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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종교의 가르침, 사상은 바로 잡아야 하며  교의 사상이 우리 인류에 끼친 해악은

실로 엄청나며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중 하나이고 특정종교를 비방을 목적은 아니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기독교 죄악사 ※출처: http://xbible.com.ne.kr  





※참조: 한국 반종교 클럽: http://kr.club.yahoo.com/jinguja






67589 | 2006-08-18
추천 : 42 / 신고 : 1 | 조회 : 3602  | 스크랩 : 10





기독교 죄악사






국내의 한 원로목사가 펴낸

자성록(自省錄)<기독교의 죄악사 上,下>는

과거의 기독교도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반성 뿐 아니라 교리 문제까지 지적하며

근본적 수정을 촉구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저자 조찬선(82) 목사는 일본

도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

이화여대, 목원대 교수, 전국 기독교학교 교목회장,

미국연합감리교 목사 등을 지낸 원로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그는 "기독교의 죄를 폭로해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혁명적인 개혁을 통해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게 하고자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필자가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라즈니쉬의 기독교 비판내용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한 사람은 기독교 내부에서, 한 사람은 기독교 외부에서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큰 차이는 존재한다. 조찬선 목사는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라즈니쉬는 기독교 자체를 날조와

왜곡의 역사 위에 세워진 거대한

미신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조찬선 목사의 자성록을 들어 보자.







" 사실 기독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독교는

타종교를 무시하고 정복한 대표적인 종교였다.

예를 들면 천주교가 '선교 복음화'라는 미명하에

중남미 대륙으로 들어가서 원주민들에게 범한

침략,약탈,살인, 파괴, 그리고 정복의 죄과는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가?







또 원주민들이 쌓아올린 그 찬란했던

잉카(Inca)문명, 타이노(Taino)문명,

아즈텍(Aztec)문명 이라크의 바빌로니아문명 등을

말살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죄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그곳을 복음화시켰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하지 않는가?







도대체 그러한 선교는 누구를 위한 선교였을까?

자기들의 영토확장을 위한 선교였을까?

아니면 진실로 원주민을 위한 선교였을까?

어떤 이유의 선교였든지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상대방을 위한 선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온 청교도들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죄악은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가? 청교도들은 자기들의

신앙의 자유는 존중할 줄 알면서도 타인,

즉 원주민들의 신앙의 자유는 부정하고

개종을 강요하였다.







청교도들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말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는 "자유와 문명과

종교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서진(西進)하는

찬란한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숲 속에 사는 야만인들에게

그들의 숲과 강과 땅을 빼앗은 것은

당연지사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선교는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주로 타인종, 타문화, 타종교를 폭력으로

정복하거나 말살하고 자기들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살인, 강도 행위를

일삼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북중남미 원주민들의 오늘의 운명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즉

원주민들은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멸종되어 가고 있다.

총칼과 성경을 들고 온 기독교인들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선교란 이름으로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들을

말살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지금도

무공해 자연 속에서 태평세월을 노래하며

그들이 쌓아올린 문화와 문명과 신앙 속에서

마음껏 행복과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을 것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그들의 문화나 문명은 서구인들의 문화,

문명처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남은 그들의 후예들은 지금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도 닮지 않고 속엔 야욕만 가득 찬

기독교인들이 복음전파란 미명하에 끊임없이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비극인가?



지금까지의 기독교 선교는 대부분이 불행과

혼란을 가져다주는 종교의 역할을 했을 뿐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건설한 미국 땅에서 원주민들은

지금도 사회 밑바닥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가 들어간 곳마다 그 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진실로

고통과 박해와 죽음을 뜻하는 종교였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30년 전쟁,

천주교의 개신교 말살작전, 종교 재판소,

기독교의 유대인 차별과 학대,

회교도들과의 충돌 등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전쟁과 충돌이 있었을 뿐 평화는

진실로 찾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여 왔는가를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극소수의 예외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복음전파나 선교사업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천주교의 교황 체제와 조직적이고도

엄격한 명령 하에서 금력과 무력으로

타민족, 타인종, 타종교, 타영토를 강제로 정복하고

그 위에 천주교를 올려 놓은 것이 바로

천주교의 발전사요, 팽창사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개신교도 그런 면이 많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천주교가 행한 선행(善行)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단 그 공적과

죄악을 비교할 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들은 인류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너무나 큰 죄악을 남겼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와 개신교, 즉

기독교의 발전은 주로 타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음을 사실(史實)이 증명하고 있다.

