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의 출처는 이홍지님 말씀, 태수님이 이홍지님의 말에 의거해 쓰신 글, 그리고 제 직관에 의한 이해 등입니다.
처음 접하는 용어일 수 있어서 용어 정리를 해드립니다. 그냥 재미있게 봐주세요.^^
http://blog.daum.net/chonsun-world
이태수님의 블로그 입니다. 이번 설명을 위해 여기 글을 끌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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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신은 자기 주왠선을 말하는데 주왠선은 진아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입니다. 주왠선은 즉 자신의 내원의 자신을 나타냅니
다. 그러나 주원신의 한자 발음이 주왠선이고 주원신은 우리말로 읽은 겁니다. 주왠선은 이홍지님이 말씀 하신 것인데 진아와 주왠
모두 자신의 본질의 체현들을 의미합니다. 즉 그 자신입니다. 보통 우리가 이르는 상위자아 역시 그 자신인데 이 상위자아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위자아의 극 의 체현으로 들어가면 바로 자신의 내원에서 이르는데 그 내원의 층차에 바로 자신 진정한 주왠선이 있습니다.
부왠선 즉 한국어 발음 부원신은 수호신으로서 즉 주원신이 이곳에 육화해서 안 좋은 짓 못하도록 막는 존재로서 그들은 불가로 말하자면 나한 과위? 그러니까 겨우 삼계를 벗어난 수준이고 그들은 아는 것에 진상을 보나 아는 것에 한계가 잇으므로 그들에게 입각하면 안됩니다. 부원신은 항상 주원신을 수호하고 도우려하나 주원신의 의지가 강하면 그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태수님의 말에 입각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태수님 역시 주원신 부원신을 리훙쯔 님의 말에 입각해서 쓴 것 으로 아뢰옵니다.
부원신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하지 않아도 부원신은 당신을 항상 돕습니다. 만약 속인의 이익을 위해서 그에게 접하려고 시도한다면
마치 채널링 해주고 그렇게 리딩등을 해주는 56차원의 신성한 존재들이 가고 또한 부원신이 물러나고 마가 낍니다.
바로 이 속인의 집착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의 집착이 강하고 그가 의지가 강했으므로 부원신이 도울수 없는 것입니다.
태수님이 전에 제가 기억하건데 상위자아 역시 부원신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위자아 설은 그르다! 라고 표현햇는데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상위자아 설이 맞다 하시는데... 저는 태수님이나 상위자아설을 주장하는 이나 다 맞다고 생각됩니다.
중간에 제가 좀 마무리를 지어 보겠습니다.
상위자아를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과 태수님이 말하는 것 즉 태수님은 이홍지님의 말에 의거하는데 이 고층차에서 바라본 것과
이곳에서 바라본게 틀립니다.
여기서의 사람에 즉 여기서 굳이 입각해서 생각한다면 진아로 가는 과정중에 역시 상위자아라는 것이 위치해있어서 상위자아와
합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분들의 말은 상위자아라는 것이 진아로 일부 다른 표현이자 또한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것을 고층차의 분들은 전혀 다르게 표현합니다. 마침 태수님이 이홍지님의 말씀에 의거했기에 제가
이에 대해 용어 정리도 하는 겸 태수님이 이홍지님의 말에 어떻게 의거하는지를 말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홍지님의 말에 대하여 제가 함의를 다 나타낼 수는 없으니 다만 제 인식으로 조금 전혀 주원신 부원신 개념을 모르는 이들
을 위해서 정리를 해주려고 합니다.
고차에서 보는 것은 바로 이 상위자아라는 것이 같지만 다른 생명이다 라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상위자아가 진아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내원의 층차를 표현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이 정확히 어느 곳에서 왓는지도 모르고 단지 층차가 낮은 상위자아만 보는데 우리 바로 위의 상위자아 불교의 진아와 합일해도 역시 자신의 내원의 층차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만약 굳이 상위자아 설을 주장하려면 한가지 작업이 필요한데
제가 이해를 돕기위해 하나의 새로운 설을 제시 하는 바입니다.
