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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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페이지 정리 복습차 올립니다.
EQ 감수성 개발이 필요하다.
동물들에게도 미묘하게 상대의 감정을 감응하고 그에 상응하여 반응을 보인다.
하믈며 지구 영장물이라는 인간 또한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정에 더불어 감응이 필요하다. 인류는 DNA유전적 육체적 감성적 정신적 영적으로 발달을 가속화하고 있다. 더블어 HQ인간적 품성과 NQ숭고한 품성의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동물도 HQ16%이상이면 다음세상에 인간을 태어날수가 있다고 한다.
물론 돌고래나 특정 고래들이 아이큐가 190정도가 된다는 말이 있다 지능적으로도 높고 성향도 온순하여 영적인 부분에도 아스트랄비행이 종종 가능하고 고대 원주민들의 석상에도 돌고래상이 그려져있다. 꼭 동물들이 인간으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체와 의식에 따라 상승을 유발한다.
-----------------------남의 말에 수궁함과 판단 차이점
"님의 글에 몇몇 내용은 배울점이 있군요. 나머지는 모르겠습니다." 했을때
수궁을 하더라도 자신이 공감하고 아는데까지만을 수궁하고 받아드린다는 점이 중요하다. 모르는 부분은 자신이 억지로 판단하고 해결하려는 행위는 자칫 분수에 맞지 않다. 모르겠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여러각도로 볼수가 있다.
그것은 나의 입장과 별개인 경우, 나 지식에 없는 경우, 나의 성향적 배경과 다른 경우
글쓴이의 총체적인 밑 배경이 깔려있으므로 함부로 판단을 할수 없는 경우를 들어 판단을 유보하여 모르겠다로 끝낼수가 있다. 이는 그 글쓴이의 성향 본질은 성격- 유전- 환경- 사상- 생각- 입장- 따라 다르기때문이다. 다른 형질을 가진이가 그것을 집중적으로 이슈화하거나 문제를 불거지게 하거나 하는 차원이 아님으로 더이상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필요성이 없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남의 체험중 [감정 생각]이 나의 관점에서 그것을 비판하거나 문제를 다룰만한 주제가 아닌 것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것은 20대가 격는 감정이나 소용돌이 개인 인생사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끼어들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대 기준에서
20대 피도 않마른 젊은 남여가 설익은 사랑 싸움과 헤어짐으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 한다. 우리가 본 육안의 그아이들은 성숙한 사랑이냐 덜익은 사랑이냐에 따라 숭고한 사랑이냐 이기적인 사랑이냐에따라. 분별하여 달리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것에 대해서 무어라고 그 젊은이들에게 다구치거나 야단을 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은 적당히 건강한 삶의 체험을 복습하는 차원에 필요한 것이다. 때가 되면 그들도 다양한 생각과 경험과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지나치면 젊은 20대 갓초반 아이들이 사랑때문에 상처받아 자살신드롬을 연극하며 손에 동맥 칼을 끄어 감정에 분에 넘처 자살를 가장한 상태로 가고 점점 더심하면 진짜 자살로 가게 된다. 실째로 사회생활에서 주위 인물들을 많이 봐왔다.
30대 눈에는 닭쌀과 아직 어린 친구들의 삶의 경험 삶의 체험으로써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그들이 30대가 되거나 40대가 될때 자신의 과거 행위를 뒤돌아볼때...참으로 그때 웃꼍구나 하고 한숨을 내쉴수도 있고 아 ! 쫏팔리고 어리석었구나 또는 그때 참 재잇었지 하는 웃어넘길수 있는 추억이 될수도 생각도 들 것이다.
물론 이것이 30대 성숙한 남녀간에 결혼을 통해서 아이들을 낳고 생활하면서 이혼하는 사례 또한 인간사의 감정일뿐이다. 그런 것에 대해 이혼이니 개속사니 하는 판단은 우리가 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삶과 자유이기때문이다. 인생이란 희노애락 번뇌가 사로잡히는 것이다.
즐거우면 즐거운 것이고, 괴롭은 괴로운 것이다.
곳 그것은 마음 작용이다.
인생이란 전체 일생을 통털어 놓아놓고 보아야 한다.
그 인생에 대한 회고록은 말년에 늙어 죽을때 다시 인생 뒤편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그렇게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환생한 이유중 일부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감수성 개발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 못지 않게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도사 처럼 꽤뚫어 보라는 말이 아니다.
현대인은 타인의 마음은 고사하고 자신의 마음 마저도 잘 모른다.
첫째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여 알아듣는 것도 중요 하다.
자신의 마음만 알아차릴때 왜곡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명확하지않다.
100%에 10%라도 알아차리는 것은 덕이 된다.
단지 1%라도 좋다.
그렇치 않고 어떻게 영성을 논하면서 더 높은 하늘과 소통할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여자 마음이닌까
너도 여자 마음이 되라
나는 남자이닌까
너도 남자가 되어라
여자보고 남자가 되어라
남자보고 여자가 되어라
불안전한 사람이 나는 20이닌까
불안전한 40대인 너도 20대 처럼 행동해라.