숫자로 나타난 중남미의 실태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선교라는 미명하에 무력으로 그 세력을 팽창시킨,

호전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침략하였던

기독교는 예수 없는 기독교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또 처형하는 종교였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을 자각한 기독교는

180。의 정책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즉 피상적으로라도 평화, 사랑, 희생,

봉사 등을 앞세워 과거의 추했던 모습을 감춰버리고

미소 짓는 가면을 써야 했다. 짙은 화장도 해야 했다.







천하에 없는 선남선녀로, 또는 천하에 없는

미남미녀로 보이게끔 가장을 해야 했다.

신부와 수녀들의 우아한 옷차림이나

성직자들의 의상은 일종의 고차원적인 화장술이다.







마치 창녀가 숫처녀로 가장한 것처럼

사기극을 벌여야만 했다. 살인강도가

성직자의 가운을 훔쳐 입은 것처럼

어색한 연극을 연출해야만 했다.

전형적인 위선과 기만의 표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과거사를 모르는 대중은 물론

교육 미달의 성직자들까지도 그 가면에 속아서

기독교를 항시 사랑, 평화, 희생,

봉사의 종교로 착각하고 있다.

착각한 그들에게 기독교의 정체를 알려준 사람이

도리어 이단이요, 적그리스도라고 화를 낼 지경에 이르렀다.







조직적인 세뇌공작과

미소작전이 100%적중한 셈이다.

현상과 본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본질 자체는 '예수의 사랑'이다.

그러나 기독교역사를 보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사랑'의 정신과는 상반된 '증오'와 '탐욕'이다.







이는 전달과정에서 빚어진 일부

타락한 성직자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일부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 일부가

기독교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콜럼버스와 천주교도들의 만행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에게는 악마 그 자체였다.

그를 수 차례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던

원주민들에게 은혜를 오히려 원수로 갚았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천주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구실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원주민들은 잔인하고 욕심이 많고

타락한 영혼이기에 이들을 천주교 신앙으로

무장시켜야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 방법으로 노예들을 합숙시켜 남자들은

금을 채굴시키려고 광산으로 보냈고,

부녀자들은 땅을 개척하여 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이는 원주민들에게는 가혹한 중노동이었다.

노예 부부가 함께 거하면 아기의 출산으로

노동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여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들의 식사는 잡초였다.







그들은 동물로 취급되었는데, 아이가 태어나

산모의 영양부족으로 젖이 나오지 않아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콜럼버스 일행은

복음전파보다는 원주민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살인강도집단으로 변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원주민들의 종교와

문화를 파괴하고 원주민 말살작전을 전개하였다.

또 살아남은 원주민들 가운데 건장한

사람들을 생포하여 노예로 팔아 돈을 챙겼다.

이러한 콜럼버스에게 신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일에 「성자」라는 칭호를 주자고

교황에게 청원서를 보냈다니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하고 아이러니한가?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백인천주교인이란,

곧 악마, 살인자, 약탈자, 배신자,

강간자라는 뜻밖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십자가는

살인마 집단의 상징으로 보였을 것이다.





천주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원주민들을 잡아 압제하고 고문하고,

약탈, 강간, 방화, 살인 등을 자행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선교요, 복음화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같은 것은 없었다.





천주교는 대개 이러한 방법으로

세계 복음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1,500년도 초기에 유럽에서 온 천주교인들은

남미 페루 지방 일대에서 840~1,35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다.

그것은 그 지방인구의 94%였다.

또 그들은 16세기 중에 중남미에서

6,000~8,00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고 그 학살은 계속되었다.





기독교 침략자들은 가는 데마다 교회를 짓고

성경을 들고 기도하면서 선교하였다.

자기들의 침략 행위를 개척과 발전이라는

미명과 기독교 선교라는 명목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약 350년 동안에 유럽의

네 배가 넘는 광대한 땅과 자원을 빼앗고,

1억 2천만의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북중남미를 정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책임 있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사죄한 적이 없다.

