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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하나다` 라고 하시는 님의 말은 님이 깨달은 것입니까, 읽거나 들은 것입니까?
읽거나 들은 것이라면 뇌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니 아무 소용이 없고
님이 깨달은 지혜라면 부족한 것이니 다음 얘기를 들어보세요.(같이 공부해보자는 뜻입니다)
근대 한국 불교의 대선지식 만공스님의 이야기입니다.
만공 스님께서 소년 출가하여 공부를 하시다가 처음 든 화두가
"萬法歸一하니 一歸何處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런 뜻입니다.
그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한 소식을 얻고는 오도송을 읊습니다.
각설하고...
만공선사께서 전국의 선원을 역방하시면서 깨달음을 자랑하시다가 나중에 경허스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경허스님께서 만공스님께 묻습니다.
"여기 좋은 부채와 토시가 있는데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야 옳으냐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야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 하여도 옳고 토시를 부채라 하여도 좋습니다."
"그러냐? 너가 다비문(스님 등을 화장할 때 들려주는 법문)을 보았느냐?"
"예, 보았습니다."
" 다비문에 `有眼石人 涕下淚`라는 법문이 있는데 그 뜻을 아느냐?"
돌사람이 눈물 흘린다는 뜻을 아느냐, 이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돌사람이 눈물 흘린다는 뜻도 모르면서 어찌 부채를 토시라 해도 옳고 토시를 부채라 해도 옳다고 하느냐?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라. 無자 화두를 들라."
무자 화두란 `개는 불성이 없다`라는 이상한 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만공선사께서는 생사를 걸고 화두를 의심하여 마침내 남김 없이 깨달으셨습니다.
수행자가 화두를 의심하여 어느 정도 깨달으면 다음과 같은 경지에 들어갑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다.-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다.-
-천지만물이 하나다.-
-다리 위에 물이 있고 다리 밑에 산이 있다.-등등
이런 경지는 `일체가 공이다` 즉 `색즉시공`을 깨달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공즉시색을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빛은 빛이요, 어둠은 어둠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야 완전한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계속 수행하여 색과 공을 다 뛰어넘어야 남을 가르치는 보살 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른바 중도의 길입니다.
빛과 어둠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무슨 영성인이라 하겠습니까?
공자 앞에 문자 쓴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같이 공부해보자는 뜻입니다.
읽거나 들은 것이라면 뇌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니 아무 소용이 없고
님이 깨달은 지혜라면 부족한 것이니 다음 얘기를 들어보세요.(같이 공부해보자는 뜻입니다)
근대 한국 불교의 대선지식 만공스님의 이야기입니다.
만공 스님께서 소년 출가하여 공부를 하시다가 처음 든 화두가
"萬法歸一하니 一歸何處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런 뜻입니다.
그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한 소식을 얻고는 오도송을 읊습니다.
각설하고...
만공선사께서 전국의 선원을 역방하시면서 깨달음을 자랑하시다가 나중에 경허스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경허스님께서 만공스님께 묻습니다.
"여기 좋은 부채와 토시가 있는데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야 옳으냐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야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 하여도 옳고 토시를 부채라 하여도 좋습니다."
"그러냐? 너가 다비문(스님 등을 화장할 때 들려주는 법문)을 보았느냐?"
"예, 보았습니다."
" 다비문에 `有眼石人 涕下淚`라는 법문이 있는데 그 뜻을 아느냐?"
돌사람이 눈물 흘린다는 뜻을 아느냐, 이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돌사람이 눈물 흘린다는 뜻도 모르면서 어찌 부채를 토시라 해도 옳고 토시를 부채라 해도 옳다고 하느냐?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라. 無자 화두를 들라."
무자 화두란 `개는 불성이 없다`라는 이상한 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만공선사께서는 생사를 걸고 화두를 의심하여 마침내 남김 없이 깨달으셨습니다.
수행자가 화두를 의심하여 어느 정도 깨달으면 다음과 같은 경지에 들어갑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다.-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다.-
-천지만물이 하나다.-
-다리 위에 물이 있고 다리 밑에 산이 있다.-등등
이런 경지는 `일체가 공이다` 즉 `색즉시공`을 깨달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공즉시색을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빛은 빛이요, 어둠은 어둠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야 완전한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계속 수행하여 색과 공을 다 뛰어넘어야 남을 가르치는 보살 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른바 중도의 길입니다.