이러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화음을 내야 하는 것이다.
내성격은 나쁘진 않치만, 아기자기한 닭쌀스타일을 심봉하니,
너도 나처럼 성격은 나쁘진 않치만, 아기자기한 닭쌀스타일을 심봉하라
쌩뚱맞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치 않을 경우 자신 마음만을 가지고 독단과 아집에 빠질수가 있다.
왜냐~
자신 마음밖에 볼수 없고 상대들의 감정을 감응하지 못하는 맹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만 집착한 나머지 근시안 난시안을 겯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항시 의문만을 낳고 의문을 낳으며 예민하여 예민하면 문자에 헤메이며
문자에 헤메이면 집착이 발생하며 집착이 발생하면 괴롭게 되고 괴롭롭게 되면
강박증에 사로잡히고 강박증에 사라집히면 매사 글자을 보게되고 상처를 받게 된다.
매사 상처를 받게 되면 친구도 떠날 것입니다. 친구도 떠나면 당신의 성향에 따라
슬프기도하고 번뇌가 뇌리속에 사로잡히게 된다.
번뇌에 집착하면 오르던 길도 도중 하차한다.
관민반응 병증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휘귀한 것을 보되 더블어 사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 하다.
현실만이 아닌 자신의 상위 아스틀랄체가 상상이 만들어낸 망상도 있기때문이다.
보는 것 또 한 구별판단을 낳고 위아래 레벨에 집착을 할때 남과 나를 저울질 하고
망상적인 표상을 만들어 크고 작음에 집착하여 유리와 크리스탈 재질을 간음질하여
스스로 속일수가 있다.
中道思想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보아주시길 바란다.
첫째 나를 알고!
둘째 남을 안다!<표준법 보편적으로만 알면된다. 도사처럼 알라고 하는게 아니다.>
이와같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면 뜻을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면 의문이 해소된다.
또 그와같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면 뜻을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면 의문이 해소된다.
그렇듯
타인의 글귀를 이해하면 뜻을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면 의문이 속시원히 해소된다.
환원과 통찰이 필요할때이다.
이와같이
一하나를 알면 十열 십을 알고 열을 알면 일 百백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렇듯
그러하면 분별이 생기고 마음에 심술이 생기지않아 불협화음이 발생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또 한 사이비를 분별하려면 많은 훈련과 영적 훈련이 필요하다.^^
p.s
정리좀 했음
김경호. 2009:03:29
EQ 감수성 개발이 필요하다.
동물들에게도 미묘하게 상대의 감정을 감응하고 그에 상응하여 반응을 보인다.
하믈며 지구 영장물이라는 인간 또한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정에 더불어 감응이 필요하다. 인류는 DNA유전적 육체적 감성적 정신적 영적으로 발달을 가속화하고 있다. 더블어 HQ인간적 품성과 NQ숭고한 품성의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동물도 HQ16%이상이면 다음세상에 인간을 태어날수가 있다고 한다.
물론 돌고래나 특정 고래들이 아이큐가 190정도가 된다는 말이 있다 지능적으로도 높고 성향도 온순하여 영적인 부분에도 아스트랄비행이 종종 가능하고 고대 원주민들의 석상에도 돌고래상이 그려져있다. 꼭 동물들이 인간으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체와 의식에 따라 상승을 유발한다.
-----------------------남의 말에 수궁함과 판단 차이점
"님의 글에 몇몇 내용은 배울점이 있군요. 나머지는 모르겠습니다." 했을때
수궁을 하더라도 자신이 공감하고 아는데까지만을 수궁하고 받아드린다는 점이 중요하다. 모르는 부분은 자신이 억지로 판단하고 해결하려는 행위는 자칫 분수에 맞지 않다. 모르겠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여러각도로 볼수가 있다.
그것은 나의 입장과 별개인 경우, 나 지식에 없는 경우, 나의 성향적 배경과 다른 경우
글쓴이의 총체적인 밑 배경이 깔려있으므로 함부로 판단을 할수 없는 경우를 들어 판단을 유보하여 모르겠다로 끝낼수가 있다. 이는 그 글쓴이의 성향 본질은 성격- 유전- 환경- 사상- 생각- 입장- 따라 다르기때문이다. 다른 형질을 가진이가 그것을 집중적으로 이슈화하거나 문제를 불거지게 하거나 하는 차원이 아님으로 더이상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필요성이 없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남의 체험중 [감정 생각]이 나의 관점에서 그것을 비판하거나 문제를 다룰만한 주제가 아닌 것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것은 20대가 격는 감정이나 소용돌이 개인 인생사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끼어들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대 기준에서
20대 피도 않마른 젊은 남여가 설익은 사랑 싸움과 헤어짐으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 한다. 우리가 본 육안의 그아이들은 성숙한 사랑이냐 덜익은 사랑이냐에 따라 숭고한 사랑이냐 이기적인 사랑이냐에따라. 분별하여 달리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것에 대해서 무어라고 그 젊은이들에게 다구치거나 야단을 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은 적당히 건강한 삶의 체험을 복습하는 차원에 필요한 것이다. 때가 되면 그들도 다양한 생각과 경험과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지나치면 젊은 20대 갓초반 아이들이 사랑때문에 상처받아 자살신드롬을 연극하며 손에 동맥 칼을 끄어 감정에 분에 넘처 자살를 가장한 상태로 가고 점점 더심하면 진짜 자살로 가게 된다. 실째로 사회생활에서 주위 인물들을 많이 봐왔다.
