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유전(mindbank)
http://blog.naver.com/mindbank/memo/100198656984
모든 고통과 장애에 대하여
이번 글은 "조울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http://cafe.naver.com/lyangsim/444)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 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답변 이전에 먼저 http://blog.naver.com/mindbank/memo/100084352645 링크의 글을 읽도록 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대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과 앞으로 전개될 답변에 대하여 사전지식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블로그의 글만을 먼저 본 이후에 그 블로그의 글이 너무 어렵고 이해할만 하지 않다고 여기는 댓글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조울증에 대한 답변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확실히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에 대한 이해 또한,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최대한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해볼 생각입니다.
내가 종교라는 현상에 대하여 극히 반감을 갖고 있었고 또한 철저한 무신론자로 있었을 당시에도 "몸"에 대한 관심은 많았기 때문에 또 골프를 전공하면서 배웠던 운동생리학이나 운동역학들을 넘어 그 이후로 인체의 신비로운 현상들에 대한 현대 과학에서 설명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하여 당시만 해도 터부시 되던 "기(氣)"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여 확실하게 남보다 빠른 체험을 통하여 단기간에 많은 심득과 몸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게 된 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정리하여 골프채 하나만을 달랑 들고 호주의 시드니로 가서 9개월간 몸에 대하여 많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기공수련은 종교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상태로 임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중에 기공수련의 많은 심득과 함께 몇가지 체험들로 인하여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나의 무신론적 인식이, 세상의 이치와는 상관없이 또 다른이들을 통하여 알게 되거나 목격되는 갖가지 신(神)적 체험의 현상들이 "단순히 그들만의 정신적 오해"로 치부하거나 나만의 논리를 앞세워 수 많은 신앙적 체험 사례들을 철저히 무시한 것에 대하여 그 이후로는 "그럴 수 도 있겠다" 라고 판단을 유보하거나 최종적으로는 단순히 신(神)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우주에는 단순히 신(神)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나 '법칙' 정도는 있을 수 있겠다" 라고 입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서는 공항이 근처에 있었는데 비행기가 뜨고 내려앉는 모습을 시시 때때로 목격할 수 있고, 또한 그로인한 소음에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일률적인 상태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는 너무나 조용히 내려 앉고 뜨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도 또 어느 때는 "이러한 소음 속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될 정도의 엄청난 굉음으로 인한 압도적인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었는데 이러한 두가지 상반되는 입장이 단순히 뜨고 내리는 비행기 상태 마다의 노후화나 기종 마다의 특성에 따른 것이거나 또는 당시의 기온과 압력 그리고 소리 전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바람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접하는 나는, 굉음의 정도 차이가 너무나 많이 달라지는 것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굉음은 정말 내 자신의 존재성 자체를 망각하게 될 정도의 공포만을 느끼게 하는데 그 살기 좋다는 해안가 도시이면서 쾌적하고 환경 오염이 적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천국의 도시라 불릴 정도의 시드니가 그 상황에서 만큼은 가히 "정말 지옥이 따로 없구나" 라고 체험할 때가 가끔씩 있었으며 그러다가도 또 비행기는 보이는데 거의 무소음에 가까운 이착륙의 과정을 눈으로 가깝게 보게되니 그렇게 많은 편차를 이해하기가 곤란했던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내가 시드니에 있으면서 꾸준한 운동(골프)과 함께 기공수련을 극한까지 마치게 되었는데, 그 과정 중에 두번의 병원행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번은, 한밤중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큰 사건이 내 몸의 내부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일어나 보니 귀(耳)의 속으로 어떤 벌레가 들어가 파닥다팍 거리며 엄청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불개미에 물려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던 경험을 생각해 보니 불개미가 몸의 외부에서 물어 고통을 당해도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되는데 불개미 보다 더한 낯선 땅에서의 벌레가 신체의 외부도 아니고 또 뇌와 가까운 곳의 귀 속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 만약 그곳에서 물려 약간의 독성 물질만 분비된다 하여도 뇌가 붓거나 청각이나 시각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또 그 파닥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고막 가까이 자극하면서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새벽에 비명을 지르며 거실로 나와 동거인 두명을 깨우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귀 속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벌레를 어떻게 스스로 나오게 하거나 끄집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가느다란 이물질을 잡아 빼낸다고 하여도 그것이 오히려 벌레의 뒷 부분을 자극하여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거나 오히려 벌레가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물게 된다면 그야말로 하지 않은만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분 정도가 지났지만 그 5분 동안이 내게는 최고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 가장 강력한 사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데, 그 벌레를 일단 익사(溺死)시켜야 한다는 것이었고 귀 안의 막힌 공간으로 흘러 들어 가기에는 단순히 물(水) 보다는 기름(油)이 좋을 것 같아서 식용으로 쓰이는 올리브 기름을 귀쪽으로 부어 꽉 채우게 하였습니다.
