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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 존재의 연원을 알고 싶어서 명상을 했습니다.
사실 명상을 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존재의 연원이 궁금한 편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진지하게 마음이 들더군요.
명상 중에 삼각형이 보이면서 '트라이어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찾아보니 '3화음'이라는 음악용어이더군요.
삼각형과 관련된 체험을 많이 하고 눈알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프리메이슨의 에너지와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겠더군요. 프리메이슨의 영적 파워는 진리를 왜곡한데서 출발했기에 어느 정도는 진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요. 그들의 삼각형과 눈알은 원래의 권능에 못 미칩니다. 그들 나름대로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프리메이슨에도 있고 신지학에도 있으나 이들은 모두 왜곡된 체계로 저 개인으로 생각합니다. 근거를 말하라고 하면 난감합니다. 저는 논문을 쓰는 게 아니기 떄문입니다.
개인적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에게 진리가 있다고 하여도 수직적 체계를 강조하는 것은 어둠이 진리를 사용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의 계층적 모습이나 하이어라키를 강조하는 신지학은
모두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도 닿아 있습니다. 신의 고귀한 부분에서 나온 자는 브라만으로 발과 같은 부분에서는 수드라라는 천민이 나왔다는 식으로 영적으로 '수직 체계'를 합리화합니다.
이 모습이 프리메이슨과 신지학에서 보입니다.
특히 신지학은 영성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다수의 각성을 유도한 측면이 있지만 이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수직적'인 현대인의 코드에 부합되었기 때문이지 현대인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어쩌면 신지학을 만든 자들을 지원했던 영적 존재들은 '영성'이라는 말이 크게 떠오른 지금을 위해 곁가지만 보여주고 본래의 것은 숨겨둔 게 아닌가 하는..곁가지만 열심히 파고들어가라는 의도가 있지 않나...
진리는 하나를 알려주고 그 하나를 마스터하여 둘로 나아가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연장선에 둘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둘입니다.
진리는 하나를 알려주고 확장되어 그 확장된 만큼 둘을 배워가라는 배려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은 같다고 말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하여 연민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만의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민은 평등하지 않기에 발생합니다. 완전한 평등...근원의 평등한 필드에서는 연민조차 평등한 필드를 굴절시킨 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명상을 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존재의 연원이 궁금한 편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진지하게 마음이 들더군요.
명상 중에 삼각형이 보이면서 '트라이어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찾아보니 '3화음'이라는 음악용어이더군요.
삼각형과 관련된 체험을 많이 하고 눈알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프리메이슨의 에너지와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겠더군요. 프리메이슨의 영적 파워는 진리를 왜곡한데서 출발했기에 어느 정도는 진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요. 그들의 삼각형과 눈알은 원래의 권능에 못 미칩니다. 그들 나름대로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프리메이슨에도 있고 신지학에도 있으나 이들은 모두 왜곡된 체계로 저 개인으로 생각합니다. 근거를 말하라고 하면 난감합니다. 저는 논문을 쓰는 게 아니기 떄문입니다.
개인적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에게 진리가 있다고 하여도 수직적 체계를 강조하는 것은 어둠이 진리를 사용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의 계층적 모습이나 하이어라키를 강조하는 신지학은
모두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도 닿아 있습니다. 신의 고귀한 부분에서 나온 자는 브라만으로 발과 같은 부분에서는 수드라라는 천민이 나왔다는 식으로 영적으로 '수직 체계'를 합리화합니다.
이 모습이 프리메이슨과 신지학에서 보입니다.
특히 신지학은 영성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다수의 각성을 유도한 측면이 있지만 이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수직적'인 현대인의 코드에 부합되었기 때문이지 현대인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어쩌면 신지학을 만든 자들을 지원했던 영적 존재들은 '영성'이라는 말이 크게 떠오른 지금을 위해 곁가지만 보여주고 본래의 것은 숨겨둔 게 아닌가 하는..곁가지만 열심히 파고들어가라는 의도가 있지 않나...
진리는 하나를 알려주고 그 하나를 마스터하여 둘로 나아가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연장선에 둘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둘입니다.
진리는 하나를 알려주고 확장되어 그 확장된 만큼 둘을 배워가라는 배려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은 같다고 말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하여 연민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만의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민은 평등하지 않기에 발생합니다. 완전한 평등...근원의 평등한 필드에서는 연민조차 평등한 필드를 굴절시킨 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최초 이집트 지식을 사용하고 그후 프리메이슨이 성당건축 지식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다 외곡을 이르켜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부분속에 낮은 진리는 숨어있고 왜곡에 의해 다시 재창조 했을 뿐 입니다.
삼각형은 초원자에서부터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또 삼태극에 까지 수의 진실이 창조의 기하학이 숨어있습니다. 메타트론 기술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문양이나 상징적인 기술들은 모든 신비 비전에 나타나있습니다.
일개의 원주민 추장 높은 경지에 있는 샤먼도 다른 비전들과의 닫쳐있는 사항에서도 그들은 공통적인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긍극의 우주의 중심은 바로 주관적인 자기 자신 않에 위치 한다 라는 것처럼 깨달아 가게 되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보편적인 대지혜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