그렇게 무자비한 침략행위에 성직자들이나

교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협조하였는가 반성해야 한다. 더 많은 땅을

빼앗기 위하여 죄 없는 원주민을 학살하고

돌아온 살인마들을 축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 문화와 종교 말살을 선두 지휘하고

잉카나 마야문명의 자료를 불태워 버린 행위나

강제 개종시켜 온 신부들이나

목사들의 죄를 누가 물을 것인가?





침략자들이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죄를

인류 전체에게 속죄하여야 한다.







특히 자기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우수한 인종이지만 원주민들은

무식한 야만인이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은 것은 당연하였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







또 무식한 야만인에게 복음을 전달하여

천주교에 귀의할 수 있게 하여 주었으며,

선진 서구 문명을 소개하여 주었다는 변명을

지금도 계속하는 비인도적인 인간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양심 유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의 출정을 역설했던

성 버나드의 설교를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전투사로서 이교도들과 싸우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다.

그러므로 안심하고 싸우기 바란다.







악인을 처형하는 것은 살인이 아니고

악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은 악한 일을 하는 자들에 대해

주님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 종군하였던

프랑스의 한 성직자가 쓴 수기(授記)의 일부도 소개한다.



" 예루살렘의 큰 거리나 광장 등에는

사람의 머리나 팔, 다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십자군 병사나 기사들은 시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성전이나

회랑은 물론이요, 말 탄 기사가 잡은

고삐까지 피로 물들었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모독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졌던 이 장소가 그들의 피로

씻겨져야 한다는 신의 심판은

정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찬양할 만하다."





이것이 사랑과 자비와 희생정신으로

충만한 복음을 전파하는 성직자의 수기이다.



교황이 십자군을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군은 패하고 말았는데

그렇다면 이는 알라신과 여호와 신의 대결에서

알라신이 승리한 것을 뜻하지 않는가?





즉 회교의 신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신보다

적어도 그 당시는 더 강했거나 유능했다는 증명이 된다.



또 만일 교황들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거짓말을 선포하였다면 그들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뿐만 아니라 200년 동안이나 수많은

살인극을 연출하였으니 그 죄악이야말로

천지창조이래 최대 최악의 잔인한 죄가 될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하늘과 하느님을 기만한 죄는

인류역사상 너무나 잔혹한 범죄이기에

어떠한 회개와 용서로도 씻어질 수 없는

악마성품을 소유자한 집단만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이었다.







그렇다면 교황들도 전범재판에

출두하여야 된다는 말도 나옴 직하다.

그리고 교황무류설(교황무오설)은

자동적으로 무효화될 것이다.







▷ 청교도들의 죄악

앞에서 언급한 천주교도들이 중남미 지역에서

원주민을 살상했다면 북미대륙에서는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라는 미명하에 역시 1억여명의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도륙내지는 학살을 자행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였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지금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결국 천주교도나 개신교도나 잔인한 침략,

약탈자 근성에 있어서는 피차 일반인 셈이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은혜를 원수로 갚았듯이

청교도들 역시 처음에 북미 대륙에 정착하여

어려웠던 당시 원주민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그들의 세력이 커지자 도리어 원주민들을

무차별 살상하는 악마로 돌변하였으니

그 점에서도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사교로 생각했던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원주민을

단순히 이단으로 취급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나 영혼조차도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특히 성직자들이 그것을 강조하였으며

그런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지침이

그 맹종자들의 신념이 되었으니

그들의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중남미 지역에서의

천주교들과 같이 북미지역 청교도들도

그러한 철저한 종교적인 독선을

유일 절대적인 것으로 북미대륙에 정착시켰다.







기수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성직자들이었다.

여기서도 종교가 권력과 결탁해서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약 300년 동안 최소한 1억이상의 원주민들과

또 원주민들의 식량의 근원이었던 야생들소

6,000만 마리를 무차별 학살하였다고 한다.