상위자아와 합일하는 과정을 하나의 과정 즉 f(x)라는 함수로 두고 이 함수 f(x)라는 것을 극한을 취하는데
어떤 과정이 있다면 그것을 값을 구하기 어려울때에 그것이 한없이 어떤 값에 다가가는지 보기 위해 즉 수학에서는
극한 을 취합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근사값을 계산하는 극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lim라고 표시하는데 이 f(x)를 극한을 취하면 무수히 많은 상위자아 또 상위자아에 상위자아 또 상위자아에 상위자아 이런식으로
표현 될텐데 이런 무한한 과정을 도달했을때 바로 내원의 층차에 도달하는 때가 잇을 것인데 이것은 내원의 층차까지 도달하면 멈추도록하는 그런 과정도 역시 f(x) 안에 다 있겠지요.
제가 보기에 제 작은 견해로는 이홍지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궁금한데 아마 이것이 맞다면
설명이 수월히 이해 될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원의 층차에서 이곳에 오기 까지 수많은 층차를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매 층차 내려서 직접 그 내려온 층차에서 이곳 지구까지 내려오는데 지구라는 층차 오기까지 많은 층차를 밟아왔습니다.
지구에는 고차원 신들이 대부분 이므로 그런 식으로 밟아왔는데 그들은 각개 공간 즉 각개 층차에 하나의 신체가 다있고 또한
각개 공간에 내가 다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단지 내원의 투영체입니다.
즉 각개 공간에 내 몸체 즉 또다른 나지만 바로 나가 다 있으므로 상위자아 역시 단지 한 층차 중에서의 나의 현현 인 것입니다.
바로 그는 나이며 이것이 상위자아라는 것이며 이것이 고층차의 측면에서 본 것이라고 이홍지님의 말씀을 어느정도 풀어봅니다.
즉 상위자아라는 것은 부원신이 맞으며 그것은 바로 그 삼계밖의 작은 층차중의 것을 사람들이 말하며 사실은 그 존재는
바로 당신이며 바로 주왠선의 체현이며 각개 공간에 다있고 각개 층차에 당신이 그 부동한 층차에 현현에 맞게 그대로 잇습니다.
즉 이홍지님의 말도 맞고 당신의 말도 맞으며 태수님의 말도 맞습니다.
저는 다 인정하며 이것을 처음 듣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햇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그 조그만 위치에 있는 신 상위자아만 보지 말고 자신의 내원을 바라보며 내원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대들의 상위자아는 바로 겨우 삼계밖을 벗어난 하나의 존재를 말하는데 그들의 층차는 여기서 말하는 것을 보자면 거의 대부분이 여래이하입니다. 사실을 그런게 아니라 내원부터 여기 층차까지 자신이 내려온 곳중에 밟은 계단(층차)가 있다면 거기에 모두 상위자아가 있고 즉 이것은 부원신입니다. 당신의 또다른 표현이자 다른 게 아니라 같은 생명입니다.
자신의 내원보다 단지 부원신 개념에서 머무른다면 그것은 소용없습니다.
내원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것이 필수적이고 곧 그러기 힘들어지니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태수님이 그르다라는 것은 단지 상위자아가 당신의 윗단계에 있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인식이 바귀어야 합니다. 층차는 레벨이 아니며 층차는 단지 우주법에 다가가는 각개 생명이 얼마나 잘 제고하고
더 좋은 생명으로 거듭나는가 이지 레벨이 아닙니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해도 천상의 낡은 신들이 레벨을 매기는 등
자비심에서가 아니라 이곳을 물론 좋지 않은 염을 품고 해서 부패해서 이곳에 내려온 자들도 있지만 좋은 생명이 이런 생명을
구하거나 아니면 내원 층차 자체를 제고 하거나 모험을 위해서 용기있게 내려온 것도 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생명도 같이 내려왔는데 낡은 신들이 이들을 특별히 더럽다고 여겨서 자신이 오염될까봐 모두 폐기 처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물론 저도 지구라는 이 삼계는 사실 더러운것은 인정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런 더러움이 아니라
우주 법 단지 좋은 생명으로 거듭나햐 하는 그 법에 많이 벗어날 뿐입니다.
