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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제네바협상은 북미정상회담 협상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10/31 [13:2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최근 자강도 연하기업 등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많이 늘었다. 그의 시간표대로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일까.     © 자주민보, 서프라이즈 펌

 
▲ 한호석 소장     ©자주민보

한호석 미주 통일학연구소 소장이 최근 제네바에서 진행된 북미고위급 회담 내막에 대한 자세한 분석글을 31일 통일뉴스에 소개하였다.
 
한호석 소장은 최근 미국과 제네바에서 진행된 북미고위급회담은 북미정상이 만나 평화협정체결과 농축우라늄문제를 동시에 일괄타결하자는 안건을 두고 진행된 협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면서 관련하여 중요한 합의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평양을 방문한 리커창과의 회담에서도 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는데 6자회담으로는 북이 원하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할 수 없기에 사실상 이 요구는 오마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중대한 협상이기 때문에 미국은 본국과 통신이 자유롭지 못한 평양보다는 제네바에서 회담을 추진한 것이며, 북측 협상 대표단과 미국 대표단이 한 호텔에 숙소를 정했던 것도 수시로 만나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것이 한호석 소장이 제시한 근거이다.
 
그는 특히 둘째날 오전 회담을 생략한 채 오후 회담도 30분만에 끝났으며 김계관과 보즈워스 북미 두 협상 대표가 웃는 얼굴로 화기애애한 오찬을 나누었다는 사실 등을 들며 한 소장은 이번 북미고위급 회담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북미정상회담이 언제 열릴지에 대한 예측은 내놓지 않았다.
대신 한미합동군사훈련과 같은 대북군사적 압박은 내년 3월을 기점으로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한호석 소장의 주장이다.
 
그렇게 북미 사이에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내년엔 북미정상회담도 충분히 예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관련 기사 전문이다.
 
.................................................................
 


일괄타결 돌파구 열어놓은 북미협상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181)
                                                                                            통일뉴스
                                                             2011년 10월 31일 (월) 08:00:1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9년 뒤에 세상에 알려진 비화
부쉬 정부 시기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연거푸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가 집필한 766쪽이나 되는 두툼한 회고록 ‘최상의 영예(No Higher Honor)’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 그 회고록 출판본을 미리 입수한 미국의 대외정책전문지 <대외정책(Foreign Policy)>이 회고록에 담긴 흥미로운 비화 여덟 편을 공개하였다. 그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에 관한 비화다.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회고록에서 밝힌,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에 관한 비화는 아래와 같다.

2002년 9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생산규모(production scale)”로 건설하였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보고를 받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급파하여,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딕 체니(Dick Cheney) 당시 부통령 및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 당시 국방장관 계열의 극우관료들이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에 관한 정보를 미국 언론에 흘려주는 바람에 협상기회가 사라져버렸다.

위의 비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우라늄농축 관련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대북 비밀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냈다는 점이다. 만일 체니-럼스펠드 계열의 극우관료들이 미국 언론에 북측 우라늄농축 관련정보를 유출하여 협상기회를 차단하지 않았더라면, 2003년 제2차 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아마도 지금쯤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주한미국군 철군이 순차적으로 실현되는 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체니-럼스펠드 계열의 극우관료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강경한 대결노선으로 끌어갔고, 그로써 미국은 북측과 협상할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북미관계에서 협상기회가 사라졌으니 무력충돌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2003년 북미관계에 제2차 핵위기가 조성되어 북측과 미국 사이에 무력충돌위기가 감돌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당시 미국은 스페인 해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을 시켜 북측 화물선을 2002년 12월과 2003년 4월에 각각 나포하는 적대행위를 저질렀고, 그에 격분한 북측은 동해에서 최신형 지대함 미사일 발사훈련을 연속적으로 실시하였을 뿐 아니라, 동해상으로 전투기를 긴급발진시켜 미국군 정찰기를 나포하려고 하였다.

북측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무력충돌위험을 완화시키려고 꺼내놓은 위기관리책략이 6자회담이다. 제1차 6자회담은 제2차 핵위기가 고조되었던 2003년 8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6자회담이 미국의 위기관리책략이었으므로, 그 회담은 북측과 미국의 무력충돌위기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효과는 가져올 수 있었지만,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해결방도로는 될 수 없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반도 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한반도 비핵화는 6자회담이 아니라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북미양자회담에서 해결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변경되지 않는 비핵화 공식이다.
 