결국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나라를 빼앗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강탈하였다. 토지를 만인의 소유로 믿었던

에덴의 아메리카에 기독교 침략자들이 들어오자

낙원은 살인이 자행되는 지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우매하고 삿되고 음흉한 자들을 교화시켜

낙원인 에덴동산으로 귀의시켜야 할

성직자와 크리스쳔이라는 위선자들이

그들만의 순수하고 청순한 낙원을

철저하게 파괴시킨 인륜과 인류에 역행하는

반역자짓을 일삼은 것이다.





그리고 쓸모 없는 지역을 수용소로 설정하여

살아남은 원주민을 수용해 버렸다.

현재 백인의 평균수명은 76~78세에 달하고 있는데,

원주민의 평균수명은 아직도 40세 중반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가?





기독교인들은 총칼로 빼앗은 땅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의 공급을 위하여

약 300년 동안에 아프리카에서

1,200~1,500만 명의 흑인들을 잡아와

주로 남북아메리카와 서인도지방 등에 팔아 버렸다.

노예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치부(致富)에 열중한 것이다.





이들이 학살한 원주민들은 히틀러가 학살한

유대인보다 몇 십배가 되는 엄청난 숫자인데

양심적인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아무도 인정하지도 않고 문제삼지도 않는다.







히틀러나 스탈린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 원수들까지 찾아가서 추모하고

학살자들을 비난하며 재판까지 하면서,







왜 북중남미에서 희생당한 원주민들을 위해서는

찾아가는 사람도 없고 학살자를 비난하는 사람도 없으며

그들의 한에 맺힌 억울한 영혼을 달래주는 추모행사도 없는가?

전지전능하신 우주의 심판자는

왜 아직까지 이 사건을 심판하지 않는 것일까?







▷ 종교 재판



종교재판소 중에서도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 스페인의 종교재판소였다.

종교재판소에서의 처형 결과

2,000만명이었던 스페인 인구가 200년 후에는

600만 명으로 감소되었다고 하니

종교재판소의 횡포가 가히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87년 11월 10일자「재림뉴스」(p2)는

천주교의 종교재판과 개신교 박해를 통해서

순교당한 신도 수를 약 5,000만 명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개혁자들도

이러한 악행을 범하였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은 춤췄다고 투옥하고, 설교를 들을 때

웃었다고 투옥했으며, 부모를 구타한 소녀는

목잘라 처형하고, 귀신 쫓는 마법사도 사형시켰다.







이와같이 그가 종교법원에서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던 4년 동안 그는 76명을

추방하거나 투옥하고 54명을 처형하였다.







유명한 사건으로 스페인의 학자 세르베투스는

니케아회의에서 결정된 '삼위일체' 교리와

칼케돈 회의에서 결정된 '기독론'과

'유아세례' 교리가 교회를 부패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며, 칼뱅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비판했다가 칼뱅에 의해

제네바 근교에서 불태워 죽임을 당하였다.







칼뱅은 세르베투스가 산 채로 서서

참혹하게 불타 죽기까지 다섯 시간 정도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총칼에 의해

일순간에 죽는 것도 아니고, 이글 이글

서서히 타는 불에 죽는 처참한 광경을 상상해 볼 때,







신앙의 잔악성은 그 어느 전쟁의 잔악성보다

수백 배 더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의 행위로 보아야 하고,

보복적 수단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칼뱅의 살인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통을 내세우기만 하면

살인을 해도 되는가? 정통은 살인 금지의

제5계명보다 더 크고 중요한가?







칼뱅은 그 자신이 절대시하던 성경을 무시하고

'이단'이란 죄목으로 수없는 살인을

감행하였으니 결과적으로 그 자신이

성경의 절대성을 무시한 게 아닌가?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칼뱅은

정통이고 세르베투스는 이단인가?

살인자가 정통인가? 이단인가? 결과를 보면

살인자가 기독교인을 죽인 것이 아닌가?





나와 다른 교리나 성경해석 등의

신앙체계를 가진 자는 모두 '이단'이라는

칼뱅식의 배타성과 독선의 결과로

오늘날 전 세계 개신교의 교파 수는

25,500개나 된다.







이 많은 교파가

'나는 정통, 너는 이단'이란 논리 하에서

서로가 대립, 배척, 반목하면서 이단과는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도 같이 드릴 수 없다고

거부하여 분열을 계속해 왔다.