효과는 탁월하여 파닥거리던 움직임 자체가 끈끈한 기름에 의하여 느슨해지면서 조용해지고 조금 지나서는 아에 미동초자 없게 되었습니다. 솜으로 기름을 어느 정도 닦아낸 후 다음날 가까운 병원이 문을 연 곳에 방문 하였는데, 귀에 물총과 같은 기구로 적당한 수압을 쏘아서 안의 이물질들을 모두 빼낸 후 살펴보니, 몸통이 길고 가느다란 나방이 죽은 상태로 나왔고 의사가 그 벌레를 해프닝에 대한 기념품이라며 작은 투명 원통에 알코올과 함께 넣어 썩지 않는 상태로 보관할 수 있도록 내게 전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벌레는 작은 통 속에 그대로 보관되어 내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몇달이 다시 지나, 시드니에서 이 보다 더한 고통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새벽에 응급실로 찾아간 일은 나의 블로그에서 그 체험에 대하여 여러차례 기술하고 있는데, 흔히 상기병이라고도 하고 주화입마라고도 하는 그러한 증상이 단순한 인내로 참기에는 너무나 겁이나고 곧 죽을 것만 같은 공포심 때문에 심리적 쇼크까지 더하여 응급실을 갔으나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뇌파검사 등의 결과에서 아무런 이상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원래의 고통으로 인한 쇼크 보다, 그토록 아팠던 내 몸의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 컨디션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한 정신적 의문에 대한 충격이 더 앞서게 된 상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단 현재의 상태보다 더 악화 된다면 병원에서의 응급조치가 언제든 가능한 상황에 있게 됨으로 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은 직후이기 때문이며 내가 느끼는 고통을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게 될 때라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한 이후라서 병원 내에서의 죽고 사는 문제에 관한한 이미 나의 권한 밖이라는 - "자포자기의 심정"이라는 이러한 일도 일종의 마음 내려놓기 - 마음가짐과 함께, 죽을 때 죽더라도 고통에 대한 현실적 증상인 심장(당시 내가 느꼈던 상황은 1초에 심장박동이 10차례 이상으로 여겨졌음)이 계속적인 충격을 받고 있었고 머리에서는 양미간 사이로 맞물려 있는 두개골의 이음새에서 "뿌드득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실제 머리의 크기가 미세하게나마 줄어들 정도의 외부압력이 정말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한 증상이 외부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증상 없음의 의사소견에 따른 괴리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결국 병원에서 아무런 약도 아무런 주사도 아무런 처치도 없이 병원 밥만 먹고 있는 상황이 되었고 심장이나 머리에서의 고통에 대하여 더 이상 어떠한 치료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입장이 된 것이라 병원에 있으나 퇴원을 하나 더 이상 어떠한 것에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과 처음의 고통에 비하여 마음의 진정과 함께 어느 정도 고통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고통은 여러날 지속이 되었는데, 특히 초저녁 부터 시작하여 새벽에는 또 다시 그러한 고통이 언제 찾아올까 싶어 공포심 속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다행스럽게도 몸 속의 압력에 대한 해소법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무념무상의 마음 상태로 입공(立功 단순히 두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상태. "마보"라고 하는 기마자세가 아님)을 여섯시간 정도 행하고 난 이후에 몸 속의 압력이 해소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앉거나 누워 있으면 기공수련이 저절로 반응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고자, 앉거나 눕지 않게 되었고 그 과정 중에서 다른 상황으로의 전개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몸 속의 압력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몸 속의 신비로운 현상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체험은 한국에 들어 와서도 계속 되었지만 "우주에 내재한 거대한 어떤 섭리" 정도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을 뿐, 종교나 신적인 문제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관심은 2년 정도 지나서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는데, 본인이 아무리 부정을 한다 하여도 그것이 막상 현실적 체험으로 다가오게 되면 그 체험이 기존의 가치관은 물론 타인들의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다 하여도 자신만의 실체적 진실로 적나라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때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정에는 가족들이 그리고 그 이외의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또 그들 모두가 이해 할 수 없어하는 입장을 알면서도 자신만이 체험하는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미래의 과학이 발달한다 하여도 또 그러한 미래에서의 과학이 인정하지 않는 어떤 현상이라 하여도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과학 너머의 이상 현상을 지금 현재의 자신이 누구라도 먼저 체험하게 된다면 그 체험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그것이 세상의 인식이나 과학적 상식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과학적 이해가 더 방해만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뿐입니다.
