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삶은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허공을 창조하고, 그 허공을 채우고, 다시 새로운 허공을 창조하고, 그 허공을 채우는 식의 지루한 과정이 아닙니다. 삶은 창의적인 과정으로, 이 과정 속에서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은 자각을 성장시킬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가지게 되며, 결국에는 하나님과 동일한 의식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만들어지고 있는 하나님이며,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신들이니라(요한복음 10:3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허공 속에 어떠한 것도 창조되기 이전에,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상상해보세요. 창조주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광활한 허공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특이점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창조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규칙이나 제약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께서 마음대로 규칙을 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는 여러분의 창조주에게 어떠한 도전과제였습니다. 여러분을 안내해줄 이전의 체험이나,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전혀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것을 창조한다면, 여러분은 다소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으며, 또한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창조주께서는 전체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니고 계셨으며, 자기 스스로 전체가 확장한 것으로 인식하셨으므로, 허공의 빈 공간이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창조주께서 자의식을 지닌 많은 존재들을 창조하셨으며, 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창조하라는 명령과 함께, 이들을 허공 속으로 보내셨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러한 존재들은 전체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그리고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어떠한 느낌도 지니지 못 했습니다. 또한 창의적인 노력을 인도해줄 이전의 어떠한 체험도 지니질 못 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외로움을 느꼈으며, 길을 잃을 가능성도 아주 높았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기억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정신적인 충격이 될 수 있을까요? 감각적인 체험을 박탈당하는 고문에 대해서도 들어보았을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혼자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급속하게 신경쇠약이나, 심지어 영구적인 정신 이상으로 이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후손들이 그러한 체험을 겪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창조주께서는 허공과 구별되는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구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그러한 구체 속에 어떠한 구조물들을 창조하셨으며, 그러한 구체의 성장을 안내해줄 창조의 원리들을 - 혹은 법칙들 - 제정하시게 되셨습니다. 삶의 토대가 마련되자, 창조주께서는 자기 초월적인 존재들을 창조하셨으며, 그들에게 “번성하여”,“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28).
이러한 존재들을 허공 속으로 내던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는 그들에게 어떠한 토대를 제공해주셨으며, 그 위에 쌓아가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받은 것을 증식시킴으로써, 그리고 창조주께서 정해놓으신 법칙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이들은 그렇게 할 수가 있었으며, 자기 통달을 통해 그들이 속해 있는 구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 초월적인 존재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구체에서의 삶을 통달하게 되자, 이들은 마스터가 되었으며, 다음번의 구체를 공동 창조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 그 구체 내에 존재하는 구조물들을 계획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더 큰 창조적인 자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들에게는 창조할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지침들이 주어졌으며, 한편 체험이라는 토대는 지니고 있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오로지 창조주만이 “아무것도 없는 것(無, 空)”에서 창조하게 되며, 이를 통해 그 외 모든 존재들에게는 창조적인 노력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창조하시며, 반면에 여러분은 창조주께서 정해놓으신 틀 내에서 자기감을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분이 공동 창조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된 목적은 자각을 지닌 존재들에게 자각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반드시 점진적이거나, 단계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어진 시점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느낌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느낌, 즉 자기감을 확장시킬 수 있는 상황을 체험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자기감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통합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구의 어린아이가 성장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며, 아이들에게 너무 빨리 성장하도록 강요하게 되면, 아이들은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를 체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일어나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으며, 삶에 대처하기도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유지될 수 있는 성장은 반드시 균형 잡힌 성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하자면, 분리된 정체성을 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을 한꺼번에 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정체성도 여러분에게 남아 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확장된 정체성으로 대체되는 과정의 결과로서만, 분리된 정체성을 버리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장이 너무 빨리 일어나게 되면, 안정감과 지속감, 심지어 모든 정체성마저도 상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장이 너무 느리게 일어나면, 특정한 삶의 방식에 너무 집착하여, 그러한 의식의 단계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것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가능한 최적의 성장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것들이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균형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모든 의식과 존재를 하나의 점으로 수축시킴으로써, 허공을 창조하셨습니다. 허공을 창조하심으로써, 형태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창조는 창조주께서 자신이 지닌 의식의 일부를 바깥으로 투사하게 되면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창조와 관련된 두 개의 기본적인 힘들, 즉 수축하는 힘과 확장하는 힘입니다.