빛과 어둠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무슨 영성인이라 하겠습니까?
공자 앞에 문자 쓴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같이 공부해보자는 뜻입니다.
선사
- 2007.08.13
- 11:19:21
- (*.38.85.23)
그냥그냥님/
이번 한나라 경선에서 박근혜씨가 통과하기를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그렇지가 않아보입니다. 다소 불리해 보이는 군요.
박근혜씨는 기성 정치인들보다는 도덕적으로 그래도 훌륭해 보입니다.
이명박씨에 비해 박근혜씨가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저도 박근혜씨를 차선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도 여의치가 않군요. 이번 한주간을 지켜보겠지만, 한나라당 내 집행부가 모두 이명박 쪽이라는게 걸립니다. 이명박이 대선에 나가면 저쪽아이들은 너무 쉬운 게임을 할겁니다. 박근혜씨의 필패론은 맞습니다.
박근혜씨의 이런 도덕적 자질은 낙점이지만... 부족한게 있군요.
어차피 우리와 같은 민초들의 바람은 기성 수구기득권, 다시말해 국가와 민족을 팔아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양심을 팔아온 부류들의 청소를 원하는데...
박전대표의 한계가 거기에 있습니다. 수구꼴통들의 표를 가지고 당선이 되봐야 기존 정치를 답습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이것이 박근혜씨의 한계죠.
그렇다고 민노당의 심상정씨와 가은 깨끗한 인물에 기대를 해봤자... 말짱 광표로 헛일이 되고마니... 민초들은 부득이 차선, 또는 차차선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전선수들은 이미 양육된 판, 벗어나오기 힘든 판에서 노는 꼴이니... 하늘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일말의 기대를 저도 끝까지 해봅니다. 도인님의 말씀처럼 이루어 지기를...
이번 한나라 경선에서 박근혜씨가 통과하기를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그렇지가 않아보입니다. 다소 불리해 보이는 군요.
박근혜씨는 기성 정치인들보다는 도덕적으로 그래도 훌륭해 보입니다.
이명박씨에 비해 박근혜씨가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저도 박근혜씨를 차선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도 여의치가 않군요. 이번 한주간을 지켜보겠지만, 한나라당 내 집행부가 모두 이명박 쪽이라는게 걸립니다. 이명박이 대선에 나가면 저쪽아이들은 너무 쉬운 게임을 할겁니다. 박근혜씨의 필패론은 맞습니다.
박근혜씨의 이런 도덕적 자질은 낙점이지만... 부족한게 있군요.
어차피 우리와 같은 민초들의 바람은 기성 수구기득권, 다시말해 국가와 민족을 팔아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양심을 팔아온 부류들의 청소를 원하는데...
박전대표의 한계가 거기에 있습니다. 수구꼴통들의 표를 가지고 당선이 되봐야 기존 정치를 답습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이것이 박근혜씨의 한계죠.
그렇다고 민노당의 심상정씨와 가은 깨끗한 인물에 기대를 해봤자... 말짱 광표로 헛일이 되고마니... 민초들은 부득이 차선, 또는 차차선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전선수들은 이미 양육된 판, 벗어나오기 힘든 판에서 노는 꼴이니... 하늘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일말의 기대를 저도 끝까지 해봅니다. 도인님의 말씀처럼 이루어 지기를...
한성욱
- 2007.08.13
- 12:05:49
- (*.255.172.141)
주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빛과 어둠은 하나다."라는 말은 참이기도 거짓이기도 합니다. 왜 욕지기가 튀어나와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김지훈님!
시간이 실재 존재하는지는 참으로 모를일이지만 만약 존재한다고 치고 시간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한성욱이라는 인간"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한성욱을 흙으로 보아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극과 극은 닿아있습니다.
편협한 시야는 결과를 왜곡합니다.
선과 악을 논하듯이 빛과 어둠에 대한 토론도 같은 맥락을 지닙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빛은 내가 느끼는 어둠에서 나에게 시야를 확보할 환경을 선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빛의 탓입니까? 아님 빛을 가려서 보는 나의 한계로 인한 나의 탓이 됩니까? 그러한 의미에서도 빛과 어둠은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빛과 어둠의 분리와 통합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더 광범위한 내용이 될 것이나...
