다. 북쪽은 금나라와 고려의 영토. 송나라 당시 금과 고려는 만주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족은 240년 만에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200년 이상 눌려 살아온 한족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편으로 한족의 우수성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 도구로 이용한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 같은 민간 소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명나라는 그동안 선조들이 동이족들에게 지배받았던 분풀이를 마침 속국이 되겠다고 자청한 근세조선에게 되갚는다. 이성계에게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내린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그리고는 조선 조정을 압박하여 상고사의 온갖 역사왜곡을 자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분서갱유와 사문난적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하필 명나라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주었는지 우리는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기원전 상고시대에는 동이의 구리와 단군조선에게 하화족(夏華族)들이 기를 못 펴고 살았다. 그 분풀이를 하화족의 후손인 명나라가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국호를 주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보복이였던 것이다.
우리의 위대했던 상고사의 조상님들은 근세조선이라는 못난 후손을 두게 되어 보잘 것 없는 조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신 별 볼일 없었던 한족의 조상들은 명나라 덕분에 일약 The Greatest (가장 위대한) 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 조상의 모든 역사를 명나라 때 한족이 빼앗아간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던 근세조선이 망하자 이번에는 일제라는 이민족이 36년간 이 땅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모든 조상님들은 허리가 잘리고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광복 63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학이 그대로 판을 치고 있어 아직도 조상님들은 허리가 잘린 상태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신음하고 계시다. 그러나 이대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아마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까지 끊기게 될 지도 모른다.
(2부)에 계속됩니다.
삼국지연의는 동이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황당무계한 역사소설
성훈 칼럼니스트
본 글은 장문이라 아래와 같이 3부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1부) 적벽대전, 역사적 사실인가 허구인가?
(2부) 삼국지연의는 역사서인가 소설책인가?
(3부) 불태워 없애버려야 할 동묘의 관우상
현재 시중에서 ‘적벽대전’이라는 중국영화가 상영중이다. 제작비가 무려 800억이나 든 대작이라 하는데, 큰 문제는 거기에 한국 측에서도 상당액이 투자 되었다는 것이다. 나관중의 황당무계한 과대망상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儀)는 동이족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명나라가 만든 소설이었다. 그런 역사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한국인들이 돈을 댔다?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닌가?
우리의 정신(혼, 역사)을 말살하기 위해 중국에서 정책적으로 만든 소설에 우리 한국인들은 환호를 보내며 열광하고 또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주고, 심지어는 이런 허황된 영화에까지 큰 돈을 투자하는 무지함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없고, 황금만능주의에 눈이 멀었다 해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고로 나관중의 원작명은 삼국연의이며, 국내에는 삼국지연의 또는 삼국지로 알려져 있다.
삼국연의는 한족이 동이족이었던 몽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면서 침체되어 있던 한족의 사기를 북돋우고 자부심을 살리기 위해 명왕조가 정책적으로 만들어낸 동이족 역사말살소설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우리는 삼국지연의를 최고의 역사소설로 알고 있다. 모두들 당시 대륙의 동부에 고구려와 백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흔히들 “삼국지를 10번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대화를 하지 말라”는 말을 쉽게 한다. 공공기관의 필독서로 지정된 것은 물론, 만화로 제작되어 초등학생들에게 조차도 이 과대망상 소설이 수백만 국민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60여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위.촉.오’ 삼국이 대류의 서쪽에서 죽어라고 싸움질만 한 보잘 것 없는 역사를 마치 중국대륙 전체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대망상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를 통해 배운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금권만능의 출세지향을 위한 중상모략과 부모도 몰라보는 배은망덕,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철학적 정신이 있고 사상이 있겠는가? 과대망상소설 삼국지연의 숭상 현상은 이 땅에서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며, 과대망상소설을 추종하며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정신을 죽이고 있는 소중화도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 적벽대전이 역사 속 가장 위대한 전쟁이라고? 엄청난 부풀리기로 과대포장되어 있는 역사소설일 뿐이다.
