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홍익학당 윤홍식에 고함
유전 2014/02/17 18:54
(홍익학당 윤홍식이 대승불교를 잘못 이해하고 비판하는 강의 내용을 이번에 "글"로 된 것이 있어서 옮겨 왔습니다. 펌글 내용은 불교 스님들의 견해에서 맞는 이야기가 거의 없으니까 그저 참조만 하세요)
윤홍식이 윤회를 인정한다는 답변을 씨씨님이 들었다고 하는데, 초기불교 내용을 철학적 과학적 학자들이 그들만의 주장으로 (개체영혼의 윤회가 아닌) 그저 만물이 돌고도는 윤회(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씨가 다시 나무가 되는 정도의 윤회)를 말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또 그러한 학자들의 대부분은 영악하게도 부처(영혼은 배제한 상태)로의 깨달음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축생으로의 윤회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이, 대승불교나 보살승 일불승에서 이야기하는 지옥세계나 연화장세계 그 밖의 부처님 세계 또한 필요에 따라서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의 윤홍식만의 좁은 세계관적 윤회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래 펌글에서, 제법무아는 법상(제법,시스템,매트릭스 그 자체)에는 나(아)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로 이해하면 그만인 것을, 상대적 개념인 비아론을 끄집어내어 제법 그 자체에 주체적 나(아)와 객관적 대상적 다른 존재적 나(아, 또는 비아)로 비약하여 원래 제법무아는, 모든 법에 나(아)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중생이 윤회하는 자아나 자등명을 증득하는 나는 있어서 자성, 참나는 있다 라고 이해하면 간단한 것을 '나(아)가 아니다' 라는 비아론은 대중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아래 펌글의 끝맺는 말 부분에서 글이 이상하게 꼬여 있어서 혹시나 대승불교를 옹호하는 발언과 같이 보일 수 있으나 그의 다른 대부분의 동영상 설명에서 대승불교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발언과 같이 명백한 대승불교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소설이라고 폄하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펌글 하단에 위치한 그의 말 "석가모니 생각이랑 대승은 전혀 다릅니다." 즉 대승은 석가모니 설법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저 소승에 머물고 있는 한가한 철학자의 투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대승불교인 화엄경(초기경전이나 대승경전으로 취급됨)에 설하여져 있는 "십지보살"을 자기만의 소아적 해석으로 엉망진창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아이러니입니다. 대승불교는 폄하하면서 그 대승경전으로 강의를 하고 그 경전에 나와 있는 보살의 경지를 자신들 수행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이런 일은 아무리 수행이 덜 되어 있는 학자라지만, 학자적 양심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씨씨님과 같이 나 또한 윤홍식에게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는 전생의 개념에서 "개체 영혼이 지옥고를 겪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만약에 개체의 영혼이 지옥의 고통을 겪는 전생이 없다고 하면, 석존이 설법한 세세히 지옥의 종류별로 설명된 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또 윤홍식의 개체 영혼의 지옥 없는 윤회로 답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윤회 또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며 그것은 윤회라고 할 수도 없는 그저 육신이라는 물질의 흩어지고 모이는 유물론적 윤회이어서 대중이 알고 있는 윤회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되며 고승들이 법문으로 전하는 "지옥 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라" 라고 말하는 스님들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윤홍식 그의 말대로라면 그러한 고승들은 자기만 못하여 없는 지옥을 만들어 가며 대중을 기만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윤홍식의 말대로 그저 한순간이나 또는 조금 더 많이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설명은 깊은 내면 어쩌고 하지만) 그의 수련법으로 참나가 찾아지고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세상의 비구와 비구니들이 머리를 깎고 평생을 수련하며 죽을 때까지도 윤회를 벗어나고자 염원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러한 지옥에 대한 설명은 불교만의 것이 아닌, 힌두교와 이슬람교 또한 대단해서 기독교에 비하여 더욱 구체적이고 더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그에 속하는 모든 종교인들이 믿고 받드는 것입니다.
