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들끓는 도시
이 디스플레이 모니터에 보여진 아름다운 경관은 판타스틱하기만하다. 모니터에 보여진 상태보다 꿈속에나 볼 수 있는 이상향인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산과 넓은 들판 협곡들 그상이 신비한 돌들이 웅장하게 곳곳에 장식되어있다면 또 한 넓은들판이 어우러저 온통 푸른 숲으로 장식하여 온갓 꽃들과 식물들이 골짜이 협곡마다 피어있으며 일년사계절 봄이요. 그 너머에는 작은 소도시 마을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자연을 해치지 않는 순수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런 이상향... 또는 웅장한 자연속에 작은 소도시에 미려한 최첨단 건축물과 소도시와 소도시를 잊는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그런 모습, 자연과 어울리는 그런 모습도 괜찮다. 온갓 사물은 섬세하게 곱게 빛나는 감촉처럼 보여야 한다.
날때부터 소박한 농촌만 보고 살은 사람이나, 날때부터 콘크리트 벽들만 보고 살았던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사람에 마음은 소박한 것에서 화려한 곳으로 여행하고 싶어하고 화려한 콘크리트속에서 소박한 자연속에 가고싶어한다.
그러나 나의 강조는 판타스틱한 아름다운 자연과 소도시가 어울려진 자연경관이다. 늘 새롭고 늘 환상적인 모습, 늘 지치지도 늘 피곤하지도 늘 싫증나지도 않는 한 평생 편안한 그런 자연과 마을 풍경을 보고 싶다. 그런 곳에 진정 마음은 때때로 무념 무상 고요에 취할수가 있다.
그곳에는 다람쥐와 토끼와 사슴이 있다.
욕망이 들끓는 도시에는 마음에 욕이 있다. 늑대와 여유 뱀 하이에나들이 판을 치고있다. 탐욕과 파괴와 중상묘락과 이간질이 있다. 그리고 양육강식 적자생존 생존에 허덕이는 좀비들이 서성이고 있다.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하나 같이 욕망에 찌들어 있다. 도통 이 욕망의 도시에서 생존할려면 그이상 사자와 호랑이여야 된다. 강한 심장을 가지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다.
그렇다 온갓 욕망의 미로속에 음과 양이 뒤섞기어 魔마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그곳에는 부정적인 에너지도 증폭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곧장 나와 너와 너희에게로 다가온다. 그에너지는 나와 너와 너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된다. 그러나 그대가 무념 무상 무심 강력히 훈련되었다면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것은 수면에 빚췬 달과 태양일뿐이다. 그 상태는 내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지루하지도 초조하지도 않은 늘 평안한 상태 고요에 충만한 기뿜을 느낄때, 아무 의미도 없으리라. 고요가 늘 반복적일때 자신 마음과 타인 마음을 수시로 관찰할수가 있다. 고요가 지속될때 자신이 잊고 있던 문제들도 떠오르리라. 그리고 초월을 향해 보이지 않는 것들도 감각에 잡히리라.
욕망이 들끓는 도시에 늑대 여우 하이에나들은 부와 명애 화려한 물질을 치장하여 가진 것이 최고라고 믿는다. 그러나 도인은 마음은 평화요 지성은 고요요 가슴은 풍요요 그것이 도인이 가진 최고이다. 마음으로부터 자유와 평정이 최고이다.
p.s 그냥 그림인지 떡인지 사진인지 보고 늘 갇던 생각을 떠올려봄.
김경호 |
김경호
- 2010.01.25
- 23:41:42
- (*.61.134.60)
말로 글로 사랑을 강조하고 외처보아도 그것은 매아리일뿐 형상없는 것일뿐입니다,
모든 것을 말로 외쳐봐야 그것 또한 그와 같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수천만번 외처본들 수천만년 외처본들 말일뿐
그것이 의도가 들어가면 이미 물건너갔음을 인식할때입니다.