현재까지 인류의 과학적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이란 항상 현실에서 밝혀진 사실만을 근거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때, 오늘날까지 과학의 영역은 미지의 세계들을 꽤나 많이 개척해 왔습니다. 과거의 어느 시대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상황을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하게 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또 인간이 달나라에 가고 우주를 유영하게 되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 그러한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양자는 이 순간에도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수가 지구 밖에서 날아와 지구와 지구인들의 몸 속을 순식간에 투과하며 지나가고 있는데 그러한 양자적 미세한 일에서의 신비는 아직 아무것도 정확히 증명 되었다고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몸 속의 양자적 기(氣)의 움직임은 기공수련을 통하여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운동 범위가 몸 속 내부라고 하는 제한적 공간에서의 활동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양자적 움직임과 맞먹는 감각기능이 몸 속에 내재되어 있어 기공 수련을 통하여 고대로 부터 끊임없이 주장되어 왔고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이 그러한 체험적 근거들의 전승을 통하여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하여도 고대 중국인들과 고대 인도인들이 행한 숫자만 합하여도 수십억명의 체험적 전승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승자들 중에서 어느 정도 정점에 올라 있는 이들은 세상에서의 현상과 매우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러한 말씀들이 일반인들에게는 과거 나의 무신론적 인식과 같이 너무나 허무맹랑한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인식되기도 할 것입니다. 노자, 석가모니, 예수, 마호메트 등은 그러한 전승자들 중에서도 또 그들 세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도 정점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나의 영적인 체험의 때를 지난 관점에서 그들 선각자들의 말씀을 살펴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그러한 체험을 해본 적이 없거나 그저 과학적 논리로만 현상을 파악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현재의 과학적 인식 틀에서만 이해를 하기 때문에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초반에 시드니에서 비행기의 굉음이 시시각각으로 어느 때는 조용하게 느끼기도 하고 어느 때는 또 지옥의 소리 정도의 공포심을 갖게 하였다고 했는데,
(나 이외의 다른 누가 그 상황에서 나와 똑같은 입장에 처했을 경우, 나와 같이 큰 괴리감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하거나 그저 대부분의 비행기 소음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않아서 별 다른 피해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거나 또 실제로 그 당시의 비행기가 노후화 되었거나 기종 자체가 굉음을 낼 수 밖에 없는 몇대의 비행기가 더 많았거나, 소리가 나오는 곳과 나의 방향에서 바람의 영향을 받아 더욱 크게 증폭되어 내게 들렸거나와 상관 없이,)
"내가 그 당시에 받았던 괴리감의 다양한 현상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업력(業力, 카르마)에 의한 장애였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드니에서의 비행기 굉음을 포함하여 귀 속으로 벌레가 들어간 일 그리고 수련 중에 머리의 압력과 과도한 심장박동의 고통으로 응급실에 간 일들 모두가 업력에 의한 장애를 내게 보냈던 이 우주의 수 많은 여러 존재들의 실력행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하였고 과학적 의료 분야에서의 여러가지 검사로도 알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 "카르마" 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인도 힌두교에서 발생한 언어로 그 이전에는 도교의 인과응보와 일맥상통하고 다시 불교의 업, 그리고 기독교 신약과 마호메트에 의한 여러 경전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우주의 법칙이자 시스템이며 매트릭스 그 자체입니다.