윤홍식이 말하는 약간의 정신차림 정도를 가지고는 참나를 찾기는 커녕, 무속인들이 겪는 무병(巫病)이라는 외적존재들의 간단한 시험 조차도 이겨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수련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사도(邪道)로 이끌게 하여 외적존재(마귀,사탄 등)들을 자신에게 불러들이게 하여 그 알 수 없는 때가 급격히 찾아오게 될 것이라 판단합니다. 가급적 가까이 하지 않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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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초기불교의 핵심 - 제법무아(諸法無我) 나라는 것은 없다_윤홍식
출처: buddhastudy.egloos.com/4004196 (링크에 동영상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삼법인 얘기를 합니다. 비구들이여. 딱~ 5명이에요. 다섯 명한테서 시작한 게 지금 전 세계적으로 큰 학원이 됐죠. 자~ 어떻게 생각하느냐? 색은 영원하냐? 색수상행식. 오온을 물어봐요. 자~ 요 물어본 게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제가 제일 질문 많이 받는 게 하나가 제법무아인데, 니르바나도 법 아닙니까? 무위법도 법 아닙니까? 요것도 무아 아닙니까? 이분들은 뭘 착각을 하냐하면요, 이 번역이 좀 애매하게 되어서 일어나는 착각이에요. 무아라는 거는 아트만이 아니라 즉, 나라는 게 원래 원문은 ‘내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非我비아가 맞는데, 이걸 無我무아라고 번역을 해 놓으니까 나라는 건 애초에 나라는 실체는 없다. 영원히.
아트만을 반대한다. 나라는 건 아예 없다. 요렇게 번역이 되다 보니까 제법무아인데 제법엔 열반도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럴싸해요. 이게 왜 엉터리 얘기냐하면요, 이건 뭐 반박할 가치도 없는 엉터리 얘기에요. 그런데 이런 말이 자꾸 어떤 좀, 그 좀 알만한 분들 사이에서 자꾸 얘기가 되니까. 제법무아라고 번역해 놓고, 이 법에는 무위법도 들어가니까 열반도 들어간다고 해버리면, 요게 전혀 코미디 얘기냐 하면, 부처님은 한 번도 제법 얘기할 때 열반을 넣은 적 없습니다. 불경 다 뒤져보세요.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이 열반을 무위법이라고 분류한 거는 훨씬 뒤에 부파불교에서 한 일이에요. 열반도 하나의 법으로. 분명히. 사법인 중에 하나니까요.
그런데 부처님은 분명히 제법무아 제행무상 얘기할 때는요, 오온만 가지고 얘기해요. 절대 니르바나까지 얘기가 뻗어나가지를 않아요. 그리고 두 번째 절대 이 무아는요, 모든 법에 니르바나까지 포함해서 모든 법에 나라고 하는 건 애초에 전혀 없다. 이런 얘기 한 적이 없으세요. 요거는 비아라는 뜻이에요. 철저히. 오온은 내가 아니라는 얘기만 계속 하셨어요. 자~ 보세요. 그 증거입니다. 하도 답답해서 제가 요거를 한번 소개해 드리려고 뽑았습니다. “색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무상을 인정했죠. 자~ 제자들이 정확하게 인정을 합니다. 무상은 색은 무상합니다.
두 번째, “무상한 거는 괴롭냐? 즐겁냐?” 무상하니까 괴롭다는 겁니다. 괴롭다는 근거도 분명하죠. 무상하니까 괴롭다는 거예요. 고놈이 자꾸 나를 괴롭히는, 와서 괴롭히고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무상하다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거는 반드시 변해버리니까. 괴롭죠.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두고, 내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자아이다라고 하면 옳은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자~ 요게 지금 나머지 수상행식에 대해서 동일한 법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해되시죠?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무상하니까. 제법무아에 니르바나가 끼지를 않아요. 두 번째 보세요. 또 한 번 다시 얘기합니다.
어떤 색이든 그건 과거의 거든 미래의 거든 색수상행식 중에서요, 색은 미래 것이 건 현재 것이건 안에 있건 겉에 있고 거칠건 섬세하건 열등하건 뛰어나건 멀건 가깝건 모든 색이란 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하고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된다라고 얘기를 또 수상행식에 걸쳐서 또 지루하게 얘기를 하십니다. 자~ 세 번째, 비구들이여 이처럼 보고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자~ 여기까지가 중요해요. 자~ 무상고 무아를 알았다고 해서 해탈이 온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니르바나에 들어가야 해탈이 되잖아요. 요걸 분명히 하십니다. 무상고 무아를 알았다면 색을 싫어하여 떠나고, 반드시 싫어해서 버려야 해탈이 와요.