그 말을 하는 화자 혹은 필자가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말하거나 혹은 적느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겠죠.
장담하는데 개에게도 불성은 있고, 토시를 부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개에게는 불성이 없을 수도 있고, 토시를 부처라 부를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한 사람의 차이가 이러한 사고의 차이를 만들 뿐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것보다 한심한 이야기가 어디있습니까...?
오래전 중국의 어떤 선사의 말을 성철 스님은 법문에 설명을 위해 사용하셨지만...
그 정도의 평범한 말이 왜곡되어 깨닳음의 숭고한 경지로 보고 계신다면 공부를 조금더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고타마 싯달타도 성철도 평생 구라만 치다가 갔습니다. 하지만 그 두분 모두 입적하시기 전에 그것을 털어 놓으셨던 훌륭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말장난 속에는 극의의 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통렬히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실재 존재하는지는 참으로 모를일이지만 만약 존재한다고 치고 시간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한성욱이라는 인간"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한성욱을 흙으로 보아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극과 극은 닿아있습니다.
편협한 시야는 결과를 왜곡합니다.
선과 악을 논하듯이 빛과 어둠에 대한 토론도 같은 맥락을 지닙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빛은 내가 느끼는 어둠에서 나에게 시야를 확보할 환경을 선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빛의 탓입니까? 아님 빛을 가려서 보는 나의 한계로 인한 나의 탓이 됩니까? 그러한 의미에서도 빛과 어둠은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빛과 어둠의 분리와 통합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더 광범위한 내용이 될 것이나...
그 말을 하는 화자 혹은 필자가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말하거나 혹은 적느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겠죠.
장담하는데 개에게도 불성은 있고, 토시를 부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개에게는 불성이 없을 수도 있고, 토시를 부처라 부를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한 사람의 차이가 이러한 사고의 차이를 만들 뿐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것보다 한심한 이야기가 어디있습니까...?
오래전 중국의 어떤 선사의 말을 성철 스님은 법문에 설명을 위해 사용하셨지만...
그 정도의 평범한 말이 왜곡되어 깨닳음의 숭고한 경지로 보고 계신다면 공부를 조금더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고타마 싯달타도 성철도 평생 구라만 치다가 갔습니다. 하지만 그 두분 모두 입적하시기 전에 그것을 털어 놓으셨던 훌륭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말장난 속에는 극의의 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통렬히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한성욱
- 2007.08.13
- 12:13:24
- (*.255.172.141)
또 한가지...!
그냥그냥님 께서는 빛과 어둠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존칭입니다 오해 마세요.)이라는 한계적 상황이 만들어 내는 불완전한 이분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까?
천만번 깨달은 자라 하여도 이것 만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닐진데...
그것으로 남을 탓하는 경솔함은 무엇입니까?
빛과 어둠을 구별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누가 그러덥니까?
이치는 구분하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알아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한계를 갖는 인간으로써 스스로 우주를 규정해 버리는 모순은 한심함의 극치입니다.
그냥그냥님 께서는 빛과 어둠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존칭입니다 오해 마세요.)이라는 한계적 상황이 만들어 내는 불완전한 이분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까?
천만번 깨달은 자라 하여도 이것 만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닐진데...
그것으로 남을 탓하는 경솔함은 무엇입니까?
빛과 어둠을 구별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누가 그러덥니까?
이치는 구분하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알아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한계를 갖는 인간으로써 스스로 우주를 규정해 버리는 모순은 한심함의 극치입니다.
한성욱
- 2007.08.13
- 12:23:47
- (*.255.172.141)
아 그리고 물리학에 조예가 깊으신 김지훈님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주의 최소 단위의 입자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것이 규명 되어지고 확인 되었다고 하고요. 그럼 최소한의 입자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입자는 물질입니까? 비물질입니까? 물질이라면 파장을 갖을 것이고 파장은 빛을 수반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비물질이라면 에너지 자체여야 하는데 에너지는 빛을 수반합니까 수반하지 않습니까?
우주에서 빛과 빛이 아닌 것의 구분은 무엇으로 합니까?
내제된 빛을 바라보지 않는 한계적인 육안의 상황으로 혹은 덜떨어진 과학의 한계로 빛과 어둠을 구분하여야 한다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답변 바라겠습니다.
