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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기②] 아이의 출생과 이름에 대한 검찰의 황당한 소설

15.02.02 20:29l최종 업데이트 15.02.02 20:29l




'통일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편인 윤기진씨에게 편지로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황선 대표가 윤기진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을 몇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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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1월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신은미씨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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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피의자는 2005. 10. 10.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을 기해 임신 중인 자식을 북한에서 출산할 목적으로 '아리랑 축전' 관람을 빙자, 방북하여 북한 평양산원에서 자녀를 출산 후 소위 통일둥이 '윤겨레'라 이름 짓고, 같은 해 10. 25. 판문점을 통해 귀환함으로써 종북인사들로부터 '통일전사'란 칭송을 받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나 일부 극단적 개인들이 익명의 트윗이나 댓글에서 소위 '기획원정출산설'을 흘리며 모진 욕을 해대는 경우는 수차례 겪었으나 국가기관의 공식서류에서 우리 딸의 출산을 이런 식으로 기술한 것을 보게 되다니.

당시 남북이 함께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고, 아이는 이미 열 살이나 되어 이 나라에서 자라고 있다. 국가보안법 관련 공소장이나 체포영장, 판결문까지 얼마나 억지투성이인지는 때마다 느껴왔으나, 아무리 남북관계가 악화됐기로서니 아이 탄생을 두고 일개 시정잡배도 아닌 국가기관이 나서서 시비를 한다는 것은 차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들 내심에야 나의 출산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있었다 치더라도 검사씩이나 한다는 사람들이 악플러 수준으로 자신의 명예를 내동댕이친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에도 내키지 않는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딸의 생일은 2005년 10월 10일이다. 왜냐고?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올랐다"는 답 이상 어떤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애초 애물단지인 통일운동가(특히 한총련 관련 수배자들) 자식들을 둔 어르신들을 위한 반값 할인 평양 효도관광 일자는 2005년 10월 6~7일이었다. 나는 없는 돈에 시누이와 함께 관광비용을 마련하여 시부모님의 평양관광을 접수했다.

어린 아이도 있고 둘째를 임신하고, 돈도 없는 처지였던 나는 그 가을 4천 명이 평양관광을 다녀오는 분위기 속에서도 따라나설 염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수배 7년차 아들을 둔데다가 통일운동단체 대변인이란 걸 하면서 돈 한 푼 못 벌어오는 며느리 때문에 매일매일 속이 상하실 시부모님께 38선을 넘는 경험을 시켜드리고, 통일이 헛된 꿈이 아니라는, 그러니 우리의 불효를 이해해주십사 하는 마음을 전해드리는 게 그 효도관광의 목표였다.

헌데 10월 6일 새벽같이 길을 나선 부모님이 당일 오전 다시 짐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실무 착오로 명단이 누락, 북측에서 부모님 명의의 초청장을 보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너무나 황당해 했는데, 그 후 얘기를 듣자 하니 그렇게 되돌아 선 부모님들이 총 13분이나 되셨다고 한다.

그 중엔 수배 중인 아들이 난생 처음 부모님 결혼기념 선물로 여행을 보내드린 경우도 있는데, 아들 성화에 밤을 새워 포항에서 인천공항까지 왔다가 허탕을 친 탓에 집안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다는 후문이다. 시부모님도 '자식이 수배 중인데 무슨 여행이냐'며 내키지 않는 걸음을 떼셨던 터라 그날의 허탕이 오히려 반가운지, '평양 다녀온 셈 치자'고 말씀하셨다.

나흘 전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2005년의 평양 방문

그 소동 후, 당시 평양관광을 주관했던 '겨레하나' 쪽에선 하필 고생하신 부모님들 단체관광 보내드리는 데서 일이 난 게 속상하고 미안했던지, 다시 일정 맞춰서 청하겠다고 했다. 어렵게 낸 시간을 더 낼 수가 없어서 환불처리한 경우도 있었고 다시 관광길에 나선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 시부모님들은 그나마 '양심수 석방, 정치수배 해제' 집회장에서 일면식이라도 있는 분들과 가는 단체여행이라 가겠다고 승낙하셨던 것이지 이후 뿔뿔이 낯선 팀에 끼어 다니는 것은 질색이라 하셨다.