기독교가 이와 같이 인류의 화합은 고사하고

기독교인들 자신들끼리도 끼리끼리 흩어지고

갈기갈기 쪼개져서 인류사회를 분열,

대립시키는 집단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은, 분열과

대립의 사회악을 조장할 뿐이다.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독선과 배타성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구촌은 지금의 북아일랜드처럼 교파 전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칼뱅은 개혁이란 업적은 남겼으나

동시에 교파분열이라는 씨를 뿌리고

배타적인 독선의 인습을 세운 과오를 범했다.







▷ 마녀 사냥



앞에서 라즈니쉬의 말을 빌어

얘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거기에 약간만 추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마녀로 찍힌 여성들의 재산은

고문관들의 상금으로 주어졌다. 마녀 사냥은

고문관들에게는 손쉽게 재산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인간의 붉은 피가

금화, 은화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녀로 찍힌 여인들은 화형당하거나 아니면

냄비구이(뜨거운 냄비 속에 넣고

찜 쪄 죽이는 형벌)이라는

아주 처참하고 공포적인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였다.







16세기 독일 농촌지역에서 마녀 처형은

사나이들의 호색적인 구경거리였다.

마을의 넓은 광장에는 수많은 음식점들이

줄을 이어 장이 섰고, 토산품집에서는

돗자리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완전

나체인 마녀들은 스트리퍼보다도

매혹적인 존재들이었다. 마녀 사냥이야말로

악마적인 행위 바로 그것이었다.





[이상 조찬선 <기독교 죄악사下> 중에서]







▷ 종교전쟁으로 인한 인류 살상



서구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이

거의 모두 기독교로 인한

종교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십자군 전쟁, 청교도전쟁, 100년 전쟁,

위그노 전쟁, 30년 전쟁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일어난 아일랜드 사태, 중동전쟁 등

끝없는 유혈 종교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여호와의 말씀인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고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세계의 모든 전쟁이

왜 하나님을 믿는 나라에서 일어났는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백성인 성민(聖民)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걸 보면 여호와를

닮아서 그러는 것 같다.[김종성 <여호와의 실수> p199∼217]





하나님을 내세워 하나님 백성,

성민(聖民) 운운하며 잔악한 전쟁을

성전으로 미화시키는 악랄한 행위는 어디에 비할 수가 없다.











▷ 고대 올림픽의 중단



올림픽이란 올림프스 산에서 제우스신을

제사지내는 하나의 제전행사(祭典行事)였다.

그러므로 여호와신을 믿는 기독교도들은

이단이라고 몰아붙여 올림픽행사를

중지시키게 된 것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국교로 정한 것이 391년이며, 그후

393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명으로

찬란했던 고대 올림픽이 단 번에 중단되어 버린 것이다.

※출처: [바이블의 진실] http://xbible.glad.to







기독교 죄악사



십자군 잔인성·선교사 만행·한국교회 배금사상

"기독교가 범한 과오 반성합시다"



기독교가 범한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기독교 내에서도 그동안 11세기 십자군 전쟁,

13세기 종교재판, 식민지 정복 등의

과오에 대해 심각한 자성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2000년 초, 교회의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국내 한 원로목사가 기독교의

오류의 자취를 자성하며 펴낸

'기독교의 죄악사'는

이 점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조찬선(82) 목사는

일본 도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이화여대·목원대 교수,

전국 기독교학교 교목회장,

미국 연합감리교 목사 등을 지낸

원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그는

"기독교의 죄를 폭로해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혁명적인 개혁을 통해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으로

되돌아 가게 하고자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가 진단하는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성직자들이 장사하는 집이다.



시장바닥의 상도덕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도 쟁탈전,



목회자의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한 십일조의 강요,



그것도 모자라 헌금자의 명단까지



주보에 싣는 파렴치한 행위들이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하느님과 예수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벌어진다.







또한 죄인을 양산하는



위선과 기만의 장소다.



목이 터져라 죄를 회개하고 통곡하는



통성기도는 위선과 기만의



연습시간에 불과하다.









