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와 일본에서 찾는 고대한국
‘기모노’는 귀족 여성들의 예복으로 본래 백제상복에서 유래되었다
문화부
1. 고대 한국과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의 관계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은, 동방족들의 일부가 알래스카와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과 멕시코와 남미 대륙까지 뻗어 가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이들의 언어와 풍습에서 증명되고 있고, 지질학적으로도 베링해협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걸어서 이 곳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어 있다(오른 쪽 그림).
그리고 흑요석의 분포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그 아래). 또한, 인디언의 말 중에 한국인의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아래 그림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상징인 버팔로 들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다. 원래 인디언은 배고플 때만 버팔로를 잡았지 재미로 잡은 일이 없다.
그런데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멸족시키기 위해서 버팔로를 멸종시켰죠. 먹지도 않고 가죽도 쓰지 않으면서 오로지 인디언을 굶겨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멸종될뻔 했던 버팔로가 현대과학적 노력으로 지금은 다시 복구되기 시작했다. 인디언들이 썼던 말들 중에 한국인과 유사한 말이 많다.
아리조나 주에 살던 인디언들 중에서 아파치족들이 있었는데, '아파치'라는 말은 인디언 말로서, 영어로 번역하면 'Father', 즉, 우리말로 '아버지'라는 뜻이다.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 '요새미티' 공원은 인디언 말로 '웅주마티'에서 왔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re are many bears', 즉, '여기는 곰이 많지' 이런 뜻이다.
이것도 우리말과 매우 유사하다. 곰 수가 많다는 뜻에서 '웅수 많지' 라고 발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 동부지방 '커네티컷'은 인디언말로 '큰네터갓' 라고 하여 강가의 넓은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큰 내터 가' 가 되지요.
오른 쪽 그림은 커네티컷 지방의 큰 내터 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디언 중에 '이시이' 족이라고 있다. 이 이시이 족이 쓰고 있는 깃발을 보면 갑골문자로 나무 목 자와 아들 자 자를 기록해 두었다.
나무 목(木) 자 밑에 아들 자(子) 자가 있으면 한자로 '오얏 이(李)' 자 이씨(李氏) 다. '이씨'니까 '이시이'가 된다. 갑골문자는 본래 만주와 한반도 사람들의 문자다.
왼쪽 그림은 캐나다의 도시 토론토다. '토론토'라는 말도 인디언 말인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meeting place' 라는 뜻이다.
인디언 추장들이 모여서 토론하던 터, 즉, '토론 터'인 것이다. 그리고 북미 인디언들이 철인5종 경기를 할 때 동네 원로들이 모여서 응원을 했다.
이들이 응원가를 20번이나 30번 할 때까지 젊은이들이 돌도 지고 가고 통나무도 지고 가서 산 위에까지 다녀오는 것이다. 그 노래가 너무나 놀랍다.
"에이 챵해이라 코시앵헤 창헤이라" 이렇게 부른다. 그 동안에 청년들이 산꼭대기까지 다녀오면은 철인5종 경기 메달을 따는 것이다.
이 노래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에이 장해라! 고생해, 장해라!"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말 그대로의 응원가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들이 북미대륙의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언어학적인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즉, 고대 한국인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인디언들은 동방족의 특징인 머리를 길게 따고(아래 왼쪽), 짚신을 신고 살았다(아래 가운데).
새와 깃털을 숭상했고, 집을 비울 때는 정랑을 걸며, 인디언 신생아의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다.
미국이나 멕시코의 인디언 박물관에 가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한국의 민속박물관과 꼭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증거는 인디언과 한국인의 혈연관계에 나타난다.