우주의 최소 단위의 입자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것이 규명 되어지고 확인 되었다고 하고요. 그럼 최소한의 입자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입자는 물질입니까? 비물질입니까? 물질이라면 파장을 갖을 것이고 파장은 빛을 수반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비물질이라면 에너지 자체여야 하는데 에너지는 빛을 수반합니까 수반하지 않습니까?
우주에서 빛과 빛이 아닌 것의 구분은 무엇으로 합니까?
내제된 빛을 바라보지 않는 한계적인 육안의 상황으로 혹은 덜떨어진 과학의 한계로 빛과 어둠을 구분하여야 한다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답변 바라겠습니다.
이선희
- 2007.08.13
- 12:27:44
- (*.139.142.5)
이 사이트에 계신 많은 영성인들의 최종 목표는 아마도 "깨달음"-enlightment-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빛이 있기에 "볼-覺" 수 있고, 그 인식능력을 획득한 자만이 색즉시공을 더불어, 공즉시색을 논할 수 있는 거겠죠...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면, 인간의 생각, 감정, 신경반응 등등... 존재 자체가
단지, '먹이'로서 유지되기 위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 또한, 보통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뇌파 및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빛'이라는 말로 통용된다고 봐도 될런지요...
빛의 존재이든, 어둠의 존재이든... 그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빛의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존재를 아예 없애버리고 너의 프로그램을 유지시키는
퓨즈를 영원히 꺼도 괜찮겠냐고 묻는다면...
그 빛의 존재는 과연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말을 할런지요...
존재유지라는 퓨즈를 계속 유지하려하는 한, 빛의 영역이든, 어둠의 영역이든.
그것은 에너지화하고, 그 동력원은 우주를 굴리는 힘이 됩니다..
그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깨달음도.. 니르바나도 아닌 것을요.
성경이 개구라이듯.
그 깨달음에 관한 말들 또한 구라천지였습니다...
소위 도통하여 깨닫는다고 하여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윤회라고 하는 것은, 빛이든 어둠이든 상관없이 우주의 존속을 위해 돌아가는
시스템이고.
결국에, 해탈이라는 말은. 빛과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無.... 빛과 어둠이라는 것은 양과 음의 태극의 범주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원 안에 공존하며, 서로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투쟁하고 고뇌하며
에너지-파동을 발산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결국에, 어떤 것을 하든지 그 프로그래밍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최선의 빛의 존재가 된다할지라도....
그것은 최악의 어둠의 존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존재 자체를 놓아버리고, 자신을 유지시키는
프로그램의 코드를 완전히 해제시키고 퓨즈를 영원히 꺼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그것은 바로 완전하고 영원한 無, 완전한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만약 진정함과 결부되는 단어를 뜻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사이트 자체의 방향성 자체가 애시당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면, 인간의 생각, 감정, 신경반응 등등... 존재 자체가
단지, '먹이'로서 유지되기 위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 또한, 보통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뇌파 및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빛'이라는 말로 통용된다고 봐도 될런지요...
빛의 존재이든, 어둠의 존재이든... 그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빛의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존재를 아예 없애버리고 너의 프로그램을 유지시키는
퓨즈를 영원히 꺼도 괜찮겠냐고 묻는다면...
그 빛의 존재는 과연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말을 할런지요...
존재유지라는 퓨즈를 계속 유지하려하는 한, 빛의 영역이든, 어둠의 영역이든.
그것은 에너지화하고, 그 동력원은 우주를 굴리는 힘이 됩니다..
그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깨달음도.. 니르바나도 아닌 것을요.
성경이 개구라이듯.
그 깨달음에 관한 말들 또한 구라천지였습니다...
소위 도통하여 깨닫는다고 하여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윤회라고 하는 것은, 빛이든 어둠이든 상관없이 우주의 존속을 위해 돌아가는
시스템이고.
결국에, 해탈이라는 말은. 빛과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無.... 빛과 어둠이라는 것은 양과 음의 태극의 범주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원 안에 공존하며, 서로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투쟁하고 고뇌하며
에너지-파동을 발산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결국에, 어떤 것을 하든지 그 프로그래밍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최선의 빛의 존재가 된다할지라도....