우주에서 지구인 외에 외계의 고도로 진화한 종족들 부터 하위의 낮은 존재들 조차 그러한 시스템이나 매트릭스를 대부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할 수 있는데, 아무리 고도로 진화하였다 하여도 그 자신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면, 역시나 중생의 범주에서 그러한 행위들을 알고도 행하고 또 모르고도 행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수준에 따라, 때로는 정당한 행위로 알고 저지르거나 때로는 나쁜 행위임을 알고도 행하면서 지구인들에게는 일상과 평범을 가장한 상태로 모든 인류에게 대부분 적용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떤 하나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자 하는데,
한국은 올해에도 다세대 복합 주거지 건물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하여 위층과 아래층 간에 싸움이 벌어져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기사가 나와 화제거리가 되었는데,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 중의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단순히, 위층 거주자와 아래층 거주자 간의 소음이라고 하는 어찌보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는 그저 그만한 정도의 일로 싸움을 벌이고 결국 살인 사건에 이르게 될 정도의 수준에 있는 인간들만의 문제일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꽤나 높은 수준의 도덕적 교양을 갖추었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자기는 그러한 정도의 일이라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다음과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위층과 아래층 두곳의 거주자 가장들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매우 높아서 그에 따른 교양도 충분히 갖추었다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두 남자를 상정 하겠습니다.
아래층의 남자는 평소에 그의 부인으로 부터 위층 거주자의 아이들이 쿵쾅 거리며 노는 것 때문에 남자가 없는 낮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아지는 것 때문에 심장에 이상 증상을 느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볼 정도가 되었고 그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위층에 대신 올라가 그러한 아래층의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 해줄 것을 요청해 왔지만, 자신도 자식들을 키워본 입장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아내의 그러한 부탁을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자" 라고 번번히 거절해 왔으나, 어느날 늦은 밤에 조차도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쿵쾅 거리는 소음이 계속하여 생겨남에 따라 가장으로서의 입장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자 큰 마음을 먹고 위층에 올라가 그쪽 남자에게 그동안의 아래층에서의 소음에 의한 피해를 자세하게 피력하게 되었습니다.
위층의 남자는 아파트 층간 소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또한 자신뿐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게도 평소에 주의를 주어 가급적 바닥에 소음을 내는 일이 없도록 노력 했음에도 그날 따라 외부에서 따로 살고 있던 형제의 가족들이 늦게 까지 머물고 간 일 때문에 원하지 않았던 소음이 있었음을 고지하고 앞으로는 더욱 주의하도록 아래층 남자에게 정중한 사과와 함께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일단락 된 후로 한동안 잠잠했다가, 어느날 부터 다시 소음이 들려오는데 그것도 밤늦도록 계속 생겨나는 일이 빈번하게 되었고, 그러한 아래층의 고충이 가족간에 다시 화제가 되면서 아래층 부부의 자식들에게도 민감하게 생각하는 일로 번지게 되었고, 급기야 아래층 아이들은 위층 아이들을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말로써 위협을 가하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전해 들은 위층 부부는 자신들 입장에서 낮이나 밤이나 아래층에 행여 피해가 갈 정도의 소음이 생겨날까 싶어서 조심조심 그야말로 살엄을을 딛고 산다는 심정으로 살아 왔으며 더욱이 한밤 중에는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시간이라 아래층에 소음을 낼 정도의 쿵쾅 거림은 없었다고 생각하였고, 만약 소음이 있었다면 위층 부부가 잠자리 도중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하여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정도의 소음이나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 난 이후의 물내림 정도의 소음이 있었을 뿐인데 그 정도의 소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아래층에 내려가 자신들은 밤에 그만한 소음을 낸 적이 없음을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고, 만약 또다시 자식들에게 어떠한 위해를 줄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법적인 문제를 제기 하겠다는 경고를 하게 됩니다.