HLA에 의한 혈연관계를 조사해 보면 분명한 증거가 나타난다(위 오른 쪽). 인간 조직적합성항원 연구의 세계적 중심기관인 미국 UCLA의 HLA센터 교수들이 연구해 본 결과 한국인과 인디언들이 100퍼센트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HLA A2 나 B62, C3 와 같은 것은 한국인 외에는 세계 어디에도 안 나오는데 인디언들에게 나온다. 그것은 고인돌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인디언들은 바로 아메리카로 이동한 한반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2. 고대 한국과 고대 일본과의 관계
악연으로 이어져온 한일관계에 있어 임진왜란과 일제 36년을 통하여 [왜]로 인식되는 일본이란 나라의 실체를 알아보자. 한일관계의 악연의 배경은 아마도 고대 고구려.신라.백제와의 관계에서 찾아야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신라에게 멸망당하여 일본열도로 이동한 가야와 백제는 신라를 원수처럼 여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일관계를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보자면 아마도 백제와 신라와의 끝나지 않는 전쟁정도로 보면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전쟁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전쟁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전쟁으로는 악순환만 지속되기 때문에 역사적 인식을 통하여 서로가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여 미래의 동반적 관계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특히, 가야와 백제을 멸망시키고 일본열도로 축출시킨 신라의 김알지 후손들은 백제왕족들의 피가 흐르는 일본황실에 대해 사죄하고, 일본황실 또한 한반도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일제하 피해에 대해 배상한다면 한일관계로 더 협력과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나가리라 본다.
화해와 협력은 사죄와 배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극단적인 국수주의와 극우세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감정적 차원으로 발전해 나가서는 대립과 갈등의 연속일 뿐, 전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한국과 일본의 공동의 적은 군국주의와 침략주의와 역사왜곡세력임을 전제로 고대 일본의 천황(天皇)가는 우리 민족하고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 보기로 한다.
백제 무녕왕릉(황제사망시 표기되는 '붕어'라는 지석판이 발견). 아시아의 해상제국 백제황실이 백제 담로국의 하나였던 왜열도 왕실에 하사한 칠지도(왼쪽부터)
대륙과의 혈연설을 부정해 왔던 일본황실이 족보상 백제 무녕왕(곤지)과 관계된다고 언론방송에 공식발표하는 일본의 아끼히토 천황
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로히또' 천황(天皇)이 천황 집안의 오래 전 생활을 그린 그림책을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은 하지 않고 천황족(天皇族)들만 하는 특수한 문화가 있는데, 천황족(天皇族)들만 먹는 특수한 떡을 만드는 방법과 떡을 그려 놓고, 그 옆에 가다가나(일본어)로 '시루또꾸'라고 써 놓았다. 그 떡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시루떡'이었다.
고구려 여인들의 고쟁이
그리고 일본 여자들은 과거에 원시적이어서 팬티를 안 입고 살았는데, 천황족(天皇族)들만 유일하게 팬티를 입고 살았다.
그 팬티를 그려놓고 가다가나로 '고쟁이'라고 써 놓았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던 '고쟁이'이다.
지금은 수의로 쓰이는 고쟁이는 고쟁이는 한복과 함께 입는 옛 속옷 가운데 하나로 고구려시대부터 여성 속옷으로 고구려 벽화속에도 나온다.
그래서 일본황족들은 우리하고 혈연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일본천황은 히로히또의 아들 '아끼히또'다. 이 사람이 위 동영상 자료가 증명하듯이 얼마전 언론방송에 고대 일본천황은 백제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몇 대 할머니는 백제 무녕왕(곤지왕)의 누구였고... 하는 것을 말했다. 일본 천황족과 관련이 깊은 무녕왕은 바로 일본에서 [사마]로 불리던 백제 무령왕이다.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인 '칠지도(七支刀)' 안에 이렇게 쓰여 있다. "높으신 백제왕이 그 밑에 급인 일본 왕에게 주노라." 당시 일본황실에 대한 백제의 위상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황실은 백제황실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아시아 해상제국 백제는 일본열도는 물론이요 쥐나의 동남지역과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22담로를 두었는데, 그 담로의 왕은 바로 백제황족들이였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황실은 백제황족들일 수 밖에 없다.
왼쪽 그림은 일본의 기토라 고분의 무덤 천정에 그려진 천체도다. 일본 어디에도 이런 모습을 관찰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천체도는 바로 한국땅 평양의 하늘에서 보이는 천체도였던 것이다. 아마도 고구려 출신의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천황족으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자 꿈에도 잊지 못할 자신의 조국 평양의 하늘을 사모하여 무덤에서라도 내 고향의 하늘을 보겠다고 유언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말 속에도 우리말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말 '나라'를 일본에서도 '나라' 라고 한다. 우리말의 '왔소'가 일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에 가까운 '왔쇼이',
우리말의 '도착'이 일본에서 '도차꾸' 다. 일본사람들이 크게 낭패를 만났을 때 일본말로 "백제가 망했는데...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느냐)"라는 표현을 쓴다.
