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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내면에서 피어나 찬란함으로 드러나는 그것은 빛의 본질이다.
생은 외면에서 피어나 찬란함으로 드러나는 그것은 빛의 본질이다.
이 생에서 찬란함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빛이 다시 비워져서 이루어진 것이 공이며, 그것은 밝음이라 어둠이라 할 수 없다.
공안에서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것이 비워져 있다.
그 공 안에서 밝음이 다시 태어나니 그것을 이루는 중심이 유이고, 그것이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빛이다. 그것의 본질은 희망과 열정이 모태가 된다.
또한 그 공 안에서 어둠이 태어나니 그것을 이루는 중심이 무이고, 그것이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어둠이다. 그것의 본질은 포기와 무정이 모태가 된다.
열정과 무정을 확실히 알아야 빛과 어둠이 흩어지지 않고, 중심이 존재하게 된다.
진실로 빛이 되려한다면 자신의 모든것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이면 원하지 않더라도 빛나게 되며, 진실로 어둠이 되려한다면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움직이면 원하지 않더라도 어둡게 되어진다.
공안에서 태어난 빛은 시간적인 성질을 가지며, 어둠은 공간적인 성질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빛은 한곳으로 집중되는 형태를 뛰고, 어둠은 넓은 방향으로 퍼지는 형태를 뛴다.
유의 본질은 내가 살고 너도 사는데 희망을 두는 것이고,
무의 본질은 내가 죽고 너하나만은 살린다라는 곳에 희망을 두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틀이 깨어지는 현상은 무의 본질중 무명이라 불리고,
무명의 특성은 자신안의 모든 의식흐름이 매순간 확실히 각 각 끊어져 확실히 깨어서 인지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순간의 자신의 세밀한 생각을 확실히 기억을 하고, 되돌아 보게 되어진다.
멍한상태가 절대로 이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 틀들이 깨지고 깨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하여도 그것은 무라 불리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도 남겨지지 않았을때 무무명이라 하고, 거기서 무의 마음을 찾아야
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비의 무한극을 가게 되면 불공이라 하는데 짜증과 싫증과 포기가 극으로 함께 온다.
불공와 무명이 만나면 무가 되어지는 최소 요건이 된다.
자신이 목표를 이루어서 되어지는 무는 무가 아니다.
목표를 이루어서 되어지는 것은 유 안에서의 유상이다.
무라는 것은 공이 되었을때 돌아보니 그때가 무였구나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유또한 마찬가지이다.
공의 마음이 아닌 상태를 하나 말한다면,
중심이 사라져버려 의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의지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때 중심의 대전환이 있게 되어 보통 중심이라 여겼던것이
완전히 사라진다.
~~~~~~~~~~~~~~~~~~~~~~~~~~~~~~~~~~~~~~~~~~~~~~~
라임(용 설계도)
명
↑
유상
신 유 < > 성
비상
영 = 화 = 창 - 황 - 여 - 정 < (중) > 공 < (행) > 수 - 한 = 안 - 미 → 명
불공
생 무 < > 모
무명
↓
명
↓ ↓ ↓
황극 무극 태극
= 사랑, - 기, → 상
윗글은
"영 = 화 = 창 - 황 - 여 - 정 < - 동 - 한 = 안"
이 부분 빼고 중간 것만 부분만을 표현한것임.
생은 외면에서 피어나 찬란함으로 드러나는 그것은 빛의 본질이다.
이 생에서 찬란함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빛이 다시 비워져서 이루어진 것이 공이며, 그것은 밝음이라 어둠이라 할 수 없다.
공안에서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것이 비워져 있다.
그 공 안에서 밝음이 다시 태어나니 그것을 이루는 중심이 유이고, 그것이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빛이다. 그것의 본질은 희망과 열정이 모태가 된다.
또한 그 공 안에서 어둠이 태어나니 그것을 이루는 중심이 무이고, 그것이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어둠이다. 그것의 본질은 포기와 무정이 모태가 된다.
열정과 무정을 확실히 알아야 빛과 어둠이 흩어지지 않고, 중심이 존재하게 된다.
진실로 빛이 되려한다면 자신의 모든것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이면 원하지 않더라도 빛나게 되며, 진실로 어둠이 되려한다면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움직이면 원하지 않더라도 어둡게 되어진다.
공안에서 태어난 빛은 시간적인 성질을 가지며, 어둠은 공간적인 성질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빛은 한곳으로 집중되는 형태를 뛰고, 어둠은 넓은 방향으로 퍼지는 형태를 뛴다.
유의 본질은 내가 살고 너도 사는데 희망을 두는 것이고,
무의 본질은 내가 죽고 너하나만은 살린다라는 곳에 희망을 두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틀이 깨어지는 현상은 무의 본질중 무명이라 불리고,
무명의 특성은 자신안의 모든 의식흐름이 매순간 확실히 각 각 끊어져 확실히 깨어서 인지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순간의 자신의 세밀한 생각을 확실히 기억을 하고, 되돌아 보게 되어진다.
멍한상태가 절대로 이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 틀들이 깨지고 깨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하여도 그것은 무라 불리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도 남겨지지 않았을때 무무명이라 하고, 거기서 무의 마음을 찾아야
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비의 무한극을 가게 되면 불공이라 하는데 짜증과 싫증과 포기가 극으로 함께 온다.
불공와 무명이 만나면 무가 되어지는 최소 요건이 된다.
자신이 목표를 이루어서 되어지는 무는 무가 아니다.
목표를 이루어서 되어지는 것은 유 안에서의 유상이다.
무라는 것은 공이 되었을때 돌아보니 그때가 무였구나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유또한 마찬가지이다.
공의 마음이 아닌 상태를 하나 말한다면,
중심이 사라져버려 의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의지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때 중심의 대전환이 있게 되어 보통 중심이라 여겼던것이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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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용 설계도)
명
↑
유상
신 유 < > 성
비상
영 = 화 = 창 - 황 - 여 - 정 < (중) > 공 < (행) > 수 - 한 = 안 - 미 → 명
불공
생 무 < > 모
무명
↓
명
↓ ↓ ↓
황극 무극 태극
= 사랑, - 기, → 상
윗글은
"영 = 화 = 창 - 황 - 여 - 정 < - 동 - 한 = 안"
이 부분 빼고 중간 것만 부분만을 표현한것임.
제가 체험했던 大하나님과 nothing을 정확히 알았군요.이제 할것이 없죠?
그래도 해야되는 것이 소멸도우미입니다.무묘앙 에오도 책을 쓰셨잖아요.
요즘 시대의 아름다움이란 부처가 중생처럼 사는 것 입니다.그것이야말로 미덕의 진수죠.스승이 될 필요도 없고,당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삶을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하면 외출한척 잠시 그것을 잊어버려도 됩니다.유치한척 희노애락에 억매여 살아도 상관 없습니다.
지금 현실의 모든 조건이 붕괴되어도 그래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무명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그것이야말로 부처와 그것(nothing)의 종이 한 끝 차이 입니다.유일한 차이죠.
그래서 태어남이 없는 곳에 또 태어나는 마지막 코스...많은 부처들이 이것이 너무나 불편한 단계임을 알면서도 선택하고 있습니다.오지 자비심만이 남아 있어 "그것의 유심자"로 부처가 현존합니다.
................. 소멸 도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