태수님이 이야기 한것은 상위자아가 레벨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원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말슴 하시기를
내원의 생명과 동일하지만 별도로 쌍둥이 같은 존재가 된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일반화 시키면
각개 층차에 상위자아가 있고 나중에 내원에 이르는데 이 상위자아들이 잇는 곳에 각각 수련되서 올라가면
바로 그 층차중의 상위자아 즉 부원신과 동일한 생명이나 별도로 쌍둥이 같은 존재가 된다 입니다.
당신이 만약에 바늘 구멍에 먼가를 하고 싶으면 당신의 일부 즉 당신의 피를 거기다 넣으면 되지요?
바로 이런 식으로 그가 주왠선이 내려올 수 없으므로 바로 자신의 일부 조그만 에너지를 각개 공간 과 각개 층차네 넣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최후에 바로 당신 즉 사람으로 그것이 체현한 것입니다. 사실
영혼이라는 것은 주왠선도 아니며 그 체현도 아닌데 바로 이런 체현을 위해 만든 업장이라는 것입니다.
태수님이 상위자아라는 것이 그르다라는 것은 여기 분들이 그것을 레벨로 생각해서이지만
상위자아는 사실 고층차에서 볼때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입니다.
이정도면 용어 정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 미키 - 입니다. 감사합니다.
미키
- 2010.05.11
- 09:38:48
- (*.116.42.28)
이곳은 수련하기위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태수님의 말로는 부원신은 경지를 제고 하기 어려워서 주원신과 모태를 같이한 생명이다라고 하네요.
고층 공간의 흙은 영성이 잇다고 이홍지님이 말씀 하십니다.
고층 공간의 에너지라는 것도 역시 ㅣ그 자체로 영성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것입니다. 즉 이곳까지 여러 층차를 거치는데 그 층차를 매층차를 밟을 때마다
영성이 있는 에너지체 즉 분명히 나의 에너지이지만 역시 그 공간 중에서의 별도 생명 즉 나의 부동한 그 측면에서의
현현 인 것입니다.
즉 이런 에너지 자체가 영성을 가지므로 역시 각개 공간중에 나가 바로 부왠선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태가 같이 했다는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경지를 제고해 올라가서 내원의 층차에 도달하면 별도의 쌍둥이 같은 존재가 됩니다.
부원신은 주원신의 신하된 자가 맞으며 수련도 역시 주원신이 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베릭
- 2010.05.12
- 15:31:09
- (*.100.86.148)
주원신은 자기 주왠선을 말하는데 주왠선은 진아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입니다. 주왠선은 즉 자신의 내원의 자신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주원신의 한자 발음이 주왠선이고 주원신은 우리말로 읽은 겁니다.
진아와 주왠 모두 자신의 본질의 체현들을 의미합니다. 즉 그 자신입니다.
보통 우리가 이르는 상위자아 역시 그 자신인데 이 상위자아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위자아의 극의 체현으로 들어가면 바로
자신의 내원에 이르는데 그 내원의 층차에 바로 자신
진정한 주왠선이 있습니다.
부왠선 즉 한국어 발음 부원신은 수호신으로서 즉 주원신이 이곳에 육화해서
안 좋은 짓 못하도록 막는 존재로서, 그들은 불가로 말하자면 나한 과위? 그러니까 겨우 삼계를 벗어난 수준이며. 그들은 아는 것에 진상을 보나 아는 것에 한계가 있으므로 그들에게 입각하면 안됩니다.
부원신은 항상 주원신을 수호하고 도우려하나 주원신의 의지가 강하면 그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태수님의 말에 입각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부원신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하지 않아도 부원신은 당신을 항상 돕습니다. 만약 속인의 이익을 위해서 그에게 접하려고 시도한다면, 마치 채널링 해주고 그렇게 리딩등을 해주는 5~6차원의 신성한 존재들이 떠나가고 또한 부원신이 물러나고 마가 낍니다.