워낙 낯가림이 심하신 분들이고, 아들 때문에 근교나마 여행이라고 차리고 나선 일이 먼 옛 일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1박 2일 여행에 쓴다는 것도 영 걸려하셨다. 그러나 나는 꼭 보내드리고 싶었다. 스스럼없이 북의 동포들을 만나본 경험 한 번이 얼마나 민족문제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지. 부모님이 아들 수배바라지 하는 보람을 알 게 하고픈 순전히 내 욕심 때문이었다.

마침 '겨레하나' 쪽에서 연락이 왔다. 산부인과 치료를 마치고 막 병원을 나서는 중이었는데, 10월 10일 관광팀에 여유가 있다며 부모님께서 낯선 이들과 가기 꺼려하신다니 가족 중에 동행할 한 분을 추가비용 없이 배려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도 될까? 당시 나는 10월 17일 제왕절개 수술을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그 전 해인 2004년 첫 아이를 난산 끝에 제왕절개로 출산하고도 연년생으로 또 둘째를 가진 터라 둘째는 자연분만을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예정일보다 일찍 수술일정을 잡아두었고 모든 징후들은 순조로웠기에, 의사선생님은 30분 안팎의 비행 정도는 괜찮다고 흔쾌하게 대답하셨다. 10월 10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유 있는 날이 10월 10일이 아니었으면 이 마녀사냥이 좀 더 부드러웠을까 싶기도 하지만, 당시엔 이 모든 우연이 매우 자연스러웠을 뿐이다.

'겨레하나' 측에서 10월 10일 날 단체관광에 여유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그리고 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단 30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심지어는 5.1경기장에서 아리랑공연을 감상하는 그 순간에도 그날이 조선노동당 창당일이건 아니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건 내게 별 관심사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시절 들어 수 해 전 그날의 일이 이렇게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되어 국가기관까지 나서서 소설을 새로 쓰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보기에 조선노동당 생일에 한국사회만큼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곳은 또 없는 듯하다.

당시 아이를 낳고 내가 그곳 평양산원에서 들었던 가장 그럴싸한 말은 "우리민족이 완벽한 숫자로 여기는 10이, 우리민족이 길하게 여기는 3번이나 겹친 10월 10일 10시에 태어났으니 복덩이임이 틀림없다"는 다소 무속적이면서도 민족적인 덕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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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0월 10일 평양산원에서 딸을 출산한 황선(32, 통일연대 대변인)씨가 딸과 함께 25일 오후 도라산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귀환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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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선전사이트를 믿고 국민을 기소한 검찰

검사는 '조선노동당 창건일을 기해 임신 중인 자식을 북한에서 출산할 것을 목적으로' 방북했다고 하는데, 미국 원정출산처럼 이 나라에서 이런저런 혜택이 보장된 길도 아니고 오히려 때만 되면 빨갱이 사냥으로 광풍이 이는 곳에서 굳이 왜 그런 무리수를 두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북의 인사 중 누군가도 이런 이야길 했다. "보통 아줌마가 몸을 푼 거면 더 걱정 없이 축하하고 그러겠는데 하필 통일운동가 황선이가 여기서 애를 낳으니, 이후 괜한 생트집에 시달리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그 말에 "설마 생명을 두고 그럴라구요" 하며 웃어넘겼지만, 아이 낳은 지 10년, 오늘 나는 이런 수준의 모함에 이러고 앉았는 것이다.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1977년, 청계피복노조가 9월 10일로 예정된 동화시장 옥상의 '노동교실' 강제폐쇄시한을 하루 앞두고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농성자들을 연행, 구속하며 "북한정부수립일인 9월 9일에 맞춰 농성을 시작한 빨갱이들"이라 주장했다. 9.9절에 맞춰 농성을 감행한 빨갱이를 구속하기 위해 14살 미성년의 주민등록을 위조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정신병적 증상까지 보이는 공안기관의 빗나간 애국심은 예나 지금이나 놀라운 수준이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류에 친절하게도 나의 평양출산에 대한 주석까지 달아놓았다.