아까 호흡 16법 중에 마지막에 했었죠. 호흡이라는 거를 버렸죠. 여러분이 내려놓음. 집착을 소멸시키고 버렸어요. 오온을 버려야 됩니다. 수를 싫어하여 떠나고 상을 싫어하고 떠나고 행을 싫어하여 떠나고 식별을 싫어하여 떠나면, 떠나서 집착이 소멸함에 해탈한다. 아까 여러분이 해탈을 체험하신 거예요. 그렇죠? 이렇게 해탈하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해탈했다.” 즉 보십시오. 여기도. 나는 해탈했다. 그러면 해탈한 나가 있죠. 나가 있어요. 이 나가 진아라는 거예요. 왜냐? 열반도 내 마음이니까요. 해탈한 내가 있어요. 해탈한 마음이 있어요. 나라고 하면 또 오해가 생기니까 해탈한 마음이 여러분한테 있어요.
그거를 나라고 하고, 주인공이라고 하고, 본래 면목이라 하는 겁니다. 열반은 실체입니다. 열반이 실체가 아니라는 둥, 열반은 의식이 아니라는 둥, 도대체 그럼 뭐로 무의식 상태입니까? 기절을 하셔야 해탈하나요? 해탈하려면 한 대씩 맞고 쓰러져서 “어, 정신을 잃었습니다.”이게 해탈인가요. 이런 게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색수상행식이 무상고 무아인줄 알고 버리는 사람 마음에만 일어납니다. 이해되시죠? 자~ 이렇게 해서 나는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기고요,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을 이루어졌다. 누구한테요? 나한테요. 그 마음에 이루어진 거예요. 그분 마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난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온을 버렸기 때문에. 나는 오온이 윤회하는 거기 때문에 나는 윤회를 초월했다. 이 말이 나오는 겁니다. 예. 그런데 대승은 그게 오온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고 그 오온이 어디 가는 거 아니라고 입장을 펴는 겁니다. 이게 뭔 얘기냐 하면 반야심경에서 첫말에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주장하는 이유에요. 요게 소승 주장을 뒤엎는 거예요. 색이 공하다라고만 알았느냐? 아니다. 공이 곧 다시 색이다. 즉 니르바나를 여러분이 니르바나에서 떠날 수 없다면, 니르바나는 내거죠. 니르바나에 존재하는 한은 색수상행식도 같이 일어난다라는 걸 주장하는 겁니다.
대승은요, 색수상행식 자체도 청정하다고 봐요. 니르바나에서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여러분의 순수한 니르바나, 순수한 알아차림에 의존해서 색수상행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도 결국은 바다가 청정하면 파도도 청정하는 입장을 반야심경이 주장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색수상행식에서 떠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게 대승이에요. 그럼 뭐 해야 될까요? 색으로. 좋은 여래의 몸을 만들고, 수로 여래의 자비심을 만들고, 상으로 여래의 지혜를 만들고, 행으로 대원을 세우고, 식으로 지혜를 얻는 겁니다. 이게 여래에요. 대승에서 생각하는 여래에요. 그래서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 나와요. 니르바나에 들어가지를 않아요.
들어갈 수도 없어요. 대승에서는. 부처님 생각이랑 틀려요. 석가모니 생각이랑 대승은 전혀 다릅니다. 대승은 더 나갔어요. 석가모니는 그래도 법구경 숫타니파타 보면 열반에 들으라고 얘기를 하는데, 대승은요, 열반에 들지 않는 부처나 보살을 이상형으로 세워야 되니까, 아미타불하고 관세음보살이라는 기존 불교에 없던 분을 세운 거예요. 그분들은요, 니르바나에 들어가지를 않아요. 더 좋은 색, 더 좋은 수, 더 좋은 상을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러 다녀요 (펌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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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2/17 20:08
(에너지힐링 카페에서)
북한에서 김일성 3대 세습체제는 그들이 주민들을 혹세무민하여 자신들을 신격화 하고 그들의 명령에만 복종하도록 세뇌시킨 것에 가능합니다.
그러한 일을 아무도 밖에서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들의 세계는 지구가 멸망하는 때까지 그대로 존속될 것입니다.
모두가 침묵만 하더라도 또 내가 이러한 일을 즐겨서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더라도, 잘못 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누군가는 말해 주어야 이 세상은 조금이라도 바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그러한 가치의 차이가 있을 때, 대화를 막아 놓은 윤홍식에게는 이것이 그들에게 최소한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비판도 수용할 줄 모르는 거의 폐쇄형 모임이 홍익학당이고 그러한 수련단체의 끝은 북한과 같은 세뇌형 맹신자 광신자들만 양산하게 됩니다.
