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의 천억배나 되는 신이 그는 무섭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해서 종교중의 난신과 낡은 신들의 안배를 전면 부정한다라는 말이 성립되는가?
=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말의 진정한 내포와 가장 근본적인 이치 ..
우주에는 한가지 이치가 있는데 그가 원하면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다.
부왠선은 항상 그를 돕고자 하는데 만약 주왠선이 만약 나쁜 일을 하는데 부왠선이 일정하게 막을 수는 있어도 주왠선의 지배를 받는 바 주왠선의 의지가 강하다면 말릴 수 없으며 그가 그러한 속인의 일을 하려 함인데 어느 법문의 대각자라도 그를 상관하지 않는다.
-전법륜 리훙쯔님의 말씀..-
종교중의 난신과 낡은 신이 아무리 안배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역시 안배받는 주체가 그것을 부정하면 즉 그 주왠선이 그렇게 요구함으로서 어떤 대각자도 낡은 신도 난신도 역시 그를 말리지 못함이라.
그래서 그는 얻었다 무엇을? 종교중의 난신과 낡은 신들의 안배 즉 그 한 난법(고층차중의 낡은 정법 혹은 사심)의 파괴를 얻었으며 또한 그는 잃어야 한다?
무엇을? 종교중의 난신과 낡은 그 엄청난 고차 신의 안배중의 일들을 잃었으며 또한 안배에 차질이 생겼으므로 그 차질 생긴 안배의 틈을 매꾸는 작업을 정법을 만드는 이들이 안배를 하거나 아니면 내원의 신들이 그 일을 맡아서 하기도 한다.
이렇듯 자기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흐리멍텅하게 해서 사고를 하고 연공을 해도 되는가? 아니된다. ********************************************************
리훙쯔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런 것과 연관 됩니다. 국부적으로 보면 이렇게 큰 문제 즉 저런 고차의 사심이 내려와 정법 비슷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저렇게 흐리멍터이 아니라 주체를 하면서 속을 비워내야 한답니다..
그리고 차원을 넘나드는 것 자신의 생각과 그러한 것은 항상 여러차원을 공유할 수 있다.
그 차원에 계속 층차중에 계속 머무른다면 그곳에서 자신의 차원의 둥지를 틀게 되고 어떤 대각자는 바로 그러한 세계를 가지는데 바로 그가 만들어낸 차원중의 둥지 이다.
그가 상승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계속적으로 그 차원에서의 유지 라는 것이다. 고차로 갈수록 생각만으로도 즉시 현현 하는데 우리가 만약 그들에게 직접 그들의 안배를 부정하면 역시 우리도 그 신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대면 하는 이치인가? 바로 이 여러 차원의 공유에 의해서이다. 저 고층차 존재의 사상과 안배를 부정한다면 당연히 그에 걸 맞는 차원으로 가야 하며 이것은 바로 그에게 통신하는 것으로서그와 직접적인 차원으로 대면이다.
사실 그는 느끼지 못하는데 사실은 그는 이미 그것을 부정함으로서 그 고차신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안배의 부정은 경지로서의 대결이 아니라 법에 따른 이치로 따져야 하는데 법은 일정하지만 고층차로 갈 수록 그 현현이 다르고 좀더 우주적 특성에 다만 다가갈 뿐이다.
즉 법은 법이며 마땅히 변하지 않는다. 각 대각자들의 평균적인 법도의 의식이 바로 이러한 법에 가까운가?를 현현하게 만든다.
즉 아무리 무수히 머나먼 저 고차원계의 신이라도 그에게는 인간이 미생물과도 같을 지라도 그와 법을 놓고 말하게 된다면 그와 법으로 대결한다면 그것은 그와 그 신과 아무런 수직 수평 어느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법앞에 평등 이지만 사실은 ... 그것은 어떠한 관계도 아니며 전혀 연관이 없다고도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즉 정의 될 수 없는 관계다.
이러한 대등한 위치이므로 즉 그 신의 안배를 거부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다만 다만!!!!!!!!!!!!!!!!!!!!!!!!!!!!!!!!!!!!!!!!!!!!!!!!!!!!!!!!!!!!!!!!!!!!!!
단 한가지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바로 법의 표준 즉 쩐싼런(진선인 -眞善忍)의 표준에 따른 사상이 지극히 바른 그러한 연공인과 정법에 부합하는 사상을 가진 자이며 또한 그렇게 행하는 이여야 한다. 이런 이가 아니면 법앞에서 그 고차 신을 불러낼 수도 없으며 그 고차 신에게 털끝 만치도 건드리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다.
