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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성립배경
1. 역사적인 측면 - 교단사적인 입장
밀교는 유식, 중관, 화엄사상, 정토신앙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이다. 이러한 밀교가 서기 7세기경에 인도에서 성립되기까지는 교단사적(敎團史的)으로나 교학적(敎學的)으로 매우 복합적인 원인과 배경을 갖고 있었다.
역사적 입장에서 보면, 불교가 성립되었던 기원전 6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도는 바라문교(Brahmanism)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불교의 출현으로 인하여 바라문교는 직접 간접으로 많은 타격을 받게 되었고, 그 세력도 점차 위축되는 추세를 면치 못했다. 사리불(Sariputta), 목건련(Moggalana) 등과 같은 바라문의 대지도자(大指導者)들이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불교로 전향한 것은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거니와, 이후 불교는 날로 번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1세기 반 동안 발전을 거듭해 왔던 불교 역시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후 100년경부터 교단이 분열되고 기원전 1세기경가지 부파간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불교교단은 이론 중심의 불교, 승려 중심의 불교로 흘러가게 되었다.
불교가 이러한 상황에 빠져 있을 동안 바라문교는 민간신앙을 흡수하고 불교사상을 모방하여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종교(Hinduism)로 재정비하여 비상한 세력으로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민중신앙의 입장에서 바라문교의 세력 확장은 자연히 불교교단의 약세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이러한 바라문교의 상황에 대비하여 불교에서는 바라문교, 힌두교, 민간신앙의 사상을 폭넓게 수용하여 불교적으로 재정립한 것이 밀교의 출발이었다. 제천사상(諸天思想)·진언(Mantra)·관음신앙(觀音信仰)을 위시한 보살사상(菩薩思想) 등은 모두가 이러한 영향 속에서 불교가 창안했거나 수용한 사상들인 것이다. 특히 진언은 밀교의 중심교학을 이루고 있는데, 그 연원은 멀리 리그베다(Ri-veda)에 까지 소급된다.
바라문교의 성전(聖典)인 4베다에서는 많은 명주(明呪)와 비법(秘法)이 나타나 있는데, 불교에서는 처음에 이러한 것들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초기불교에서는 "세속의 주술비법(呪術秘法)을 행하면 파일제(波逸提-payattika)를 범한다." 또는 "세속의 명주비법(明呪秘法)은 축생의 학(學)이다."라고 하여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교단 구성원 중에서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이 이러한 주문(呪文)을 외우고 밀법(密法)을 행하는 자가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십송율, 사분율같은 데서는 수양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치독주(治毒呪), 복통주(腹痛呪)와 같은 주법(呪法)은 행해도 좋다는 선별승인을 하게 되었고, 후에는 민간비법과 바라문교의 주법(呪法)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모방하여 불교 특유의 진언을 창안해냄으로써 밀교성립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밀교라는 말은 광의와 협의의 여러 뉘앙스로 사용되어왔기에 그 역사적인 상한을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밀교요소 중 하나인 존상(尊像) 들에 대한 진언과 호마행법 등을 단독으로 취급한 경우에는『리그베다』나『아타르바베다』가 성립한 베다시대(BC1800∼1000) 무렵까지 소급하기도 한다.
리그베다의 고행자를 '무니'라 하는데, 이 원어는 '성자'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 석존을 존칭하여 '석가모니불세존'이라고 할 때의 모니의 원어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바라문의 성전인 베다문헌 가운데 삼히타에는 4베다가 있는데, 그 중에 '리그베다'와 '아타르바베다' 에는 밀교신앙의 맹아가 배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바, 밀교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인도에는 기원전 1,500년 내지 1,200년 경 코카서스 북방지역을 원주지로 삼았던 아리야인의 일부가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를 침략하였다. 이들 아리야인이 인도에 침입해오기 이전 인도에는 드라비다인과 문다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非아리야인이 인더스문명(기원전 3,000∼1,000년으로 추정)의 주인공이라고 짐작되고 있는바, 그들의 종교적 실천법으로는 '요가'를 실천하였던 것 같다. 또 그들은 일상생활과 생산활동에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 주술(呪術)에도 능달하였던 것같다. 이 呪術과 요가실천은 후일 밀교발전에 많은 소재들을 제공하였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야인이 판잡지방에 정주하면서 최초에 남긴 문헌이 베다문헌이다. 또한 이 베다에는 후일 밀교의 '진언·다라니'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베다문헌과 진언다라니와의 연관성-
인도 아리야인이 침입지에 정주하기 시작한 후 최초(기원전 1,500∼1,000년경)에 성립된 것이 리그베다이다. 여기에는 神(Deva=天)에 대한 찬가가 집성되었으며, 자연계현상, 위력, 구성요소, 추상적 관념 등이 신격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제신(諸神)은 천(天)·공(空)·지(地)의 삼계(三界)에 배대하여 33신이라 한다. 베다의 종교에는 제장(祭場)을 설치하여 공양의식을 베풀고, 다신(多神) 중(中)의 일신(一神)을 여기에 권청하여 자기네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게 된다. 이 리그베다에는 천지창조(天地創造)와 관련하여 약 30개 정도의 진언(眞言-mantra)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진언의 유형은 우주창조자(宇宙創造者)를 조일체자(造一切者-Visvakarman), 기원주(祈願主-Brhaspati = Brahmanaspati), 황금태(黃金胎-Hiranyarbha)에게 향하여 앙망(仰望)하는 찬가, 푸르사(Purusa = 原人)에게서부터 만유(萬有)가 전개한다고 설하는 Purusa찬가, 우주생성(宇宙生成)의 근원(根源)을 피유일물(彼唯一物-Tadekam)에 있다는 등의 내용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밀교의 진언이 리그베다의 만트라(Mantra 진언)에 근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리그베다 중에 보이는 신격(神格)이 발전하여 토착신들과 결합·변용되는 과정을 거쳐 밀교의 만다라(曼茶羅-Mandala)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인드라(Indra=帝釋天), 바르나(Varuna=水天), 아그니(Agni=火天), 소마(soma=月天), 봐뉴(Vanu=風天) 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리그베다의 뒤를 이어 기원전 1,000년에서 500년 까지에는 사마베다(Sama-Veda), 야쥬르베다(Yajur-Veda), 아다르바베다(Atharva-Veda) 등이 성립되었다. 