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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하지무님께서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2005년에 저는 사명자를 말하는 모임으로 영성계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간적 관계와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는 노력을 통해 '몸부림'을 많이 겪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불교적 관념이 있다고 하여 우주적 의식으로 확장하라고 주문하기도 했고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적 관념을 알아차리기는 기회를 스스로 가졌고 또 명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들로부터의 비판에 민감한 섬세하고 여린 성격상 괴로움을 많이 느꼈지요.
남들은 사명자 놀이다고 쉽게 비판했지만 제게는 노력을 하게 만드는 '순리'였던 것입니다.
순리이자 벼락치기 공부였던 셈입니다. 2005년 가을 어느 분으로부터 봉인 풀린다는 말을 듣고 한달 동안 철저한 금욕 생활을 했습니다. 봉인 풀림이라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아...불교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도 불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2005년 당시에서 불교 이야기를 할 때는 그것이 저의 눈에 낀 일종의 불교 안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식이나 비유로 쓰이고 그것이 제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불교가요.
많은 분들이 스승님의 말씀, 종교인의 말씀, 경전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안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안경'들은 내용 자체가 옳습니다. 그러나 '안경'이기에 사물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하고 주관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옳음이라는 내용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속박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엔 도덕이나 대스승님이나 윤리(명상이라는 형식도 포함)이나 영성이나 그런 관념으로
'형식'으로 내용의 '옳음'을 판단하는 것도 보이고
그리고 그 '형식'이 일종의 잣대가 되어 안경으로 기능합니다.
책으로 나왔으니까
큰스님이 말하셨으니까
세상의 룰에 맞는 도덕이니까
그렇게 '형식'으로 내용을 옳다고 말하고 또 그 기준으로 세상을 봅니다.
저는 철저한 불교적 마인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불교적 마인드라 해봐야 제 경우는 화엄과 유식과 밀교와 대승보살도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와 도교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특히 도교를요...
그러나 지금은 어쩌면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기독교인 같은 마인드를 가진 것 같아요.
신의 의지는 늘 구현되고 있으며 정확히 한치의 오차 없이 될 사람은 되고 되지 않을 사람은 않된다는....어찌보면 칼뱅의 예정설과 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습게 보았던 도교도 노자의 무위자연을 조금은 이해할 듯 싶어요.
불교적 마인드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불교라는 3천년에 거쳐 인간들이 구축해 놓은 사상 덩어리에 의탁하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이 좀 힘들었습니다.
내용 자체가 구구절절이 맞는데 왜 나보고 그것을 버리라고 할까...라고 고민이 많았지요.
어느 면에서 보면 유식사상이나 화엄이나 밀교가 말하는 우주나 인간이...이 영성계에서 말하는 우주와 인간을 미리 밝혀 놓은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그 '옳음'이 제게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뼈속 깊이 전생부터 해온 게 수행이고 깨달음이었기에 '인간적 감정'에 대한 경시도 작용했었고 과거생부터 해 놓은 것을 에너지적으로 털어버리는 게 힘들었습니다.
하지무님의 글을 보면서 깨끗한 물을 생각합니다.
제가 첨언하자면 내용에 진리가 있을지라도 그 내용을 집착하면 그것은 고인 물이자 탁한 물이 되는 것입니다.
2005년에 저는 사명자를 말하는 모임으로 영성계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간적 관계와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는 노력을 통해 '몸부림'을 많이 겪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불교적 관념이 있다고 하여 우주적 의식으로 확장하라고 주문하기도 했고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적 관념을 알아차리기는 기회를 스스로 가졌고 또 명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들로부터의 비판에 민감한 섬세하고 여린 성격상 괴로움을 많이 느꼈지요.
남들은 사명자 놀이다고 쉽게 비판했지만 제게는 노력을 하게 만드는 '순리'였던 것입니다.
순리이자 벼락치기 공부였던 셈입니다. 2005년 가을 어느 분으로부터 봉인 풀린다는 말을 듣고 한달 동안 철저한 금욕 생활을 했습니다. 봉인 풀림이라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아...불교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도 불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2005년 당시에서 불교 이야기를 할 때는 그것이 저의 눈에 낀 일종의 불교 안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식이나 비유로 쓰이고 그것이 제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불교가요.
많은 분들이 스승님의 말씀, 종교인의 말씀, 경전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안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안경'들은 내용 자체가 옳습니다. 그러나 '안경'이기에 사물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하고 주관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옳음이라는 내용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속박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엔 도덕이나 대스승님이나 윤리(명상이라는 형식도 포함)이나 영성이나 그런 관념으로
'형식'으로 내용의 '옳음'을 판단하는 것도 보이고
그리고 그 '형식'이 일종의 잣대가 되어 안경으로 기능합니다.
책으로 나왔으니까
큰스님이 말하셨으니까
세상의 룰에 맞는 도덕이니까
그렇게 '형식'으로 내용을 옳다고 말하고 또 그 기준으로 세상을 봅니다.
저는 철저한 불교적 마인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불교적 마인드라 해봐야 제 경우는 화엄과 유식과 밀교와 대승보살도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와 도교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특히 도교를요...
그러나 지금은 어쩌면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기독교인 같은 마인드를 가진 것 같아요.
신의 의지는 늘 구현되고 있으며 정확히 한치의 오차 없이 될 사람은 되고 되지 않을 사람은 않된다는....어찌보면 칼뱅의 예정설과 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습게 보았던 도교도 노자의 무위자연을 조금은 이해할 듯 싶어요.
불교적 마인드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불교라는 3천년에 거쳐 인간들이 구축해 놓은 사상 덩어리에 의탁하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이 좀 힘들었습니다.
내용 자체가 구구절절이 맞는데 왜 나보고 그것을 버리라고 할까...라고 고민이 많았지요.
어느 면에서 보면 유식사상이나 화엄이나 밀교가 말하는 우주나 인간이...이 영성계에서 말하는 우주와 인간을 미리 밝혀 놓은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그 '옳음'이 제게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뼈속 깊이 전생부터 해온 게 수행이고 깨달음이었기에 '인간적 감정'에 대한 경시도 작용했었고 과거생부터 해 놓은 것을 에너지적으로 털어버리는 게 힘들었습니다.
하지무님의 글을 보면서 깨끗한 물을 생각합니다.
제가 첨언하자면 내용에 진리가 있을지라도 그 내용을 집착하면 그것은 고인 물이자 탁한 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택균님 말씀.... 신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