어제 이집트 한국인 관광버스 폭탄과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생길 수 있는데 폐쇄형 종교 및 영성단체들이 많아지면 일본의 오옴진리교 사건 처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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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2/17 21:33
(신나이 카페에서)
불교에서는 최고의 선지식이라는 성철스님이 누더기만 입고 평생을 살다 갔습니다.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도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청렴하게 살다 갔습니다.
개신교는 유영모님 함석헌님 등이 있습니다.
조영기 목사도 처음에는 윤홍식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단체가 커지고 주변에 아부하는 자들만 늘어나면 변하기 마련입니다.
윤홍식의 사단 정도의 이해 가지고는 그가 말하는 참나(완전히 에고에 지나지 않지만)가
갑자기 자기만을 위한 에고로 돌변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벌써부터 스님들을 비방하며, 자기 외에는 깨달은 스님이 없으니 있으면 데리고
와 봐라 라고 공공연히 마이크 대고 말하는데 이것이 어딜 봐서,
인의예지에서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어질지도 않고 의롭지도 않으며 예는 이미 팽겨쳤고 지식은 얄팍하기 그지 없습니다.
말만 뻔질나게 하면서 그 행동이 그와 같아도 그가 좋으면 따르면 됩니다.
다만 나도 그를 비판할 권리 정도는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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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2/18 00:24
위 동영상 18분 02초 그 대목만 들어보세요. (대승경전을) 누군가 지어낸 소설이라고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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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2/1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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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한가지 양심에서 분명한것은 홍익회에 자유롭게 일정수준 이상의 글이나 답글도 올릴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홍익회글이 다른곳에 올려져도 안되는것이 양심이 안인가요 그곳은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는사람만 필요한 곳임을 회원읽기 필독에 명시해 놓았습니다.
[출처] 홍익학당에 질문합니다. (신과나눈이야기 한국독자모임) |작성자 khhan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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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이 무슨 소리인가 잘 이해가 안되기도 할 것입니다. 자기들 판단에서 일정수준이 아니라고 하면(수준이 아니라 마음에 안들면) 글을 못쓰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만 뽑아서 세뇌식 교육을 한다는거죠. 그러니 자기들 기분 나쁘면 무조건 삭제죠. 같은 이치라면 홍익회 글이나 동영상은 외부로 올려지면 안되는데, 이건 또 자기들 홍보하느라 영성카페마다 올립니다.
그곳에 가입하고 내가 가장 잘 썼다고 한 예전 글을 자유게시판(?)에 비판 없이 올렸는데 일언반구도 없이 삭제하고 바로 강퇴 처리를 하더군요.
할수없이 지난번 공동처님(홍익회글 펌회원) 글에, 내가 공적인 게시판에서 공개 토론을 하자고 했는데, 무응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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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mindbank) 2014.02.18 06:15
(인터넷으로 몇번의 검색을 했더니 홍익학당에 가입하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동영상이 나와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영상 강연 내용에 대한 오류들을 랜덤으로 간단 간단한 코멘트로만 남깁니다. 윤홍식의 말이 어지간히 많아서... 주저리 주저리..떠드는 수 없는 오류들을 일일이 다 체크해서 설명하기는 내 시간이 아깝군요. 하단의 코멘트만 보아도 되고, 시간이 많다면 아래 링크의 동영상을 보면서 시각별로 코멘트를 비교하며 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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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Fha4yfGK3Nc 윤홍식의 요가수트라(요가경) 강의 1강. 대승경전 이후에 나온 요가경전.
http://cafe.naver.com/bohd/23132 홍익학당 게시날짜(2013.09.08 13:22)
[출처] 윤홍식의 요가수트라 강의 1강 , 2강 (홍익학당) |작성자 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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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40초 "크게보면 힌두교입니다. 불교도, 광의의 힌두교" - 불교는 힌두교가 포섭할 수 없는 더욱 큰 광의의 종교임. 힌두교를 포섭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어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윤홍식의 멘트 자체가 오류.
"범아일여, 브라만 즉 참나와 나는 하나다" "참나를 만나는 것이 요가다. 이것이 다이다." - 윤홍식은 결국 요가의 참나였음.