이들 베다신화의 대부분이 아리얀문화에서 온 것이나 그 중에는 非아리얀 문화에서 온 것도 더러 있다. 특히 후기 베다시대에 이르면, 아리얀은 갠지스강 유역의 비옥한 평원지대에서 정주를 하며 목축과 농경업에 종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토착민의 문화와 결합을 하게 되고,(즉, 아리야문화와 非아리야문화의 교류) 이와 관련한 주문주법(呪文呪法)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성립된 것이 '아다르바-베다'이다. 여기에는 주문 주법을 포함한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아다르바-베다의 주술내용(呪術內容)은 치병법(治病法-Dhaisjya), 장수법(長壽法-Ayusya), 증익법(增益法-Paustika), 속죄법(贖罪法-Prayascitta), 화합법(和合法-Sammanasya), 여사법(女事法-Strikarman), 조복법(調伏法-Abhicarika), 왕사법(王事法-Rajakarman) 등이 있다. 아타르바-베다는 고문헌에는 '아다르바-안기라사스'라는 명칭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아다르반'과 '안기라스'라는 두 개의 다른 呪文이 합성된 것이다. 즉 '아다르반'은 행운을 가져오는 주문(呪文)으로서 식재(息災-Aanta), 증익(增益-Paustika)'을 의미하고, '안기라스'는 적대자를 제거하는 주문(呪文)으로서 조복(調伏-Abhicarika)의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주술법들이 밀교의 제작법(諸作法)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즉 밀교적 소재들은 이미 베다시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밀교의 호마법(護摩法) 역시 베다시대의 화로(火爐)의 구성과 유사하며, 후일 밀교의 계경(戒經)인『소실지경(蘇悉地經)』, 밀교양부대경인『대일경(大日經)』『금강정경(金剛頂經)』의 시대에 이르러서 이른바 식재(息災) 증익(增益)· 조복(調伏)의 수법(修法), 경애법(敬愛法)· 구소법(鉤召法) 등의 삼종·사종·오종의 수법 등은 그 명칭과 내용까지도 밀교의 사상법(事相法)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어쨌든 아리야문화는 토착민의 문화와 접촉 결합되어 그들의 사상과 문화가 점차적으로 반영되어 아리야인의 종교에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밀교 중에는 그와 같은 예가 상당히 많다. 오대명왕(五大明王) 중의 분노명왕(分努明王)은 非아리야 문화 계열에 속하며,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은 인더스 문명의 모신상(母神像)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은 모권제도사회(母權制度社會)의 非아리야인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작명왕(孔雀明王)의 마뉴라(Mayura)는 문다語의 모-라(Mora)에서 온 것이며, 용왕(龍王)의 나-가(Naga)도 非아리야語의 코브라(Codra=毒蛇)=나가(Naga=龍)로 전의(轉義)한 코브라 숭배사상에서 온 삼림에서 생활하던 원주민의 사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겠다. 또 방울져 흐르는 선혈(鮮血), 인육(人肉)에 대한 식욕(食慾), 뱀[蛇]의 팔찌, 인간의 두개골 등도 드라비다人들 사이에서 존숭을 받는 모신(母神)의 특성이라 하겠다. 이와같은 특징은 후기밀교의 모탄트라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농촌민의 청우(請雨)· 지우(止雨) 등의 농경주술 등도 그 본래는 여성중심의 역할이었던 것이 非아리야 사회의 아리야化 문화의 남성화로 전화(轉化)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아리야문화와 非아리야문화 중에는 상호간의 문화흔적이 매우 많음을 볼 수 있고, 이들의 문화가 근원이 된 베다사상을 연원으로 하여 범서시대(梵書時代) 바라문교시대(婆羅門敎時代)를 거치는 동안 불교에 수용되고 대승후기에 와서는 밀교에 전입(轉入) 변용(變容)되었다.
그리고 밀교의 진언·다라니 신앙은 그 뿌리가 인도고대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짐작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도 고대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미개한 지능으로서는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자연현상에 대하여 가지는 경외심과 공포심에서 진언다라니 신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그들이 초인간적인 능력으로서 능히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그들 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던 주문을 빌어서 그 공능(功能)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소원을 성취코자 하였다. 이들 원주민들은 드라비다족과 문다족으로 농경, 목축, 수렵 등에 종사하며 생활을 영위하였던 모계가족사회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새나 짐승, 나무나 숲, 여신(女神)들을 숭배하였으며, 한편 종교적 실천법으로는 일종의 요가적인 수행법을 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인도 고대 원시인들의 생활양상을 미루어 생각건대, 일들의 간절한 기구심(祈求心)이 진언과 다라니 등 呪法의 도구적 요소를 성립시키게 되었다 할 것이다.
아리아인들이 인더스강 유역인 판잡지방에 정주하면서 남긴 최초의 문헌이 리그베다인데, '베다'(Veda)는 '지식'의 뜻으로서, 고대 聖人(Rsi)이 神의 계시(Sruti)를 받아서 誦한 것으로서 신지(神智) 성지(聖智)를 표현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리그베다에는 자연계의 구성요소와 현상(現象)등을 신격화(神格化)하여 이들을 찬양하는 찬가(Mantra)를 1,017편이 실려있다. 이들 찬가들은 주로 전쟁의 승리, 자손의 번영, 농작물의 풍작, 신체의 건강 등을 기원하는 것으로 일종의 呪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리그베다의 찬가 중 火神(Agni)에 대한 찬가는 아리아인이 이란인들과 공존하고 있을 때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리그베다의 찬가 중 최고의 것이다. 후대 불교 내지 밀교의 '기원(祈願)'의 뜻인 Sraha의 어원은 Su+Adha(잘놓다)의 뜻으로서 화중(火中)의 공물(供物)을 잘 정돈하여 놓은 神의 의미였으나, 이것이 화중(火中)에 공물을 바치면서 부르는 화신(火神)에 대한 찬가로 되었다가 점차 어의가 상실되고 화신(火神) 뿐만 아니라 다른 신(神)에 대한 Mantra로 사용되었다.
