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아침의 태양> 까페에 한회원님이 올린 글에 대한 답변인데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올려봅니다. 도움이 되시길 빕니다.
정말 알고 싶습니다..답변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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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 조회수 : 115
- 06.03.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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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불교,기독교같은 전통적인 가르침과 상당한 유사점도 있으나 정말로 믿기 어려울정도로 다른 점들도 있습니다..
저는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구에 사는 수행자들은 깨달음을 목표로 하여 수행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본성(불성, 참나,진여등등으로 표현되는 생각이전,비어있음) 이 수행정진으로 드러나고 에고라는 자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우주와의 합일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일반수행자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업력으로 인해 윤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자들은 이 지구상에 극히 희귀했으므로 깨달음 후 생사윤회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순간에도 다른 종교나 수행법은 잘 모르겠지만 불교수행자들은 간화선수행이나 염불수행 ..위빠사나수행등으로 인욕과 정진으로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그 많은 수행자들중에서 소수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늘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노력해야 하며 노력하는 가운데서도 소수만이 이룬다는 사실은...
이러한 전통적인 수행법은 요즈음 등장하는 제3수행법이라고 하는 수행법과 많은 부분은 같지만 차이나는 부분도 상당히 있는 것을 느낍니다. 하물며 "이 까페"에서와 같은 가르침은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받아들이기에서는 선뜻 이해가 잘 안가고 놀라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더불어 같이 잘 살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릴테니 깊이있고 자세한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1.불교의 깨달음 후 드러나는 "근원의식, 불성,진여,비어있음"이라고 하는 생각이전의 자리, 이것은 여기서 말하는 창조의식과 같은 것입니까? 이 지구별을 포함한 우주를 창조한 의식인가요? 아니면 우주를 창조한 의식도 하나의 생각을 표현한 개의식인가요? 불교의 우주와의 합일의식인 그토록 불교수행자들이 원하는 이 근원의식은 이 까페에서 말하는 어는 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할 수있습니까?
2.절에 가서 살아보기도 하고 그랬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불교수행자가 하는 간화선수행자들을 비롯한 정도를 걷는 수행자들은 개인적인 사심이 별로 없음을 느낍니다..이런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도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자비한 마음,, 따뜻하고 평등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수행자들도 없는 것을 보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때가 많습니다...
요즈음 많이 등장하는 3수행법을 보면 예를 들어 아봐타같은 경우 마스터들이 나름대로 사랑이 있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경제적인 능력이 어느 정도 있을 경우 유대가 이루어 질 수 있음에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불교수행자들에 비해선 순수하고 사심없는 면이 많이 부족한 걸 봅니다....
전통불교수행이나 요사이 등장해오는 3수행법과 정말 기존엔 알려지지 않았던 이 까페의 경우와 같은 가르침의
같은 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불교의 근원의식이나 3수행이나 우주창조의식이나 같은것입니까 아니면 서로 다른 것입니까?
3. 생사윤회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선 생사윤회를 벗어난 깨달은 자들은
@우주와의 합일상태로 있거나 @이전에 성불하신 높은 차원의 세계로 가서 공부를 하시거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깨달음을 돕기 위해...보살행을 하러 의무적이고 어쩔수 없이가 아닌 자신이 선택하여 온다고 합니다..
여기에 운영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또한 불교의 깨달음의 의미와 여기에서의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는 개념이 있다면 동일한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 마저도 다른 관점의 이야기이나요?
마지막으로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저는 오랜 세월의 수행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님께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님의 수행법은 어떠한 것입니까?
진정 인생의 전환점의 될 수있는 질문이니 깊이있고 자세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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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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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아침의 태양
- 06.03.05 13:39
**님의 진지한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본래 이곳에서는 종교와 관련한 부분은 다루지 않아왔지만, 이 질문은 불교를 공부하시는 많은 분들, "깨달음과 해탈"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이땅의 수많은 수행자분들에게 필요한 주제라 생각되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1.불교의 깨달음 후 드러나는 "근원의식, 불성,진여,비어있음"이라고 하는 생각이전의 자리, 이것은 여기서 말하는 창조의식과 같은 것입니까? 이 지구별을 포함한 우주를 창조한 의식인가요? 아니면 우주를 창조한 의식도 하나의 생각을 표현한 개의식인가요? 불교의 우주와의 합일의식인 그토록 불교수행자들이 원하는 이 근원의식은 이 까페에서 말하는 어는 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할 수있습니까?