백제가 망한 지 천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고대 일본이 백제와 얼마나 긴밀한 관계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백제상복에서 유래한 기모노
또한 백제 무녕왕릉에서도 발굴되었다고 하는 ‘기모노’는 귀족 여성들의 예복으로 본래 백제의 상복에서 유래되었다.
백제가 신라에게 패망후 상복을 벗지않았다는 백제 왕족들과 귀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나라를 찾을 때까지 벗지 않겠다며 고집한 백제의 상복이다.
그 옷이 일본 예복인 기모노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상복과 기모노의 패턴을 외관상으로 비교하여 보면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모노에서는 잘룩한 허리, 볼륨있는 가슴, 유연한 소매나 어깨 라인등은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직선만이 있을 뿐이다.
치렁대는 긴 소매도 간단하게 뚝 절라 버리면 간편하련만 굳이 우리 선조들이 가르쳐준 상복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직사각형으로 축 쳐진 소매를 오늘까지 면면히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기모노(着物)란 일상적인 의상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이지만 좁은 의미의 기모노(着物)라 함은 화복(和服) 그 중에서도 本絹이라고도 불리고 비단이라고도 하는 100% PURE SILK 원단 위에 먹물로 수 많은 점(点)을 찍고 그 점을 굵은 면사(綿絲)로 한 땀씩 묶은 후에 염색을 하고 건조 후에 묶었던 면사를 다시 풀어 내면 실이 묶여있던 부분에는 염료가 침투를 하지 못하여 흰색으로 남아 있고 실이 묶이지 않았던 머리 부분은 염색이 되어 일정한 간격의 물방울 무늬를 형성하게 되는 원단이 되며,
이 원단의 주요 포인트에 손 자수를 넣거나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手描) 금박이나 은박으로 장식하여 완성된 원단으로 제작한 일본의 전통적인 의상을 말한다.
그리고 고대 일본의 글자 '가나'는 알고 보니 신라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지난 2002년 4월에 일본의 NHK에서 방영되었다(아래 그림은 불경에 각필로 토를 단 것이다).
일본의 신사에서 기도드릴 때 "중년의 여인이여 어서 오셔서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해 주오" 라는 뜻의 기도문을 외운다. 이것은 일본 황실제사에서도 그대로 행해지고 있다.
일본 발음 그대로 읽어보면: "아! 아지매! 어서 오게, 오게!" 경상도 말 그대로다.
번역할 필요가 없다. 고대 한국인들 특히 경상도 아주머니들이 일본에 가서 글도 가르치고 문화도 가르치고 문명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도움을 입었던 일본의 천황족과 원로들이 아쉬울 때마다 경상도 아주머니(아지매)를 그리워한 것이다.
일본글 가나가 만들어지는 시기가 10세기이다. 그럼 그 이전 9세기 이전은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만엽집이다. 4세기부터 8세기기까지 이룩된 향찰식표기(이두문/엄밀히 말하면 다르다)로 한자의 "소리"를 차용한 용자법이다.
한자는 뜻글자이만 한글처럼 표음문자로 한자를 사용한 것이다.(향찰식표기법) 이렇게 보면 일본이란 나라는 백제계의 일본황실을 중심으로 해서 고대 고구려,신라,백제,가야 문화가 혼합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8세기 이전 일본노래 만엽가도 순수 한국말임을 증명
8세기 일본인들의 말이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향찰식 노래가 만엽가다. 약 4600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신라향가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향가는 25수가 남아있다. 이 만엽가의 주인공은 일본왕실을 비롯한 왕자,여왕,귀족들의 노래들이다. 이 노래가 일본 인들이 해석해 놓은 것을 보면 의미불명이라해서 완독을 못하고 있으며 의문투성임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가정 어렵다고 한 2991번 만엽가를 해독한 "전혀다른 향가와 만엽가"(우리문학사/1993년 김인배,김문배공저)에서 1수 발췌하여 일부분만 올려 이 만엽가가 한국어임을 알게하고 일본왕실과 그 주체세력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일본,아스카 와 같은 국호까지 한국향찰식의 소리글로 지은 그들의 정체를...