또한 리그베다의 제10장 원인가(原人歌)에는 리그베다, 야쥬르베다베다, 삼마베다의 3베다 외에도 呪文(Chandas)의 명칭을 들고 있다. 이 리그베다 중에는 약 30여 種의 진언 Mantra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아리아의 성전 베다에는 상당한 수에 이르는 呪文(Chandas)이 있고, 이 주문을 구송(口誦)하는 과정 및 형태가 발전하면서 그들의 주술(呪術)이 현실적 원망(願望)의 성취를 위해 행해졌던 종교적 기구심(祈求心) 내지 갈망(渴望)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술의 기원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술은 불교가 발전하면서 더욱 구체화 의궤화되어 밀교의 진언다라니신앙으로 발전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리그베다 찬가 중에는 주술에 연관된 것이 32種이나 있다고 한다. 전승(戰勝), 득처(得妻), 전리품 획득(戰利品 獲得), 자손번영(子孫繁榮), 강우(降雨), 다수획(多數獲), 건강(健康), 장수(長壽), 식재(息災) 등의 내용들이다. 이들 거의 모두가 현실적인 원망성취를 기원하는 것들로서, 후대 밀교의 신앙이 현실적이며 긍정적 적극적인 면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도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인도고대인들의 이러한 주술의 사용목적은 점차 구체적으로 발전하여 아타르바-베다에 와서는 일정한 형식으로 조직되었다.
아타르바-베다는 성립당시에 선의(善意)의 주술을 전문으로 행하는 주술사(呪術師)와 악의(惡意)의 주술을 전문으로 행하는 두 계통의 주술사(呪術師)가 있었는데, 전자를 아타르반(Atharran)家 또는 아타반僧族이라 부르고, 후자를 안기라스(Angir-as)家 또는 안기라스僧族이라고 불렀다. 이 兩 계통의 명칭이 후에 呪文을 집대성한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의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아타르바베다의 주술은 식재(息災-Santa), 증익(增益-Paustika), 조복(調伏-Abhicarika)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 식재·증익은 아타르반 계통의 선의(善意)의 주술이고, 조복은 안기라스 계통의 악의(惡意)의 주술이라 할 수 있다. 식재법에는 재앙소멸을 기원하는 주술로 치병법(治病法-Bhaisajaya), 속죄법(贖罪法-Prayscitta) 등이 있고, 증익법에는 장수법(長壽法-Syusya), 여사법(女事法-Strikarma), 왕사법(王事法-Rajakarma), 화합법(和合法-Sammamnasya) 등이 있으며, 조복법에는 악귀, 악령, 적대자를 제거하는 제거법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세속적이고, 현세이익적인 주술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필요불가결의 도구요, 원시적 종합과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후대에 와서 일부의 브라만계급 사이에서는 주술을 단순한 생활수단 이상으로 철학화하고 속세간의 고락을 초월한 종교적 쾌락의 경지에 이르는 종교적인 수행의 한 단계로 삼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옴(Om)에 대한 종교적인 탐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불교 이전에 사용되었던 주술은 베다 본집(本集)에서 브라만시기 까지는 현세이익의 달성을 위하여 주술을 사용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우파니샤드시기에는 상류사회계급에서 종교적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법의 목적으로 주술을 사용하는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러한 주술은 밀교적인 신앙사상의 맹아기, 곧 밀교의 기원이 시작되는 전조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베다의 呪文(Candas)이 브라마나시기를 거쳐서 우파니샤드시기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종교적 경지에 도달하려는 수행법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이 시기의 종교적 신앙형태가 점차 내면적으로 승화되어 마침내 밀교적 신앙형태로 발전·변용하게 되었다. 즉 주문(呪文)이 주술(呪術)로, 주술(呪術)은 주법(呪法)으로, 주법(呪法)· 주(呪)· 명주(明呪)가 진언(眞言)· 다라니(陀羅尼)로 변용 발전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상황이 밀교성립의 외형적 조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근본적인 동기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밀교가 성립하게 된 보다 근원적인 동기는 불교 자체의 교학적인 발전에 있었다.
2. 교학적인 측면 - 교리사적인 입장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이론적이며 교학적인 쟁론(爭論)의 불교에서 탈피하고자 일어난 새로운 불교로써 실천을 중시는 대중불교운동이었다. 그 중심사상은 대승보살정신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실천을 강조하였지만 그 일면에는 부파의 교리중심적 불교처럼 교학적인 면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대승 중·후기에는 실천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교학적으로는 더욱 진부한 모습을 보였다. 이로 말미암아 대승불교 는 이론중심에 치중하게 되다보니 이에 또다시 고도의 실천불교가 표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밀교의 교학이며 실천체계였다.
소승불교의 교리적 체계와 대승불교의 실천적 교학을 더욱 발전시켜 체계화하고 상징화하여 강한 실천력을 내세운 것이 밀교였다. 그래서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면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특히 대승의 교리를 실천적 교학으로 더욱 발전 체계화하였는데, 성불의 경지를 구체적으로 상징화하고 이를 수행하는 실천방편과 교학을 의궤로써 조직화·구체화·도식화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의궤작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 원시·대승불교 내에서의 성립·발전-
주술적인 요소를 부정했던 초기불교 중에서도 호신용의 주구(呪句)로서 허용된 파릿타(paritta)와『법화경』『반야경』등의 대승경전 속에서 설해지고 있는 다라니도 밀교의 원형적인 요소이다.
원시경전 중『장아함경』제20경인「대회경(大會經)」, 제32경「아탁나지경(阿咤那智經)」과『율부』의 '독교설주(蛇咬說呪)',『잡아함(雜阿含)』의 '당두명호(幢頭明護)' 등, 신명(神明)의 수호(守護), 양재초복(攘災招福)의 상상은 비밀불교의 모태라고 칭할만한 것으로서 후세에 편찬된 명호집(明護集-Paritta)과 함께, 당시 일반 재가신자의 신앙 일부를 형성하였다. 이것이 후세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아서 비밀불교를 낳기에 이르렀다.
