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아이며,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은 빛의 존재들입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빛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분은 지구로 왔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있어, 여러분은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어둠과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 간에 이러한 게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여러분이 저항과 어둠을 체험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빛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여러분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의식 상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빛 속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빛이라면, 여러분은 완벽하게 무한하며, 자유롭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큰 전체의 일부이며, 이러한 무한한 살아 있는 의식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이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the One)와 연결해주고 있는 고리가 바로 이 빛입니다.
본질적으로, 빛은 형태가 없습니다. 빛은 물질적인 형태와는 상관없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빛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의식이 머물고 있는 물질적인 형태가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며, 여러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과 피도 아니며, 또한 성(性)도 아니며, 현재의 자기 인격을 나타내는 특성들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여러분의 일부분이며, 여러분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의 근원이며,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낸 신성한 창조주입니다.
여러분의 무한한 영혼은 서로 다른 많은 생명의 형태 속에서 살아왔으며, 우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수많은 삶들을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아직은 여러분이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여러분을 살찌우고 기름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화를 통한 여러분의 고된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확장하시는 방식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형태를 통한 여러분의 여정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여정을 통해, 모든 창조계가 새롭고 풍요로운 방식으로 확장하고, 증식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빛의 결핍, 그리고 연결감의 결핍으로 인해, 여러분이 지구에서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분의 영혼 속에 지니고 있는 기억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자신을 기억한다면, 비록 여러분이 많은 것들을 겪어 왔다 할지라도, 자신의 신성한 본질은 손상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온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여러분은 안도감을, 심지어 환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실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된 자신이라는 진실을 기억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즉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신성한 영혼이라는 진실을 기억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참된 여러분을 상기시켜주고, 그러한 자각을 일상생활 속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인 여러분과 신성한 여러분 간에, 실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성한 자아가 다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성한 자아는 시공간 상에 위치해 있지(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신성한 자아와 연결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짓누르고 있는 주제들로부터 잠시 뒤로 물러남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더 커져, 이러한 주제들로부터 벗어나, 개방된 의식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한 공간 속에서는 필요한 것, 혹은 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렇게 하는 것이 삶에서의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러분이 시도해볼 것을 권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켜, 고요하고 초연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가 있나요? 판단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나요?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차분해지고, 보다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들 혹은 육체적인 감각들이 이러한 고요한 공간 밖으로 여러분을 끌어당긴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버려 두세요.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세요. 이러한 고요한 의식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때가 되면, 참된 여러분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줄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도구를 언제든지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성가시게 하거나, 심지어 긍정적인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들과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온전함 및 내면의 자유로운 공간과 교감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그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삶에 실제로 중요하다 할지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이 결코 자신을 완벽하게 정의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감정 및 사건들보다도 더 큰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는, 이러한 모든 사건들과 체험들이 오고 가는 것을 말없이, 하지만 열심히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존재는 파괴될 수 없는, 불멸의 존재이며, 생명 자체의 원천입니다.
지구에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의 의식을 일시적이지만, 어떠한 형태, 즉 육체와 연결되기로 선택을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육체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의식을 몸과 그리고 현재의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개인과 그리고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재능 및 특성들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재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들이 여러분 자신이라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체험하고 있는 의식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신성한 여러분, 즉 핵심까지 다 벗겨진 여러분의 존재는 넓은 열린 공간, 빈 허공과 같지만, 활력과 잠재력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부로서,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향입니다. 이러한 부분과 연결된다면, 여러분은 안도감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며, 안전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핵심, 즉 온전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찾고 있는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줄 내면의 넓은 공간으로부터, 여러분이 쫓겨났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이러한 단절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심각한 고통이 바로 이러한 단절감입니다.
어둠이 존재하는 목적에 대한 이해
도대체 왜 영혼들은 분리를 체험하고자 할까요?
여러분이 육화하여, 물질의 형태 속에 살기로 선택하는 순간,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은 제한되고, 속박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의식도 좁아지게 되고, 무한하다는 느낌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형태가 없으며, 자유롭고, 제약이 없는, 참된 자신과의 연결감도 상실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육화의 여정을 처음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 있는 어린 영혼들은 참된 자신을 망각하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형태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혼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는 인간의 몸속에 영혼이 온전하게 거주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몸을 체험하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몸이 아니라, 어떤 존재(者)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입니다. 영혼이 진화해 감에 따라, 시공간 속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물질의 형태, 즉 육체를 초월해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영혼은 형태가 없는 차원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며, 자신의 진정한 본질은 그 차원 속에 거주하고 있다는 인식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진화한 영혼은 하나(oneness)라는 인식을 물질세계 속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왜 육화의 여정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왜 물질의 형태에 구속되는, 즉 탄생과 죽음이라는 순환에,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모든 것들에, 구속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하나가 되어 있는 무한한 상태 속에 항상 머물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지복(至福)한 상태가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해보세요.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만약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절대로 다시는 육화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지구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고, 암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의 영혼이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생애들을 선택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현재 지구에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이번의 생 역시도 여러분의 영혼이 체험하고자 선택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일부는 물질과 함께 춤을 추고 싶어 하며, 나는 이 부분이 바로 여러분의 가장 신성하고도, 거룩한 부분이며, 또한 창조적인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형태 속으로 빛을 가져오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靈:Spirit)은 빛이 형태를 지니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물질이 생겨나게 됨으로써, 의식과 물질, 즉 정신(spirit)과 육체가 어우러져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신과 육체 간의 상호작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방법입니다.
