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아니라 지난 달 4월 10일부터 17일까지 이곳 태국 주체사상 연구회 회장이신 쏭짙 박사님의 일행이 방문 기간 있었던 은하3호의 발사를 둘러싼 분위기와 김일성 주석의 100회 탄생을 축하하는 사상 유례없는 평양의 대규모 군사 열병식 그라고 세계 주체사상 대회를 참관한 생생한 현장기록을 제3세계의 참관자의 눈으로 본 북조선의 실체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요, 오늘 기록의 주체자는 주태국 주체사상 연구회의 회장(The President of Thai Juche Idea Association)이신 쏭짙 풀랖 박사님(Dr. Songjit Pullarp)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고요 그 분의 아드님의 입을 통해서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자, 이제 이쯤 되면 쏭짙 박사님의 전력을 대충 감을 잡으시는 분들께서 계실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쏭짙 박사님(Dr. Songjit)은 젊은 시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되었었던 열렬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에 젖어있던 대한민국 표현으로는 새빨간 물이 들어있던 “빨갱이(The Reds Comrade)” 이셨습니다.
그분과 연관된 인터뷰 기사를 아래에 걸어 두었으니 북조선의 실상을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 이런 분이 이제 그간 젖어있던 서방식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서 벗어나서 독특한 북조선식 주체사상에 근간한 신 사회주의 사상에 흠뻑 매료되어 있다 보니 이 분의 눈에는 이제 이 지구가 어느 축으로 기울고 있고 향후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대명제가 머리 속에 훤히 그려지고 있는 상황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인간중심의, 인본을 근간으로 하는 진정한 평등주의에 입각한 북조선식 신 사회주의(New Socialiism/Advanced Socialism)임에는 일말의 의혹이 있을 수 없음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평생의 가치로 삼아오고 있던 바로 그 화두가 하늘과 같이 믿고 좆던 러시아와 중국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닌 1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태양족인 배달민족의 적통인 북조선에서 기인한다는 가슴 벅찬 사실을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 만의 가정을 꾸릴 수도 있을 나이가 된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익히 납득을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금년 주체101, 415 태양절 행사에는 자신의 아들이고 태국 내에서도 세 곳의 명문 대학에 포함이 되는 가쎝쌑 대학교(Kasesart University)에서 학부 과정으로 화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시간 강사를 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대학원 과정을 이수 중인 방년 27세의 젊은 학자를 대동하고 북조선을 방문한 것입니다.
아들이 또는 딸이 그간 평생 자신의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이해해 주는 것을 넘어서 그 아비의 뜻을 좀더 깊이 알고자 자신들의 아버지가 그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가고자 하는 여정에 동참을 한다는 행위, 참으로 아름답고 대견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70세 노인이 아닌 인생에서 가장 혈기왕성할 젊은 태국 학자가 바라보는 북조선의 실체와 그 충격의 세계로 여러분을 모실까 합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젊은태국학자, 북조선에서무엇을보았는가? [A New Generation Thai Scholar, What Did he see from the DPRK?]
MTP:현재 하고 계신 일과 근황에 관해서 짤막하게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WP: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왓나티 풀랖(Watnatee Pullarp) 이라고 하고요 저를 잘 아는 분들은 줄여서 남(Nam, 물 이라는 태국 단어) 이라고 부릅니다. 제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저는 현재 가셑샅 대학(Kasetsat University) 에서 강사 자격으로 강의를 하고 있고요 동시에 대학원에서 무기화학(Inorganic Chemistry) 분야에서 석사 과정(Master Degree course) 을 공부 중입니다.
대학원 과정의 공부나 대학 강의가 없을 때에는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넽을 하거나 백화점을 어슬렁 거리기도 하고요 친구들과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
(Photo: Acharn Nam posted with his father and a Korean translator in front of the monument of North Korea ex-leader)
MTP:금번에 아버님과 북조선을 방문 하셨는데요, 보고 느끼신 점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WP: 태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직항로가 없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우선 중국의 북경(Beijing)으로 들어가야 했고요 그곳에서 다시 북조선이 운항하는 고려항공(Air Koryo)을 이용해서 평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우리일행이 탑승한 비행기가 평양의 공항 활주로에 착륙할 즈음의 느낌은 태양빛이 매우 강렬하였다는 것이었으나 막상 비행기의 기내를 벗어나서 활주로에 나가는 순간의 느낌은 그곳 기온이 무척 신선하다 못해 다소 추운 기운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거든요. 전반적인 기후가 상당히 편안했으며 서늘하고 아주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우리일행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수 많은 사절단이 방문을 한 총 국가 수가 무려 78개국에 달한다는 사실을 입국 장으로 들어가서 입국절차를 밟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와 같은 학자 사절단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 방문을 온 배우들도 있었고 그들의 화려한 복장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신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일행을 비롯한 모든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입국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입국심사를 통과한 후 우리일행은 다음 절차를 밟기 위해서 앞으로 진행을 고요 그 절차를 거치면서 북조선을 입국하면서 반입할 수 없는 물품들 즉, “모든 종류의 스마트 폰들 그리고 일반 모발폰들을 현장에서 신고해야 했고요 동시에 그들 모발폰들을 현장의 반입금지 물품 보관 소에 보관"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조치를 하는 이유가 이들 스마트 폰들 또는 기존 손화기 들이 내장하고 있는 위치 추적 기능(Location Tracking Function=GPS System) 때문 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웃겼던 것은 그 절차를 거치면서 중국에서 들어온 유명 배우들이 다소 황당해 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는데요, 그 모습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차마 웃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던 거죠.