초기불교 시대의 일반 재가인들은 출가자들과 같은 어렵고 청정고매한 수도생활(修道生活)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현세안락(現世安樂)과 양재초복(攘災招福) 등의 신앙적인 기원심(祈願心)에서 밀교적 신앙이 발단되었다. 이러한 기원심은 불교가 발전하면서 변용을 거듭하여 원시불교시대에는 주술이 석존으로부터 배척되기도 하였으나, 그 후 다시 주법으로 묵인되다가 드디어 불교 속으로 수용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수용과정은 대승이후 밀교성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초기 대승불교의 시기에는 반야경(般若經) 계통의 공사상(空思想)을 주축으로 하는 용수(龍樹-Nagarjuna)계의 중도사상(中道思想)이 나타났었는데, 이 학파를 중관학파(中觀學派)라고 하였다. 중관학파에서는 인간의 심성이 본래 맑고 깨끗하다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과 '공사상'(空思想)의 입장을 조직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중관계에서는 아직 개인의 심식(心識)에 관한 연구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중기에 오면,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유사상(有思想)을 주축으로 한 무착(無着-Asanga), 세친(世親-Vasubandhu) 등이 중심이 되어 중생의 일심(一心)을 중요시하는 '심식설'(心識說)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학파를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라고 하는데, 밀교는 중관과 유식학파의 중심사상을 동시에 계승 발전시켰으며, 아울러 그 양학파(兩學派)의 결함을 보완하여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밀교는 화엄경이나 법화경의 사상을 계승하고 기신론(起信論)의 진여 연기설(眞如緣起說)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특성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밀교성립의 결정적 배경은 수많은 존격(尊格)의 변화와 함께 도상(圖上)에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점이다.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석가여래가 중심이 된데 반해 대승불교에서는 간다라 조각에서 알 수 있듯이 관음·문수·미륵 등의 새로운 보살 그룹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5세기 경이 되면 특히 '관음'은 다양한 변화를 일으켜 십일면·천수·불공견색 등 특이한 양상을 가진 변화관음(變化觀音)이 성립하여 많은 밀교경전 속에 설해지게 된다.
또한 금강계만다라의 16보살 가운데 금강법(金剛法)· 금강보(金剛寶)· 금강리(金剛利)· 금강당(金剛幢) 보살이 대승불교와 친숙한 관음·허공장·문수·지장이 밀교적으로 변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금강계만다라는 향, 노래, 무용 등 불(佛)에 바치는 것까지 의인화해서 금강향(金剛香)· 금강가(金剛歌)· 금강무(金剛舞) 등의 존격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종래에 있던 것을 새롭게 살려가는 것이 밀교의 커다란 특색의 하나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밀교경전이라기고 한정하기는 어려우나 4세기 경 성립한 것으로 보이는『금광명경(金光明經)』(담무참譯)과『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불타발타라譯)도 사방사불(四方四佛- 아촉·보상寶相· 무량수無量壽· 미묘성微妙聲)을 설하고 있는 점에서 후세에 만다라가 성립하는 데 기여한 의의가 크다.
『대일경』권제1「입진언문주심품」1에 보면, "보리심을 인, 대비를 근본, 방편을 구경으로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곧 밀교가 방편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밀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작법과 의궤는 곧 현세이익과 성불을 위한 방편교설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편은 후기밀교, 즉 무상유가밀교 가운데 '방편·父탄트라'로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편은 밀교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미 석존께서도 '방편'을 택하셨고, 대승불교에서도 방편은 중생구제의 선교방법(宣敎方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석존의 '방편'은 밀교에서 말하는 '방편'과는 조금 그 의미를 달리하는데, 석존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교설의 내용을 달리하셨음을 가리켜 이를 '방편시설(方便施設)'이라 하는 것이고, 밀교에서는 근기에 따른 교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佛身)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수행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내포하면서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방편'이었다. 석존은 중생들의 '깨닫는 능력[機]'을 점진적으로 성숙시켜가서 마침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방법론을 불교에서는 방편시설(方便施設)이라고 부른다. 방편(方便-upaya)은 '接近한다'는 말이고, 시설(施設-prajnapti)은 '알아내게 한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방편'은 밀교는 말할 나위가 없고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행하여졌던 보편적인 교화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석존의 방편시설'은 설교방법의 측면에서 '방편'이라면 밀교에서 '방편'은 실천수행의 측면, 수행작법의 측면에서 '방편'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대승에서도 '방편'이란 말이 쓰였는데, 이것이 밀교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방편'은 원래 대승경전인『법화경』등에서 '사람들을 잘 구제하는 수단'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방편은 그러한 점에서 실용적(實用的) 혹은 정적(情的)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후에는 '바른 지혜'를 가리키는 반야와 한 쌍이 되어 교학화되었다. 즉 '방편'은 후기밀교로 대표되는 무상유가밀교 가운데 하나인 '방편·부탄트라'로 전개되었다. 감각을 강조하고 모든 사물을 어떤 심볼로 상징하기를 좋아하는 밀교에서는 이러한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이 이원론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로서, 남녀로 치환되어 '方便탄트라'는 '父탄트라'로, '般若탄트라'는 '母탄트라'로 등치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방편과 반야는 남녀의 합일로 이해되어 남녀성교의 타락된 면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어쨌거나 밀교적인 요소가 중요한 위치를 지니게 된 것은 역시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서이고, 밀교가 밀교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중기밀교부터이다.
특히 4세기 전반에 찬드라굽타에 의해 흥기한 굽타왕조는 갠지스강 중류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인도의 거의 전역을 지배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예로부터 전해오던 씨족제에 대신해서 농촌에 기반을 둔 사회기구가 확립되었고, 이전부터 있었던 바라문교는 여러 신들과 민중의 일상의례를 내포한 힌두교로 새롭게 재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원래 인간의 근원적인 고뇌의 구제에서 출발한 불교도 신자들의 현실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힌두교와 중복되는 다양한 민중불교의 요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병을 치료하는 것, 장수하는 것, 비를 멈추게 하는 것, 비를 내리게 하는 것 등 현실적인 요구를 설하는 다라니경전(陀羅尼經典), 제존(諸尊)을 대상으로 하여 공양하고 관상(觀想)하는 일군(一群)의 밀교경전은 이 시대의 산물이다. 이것이 밀교 초기에 나타난 잡밀의 모습이다.
어쨌든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힌두교의 부흥과 더불어 불교 내에도 의례(儀禮)와 도상(圖上)에 중점을 둔 밀교적 요소가 점차 농후해지게 되었고, 6세기 경에는 진언(眞言)· 인상(印相)· 만다라(曼茶羅)의 대부분이 정리된『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이 나오기에 이른다.
밀교의 기원을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 본다면, 대승불교가 여러 조건하에서 성립되었듯이 밀교 또한 복잡한 환경 속에서 태동하였다 할 수 있는데, 밀교의 복잡한 성립배경은 다음과 같은 학설로 설명될 수 있다.