15분44초 "빨리 여러분 안의 참나를 즉각 만나서 참나에 안주하면 생존해탈에 들어가고 업 자체가 의미가 없다" "참나에 들어 초능력도 얻으면서 전지전능하게 된다는 것이 요가수트라이다" "견성을 해도 업장을 지우는 수행을 해야한다" - 불교의 견성성불은 자성(새로 깨어난 아트만으로 이때는 오온의 자아와 구분하기 위하여 자성이라 칭함.자등명)본불로 업장이 소멸된 상태임. 생존시 새롭게 업이 일어나도 바로바로 소멸시킴. 대표적인 예 성철스님.
21분00초 개체영혼의 윤회 - 힌두교식과 불교식 설명을 하는데 불교식 설명을 잘못 이해한 오류. 결국 윤홍식은 힌두교식으로 불교의 살아서 돈오(부처)의 경지에 드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됨. 지장보살은 자신의 서원에 의하여 성불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석존은 자등명으로 먼저 부처가 되라고 가르침. 부처가 된 이후에 다시 지장보살과 같이 하화중생하여 스스로 원하여 자발적윤회(이것은 윤회가 아니라고 보아야 함)를 하는 방편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스토리가 어긋나면서 자신만의 아트만적 스토리에 억지로 꿰어 맞추고 있는 상황임. 대승기신론과 대승경전 설명은 모두 엉터리임. 인도철학 강의는 그 자체가 오류.
30분00초 "브라만이 성부, 아트만이 성령이다. 따라서 브라만과 아트만은 하나인 범아일여가 맞다" - 신과나눈이야기 에서 "신성한 이분법"이 빠진 "신과 나는 하나다"만 있음. 따라서 신나이의 "참된 자신"으로 되기 어려움. 기독교의 가라지인 아트만을 태우고 새몸 즉 몸속의 또다른 몸 물질이나 빛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몸을 입어야 한다는 사상과도 다름. 도교에서는 "원영신" 또는 "원신"이라 함. 인간 육신 자체는 가라지.
후반 강의는 아에 코멘트할 가치도 없음
범아일여에 대해서는 과거에 쓴 나의 아래 글을 참조 하세요.
출처: http://blog.naver.com/mindbank/memo/100090112943
유전 2009/09/24 19:37
"연각은 독각(獨覺)이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 깨닫는 단계로 누군가로 부터의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나 소리가 적어지고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의 흐름과 다른 세상을 보게 되면서 자연법칙의 이법들에 눈 뜨게 됩니다. 이것이 공(空), 도충(道沖, 무위 속의 道)이며, 범아일여(범신-브라만-과, 자신-아트만-을 동일시 하는 무명), 인드라망(網), 천망회회(하늘그물)로 결국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을 자비심으로 새롭게 깨고 나오는 것이 불교의 열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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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2/18 09:32
브라만 (사전내용 펌)
고대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의 중심 사상. 힌두교에서 우주의 근본원리를 가리킨다. 개인의 본체인 아트만(atman, 我)과 함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의 주요개념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힘'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베다》 제식(祭式)의 신성한 힘을 뜻하다가 《브라흐마나》 시대에 이르러 우주를 창조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근본 원동력으로 일컬어져 세계의 근원적 창조원리로 여겨졌다. 또 《브라흐마 수트라》에서는 우주의 일체만물이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이 우주적 원리로서의 브라만과 개인적 원리로서의 아트만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체 사상이 발생했다. 원리로서의 브라만은 중성(中性) 명사이지만, 이후 남성적인 인격신 브라흐마(Brhama, 梵天)로 신격화되었다.
브라만은 《우파니샤드》의 중심 사상이자 우주의 근본원리를 가리키는 인도철학 용어로서, 힌두교에서 일체만물을 창조·지배하는 우주의 최고신으로 숭배된다. 비슈누파 철학에서는 절대신 크리슈나의 신비한 광채이자 형체가 없는 비인격적 측면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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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2/18 16:49
윤홍식의 결론 나왔습니다.
http://youtu.be/I_4-d9c66Qk
윤홍식의 요가수트라 강의 2강 (유튜브 게시날짜 게시 시간: 2013. 09. 7.
