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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견을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물질적인 두뇌의 산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존재 그리고 자기감(sense of self)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혹은 전자기적인 과정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존재로서, 육체라는 도구 속으로 들어온 것뿐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물론 이보다는 훨씬 복잡하지만,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빨리 이동하기 위하여, 두 다리로 걷기 보다, 육체가 차(車)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육체는 지구, 즉 물질 행성을 구성하는 짙은 에너지 속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육체와 아주 동일시하여, 육체가 자신이라고 여기며, 자신들의 능력은 육체가 할 수 있는 것에 국한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운전수가 자신이 차(車)이고, 자신은 차(車)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책에 마음의 문을 열면, 삶의 영적인 측면에 분명히 눈 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영적 존재로서, 잠시 육체 속에 머물고 있을 뿐이며, 육체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게 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육체 속에 머물고 있는 영적 존재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나는 영적 교사로서 지금까지 100년 이상 다양한 메신저와 단체들을 통해 가르침을 전달해왔습니다. 그러나 삶의 영적인 측면에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어떤 자아관이나 능력의 한계라는 덫에 아주 깊숙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아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육체가 전부라는 사고방식에 아주 심하게 빠져 있습니다. 지구 행성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장 기초적인 표현 수단이 육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육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구 행성에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육체가 할 수 있는 것에 국한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지구 행성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은 육체가 아니며, 또한 물질적인 두뇌도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여러 개의 측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이 밝혀온 것처럼, 현재 물질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질의 주파수를 뛰어넘는 어떠한 실체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마음의 일부, 자아의 일부도 어딘가에 틀림없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은 물질 우주를 벗어난 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 말은 육체 속에 머물지 않는, 혹은 육체에 국한되지 않는 여러분의 일부가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존재, 즉 여러분의 영적 자아 전체가 육체 속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전체의 존재 중에서 작은 부분만이 육체 속으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물질의 주파수가 지닌 짙은 밀도의 진동으로 인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이 멀어 있으며, 자기 존재의 더 큰 부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식적인 마음과 마음의 더 큰 부분을 연결해주는 고리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의 더 큰 부분은 영적 세계, 즉 물질세계의 주파수보다 더 높은 영역에 영원히 머물고 있습니다. 이 존재는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창조주 자체의 확장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는 지난 가르침들 속에서 신적 자아 (I AM Presence)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에게 직접 서약(covenant)을 받기 위해 산을 오르는 장면을 상기하실 것입니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나님에게 요청했으나, 하나님께서 주셨던 유일한 이름은 존재하는 나, 즉 “I AM” 혹은 “I AM THAT I AM” 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영적 존재와 창조주를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분의 영적 존재를 신적 자아 (I AM Presence)라고 명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어떠한 제약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쉽게 말다툼을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면, 두 번째 사람은 그 말을 했던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은 수학에서 사용되는 숫자처럼, 명확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똑같은 말이라 해도, 읽고 듣는 사람들 각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고, 실제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적 자아 (I AM Presence) 라는 이름도 전달하는데 어떤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전통 속에서,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성장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절대 변하지 않는 완벽한 창조주로, 저 하늘 위 어딘가에 계실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전능하고, 전지하다면, 왜 굳이 하나님이 변할 필요가 있을까요? 성모마리아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창조주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아주 오래전에 산에서 모세 앞에 나타나던 하나님, 즉 I AM 이나 I AM THAT I AM과 창조주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내가 매초마다 나 자신을 초월하는 것처럼, 창조주께서는 나보다 더 많이 초월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까지 창조주의 의식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대다수의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God)이라는 용어가 당초의 히브리어의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따라서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이 책에서 적극 활용하고자 합니다. "존재하는 나 (I am that I am)“는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Yod he wav he"의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할 수 없으며, “존재할 나 (I will be who I will be)"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사실 창조주는 모세에게 정해진 어떤 이름도 전하지 않았으며, 단지 ”나는 어느 때나 존재할 나“ 라고만 했으며, 이는 모세에게 준 처음의 두 개 계율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그리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Thou shalt not take unto thyself any graven image.)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는 순간, 참된 하나님, 즉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계신 살아 있는 하나님과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영적 세계에 존재하며, 여러분에게 신성한 존재로서 개체성을 부여하고 있는 신적 자아 (I AM Presence)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언제나 변함이 없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신적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 초월을 하고 있으며, 자기 초월을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여러분을 통해, 즉 여러분이 물질세계에서 행하는 체험과 결정을 통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신적 자아 (I AM Presence)에 대한 이야기보다, 존재할 존재 (I will be who I will be), 즉 생명의 강과 지속적으로 함께 흐르며, 우주가 더 큰 우주가 되듯이 영원히 더 큰 존재가 되고 있는 현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존재는 이 존재할 현존이 확장한 하나의 형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현존이 더 큰 존재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확장한 형태로서, 여러분을 물질세계로 내려보내게 된 것입니다.