이러이러 하여 바로 우리가 진정한 수련자로서 그 낡은 여래의 수억배를 초과 할 수도 있는 그러한 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법도는 이렇게도 엄청난 것이며 때론 무서운 것이다. 왜 과학을 하는 자는 오차를 조금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오차를 적어도 소수점 아래 한 20개를 따졌으니 잘 따졌고 이제 괜찮은 결과가 나올거야 했는데 나중에 실험이 엉망이 되었다.
따라서 그 피해도 엄청나다. 당최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바로 이러한 오차가 바로 당신의 계산을 거부했음이로다 즉 이런 거대한 이치가 바로 이러한 것에 숨겨진 것이다.
당신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왜 학교 지식이 고리타분하다 하며 왜 학교지식을 무시하고 이 세상의 지식과 이치를 가치를 마음대로 판단 하는가?
바로 이러한 큰 이치에 대한 것의 크나큰 힌트이며 크나큰 자비로서 이렇게 힌트를 주었는 데도 당신은 미혹속에 남겨두어 괴롭다고 할 것인가?
이것은 천상의 배려이다. 당신을 무조건 내릴려고 여기 실험대를 만든게 아니다. 당신에게 이런 힌트라도 남겨 줌으로서 당신을 훼멸시킬 목적이었던 그 사심있는 대 고차원 신들에게서 당신들을 구하려 함이라.
천상위에 천상이 또있다. 여래 위에 그 수천억배 되는 경지에서 보면 여래 역시 속인 인 것이라. 또한 그 위의 신들이 보면 또 그 여래 보다 높은 신들이 속인이라... 이들의 사심이 과연 드러나지 않는가?
이 세상 자체가 진리라 여기고 아름답게 여기라. 이 세상은 또한 아름답지는 않은데 이곳은 우리들의 연원에서는 극히 낮은 저층차이며 이곳은 그러해서 아름답지 않으며 또한 인위로 조성된 곳이라서 또한 그렇기도 하다.
자신의 내원을 잊지 마라. 그리고 자신이 항상 우주중의 법도에 맞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매 주기 마다 억겁동안 다시 갱신할 시기가 올 수 있는데 이때 갱신하는 등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보이면 당신은 죄를 범하는게 아니다.
만약 대 고차 선신중에서 낡은 법도에서는 아주 청명하다 또한 사심역시 없다. 다만 그는 갱신을 하지 못해서 정법에서 이탈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그가 일부러 행한게 아니므로 그는 또한 개변할 수 있으며 그 층차에서 무조건 적으로 떨어져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신이 그것을 부둥켜 안고 육화도 안하고 사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려는 즉 집착이 나타난다면 그는 아무리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고 바로 그는 그 층차중에서 저층차로 떨어져 내릴 수 밖에 없다. 또한 심하면 훼멸에 처한다. 하지만 개변할 의지를 보이는 분은 적어도 개변하면 했지 층차가 떨어져 내리지는 않는다.
이것이 정법에 부합하는 한 문제인 집착심을 버리는 가 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사실 고차의 현현으로 따지면 매우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바르다면 문제는 없지 않는가? 바로 그러하다.
다른 모든 것이 유동성 있어 변화 하더라도 당신이 잊어서는 안될 한가지 우주든 뭐든 그 자체 법도는 변치 않는다.
우주가 왜 생성되는가? 바로 법이 있기에 우주가 있다.
천국이 왜 생기는가? 크리스토 사상이 있어서 그 법에 따라 생긴다.
불국토가 왜 생기는가? 불법이 주관하고 있어서 그 세계가 생긴다.
우주가 법자체의 체현이다. 따라서 법을 정법이라 부르고 정법이 가는 곳에는 그 정법에 부합하는 생명이 자란다.
각 대각자의 자신의 법도는 자신의 법도가 전파되고 가는 곳에는 바로 그러한 생명체들이 자란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은 서로 전파하는 것을 즉 법문을 섞는 것을 방지 하고자 서로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고 자 한것이다.
즉 수련을 전일 해야 한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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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종교는 수련형식이 초기에는 있었으며 불교는 경지를 말하고 서양은 상승을 말한다. 불교법, 그리스도의 법 모두가 정법이되 초창기에는 종교 역시 괜찮은 것이었다.
다만 종교라는 이름은 무슨 지금의 기공과 같이 그 때 속인의 층차에서 만들어낸 말이며 이것은 말 그대로 수련 형식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심성 수련이 공통 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수련했는가? 바로 기도라는 형식의 완정한 한세트의 수련법이다.
불법에도 역시 무슨 서양에서 아멘하는 것과 같이 제인이라는 방식이 공통적인 것이며
사실은 이런 방식은 부차적인 것으로 진정한 것은 심성수련을 해내기 위해서 이러한 것을 전한 것이다.
석가불과 예수가 왜 보통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의 괴로움을 겪었는가?