☞ 깨달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교 이전에도,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언제나 해 왔던 질문입니다.
그동안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영적장막은 너무나도 두텁고 강했기 때문에, 그동안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홀로 있음을 통해, 인간이 만든 개념이나 진실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한 진실, 진정한 우주의식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붓다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두 홀로 간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만든 교리나 가르침에 구속되지 않은 사람들이며,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만물에 내재하고 있는 본성이자 神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은 이러한 과정은 언어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때문에 본래 어떤 수행법이나 교리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진리는 인간이 만든 개념이나 이론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붓다는 인간의 여러가지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통찰했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람입니다. 붓다는 인간의 마음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의 연약함과 교묘함을 직시하고, 또한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의 강함을 가르친 사람입니다.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불교의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보고, 그것을 올바르게 수정해가며, 神理의 法과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인간은 모두 붓다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의 수행자만이 하고 있는 일은 아닙니다.
때문에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말로 깨달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불교의 가르침과 이론에서 나올 필요가 있으며, 그냥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2500년전에 고타마 붓다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고타마 붓다가 성취한 의식은 위대한 깨달음의 의식으로, 지구상에서 우주의 창조의식을 훌륭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붓다는 창조의식을 法과 깨달음의 측면에서 실증하였습니다. 그것이 매우 위대하며 본질적인 에센스이긴 하지만, 그것이 창조의식의 전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창조의식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붓다처럼, 그와 똑같은 길을 가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길이 있으며, 창조의식이 자신을 통해 표현하려는 측면이 있습니다.
붓다가 성취한 의식은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다운 眞理의 법등과 광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자신만의 神性의식을 성취하고, 그것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좀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 근원의식" 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리로 돌아가 합일되고자 하며, 그것을 완성으로 봅니다. 하지만 근원의식만이 창조의식의 전부는 아닙니다.
창조의식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고, 지구를 창조하고, 또 인간을 창조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홀로 있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우주의식을 열어 정말로 창조의식과 하나가 되었다면, 그는 그가 세상에서 완성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가 근원과 정말로 하나가 되었다면, 반드시 다시 3차원의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3차원 세상에서 활동하고 체험하고 싶은 것이 근원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주를 창조한 목적이고,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지구상에서는 근원의 자신을 망각해 버리고, 다른 세력과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집착과 욕망에 빠져, 괴로움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초기에는 욕망과 집착을 끊고, 본래의 자신을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이것이 불교의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다시 자신의 근원을 찾았다면, 이제는 생생하게 즐겁게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고 창조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근원을 지구상에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지색 이라는 말은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상계와 원인계가 둘이 아닙니다.
인간의 참된 의미는 다양한 차원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근원과도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 삼차원의 세계와도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3차원(색계)에 너무 매몰되어 근원(무색계)을 소흘히 한다고 느낀다면, 근원으로 연결하는 것에 힘써야 하겠지요(명상이나 수련, 지관). 하지만 반대로 근원에만 매몰되어, 3차원 세계를 소흘히 한다고 느낀다면, 3차원 세계에서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는 것(행동,실천,체험,인간관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근원에 연결이 희박한 서양인의 경우, 불교가 많은 도움이 되며 많은 평안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동양인의 경우 불교가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마음, 마음, 마음만 외치더라도 진정한 기쁨을 찾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개척하고, 현실을 즐기며 만들어가는 것이 또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절에 가서 살아보기도 하고 그랬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불교수행자가 하는 간화선수행자들을 비롯한 정도를 걷는 수행자들은 개인적인 사심이 별로 없음을 느낍니다..이런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도 일어납니다...하지만 그들에게서 자비한 마음,, 따뜻하고 평등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수행자들도 없는 것을 보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때가 많습니다...