(만엽가)
본문:垂乳根之母我養蠶乃眉隱馬聲蜂音石花蜘(蟲廚)荒鹿異母二不相而(27자)
垂(드르우)乳(젖)根(근)之(지)母(어미):드르(들판의 고어)우(上)젖 큰 지어미
我(아)養(기를)蠶(눗헤)乃(내) :아기를 눕혔(눗헤/누에:고어)네
眉(미)隱(은)馬(말)聲(성)蜂(버리)音(그늘):미운 말썽버리(벌/버리/고어)거늘
石(돌)花(화)蜘(거믜) :돌아 거믜(까물아지다/고어)
(蟲廚)(쥐메노호리/쥐메늘/고어) :째매놓으리
荒(그츠)鹿(사잠)異(다르) :그치사 잠(사잠/사슴/고어)들어
母(어미)二(두)不(불)相(상)而(이) :어미두 불쌍이 (생각한다)
해설 : 들판에 젖이 큰 지어미가 아기를 눕혔네(젖먹인다) 미운 말썽부리거늘.
(젖달라고)돌아 까물어지니 짜매놓으리(우는것을)그치사+잠(寢)들어. 어미두 불쌍이 생각한다.
문자풀이:아기를(我(아)+養(기를)=목적격 "를"까지 그들이 사용했다는 것이다.이 노래를 해석하여놓고 보니 현재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그 당시에도 같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향찰식표기는 한자의 "소리"를 차용한 것이다.
한자의 의미는 은유로 사용되고 한자를 "발음기호"로 사용한 것이다. 音(그늘/陰:옛날에는 陰자 대신 音을 사용하여 "그늘"이라 했다-큰 사전 참조)
훈민정음은 우리말 소리말의 소리부호=발음부호의 창조이다. 이 시기 향찰의 표기법은 "한자"는 "소리부호" 발음부호의 역할인 셈이다.
특이 한 것은 (蟲廚)는 廚(부억/주)에 벌레 충(蟲)이 붙은 글자로서 한문사전에도 나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이는 순전히 노래의 기록자가 고안해 낸 글자로 부엌 등의 그늘지고 습기찬 곳에 서식하는 벌레라는 의미에서 부엌 廚(주)와 벌레 충(蟲)의 會意字로 만든 글자이다. (쥐메느리/(공벌레):고어:쥐메노호리/째매놓으리/소리차용). 놀라운 용자법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어디 감히 일본인이 이것을 해석하리오.
4600수 모두 한국어로 해석된다면? 일본천황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이 부르짖는 만세일계의 천황계통의 허상이 깨어지는 순간들일 것이다.
이미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빛남출판사1991년판"에서도 소개된 그들이 있기 때문에 그 진실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미발표된 만엽가가 500수가 된다고 하니 김씨들의 연구성과에 기대해본다.
▲ 일본 국립 유전학 연구소 자료
일본인들도 HLA 유전연구결과 한국인들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일본 국립 유전학 연구소에서 그려놓은 유전자 구조도와 유전자 분포도를 보면 쥐나대륙의 산동지역과 만주.시베리아.
일본은 고대 단군조선의 영역 그대로 우리 한국인들의 영역임을 알 수 있고, 그 후손들임을 알 수 있다(지금의 산동지역이 쥐나국의 땅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까지 쥐나인들이고 규정하면 안되는 것이다..쥐나대륙의 남부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고대 동이족들의 후손들이 현재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 즉, 일본 본토에 순순 본토인(조몬인=아이누)의 DNA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8%에 불과한 것으로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가 밝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국립유전학연구소 공식 홈페이지(www.nig.ac.jp) 전자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호우라이 사토시 박사의 연구자료를 일본인 유래를 알 수 있는 가장 근거 있는 자료로써 공식 채택하고 있다.
그 동안 이와 유사한 내용의 연구들이 있긴 했으나 공신력 있는 일본기관이 공식 확인해주기는 이례적인 일이다.
호우라이박사는 미토콘드리아 DNA다형으로부터 일본인의 유래를 밝히면서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4.8%에 불과하고,50%는 한국인, 중국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있다고 밝혔다.