허송세월하다가 간신히 협상기회 붙든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 비밀협상을 통해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극우관료들의 방해공작으로 협상기회를 잃어버린 때로부터 7년이 지난 2009년 6월 13일 북측 외무성이 우라늄농축작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였다. 명백하게도, 이것은 2009년 1월 20일 정권교체로 체니-럼스펠드 계열의 극우관료들이 퇴장하고 오바마 정권이 새로 등장한 정세변화에 맞춰 미국에게 우라늄농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양자회담을 시작하자는 압박성 협상제안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정세를 계속 오판해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정권교체 이후 북측으로부터 압박성 협상제안을 받고서도 대북협상을 외면하면서 버티었고,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측의 우라늄농축시설에 관련된 물증을 찾아보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정탐작업에 헛고생이나 하였다.
 
2010년 11월 12일 북측 초청으로 녕변 핵시설단지를 견학한 미국 민간대표단은 최신형 원심분리기 2,000대가 설치된 우라늄농축시설이 가동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목격한 우라늄농축시설은, 그 때까지 미국 언론에 소문으로 떠돌던 조그만 실험실이 아니라 미국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대한 생산시설이었다. 그처럼 강한 충격을 받고서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전략적 인내’라는 위장명분을 내걸고 실제로는 항모강습단과 상륙강습단을 동원한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부질없는 적대행위에 매달려 또 다시 허송세월하였다. 어떤 망상을 계속 고집하는 정신병을 정신의학에서는 편집증(paranoia)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원심분리기 1,000대를 1년 동안 가동하면 우라늄핵탄두 1기를 만들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북측이 원심분리기 2,000대를 지난 1년 동안 가동하였으니 우라늄핵탄두 2기를 만들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였을 것이다. 또한 우라늄농축시설은 외부의 정탐행위로 찾아낼 수 없고, 우라늄핵탄두는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작전배치할 수 있고, 더욱이 북측에는 천연우라늄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으니, 북측은 그와 같은 우라늄농축으로 미국을 최악의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북측이 우라늄농축을 시작한다고 발표한 2009년 6월부터 1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렸던 2011년 7월까지 2년 동안, 미국은 어리석게도 협상기회를 외면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던 반면, 북측은 녕변 핵시설단지에 건설한 우라늄농축시설을 계속 가동하여 2년치 농축우라늄을 확보함으로써 대미협상에서 결정적인 압박수단을 쥘 수 있었다. 2002년 9월 이후 지난 9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과 협상하여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차례 좋은 기회를 뿌리치며 자기의 협상력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짓을 오바마 정부도 2년 동안 되풀이했던 것이다.

편집증에 걸린 환자처럼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해오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국 최악의 궁지에 몰리자 정신이 아찔하여 마지막 협상기회를 간신히 붙잡았으니, 그것이 바로 2011년 7월 28일과 29일 뉴욕에서 열린 1차 북미고위급회담과 10월 24일과 25일 제네바에서 열린 2차 북미고위급회담이다.
 

회담 개최지를 왜 하필 제네바로 정했을까?

2011년 7월 말과 10월 말에 각각 진행된 북미고위급회담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마지막 협상기회를 간신히 붙든 미국이 잔뜩 수세에 몰린 협상을 진행하는 중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가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중심과제로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초강대국을 자처하며 자기 체면을 매우 중시하는 미국은 마지막 협상기회를 간신히 붙들고 수세에 몰려 협상을 진행하는 자기의 딱한 처지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력 꺼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 고위관리들은 북미고위급회담에 정부대표단을 내보냈으면서도 고위급회담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않고 얼버무리고 있으며,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협상이 계속되는 데도 협상이 아니라 ‘탐색적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그들이 그처럼 유치한 여론조작에 매달리는 까닭에, 언론에 보도되는 북미고위급회담 분위기를 보면, 마치 미국이 여유만만하게 북측에게 선결조건부터 이행하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나 실제 북미고위급회담은 정반대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북미고위급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회담장 밖에서 회담 분위기를 목격할 수는 없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정책 담당관리들을 변칙적으로 임명하는 것만 봐도 미국이 얼마나 다급한 처지에 몰려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은 대북정책 담당관리에게 대사(ambassador)직명을 주어왔던 과거 관행을 중단하고, 대사직명을 갖지 않은 대사급 관리를 임명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대사로 임명한 관리는 연방상원에서 인준을 받는 까다롭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이 대북협상에 얼마나 다급해졌으면, 대사직명을 주어야 할 관리들에게 대북정책 특별대표 또는 6자회담 특사 같은 변칙적인 직명을 줄 수밖에 없겠는가!

그것만이 아니다. 미국은 북미고위급회담의 쟁점이 마치 6자회담을 재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인 것처럼 국제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언론에 보도되는 북미고위급회담 동향을 읽어보면, 마치 북측과 미국이 6자회담을 재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쟁점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그러나 저들의 쟁점흐리기식 여론조작을 넘어가 진실을 마주하면, 북미고위급회담의 쟁점은 6자회담 재개 문제가 아니라 북측의 우라늄농축 문제다.