바로 이 속인의 집착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의 집착이 강하고 그가 의지가 강했으므로 부원신이 도울수 없는 것입니다.
태수님이 전에 제가 기억하건데
상위자아 역시 부원신이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위자아설은 그르다! 라고 표현했는데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상위자아설이 맞다 하시는데...
저는 태수님이나 상위자아설을 주장하는 이나 다 맞다고 생각됩니다.
중간에 제가 좀 마무리를 지어 보겠습니다.
상위자아를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과 태수님이 말하는 것 즉
태수님은 이홍지님의 말에 의거하는데 , 고층차에서 바라본 것과 이곳에서 바라본게 틀립니다.
여기서의 사람에 즉 여기서 굳이 입각해서 생각한다면 진아로 가는 과정중에
역시 상위자아라는 것이 위치해있어서 상위자아와 합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분들의 말은 상위자아라는 것이 진아로 일부 다른 표현이자 또한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것을 고층차의 분들은 전혀 다르게 표현합니다.
마침 태수님이 이홍지님의 말씀에 의거했기에 제가 이에 대해 용어 정리도 하는 겸 태수님이 이홍지님의 말에 어떻게 의거하는지를 말하려 합니다.
주원신 부원신 개념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정리를 해주려고 합니다.
고차에서 보는 것은 바로 이 상위자아라는 것이 같지만 다른 생명이다 라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상위자아가 진아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내원의 층차를 표현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이 정확히 어느 곳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단지 층차가 낮은 상위자아만 보는데 우리 바로 위의 상위자아, 불교의 진아와 합일해도 역시 자신의 내원의 층차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만약 굳이 상위자아 설을 주장하려면 한가지 작업이 필요한데
제가 이해를 돕기위해 하나의 새로운 설을 제시 하는 바입니다.
상위자아와 합일하는 과정을 하나의 과정 즉 f(x)라는 함수로 두고
이 함수 f(x)라는 것을 극한을 취하는데
어떤 과정이 있다면 그것을 값을 구하기 어려울때에
그것이 한없이 어떤 값에 다가가는지 보기 위해 즉 수학에서는 극한을 취합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근사값을 계산하는 극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lim라고 표시하는데 이 f(x)를 극한을 취하면
무수히 많은 상위자아 또 상위자아에 상위자아 또 상위자아에 상위자아 이런식으로 표현 될텐데 이런 무한한 과정을 도달했을때 바로 내원의 층차에 도달하는 때가 있을 것인데 이것은 내원의 층차까지 도달하면 멈추도록하는 그런 과정도 역시 f(x) 안에 다 있겠지요.
제가 보기에 제 작은 견해로는 이홍지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궁금한데 아마 이것이 맞다면 명이 수월히 이해 될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원의 층차에서 이곳에 오기 까지
수많은 층차를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매 층차 내려서 직접 그 내려온 층차에서
이곳 지구까지 내려오는데 지구라는 층차 오기까지
많은 층차를 밟아왔습니다.
지구에는 고차원 신들이 대부분 이므로
그런 식으로 밟아왔는데 그들은 각개 공간 즉 각개 층차에
하나의 신체가 다 있고 또한 각개 공간에 내가 다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단지 내원의 투영체입니다.
즉 각개 공간에 내 몸체 즉 또다른 나지만
바로 나가 다 있으므로 상위자아 역시 단지 한 층차 중에서의 나의 현현인 것입니다.
바로 그는 나이며 이것이 상위자아라는 것이며
이것이 고층차의 측면에서 본 것이라고
이홍지님의 말씀을 어느정도 풀어봅니다.
즉 상위자아라는 것은 부원신이 맞으며 그것은 바로
그 삼계밖의 작은 층차중의 것을 사람들이 말하며
사실은 그 존재는 바로 당신이며 바로 주왠선의 체현이며
각개 공간에 다있고 각개 층차에 당신이 그 부동한 층차에
현현에 맞게 그대로 있습니다.
즉 이홍지님의 말도 맞고 당신의 말도 맞으며 태수님의 말도 맞습니다.