몸속에 거주하고 있는, 정신(spirit)으로서의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계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진화하고, 성숙해짐에 따라, 영(Spirit)의 빛을 더 잘 간직할 수 있게 되고, 그 빛을 몸을 통해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몸속에서 살아가는 기술은 물질 차원의 범위 내에서 영(Spirit)이 지니고 있는 자유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영의 자각으로 인해, 내면에서부터 밝아진, 물질 차원의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발산하게 되며, 삶에 중요한 것을 보태게 됩니다.
체화된 빛, 즉 형태로 표현된 빛은 존재하는 빛 중에서 가장 귀중한 빛입니다. 영혼이 지니고 있는 빛을 지구에서 물질의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계를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며, 여러분의 독특한 존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어떤 것을 전체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광물의 왕국에 존재하고 있는 풍부한 형태의 생명들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자 하는 영(Spirit)의 소망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은 영(spirit)과 물질 그리고 의식과 형태(form)가 어우러져 추는 춤으로부터 진화해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여러 형태들로 표현하고 싶어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계가 풍요롭게 되고, 모든 존재들이 생명의 순환 속에서 아름다움과 기쁨 그리고 모험을 체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들은 영의 불꽃들(sparks of Spirit)입니다.
서로 다른 형태들을 통해 여행하고, 서로 다른 많은 관점들로부터 생명을 알아가게 됨으로써, 영혼의 깊이와 지혜가 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분리와 어둠을 체험하는 것조차, 창조계가 풍요롭게 되는데 도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한때, 여러분은 물질세계로 내려가, 제한된 형태 속에 머물면서,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을 비추겠다고 선택을 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부로서, 했던 신성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창조주입니다. 지구에서의 삶에 대해 여러분이 현재 느끼고 있을 수도 있는 저항감의 밑바닥에는, 밀도가 짙은 지구의 현실세계로 빛을 가져오고자 하는 깊고도 영원한 열망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을 지구의 어두운 부분들에 비추는 것은 - 안팎으로 - 진실로 영혼의 부름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의 가슴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깊게 감동시킬 성취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평화와 지복(至福)한 상태로 천상에 존재하는 비전조차도 별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속에는 정신(spirit)과 육체가 어우러져, 춤을 추고자 하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춤입니다. 지구에서 인간의 몸속에서 살아감으로써,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지만, 또다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춤을 완전히 버림으로써가 아니라,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을 어둠 속으로 가져오는 방법을 알게 됨으로써,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과 짙은 밀도는 지구에서의 삶의 일부입니다. 삶 속에서 어둠과 짙은 밀도를 체험하게 될 때, 여러분은 에너지가 무겁고, 느리며,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해, 움직임과 자유로움 그리고 흐름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형태의 밀도가 존재할 때, 단절감과 분리감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나는 앞에서, 영(Spirit)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즉 자신의 본질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영혼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고통이라고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상처받게 하고, 삶의 의미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러한 분리감을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가 있을까요?
어둠 속으로 여러분이 지닌 빛을
가져오기
나는 오늘 여러분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밀도가 가장 짙은 부분과 만나, 그 부분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분은 에너지가 거의 흐르지 않는, 밀도가 가장 짙은 부분을 삶의 여러 분야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직장, 관계들, 건강 혹은 그 밖에 삶의 다른 측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여러분이 자기 자신이나, 혹은 삶이 여러분에게 제공해주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이러한 측면을 거추장스럽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막혀 있으며, 갇혀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짙은 밀도를 여러분이 지니고 다니는 돌, 즉 속담에서 말하는 “목에 걸린 맷돌(millstone round the neck : 피할 수 없는 힘든 문제나 책임)”로 시각화하기를 바랍니다.
짙은 밀도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외적인 환경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타인들의 거부, 배신 혹은 횡포 때문에, 그러한 짙은 밀도가 생겨났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지구처럼 밀도가 짙고, 아주 어두운 장소에서 살아가는 것은 내게는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분의 참된 힘을 망각하고 있는 존재는 충격을 받아, 당황해하고 있는 바로 자신의 일부입니다.