마지막 협상기회를 간신히 붙든 미국이 이처럼 수세에 몰려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2차 북미고위급회담과 관련하여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우선 북미고위급회담 개최지를 정하는 문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차 북미고위급회담이 뉴욕에서 개최되었으므로, 북미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2차 북미고위급회담은 당연히 평양에서 개최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차 북미고위급회담 개최지는 스위스 제네바로 정해졌다. 왜 회담 개최지를 정하는 문제에서 상호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까?

북측은 당연히 2차 북미고위급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미국에게 요구하였을 것인데, 미국이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네바 개최안을 들고나온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2차 고위급회담을 왜 제네바에서 개최하려고 하였을까?

마지막 협상기회를 간신히 붙들고 수세에 몰려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는 미국 정부대표단이 평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더 주눅이 들게 될 것은 뻔하다. 또한 북미고위급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되는 경우, 미국 정부대표단이 협상 중에 미국 국무부와 수시로 연락하지 못한다. 미국은 그러한 심리적 부담과 연락업무를 고려하여 제네바 개최안을 북측에 제기하면서 북측의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미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상호성의 원칙을 자기들 사정 때문에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북측 정부대표단의 제네바 체재비는 당연히 미국 국무부가 부담하여야 하였다. 미국 정부대표단이 투숙한 제네바 켐핀스키호텔에 이례적으로 북측 정부대표단도 함께 투숙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1년 10월 24일 <아사히신붕>은 북측 정부대표단의 제네바 체재비를 “스위스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추측기사를 내보냈으나, 그것은 오보다. 북측 정부대표단의 체재비를 북미관계와 무관한 스위스 정부가 부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촉구 메시지 보낸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네바에서 2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상무부총리를 평양에서 접견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접견석상에서 리커창 부총리에게 6자회담이 조건 없이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말은, 중국에 보내는 촉구 메시지가 아니라 미국에 보내는 촉구 메시지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북측과 미국에게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해온 중국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동일한 내용의 촉구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른 이해되지 않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에 보낸, 조건 없이 조속히 재개하자는 촉구 메시지는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한 것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6자회담은 제2차 핵위기가 일어난 2003년에 부쉬 정부가 위기관리차원에서 꺼내놓은 책략이므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도가 아니다. 그래서 북측은 실속 없는 6자회담을 공전시킬 게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내올 북미양자회담을 결단하라고 미국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북미양자회담이 아니라 6자회담을 조건 없이 조속히 재개하자는 촉구 메시지를 미국에 보낸 것일까?

뉴욕과 제네바를 오가며 북미고위급회담이 진행되는 판에, 북미양자회담을 조건 없이 조속히 재개하자는 촉구 메시지를 미국에게 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건 없이 조속히 재개하자고 촉구한 그 회담은 뉴욕과 제네바를 오가며 열리는 북미고위급회담이 아니고, 베이징에서 재개될 6자회담은 더욱 아니고, 아직 개최지가 정해지지 않은 사상 최고의 정치회담인 북미정상회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차 북미고위급회담 개최에 즈음하여 북미정상회담을 조건 없이 조속히 개최하자는 촉구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해야 문맥의 의미가 통한다.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부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조건 없이 조속히 개최하자는 촉구 메시지를 전할 수는 없으므로,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들을 노련한 ‘특수어법’으로 그렇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북측은 이미 1차 북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한 북측 정부대표단을 통해 미국에게 북미정상회담을 조건 없이 조속히 개최하자는 제안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대북협상에서 수세에 몰린 백악관은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노출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그 무슨 ‘탐색적 대화’를 하였다는 연막발언으로 언론의 시야를 가렸고, 북측도 협상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하는 국제관례에 따라 그런 메시지를 전한 사실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제안한 북측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도 그 메시지를 받고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였고, 부쉬 대통령도 그 메시지를 받았으므로,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두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그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북측이 미국에게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한 까닭은, 두 나라 최고결정권자가 만나는 최종 담판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일괄타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북미정상회담만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결정적인 해결책을 내올 수 있다는 점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자명하다.

그러므로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한 북측 정부대표단은 북미정상회담을 조건 없이 조속히 개최하자는 지난 7월의 제안 메시지에 대한 미국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제안 메시지를 받고 석 달 동안 고심해온 미국은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한 미국 정부대표단을 통해 북측에게 어떤 응답 메시지를 보냈을까? 북측과 미국이 고위급회담을 통해 주고받은 메시지를 외부에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회담 분위기와 양측 대표단장의 공개발언에서 그 윤곽을 더듬어볼 수 있다.
 

