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성 운동(뉴에이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차 동 엽(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신부)
혹여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조금만 인내심을 갖기 바란다.
신영성 운동과 뉴에이지의 말뜻, 관계, 내용에 대한 설명은 이 글의 후반부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일단은 편의상 이 두 개념을 하나로 엮어서 사용하기로 한다는 점만 밝히고 넘어간다.
신자들과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신자들의 반응에 놀라곤 한다.
이 사실이 그만큼 활자(活字) 문화 곧 책과 담을 쌓고 지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톨릭 계통의 언론매체를 조금만이라도 접할 기회가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깜깜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기가 다반사이다.
그리 경계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필자를 안타깝게 한다. 많은 신자들, 특히 열심히 신앙생활에 매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일수록 “나는 신영성 운동(뉴에이지)하고 전혀 상관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자신들은 그쪽에 기웃거려본 적이 없고 오로지 성당만 열심히 다니면서 기도하고 성서 읽는 재미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관계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 곁에, 아니,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곁에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은 이미 호흡하는 공기처럼 다가와있다.
이 말을 듣고 당장 반기를 들고 나설 이 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하면서 자신과 신영성 운동(뉴에이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노라고 열변을 토할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 이미 우리 곁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우리와 동거(同居)하고 있다.
이를 밝히고자 자신이 신영성 운동(뉴에이지)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느낄지 모르는 독자를 대상으로 다음의 질문을 마련하였다.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이러한 것에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는가?
류시화의 책「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성자가 된 청소부」 등과 같은 서적을 읽은 적이 없는가?
주위 사람들에게 권유받은 적이 없는가?
‘은행나무 침대’ 같은 영화를 관람한 적은 없는가?
데이비드 란즈 등의 클래식 음악이나 태교 음악, 명상 음악 등을 들어본 적은 없는가?
‘타로 점’ 등을 쳐본 적은 없는가? 미확인 비행물체(UFO)에 대한 뉴스 기사를 접하면서 솔깃한 적은 없는가?
위의 질문에 대해 완벽하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 중 아무도 신영성 운동(뉴에이지)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것들이며, 그 저변에 깔려있는 사상이 신영성 운동(뉴에이지)류(類)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문」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유령, 영혼 등 접신주의나 영매사상을 담은 내용이나 E.T. 이후 외계인들과의 접촉, 투쟁을 그리거나 신적 존재로서의 외계인에 대한 묘사 등이 S.F.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쏟아졌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 종족 간의 전투를 벌이거나 신들의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이고, 출판계에서도 전생과 환생을 다룬 책들, 수련을 통한 영적 성장, 초능력 계발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뉴에이지적인 문화 현상들 중에는 종교적인 요소들이 게재돼 있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더욱이 그것이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매체들을 통해 교묘하고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더 세심한 분석과 대처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 (2003년 6월 8일자).
이렇게 버젓이 우리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런 경계심 없이 너무나 친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라디오나 거리의 레코드점에서 울려퍼지는 신영성 운동(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에 대해서,
시내 중심가 극장을 점령하고 있는 각종 신영성 운동(뉴에이지) 관련 영화에 대해서,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부상하고 있는 신영성 운동(뉴에이지) 관계 서적들에 대해서,
안방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보는 신영성 운동(뉴에이지) 계열의 만화와 온 가족이 즐겨 보는 신영성 운동(뉴에이지) 계통의 외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전혀 비판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제시한 범위가 넓은 데 대해서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은 그 이상으로 넓은 분야에 퍼져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영역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최면술, 전생요법에 따른 심리치료, 기(氣)치료, 명상, 단전호흡, 요가 등 건강요법이다.
귀신숭배, 점, 굿, 채널링(텔레파시 등을 통해 다른 의식체, 곧 잡령들과 교신하는 방법) 등 강신술(영매술)이다.
녹색당, 그린피스 등의 생태환경운동이다 (그들은 지구를 거대한 생명체, 곧 신으로 여기고, 인간을 그것의 미소한 일부라고 생각한다). 2003년 초 ‘복제인간의 탄생’ 소식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라엘리안 운동 등 외계인 숭배운동이다 (이들은 하느님이 인간보다 몇 차원 높은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외계인이나 UFO를 숭배한다. 그리고 인간이 외계인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고 외계인을 구세주로 기다린다.).
위에 나열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처럼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은 건강, 유사종교, 정치, 과학 등의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들어와있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 문화와 사회현상을 교묘히 이용하여 현대세계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며, 실제로 신영성 운동가들은 책, 영화, 음악, 상징물, 청소년 문화(만화, 게임 등), 아동 놀이물(포켓몬스터, 텔레토비 인형) 등 대중문화물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신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의 확산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웰빙(Well-being)’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해 젊은 층(20-30대) 사이의 최대 관심사는 ‘웰빙’이었다. 웰빙 열풍은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무섭게 확산되었다.