만약 그들의 고심대법이 다만 그 한세트의 수련법에만 의거한다면 무슨 기공 동작 수만번하고 기도 수만번하면, 그렇게 수학적 확률로 대응 한다면 삼계를 벗어나서 아주 엄청난 고층차로 수련해 올라 갈 수 있는데 사실 이러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끔 가다 오해하는 이가 있는데 종교는 사실 심성수련을 나타낸 것이며
사실 지금 나온 파룬궁이라는 것도 결국엔 심성수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에 사악한 속인의 이익을 위한 사특한 것을 많이 빌어놓았는데...종교가 썩지 않고 되는가?
사실 종교에 안 좋은 것을 빌어서 무슨 글자에 힘을 넣어준 인류에 먼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종교에 따지지 말고 종교의 에너지를 정화하고 거두어 들이는 책임은 먼저 인류에게 있는 것이다.
종교중의 난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 종교 중의 난신이 좋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 가장 먼저 수많은 인류세대에 첫 번째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에게 가서 뭘 빌었는가? 우리 아들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하 나참 그리고 뭐? 돈 좀 많이 벌게 해주세요? 부처가 과연 당신이 원하는대로 해주어야 하나?
인류가 먼저 종교에 아니 종교라는 이름에 에너지를 넣어서 사념체가 형성되고 그 신은 당신(=인류) 이 만들어낸게 아닌가?
근데 왜 당신은 남탓을 하나? 남탓할게 아니라 당신으로 부터 나온 것이니 당신을 정화를 잘하면 당연히 이 세계에도 내면의 반영인 만큼 반영되어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당신의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 하지 말라 !
이것을 당신이 동의하지 아니해도 상관 없다. 결국 이러한 것도 심성수련에 국부적으로 속하는 것으로서 당신은 이런 문제까지 내 놓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당신의 오성 문제이다.
그때의 그 오래전에 첫 종교 형식으로 나온 것들은 사하지 않다. 그때와 지금의 종교는 뜻이 없음과 사념체로 바뀐 관계이며 오래전의 종교를 굳이 보아내자면 지금의 기공과 같다.
종교와 기공 모두 속인들에게 심성 수련을 소개 하기 위해 지어낸 것일 뿐이다.
종교는 심성 수련이라는 것을 표현 하기 위한 속인으로서는 이해 못할 일이다.
그리스도교는 기도라는 형식의 수련을 한 것이고 그리고 불법세계는 또한 그에 걸맞는 수련 방식이 각자 각 법문마다 있는 것이다.
종교에 당신이 에너지를 준다고 해도 각 법문의 완정한 수련 세트가 변하는게 아니며 심성수련이라는 것이 변하는게 아니다.
종교를 정화하되 그러한 완정한 수련 세트에 대해서 까지 한번에 욕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우리는 종교에 상관치 않으면 되는 것이며 그것들을 보려는 념이 자꾸 생긴다면 그것은 오성문제일뿐이다.
무슨 한 법문 즉 그 대각자와는 무관련이로다. 다시 말하지만 남탓 하지 말라. 당신이 저지른 것을 누구 탓으로 돌리는가?
미워하지말고 신경쓰지 말며 다만 자신을 잘 정화 해나가야 한다.
윗글에 쓴 것처럼 당신이 법에 따라 요구한다면 그 설사 여래의 무한대 층차의 신이라도 당신은 그를 대적할 수 있으며 바른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시방세계의 뭇 부처가 자비롭게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이 먼저 법을 알아야지 부처에게 항상 기대어서 쓰는가?
당신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부처보다 수많은 높은 경지의 신이라면 당신은 직접적으로 대면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삼계의 가장 강력한 미혹이 뭔지 아는가? 바로 법을 서로 섞는 것이다.
법을 섞으면 어찌 되는가? 당신은 혹시 이것이 어디에 힌트가 있는 지 아는가?
수학의 미적에 힌트가 있다. 미적은 짜르는 것이다. 무수히 잘라서 아주 작게 자르며 적분은 그것을 이어 붙여서 넓이 등을 구하는 것이다.
미적 할때 무슨 x에 관한 함수식을 미분 할 수 있고 좀 더 나가면 x,y,z등 여러 다항 변수에 관해 미분 할수 있다.
그런데 x, y, z에 관해 미분을 하면 어찌 되는가?
여기는 두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는데
한가지는 x, y, z 중 어느 하나라도 고정항이 있다면,그 중 하나만 변수로 보고 나머지 변수를 모두 상수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x를 선택하면 나머지 변수는 일차식을 미분하듯이 미분할 수 있다.
두번째는 x에 관해 미분하면 y나 z 같은 항은 dy/dx라는 식으로 이렇게 따로 표시를 하게 된다.
첫번째는 무엇을 말하는가?
당신은 그 법문들이 섞이면서 한 법문이 서로를 고정항으로 두려고 하면서 서로를 미분하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바로 이런 것이 첫째 문제다.