위 동영상 20분01초에서 윤홍식이 "색즉시공에서 공은 참나를 말해요. 텅빈 공자리를." 라 말하고 있습니다. 요가수트라 강의 1강 초입부분에서도 이야기 되고 있지만, 석존이 원래 출가를 하여 수행을 하러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우다카 라마푸타 라는 힌두교 선인에게 공(空) 그 자체라고 하는 비상비비상처정에 대한 도리를 배워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석존은 ""어진 이여, 이 법은 마침내 모든 욕(欲)을 해탈하여 번뇌를 멸하고, 적정한 한마음으로 모든 번뇌의 누(漏)를 다하고 모든 신통으로 사문의 행을 이루어 큰 열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은 또 다시 생사에 들어가리니, 무슨 까닭이냐. 아마 비상비비상처에 나도 과보가 다하면 또 다시 번뇌에 들어가느리라."(「불본행집경」) 이렇게 답합니다. 그래서 다시 고행을 하고 결국 보리수 밑에서 깨닫습니다.
결국 윤홍식의 참나는 힌두교의 공사상이고 그것도 체험된 공이 아닌 그저 학문으로 아는 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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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과거에 올렸던 글입니다)
낙공외도 - 공사상에 떨어지면 외도 (성철스님)
유전 (mindbank) | 2010.01.15 04:48
아래글 출처 http://blog.naver.com/mindbank/memo/100097451996
"공과 유를 다같이 버린다고 하여 단멸공에 떨어지면 낙공외도(落空外道), 즉 공에 떨어진 외도가 되고마니 그것도 변견입니다. 그러한 단멸공이 아닌 진공이 되면 상대적인 공과 유를 떠난 묘유(妙有)가 됩니다. 묘유(妙有)란, 상대적인 공과 유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공은 공 유는 유로 대립하여 통하지 아니하지마는 그러한 상대적인 공과 유를 버리고나니 공이 즉 유이고 유가 즉 공인 공과 유가 서로 통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郞是空 空郞是色)의 묘유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쌍조(双照), 쌍존(双存), 쌍역(双亦)입니다."(성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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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익학당 윤홍식 비판 (출처: 양심카페에서 작성됨)
필자: 유전
일단 아래 유튜브 링크를 참조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DO4Eius_mHU
(제목: 참나는 양심이다)
위 링크에서의 내용은 네이버카페 "홍익학당" 에서 올린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래 옮긴 글은 내가 출판한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며 블로그에도 그대로 올려져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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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블로그 링크 사이트에서 메모로그가 아닌 '블로그' 크릭 "현대유교인의 과제(책에서는 현대유교의 깨달음)" 내용 중에서)
유전 2006.11.15
나(我)와 내가아닌것(非我)의 투쟁에서 욕망은 용서하되 양심은 팔지 않기를 바랍니다.
양심은 불교와 도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요, 예수님께서 그토록 찾아 헤매시던 하나의 양(한글, 영어로는 등불 Lamp, 비유로는 새끼양 Lamb)입니다.
그 양심은 태초부터 있었으며 원래 내재 되어있는 본성입니다. 자기 자신의 양심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욕망을 무한정 키우되 항상 잊지 않는 양심의 기준을 세운다면 그것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 되며 그 양심은 유전됩니다.
자기 조상 총체의 양심이 현재 오늘의 나임을 알기 바라며 그 양심에 오늘의 나를 보태어 자기 후손에게 물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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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학당에서 지금이라도 "양심"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에 대해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1년 전에 그곳에서 강의하는 각종 동영상의 내용들이 그야말로 엉터리들 뿐이기 때문에 내가 하도 보기 민망하여 네이버 홍익학당 카페에 가입을 하고, 가입과 동시에 처음부터 비판을 하는 것도 무엇하여 나의 글 중에서 "영과 신을 만드는 법 - 원영신" 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네이버 지식인 백과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글로 백과사전이라는 디렉토리에 맞게, 올라오는 내용에 대하여 일주일 정도를 심사숙고 하고 감수를 하여 등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올려진 글이 하루나 이틀(?) 정도 있다가 바로 아무런 통보도 없이 나의 글이 삭제 처리가 되었고, 그 즉시 강제 탈퇴 조치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조치를 당하고 보니 황당하여, 나 또한 그들의 수법에 따라 그대로 돌려준다는 원칙의 대대법을 사용하여 아래와 같이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양심 카페에서 그곳의 대표회원 아이디를 입회 불가 처리 하게 된 것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는데, 그래도 진리를 추구한다는 학자의 양심이 매우 불량해 보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아래는 입회 불가 처리를 하면서 내가 메모한 내용입니다.
