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 자신없으니 <자주민보>폐간에 매달려
[새록새록 단상] 폐간 바라는 세력들 기대와 정반대 결과 낳을 것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3/10/25 [01:4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자주민보》가 폐간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보는 순간 떠오른 것은 연산군시대의 언문금지였다. 임금을 비난하는 글이 언문으로 쓰였다 하여 왕이 언문금지령을 내렸으나 그렇다 해서 언문이 사라졌던가?
며칠 동안 사태의 추이를 관찰하면서 찬반 양면의 주장들을 두루 읽어보고 한국의 어떤 사람들과는 참으로 변론하기 어렵더라는 누군가의 주장에 공감이 갔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변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서 자랐고 재미를 보아온 모양이다.
옛날에는 “빨갱이”딱지를 붙이면 만사오케이요, 근년에는 “종북”딱지를 붙이면 그만인데, 구태여 입이 아프게 변론할 게 있느냐는 논리인 것 같다. 역시 근년에 생겨났고 일부 세력들이 만능으로 여기는 딱지 하나가 “친노”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에서 간만에 검사다운 행동을 한 검사가 하나 나왔더니 그 윤 검사가 “친노”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았던가. 윤 검사가 곧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을 법적처리했던 근거들을 제시했으나, 적어도 이제 한동안은 윤 씨에게 “친노”라는 딱지가 붙어 다니리라. 국가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친노”이길래 국정원과 엇선다고 단정해버리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으니까, 그런 딱지를 철석같이 믿고 퍼뜨리는 행위가 좀 적을까?
중국에서 나서 자란 필자는 “사람 때문에 말을 폐기해서는 안된다(不能因人废言)”는 인식이 골수에 박혔다. 천하악인이라도 옳은 말을 하면 인정하고 접수해야 하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틀린 말을 하면 부정하고 비판해야 한다. 만약 어느 편의 주장이기에 믿어야 하고 어느 편의 주장이기에 믿지 말아야 한다면 말이 되는가?
한 술 더 떠서 어느 편의 주장이기에 아예 듣지도 말아야 한다면 말이 되는가? 또 한 술 더 떠서 어느 편의 주장이기에 아예 퍼지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면 말이 되는가? 남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반박할 자신이 없는 자들만이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입을 막으려고 달려드는 법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행위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또 확대될 조짐을 보이는 게 한심하고 답답하다.
10여 년 동안 《자주민보》가 발표한 글들이 100% 정확할 리는 없고 모든 사람들의 구미에 맞을 리는 더구나 없다. 일부 세력들이 《자주민보》를 걸고 드는 이유는 아무래도 조선(북한)관련기사들일 텐데, 조선이 이럴 수도 있다고 분석하는 글들, 조선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전달하는 글들, 조선사람들은 어떤 인물들과 사건들을 이렇게 보고 그리더라는 문학예술방면의 글들은 분명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자주민보》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일부 세력들은 덮어놓고 인터넷언론으로서의 《자주민보》를 없애버리려 달려든다. 그러면 “대북소식통”, “북한전문가”, “고위탈북자” 등의 입에 근거한다는 조선관련 요상한 설들만 난무하는 게 정상인가? 대중이 그따위 설설설들이나 통해서 조선을 바라보면 제대로 볼 것 같은가?
16세기 연산군의 언문금지령은 나중에 흐지부지해졌고 폭군의 폭행 가짓수를 하나 늘여줬을 뿐이다. 21세기 《자주민보》폐간위기는 폐간을 바라는 세력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자주민보》의 지명도를 높여주는 결과나 낳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역사고유의 발전법칙에 비춰볼 때, 자연스레 얻어지는 결론이다. (2013년 10월 24일, [새록새록 단상] 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