충격을 받은 내면의 아이는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자신이 피해자이며, 버려졌을 뿐만 아니라,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장 지혜롭고, 밝은 부분이 지난 유일한 목표는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의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와 동일시할 건가요, 아니면 자신의 밝고, 온전한 부분, 즉 이 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부분과 동일시할 건가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은 짙은 밀도나, 외부 세계의 어둠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밀도가 가장 짙은 부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며, 자신이 지닌 빛과 정말로 그 빛을 방사해도, 그 어두운 부분을 포용할 수 없다고 느끼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밀도가 짙은 부분으로 인해 희생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여러분은 억울해 하고 있는 것이며, 그 부분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일부를 제거하게 된다면, 여러분의 내면이 갈가리 찢기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러분의 영혼은 평온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로 목에 돌을 매달고 다닌다고 상상해 보세요. 돌이 얼마나 무겁고, 큰지를 살펴보세요. 자유롭게 상상하세요. 돌은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감정들 그리고 “나는 환영받지 않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 기타 등등과 같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과 관련하여, 모든 부정적인 믿음들을 담고 있습니다. 돌은 또한 삶에 대한 저항감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지니고 있습니다. 돌은 여러분의 내면에 정체되어 있고, 막혀 있는 부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돌은 또한 여러분이 삶에서 지니고 있는 사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밀도가 가장 짙은 부분들에 빛을 가져오는 것이 여러분의 영혼이 지니고 있는 사명인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딱딱해지고, 경직화된 부분들에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지구에 빛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면의 어둠에 다가가야 합니다. 이러한 여정을 내면에서 받아들이자마자,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은 자동적으로 타인들에게 방사되어, 이들도 똑같이 하도록 영감을 불어넣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돌에 초점을 맞추세요. 돌의 모습이 보이나요? 돌이 무슨 색인가요? 돌을 들 때, 느낌이 어떤가요? 그 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고, 돌을 부드럽게 집으세요. 여러분의 의식이 그 돌 속으로 흐르게 하고, 돌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느껴보세요. 분노, 혹은 슬픔, 혹은 두려움이 느껴지나요? 돌이 여러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세요.
돌을 들고 있는, 여러분은 살아 있는 빛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온전하고, 손상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품 안에 안전하게 안겨 있습니다. 이제 그냥 돌을 집어 들고, 관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관심을 돌에게 돌림으로써, 무슨 일이 돌에 일어나는지를 지켜보세요. 돌은 변형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성한 핵심으로부터 돌과 연결되어, 돌을 수용과 말 없는 이해로 에워싸고 있는 동안, 여러분은 돌에게 빛의 불꽃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돌은 내면에서부터 밝아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돌 속으로 생명과 움직임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돌은 더 이상 차갑고, 단단하지가 않습니다. 돌은 점차적으로 보석의 원석으로 변형됩니다.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관심으로 인해, 돌의 구조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이 무슨 색상과 형태를 지니게 될지 잘 지켜보세요.
이제 돌에게 “네가 나에게 줄 선물이 뭐니?”라고 물어보세요. 보석의 원석 속에 들어 있는 속성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면에서 그것을 느껴보세요. 그것이 연민, 인내심, 내맡김과 신뢰의 능력인가요? 평온, 용기 혹은 기쁨인가요? 그 선물을 받으세요. 이 돌은 처음에는 정체되고, 어두운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돌을 여러분의 참된 본질인 고요한 힘(quiet power)으로 포용하고 난 아후에, 돌이 보석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 단순히 중화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돌은 보석으로 변형되어, 여러분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지혜를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목에 걸려 있던 맷돌이 이제는 귀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돌을 집어 들어, 돌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지닌 독특한 에너지를 나타내는 색상과 형태로 빛을 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원석이 여러분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돌이 스스로 알아서 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돌이 자연스럽게 몸의 어느 부분으로 가고 있나요? 돌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돌은 몸과 마음에 치유의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삶은 여러분의 마음이 밀도가 높고, 어두우며, 정체된 부분으로 향하도록, 여러분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기게 됩니다. 정신과 육체 간의 춤은 빛과 어둠 간의 춤과 유사한 것입니다. 자신의 참된 본성을 인식하게 되면, 춤을 추는데 힘도 덜 들게 됩니다. 그 춤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신성한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변형의 힘을 깨닫고, 어둠이 드러날 수 있게 할 때, 빛과 어둠의 춤은 귀중한 보석을 만들어내게 되며, 이 보석은 빛이 밀도가 가장 짙은 현실 속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보석의 원석은 의식과 물질이 결합된 결과물이며, 정신과 육체 간의 춤이 만들어낸 결실이기도 합니다. 삶은 반복적으로 이러한 춤을 추도록 여러분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삶 속에서 부정성이나, 어둠을 느낄 때마다, 부디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상 속으로, 돌을 가져오세요. 그 돌을 반갑게 맞이하고, 여러분의 신성한 의식이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자신의 어두운 부분과 연결되세요. 돌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관심이 내부로부터 돌을 밝히는 열쇠입니다.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을 내면에 존재하는 밀도가 짙고 어두운 부분들에 비춤으로써, 여러분은 창조의 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지구에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https://cafe.naver.com/forestthetreeoflife/5161
무척 소중한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란 것에 공감합니다.
우리가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해 온 근원의식이라는 이해가..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라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