"피터팬(wppan) 홍익학당 윤홍식? 양심불량으로 강퇴당함 2013.01.10"
홍익학당에서 강의하는 내용들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그럼에도 일반인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곳에 많은 유저들이 진리인양 혹하여 달려드는 이유는, 어제 내가 양심카페 동영상게시판에 올린 도올의 동영상 강의와 같이 각 공영방송에도 여러번 방영되어 전국적인 열풍을 불었던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지금의 도올은 자신이 지난날에 방송으로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현재 많은 기간이 흐른 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그가 인터넷을 하거나 아니면 인터넷을 하는 많은 지인들의 조언에 대하여 학자적 양심으로 귀 기울였다면, 자신의 강의 내용 대부분이 정말 터무니 없는 것들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가 학자로서 조사한 팩트들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가 학자만의 지식으로 수렴한 팩트와 달리 영적인 앎에 대해서 떠든 모든 일들은 그동안의 깨달음에 따라 너무나 많은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서 양심적 실토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고 그가 진정 학자로 라도 남고자 한다면 학자적 양심으로 응당 그래야만 합니다.
그런데, 도올이 조용한 지금 그 뒤를 이어서 똑같이 동양철학을 하는 윤홍식이 약간의 참선수련을 했답시고, 크나큰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는 듯이 불교, 도교, 기독교 등을 가리지 않고 섞어 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차라리 도올은 그가 조사한 각종 자료들의 팩트가 어느정도 진정성이 있었고 또 그 팩트를 알아가는 성실성(인도답사 및 각종 성지순례 등)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데, 윤홍식은 아에 그 팩트 자체가 제멋대로인 경우라는 것입니다.
특히 불교에 대한 팩트에 대해서는 거의 일반인 수준도 되지 않는 (과거 한겨레 종교방 유저들 보다 못한) 앎을 자신의 유교적 관점에서 풀어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불교의 본질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불교에 뜻을 두고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엉뚱한 길만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학자가 화두명상을 하게 되면, 그 화두명상이 갖는 힘이 있기 때문에 온갖 사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사념들을 자신의 에고적 앎(지식)에 맞춰 설명하려는 것과 그것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데, 겨우 얼마간 공부한 불교 내용에 대해서 그것이 전부인양 떠들고 있는 것을 볼 때, 입만 살아 있는 학자의 전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 도올과 같은 학자적 진지함은 아에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에고적 앎과 더불어서 인터넷 이곳 저곳에 떠도는 다른 이들의 내용을 약간의 논조만 바꾸어 말하면서 아무런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진리 원력에 의한 명상으로 깨달은 것 처럼) 보일 정도로 강의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양심이 없는 인간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홍익학당이 진정으로 양심이 있었다면, 또 그 양심의 수준이 높았다면, 함부로 타인의 글을 삭제 조치하는 것과 함께 바로 강퇴를 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네이버 직원들 보다도 못한 판단력을 가지고 강의를 하며 혹세무민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그것을 얼마전에 책으로 낸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아래 퍼온 관련 자료에 등장하는 목차의 서브 제목 "남의 의견을 존중하라"를 보고 개그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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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저자 : 윤홍식
저자 윤홍식은 양심콘서트, 고전콘서트, 견성콘서트, 즉문즉설을 통해 동서양고전 및 철학을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알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내 안의 밝은 양심을 밝히고 인의예지의 실천을 위한 1박2일 양심 캠프를 열고 있는 인기 있는 젊은 철학자이자 양심리더십 전문가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및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홍익학당과 홍익선원을 운영하며 EBS라디오와 조선교육문화센터에서 맹자ㆍ대학ㆍ중용ㆍ노자ㆍ주역 등의 고전강의, 울산불교방송에서 수심결, 신심명, 대승기신론 강의를 했다. 저서로는 『대학, 인간의 길을 열다』, 『초보자를 위한 단학』,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마음챙김의 지혜100』, 『한국큰스님들에게 배우는 마음챙김의 지혜100』, 『윤홍식의 용호비결 강의』, 『윤홍식의 수심결 강의』, 『5분 몰입의 기술』(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도서), 『채근담, 인생경영의 지혜』, 『선문답에서 배우는 선의 지혜』,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살림지식총서)등이 있다.
들어가며
한국인이여, 일상에서 깨어나라!
1. 깨 어나라
초간단 마음리셋법
“모른다!” 명상의 핵심
5분 명상
10분 명상
2. 참나와 양심
참나와 에고
에고의 분석
마음을 관리하는 요령
에고의 찬가
참나와 현상계
참나의 뜻을 따르는 삶
참나와 함께 하는 삶
3. 양심을 따르는 삶
양심잠
양심노트(4단 노트)의 작성요령
4단분석(양심성찰)의 요령
깨어있음과 4단확충
6바라밀을 닦아야 하는 이유
활연관통
영성지능을 강화하라!