그것은 최악의 어둠의 존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존재 자체를 놓아버리고, 자신을 유지시키는
프로그램의 코드를 완전히 해제시키고 퓨즈를 영원히 꺼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그것은 바로 완전하고 영원한 無, 완전한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만약 진정함과 결부되는 단어를 뜻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사이트 자체의 방향성 자체가 애시당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선희
- 2007.08.13
- 13:02:57
- (*.139.142.5)
: @ㅁ@ !!! 원래는 뒤에 더 썼었는데... 타임이 지나서 글이 다 날아갔습니다..
글이 중간에 끊겼습니다.. 우연히 중간정도에서 복사를 해둬서 위의 글 밖에는 글이 안남았네요.
고...苦.....
자신의 모든 전생을 알아내고, 이 무한반복되는 끔찍한 우주의 실태..
그리고, 그것의 모든 창조라는 기획과, 번영과 그리고 멸망..그리고 재탄생...
무한히 성주괴공을 반복하는 시스템이, 바로 매트릭스였다는 것을 알아버린
환자, 병자..고통의 극치를 달려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는 더더욱 없는
자들만이 가는 길입니다.. 깨달음-해탈의 길이란....
그러니, 깨달음이 어떻고..구원이 어떻고.. 빛이 어떻고 어둠이 어떻고...
마구 떠벌여대는 경전이나, 책들이나, 사이트를 접하는 것만으로
진실과 진리를 쉽게 알 수는 없겠죠..
오히려, 상위차원의 존재들의 더 맛있고 영양 많은 먹이가 되기 위해서
분발하게 하기 위해서 활성화시키거나, 겁을 주고 공포와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끔
오도시키는 일등을 기획하면 모를까요...
프리메이슨이 일루미너티의 하수그룹이듯, 일루미너티도 토사구팽인걸요..
아눈나키 그룹들도 역시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혹성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빛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다만 , 지금껏 자신을 지배하고
먹이로 삼았던 종족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생존하며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거기까지가 인식의 한계였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기, 이 LightEarth.net이라는 사이트에서는 말이죠.
그러니, 기실.... 애시당초 빛과 어둠이 하나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이 사이트의 목적성 여부에 맞는 적절한 말이 아니었지 않나 싶습니다...
해탈이란, 벗어나는 것입니다...존재 유지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빛이든, 어둠이든.. 존재유지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서 맹목적인 리비도, 루슈에너지가 넘쳐나면. 그로서 계속 살아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으면, 기억을 모두 삭제당하고 망각당하여 다시 태어납니다...
5분전에, 그동안 살았던 자신의 모든 기억이 상실된다면. 그것은 과연
한 객체가 유지되는 것일까요.. 기질의 답습은 유지되나, 객체의 답습은 아닌 것.
어항의 붕어는 3분(맞나;;;;) 마다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때문에 그 좁은 어항에서
죽을 때까지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간혹가다가..프로그램에도 버그가 생기듯이...
이상하고, 미친 정신병자들이 발생합니다.. 왠지모르게 전생을 모조리 기억하고
그 실태를 감지해내어 미칠듯한 苦에 발악을 하는 병원균을 가진 병자말입니다..
부처는 스스로를 의사에 비유했습니다..
항원에 항체를 주면...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영원히 죽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극도의 공포이지만.. 苦가 그 공포를 넘어서서 아주 미쳐버린 자들만이 해탈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이트는 , 그것을 논하는 사이트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는 전생도 기억이 안나고 영적인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을 배반하고 싶지 않을뿐입니다....
빛과 어둠이라.....
애초에 그것은 존재유지를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빛과 어둠은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앞면과 뒷면은 하나의 동전이라는 면에서 공존하지만.
분명, 앞면은 앞면이고, 뒷면은 뒷면이겠죠...
그러나, 그 동전은 <존재한다>라는 면에서 동일합니다...
인간이 그 동전을 이용할 때에, 앞면과 뒷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 동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겠지요....
글이 중간에 끊겼습니다.. 우연히 중간정도에서 복사를 해둬서 위의 글 밖에는 글이 안남았네요.
고...苦.....
자신의 모든 전생을 알아내고, 이 무한반복되는 끔찍한 우주의 실태..
그리고, 그것의 모든 창조라는 기획과, 번영과 그리고 멸망..그리고 재탄생...