바로, 그 심사과정을 거치면서 사당수의 방문객들이 다소 창백해지고 불안해 하는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현대인들의 필수 기기라 할 수 있는 모발폰을 현장에서 압수 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대다수의 방문객들이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바로, 그런 의도치 않은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 중국 배우들이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보는 우리들 역시 내심 같은 심정이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침내, 그 심사관문을 통과한 후 우리일행은 드디어 우리일행을 수행하면서 통역을 담당할 북조선 태국어 통역사인 백(박?)교휘 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Miss Pak Kyo Hui).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 이더군요.
이분은 우리를 마중 나와서는 야외에서 있을 사진촬영이 있을 것이고 그 사진들은 다음 날 아침에 신문에 보도가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모든 국제 사절단 일행들에게는 북조선에서 제공하는 통역사들이 동행을 시작했습니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저는 그곳에 도착을 하고 처음 이틀 동안은 완전히 충격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했고 그런 이유 때문에 향수 병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이니까요.
도착 후 약 3-4일 정도 지나니까 그제서야 모든 것이 눈에 익기 시작하고 충격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충격적 이라고 느꼈던 상황에서 벗어나고 보니 그 순간부터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닌 우리일행을 둘러싼 모든 것을 향한 “감동” 그 자체 이었던 것이지요. 심지어는 지금 이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저는 또 다시 북조선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MTP:북조선을 방문하면서 무엇이 가장 강하게 감동을 주던가요? 느끼신 체험담을 독자들과 공유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WP: 당시의 방문 목적은 탄생 100돐을 맞이하시는 북조선의 건국자이신 김일성주석의 생일을 기념한 국가적 경축행사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관 상으로 보아도 경축행사에 참석하는 외교사절단들의 규모가 이전과 비교해서 매우 대단위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일행과 같은 외국방문객들은 당시 북조선 정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방문 이었기에 말 그대로 귀빈급(VIP)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탑승한 차량들이 한꺼번에 이동할라치면 거리의 도로가 통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량이 신호등을 중심으로 배치가 된 교통경찰들의 검문소를 통과할 때에는 그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는 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방문할 순간의 북조선은 대규모 국가적 경축행사가 연일 진행이 되는 때이었기에 우리일행의 방문일정은 도심지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연일 행사장에서 넘쳤기 때문입니다.
방문 중에 우리일행은 심지어는 북조선의 인민들조차 방문 할 수 없었던 수 많은 의사당과 같은 정부청사들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문 일정에서도 우리일행은 동시에 국가운영의 대학을 방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아이들의 음악적 재능 및 다양한 여러 가지 놀이들을 가르치는 시설이 들어찬 소년궁전을 방문할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나아가서, 사과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엔터테인먼트 미디아 회사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미디아 회사 건물의 1층에 있는 컴퓨터 시설은 일반인들이 아무런 비용 없이도 자유롭게 음악과 영화를 시청할 수 있으며 건물의 2층은 컴퓨터와 텔레비전의 화면/수상기 그리고DVD 와 CD 재생장비와 그들을 위한 판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사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첨단의 산업시설들과 정부 건물들을 방문하면서 든 생각은 북조선을 방문하기 전에 듣고 보아왔던 외부세상에서의 기사와 방송들이 많은 부분에서 충동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이들 뉴스들이 이제 북조선에서 보고 느끼고 있는 것들과는 전혀 반대로 보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일행을 수행 중이던 통역사와 친숙해진 후 저는 우리들 모두는 북조선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도로 들어서 알고 있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했습니다.
“현재, 공화국은 인민들을 위한 충분한 식량을 보유하고 있고 우리 공화국은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생산합니다. 그리고, 공화국은 식량 부문에서는 전 인민이 필요로 하는 량 이상의 식량은 확보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화국은 현재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이 아닙니다.”
외부인이 보아도그들이 현재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이라는 증거를제시할 만한 정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일행은 방문 당시 북조선의 대규모 군사 열병식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당시 우리일행은 주석단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을 미루어 보면 일반 북조선들이 범접할 수 없었던 김정은최고사령관을 가장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MTP:당시의 평양에서 진행이 되었던 군사 열병 식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WP: 우리일행은 군사 열병식이 시작되기 전에 그에 관한 일정에 관한 일정표에 관한 언급을 전혀 통보 받지 못했습니다.
북조선의 령도자인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행사를 주관할 것이기에 행사에 관한 모든 일정표는 절대적인 극비 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우리일행은 꽃 전시장을 방문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전 8시 즈음에 우리일행을 비롯한 모든 참관 자들은 사진촬영 장비와 영상 촬영장비를 비롯한 모든 금속성 휴대품들을 호텔 방에 보관하라는 통보사항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일행은 김일성 광장을 향해서 출발했고 마침내 광장에 도착했는데요 처음에 도착해서 그곳의 광경을 본 처음 그 순간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말 그대로 전군이 김일성 광장에서 차려 자세로 한결같이 서있는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