요즈음 많이 등장하는 3수행법을 보면 예를 들어 아봐타같은 경우 마스터들이 나름대로 사랑이 있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경제적인 능력이 어느 정도 있을 경우 유대가 이루어 질 수 있음에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불교수행자들에 비해선 순수하고 사심없는 면이 많이 부족한 걸 봅니다....
전통불교수행이나 요사이 등장해오는 3수행법과 정말 기존엔 알려지지 않았던 이 까페의 경우와 같은 가르침의 같은 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불교의 근원의식이나 3수행이나 우주창조의식이나 같은것입니까아니면 서로 다른 것입니까?
☞ 마찬가지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인간적인 활동이 필요합니다. 명상수련이나 참선보다도 안간관계의 배움을 통해서 더 큰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시기에 수행자분들은 세상에서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체험하며 그안에서 역동적으로 깨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세상에 나오는 시기입니다.
순수하고 사심이 없는 것은 매우 소중한 자질입니다. 그러한 것을 닦기 위해 많은 수련을 한 것도 헛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또한 소중한 것은 자신이 가진 창조력, 영감을 발휘하여 삶을 정말로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이 즐겁고, 날마다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기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입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창조의식과 일체가 된 사람은 경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필요에 따라 필요한 것을 끌어오고, 필요에 따라 사용합니다. 물질이나 경제는 그 자체로서는 중립적인 것이고,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질을 마스터하는 것은 의식성장의 큰 부분입니다.
창조의식에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 근원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력이라는 측면이 함께 있습니다. 창조의식에는 물질과 의식이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의식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생사윤회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불교에선 생사윤회를 벗어난 깨달은 자들은 @우주와의 합일상태로 있거나 @이전에 성불하신 높은 차원의 세계로 가서 공부를 하시거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깨달음을 돕기 위해...보살행을 하러 의무적이고 어쩔수 없이가 아닌 자신이 선택하여 온다고 합니다..
여기에 운영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그리고 또한 불교의 깨달음의 의미와 여기에서의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는 개념이 있다면 동일한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까...아니면 이 마저도 다른 관점의 이야기이나요?
마지막으로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저는 오랜 세월의 수행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님께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그리고 님의 수행법은 어떠한 것입니까?
☞ 생사윤회를 벗어나거나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도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 괴로운 세상을 벗어나고 편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단지 도피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교의 이론이나 이야기는 많은 부분 후대의 인간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반드시 형이하학적인 차원으로 내려와 실증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허한 관념이 되고, 여러가지 상만을 만들 뿐입니다. 그 예로 윤회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진정한 윤회의 현상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아침의 태양에서는 무엇인가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나이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위해서, 다만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열심히 순간순간을 깨어있으며 살아가는 것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복을 찾기 위해 수행을 쌓더라도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과 자유는 지금 이 순간에 있고, 단지 자신이 그것을 막고 있을 뿐입니다. 차라리 지금 이순간 나는 행복하고 자유롭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진리에 더 가깝습니다.
진정한 수행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순간순간 깨어 있으며, 창조력을 표현하기 위한 끈임없는 노력을 말합니다. 순간 순간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현상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나의 마음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나를 깨우기 위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지는 수련법이라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순간순간 열심히 사는 것, 항상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모든 것을 나의 거울로서 바라보는 것, 모든 사람과 현상을 나의 스승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위해서 레이키 힐링, 호흡수련법, 명상과 에너지워크, 오라소마 등을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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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근원과 정말로 하나가 되었다면, 반드시 다시 3차원의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3차원 세상에서 활동하고 체험하고 싶은 것이 근원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주를 창조한 목적이고,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근원은 삶을 원하고 나는 지쳐서 근원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하지만 끝내 해탈한다고 해도 다시 태어날것을 알고
완전한 소멸의 방법을 찾아봅니다
정말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완전한 소멸을 말입니다
신선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또 다시 윤회때문에 시간의 낭비를 막고 소멸의 방법을 알아내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런사실도 모른체
소멸을 믿고 해탈을해버린다면 또 우주에 태어나 몇겁이나 되는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러니까 이번에야 말로
절대로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근원 존재 우주 어떤곳에도 존재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