교회가 기쁨의 장소가 아니라



신도들에게 죄의식만 심어주는 장소…



원죄론이 결국은 교인의 돈을 뜯어내려는



목회자의 협박 무기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18∼19세기 선교사들의 만행,

콜럼버스의 죄악상, 십자군의 실체와 잔인성,

면죄부의 사기성과 타락성, 교황의 부패상,

중남미 원주민의 슬픈 역사

두 얼굴의 청교도 등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이 속에 담긴 논지는 분명하다.







몇 기독교인의 타락만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신대륙 원주민의 학살 뒤에는

자신들만이 신의 가호를 받고 선택된

우수한 인종이라는 독선적 우월주의가 숨어있다.







기독교 교리에 본질적인 질문을 하자.



기독교만이 사랑과 구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인가?...!!!???







종교적 배타성과 독단성이



전쟁과 학살, 타문명 파괴 등



인류에 지대한 해악을 끼쳐왔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새로운 분쟁과



전쟁이 닥칠 수 밖에 없다.







개신교 신학자 칼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경해석만이 정통이고,

이와 조금만 달라도 이단이라 몰아쳐

투옥·추방·처형을 일삼았다.







그의 독선과 배타성을 꼬집으면서

현재 국내 장로교 교파만

130여개가 난립한 교파분열의 상황도

'칼빈주의'의 여파라 지적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  2000.







기독교죄악사 (상), (하)- 조찬선 지음(서울: 평단문화사, 2000)




제목부터가 섬뜩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부분적으로 인식해 왔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리하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의

잘못된 부분들이 잘 표현되어있다.

어찌 인류를 구원하고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야 할

종교가 다른 어떤 범죄와도 비교조차할 수 없는

극악의 죄악으로 가득차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는 무고하나 신앙인들은

죄가 많았다는 귀한 교훈을 주는 글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팔순을 넘긴

원로 신학자이며 목회자라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귀한 책임감을 느끼고

후배 기독교인들을 위해 의미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잘못이 없었으나

예수라는 이름으로 지난 이천년간 수많은

죄악이 자행되어온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의 모습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독교인을 위한 책이다.







비종교인에게 기독교를 비방하고

깎아내리기 위한 글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우리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두권의 책에서 기독교의 지난

이천년간의 역사의 부분들을 지적하면서

그때그때의 잘못들을 잘 표현하였다.





너무 어두운 느낌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남의 실수요, 남의 죄악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다시금 과거의

씻을 수 없는 죄악들을 망각한 채 반복할 수도 있는

죄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노학자의 지적들을

가슴깊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냉정한 잣대로 로마 카톨릭의 교황제도,

십자군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독교 치욕의 사건,

신대륙발견이라는 엄청난 비극-이것은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겐 커다란 발견이었으나

아메리카의 인디안들에게는 침략과 정복당함과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알리는 시작이었음-의 역사,









선교라는 명목하에 벌어졌던 기독교의

타민족문화말살 및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강요,

그리고 개신교의 시발자였던 칼빈이

얼마나 냉정하였으며 피흘리기를 자행한

중추인물이었는가?, 또한 오늘의 미국이 있게한

청교도들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들을 잘 지적하였다.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저자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다 동의할 수는 없겠으나

상당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저자는 마지막에 제시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지적한다.







열렬한 신앙은 좋으나 나의 신앙만 인정하고

다른 이의 신앙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배타성은

결국 세계평화를 깨고 인류의 하나됨을 막는

잘못된 요소가 될 것임을 원로신학자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저자가 말한 잘못된

모습들을 견지해 왔다. 적어도 한국의

기독교인은 지난 이천년간 서구가 가져왔던

'서구의 기독교의 시녀'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들이 전해준 것이

모두라 생각하고 이유없이 따랐고,

그들의 방식을 시금석으로 삼음으로

충성서약을 확고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들도 점점 원래 기독교의 모습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국인이 전해준

19세기 후반의 미국인의 기독교의 틀에서 벗어나

처음 기독교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신앙생활만큼은 식민지 사상에서 벗어나

처음 기독교의 모습을 찾고 여기에 다시

우리의 기독교가 되도록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지적하신

이땅에 예수가 들어오면, 조선의 예수가 되어야 하거늘,

주객이 전도되어 예수의 조선이 되었다라는  

한이 서린 탄식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기독교죄악사는 똑같은 실수가 우리

한국기독교인의 행동으로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과제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죄악된 모습을 보면서

그 죄를 저질렀던 당시의 그 사람을 정죄하지말고

바로 나도 이런 죄를 똑같이 반복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올바른 신앙관을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편협한 신앙태도, 나의 방식과 다르면

무조건 거부하고 정죄하는 태도,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수시로

남을 평가하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태도,

그리고 나와 종교가 다른 이들을

사탄의 후예로 몰아부치는 태도...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늙은이의 가슴에 간절하고 애절한 심정이다...






