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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온전하나 몸이 말을 듣지않는 시인은
편마비로 한쪽팔과 다리를 쓰지 못했다.
처음에는 남자요양보호사에게 몸을 맡겼으나
어느샌가 여자요양보호사가 와도 아무렇지 않다고했다.
나는 시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혼의 이야기에서부터 바르게 사는 이야기까지 광범위하게 두루두루.
시인은 어눌하지만 또렸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였고
나도 마음속의 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에 내었다.
시인은 두번째 시집을 선물하였다.
부끄럽지만 꽤 괜찮은 것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점심간이 지날무렵 지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귀저귀 가는데 와서 보라는 지시였다.
무심코 따라들어간 병실은 시인이 누워있었고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하고싶었으나 끝내 하지못했다.
짓굿게도 지도요양보호사는 일회용장갑을 내밀며 거들라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시인의 몸을 옆으로 돌려새우면서 순간적으로
왈칵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는 말에는
이러한 상황도 포함되었을거란 생각이 들자 목이 메여왔다.
귀저귀를 다 갈고 다시 휠체어에 태운 시인을
휴게실까지 모시고 나오기까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과 육신의 분리에서 오는 이질적인 모습이
혼돈의 교차로 다가왔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드시죠?
라고 시인의 마음을 엿보았는데 시인은 의외의 말을 하였다.
아니 일요일날 성당에 나가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힘들어...
행함이 없는 이론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요양보호사 면허를 따려고 하는 것도 행을 위해서입니다.
가장 낮은곳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임종을 지켜보는 일이 행의 일환이라는 생각에서
요즈음 실습을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끝내는 죽습니다.
행이 없는 이론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것입니다.
물론 행 이전에 앎이 우선되어야 하겠으나 여기에 오시는 분들은 어느정도의 앎이 진행되었다는 전제로
드리는 말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