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하노이 조미 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서명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불발됐다. 실망스럽긴 하다. 장난 같이 끝난 이번 일로 값진 교훈을 얻었다. 3차 조미회담 조기 개최와 더 큰 성과를 내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이번 조미 공동선언 합의문은 양국 협상팀이 합숙까지 하며 땀, 정성, 마음을 모아 빚어낸 멋진 작품이다. 서명 절차만 남았다. 그런데 돌연 미국 측에서 예정에 없는 추가 조건을 내밀었다. 거기에 수반돼야 할 상응조치도 없이 무조건 영변 외의 다른 핵시설 하나를 더 폐기하란다. 이게 결국 판을 깬 것이다. 트럼프 자신도 회담 직후 기자들에게 “준비된 공동선언에 서명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적절치 않았다”고 했다. 이건 순서에도 없고, 관례도 없는 무례한 짓이 분명하다. 특히 입만 벌리면 한미동맹을 노래하는 한국에겐 모욕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언론 매체나 전문가들은 북미 간 제제 해제와 비핵화에 대한 견해 차이로 결국 서명이 불발됐다는 취지로 몰아가며 갑론을박 시비를 한다. 이들은 추가 제안이 판을 깨자는 구실로 보질 않고 더 큰 합의를 이끌기 위한 것으로 본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격언이 이들에게 적용되면 제격일 것 같다. 북측 리 외무상의 변은 유엔 제재 중 민수경제 및 인민생활과 직결된 부분의 해제 까지 미국이 거부했다는 걸 강조했다. 3월 2일 <AP통신>도 “조미 간 전면 vs부분해제 진실 공방”에서 “북측 주장이 맞다”고 보도했다.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특이한 몇 가지 현상들이 눈에 띈다.
첫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아량이다. 일체 내색은 없지만, 정치적 위기에 처한 트럼프의 입지를 십분 이해하고 상호 협력 우의를 끝까지 지켰다. 이번이 2번째 트럼프의 변절이다. 두 번이나 결정적 순간 변절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 재회를 약속하고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판이 깨져 헤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아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아무도 못 말리는 트럼프의 두둑한 배짱이랄까. 세계 정치사에 이런 배짱을 가진 지도자는 드물다. 정말 혀가 절로 나온다.
셋째, 멀지 않은 장래에 3차 조미회담이 개최돼야 한다는 데에 남북미 3자가 아주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통 큰 성과를 내려고 다짐한다. 트럼프는 귀국 전용기에 오르자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본 다음에 중제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난관과 곡절이 여정에 있지만,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 함께 해쳐나가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빠르게 개최돼야 할 3차 조미회담에서는 ‘경천동지’할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더 많이 뛰어야 한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고 공동선언 서명 불발까지 감수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답할 차례가 왔다. 먼저 평양행을 관철해야 한다. 그게 순리에 맞고 또한 도리다. 실제로, 트럼프의 평양 방문 자체가 특종 중 특종 뉴스가 된다. 전 지구촌이 요동칠 것이다. 남북 우리 겨레는 환희의 축배를 들고 밤을 지새우며 춤을 추리라.
트럼프가 평양에 간다면 능라도 경기장에서는 트럼프 환영을 위한 ‘빛나는 공연’도 펼쳐질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곳에 모인 수십만 평양 관중들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로 70년 넘게 지속됐던 조미 적대관계가 청산됐다. 조미 간에 친선 우호를 증진시키는 일만 남았을 뿐”이라는 역사적 명연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역사적 장면을 상상만 해도 격정을 억누를 수 없다. 욕심 같아선 휴전을 끝장내는 ‘평화선언’을 평양에서 남북미중 4자 서명 의식을 갖게 된다면 ‘조미 평양선언’이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조미 대화 반대세력의 극성스러운 방해 공작에 직면한 트럼프에게 기쁨과 용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평양 방문에서 이룬 위대한 성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김정은 위원장이 상상을 초월하는 묵직한 선물을 트럼프에게 안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선물로는 나포된 미 해군 간첩선 ‘푸에블로’를 미국에 돌려준다면... 그렇지 않아도 미 의회 및 미 예비역들이 이 간첩선의 귀환 문제를 이번 하노이 회담 의제에 올려달라고 트럼프에게 간청한 바 있다. 83명의 무장 미군이 탑승한 이 간첩선은 68년 원산 앞바다에서 간첩활동 중 북측 소수 인민군 분대와 교전 끝에 항복하고 이 간첩선은 전리품이 된 유명한 사건이다. 미 해군 사에 처음 이런 수치스러운 패배가 기록됐다. 이건 미국의 양심을 가혹하게 찔러대기에 미국으로선 미칠 지경이다. 감히 입은 열지 못하고 오매불망 ‘푸에블로호’의 귀환을 반세기나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에 반환된다면 트럼프가 조미 대화 반대파의 입을 틀어막는 데도 기막힌 효과를 볼 수 있다.
거듭 강조하고픈 건 3차 조미회담 평양에서 개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3차 회담에서는 2차를 건너뛰었기에 기적에 가까운 성과물이 나오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