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장관 케리의 굴욕과 남북이산가족 상봉
이병진 교수
기사입력: 2014/02/20 [01:2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지난주에 미국의 국무부장관 케리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순방에 나섰다가 혼쭐이 났다. 그는 이란과 임시 핵사찰 합의를 이끌어 내어 한껏 부풀어 있었다. 우쭐한 그는 지난달에 한국과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자신이 중국과 ‘한반도의 통일’을 논의하겠다고 큰소리를 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런 그의 발언은 미국이 북의 붕괴와 급변사태를 암시하는 듯 하는 것처럼 보여졌고 따라서 그의 아시아 방문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케리의 아시아 순방 놀이는 ‘빈깡통’이었고 굴욕적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 아래서 그는 한가하게 한국에서 ‘떡볶이’나 먹으며 돌아다녔고 (그렇다고 떡볶이가 갑싼 음식이라고 비하하는 게 절대 아니다.) 중국에 가서는 왕이 외교부장에게 한반도 급변사태나 전쟁은 꿈도 꾸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중국에서 혼쭐이 난 케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의 입장을 잘 보고하겠다며 꽁지가 빠지게 다음 순방지로 떠났다. 그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빈털터리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전격적인 남북고위급 만남과 뒤통수 맞은 미국
작년 봄 이북과 미국은 쌍방이 핵무력 시위를 벌이며 군사적 긴장과 대결 상황을 겪었다. 그러함에도 군사적 압박으로 북에게 핵무기 포기를 강요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에 북은 상대적으로 서방 세계에 노출이 많았던 장성택을 총살시킴으로써 놀랍게도 미국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장성택의 처형으로 북의 체제가 불안정해질 거라고 여론을 호도하지만, 집단주의 사회체제인 북에서 장성택의 총살은 지도부의 다층화를 통해 개인주의(자유주의)를 주입시켜 북을 흔들려던 미국의 전략에 오히려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
이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북과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군사작전을 하는 방법뿐이다. 미국이 선호하는 군사작전은 제한적인 국지도발 전쟁이겠지만 한반도는 작전 범위가 좁고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만약에 미국이 군사작전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전면전’이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한국과 미국은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2014년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2월 24일부터 시작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전략적 결정인데, 그것은 바로 3월 초에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3차 핵정상회담과 관계있다.
작년 봄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북의 핵무력 시위에 직면했던 미국은 올해 3월 초에 열리는 핵정상회담을 앞두고 작년 봄처럼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하여 북의 무력시위를 유도할 계획이었다. 이는 북의 군사적 위협을 극적으로 연출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북의 공격적인 무력시위를 빌미로 미국은 북핵 제거를 위한 미국의 군사작전의 정당성을 핵정상회담에서 인정받으려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북은 미국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였다.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직접 중대제안을 하면서 평화공세를 펴고 있다. 남에서 제안한 이산가족상봉 제안을 북이 뜻밖에 호응해 오자 미국은 군사훈련기간이 아닌데도 기습적으로 B-52 전략폭격기를 2월 초에 군산 직도 훈련장에 급해 전개하여 폭격훈련을 하였다.
이는 당연히 북을 자극하는 것으로, 이산가족상봉을 깨려는 술책이었지만 놀랍게도 북은 그 일을 비난만 할 뿐, 군사적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고위급 만남을 제안하여 이산가족상봉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모든 이들이 예상을 뛰어 넘는 대범한 조치였다.
북은 이산가족상봉을 하면서 어떻게 군사훈련을 병행할 수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며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뒤로 미루자고 주장하였다.
마침 한국을 방문 중이던 케리 국무부장관은 노발대발하며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인도적인 이산가족 행사와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별개의 일이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나 북은 작년과 달리 2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통 크게 양보하였다. 그래서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예정대로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열릴 것이다.
이것dl 미국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의 국방부에서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일정과 상관없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방문한 케리 장관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일정 변경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미국이 한국의 군사훈련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 모험주의의 본질을 까발렸기 때문이다.
온전한 분별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북이 분단되어 60년 이상 헤어졌던 혈육이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 특수부대원과 해병대들이 최첨단 군사 장비들을 가지고 와서 전쟁연습을 한다면 그런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는 상가 집에 찾아가 잔치판을 벌이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초상을 치를 일을 앞두고 잔치 날을 하루 이틀만 뒤로 미루자는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고 초상은 초상이고 잔치는 잔치라며 상가 집에서 기어이 잔치 놀음을 하겠다고 대 놓고 떠들어대는 미국 국무부장관 케리를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미국의 행동이 얼마나 졸렬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케리는 중국에 가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고 크게 위세를 떨었지만 왕이 외교부장 앞에서 한반도에서 급변사태와 전쟁은 꿈도 꾸지 말라며 문전박대를 당했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전략적으로 실패한 한·미 합동군사훈련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올해에 실시되는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북의 군사적 도발을 유도하여 북을 더욱 고립시키고 북을 군사적으로 더욱 옥죄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3월에 열리는 핵 정상안보회담에서 이란과 달리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의 위험성을 확산시키려 했던 미국은 예상치 않는 북의 평화공세에 무척 당황하고 있다.
북이 ‘통 크게 양보’하면서까지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성사시키고 진지하게 남측 고위당국자들과 만난 현 정세를 고려할 때, 미국의 대북 고립, 압박전략은 타격을 받고 있다.
이번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기회삼아 미국은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계속 증강시키려 할 것이고, 한·미·일 군사동맹 체감 강화와 일본의 재무장화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북이 주장하고 있는 핵무기 보유 주장의 정당성만 강화시켜 주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되로 주고 말로 되받는 심각한 전략실패에 빠졌다.
대국은 대국다워야 한다.
미국이 북과의 핵 대결에서 자꾸 봉변을 당하는 것은 결코 미국이 힘이 약해서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은 세계 최대의 군사 강국이며 경제 대국이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자꾸 북과 핵 대결에서 밀리는 이유는 너무나 군사대국임을 과신하여 일방적으로 힘에만 의존하여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미국이 군사력으로만 밀어붙이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미국이 갖고 있는 체제의 한계인지 미국의 소수 독점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미국의 행태를 보면 조급하고 초조하며 쫓기고 있다. 대국이면 대국답게 여유와 양보를 바탕으로 인류문명 속에서 조화롭게 지내는데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도 대단히 힘든 결정을 하였다. 무려 7년 만에 남북 고위급 만남을 가졌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이 매우 첨예한 대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상호비방·중상 중단 그리고 남북 고위급 인사들이 만나 대화를 갖기로 합의하였다.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북의 핵 문제는 우리에게도 사활이 걸린 일이므로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민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핵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되고 인터넷 망으로 전 세계적으로 핵 물리과학 기술이 공유되고 있는 21세기에서 핵무기가 어느 특정국가의 독점물이 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핵무기를 제조하는 기술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고 독점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느냐, 없느냐'라는 현상만 보고 단순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핵무기 보유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가 세계 평화와 인류의 안전에 이바지하는 궁극적인 접근방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신뢰와 상호 이해를 높여서 핵무기를 가질 필요와 의지를 없애는 게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렵게 만들어진 남과 북의 만남이다. 나는 이번 만남이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우리민족이 서로 돕고 공존할 수 있도록 상호이해와 공감을 높여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