특별히 신학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하고,

열려진 성도들, 성숙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줄 것이나...





아직 기독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덜 된 이들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지도자와 함께 읽는다면 오히려

귀한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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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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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래

2007.11.28
13:41:10
(*.208.30.126)



그러나 예수는 무고하나 신앙인들은

죄가 많았다는 귀한 교훈을 주는 글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팔순을 넘긴

원로 신학자이며 목회자라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귀한 책임감을 느끼고

후배 기독교인들을 위해 의미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잘못이 없었으나

예수라는 이름으로 지난 이천년간 수많은

죄악이 자행되어온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의 모습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독교인을 위한 책이다.







비종교인에게 기독교를 비방하고

깎아내리기 위한 글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우리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두권의 책에서 기독교의 지난

이천년간의 역사의 부분들을 지적하면서

그때그때의 잘못들을 잘 표현하였다.





너무 어두운 느낌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남의 실수요, 남의 죄악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다시금 과거의

씻을 수 없는 죄악들을 망각한 채 반복할 수도 있는

죄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노학자의 지적들을

가슴깊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냉정한 잣대로 로마 카톨릭의 교황제도,

십자군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독교 치욕의 사건,

신대륙발견이라는 엄청난 비극-이것은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겐 커다란 발견이었으나

아메리카의 인디안들에게는 침략과 정복당함과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알리는 시작이었음-의 역사,









선교라는 명목하에 벌어졌던 기독교의

타민족문화말살 및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강요,

그리고 개신교의 시발자였던 칼빈이

얼마나 냉정하였으며 피흘리기를 자행한

중추인물이었는가?, 또한 오늘의 미국이 있게한

청교도들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들을 잘 지적하였다.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저자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다 동의할 수는 없겠으나

상당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저자는 마지막에 제시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지적한다.







열렬한 신앙은 좋으나 나의 신앙만 인정하고

다른 이의 신앙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배타성은

결국 세계평화를 깨고 인류의 하나됨을 막는

잘못된 요소가 될 것임을 원로신학자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저자가 말한 잘못된

모습들을 견지해 왔다. 적어도 한국의

기독교인은 지난 이천년간 서구가 가져왔던

'서구의 기독교의 시녀'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들이 전해준 것이

모두라 생각하고 이유없이 따랐고,

그들의 방식을 시금석으로 삼음으로

충성서약을 확고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들도 점점 원래 기독교의 모습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국인이 전해준

19세기 후반의 미국인의 기독교의 틀에서 벗어나

처음 기독교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신앙생활만큼은 식민지 사상에서 벗어나

처음 기독교의 모습을 찾고 여기에 다시

우리의 기독교가 되도록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지적하신

이땅에 예수가 들어오면, 조선의 예수가 되어야 하거늘,

주객이 전도되어 예수의 조선이 되었다라는

한이 서린 탄식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기독교죄악사는 똑같은 실수가 우리

한국기독교인의 행동으로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과제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죄악된 모습을 보면서

그 죄를 저질렀던 당시의 그 사람을 정죄하지말고

바로 나도 이런 죄를 똑같이 반복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올바른 신앙관을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편협한 신앙태도, 나의 방식과 다르면

무조건 거부하고 정죄하는 태도,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수시로

남을 평가하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태도,

그리고 나와 종교가 다른 이들을

사탄의 후예로 몰아부치는 태도...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늙은이의 가슴에 간절하고 애절한 심정이다...






특별히 신학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하고,

열려진 성도들, 성숙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줄 것이나...





아직 기독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덜 된 이들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지도자와 함께 읽는다면 오히려

귀한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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