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蘇東坡)는 당송(唐宋) 시대의 팔대 문장가(八大文章家)의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소동파는 중국의 문학사상(文學史上) 찬연한 빛을 던진 분으로, 한때는 조정을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황주로 유배되기도 했으며, 이때 농사짓던 땅을 동쪽의 언덕이라 하여 '동파(東坡)'라는 이름을 짓고 스스로 호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당시에 그의 학식과 언변은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승호(承皓) 선사와의 일화
소동파가 형남에 있을 때 일입니다. 근처 옥천사에 도가 높은 승호(承皓) 선사라는 선지식(善知識)이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점검해 보겠다는 의욕이 생겨났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승호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선사는 그의 교만한 행동을 보고, 그의 의도를 간파(看破) 해 버렸습니다.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 성(姓)은 칭(秤: 저울)씨요."
"칭씨라니요?" 중국에는 칭씨가 없습니다.
그러자 소동파는 "천하 선지식의 무게를 달아보는 칭가(秤哥:저울)란 말이오."
소동파의 안하무인격인 이 호언장담이 떨어지자마자, 선사는 "악!"하고 일할(一喝)을 했습니다.
"이게 몇 근이나 됩니까?"
선사의 이 일할(一喝)에 소동파의 육신은 살아 있었으나, 마음은 이미 완전히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기세등등했던 오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한마디 대답도 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서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비참한 심정으로 말머리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불인 요원(佛印了元) 선사와의 일화
이 일이 있은 후, 소동파는 선지식이라면 무조건 찾아가서 친견하고 겸허한 태도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소동파가 항주에 있을 때였습니다.
소동파는 항주 노산의 귀종사에 계신 불인 요원(佛印了元) 선사와 친교를 맺고, 형제처럼 지내면서 서로 왕래가 잦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소동파가 오자, 선사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농담 삼아 말을 걸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근데 의자가 부족하니, 미안하지만 저기 아무 데나 가서 앉으시오!"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사대(四大)를 빌려, 의자로 쓰면 안 되겠습니까?라며 선문답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몸이나 의자나 근본적으로 구성요소는 같은 것이니, 스님의 몸을 의자로 대신 쓰자는 말이지요.
이 말을 듣자 선사께서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문제를 하나 낼 테니, 문제를 맞히면 노승이 의자가 되어줄 것이고, 맞추지 못하면 그대의 옥대(玉帶)를 노승에게 풀어주는 게 어떻겠소." 소동파는 흔쾌히 승낙하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조금 전에 그대는 노승의 사대를 빌려서 의자로 쓰자고 하셨는데, 사대(四大)란 본래 공(空) 한 것이거늘, 어디에다 몸을 걸치겠소?"
이 말에 소동파는 일언반구도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소동파는 하는 수 없이 약속대로 옥대를 풀어주고 간절히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소동파에게 "그대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 그것이 흠이니, 오늘부터 생각을 쉬어 가는 공부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이 후부터 소동파는 모든 생각을 쉬고, 알고자 하지 않는 공부를 해나갔다고 합니다.
소동파의 자만심(我慢心)은 선지식(善知識)을 얕보다가, 옥천사의 승호(承皓)선사로부터 일할(一喝)을 맞고 일시에 모든 허식(虛識)이 무너져 내렸으며, 그 후 노산 귀종사의 불인(佛印) 선사로부터 자신이 오늘날까지 공부해 왔던 모든 것이 한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통절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릇 공부란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을 쉬고 또 쉬어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심으로 쉬어 가는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곳에 선지식이 계신다는 말만 들으면, 불원천리마다 않고 찾아가서 배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 상총 선사(常聰禪師)와의 일화
하루는 노산에 있는 동림 흥륭사라는 절에 상총선사(常聰禪師)이라는 명성이 높고 도법(道法)이 고준(高俊)한 대선지식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법문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선사께서는 단정히 앉은 채,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대는 어찌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들으려 하지 않고, 유정설법(有情說法)만을 들으려고 하는가?"
이 말을 듣자, 소동파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천하의 대문장가인 소동파도 무정설법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무정설법? 무정설법? 이 네 글
자 가 머릿속에 못처럼 꽉 박히고 말았습니다. 일체의 사량(思量)과 지해(知解)가 몽땅 끊어져서,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 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이 되었던 것입니다.
타고 갔던 말만 소동파를 태운 채, 훤한 길을 따라 터벅터벅 내려갈 뿐이었습니다. 무정물이 설법을 한다고 하니, 어떻게 무정물이 설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설법을 한다면, 왜 나는 듣지 못하는가? 이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 별안간 계곡에서 "쾅 쾅"하며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폭포수 소리가 소동파의 머릿속을 뒤흔들며 내리쳤던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돌면서, "앗! 이 물 소리!" 하는 순간, 삼천육천 세계가 오로지 소동파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상총선사가 계신 곳을 향해 진심으로 합장·배례한 후, 게송을 읊었습니다.
溪聲便是長廣舌 (계성변시장광설) : 시냇물 소리 그대로가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 산빛 그대로가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 밤새 들은 팔만사천 법문의 이 소식을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소동파의 쉬어가는 공부란 육신이 지닌 마음, 즉 에고를 쉬게 하는 공부를 말합니다. 우리의 근원 의식은 이 에고와 두꺼운 업장이라는 카르마에 가려서, 본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말은 이 에고와 카르마를 벗겨내서, 본성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에고는 없앨 수는 없지만, 초월하는 법은 익일 수가 있습니다. 속된 말로 도를 닦으려면 반(半)은 미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미친다는 말은 정신이 나간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out of mind 란 에고가 빠져나간다는 말입니다. 에고가 빠져나가고 나면, 본성은 자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무정설법이란 고정 불변하다는 "나"라는 "아상(我相)"의 틀을 깨뜨리면, 무아(無我),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경지에서 바라보면,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의식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너와 나가 둘이 아니며, 꿈같고, 뜬 구름같은 객관의 세계가 모두 실상(實相)인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정설법인 것입니다
이 소동파의 일화는 대학에 다니면서 불교 공부에 열중할 때, 들은 이야기이지만 항상 가슴속 한 구석에 담아두고 마음의 거울로 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