삼국지연의 속의 적벽대전
<삼국지연의> 속의 당시 상황은, 208년 겨울 위나라 조조의 100만 대군이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 침입했으나 ‘유비(5만) + 손권(5만)’의 연합군에게 적벽대전에서 패전하는데, 방통이 연환계를 써 조조의 배를 묶어두고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게 하여 화공으로 조조군을 거의 전멸시키고 조조가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적벽대전이 있고 얼마 후 위나라가 다시 대군을 거느리고 또 공격해 온다는 것이다. 정말 중국 땅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은 것이지? 100만 대군을 일순간에 잃고도 얼마 후 끄떡없이 다시 대군을 일으키는 조조의 괴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괴력이 아니라 소설속의 허구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참고로 실제 100만 대군을 동원한 수나라는 고구려에게 패하자 민란과 반역이 일어나 망하게 된다. 하물며 통일제국인 수나라도 이러하거늘, 삼국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매번 패전만 하는 조조가 적벽에서 백만명을 한번에 죽이고도 끄떡없다는 것은 소설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삼국지연의는 황당무계한 허구의 소설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연의가 황당무계 소설인 이유 중
첫째는 조조군은 100만 대군이 아니다.
정사인 <삼국지>에 나오는 인구수는 다음과 같다.
* 위 : 66만호 (인구 440만), 병력 20만~50만
* 오 : 52만호 (인구 230만), 병력 15만~20만
* 촉 : 28만호 (인구 94만), 병력 8만~12만
즉 조조의 20만 병력과 유비/손권의 연합군 10만의 싸움이었다.
둘째는 동남풍은 애초에 없었다.
<삼국지 위지>의 기록 : “적벽에 이르러 유비의 군사와 더불어 싸웠는데 불리하였으며, 이때 역병이 크게 돌아 관리와 선비들이 많이 죽어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고 한다.
<삼국지 촉지>의 기록 : “조공(조조)과 더불어 적벽에서 싸워 조조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고 그 배를 불태웠으며 유비와 오나라 군사들이 수륙 양쪽으로 추격을 하여 남군에 다다랐을 때 역병이 돌아 군사가 많이 죽어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역병이 돌아 조조의 군사가 돌아간 것이지, 동남풍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위.오.촉 삼국은 후한이 망하고 진(晋)으로 통일되기 전에 잠시 존재한 나라들이었다. 그들은 60년도 존속하지 못한 보잘것없는 나라였으며, 60년 동안 중상모략과 전쟁만 일삼다 망해버린 하루살이(?) 집단인 것이다. 60년도 못 넘긴 나라를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는지?
- 위(AD.220~265) : 45년
- 촉(AD.221~263) : 42년
- 오(AD.222~280) : 58년 → 이게 무슨 나라인가?
위.오.촉 삼국을 우리 역사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 한 국 : 3,301년
- 배달국 : 1,565년
- 고조선 : 2,096년
- 고구려 : 705년 (북부여 합치면 900년)
- 백 제 : 678년
- 신 라 : 992년
- 대진국 : 229년
- 고 려 : 475년
- 조 선 : 518년
나라 같지도 않은 3국이 60년 동안 죽어라 중상모략과 전쟁만 일삼은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삼국지연의는 명나라 나관중이 한족의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낸 허구의 소설책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에서 일고 있는 황당무계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찬양하는 소리는 필자의 귀에는 광우병 걸린 소들의 울음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과연 그런지 근세조선 시대 학자인 기대승의 상소문을 보기로 하자.
▲ 강건너 붉은 암벽인 적벽이 보인다. 강폭이 이렇게 좁거늘, 여기서 백만대군이 싸웠다는 것은 허풍일 뿐이다.
삼국지연의에 대한 기대승의 상소문
기대승 (奇大升 1527∼1572 중종 22∼선조 5)은 조선시대의 문인이며 서예가로,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고봉(高峰)이고 본관은 행주이며 나주 출생이다. 퇴계 이황과 12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을 논했던 당대의 유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저서로는 시문집인《고봉집》15책,《논사록》,《주자문록》등이 있다.
