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형제단에 의해 보내진 헬렌슈크만의 내면의음성 기법으로 세상에 나온 '기적수업'의 구절들을 보다보면 영적오류라고 느껴질만한 자잘한 부분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것들의 뿌리를 살펴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텍스트에서는 <성령의 해석>에 의하면 사랑 아닌 것들까지 사랑으로 재해석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케네쓰 왑닉 박사님 기적수업 세계관 이론의 첫 시작에서는 '작고 미친 생각'이 우주 탄생의 시작이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이 작고 미친 생각을 사랑의 기준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케네스 왑닉 박사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점을 얘기해드리고 싶습니다. 기적수업이 다른 영성체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기적수업이 이단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공통적인 영성들과도 그 세계관이 조화로워야 하겠지요. 그 조화로움 안에서 순수비이원론이라는 종착지의 독창성이 빛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영적출처에서 밝히고 있는 우주 창조의 비밀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신'이 그 자신을 충분히 사랑으로 경험하기 위해 우주와 영혼들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문헌들에서 이를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적수업이 진정한 성령의 메시지라면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사만물을 작고 미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신의 사랑에서 창조된 것들이라고 말해야하지 않았을까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사만물이 작고 미친 생각의 산물일진데 여기에서 어떻게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작고 미친 생각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으신가요? 아니면, 사랑에서 창조된 것들 안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으신가요? 작고 미친 생각의 산물에서 사랑을 보고 경험해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이미 성령의 경지이신 겁니다. 보통 정신이라면 작고 미친 생각의 산물에서 어떻게 사랑을 보고 경험할 수 있겠어요? ^^
저는 기적수업에서 말하는 성령을 충분히 교감하고 체득할 시, 이 작고 미친 생각이라는 텍스트의 기본 뿌리마저 사랑에서 재해석하게 된다고 봅니다. 사랑을 보고 경험하는 다양함이 있는 것일 뿐이죠. 순수비이원론이라는 가장 순수한 사랑에서부터 비이원론, 반이원론, 이원론이라는 사랑의 빛이 낮은 시각까지요.
케네쓰 왑닉박사님 라인과 개리레너드 라인에서는 순수비이원론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는 우주창조이전의 '신'만이 있던 상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낮은 의식에서 높은 의식으로 꼭대기로 의식상승을 한다면 우주창조 이전의 '신'만이 있는 상태와 합류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요?
진정한 성령은, 진정한 성령의 메시지는 우주와 영혼들이라는 분리의 환영 속에서도 사랑을 건져내는 능력일 것입니다. 신만이 있는 상태에서는 경험해볼 수 없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신비로움을요. 기존 기적수업 학생들 대로라면 신보다는 성령이 더 권능있고 아름다운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를 모르는 신보다는 분리와 비분리를 동시에 아는 성령이 신보다 더 대단하다고 하는 셈이 되니까요. 기존 기적수업 학생들은 신보다 사랑을 더 많이 가져다주는 성령을 섬겨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신의 마음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