① 인도 고대문화 기원설 (印度 古代文化 起源說)
② 초기 불교내 성립 및 비전설 (初期 佛敎內 成立 및 秘傳說)
③ 대승불교내 성립설 (大乘佛敎內 成立說)
<법경 / 법장원 밀교연구소 연구원>
1. 역사적인 측면 - 교단사적인 입장
밀교는 유식, 중관, 화엄사상, 정토신앙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이다. 이러한 밀교가 서기 7세기경에 인도에서 성립되기까지는 교단사적(敎團史的)으로나 교학적(敎學的)으로 매우 복합적인 원인과 배경을 갖고 있었다.
역사적 입장에서 보면, 불교가 성립되었던 기원전 6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도는 바라문교(Brahmanism)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불교의 출현으로 인하여 바라문교는 직접 간접으로 많은 타격을 받게 되었고, 그 세력도 점차 위축되는 추세를 면치 못했다. 사리불(Sariputta), 목건련(Moggalana) 등과 같은 바라문의 대지도자(大指導者)들이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불교로 전향한 것은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거니와, 이후 불교는 날로 번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1세기 반 동안 발전을 거듭해 왔던 불교 역시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후 100년경부터 교단이 분열되고 기원전 1세기경가지 부파간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불교교단은 이론 중심의 불교, 승려 중심의 불교로 흘러가게 되었다.
불교가 이러한 상황에 빠져 있을 동안 바라문교는 민간신앙을 흡수하고 불교사상을 모방하여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종교(Hinduism)로 재정비하여 비상한 세력으로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민중신앙의 입장에서 바라문교의 세력 확장은 자연히 불교교단의 약세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이러한 바라문교의 상황에 대비하여 불교에서는 바라문교, 힌두교, 민간신앙의 사상을 폭넓게 수용하여 불교적으로 재정립한 것이 밀교의 출발이었다. 제천사상(諸天思想)·진언(Mantra)·관음신앙(觀音信仰)을 위시한 보살사상(菩薩思想) 등은 모두가 이러한 영향 속에서 불교가 창안했거나 수용한 사상들인 것이다. 특히 진언은 밀교의 중심교학을 이루고 있는데, 그 연원은 멀리 리그베다(Ri-veda)에 까지 소급된다.
바라문교의 성전(聖典)인 4베다에서는 많은 명주(明呪)와 비법(秘法)이 나타나 있는데, 불교에서는 처음에 이러한 것들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초기불교에서는 "세속의 주술비법(呪術秘法)을 행하면 파일제(波逸提-payattika)를 범한다." 또는 "세속의 명주비법(明呪秘法)은 축생의 학(學)이다."라고 하여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교단 구성원 중에서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이 이러한 주문(呪文)을 외우고 밀법(密法)을 행하는 자가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십송율, 사분율같은 데서는 수양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치독주(治毒呪), 복통주(腹痛呪)와 같은 주법(呪法)은 행해도 좋다는 선별승인을 하게 되었고, 후에는 민간비법과 바라문교의 주법(呪法)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모방하여 불교 특유의 진언을 창안해냄으로써 밀교성립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밀교라는 말은 광의와 협의의 여러 뉘앙스로 사용되어왔기에 그 역사적인 상한을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밀교요소 중 하나인 존상(尊像) 들에 대한 진언과 호마행법 등을 단독으로 취급한 경우에는『리그베다』나『아타르바베다』가 성립한 베다시대(BC1800∼1000) 무렵까지 소급하기도 한다.
리그베다의 고행자를 '무니'라 하는데, 이 원어는 '성자'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 석존을 존칭하여 '석가모니불세존'이라고 할 때의 모니의 원어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바라문의 성전인 베다문헌 가운데 삼히타에는 4베다가 있는데, 그 중에 '리그베다'와 '아타르바베다' 에는 밀교신앙의 맹아가 배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바, 밀교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인도에는 기원전 1,500년 내지 1,200년 경 코카서스 북방지역을 원주지로 삼았던 아리야인의 일부가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를 침략하였다. 이들 아리야인이 인도에 침입해오기 이전 인도에는 드라비다인과 문다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非아리야인이 인더스문명(기원전 3,000∼1,000년으로 추정)의 주인공이라고 짐작되고 있는바, 그들의 종교적 실천법으로는 '요가'를 실천하였던 것 같다. 또 그들은 일상생활과 생산활동에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 주술(呪術)에도 능달하였던 것같다. 이 呪術과 요가실천은 후일 밀교발전에 많은 소재들을 제공하였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야인이 판잡지방에 정주하면서 최초에 남긴 문헌이 베다문헌이다. 또한 이 베다에는 후일 밀교의 '진언·다라니'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베다문헌과 진언다라니와의 연관성-
인도 아리야인이 침입지에 정주하기 시작한 후 최초(기원전 1,500∼1,000년경)에 성립된 것이 리그베다이다. 여기에는 神(Deva=天)에 대한 찬가가 집성되었으며, 자연계현상, 위력, 구성요소, 추상적 관념 등이 신격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제신(諸神)은 천(天)·공(空)·지(地)의 삼계(三界)에 배대하여 33신이라 한다. 베다의 종교에는 제장(祭場)을 설치하여 공양의식을 베풀고, 다신(多神) 중(中)의 일신(一神)을 여기에 권청하여 자기네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게 된다. 이 리그베다에는 천지창조(天地創造)와 관련하여 약 30개 정도의 진언(眞言-mantra)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진언의 유형은 우주창조자(宇宙創造者)를 조일체자(造一切者-Visvakarman), 기원주(祈願主-Brhaspati = Brahmanaspati), 황금태(黃金胎-Hiranyarbha)에게 향하여 앙망(仰望)하는 찬가, 푸르사(Purusa = 原人)에게서부터 만유(萬有)가 전개한다고 설하는 Purusa찬가, 우주생성(宇宙生成)의 근원(根源)을 피유일물(彼唯一物-Tadekam)에 있다는 등의 내용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밀교의 진언이 리그베다의 만트라(Mantra 진언)에 근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리그베다 중에 보이는 신격(神格)이 발전하여 토착신들과 결합·변용되는 과정을 거쳐 밀교의 만다라(曼茶羅-Mandala)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인드라(Indra=帝釋天), 바르나(Varuna=水天), 아그니(Agni=火天), 소마(soma=月天), 봐뉴(Vanu=風天) 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리그베다의 뒤를 이어 기원전 1,000년에서 500년 까지에는 사마베다(Sama-Veda), 야쥬르베다(Yajur-Veda), 아다르바베다(Atharva-Veda) 등이 성립되었다. 