마음공부에는 여러가지이지만,
고요가 충만할때 자신의 마음도 보이고,
타인의 마음도 보이고,
사랑과 자비심도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위적인 설정이 아닌
바로 자연스러운 결과에서 나오는 특징들입니다.
논바닦에 꾸중물이 가라앉아 청정한 투명한 물을 관찰하면
모든 마음의 근본 구조들이 나열되어 보일 것입니다.
그곳에 자신의 마음도 관할수있고, 타인의 마음도 알려고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물론 내가 그정도 경지는 아니지만,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요.
한번에 온갓 잡념과 온갓 욕망을 잠재울수 없으니 하나하나 헤비메탈 같은 음조를 갈아앉치고 조용히 관망할때 자신의 근본 마음 구조가 나열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이고, 삶에 수행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가슴을 강조하고 마음을 강조해본들
그것은 인위적인 의도일뿐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백날천날 해보아야 그림에 떡일뿐입니다.
김경호
- 2010.01.26
- 00:12:53
- (*.61.134.60)
골든네라 : 저삶의 사랑과 눈물 감동은 초보훈련은 중생 대중입니다.
↑저와 거꾸로 생각하시네요.^^ 뭐 님의 생각이 그것이라면 더이상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중생 그들이 누구보다도 신에 봉사하고 있는 자들인지 모릅니다.
여기 있는 작은 나부터 존중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신을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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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네라 님이 심각한 글귀들을 자주 올리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님의 글을 읽고나서는 모든 구조가 앞뒤가 여러가지도 바뀌고 의미도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의미를 이쪽 저쪽 마음대로 붙이는데 그래도 들어나게되있습니다.
나는 골드네라님의 말과 행동에 옥에티를 발견하는데
-------신을 사랑하는 둥 하는 것은
종교적인 기독교적인 색체 습성과 매우 강합니다.
그런것을 말로 강요하면 않됩니다.
저번에 님께서 올린 글에 기독교 목사 이야기를 올렸지요.
숨길래야 숨길수 없습니다.
골든네라
- 2010.01.26
- 00:35:34
- (*.34.108.116)
골든네라
- 2010.01.26
- 00:56:41
- (*.34.108.116)
님은 님의 그 수많은 글들을 겨우 자기를 옹호하고 변호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고 생각하나요? 님이 그러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나요? 여기에 있는 것 그게 무슨말인가를 들어보고 하나라도 옳다면 승복하면 되는 겁니다. 혹시 무슨 말인지 몰라 무시하는 건 아닙니까? ^^대게 제 딴에 보기에 힘을 가졌다고 보는 뭐하나(권력)에 고정되어 최고의 높은 경지만을 찾는 사람들은 소프트한 것을 못알아 봅니다. 님이 목소리님의 글에 반감을 갖는 것도 그것입니다. 하지만 소프트 한 것이 정말 중요한 자기 자신을 말하고 있다는 거을 알지 못하죠.
그렇지만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러면 그렇게 계속 사십시요. 각자의 겸험이 있는 반면 선택한 자들에겐 책임이 있꼬 응당 감수해야할 절차와 수고가 있으며 공동의 목적이란게 있는 겁니다. 자기를 내려 놓으면 승복하는 것 그것이 가능합니다. 각자의 목적이 다르다면 한 곳에 모일 이유가 없습니다. 님의 영역과 토비아스의 영역은 다릅니다. 님은 토비아스와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토비아스는 목적을 가지고 가르침을 주고 행동하는 자입니다. 님은 그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은 각오가 되어 있나요? 조금만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나의 치부를 들춘다면 기분이 나빠하며 수틀리면 떠나버릴 사람들이 많습니다.
계속 그렇게 사십시요.
나는 님의 이런 글을 통해서 님의 허무주의 슬픔을 보는데 님은 치유받아야 한다고 보는데 님의 그런 말을 듣고 여기서 기뻐하고 좋아하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자들이 님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라고 봅니까...나는 아니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