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책에서 신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진아를 성스운 존재의 양식으로 말하지만 신은 우리가 신을 믿고 의지하면 소원들어주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끝없는 봉사를 하려고 우리를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無에 질려서 혼자있기가 외로워서 만들었을까요?
신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도 아니고 심판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빛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고 사랑의 소중함 또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신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다면 이 세상에 어둠과 두려움이라는 요소가 없어지겠습니다. 그러면 무한한 사랑이 지속될꺼 같지만 모든게 다 사랑으로만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흰색을 알기 위해서는 흰색과 구분되는 다른색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모든게 다 흰색이라면 색깔이라는 구분자체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사랑또한 그것을 사랑으로 알기 위해서는 사랑과 구분되는 두려움,고통 등 이 있어야 짧은 순간이라도 사랑을 맞이 할때 기쁘게 반길수가 있습니다.
물질세상에서의 모든 희노애락 또한 서로간에 구분되고 반대대는 개념들이 있어야 희,노,애,락 이라는 요소들을 알 수 있겠지요.
기도를 하며 간청을 해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건 그렇게 하는 모든 과정으로 우주가 있게 되며 신은 이러한 과정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우주가 존재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1.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2. 밥을 먹으려면 쌀을 씻어야 하고
3. 쌀을 씻고 밥솥에 올려놓고 전기를 가동시켜야 하며
4. 밥이 될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4가지 정도로 간단히 써놨지만 이러한 과정이 삶이며 우리 모두의 이러한 과정으로 우주가 존재할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고통도 없다면 우주는 움직이지 않게 되며 그것은 정지하게 됩니다.
1. 우선 생존욕이라는게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배가 고픕니다. 이 공복에 대한 고통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2. 배가 고프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지루함이라는 고통이 몰려옵니다. 그러면 신문,라디오,TV 등을 접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고통이 있어야 우리를 움직입니다.
3.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야겠다는 욕망이 생겨나면 그걸 못하고 참고 있으면 고통스럽기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참고 견디어 내는건 충분히 고통을 받으며 우리는 이 고통에서 움직이도록 되어있기에 빠져나가기 위한 수 많은 생각으로 책도 보고 명상도 하며 삶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고통이 없다면 우주는 정지해버립니다.
그리고 신을 믿고 따르고 기대는 과정에서 수 많은 고통을 느끼며 생겨나는 지혜를 가리켜서 불가에서는 "체득"이라고 합니다.
신은 우리에게 배움의 길을 안내하며 심심함을 탈피하기 위한 자신의 유희를 즐기는 것이지 창조자가 창조물에게 소원들어줄려고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 개념의 신은 안믿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과정이기에 이것에 충실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창조자는 창조물을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창조물의 소원들어주며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역할 하려고 만들었을까요?
제 글이 대단히 불편할수도 있겠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창조하는 기계들은 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서 만든것이고 오래동안 쓰려고 관리하는것이지 기계를 관리하려고 만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