성모마리아께서 말씀하셨듯이, 첫 번째 광선은 대개 하나님의 의지 혹은 하나님의 힘을 나타내는 광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광선이 첫째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광선이 창조의 과정을 처음으로 출발시켰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창조의 과정을 시작하게 했을 까요? 그것은 더 큰(MORE) 존재가 되고자 하는 추진력, 욕구, 즉 자기 초월에 대한 욕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닌 최고의 의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더 큰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이며, 초월의 의지이며, 또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이러한 욕구로 인해, 하나님의 힘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이 지닌 해석상의 차이 때문에, 첫 번째 광선이 지닌 역동적인 성질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광선이 의지와 힘을 상징하는 광선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이 광선을 지구에 표현되어 있는 의지 및 힘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구 행성에 표현되어 있는 것들은 대개 왜곡된 의지와 왜곡된 힘입니다. 그것은 첫 번째 광선이 지닌 참된 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구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흐르며, 끊임없이 피조물들을 초월을 하게 만드는 생명의 강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의도에 맞서 천상에서 반란을 일으켜, 이 세계로 추락해 있는 존재들은 더욱더 단절되어 있으며, 아직까지도 이들은 생명의 강과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강과의 연결이 단절되면, 삶의 근원이며, 삶의 목적이고, 삶의 원동력이며 기쁨인 자기 초월과 성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그 대신 성장과 자기 초월을 어떠한 위협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에 대한 위협일까요? 그것은 여러분 의 존재를 통제하는데 따른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생명의 강과 분리되면, 더 이상 흐를 수 없으며, 지속적인 자기 초월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지속적인 자기 초월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어떤 것을 붙잡고자 하며,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자 합니다. 시간을 멈추고자 하며, 강을 멈추게 하려 하고, 얼어 버리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인 존재의 바다를 향해 지속적으로 흐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의 삶의 거의 모든 면에 이러한 의식이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는지 알 수 있나요? 어떤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그것들을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며, 지배하고, 또한 시간을 멈추게 하려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는 문화 속에서 여러분이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이제 이해할 수 있나요?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지와 힘을 왜곡시킨 두 개의 다른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모마리아께서 설명하셨듯이, 모든 것은 알파와 오메가의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알파는 확장하는 것이고, 오메가는 수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속성이든 하나님의 속성을 왜곡시킬 때마다, 그 왜곡은 알파와 오메가의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의지(will)의 예를 살펴봅시다. 의지가 대체 무슨 뜻일까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의지는 창조적인 추진력의 표현입니다. 의지는 힘(power)과 짝을 이루게 됩니다. 왜냐하면 힘이 없으면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 자체도 반드시 의지와 짝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힘이 없으면, 어떤 특정한 형태를 창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과학에서 말하는 빅뱅이라는 개념을 예를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현재의 보편화된 상식에 따르면, 전 우주는 약 150억 년 전 어떤 시점에 특이점(singularity)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의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이 특이점 속에는 오늘날에 볼 수 있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들은 무용지물이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과학자들은 어떻게 150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났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이들이여, 과학자들은 현재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고 계산해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 우주가 확장하고 있는 속도를 대입한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우주가 확장하는 현재의 속도를 역으로 계산하여, 