이들 베다신화의 대부분이 아리얀문화에서 온 것이나 그 중에는 非아리얀 문화에서 온 것도 더러 있다. 특히 후기 베다시대에 이르면, 아리얀은 갠지스강 유역의 비옥한 평원지대에서 정주를 하며 목축과 농경업에 종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토착민의 문화와 결합을 하게 되고,(즉, 아리야문화와 非아리야문화의 교류) 이와 관련한 주문주법(呪文呪法)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성립된 것이 '아다르바-베다'이다. 여기에는 주문 주법을 포함한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아다르바-베다의 주술내용(呪術內容)은 치병법(治病法-Dhaisjya), 장수법(長壽法-Ayusya), 증익법(增益法-Paustika), 속죄법(贖罪法-Prayascitta), 화합법(和合法-Sammanasya), 여사법(女事法-Strikarman), 조복법(調伏法-Abhicarika), 왕사법(王事法-Rajakarman) 등이 있다. 아타르바-베다는 고문헌에는 '아다르바-안기라사스'라는 명칭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아다르반'과 '안기라스'라는 두 개의 다른 呪文이 합성된 것이다. 즉 '아다르반'은 행운을 가져오는 주문(呪文)으로서 식재(息災-Aanta), 증익(增益-Paustika)'을 의미하고, '안기라스'는 적대자를 제거하는 주문(呪文)으로서 조복(調伏-Abhicarika)의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주술법들이 밀교의 제작법(諸作法)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즉 밀교적 소재들은 이미 베다시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밀교의 호마법(護摩法) 역시 베다시대의 화로(火爐)의 구성과 유사하며, 후일 밀교의 계경(戒經)인『소실지경(蘇悉地經)』, 밀교양부대경인『대일경(大日經)』『금강정경(金剛頂經)』의 시대에 이르러서 이른바 식재(息災) 증익(增益)· 조복(調伏)의 수법(修法), 경애법(敬愛法)· 구소법(鉤召法) 등의 삼종·사종·오종의 수법 등은 그 명칭과 내용까지도 밀교의 사상법(事相法)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어쨌든 아리야문화는 토착민의 문화와 접촉 결합되어 그들의 사상과 문화가 점차적으로 반영되어 아리야인의 종교에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밀교 중에는 그와 같은 예가 상당히 많다. 오대명왕(五大明王) 중의 분노명왕(分努明王)은 非아리야 문화 계열에 속하며,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은 인더스 문명의 모신상(母神像)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은 모권제도사회(母權制度社會)의 非아리야인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작명왕(孔雀明王)의 마뉴라(Mayura)는 문다語의 모-라(Mora)에서 온 것이며, 용왕(龍王)의 나-가(Naga)도 非아리야語의 코브라(Codra=毒蛇)=나가(Naga=龍)로 전의(轉義)한 코브라 숭배사상에서 온 삼림에서 생활하던 원주민의 사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겠다. 또 방울져 흐르는 선혈(鮮血), 인육(人肉)에 대한 식욕(食慾), 뱀[蛇]의 팔찌, 인간의 두개골 등도 드라비다人들 사이에서 존숭을 받는 모신(母神)의 특성이라 하겠다. 이와같은 특징은 후기밀교의 모탄트라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농촌민의 청우(請雨)· 지우(止雨) 등의 농경주술 등도 그 본래는 여성중심의 역할이었던 것이 非아리야 사회의 아리야化 문화의 남성화로 전화(轉化)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아리야문화와 非아리야문화 중에는 상호간의 문화흔적이 매우 많음을 볼 수 있고, 이들의 문화가 근원이 된 베다사상을 연원으로 하여 범서시대(梵書時代) 바라문교시대(婆羅門敎時代)를 거치는 동안 불교에 수용되고 대승후기에 와서는 밀교에 전입(轉入) 변용(變容)되었다.
그리고 밀교의 진언·다라니 신앙은 그 뿌리가 인도고대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짐작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도 고대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미개한 지능으로서는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자연현상에 대하여 가지는 경외심과 공포심에서 진언다라니 신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그들이 초인간적인 능력으로서 능히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그들 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던 주문을 빌어서 그 공능(功能)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소원을 성취코자 하였다. 이들 원주민들은 드라비다족과 문다족으로 농경, 목축, 수렵 등에 종사하며 생활을 영위하였던 모계가족사회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새나 짐승, 나무나 숲, 여신(女神)들을 숭배하였으며, 한편 종교적 실천법으로는 일종의 요가적인 수행법을 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인도 고대 원시인들의 생활양상을 미루어 생각건대, 일들의 간절한 기구심(祈求心)이 진언과 다라니 등 呪法의 도구적 요소를 성립시키게 되었다 할 것이다.
아리아인들이 인더스강 유역인 판잡지방에 정주하면서 남긴 최초의 문헌이 리그베다인데, '베다'(Veda)는 '지식'의 뜻으로서, 고대 聖人(Rsi)이 神의 계시(Sruti)를 받아서 誦한 것으로서 신지(神智) 성지(聖智)를 표현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리그베다에는 자연계의 구성요소와 현상(現象)등을 신격화(神格化)하여 이들을 찬양하는 찬가(Mantra)를 1,017편이 실려있다. 이들 찬가들은 주로 전쟁의 승리, 자손의 번영, 농작물의 풍작, 신체의 건강 등을 기원하는 것으로 일종의 呪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리그베다의 찬가 중 火神(Agni)에 대한 찬가는 아리아인이 이란인들과 공존하고 있을 때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리그베다의 찬가 중 최고의 것이다. 후대 불교 내지 밀교의 '기원(祈願)'의 뜻인 Sraha의 어원은 Su+Adha(잘놓다)의 뜻으로서 화중(火中)의 공물(供物)을 잘 정돈하여 놓은 神의 의미였으나, 이것이 화중(火中)에 공물을 바치면서 부르는 화신(火神)에 대한 찬가로 되었다가 점차 어의가 상실되고 화신(火神) 뿐만 아니라 다른 신(神)에 대한 Mantra로 사용되었다.