아래층 부부는 사정이야 어떻든 자신들의 아이가 위층의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또 위층의 부부가 밤에 그러한 소음을 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실에 대하여 위층의 옆집이나 그 보다 더 위층에서 매우 큰 소란이 있었던 여파가 자신들의 층까지 전달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로 조심하는 쪽으로 원만한 타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다시 또 그러한 소음들이 들려 오는데 아무리 여러번 주의깊게 들어 보아도 그 소음의 주인공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위층에서 내는 소리임이 분명해 보였고, 그러한 일을 여러날 관찰한 이후에 마침내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가 어느날 아래층의 남자가 저녁 늦은 시간에 들어 왔을 때는 밖에서의 술자리로 인하여 어느정도 취한 상태였는데, 마침 그 시간에 꽤나 큰 소음을 위층에서 발생한 일을 두고 그동안의 관찰과 함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또 어느 정도의 술기운에 의하여 당장 위층으로 올라가 그들 부부를 향하여 거세게 항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항의를 받은 위층 부부는 아래층 남자가 올라오기 전에 자신들과 아이들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뿐, 화장실이나 부엌에 간 일 조차 없는데 느닷없는 항의를 잠결에 일어나 받게 되고 아래층 남자의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거친 말투로 인하여 기분이 상한 것과 지난번 아이들이 위협을 받은 사건을 떠 올리고는 술 취한 상태의 말 꼬투리를 잡아 아래층 남자의 몰상식함과 교양이 없음을 적당히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층 남자는 자신이 비록 술에 어느 정도 취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여러 날의 관찰과 조금 전 들려 온 소음이 동일하게 바로 위층에서 일어난 일이라 확신한 상태에서 위층 부부가 이제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자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위층 부부의 은근한 비난을 받고 보니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가 평소에 어느 곳으로 부터라도 그러한 비난을 받을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한번의 비난이 매우 크게 작용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언성이 높아지고 오고가는 말들이 점차 갈 수록 험악해지면서 이제는 단순한 비난 정도가 아닌 욕설이 난무하게 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태가 이만큼 전개 되었다면 두 집안간의 파탄은 어떤 결정적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음이 정말 위층에서 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소음이 어떠한 경로로 인하여 위층의 옆집에서 생겨 났거나 또는 또 다른 층의 소음이 다른 집에서는 tv 소리나 가족간의 대화에 집중하는 때에 발생하여 어지간한 소음이 있었다 하여도 그것에 신경 쓸 겨늘이 없이 넘어갔을 때 그동안 소음에 인하여 피해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하는 그 아래층 남자에게만 크게 들렸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들어와서 영적인 체험과 함께 온갖 종류의 사탄이라 불리거나 마귀로 불리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부터 모든 시험을 거친 후 알게 된 사실은 위 사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며 그러한 간섭 과정을 현실 세계의 인간들이 알아챌 수 없도록 일상적이거나 평범함을 가장한 상태로 액세스를 가하여 그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행위들과 평범한 나날들을 두고 자신에게는 그러한 액세스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재 아무런 사건이 없다고 하여도 이미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사전 포석의 일환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일상이며 평범일 뿐, 그러한 