둘째날 회의일정을 왜 생략하였을까?

양측 정부대표단은 첫날 회의일정을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제네바 미국대표부에서 미국측이 차린 만찬을 나누었고, 둘째날에는 제네바 북측 대표부에서 북측이 차린 오찬을 나누었다. 1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진행되었을 때는 양측 정부대표단이 만찬을 함께 나누지 않았고, 회의 둘째날 회담장에서 간단한 실무오찬만 있었을 뿐 정식오찬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측 대표부를 오가면서 만찬과 오찬을 나누었다. 적대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협상 중에 만찬과 오찬을 나눈 것은, 회담이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2011년 10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제4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국방장관을 수행해 참석한 미국 국방부 당국자는 취재기자에게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이 “전형적인 접근방식을 보였다”고 말했다. 북측이 전형적인 접근방식을 보였다는 말은, 북측이 지난 시기에 그러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도 미국에게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을 위한 방도를 제안하였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북측은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한 치도 양보할 기색이 없이 기존 협상방침을 견지한 것이다.

그러했는데도 회담 분위기가 부드러웠다는 것은 미국이 북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준다. 지금 미국은 마지막 협상기회를 간신히 붙들고 수세에 몰려 협상을 진행하는 처지에 있으므로, 북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매우 이상하게 진행된 회담 둘째날 회의일정이다. 2차 북미고위급회담 첫째날 회의일정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어 오후 12시 15분에 끝났고, 오후 3시에 속개되어 오후 4시 40분에 끝났다. 그리고 둘째날 회의일정도 첫째날 회의일정과 마찬가지로 오전 10시에 시작되어 오후에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둘째날 아침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오전 10시가 되었는데도 켐핀스키호텔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고,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오전 8시 15분께 켐핀스키호텔 숙소를 나서더니 회담장으로 정해진 북측 대표부로 가지 않고 미국 대표부로 갔다. 원래 오전 10시부터 시작하기로 예정된 오전회의일정 전체가 어떤 이유로 생략된 것이다.

둘째날 오전회의를 생략한 양측 정부대표단은 오후 12시 30분에 북측 대표부에서 만나 1시간 15분 동안 오찬을 나누었다.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 출입기자단에게 양측 정부대표단이 제네바에서 ‘조선음식(Korean food)’으로 오찬을 즐겼다고 하면서 “오찬장에서 북측 정부대표들이 웃고 있었다(the Koreans in the room are smiling)”고 말했다. 국무부 대변인이 묘사한 오찬 분위기를 좀 과장하면, 양측 정부대표단이 화기애애하게 오찬을 나눈 것이다.

양측 정부대표단은 북측 대표부에서 ‘화기애애한 오찬’을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오후 2시에 둘째날 오후회의일정을 시작하였는데, 그 회의는 이상하게도 30분만에 끝나버렸다. 통역시간을 계산하면, 실제로 회의진행이 15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15분 동안 무슨 협상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둘째날 회의일정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전부 생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10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로 예정된 회의일정 가운데서 24일 회의일정만 진행하고 25일 회의일정을 생략한 것은, 양측 정부대표단이 길게 토론할 필요도 없이 첫째날 회담 한 차례로 협상을 급진전시켰다는 뜻이다. 북미협상이 그처럼 급진전되었으니, 북측 정부대표단이 웃음 머금은 얼굴로 미국 정부대표단과 오찬을 나눈 것이다.
 

북미관계개선을 위해 합의한 신뢰구축 현안

2011년 10월 24일 2차 북미고위급회담 첫날 저녁, 북측 정부대표단과 만찬을 나누고 켐핀스키호텔 숙소로 돌아간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취재기자들에게 “우리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부 진전이 있었다. 우리는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일부는 차이를 좁혔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회의일정이 모두 생략된 둘째날 오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취재기자들에게 2차 북미고위급회담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총평하고, “우리는 양자회담과 6자회담과정에서 적극적인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충분히 합의하였는지를 평가하는 노력에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협상이 급진전되었음을 감추면서 협상결과에 대해 매우 말을 아끼려는 궁색한 모습이 완연하다.

그의 궁색한 발언에 비해, 김계관 제1부상의 발언은 상당히 달랐다.
그는 2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모두 마친 뒤, 북측 대표부 앞에서 취재기자들에게 “1차 대화 때 합의한 데 따라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구축조치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 과정에 일련의 커다란 전진도 있었고, 일부 문제에서 아직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 문제도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하고 다시 만나 풀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서 주목하는 것은,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6자회담을 재개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이 아니라 북미관계개선을 위한 신뢰구축조치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고, 몇 가지 중요한 합의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발언을 들은 취재기자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묻자, 그는 “신뢰구축을 위해 해야 할 문제에 있어 전진이 있었다. 무엇인지는 앞으로 알게 된다. 상세히 말은 못한다”고 답변하였다.