조선조 선조 2년 당대의 석학 ‘기대승’이 임금께 올린 상소문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서토의 ‘삼국지연의’라는 황당한 소설책은
-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로 쓰여진 소설이고
-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고
-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치는 나쁜 책이고
- 괴상하고 탄망(誕妄)하고, 괴벽(怪癖)한 것뿐이므로 임금이나 백성들이 가까이 하면 안되는 책이라 멀리할 것을 상소한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년(1569년) 6월 20일>의 기록을 보면, 석강에서 <근사록>을 강하고 기대승과 윤근수 등이 역사를 공부하는 법을 논하다. 상이 문정전 석강에 나아갔다. 《근사록》 제2권을 진강하였다. 기대승이 나아가 아뢰기를, “지난번 장필무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삼국지연의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천문·지리에 관한 책은 이전에는 숨겨졌다가 나중에 드러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사기의 경우는 본래 실전되어서 뒤에 억측하기 어려운 것인데 부연하고 증익하여 매우 괴상하고 허탄하였습니다. 신이 뒤에 그 책을 보니 단연코 이는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칩니다.
위에서 우연히 한번 보셨으나 매우 미안스럽습니다. 그중의 내용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동승(董承)의 의대(衣帶) 속의 조서(詔書)라든가, 적벽(赤壁) 싸움에서 이긴 것 등은 각각 괴상하고 허탄한 일과 근거 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입니다. 위에서 혹시 이 책의 근본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감히 아룁니다.
이 책은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가 의리를 심히 해치는 것들입니다. 시문·사화도 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더구나 《전등신화》나 《태평광기》와 같은 사람의 심지를 오도하는 책들이겠습니까. 위에서 무망함을 아시고 경계하시면 학문의 공부에 절실할 것입니다.”하고, 또 아뢰기를,
“정사(正史)는 치란·존망에 관한 것이 모두 실려 있어서, 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갓 문자만을 보고 사적을 보지 않는다면 역시 해가 있습니다. 경서는 심오하여 이해가 어렵고, 사기는 사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경서는 싫어하고 사기를 좋아함은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유사(儒士)가 잡박하기는 쉽고 정미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전등신화》는 놀라우리만큼 저속하고 외설적인 책인데도 교서관이 재료를 사사로이 지급하여 각판하기까지 하였으니, 식자들은 모두 이를 마음 아파합니다. 그 판본을 제거하려고도 하였으나 그대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일반 여염 사이에서는 다투어 서로 인쇄하여 보고 있으며 그 내용에는 남녀의 음행과 상도에 벗어나는 괴상하고 신기한 말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괴상하고 탄망함이 이와 같은데도 인출하기까지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어찌 무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문자를 보면 모두가 평범한 이야기이고 괴벽한 것뿐입니다.
옛사람들은 ‘첫째는 도덕이라.’ 하였고, 또 ‘첫째는 대통이라.’ 하였습니다. 동자도 ‘육경의 과목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은 모두 폐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자가 백성을 인도함에 있어 마땅히 바르지 않은 책은 금해야 합니다. 이는 그 해가 소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옛 임금 중에 가끔 사화를 좋아하고, 염려를 숭상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영명한 군주가 천분이 매우 높으면 후세에 유전하는 시편이 있는데, 저 수 양제·진 후주 같은 이는 지나치게 유의하다가 마침내는 망국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니, 인주(人主)가 사화에 전념한다는 것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가 가운데에는 옛사람의 성정을 읊은 글이 있기는 하나, 역시 과장 잡란한 말이 있으니 위에서도 아셔야 할 일입니다. 우리 유자의 학문 가운데에는 정(程) 주(朱)의 논의가 매우 옳은데, 근래 중원으로부터 유포되는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설문청의 《독서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현재 이를 인출하고 있으나, 그의 의논도 역시 흠이 없지 않으니 배우는 자는 참고해 보는 자료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근래 배우는 자가 정주의 글은 심상히 여기고 새로 나온 책을 보기 좋아 하니 이 또한 해가 많습니다. 위에서는 아셔야 할 일입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기대승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소설 <삼국지연의>를 최고의 역사책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와 조조의 백만대군을 불태운다는 것이 적벽대전의 하이라이트. 그러나 그건 허구일 뿐이다.