기업들은 신종 웰빙 상품을 잇달아 출시했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연일 웰빙족의 생활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 ‘행복’이나 ‘안녕’이지만, 최근에는 바쁜 일상과 인스턴트식품에서 벗어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나 문화 코드를 뜻한다.
따라서 웰빙족이란 이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웰빙 문화는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 강조하는 것들과 그대로 일치한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만 확인해 보자.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 ‘몸’을 강조하듯 웰빙족도 몸을 강조한다. 웰빙족은 일주일에 3-4일은 헬스클럽에서 몸만들기에 열중하고, 주말에는 온천욕을 즐기며 아로마 마사지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고 화학조미료를 멀리한다. 자기 몸을 가꾸고 단련해서 아름다움과 행복을 얻어 이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 ‘자기계발’을 강조하듯 웰빙족도 이를 강조한다. 웰빙족은 요가, 명상 등을 통해 삶의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열중한다. 그들은 개인이 가진 잠재능력을 계발하기만 하면 각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셋째, 둘 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이들 양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이웃에 대한 사회적 책임보다는 자신이나 가정의 평안,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호흡하고 먹고 마시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신영성 운동(뉴에이지)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매료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는 왜 난리라도 난 듯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기존의 ‘종교’를 ‘영성’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하는 운동이다.
곧 종래의 ‘종교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롭게 ‘영성의 시대’를 개척하자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종의 신앙적 쿠데타이다.
그 생성 배경과 실체는 다음과 같다. 20세기 인류가 추구하였던 물질주의 유토피아는 결국 인류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갈증만 심화시켰던 것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 영적인 욕구를 기독교를 위시한 기성종교보다 부담을 덜 주는 종교의 기능적 대체물(functional alternative)에서 충족하려 한다고 보았으며, 이런 조짐은 이미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사회학자 노길명 교수에 따르면, ‘신영성 운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는 일본 동경대학의 종교사회학자 시마조노 스스무였다. 그는 20세기 후반부터 소비문화가 발달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통종교들에 대한 대안으로 생겨난 새로운 ‘영성(spirituality)’을 추구하는 운동이나 문화를 ‘신영성 운동’ 또는 ‘신영성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1) 서구 여러 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 일본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정신세계 운동’,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대부분의 ‘기(氣)수련’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이들은 모두 적어도 기존의 종교들이 하는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대체종교(alternative religion)’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 호에서는 이 물음에 대해 답해보기로 하겠다. |
베릭
- 2020.10.01
- 03:34:44
- (*.100.106.169)
7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일기를 담고 있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엄격한 진중생활, 국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 전투 후의 기록, 수군 통제전술, 부하들에 대한 상벌, 가족, 친지, 부하, 내외 요인들의 내왕과 편지글 등도 실려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신변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번민 같은 것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부인을 생각하며 자식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1962년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7책. 필사본.
지은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1592년(선조 25)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쓸 정도로 세심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으므로 본래는 이름이 없었으나, 1795년(정조 19)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친필 초고와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일기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은데, 이것은 초고를 정자로 베껴 판각할 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충무공전서〉에는 실려 있으나 초고에는 없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난중일기〉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는 친필 초고를 기준으로 하면서 〈이충무공전서〉를 참고해야 한다.
엄격한 진중생활, 국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 전투 후의 기록, 수군 통제전술, 부하들에 대한 상벌, 가족, 친지, 부하, 내외 요인들의 내왕과 편지글 등도 실려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일기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신변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번민 같은 것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부인을 생각하며 자식을 걱정한 것도 잘 나타나 있다. 임진왜란의 전체 경과는 전해 듣고서 알았던 범위 내에서만 간단하게 씌어져 있고, 사실을 밝히기 위한 방증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나서서 싸운 날의 전황은 자세히 적었는데 이때도 해석과 평가는 내리지 않았다.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고,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다.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 제6권 〈임진장초 壬辰狀草〉와 함께 간행했고, 부산대학교에서 영인본을 간행했다. 1968년 이은상이 친필 초고를 바탕으로 〈이충무공전서〉를 참고하여 번역한 것을 현암사에서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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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이순李舜臣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공으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해 1576년 봄 무과에 급제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 후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조련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옥포앞바다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한산도대첩에서 적선을 크게 격퇴하여 왜군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1595년 왜군의 간계와 조정의 모함으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으나 곧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고, 13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대첩을 이끌어 왜군의 서해 진출을 저지했다.
마지막 전투였던 11월 노량해전에서 왼쪽 가슴에 탄환을 맞아 전사했다. 진중에서 기록한 <난중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순신(李舜臣)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