무한히 성주괴공을 반복하는 시스템이, 바로 매트릭스였다는 것을 알아버린
환자, 병자..고통의 극치를 달려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는 더더욱 없는
자들만이 가는 길입니다.. 깨달음-해탈의 길이란....
그러니, 깨달음이 어떻고..구원이 어떻고.. 빛이 어떻고 어둠이 어떻고...
마구 떠벌여대는 경전이나, 책들이나, 사이트를 접하는 것만으로
진실과 진리를 쉽게 알 수는 없겠죠..
오히려, 상위차원의 존재들의 더 맛있고 영양 많은 먹이가 되기 위해서
분발하게 하기 위해서 활성화시키거나, 겁을 주고 공포와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끔
오도시키는 일등을 기획하면 모를까요...
프리메이슨이 일루미너티의 하수그룹이듯, 일루미너티도 토사구팽인걸요..
아눈나키 그룹들도 역시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혹성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빛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다만 , 지금껏 자신을 지배하고
먹이로 삼았던 종족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생존하며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거기까지가 인식의 한계였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기, 이 LightEarth.net이라는 사이트에서는 말이죠.
그러니, 기실.... 애시당초 빛과 어둠이 하나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이 사이트의 목적성 여부에 맞는 적절한 말이 아니었지 않나 싶습니다...
해탈이란, 벗어나는 것입니다...존재 유지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빛이든, 어둠이든.. 존재유지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서 맹목적인 리비도, 루슈에너지가 넘쳐나면. 그로서 계속 살아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으면, 기억을 모두 삭제당하고 망각당하여 다시 태어납니다...
5분전에, 그동안 살았던 자신의 모든 기억이 상실된다면. 그것은 과연
한 객체가 유지되는 것일까요.. 기질의 답습은 유지되나, 객체의 답습은 아닌 것.
어항의 붕어는 3분(맞나;;;;) 마다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때문에 그 좁은 어항에서
죽을 때까지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간혹가다가..프로그램에도 버그가 생기듯이...
이상하고, 미친 정신병자들이 발생합니다.. 왠지모르게 전생을 모조리 기억하고
그 실태를 감지해내어 미칠듯한 苦에 발악을 하는 병원균을 가진 병자말입니다..
부처는 스스로를 의사에 비유했습니다..
항원에 항체를 주면...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영원히 죽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극도의 공포이지만.. 苦가 그 공포를 넘어서서 아주 미쳐버린 자들만이 해탈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이트는 , 그것을 논하는 사이트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는 전생도 기억이 안나고 영적인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을 배반하고 싶지 않을뿐입니다....
빛과 어둠이라.....
애초에 그것은 존재유지를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빛과 어둠은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앞면과 뒷면은 하나의 동전이라는 면에서 공존하지만.
분명, 앞면은 앞면이고, 뒷면은 뒷면이겠죠...
그러나, 그 동전은 <존재한다>라는 면에서 동일합니다...
인간이 그 동전을 이용할 때에, 앞면과 뒷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 동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겠지요....
이선희
- 2007.08.13
- 13:14:53
- (*.139.142.5)
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식별할 수 있는 존재이고, 그렇게 프로그램된 존재들입니다. 그 영역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 이원성을 벗어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결국에, 여기 이 사이트에서 논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단지 빛의 세력 입장으로서, 그것에 기초한 영적진화일테니까요.
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유지시키고 있는 자아프로그램 그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가 생각납니다..
'당신은 프로그램입니까?'
'네----'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결국에, 覺하여 빛(light)으로 見하여 인식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논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가 있든, 없든.. 저는 모릅니다.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 모른다는 것에는 변함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있다 없다 생각하는 바로 그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생각하는 자신 자체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다만 순간순간의 인식으로 의식성을 유지시키며 그저, 있을 뿐일 것입니다...
프로그래밍된 사고 회로로써, 그 존재 프로그램을 유지시키면서 사고했던
자신의 자아 프로그램... 그것이 죽으면, 有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有를 유지시키도록 만들어진 것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無라면...
글쎄요.. 무가 있다고 해야 옳은지, 없다고 해야옳은지....
그것을 따지는 자신 자체가 죽는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있다 없다 논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있겠는지 없겠는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을 알아버리면 미쳐서 자살해버릴 것 같네요..
만약, 모두가 나 자신을 알아버리면, 그것을 말하고 있는 철학도..종교라는 것도...