두번째는 무엇을 말하나?
당신의 오성문제로 당신은 수련하는데 있어 당신이 새로 섞어 창조한 dy/dx라는 새로운 아무런 대각자가 주재하지 않는 그 길을 새로 dy/dx라는 것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어떠한 사부도 없으며 당신이 수련해서 올라가게 되면 당신이 바로 그 법문을 창조한 것이다.
섞는 다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나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 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그렇게 큰데 과연 당신이 법문을 세우는게 쉬운 건지 아는가?
대각자들은 각 법문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연원 즉 수겁의 세월을 걸쳐 자신의 법문을 세우고 또한 그곳에 자신의 세계 즉 영적 왕국을 구현 한 것이다.
그러함인데 당신은 과연 그러한 일을 해내는가? 당신이 해내려는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당신은 당신의 법을 쉽게 세우려면 당신은 먼저 고층차로 지금 나온 법문 즉 정법에 부합하게 수련하여 올라가서 당신이 그때 가서 법을 따로 세워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그것은 차라리 쉬울 수도 있으나 당신이 아무리 여기서 법을 좋은게 좋다고 흐리멍텅하게 섞어버리면 그것을 곧 큰일 이다.
이것이 바로 오성 문제가 아닌가?
삼계는 거대 생명으로서 자신은 각 대각자들의 법을 모두 받아 들인다.
이 역시 중생인지라 그렇게 좋은 것들을 수용하는데 마땅히 정화가 필요하다.
근데 왜? 그는 그렇게 유지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삼계가 그 자체 내에 심장부에 지구가 위치해 있고 삼계밖의 내원이 있는 신들이 그곳에 투영되어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각 생명 역시 각 대각자의 법에 의해 투영된 생명체이다.
일단 기도든 뭐든 어떤 수련이건 간에 각 법문은 다 별개로 두고 따로 처음에는 도입했다.
그러다가 몇번씩 실제 정화시기를 거쳤는데 아틀란티스든 뭐든 바로 그러한 거대 문명이 그대로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삼계는 바로 이러한 평형조건들에 한하여 유지 하고 있는 것이고 그가 여러 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그가 원한 것이며 당신이 삼계와 같은 의식인가 아닌가를 보는 하나의 분별력을 요구하는 사항인 것이다.
이래서 수련은 전일 해야 하고 이렇게 수련을 전일하게 했을때 당신은 비로소 삼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수련을 전일하게 하는 것은 바로 교훈완성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삼계가 이러한 법문들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 자체로 우리에게 교훈완성의 세트로 수련을 전일하게 하는 이러한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근데 삼계가 나쁘다 할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실험중에 뭔가 잘못섞인게 있는데 먼지 모르면 여과지를 가지고 그것을 여과 시키지 않는가? 당신이 머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면 시험을 보는게 아닌가?
바로 이러한 것도 위와 연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지 낮은 속인의 표준이나 기와 관련되는 저층차의 수준으로 아무리 요구하고 종교를 비난하면서 그 대각자까지 욕을 하는 이러한 우를 범해서는 아니된다.
진정한 수련은 바로 심성수련이며 이것은 에너지를 말하는 과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창조성을 넘어서 진정한 법의 체현을 가늠하지 않으며 층차중의 법의 요구에 따르라
층차중의 법의 요구에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어느 성인이 이렇게 말한 것을 어떤 분이 내게 전달 했다.
무엇인가? 자신의 자리에서 그 위치에서 충실하는 것이 가장 진리에 관한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무슨 그 층차에서 아무리 대각자의 법을 아무리 해석해도 왜곡 될 수 밖에 없으며 결국은 그 층차를 제고할 심성수련과 그것을 가속화 시켜줄 한세트의 완정한 수련법을 잘 해나가라 라는 것이다.
즉 당신은 당신을 주재하는 그 법의 한 면에서 열심히 제고하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일에 충실하라 종교나 그러한 것을 미워하지 말고 그러한 것을 미워하는 것도 역시 집착 아닌가?
당신은 그러한 것에 화내면 안되는데 종교를 정화하는 실제적인 것을 하지도 않으면서 당신은 그 현상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가?
당신은 지금 그 따지는게 그 것을 안배한 대각자한테 따지는 것 아닌가?
천상에서 결정할때 사심을 가진 고차신이나 없는 청명한 신이나 모두 한자리에서 서로 결정하는 것으로서 당신은 청명한 그 신에게 까지 모조리 비판을 하는 것이다.
아서라 . 당신의 일에나 집중하고 정화하라
무슨 국부적인 그런 것까지 끌고 가는가 당신은 당신이 과연 무엇을 하는가 알필 요가 있다. 당신은 당신의 층차중에서 수련하지 다른 것들을 가늠하지 말라.
이것이 이글의 요지이다.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