또한 리그베다의 제10장 원인가(原人歌)에는 리그베다, 야쥬르베다베다, 삼마베다의 3베다 외에도 呪文(Chandas)의 명칭을 들고 있다. 이 리그베다 중에는 약 30여 種의 진언 Mantra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아리아의 성전 베다에는 상당한 수에 이르는 呪文(Chandas)이 있고, 이 주문을 구송(口誦)하는 과정 및 형태가 발전하면서 그들의 주술(呪術)이 현실적 원망(願望)의 성취를 위해 행해졌던 종교적 기구심(祈求心) 내지 갈망(渴望)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술의 기원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술은 불교가 발전하면서 더욱 구체화 의궤화되어 밀교의 진언다라니신앙으로 발전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리그베다 찬가 중에는 주술에 연관된 것이 32種이나 있다고 한다. 전승(戰勝), 득처(得妻), 전리품 획득(戰利品 獲得), 자손번영(子孫繁榮), 강우(降雨), 다수획(多數獲), 건강(健康), 장수(長壽), 식재(息災) 등의 내용들이다. 이들 거의 모두가 현실적인 원망성취를 기원하는 것들로서, 후대 밀교의 신앙이 현실적이며 긍정적 적극적인 면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도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인도고대인들의 이러한 주술의 사용목적은 점차 구체적으로 발전하여 아타르바-베다에 와서는 일정한 형식으로 조직되었다.
아타르바-베다는 성립당시에 선의(善意)의 주술을 전문으로 행하는 주술사(呪術師)와 악의(惡意)의 주술을 전문으로 행하는 두 계통의 주술사(呪術師)가 있었는데, 전자를 아타르반(Atharran)家 또는 아타반僧族이라 부르고, 후자를 안기라스(Angir-as)家 또는 안기라스僧族이라고 불렀다. 이 兩 계통의 명칭이 후에 呪文을 집대성한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의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아타르바베다의 주술은 식재(息災-Santa), 증익(增益-Paustika), 조복(調伏-Abhicarika)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 식재·증익은 아타르반 계통의 선의(善意)의 주술이고, 조복은 안기라스 계통의 악의(惡意)의 주술이라 할 수 있다. 식재법에는 재앙소멸을 기원하는 주술로 치병법(治病法-Bhaisajaya), 속죄법(贖罪法-Prayscitta) 등이 있고, 증익법에는 장수법(長壽法-Syusya), 여사법(女事法-Strikarma), 왕사법(王事法-Rajakarma), 화합법(和合法-Sammamnasya) 등이 있으며, 조복법에는 악귀, 악령, 적대자를 제거하는 제거법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세속적이고, 현세이익적인 주술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필요불가결의 도구요, 원시적 종합과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후대에 와서 일부의 브라만계급 사이에서는 주술을 단순한 생활수단 이상으로 철학화하고 속세간의 고락을 초월한 종교적 쾌락의 경지에 이르는 종교적인 수행의 한 단계로 삼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옴(Om)에 대한 종교적인 탐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불교 이전에 사용되었던 주술은 베다 본집(本集)에서 브라만시기 까지는 현세이익의 달성을 위하여 주술을 사용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우파니샤드시기에는 상류사회계급에서 종교적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법의 목적으로 주술을 사용하는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러한 주술은 밀교적인 신앙사상의 맹아기, 곧 밀교의 기원이 시작되는 전조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베다의 呪文(Candas)이 브라마나시기를 거쳐서 우파니샤드시기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종교적 경지에 도달하려는 수행법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이 시기의 종교적 신앙형태가 점차 내면적으로 승화되어 마침내 밀교적 신앙형태로 발전·변용하게 되었다. 즉 주문(呪文)이 주술(呪術)로, 주술(呪術)은 주법(呪法)으로, 주법(呪法)· 주(呪)· 명주(明呪)가 진언(眞言)· 다라니(陀羅尼)로 변용 발전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상황이 밀교성립의 외형적 조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근본적인 동기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밀교가 성립하게 된 보다 근원적인 동기는 불교 자체의 교학적인 발전에 있었다.
2. 교학적인 측면 - 교리사적인 입장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이론적이며 교학적인 쟁론(爭論)의 불교에서 탈피하고자 일어난 새로운 불교로써 실천을 중시는 대중불교운동이었다. 그 중심사상은 대승보살정신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실천을 강조하였지만 그 일면에는 부파의 교리중심적 불교처럼 교학적인 면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대승 중·후기에는 실천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교학적으로는 더욱 진부한 모습을 보였다. 이로 말미암아 대승불교 는 이론중심에 치중하게 되다보니 이에 또다시 고도의 실천불교가 표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밀교의 교학이며 실천체계였다.
소승불교의 교리적 체계와 대승불교의 실천적 교학을 더욱 발전시켜 체계화하고 상징화하여 강한 실천력을 내세운 것이 밀교였다. 그래서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면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특히 대승의 교리를 실천적 교학으로 더욱 발전 체계화하였는데, 성불의 경지를 구체적으로 상징화하고 이를 수행하는 실천방편과 교학을 의궤로써 조직화·구체화·도식화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의궤작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 원시·대승불교 내에서의 성립·발전-
주술적인 요소를 부정했던 초기불교 중에서도 호신용의 주구(呪句)로서 허용된 파릿타(paritta)와『법화경』『반야경』등의 대승경전 속에서 설해지고 있는 다라니도 밀교의 원형적인 요소이다.
원시경전 중『장아함경』제20경인「대회경(大會經)」, 제32경「아탁나지경(阿咤那智經)」과『율부』의 '독교설주(蛇咬說呪)',『잡아함(雜阿含)』의 '당두명호(幢頭明護)' 등, 신명(神明)의 수호(守護), 양재초복(攘災招福)의 상상은 비밀불교의 모태라고 칭할만한 것으로서 후세에 편찬된 명호집(明護集-Paritta)과 함께, 당시 일반 재가신자의 신앙 일부를 형성하였다. 이것이 후세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아서 비밀불교를 낳기에 이르렀다.