모두 다 없어져버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두 번 다시는... 그 누구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따위는
묻지 않겠죠....
결국에, 여기 이 사이트에서 논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단지 빛의 세력 입장으로서, 그것에 기초한 영적진화일테니까요.
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유지시키고 있는 자아프로그램 그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가 생각납니다..
'당신은 프로그램입니까?'
'네----'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결국에, 覺하여 빛(light)으로 見하여 인식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논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가 있든, 없든.. 저는 모릅니다.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 모른다는 것에는 변함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있다 없다 생각하는 바로 그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생각하는 자신 자체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다만 순간순간의 인식으로 의식성을 유지시키며 그저, 있을 뿐일 것입니다...
프로그래밍된 사고 회로로써, 그 존재 프로그램을 유지시키면서 사고했던
자신의 자아 프로그램... 그것이 죽으면, 有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有를 유지시키도록 만들어진 것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無라면...
글쎄요.. 무가 있다고 해야 옳은지, 없다고 해야옳은지....
그것을 따지는 자신 자체가 죽는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있다 없다 논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있겠는지 없겠는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을 알아버리면 미쳐서 자살해버릴 것 같네요..
만약, 모두가 나 자신을 알아버리면, 그것을 말하고 있는 철학도..종교라는 것도...
모두 다 없어져버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두 번 다시는... 그 누구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따위는
묻지 않겠죠....
이선희
- 2007.08.13
- 13:21:31
- (*.139.142.5)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행복이나, 기쁨.. 극락?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대명제를 띄워놓고, 인간을 철저하게 고뇌시키고, 방황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것은 의도된 바였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하게 만듦으로써.....
점점점......
그만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 에너지가 곧, 이 우주를 가동시키는 힘이 되므로...
결국에, 우리는 모두 신의 봉사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실험실의 곰팡이, 노예조차 되지 못하는 가축이건 뭐건...
어차피 우리는 결국에, 봉사를 하고 있고, 그 신성한 신의 의도와 부합하는
생과 존재의 의지를 발현시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의도된 바였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하게 만듦으로써.....
점점점......
그만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 에너지가 곧, 이 우주를 가동시키는 힘이 되므로...
결국에, 우리는 모두 신의 봉사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실험실의 곰팡이, 노예조차 되지 못하는 가축이건 뭐건...
어차피 우리는 결국에, 봉사를 하고 있고, 그 신성한 신의 의도와 부합하는
생과 존재의 의지를 발현시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성욱
- 2007.08.13
- 13:25:08
- (*.255.172.141)
빛과 어둠은 동전과 같은 구조가 아닙니다. 잘못된 인식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수많은 동전들을 비교하는 편이 좋습니다.
빛의 지구를 위시한 많은 영성 사이트들이나 포럼은 빛과 어둠의 싸움 혹은 대립 구조의 우주적인 시나리오를 추구합니다만...
그것은 거대한 시나리오 중에 단지 한편의 작디 작은 단편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으지하는 시나리오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만 다룰뿐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이선희님의 말씀은 대부분 옳습니다.
이 정도의 성찰을 갖는 분이라면 능히 이 분과 토론이 가능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걱정 되는 군요...
억지의 글이 이 좋은 글을 물들이지는 않을까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에 대한 탐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줍지 않은 경지나 깨달음과 말장난을 추구하면 답은 커녕 답답함만 그득한 당신들의 뇌와 정신과 환경이 될 것이란 말입니다.
차라리 수많은 동전들을 비교하는 편이 좋습니다.
빛의 지구를 위시한 많은 영성 사이트들이나 포럼은 빛과 어둠의 싸움 혹은 대립 구조의 우주적인 시나리오를 추구합니다만...
그것은 거대한 시나리오 중에 단지 한편의 작디 작은 단편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으지하는 시나리오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만 다룰뿐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이선희님의 말씀은 대부분 옳습니다.
이 정도의 성찰을 갖는 분이라면 능히 이 분과 토론이 가능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걱정 되는 군요...
억지의 글이 이 좋은 글을 물들이지는 않을까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에 대한 탐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줍지 않은 경지나 깨달음과 말장난을 추구하면 답은 커녕 답답함만 그득한 당신들의 뇌와 정신과 환경이 될 것이란 말입니다.
외계존재들이 아무리 공부해도 갈수없는 경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