그러나 당시 기대승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국지연의의 엉터리 지리비정일 것이다. 대륙 서쪽에 있어야 할 지명이 동쪽으로 옮겨졌다든가 아니면 아예 삼국의 전쟁 지명이 정사와 다르게 표시된 것이었다. 이 말은 당시 대륙의 동쪽에 있던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고의로 지워버렸단 말이다.
여하튼 석학인 기대승이 동이가 대륙서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분서갱유가 일어나 많은 역사왜곡이 있었단 말과 같은 것이다. 명나라의 속국인 근세조선의 고대사서에 대한 사문난적(斯文亂賊)은 세종, 세조, 성종을 거쳐 중종 때까지 지속된다. 이 사이에 우리의 찬란한 상고사가 적혀있던 고서적들은 명나라의 압력에 의해 감금당하고 불태워지게 되며 많은 역사왜곡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이라는 쿠데타로 시작하여 역성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뒤엎고 이씨왕조를 세웠지만 대의명분이 없었다. 고려의 수뇌부를 힘으로 제거할 수 있었으나 백성들과 관리/선비들로부터 지지를 못 받게 되자 이성계는 강력한 외부의 힘을 끌어들인다. 그것이 바로 지극한 사대주의로 스스로 명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한 것이었다. 마침 명나라는 오랜만에 한족이 대륙을 통치하게 되었다.
한족이 통일국가를 이룬 것은 한(漢)나라 이후 740년 만인 960년 송(宋)나라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송나라도 통일 168년 만인 1127년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두 황제(휘종과 흠종)가 동이족인 금나라에게 포로로 잡혀가 무릎을 꿇리는 수모를 당하자, 남쪽으로 내려가 대륙이 둘로 갈라진다. 이후 역시 동이족인 몽고(원)의 지배를 받다가, 드디어 1368년에 명나라에 의해 한족에 의한 통일국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 빨간 선은 송나라의 영토이고 남쪽 오렌지 부분은 남송의 영토이다. 북쪽은 금나라와 고려의 영토. 송나라 당시 금과 고려는 만주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족은 240년 만에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200년 이상 눌려 살아온 한족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편으로 한족의 우수성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 도구로 이용한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 같은 민간 소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명나라는 그동안 선조들이 동이족들에게 지배받았던 분풀이를 마침 속국이 되겠다고 자청한 근세조선에게 되갚는다. 이성계에게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내린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그리고는 조선 조정을 압박하여 상고사의 온갖 역사왜곡을 자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분서갱유와 사문난적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하필 명나라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주었는지 우리는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기원전 상고시대에는 동이의 구리와 단군조선에게 하화족(夏華族)들이 기를 못 펴고 살았다. 그 분풀이를 하화족의 후손인 명나라가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국호를 주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보복이였던 것이다.
우리의 위대했던 상고사의 조상님들은 근세조선이라는 못난 후손을 두게 되어 보잘 것 없는 조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신 별 볼일 없었던 한족의 조상들은 명나라 덕분에 일약 The Greatest (가장 위대한) 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 조상의 모든 역사를 명나라 때 한족이 빼앗아간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던 근세조선이 망하자 이번에는 일제라는 이민족이 36년간 이 땅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모든 조상님들은 허리가 잘리고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광복 63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학이 그대로 판을 치고 있어 아직도 조상님들은 허리가 잘린 상태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신음하고 계시다. 그러나 이대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아마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까지 끊기게 될 지도 모른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