30대 눈에는 닭쌀과 아직 어린 친구들의 삶의 경험 삶의 체험으로써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그들이 30대가 되거나 40대가 될때 자신의 과거 행위를 뒤돌아볼때...참으로 그때 웃꼍구나 하고 한숨을 내쉴수도 있고 아 ! 쫏팔리고 어리석었구나 또는 그때 참 재잇었지 하는 웃어넘길수 있는 추억이 될수도 생각도 들 것이다.
물론 이것이 30대 성숙한 남녀간에 결혼을 통해서 아이들을 낳고 생활하면서 이혼하는 사례 또한 인간사의 감정일뿐이다. 그런 것에 대해 이혼이니 개속사니 하는 판단은 우리가 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삶과 자유이기때문이다. 인생이란 희노애락 번뇌가 사로잡히는 것이다.
즐거우면 즐거운 것이고, 괴롭은 괴로운 것이다.
곳 그것은 마음 작용이다.
인생이란 전체 일생을 통털어 놓아놓고 보아야 한다.
그 인생에 대한 회고록은 말년에 늙어 죽을때 다시 인생 뒤편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그렇게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환생한 이유중 일부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감수성 개발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 못지 않게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도사 처럼 꽤뚫어 보라는 말이 아니다.
현대인은 타인의 마음은 고사하고 자신의 마음 마저도 잘 모른다.
첫째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여 알아듣는 것도 중요 하다.
자신의 마음만 알아차릴때 왜곡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명확하지않다.
100%에 10%라도 알아차리는 것은 덕이 된다.
단지 1%라도 좋다.
그렇치 않고 어떻게 영성을 논하면서 더 높은 하늘과 소통할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여자 마음이닌까
너도 여자 마음이 되라
나는 남자이닌까
너도 남자가 되어라
여자보고 남자가 되어라
남자보고 여자가 되어라
불안전한 사람이 나는 20이닌까
불안전한 40대인 너도 20대 처럼 행동해라.
이러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화음을 내야 하는 것이다.
내성격은 나쁘진 않치만, 아기자기한 닭쌀스타일을 심봉하니,
너도 나처럼 성격은 나쁘진 않치만, 아기자기한 닭쌀스타일을 심봉하라
쌩뚱맞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치 않을 경우 자신 마음만을 가지고 독단과 아집에 빠질수가 있다.
왜냐~
자신 마음밖에 볼수 없고 상대들의 감정을 감응하지 못하는 맹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만 집착한 나머지 근시안 난시안을 겯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항시 의문만을 낳고 의문을 낳으며 예민하여 예민하면 문자에 헤메이며
문자에 헤메이면 집착이 발생하며 집착이 발생하면 괴롭게 되고 괴롭롭게 되면
강박증에 사로잡히고 강박증에 사라집히면 매사 글자을 보게되고 상처를 받게 된다.
매사 상처를 받게 되면 친구도 떠날 것입니다. 친구도 떠나면 당신의 성향에 따라
슬프기도하고 번뇌가 뇌리속에 사로잡히게 된다.
번뇌에 집착하면 오르던 길도 도중 하차한다.
관민반응 병증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휘귀한 것을 보되 더블어 사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 하다.
현실만이 아닌 자신의 상위 아스틀랄체가 상상이 만들어낸 망상도 있기때문이다.
보는 것 또 한 구별판단을 낳고 위아래 레벨에 집착을 할때 남과 나를 저울질 하고
망상적인 표상을 만들어 크고 작음에 집착하여 유리와 크리스탈 재질을 간음질하여
스스로 속일수가 있다.
中道思想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보아주시길 바란다.
첫째 나를 알고!
둘째 남을 안다!<표준법 보편적으로만 알면된다. 도사처럼 알라고 하는게 아니다.>
이와같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면 뜻을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면 의문이 해소된다.
또 그와같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면 뜻을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면 의문이 해소된다.
그렇듯
타인의 글귀를 이해하면 뜻을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면 의문이 속시원히 해소된다.
환원과 통찰이 필요할때이다.
이와같이
一하나를 알면 十열 십을 알고 열을 알면 일 百백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렇듯
그러하면 분별이 생기고 마음에 심술이 생기지않아 불협화음이 발생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또 한 사이비를 분별하려면 많은 훈련과 영적 훈련이 필요하다.^^
p.s
정리좀 했음
김경호. 200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