모든 과정을 거친 이후에 어느 날 때가 되면, 그러한 모든 일상과 평범이 어느 한 계기로 모두 우연을 가장한 상태로 필연이 될 것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깨닫고 보면 자신의 전 일생이 그러한 우연을 가장한 모든 것의 필연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내가 영적인 깨달음 이전에 있었던 시드니에서의 비행기 굉음이나, 벌레가 귀로 들어간 일, 또 수련 중 응급실에 간 일들을 포함하여 심지어는 내가 태어나는 시기 부터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점차 자라나서 학교를 다니며 관계했던 모든 인적 교류들과 사회에 나와 만났던 모든 인연들 하나 하나가 이 몸을 받기 이전에 전생에서 관계될 수 있었던 모든 업(유전 본인의 직접적 업은 아님)의 상황 속에서 그것이 직접적 본인의 업이든 관계된 자의 업 해소를 위한 우회적이고 대속적인 업 해소 과정이든 철저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시험의 때에 직접적으로 가장 먼저 받게 된 고통은 "공황 장애" 였습니다. 이미 좋은 관계로 영적인 체험이 있은 직후에, 앞으로 있게 될 시험에 대한 암시를 받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한 상태에서도 찾아 온 공황장애의 위력은 대단 했습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간단한 예로 오토바이나 자동차들의 계속되는 경적 소리, 응급구조자동차나 소방차들의 긴급 상황을 알리는 효과음, 그리고 tv가 저절로 켜지고 꺼지는 현상 등) 암시하는 내용은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이다" 라는 구체적인 어떤 존재로 부터의 음성과 함께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심장의 두근거림은 매우 불규칙적으로 누군가에 의하여 마치 "나의 몸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매우 빠르거나 매우 느리게 박동하게 하고 있었으며, tv의 채널을 연속적으로 돌려가며 한마디씩 듣게 되는 멘트들을 조합하면 역시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문구로 연결이 되며, 인터넷에서 어떠한 검색을 하더라도 "지구 멸망"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들이 상관도 없는 검색어에서 쏟아져 나타났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중에도 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에 대해서 위해를 가할듯한 태도와 목소리 그리고 표정들을 나타냈으며, 수 많은 개들이 나를 따라 디니며 짖고 공중에서는 온갖 새소리들이 또 내게 혼란을 주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오고 또 그 당시에 정말 개나 새들을 포함하여 모든 차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응급 싸이렌 소리를 수 없이 들어야 할 일들이 실제적으로 있었다 하여도 그러한 모든 것 까지 그들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 답변 이전에 불교에 대한 사전지식을 얻도록 링크한 내 블로그에서의 청안스님이나 현각스님의 글들을 보고 "무아(無我)"사상에만 인식을 먼저 둔 관계로 내용이 어렵다고 한 댓글이 있었는데, 사실 불교에서 무아사상은 없습니다.
불교의 삼법인은 일체개고(일체가 모두 고통), 제법무아(모든 법에 '나'가 없음), 제행무상(모든 행함에 일상성, 항상성이 없음) 이렇게 세가지인데 제법무아에서 제법을 뜻하는 것은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거나 또는 다르게 말하여 "매트릭스" 그 자체에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며 법칙 그 자체에는에 어떤 존재성을 갖는 아이덴티티가 없다는 것을 말함이지 개인적 영혼 자체만 놓고 볼 때에는 각각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러한 아이덴티티가 있기 때문에 그 개체적 영혼의 '자성(自性)'이 윤회를 하거나 성불을 하거나 하화중생을 하는 것인데, 이것과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이야기로 설법이 되어 있는 "아상(我相)"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고 이것을 제법무아와 혼동하여 마치 윤회하는 개체의 영혼에 조차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상 我相
명사
1 .
<불교> 사상(四相)의 하나.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이른다.