우주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을 계산해낸 것이며, 이는 우주가 오늘날처럼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확장한다는 가정 하에 계산된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것은 1차원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빅뱅이 일어났던 직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보면, 물질 입자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을 구성하고 있다는 아원자의 입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과학에 따르면, 빅뱅이 일어난 직후, 최초의 1/1000초 동안은 전혀 통제되지 않은 폭발, 정제되지 않은 팽창, 즉 말 그대로 힘의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지구에서 폭탄에 의한 폭발을 살펴보면, 이것은 통제될 수 없으며, 예기치 않은 팽창으로, 단지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낼 따름입니다. 내 말은 통제되지 않은 힘의 표현은 단지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만 만들어낼 뿐이며, 밖으로 밀려난 힘이 어떤 특정한 구조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구에서의 폭발이 물건들을 산산조각 내기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이를 폭발시키면, 처음 폭발이 일어난 후, 당연히 그 집은 다시 짜 맞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빅뱅이라는 이 최초의 폭발이 있은 후, 점차적으로 혼돈으로부터 벗어나 조직화된 구조를 만들어내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진실로 의지, 의도를 지닌 의지였습니다.
빅뱅이 통제되지 않은 어떠한 폭발이 아니라, 오로지 확장에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이 질서 정연하게 구축된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빅뱅의 이면에 어떠한 의지, 어떠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빅뱅이 통제되지 않은 폭발이 아니라, 더 큰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지, 하나님의 의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의지가 무엇일까요?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자각의 확장입니다. 이러한 확장이 어떻게 일어날까요?
그러한 확장은 자각을 가진 존재가 어떠한 의도를 구상하고, 그 의도를 실행한 후, 그 결과를 지켜볼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각과 자유의지를 지닌 한 명의 개별적인 존재로서, 여러분이 존재하는 목적은 자각을 활용하여 어떤 의도를 만듦으로써, 형태의 세계에 영향을 주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진 힘은 의도라는 모체를 통해 흐르게 되며, 결국에는 형태의 세계에 보이는, 인지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변화의 결과를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훈을 충분히 익히고, 통합하게 될 때, 다시 말해 어떤 의도를 정하고, 그 의도를 바깥으로 투사하여, 결과를 관찰하고, 통합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 자신을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존재, 즉 여러분의 영적 자아 전체가 육체 속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전체의 존재 중에서 작은 부분만이 육체 속으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
윗 글은 본문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제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중인 동생의 영혼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궁금하여..
영과의 채널이 가능한 분들께 부탁하여 입수했던 녹취록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영적인 세계에 문외한에 가깝던 동생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내용의 대화가 오고 갔기에..
위 본문 중에 기록된 " 여러분의 존재, 즉 여러분의 영적 자아 전체가 육체 속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전체의 존재 중에서 작은 부분만이 육체 속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
참고가 되리라고 느껴져 아래에 현실 삶에만 깊이 빠져 살았던 존재와의 영적 대화 전체를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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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뇌염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분 안되는데!” 이렇게 나왔어요.. 저한테
2 : “아! 안된다고?!”
1 : 네 ‘안된다고’ 이렇게 나왔어요
2 : 아 그럼 이 분은 가는게 답이라는 소리네
1 :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데..
2 : 나이가 53년생이니까 (1: 얼마 안됐네..) 지금 62살? 63살!
1 : 그런데 ‘뇌염에 걸렸는데’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어 그건 안되는데!’ 이게 나와요
2 : 응 이분 간다는 거지. 뭐 일어날 수 없다는 거지
1 : 응 그래도 선생님 말은 다 듣기는 했는데, 그렇게 나오네..
채널을 한 번 그래도 해봐요?
2 : 되면! 영혼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건 주관적으로 보는 거고,
객관적으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1 : 아니요 녹음 들어가실 거예요? 지금?
