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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40편. 열두 사도를 세움
8. 호수에서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사도들이 가르침을 완전히 새겨듣지 못했음을 잘 알았다. 베드로,야고보,요한에게 얼마큼 특별 교육을 주기로 작정하였고, 그들이 동료들에게 그 아이디어를 분명히 밝힐 수 있기를 바랐다. 열둘이 영적 하늘나라 관념의 어떤 모습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다윗의 왕좌(王座)를 회복하고 땅에서 현세의 권력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다는, 글자 그대로 하늘나라 개념, 오래 되고 뿌리 깊은 개념 바로 위에, 끈질기게 이 새 가르침을 붙이려고 고집하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목요일 오후에, 하늘나라의 일을 의논하려고 예수는 베드로,야고보,요한과 함께 배를 타고 물가를 떠나갔다. 이것은 네 시간 동안 가르치는 회의여서 수십 가지 질문과 대답을 포함했고, 시몬 베드로가 형 안드레에게 다음 날 아침에 준 대로, 이 중요한 오후의 요약(要約)을 다시 정리해서 이 기록에 넣는 것이 가장 유익할까 한다:
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하늘 아버지가 전반적으로 돌보심을 신뢰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운명론(運命論)이 아니었다. 이 날 오후에 어느 옛 히브리 속담을 인정하여 인용했다: "일하려 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지니라." 가르침에 대한 충분한 논평으로서 자신의 체험을 가리켰다. 아버지를 신뢰함에 대한 교훈은 현대나 어느 다른 시대의 사회 또는 경제 조건에 비추어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의 가르침은 어느 시대나 어느 세계에도,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이상적 원칙을 포함한다.
예수는 사도(使徒)와 제자가 되는 요건의 차이를 세 사람에게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나서도 열두 사도에게 신중함과 예견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선견(先見)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근심, 걱정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정신차리고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검소와 절약에 관한 많은 질문에 답하여, 다만 목수와 배 건축자와 어부로서 살았던 생활, 그리고 열둘을 신중하게 조직한 것을 주목하라고 했다. 세상을 적(敵)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생활 환경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란히 작용하는 신의 섭리의 일부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려고 애썼다.
개인적으로 무저항(無抵抗)을 실천한 것을 이해시키는 데 예수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아예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 않았고, 사도들의 눈에는 그들이 똑같은 정책을 추구한다면 주가 기뻐할 듯이 보였다. 악에 대항하지 말라고, 불법이나 권리 침해에 맞서 싸우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악행을 수동적으로 묵인(默認)하기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행악자와 범죄자들을 사회가 처벌하는 것을 승인한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을 집행하는 데 국가 정부가 때때로 무력(武力)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 날 오후에 예수는 분명히 밝혔다.
예수는 앙갚음하는 악습이 나쁘다고 제자들에게 그침 없이 경고하였다. 그는 복수, 앙갚음하는 관념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불평 품는 것을 딱하게 여겼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는 관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 몸소 앙갚음하는 개념 전체를 찬성하지 않았고, 이 문제를 한편으로 국가 정부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다. 그의 가르침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세 사람에게 뚜렷하게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 때까지 가르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너희의 적을 사랑하라-인간이 형제라는 도덕적 주장을 기억하라
악(惡)은 무익하다: 한 가지 악은 복수(復讐)로 고쳐지지 않는다. 악 자체의 무기(武器)로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믿음-신의 정의(正義)와 영원한 선이 궁극에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라.
2. 정치적 태도. 당시에 유대 민족과 로마 정부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된 관계에 대한 논평을 조심하라고 사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어떤 면에서도 그들이 이 난국에 말려드는 것을 금했다. 그는 적들이 놓은 정치적 덫을 피하려고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케자의 물건을 케자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물건을 하나님께 돌리라" 고 늘 대답했다. 구원받는 새 길을 확립하는 사명으로부터 주의(注意)를 빼앗기지 않으려 하였다. 자신이 어떤 다른 것에 관여하도록 버려 두지 않았다. 사생활에서 언제나 모든 국가의 법과 규칙을 마땅히 준수했다. 모든 대중 교육에서 시민, 사회, 경제 분야를 무시(無視)했다. 오직 사람의 속, 개인의 영적 생활의 원칙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세 사도에게 일러 주었다.