2011년 10월 27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이번 회담에서는 서로의 립장에 대한 리해가 더욱 깊어지고 일련의 전진이 이룩되였다. 쌍방은 신뢰조성의 견지에서 미결문제를 토의해결하기 위한 조미접촉과 회담을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김계관 제1부상은 “일련의 커다란 전진이 있었다”고 말했고,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일련의 전진이 이룩되었다”고 말한 반면,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일부 전진이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사실일까? 북미협상결과에 대해 미국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 급진전된 협상결과를 숨기려 하고, 북측은 협상진행을 고려하여 말을 아끼기는 하지만 급진전된 협상결과를 세상에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김계관 제1부상의 솔직한 발언이 진실에 가깝다.

김계관 제1부상이 말한 일련의 커다란 진전이란, 그 자신의 발언에 나타난 것처럼, 북미관계개선을 위한 몇 가지 신뢰구축 현안을 합의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미관계개선과 신뢰구축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은 대사급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국교수립으로 완결되지만, 60년 묵은 정전협정을 유지하며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북측과 미국의 관계개선은 국교수립 이전에 필수적이고 특별한 해법을 거쳐야 한다. 그 해법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정작 더 중대한 문제는, 평화협정 체결이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는 두 가지 근본문제가 걸려있어서,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고 협상과정이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정전협정이 북미 적대관계를 규정한 것이므로 평화협정 체결에 걸려있는 두 가지 근본문제도 당연히 북측과 미국이 서로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해법에 따라 풀어야 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측이 미국에게 제기한 근본문제는 주한미국군 철군이고, 미국이 북측에게 제기한 근본문제는 우라늄농축 중단이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는 북측과 미국이 주한미군군 철군과 우라늄농축 중단을 상호교환하는 일괄타결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것처럼, 주한미국군 철군과 우라늄농축 중단을 상호교환하는 일괄타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최종 담판으로 마련할 해결방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계관 제1부상이 말한 북미관계개선은 북미정상회담 개최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그가 말한 신뢰구축은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신뢰구축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북측과 미국은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신뢰구축 현안을 합의하였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제1부상의 발언은 무엇을 암시한 것일까?

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필요한 몇 가지 신뢰구축 현안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현 시기 북미관계에서 신뢰구축 현안으로 제기되는 것은,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키 리졸브/독수리연습’과 ‘을지프리덤가디언’ 같은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하지 않는 잠정중단조치(moratorium)를 실행하는 것이고, 그에 상응하여 북측이 미사일 발사훈련과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는 잠정중단조치를 실행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0년 10월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직전에 북측과 미국이 실행한 신뢰구축 현안도 그러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잠정중단조치들 가운데, 북측이 취할 잠정중단조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으로 당장 실행할 수 있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도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어렵지 않게 실행될 수 있다.

그런데 중대하게 걸려있는 현안은, 미국의 북침전쟁연습 중단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이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 북침전쟁연습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북침전쟁연습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상투적인 문구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광범위한 연합훈련, 연습은 한반도에서의 미래 도전에 적절히 대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는 문구는 해마다 글자 한 자 바꾸지 않고 공동성명에 나오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올해 공동성명에서도 그 표현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 제4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는 북침전쟁연습의 필요성을 재확인한다는 반복적인 표현이 한 차례 더 들어갔다. 문제의 표현은 “양 장관은 천안함, 연평도 사태 이후 불가측한 안보환경 하에서 동맹의 대비태세 과시를 위해 한반도에서의 연합훈련 실시 필요성을 재확인하였다”는 문구다.
그와 달리, 지난 해 제42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는 “양 장관은 천안함 사태 이후 안보환경 하에서의 북한의 군사활동 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동서해에서의 한미 연합연습 등을 포함한 대응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이것은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기 위해 ‘대응조치’라는 작전방침까지 논의하였음을 말해주는 비반복적인 표현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공동성명에서 해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은 관행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올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 북침전쟁연습에 대해 그런 반복적 표현을 쓴 것은, 2012년 3월에 가서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 아닐까?
김계관 제1부상이 2차 북미고위급회담 직후 취재기자들에게 “일련의 커다란 전진이 있었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그런 태도변화를 암시한 발언이 아닐까? 북미협상의 일괄타결 돌파구는 그렇게 열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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