2 : 응
1 : 아니요 나는 그냥 편하게 이 상태로 가고 싶대요
더 이상 이 힘들고 어려운 거에, 찌들었다는 표현을 하거든요..
2 : 그냥 나오는 대로 해 봐!
1 : 거기에 내가 드러나고 싶지 않대요
그냥 이 상태가 너무 좋대요
2 : 아 그러시구나.
1 : 편하고 그냥 걱정 없고, 뭐하게 나가서 그 힘들게 어렵게 고생하냐고..
그냥 이 상태가 좋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2 : 그럼 어머니께 하시고 싶은 얘기는?
1 : 그 또한 아무것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2 : 형님께도?
1 : 모든 사람한테는 그냥 이 상태가. 내가 만족하기 때문에 따로 뭐라 드릴 말씀은 없다고..
단지 인간사(?)이기 때문에… 그것은 죄송하지만,
그것을 떠나서.. 나는 우주의 몸이기 때문에, 그냥 그 하나로 가면 되는 것이니까..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고. 너무 아파들 하지 마시고,
그냥 즐겁게.. 모든 것이..
모든 것이란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이에요!
2 : 예
1 : 모든 것이 왔다가 간다는 뜻으로 얘기를 하는 건데..
거기서는 제가 설명을 하면서 놓쳐버렸어요
그 뜻이었는데.. 그렇게 얘기하셨거든요..
근데 ‘내가 하나 후회되는 것은’ 잘해주지 못한 것이 있대요.
2 : 부인?
1 : 부인에게
근데 그러면서 조금 울먹이는 듯한, 그러한 거..
‘그 사람 한테는 내가 많이 좀 미안한데..’
어! 근데 이런 말씀을 하시네.. “내가 나중에 갚겠다고!”
너무 못해 줘서 미안하다고.
속 썩여서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그것도 내장(예정?)되어 왔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살기로 하고 왔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받아야 될 것을 받으신거 같아요. 서로간에..
2 : 청산 빚이지..
1 : 그런것 같아요. 뭔지는 모르는데..
‘하지만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런거 없이.. “편하게 한번 살아봅시다!” 그것은 조금 울먹 하는 표현이에요.
그것은 조금.. 미안하다는 표현인데.. 거기서 말을 안하시네요.
그렇게 하고..
“ 나는 이제 다 끝냈으니까! 당신한테 해야 될걸 다 했으니까.”
요렇게 .. 나는 이제 .. 그 말 뜻은 “나는 인제 가도 괜찬소!”
그런 뜻이에요. 남겨진 그 말 뜻은 ..
2 : 자녀한테는? 자녀가 있으신지?! 없으신지?! 나도 잘 모르겠네..
1 : 아! 그것은
나하고의 인연법은 아니라고 하시네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2 : 그 줄기를 안 타고 왔다는 소리지.
1 :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세요.
2 : 본인과의 인연줄기가 아니라는거지..
1 : “ 나하고 인연법이 아니기에 관계가 없습니다! “
2 : 응 그러시구나
1 : “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을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
2 : 응
1 : “ 내가 해야 할 것을 마쳤기에 돌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갈 수가 없었기에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만, 조금은 늦어지고 있습니다! 가는 시기가…
가는 시기가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냥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2 : 선택을 존중해 드리고요, 가시는 여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모든 시간들을 여여로이 받아들이시고 떠나시는 당신의 선택!
1 :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2 : 잘 가십시오! 그리고 남은 형제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1 :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 감사합니다!
1 : “ 나는 그냥 이 상태가 좋습니다! “
2 : 아 ! 그래요. 남은 가족들이 가족이기에 듣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1 : 감사합니다. 나 또한 가는 길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정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느 한 미련도 없고,
어느 한!.. 어떤 것도 걸림 없이 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돌아가겠습니다!
너무들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가는 길에 안타까워하지 마시고,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무 아파들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것은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누구나 겪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아파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이렇게 가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2 : 감사합니다!
1 : “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 끝.
2 : (…응 그렇지.. 마지막까지 소통을 하시고 가시니 참 잘하셨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