따라서 예수는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다. 세상을 다시 조직하려고 오지 않았다. 이렇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와 세대에만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최선으로 사는 길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으며, 어떤 세대(世代)에도 어떻게 자체의 문제에 예수의 생애를 최선으로 적용하는가 발견하는 수고가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어떤 정치 이론이나 경제 이론, 어떤 사회 체제나 산업 체제와 동일시하는 잘못을 결코 저지르지 말라.
3. 사회적 태도. 유대인 랍비들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예수는 와서, 적극적이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친절 관념을 제시하였다. 동포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진지해서, 그 사랑이 전 세계를 포함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을 자기 이웃으로 만들기까지, 이웃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 모두와 함께, 예수는 대중이 아니라 오직 개인에 관심을 가졌다. 예수는 사회학자가 아니었지만, 온갖 형태의 이기적 고립을 깨뜨리려고 수고했다. 순전한 동정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쳤다.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비에 지배를 받는 아들이다. 동정심은 바로 그의 성품이다.
주는 사람들이 결코 친구에게 식사를 대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추종자들이 가난한 자와 불행한 자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확고한 응보 감각을 가졌지만, 그것은 반드시 자비로 말미암아 부드럽게 되었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사회의 기생충이나 전문(專門)으로 자선을 바라는 자들에게 이용당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사회적 선언을 하기에 아주 접근한 것은 "판단을 받지 않도록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한 것이다.
그는 무차별한 친절이 여러 가지 사회악에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음 날, 그가 요청하거나, 두 사도가 공동으로 간청할 때를 제쳐 놓고, 사도의 기금을 하나도 자선금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유다에게 분명히 지시했다. 이 모든 문제에서 "뱀 같이 지혜로우나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늘 말하는 것이 예수의 버릇이었다. 모든 사회 상황에서 참을성,관용,용서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인 듯하였다.
가족은-여기서,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예수의 생활 철학의 바로 그 핵심을 차지했다.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을 가족에 기초를 두었고, 한편 조상을 지나치게 존경하는 유대인의 성향을 고치려고 애썼다. 가족 생활을 가장 높은 인간의 임무로서 높였지만, 가족 관계가 종교적 의무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가족이 이 세상의 제도요, 죽음 뒤에 살아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가족이 아버지의 뜻에 충돌했을 때 예수는 가족을 서슴지 않고 버렸다. 사람의 새롭고 더 큰 형제 정신-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예수의 시절에 팔레스타인에서,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이혼 관습은 흐리멍덩했다.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율법 세우기를 거듭 물리쳤지만, 초기에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은 이혼에 관하여 뚜렷한 의견을 가졌고, 그런 의견을 서슴지 않고 예수의 탓으로 돌렸다. 요한 마가를 빼고, 신약(新約)의 저자들은 모두 결혼에 대하여 좀더 엄격하고 진보된 이 관념을 지켰다.
4. 경제적 태도. 예수는 그가 발견한 세상에서 일하고, 살고, 물건을 교환했다. 경제 개혁가가 아니었지만, 재산의 불평등한 분배가 부당한 것에 빈번히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치유하는 방법으로 아무런 대안(代案)을 내놓지 않았다. 사도들이 재산을 지녀서는 안 되지만, 부와 재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재산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이 그릇되다고 설교한다고 세 사람에게 분명히 일러 주었다. 사회 정의(正義)와 산업의 공정이 필요함을 인정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아무런 원칙을 내놓지 않았다.
