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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개인 글을 보다가 재미있는 글이 있어 여기에 적어 봅니다.
순관과 역관에 대해서 글 적은 바 있습니다. 역관이라는 것은 지금의 나를 통해서 돌아본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의 차별적 모습들이 대일여래의 만다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차별적 모습은 우리 안에 다 있거나 다른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알게 마련인데 그 차별적 모습에 수순하여 역으로 들어가다보면 만다라 중앙의 대일여래와 만나게 됩니다.
그 중앙의 대일여래가 우리 자성이며 근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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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염’이란 사물을 탐하고 그것에 집착하여 물드는 것 이다. 애염명왕은 그런 애욕과 집착을 그대로 깨달음의 마음으로 하는 그런 명왕이다.
애염왕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지닌 애욕에 대한 탐심(貪心)을 금강살타의 정보리심(淨菩提心)의 경지로 높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번뇌가 곧 보리이고 인간의 번뇌도 불타의 깨달음의 지혜와 같음을 의미한다. 금강살타의 화현(化現)이며 17존이 권속(眷屬)인데 일광(日光)을 광배(光背)로 한 사비상(四臂像) 또는 육비상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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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염명왕의 애염은 청정함을 근본으로 한 애욕입니다. 애욕과 청정함은 어울리지 않게 보이나 이는 청정함이 애욕이라는 중생의 에너지에 순응하여 나온 것일 뿐입니다.
이를 어느 경전에서는 수염지(隨染智)라 하더군요. 한자어에 그 뜻이 다 나왔습니다. 오염됨(染)에 따르고 수순하여(隨) 거기에 맞게 응하는 지혜인 것이지요.
애염명왕이 청정함이 애욕으로 나온 존재라면
동시에 애욕을 지닌 중생이 청정함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순관과 역관에 대해서 글 적은 바 있습니다. 역관이라는 것은 지금의 나를 통해서 돌아본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의 차별적 모습들이 대일여래의 만다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차별적 모습은 우리 안에 다 있거나 다른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알게 마련인데 그 차별적 모습에 수순하여 역으로 들어가다보면 만다라 중앙의 대일여래와 만나게 됩니다.
그 중앙의 대일여래가 우리 자성이며 근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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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염’이란 사물을 탐하고 그것에 집착하여 물드는 것 이다. 애염명왕은 그런 애욕과 집착을 그대로 깨달음의 마음으로 하는 그런 명왕이다.
애염왕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지닌 애욕에 대한 탐심(貪心)을 금강살타의 정보리심(淨菩提心)의 경지로 높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번뇌가 곧 보리이고 인간의 번뇌도 불타의 깨달음의 지혜와 같음을 의미한다. 금강살타의 화현(化現)이며 17존이 권속(眷屬)인데 일광(日光)을 광배(光背)로 한 사비상(四臂像) 또는 육비상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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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염명왕의 애염은 청정함을 근본으로 한 애욕입니다. 애욕과 청정함은 어울리지 않게 보이나 이는 청정함이 애욕이라는 중생의 에너지에 순응하여 나온 것일 뿐입니다.
이를 어느 경전에서는 수염지(隨染智)라 하더군요. 한자어에 그 뜻이 다 나왔습니다. 오염됨(染)에 따르고 수순하여(隨) 거기에 맞게 응하는 지혜인 것이지요.
애염명왕이 청정함이 애욕으로 나온 존재라면
동시에 애욕을 지닌 중생이 청정함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