보통 인류학적인 면에서 일본인(원주민)이라 함은 죠몽인, 아이누, 류큐인 3집단을 뜻한다. 하지만 이 집단들이 각각 별도의 종족이 아니라 아이누와 류큐인은 죠몽인(본토인)의 후손으로 모두 같은 종족이라는 설도 있다.
어떻든 이들 3종족은 사는 곳이 서로 확연히 다르다. 류큐인과 아이누는 일본열도 남과 북의 끝단 즉 아이누족은 최북단 북해도에 살고 있고, 류큐인은 최남단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일본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본토(일본에서는 本州라고 부름)에는 죠몽인이라는 원주민이 있다.
그러나 일본인의 유래와 현대 일본인의 구성을 확인하기 위해 DNA를 분석한 호우라이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은 한국, 중국 등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으로 구성돼 있음이 밝혀졌다.
일본 도쿄(東京)대 의학부 인류유전학교실 도쿠나가 가쓰시(德永勝士·49·사진) 교수또한 “최근의 게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6번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HLA(인체 백혈구 항원) 유전자군을 동아시아 여러 민족과 비교한 결과 일본 본토인과 가장 가까운 집단은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이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도쿠나가 교수는 HLA 유형을 기준으로 일본인 한국인 한(漢)족 만주족 조선족 몽골족 대만 원주민 등 동아시아 내 12개 민족(집단)을 비교분석한 결과 일본 본토인은 오키나와(沖繩)인이나 북쪽 홋카이도(北海道) 아이누족보다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에 가까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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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의 복야회는 활(弓)이 아닌 노(弩)를 사용하여 수련을 하고 있다. 활은 당김을 손가락으로 하지만, 노는 지금의 총처럼 방아쇠를 통해서 발사를 한다. 이의 이름은 쇠노 또는 쇠뇌라고도 불리운다.
쇠노(쇠뇌) 무기의 장점은 일정한 힘에 의해서 일정한 거리와 정확도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또한, 활은 병사들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는 아주 간단한 조작법만으로도 노를 능수능란하게 다룰수 있다.
그러므로 쇠뇌(노)를 다루는 자는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거나 생업에 종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활은 평상시에 부단한 연마를 하여야 하고, 개개인의 기량차에 따라서 군대의 역량이 달라진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에서 일명 석궁은 쇠뇌와 비슷한 구조이다. 쇠뇌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때 주무기로 사용하던 신무기였다. 하지만 신라의 노는 당나라에서도 탐을 내던 물건이다.
신라의 노는 천보를 날아가지만, 당나라의 노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나라는 신라의 비밀병기인 쇠뇌기술을 넘겨받고자 했지만 당은 신라의 쇠뇌를 얻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개인의 사적이득을 위해서 기업의 일급비밀을 중국이나 대만에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일급비밀을 차지하기 위해서 기업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기업비밀이나 특허를 획득한후, 경영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최근에도 쌍용자동차가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에 경영권이 넘어갔다가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의 최고급 기업비밀에 해당하는 디젤하이브리드엔진 개발전반을 빼돌린후 쌍룡자동차를 팽하고, 중국으로 철수 해 버렸다.
