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 모욕
"진실을 말하면 명예훼손이 아니다."
"사이버 모욕죄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
모두 잘못된 말이다.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정리해본다.
진실만을 말하면 명예훼손이 아니다?명예훼손은 말, 글, 언론, 출판물, 인터넷 등을 통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도록 타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을 적시하면 성립하는 죄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실'은 진실과 거짓 모두 포함한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또는 인터넷 카페 등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나 글을 사용했고 그것이 진실이었다고 치자.
"A는 부정한 행동을 해서 이혼을 당했고 현재 혼자 살고 있다."
"B는 알고 보니 동성연애자이다. 그 사실을 숨겨왔다."
경우에 따라 이런 말은 명예훼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 이혼과 동성연애는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명예훼손은 진실과 거짓 모두 대상이 된다. 차이가 있다면 허위사실이 더 무겁게 처벌받을 뿐이다. 참고로 명예훼손은 법률용어로 추상적 위험범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실제로 명예가 훼손되지 않았더라도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되면 성립하는 범죄다.
다만 명예훼손적인 표현이라도 진실한 사실로써 공공의 이익에 관한 내용일 경우 처벌을 하지 않는다. 판례는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도 해석한다.
어떤 이들은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상의 모욕은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사이버 상의 모욕행위는 수도 없이 처벌받고 있다. 다만 사이버 상의 모욕행위를 가중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모욕죄와 똑같은 법령(형법)을 적용하여 처벌할 뿐이다. 다시 말해 명예훼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별해서 각기 다른 법률을 적용하지만, 모욕은 둘을 구분하지 않고 형법으로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사이버 모욕은 일반 모욕보다 전파성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처벌 수위가 높은 경향이 있다.
피해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명예훼손(또는 모욕)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의 이름을 명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 않거나 이니셜만 사용한 경우라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하여 볼 때 그 표시가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면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할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A 경찰서에서 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돈을 밝힌다"고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면 명예훼손이 되고도 남는다.
명예훼손은 벌금 몇 만원 내면 끝이다?명예훼손을 저지르면 주로 벌금형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인격살인'이라 불릴 정도로 죄질이 나쁠 경우 징역형을 받기도 한다. 그걸로 끝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러한 불법행위는 형사처벌과 동시에 민사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민사소송까지 제기한다면 벌금 액수보다 훨씬 큰 금액을 피해자에게 위자료로 지급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개인이 아닌 단체는 명예훼손 대상이 아니다?명예에 관한 죄는 사람의 명예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원칙으로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성립하지 않는다. 비난의 내용이 특정 개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기 어렵고, 개인에게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비난 내용이 해당 집단에 속한 특정 개개인에게까지 미쳐 그 개개인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까지 이른 경우"라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인정된다. 구성원 개인의 사회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소규모 단체나 집단의 명예는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서울 시민들은 모두들 이기주의자이다"라는 표현은 특정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삼기 어렵다. 이와 달리 "B 구청 건축과 직원들은 썩었다"라고 표현했다면 그 구성원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도 명예훼손의 대상일까. 판례는 국가기관 또는 정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공직자 개인을 매우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판례, 법령 등과 자료는 2017년 1월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법이 바뀌거나 판례가 변경되면 책을 증쇄할 때마다 곧바로 새로운 사항을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