초기불교 시대의 일반 재가인들은 출가자들과 같은 어렵고 청정고매한 수도생활(修道生活)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현세안락(現世安樂)과 양재초복(攘災招福) 등의 신앙적인 기원심(祈願心)에서 밀교적 신앙이 발단되었다. 이러한 기원심은 불교가 발전하면서 변용을 거듭하여 원시불교시대에는 주술이 석존으로부터 배척되기도 하였으나, 그 후 다시 주법으로 묵인되다가 드디어 불교 속으로 수용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수용과정은 대승이후 밀교성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초기 대승불교의 시기에는 반야경(般若經) 계통의 공사상(空思想)을 주축으로 하는 용수(龍樹-Nagarjuna)계의 중도사상(中道思想)이 나타났었는데, 이 학파를 중관학파(中觀學派)라고 하였다. 중관학파에서는 인간의 심성이 본래 맑고 깨끗하다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과 '공사상'(空思想)의 입장을 조직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중관계에서는 아직 개인의 심식(心識)에 관한 연구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중기에 오면,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유사상(有思想)을 주축으로 한 무착(無着-Asanga), 세친(世親-Vasubandhu) 등이 중심이 되어 중생의 일심(一心)을 중요시하는 '심식설'(心識說)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학파를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라고 하는데, 밀교는 중관과 유식학파의 중심사상을 동시에 계승 발전시켰으며, 아울러 그 양학파(兩學派)의 결함을 보완하여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밀교는 화엄경이나 법화경의 사상을 계승하고 기신론(起信論)의 진여 연기설(眞如緣起說)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특성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밀교성립의 결정적 배경은 수많은 존격(尊格)의 변화와 함께 도상(圖上)에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점이다.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석가여래가 중심이 된데 반해 대승불교에서는 간다라 조각에서 알 수 있듯이 관음·문수·미륵 등의 새로운 보살 그룹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5세기 경이 되면 특히 '관음'은 다양한 변화를 일으켜 십일면·천수·불공견색 등 특이한 양상을 가진 변화관음(變化觀音)이 성립하여 많은 밀교경전 속에 설해지게 된다.
또한 금강계만다라의 16보살 가운데 금강법(金剛法)· 금강보(金剛寶)· 금강리(金剛利)· 금강당(金剛幢) 보살이 대승불교와 친숙한 관음·허공장·문수·지장이 밀교적으로 변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금강계만다라는 향, 노래, 무용 등 불(佛)에 바치는 것까지 의인화해서 금강향(金剛香)· 금강가(金剛歌)· 금강무(金剛舞) 등의 존격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종래에 있던 것을 새롭게 살려가는 것이 밀교의 커다란 특색의 하나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밀교경전이라기고 한정하기는 어려우나 4세기 경 성립한 것으로 보이는『금광명경(金光明經)』(담무참譯)과『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불타발타라譯)도 사방사불(四方四佛- 아촉·보상寶相· 무량수無量壽· 미묘성微妙聲)을 설하고 있는 점에서 후세에 만다라가 성립하는 데 기여한 의의가 크다.
『대일경』권제1「입진언문주심품」1에 보면, "보리심을 인, 대비를 근본, 방편을 구경으로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곧 밀교가 방편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밀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작법과 의궤는 곧 현세이익과 성불을 위한 방편교설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편은 후기밀교, 즉 무상유가밀교 가운데 '방편·父탄트라'로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편은 밀교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미 석존께서도 '방편'을 택하셨고, 대승불교에서도 방편은 중생구제의 선교방법(宣敎方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석존의 '방편'은 밀교에서 말하는 '방편'과는 조금 그 의미를 달리하는데, 석존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교설의 내용을 달리하셨음을 가리켜 이를 '방편시설(方便施設)'이라 하는 것이고, 밀교에서는 근기에 따른 교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佛身)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수행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내포하면서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방편'이었다. 석존은 중생들의 '깨닫는 능력[機]'을 점진적으로 성숙시켜가서 마침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방법론을 불교에서는 방편시설(方便施設)이라고 부른다. 방편(方便-upaya)은 '接近한다'는 말이고, 시설(施設-prajnapti)은 '알아내게 한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방편'은 밀교는 말할 나위가 없고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행하여졌던 보편적인 교화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석존의 방편시설'은 설교방법의 측면에서 '방편'이라면 밀교에서 '방편'은 실천수행의 측면, 수행작법의 측면에서 '방편'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대승에서도 '방편'이란 말이 쓰였는데, 이것이 밀교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방편'은 원래 대승경전인『법화경』등에서 '사람들을 잘 구제하는 수단'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방편은 그러한 점에서 실용적(實用的) 혹은 정적(情的)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후에는 '바른 지혜'를 가리키는 반야와 한 쌍이 되어 교학화되었다. 즉 '방편'은 후기밀교로 대표되는 무상유가밀교 가운데 하나인 '방편·부탄트라'로 전개되었다. 감각을 강조하고 모든 사물을 어떤 심볼로 상징하기를 좋아하는 밀교에서는 이러한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이 이원론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로서, 남녀로 치환되어 '方便탄트라'는 '父탄트라'로, '般若탄트라'는 '母탄트라'로 등치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방편과 반야는 남녀의 합일로 이해되어 남녀성교의 타락된 면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어쨌거나 밀교적인 요소가 중요한 위치를 지니게 된 것은 역시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서이고, 밀교가 밀교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중기밀교부터이다.
특히 4세기 전반에 찬드라굽타에 의해 흥기한 굽타왕조는 갠지스강 중류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인도의 거의 전역을 지배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예로부터 전해오던 씨족제에 대신해서 농촌에 기반을 둔 사회기구가 확립되었고, 이전부터 있었던 바라문교는 여러 신들과 민중의 일상의례를 내포한 힌두교로 새롭게 재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원래 인간의 근원적인 고뇌의 구제에서 출발한 불교도 신자들의 현실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힌두교와 중복되는 다양한 민중불교의 요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병을 치료하는 것, 장수하는 것, 비를 멈추게 하는 것, 비를 내리게 하는 것 등 현실적인 요구를 설하는 다라니경전(陀羅尼經典), 제존(諸尊)을 대상으로 하여 공양하고 관상(觀想)하는 일군(一群)의 밀교경전은 이 시대의 산물이다. 이것이 밀교 초기에 나타난 잡밀의 모습이다.
어쨌든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힌두교의 부흥과 더불어 불교 내에도 의례(儀禮)와 도상(圖上)에 중점을 둔 밀교적 요소가 점차 농후해지게 되었고, 6세기 경에는 진언(眞言)· 인상(印相)· 만다라(曼茶羅)의 대부분이 정리된『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이 나오기에 이른다.
밀교의 기원을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 본다면, 대승불교가 여러 조건하에서 성립되었듯이 밀교 또한 복잡한 환경 속에서 태동하였다 할 수 있는데, 밀교의 복잡한 성립배경은 다음과 같은 학설로 설명될 수 있다.
① 인도 고대문화 기원설 (印度 古代文化 起源說)
② 초기 불교내 성립 및 비전설 (初期 佛敎內 成立 및 秘傳說)
③ 대승불교내 성립설 (大乘佛敎內 成立說)
<법경 / 법장원 밀교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