저는 다 인정하며 이것을 처음 듣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햇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그 조그만 위치에 있는 신, 상위자아만 보지 말고
자신의 내원을 바라보며 내원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대들의 상위자아는 바로 겨우 삼계밖을 벗어난 하나의 존재를 말하는데 그들의 층차는 여기서 말하는 것을 보자면 거의 대부분이 여래이하입니다. 사실을 그런게 아니라 내원부터 여기 층차까지 자신이 내려온 곳 중에 밟은 계단(층차)가 있다면 거기에 모두 상위자아가 있고 즉 이것은 부원신입니다.
당신의 또다른 표현이자 다른 게 아니라 같은 생명입니다.
자신의 내원보다 단지 부원신 개념에서 머무른다면 그것은 소용없습니다.
내원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것이 필수적이고
곧 그러기 힘들어지니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태수님이 그르다라는 것은
단지 상위자아가 당신의 윗단계에 있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인식이 바귀어야 합니다.
층차는 레벨이 아니며 층차는 단지 우주법에 다가가는 각개 생명이 얼마나 잘 제고하고 더 좋은 생명으로 거듭나는가 이지 레벨이 아닙니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해도 천상의 낡은 신들이 레벨을 매기는 등
자비심에서가 아니라 이곳을 물론 좋지 않은 염을 품고 해서 부패해서 이곳에 내려온 자들도 있지만 좋은 생명이 이런 생명을 구하거나 아니면 내원 층차 자체를 제고 하거나 모험을 위해서 용기있게 내려온 것(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생명도 같이 내려왔는데 낡은 신들이 이들을 특별히 더럽다고 여겨서 자신이 오염될까봐 모두 폐기 처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물론 저도 지구라는 이 삼계는 사실 더러운것은 인정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런 더러움이 아니라 우주법 단지 좋은 생명으로 거듭나햐 하는 그 법에 많이 벗어날 뿐입니다.
태수님이 이야기 한것은 상위자아가 레벨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원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내원의 생명과 동일하지만 별도로 쌍둥이 같은 존재가 된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일반화 시키면,
각개 층차에 상위자아가 있고 나중에 내원에 이르는데
이 상위자아들이 있는 곳에 각각 수련되서 올라가면,
바로 그 층차중의 상위자아 즉 부원신과 동일한 생명이나
별도로 쌍둥이 같은 존재가 된다 입니다.
당신이 만약에 바늘 구멍에 뭔가를 하고 싶으면
당신의 일부 즉 당신의 피를 거기다 넣으면 되지요?
바로 이런 식으로 그가 주왠선이 내려올 수 없으므로 바로
자신의 일부 조그만 에너지를 각개 공간 과 각개 층차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최후에 바로 당신 즉 사람으로 그것이 체현한 것입니다.
사실 영혼이라는 것은 주왠선도 아니며 그 체현도 아닌데
바로 이런 체현을 위해 만든 업장이라는 것입니다.
태수님이 상위자아라는 것이 그르다라는 것은
여기 분들이 그것을 레벨로 생각해서이지만, 상위자아는 사실 고층차에서
볼때 바로 (또다른) 당신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입니다.
이정도면 용어 정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 사이트에서 말하는 상위자아는 바로 이 부처과위 즉 여래과위 아래의 나한 이나 아라한 층차까지도 안되는 자신의 각개 공간의 자신을 가리켜 상위자아라고 하는 것인데 이홍지님이나 태수님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상위자아와의 합일이 잘못된게 아니라 단지 상위자아라는 그 측면이 주종 관계와 윗물 아랫물이라는 것으로서 레벨로 의식되는 것이 잘못되엇다고 하는 겁니다. 어차피 자신이 것이고 마땅히 다른게 아닌데 그렇게 겨우 그런 층차의 자신을 가리켜 상위자아라고 하면서 숭배를 받는 그러한 것이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셔야 합니다.
각종 채널링 용어들은 매우 분별없이 용어를 쓰는데 상위자아 자체도 두루 뭉실 하므로 해석하지 않는게 좋고 가장 좋은 것은
그냥 덤덤히 보는게 좋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