2 .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위 사전적 해석을 아주 간단하고 쉽게 이해하려면, 중생의 몸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참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몸을 벗어난 영혼의 상태만 되어도 또 영혼이 비록 중생이라 하여도 최소한 윤회하는 '나'가 있으며 "자성본불" 이라고 하는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억지로 윤회하지 않아도 되는 고유한 개체적 존재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생의 몸을 받고 또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온(안이비설신=눈귀코혀몸에 의한 색수상행식)의 작용에서 타 존재들의 수 많은 눈치챌 수 없을 정도의 액세스에 의하여 늘 조작이 되기 때문에 모든 감각기관이나 생각을 통하여 바르게 보고 듣고 느꼈다 하여도 그것이 "참나(부처)"가 얻는 올바른 견해가 아니며 또 본래 자신의 영혼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타 존재와 시스템에 의하여 수 없이 교차하며 나타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의 조합일 뿐, "참나"가 아닌 "거짓된나"가 말하고 생각하며 느끼고 있음을 설법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나의 글을 모두 똑같이 그대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어느 글은 그저 뜻도 모르면서 무심히 읽었고 또 어느 글은 유독 관심을 갖게 되었거나 조금 더 공부를 한 상태라면 어느 정도 이해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상태에 따라 모두 같은 글을 읽었음에도 저마다 받아들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천차만별일 것인데, 누구는 탐진치에 의해서 이 글에 대해서 어떠한 기회를 노리거나 화를 내거나 공포심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탐진치에 일어나는 부적절한 현상 자체가 모두 이 지구 현실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의 어떤 수 많은 존재들의 대단히 복잡하고 중첩된 과정을 통한 액세스에 의하여 조작된 상(相, 狀, 想)이며 이러한 상을 두고 자신의 영혼 본질이 느끼는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중생들이기 때문에 "아상에 물들지 않는 마음"을 설법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온갖 장애를 일으키게 하는 타 존재들, 쉬운 말로 사탄이나 마귀들은 여러분들의 수 많은 전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전생에서 이 우주 어느 곳에 어떠한 형상의 존재로 있다가 과거 지구의 어떤 인간들에게 나쁜 장애를 일으키도록 어떠한 액세스 하는 일에 대단히 열중했던 전생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처가 되기 전의 모든 중생들은 대부분 탐진치에 의한 작용을 당시의 수준에 따라 받아 행하기 때문에 어떤한 존재 상태로 있다 하여도 결국 누군가에게 나쁜 위해를 가하게 되는 사탄이나 마귀와 같은 행위를 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며, 또 때로는 자비심이나 사랑에 대한 감동을 받아 그에 따라 보살이나 천사의 마음을 내기도 하였던 수 많은 전생들을 이미 겪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답변 글이 원래 조울증에 대한 견해였는데, 조증이나 우울증 또한 그것이 단순히 자신만의 내부적 상태의 부적절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아닌 수 많은 타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업력에 의한 조작되고 가공된 그리고 실제 물리적으로도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거나 숨의 막힘 정도를 조작하여 화병을 일으키게 하거나 온갖 망상들로 가득하게 하여 번뇌 속에서 우울증을 겪게 하는 일은 그들 타 존재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에 해당 됩니다.
가까운 예로, 무병(巫病)에 걸려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저러한 증상이 그대로 나타나게 되면서 몸살을 앓게 되는데 그러한 것에 굴복한다면 결국 원하지 않으면서도 내림굿을 받아 무속인이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일에 내가 조언을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저항을 하라"입니다.
몸에 대한 구속을 넘어서 가족에 대한 위해를 가하겠다고 하거나 실제로 그와 비슷한 사례가 생겨난다고 하여도 그것은 다른 원인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이지 그 타 존재 하나만의 실력 행사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일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포심을 조장하며 겁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러한 자들 또한 그들 뜻대로만 행할 수 없게 하는 그 보다 더 높은 존재들의 보살핌이나 가피력 (보살이나 천사들의 원력) 또한 있어서 삿된 존재들이 함부로 행할 수 없습니다. 그저 버틸 수 있는한 버티는 것이 좋으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 절에 가서 참회의 절을 올리거나 교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현재에 어떠한 고통을 받고 있거나 어떠한 일을 행하고자 할 때 그에 반하는 장애적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단순히 전생에 죄가 있어서가 아닌, 전생에 어떤 관계로의 업력에 의한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인내와 지혜로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평소에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팔정도에 최대한 가까운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고통과 장애는 외적 존재들의 조작에 의한 현상이다.(유전)"
"사탄과 부처는 다르지 않다.(성철스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어느 전생은 사탄 마귀였으며 미래의 부처이다.(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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