수축하는 힘이 지배적인 힘이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렇게 될 경우, 아무것도 창조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허공으로 에너지를 투사하자마자, 수축하는 힘으로 인해, 그 에너지는 곧바로 중심으로 되돌아왔을 것입니다. 이제는 확장하는 힘이 지배적인 힘이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경우에는, 하나님 존재의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분출로 빠져나가, 곧바로 허공을 채웠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균형 잡힌 점진적인 성장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영혼들이 점진적으로 자각을 키워 갈 수 있는 적은 기회마저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으며, 두 개의 힘들 간에 조심스러운 균형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들이 서로 모순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를 상쇄시킵니다. 반대되는 것들이 만나면, 서로를 파괴하거나, 혹은 하나가 상대방을 파괴하며, 오로지 하나만이 남게 됩니다. 사실,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들은 상호보완적이며, 이 말은 이들이 서로를 보충해주며, 심지어 확장시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두 개의 힘이 존재할 때에만, 계속 유지될 수 있는 형태가 창조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구조물- 하지만 성장하는 구조물 - 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확장하고 수축하는 힘들 간에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힘은 반드시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이 서로를 상쇄시키지 않고, 서로를 견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형태의 세계가 창조된 목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이 둘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균형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균형은 역동적인 균형이며, 이로 인해 우주는 균형 잡힌 방식으로 더 높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기본적인 두 개의 힘들 간에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창조주라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앞에는 허공이 존재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원하는 무엇이든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최종적인 목표는 허공이 전체(Allness)와 다시 섞일 수 있도록, 허공을 강한 빛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어쩌면 엄청나게 많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허공 속에 창조할 수 있는 형태들은 엄청나게 다양하며, 그러한 것들 중에서 많은 형태들이 허공을 채우는 최종적인 목표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주를 계획하는 데에는 많은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창조주께서는 무제한의 힘을 지니신 무한한 존재이지만, 창조주조차도 어떠한 여러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형태의 세계에는 모든 것들이 형태를 지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형태는 다른 형태들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 독특한 형태는 허공과 구별되며, 다른 형태들과도 구별이 됩니다. 여러분이 익숙해 있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테이블을 설계하는 데에는 거의 무한할 정도로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테이블은 어떤 기본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의자와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의자와 유사한 테이블을 만들어, 그 테이블 위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이라는 개념은 의자의 개념과는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목공소에서는 테이블을 만들지, 의자를 만들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내 말의 요지는 형태의 세계에서 어떤 것을 설계하게 되면, 형태가 독특하다는 사실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말은 어떤 것이 동시에 두 가지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라 하더라도 어떠한 선택들을 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상상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 있지만,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창조하실 수는 없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창조하시고자 하는 우주의 형태를 결정하셔야 했으며, 어떠한 설계를 결정하시고 난 후에는 최종적인 목표, 즉 허공을 채워야 하는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이 일에 매달려야만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창조주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계가 유일한 형태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기본적인 설계가 다른 엄청나게 많은 세계들이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이 지닌 목적에서 벗어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즉시 허공을 채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전체와 분리된 허공을 창조한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 정적인 우주를 창조하실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도 분리로부터 시작하여, 다시 전체와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창조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께서는 최종적인 목표로 이어지는 점진적인 과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점진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과정을 설계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나는 여러분에게 이제 그렇게 해볼 것을 요청합니다.
여러분이 깨닫게 되는 첫 번째 사항은 어떠한 원리 혹은 법칙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것들이 질서 정연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줄 것입니다. 그러한 원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허공 속으로 보내진 한 줄기의 빛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 빛이 허공 속에서 계속 확장할 수는 있겠지만, 조직화된 어떠한 구조물들도 형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빅뱅의 이론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은 특이점 속에 응축되어 있었으며,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밖으로 확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 경과한 후, 최초의 폭발로 인한 혼돈 속에서 조직화된 구조물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한 구조물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구조물들이 왜 그와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을까요? 무작위적인 폭발 속에서, 왜 에너지가 계속 확장하지 못했을까요?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설명만이 가능하며, 그것은 조직화된 구조물이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어떠한 법칙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대의 과학은 물질 우주를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법칙들을 밝혀내고,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여러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이 무작위적인 과정으로 인해 생겨난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작위성(randomness)이 어떻게 일관된 법칙들을 만들어낼 수가 있나요? 선택을 통해, 여러 법칙들을 정해놓은 지적인 존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여러 법칙들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따라서 과학은 진실로 지적인 창조주가 존재하신다는 것을 지적해 왔던 것입니다.
이제 어떤 일관적이지 않은 법칙들을 창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만약 무작위성이나, 혹은 모순되는 것들을 허용한다면, 어떻게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수가 있을까요? 허공이 채워지기도 전에, 창조의 과정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반대 현상이 발생하여, 조직화된 구조물들을 파괴하고, 빈 허공으로 후퇴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오락가락하게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침이 되는 어떠한 원리들이 필요하며, 이러한 원리들을 통해 조직화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창조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제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한하신 창조주께서는 일관된 법칙들을 창조하심으로써, 형태가 서로 다른 많은 세계들을 계획하실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를 통해 허공을 채우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특정한 세상을 설계하기 위해,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선택들을 해야만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택들이 이루어지고 난 후, 비로소 이러한 형태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형태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이 세상은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창조주께서는 전체와 구별되는 분리된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기 위해 이 형태의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창조주께서는 허공과 구별되는 어떠한 구체를 창조하시고, 그 구체 속에 여러 구조물들을 창조하셨으며, 그리고 난 후, 자기 자신을 구체 속으로 자의식을 지닌 수많은 분리된 존재들로 투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창조주의 단순한 로봇이나, 복제품(크론)으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삶이라는 선물을 제공받았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의 개체성이 영원해지는 지점을 향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한시적인(temporary) 영혼으로 창조되었지만, 계속 성장해 감으로써,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이라고 불렀던 불멸성을 성취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끝마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게 될까요? 여러분의 창조주께서 정해놓으신 법칙들을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서, 여러분은 체험 혹은 자신의 법칙들을 정할 수 있는 의식을 지니고 있지 못하므로, 창조주께서는 여러분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법칙들은 여러분의 창의성 혹은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법칙들은 여러분의 성장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목표, 즉 전체와 하나인 불멸의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께서 정해놓은 여러 법칙들을 숙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며, 그러한 법칙들을 활용하여, 여러분이 지닌 제한된 정체성을 초월함으로써, 마침내 궁극적인 자의식의 상태, 즉 인간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식을 성취하고 나면, 여러분은 자신만의 허공을 창조하여, 그러한 구체 내에 여러분이 좋아 하는 법칙들을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창조주께서 정해놓으신 여러 법칙들을 숙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매번 다음편이 기다려 지는군요~~^^
저는 목현님글 뿐만이 아니라 이전의 수많은 메시지들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저히 달라졌습니다.
생각으로만 변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변화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차에 목현님 글은 그러한 저의 변화된 생각과 행동을 더욱 단단히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