지혜와 사랑
남의 의견을 존중하라
4. 인간의 길
인간의 신성한 임무
영적인 진리의 탐구
군자의 길, 5단의 실천법
보살의 길, 6바라밀의 실천법
진정한 인간의 길
성현의 길을 묻는 분께 답함
완전한 인간, 성인의 경지
우주 대장부의 삶
5. 정의란 무엇인가?
양심의 자정작용
진정한 끌어당김의 법칙
업력을 극복하는 비결
인성교육의 핵심
양심이 답이다!
양심계발 5단계프로그램
양심노트(4단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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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1/24 18:37
http://www.youtube.com/watch?v=2OCpTCJylwo
제목: 불교의 견성과 학당(홍익학당)의 견성은 다른가요?
위 유튜브 대화에서 말도(초기 경전만 배운 상태로 논리전개) 되지 않는 논리로 달라이라마를 비판하고 한국의 선승들을 싸잡아 비난(녹화 31분 즈음 대담하게도 스스로 "조롱" 하고 있는 것이라 말함) 하고 있습니다. 또 돈오만을 위해 수련하는 선승들은 (절의) 밥값이라도 하겠다며 각만 잡고 앉아서 이십년 삼십년을 구하고 있는 것이, "마치 로또를 사 놓고 기다리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면서 돈오가 안되면 그저 "꽝이다" 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점수" 논리와 "육바라밀 수행" 논리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이십년 삼십년 깨닫지 못하고서도 앉아 있는 그 자체가 돈오를 위한 인고의 점수인 것이며 보시, 지계,인욕, 정진, 선정, 지혜 라는 6바라밀 중에서 인욕(욕됨을 참음), 정진(끊임없이 노력함), 선정(적멸을 위한 수행인 묵조선의 경우), 지혜(중생을 돕고자 하는 지혜를 구하는 화두선의 경우)를 함께 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목에서 불교의 견성과 학당의 견성이 같은가에 대한 질문에서 그것이 "같다"고 답한 것은 참으로 허무맹랑하기도 합니다. 처음 부터 끝까지 왜곡이 너무 심하여 어디서 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위 녹화분 뿐이 아니라 모든 강의가 엉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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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3개의 덧글은 신나이 게시판에서의 글입니다.)
은하인 2014/01/24 16:45
양심을 팔지말란 얘기는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강의하는 윤홍식씨 인가요? 아니면 글을옮긴 공동처님인가요?
아니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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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1/24 20:32
별도로 유전 2006.11.15(글 작성 시기)라고 적었고, 또 하단에 --- 마크를 한 이후에 책으로 이미 출판된 글이라고 적었는데, 은하인님이 너무 성급한 것 아닐까요? 글을 대충 읽지 말고 잘 보세요.
이곳에서 뿐이 아니라 나와 댓글로 토론을 했던 대부분의 유저들은 눈앞에 무엇이라도 씌웠는지 자주 착각들을 하곤 합니다. 이곳에서도 그러한 착각들로 나를 경험했던 많은 유저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은하인님에 대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는데, 지금 보니 은하인님은 나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었는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느닷없이 님에게 양심을 팔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글 내용도 님의 덧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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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4/01/24 21:09
원래는 계획에 없었던 일이지만 은하인님이 위에서 처럼 물었으니, 해야 할 말을 하겠습니다.
윤홍식과 홍익학당에 대한 비판은 내가 예전에 에너지힐링 카페와 내 카페 2번 한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강연 내용은 정말 한심할 정도로 수준이 낮을뿐만 아니라, 특히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견성이니 깨달음이니를 남발하는데, 오늘 다시한번 내 블로그와 카페에서 그들에 대한 비판 글을 새롭게 올렸습니다.
그러한 글을 이곳에 옮겨 신나이를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올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 글입니다.
홍익학당의 관계자들이 나의 비판글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면, 한겨레 문화토론방에서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고, 그들 모두가 동원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철저하게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밝혀줄 수 있으며, 그들의 에고적 한계를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겠습니다. 상구보리(진리추구) 깨달음의 세계에서 장난은 없습니다.
위 본문을 퍼온 공동처님이 이러한 나의 취지를 그들에게도 전달해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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