"북한은 이를 소재로 단막극 <옥동녀>를 상영하는 등 체제선전용으로 활용. 북한의 체제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올려진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이라는 문건은 '황선려성은 남에 있는 친정어머니도 돌려주지 못한 살뜰하고 다심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온정이 너무도 고마워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었다'며 '민족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민족대단결 사상을 받드는 한 성원이 되라는 의미에서 딸애의 이름을 <윤겨레>라고 지어주었다'고 발표."

한국에서는 차단돼 있고 검찰 스스로 북한의 체제선전사이트라 규정함에도 그곳에서 사실여부를 구하는 이 태도, 이것이야말로 북에 대한 모순적인 공안당국의 관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지극한 정성을 보여준 평양산원의 의료진들과 돌봐준 여맹(여성동맹) 성원들, 영희 언니 그리고 스스럼없이 축복해준 남북 당국에게 감사를 표했다. 손수 나와 아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 일일이 수놓은 쿠션이며 베개, 아이 돌복이며 이불, 아기 반지와 산모 보약 등, 서울에 두고 온 첫아이 선물까지 마련해준 그들이다. "이런 꿈같은 일은 모두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덕분"이라며 6.15의 수혜를 받아 감개무량하다는 소감도 거듭 밝혔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비정상적 학대... 이제 끝내라

문제는, 그들은 내가 누구에게 감사하든 그 모든 감사와 인사를 그 사회의 지도자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오해와 해석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있는 그대로의 북을 알고 납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연극 <옥동녀>를 본 일도 없고 '우리민족끼리'라는 사이트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는 것도 이번 재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북이 자유롭게 인터넷 서핑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니, 피차 허위사실유포로 소송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검사가 검사 말마따나 그 사이트를 체제선전용으로 봐넘기면 그뿐이다. 국민에게는 불법사이트라 차단해두고 자신들은 그곳에서 취득한 정보를 맹신하며 일부 언론에 뿌리고 마녀사냥의 양념으로 쓰는 것은, 기울어져도 너무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뜀박질이 아닌가.

우리 '겨레'의 이름은 북에서 지어오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의 친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평양산원에서 태어난 특별한 아이들에게 그곳 당국이 이름을 지어주곤 했으나, 역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남북관계며 조상 고유의 권리를 상의도 없이 박탈할 수 없다는 등의 고민으로 서울로 돌아와서야 수배 중인 아이 아버지와 시아버님의 상의 하에 지은 것이다.

최종 '동명'(최초 진통이 동명왕릉에서 오기도 했지만 시아버님이 그곳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셨다)이란 이름과 '겨레'라는 이름 중에 순 우리말인 '겨레'로 정하게 되었다. '한 조상의 피를 타고난 동포'를 뜻하는 겨레라는 말을 북에서는 저렇게("민족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민족대단결 사상을 받드는 한 성원이 되라") 해석하는 모양이지만, 우리 시아버님은 '민족의 태양'에도 '민족대단결 사상'에도 관심 없으시다.

다만 평양 아리랑 공연 중 일제시대를 형상화하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노래가 나오니 대번에 눈물이 나셨다 했다. 우리 딸의 이름은 이런 감정을 담아 지은 것이다. 공안당국 멋대로 아이의 생일을 규정하고 이름까지 한계 지어서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비정상적인 학대를 가하는 짓, 끝냈으면 한다. 그래, 공안 경찰과 검찰에게 '겨레'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그들의 답이 궁금하다.

2015년 1월 25일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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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5일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옥중편지 두 번째
ⓒ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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