우리나라는 최근 인공위성 발사체에 해당하는 로켓기술을 러시아로 부터 들어와서 나로도에서 발사를 하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발사가 성공하지 못하였다. 로켓기술은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우주개발에도 필요하지만,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원천기술에 해당한다. 그래서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로켓개발을 방해하였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의 도움과 독자적인 노력으로 로켓기술을 개발하여, 자국에서 인공위성을 발사는 전세계 10대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한 국가에 되었다. 미국이 핵무기보다도 북한의 로켓기술에 더 겁을 먹은 이유는 로켓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세계 몇나라 중에 북한이 속했기 때문이다. 로켓에 핵무기를 장착하고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면 등골이 오싹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우리나라는 독자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부터 수입하거나, 공동개발이 무산되어, 일본기업에 다음 대형인공위성 발사만을 위해서 돈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와는 다르게 일본으로부터 기술전수는 하나도 받을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초기 속함성과 아막성 전투에서도 잠시 나왔다. 이때 뜬것은 알천인 이승효이지만, 쇠뇌를 사용하여 공성전을 벌리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30편에서 유신이 덕만의 명으로 복야회를 서라벌로 불러들이려 복야회의 산채로 간다. 이때 복야회의 주무기로 쇠뇌가 등장을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보유하고 있는 신무기인 거노(車弩:수레쇠뇌)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669년 겨울에 당나라 사신이 도착하여 조서를 전하고 쇠뇌 기술자 사찬 구진천(仇珍川)과 함께 [당으로] 돌아갔다. [당에서 그에게] 나무 쇠뇌를 만들게 하여 화살을 쏘았는데 30보 나갔다. 황제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에 너희 나라에서 쇠뇌를 만들어 쏘면 1천 보를 나간다고 하는데, 지금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구진천이] 대답하였다. “재목이 좋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가져온다면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천자가 사신을 보내 재목을 구하자 곧 대나마 복한(福漢)을 보내 나무를 바쳤다. 다시 만들게 하여 쏘았는데 60보를 나갔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신도 역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아마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무에 습기가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천자는 그가 일부러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벌로써 위협하였으나 끝내 자기의 재주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
669년이면, 668년 가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서 고구려가 망하고, 한참 신라와 당이 서로 숨은 마각(?)을 감추고 있을때이다, 당은 호시탐탐 신라를 노리고, 신라는 당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반도를 경영하고 싶다는 동상이몽속에서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사이일때 이다.
그런데 이때 당은 신라에 "신무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기술을 빼올려고 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동맹국인 당의 요구에 쇠뇌전문가인 구진천을 마지 못해 보냈지만, 구진천은 당에게 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시간만을 보냈다.
이때 신라가 보유한 쇠뇌의 성능은 1천보를 갈 수 있다고 한다. 1천보이면 현재 거리로 약, 1키로에서 1.4Km에 해당한다. 그러니 이때의 쇠뇌는 <선덕여왕>에서 복야회가 사용하던 사람 혼자 발사를 하는 형태가 아니고, 수레에 걸고 쏘는 이동식 로켓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기전
조선시대 임진왜란시기 이순신이 왜군을 물리친 절대적인 이유중 이순신의 전략도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이 가지고 있는 함포(대포)가 장착된 함선이였고, 왜(일본)은 함포가 없는 함선이였다.
또한, 나중에 왜가 함선에 함포를 장착하였지만, 조선의 함선과 포 등 성능에 차이가 있었고, 함선에서 포를 발사시 함선이 움직이지 않는 안전성과 이동성 등에서 조선을 이길수가 없었다.
조선은 먼거리에서 일본를 공격할 수 있지만, 일본는 조선함선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조선함선에 가까에 온 다음, 조총이나, 활이나 근접전만으로 대항하는 수준이였다. 그러니 전체적인 군사전력에서 조선이 함선 수에 상관없이 앞설 수 있었다. 현재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한척이 수십척의 함선을 대적할 수 있는것과 같다.
현대 군전술개념인 먼저기동하고, 먼저보고, 먼저쏘고, 이동하는 전술처럼 신라도 당과의 전쟁에서 먼저보고, 먼저쏘고, 보복폭격을 피할 수 있게 이동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식 140보 사거리 쇠노
신라가 이동식 미사일인 구진천의 쇠뇌(거노:수레노)를 보유하고 있었음으로 당이 신라를 굴복시키려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신라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만약, 당시 신라의 구진천이 당의 회유에 넘어가서 신라의 비밀병기의 비급을 팔아넘겼다면, 당은 신라를 손쉽게 접수했을 수도 있다.
731년 여름 4월에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으므로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가을 9월에 백관에게 명하여 적문(的門)에 모여 수레 쇠뇌[車弩] 쏘는 것을 관람하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 성덕왕 30년
조선 세종이 신기전을 만들어 전략적 요충지에 보급하여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듯이 신라는 이동식 쇠뇌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아막성을 공략하는데 이동식 쇠뇌(수레노)가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캡쳐된 자료가 없어서 올리지를 못한다.
하지만 신기전처럼 수레위에 쇠뇌를 올린 모습이 아닐까 한다. 당과 신라의 쇠뇌 핵심기술의 차이는 맥궁을 활에 접목한 신라의 쇠뇌와 당의 활을 만드는 방법에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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