결코 추종자들에게 세상의 소유물을 피하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다만 열두 사도에게 그렇게 했다. 의사(醫師)인 누가는 사회의 평등을 뚜렷이 믿는 사람이었고, 그의 개인적 관점과 조화되게 예수의 말씀을 풀이하려고 많이 애썼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계 공동체 형태의 생활을 채택하라고 친히 지시한 적이 없었고,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어떤 종류의 선언도 하지 않았다.
예수는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탐욕에 대하여 자주 경고했고, "사람의 행복은 물질 재산의 풍부함에 있지 않느니라" 선언하였다. 항상 되풀이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혼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으리요?" 재산 소유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지만, 영적 가치의 우선(于先)이 영원히 필수라고 주장했다. 후기의 가르침에서, 대중에게 봉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수많은 비유를 이야기함으로 유란시아의 그릇된 여러 생활 관점을 고치려고 애썼다. 예수는 결코 경제 이론을 만들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각 시대는 기존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자체의 처방을 진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예수가 오늘날 육체를 입고 살면서 땅에 계시다면, 대다수의 착한 남녀의 기대에 크게 어긋날 터인데, 오늘날의 정치나 경제 논쟁(論爭)에서 편을 들지 않으리라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순전히 인간적인 너희 문제들을 풀려고 도전하는 데 너희를 몇 배나 더 유능하게 만들도록, 마음의 영적 생활을 어떻게 완전하게 만드는가 가르치면서, 숭고하게 초연(超然)할 것이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처럼 만들고, 다음에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의 정치,사회,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이해심을 가지고 기다리려 할 것이다. 그가 비난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재산에 굴종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재산이 미치는 영향이었다. 이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고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5. 개인적 종교. 너희는 예수의 사도들처럼, 예수의 생애를 보고 그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 그는 완전하게 된 일생을 유란시아에서 살았고, 독특한 가르침은 오직 그 일생을 닥친 그 배경에서 상상할 때 겨우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의 신성한 성품과 사랑하는 성격을 드러내는 데 가장 도움이 될 것은 그의 일생이지, 열둘에게 준 가르침이나 군중에게 한 설교가 아니다.
예수는 히브리 선지자나 그리스 도덕가들의 가르침을 공격하지 않았다. 주는 이 위대한 선생들이 대표하는 많은 좋은 것을 인식했지만, 무언가 더 큰 것, "사람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자진해서 순종(順從)하기" 를 가르치려고 땅에 내려왔다. 예수는 다만 종교인, 종교적 느낌으로 온통 싸여 있고 오직 영적 충동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너희가 한 번 얼핏 뵐 수 있었다면, 예수가 이 세상일에 큰 경험을 가진 실재한 사람이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여러 세기를 통해서 계속,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많이 와전(訛傳)되었다. 너희는 또한 주의 온유와 겸손에 대하여 비뚤어진 생각을 지녀왔다. 그의 일생의 목표는 최상의 자존심이었던 듯하다. 사람이 참으로 높아질 수 있도록 오직 스스로 겸손하라고 충고했다. 그가 정말로 의도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겸손이었다. 그는 성실함-깨끗한 마음-을 높이 평가했다. 인격의 평가에서, 충실은 으뜸가는 미덕이었고, 한편 용기는 그의 가르침의 바로 그 핵심이었다. "두려워 말라" 가 표어요, 참고 견딤은 인격의 강건함에 대한 이상(理想)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용감,용기,영웅심의 종교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어째서 보통 사람 열두 명을 개인 대표로서 골랐는가 하는 이유이며, 이들의 대다수는 거칠고 튼튼하고 남자다운 어부였다.
예수는 그 시대의 사회악에 대하여 할 말이 거의 없었다. 도덕적 방탕을 언급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는 참된 미덕을 긍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가르침을 나누어 주는 부정적 방법을 세심하게 피했고, 악을 선전하려 하지 않았다. 도덕을 개혁하는 자가 아니었다. 인류의 육욕(肉慾)은 종교적 꾸지람이나 율법으로 금지함으로 억누를 수 없음을 잘 알았고, 그렇게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얼마 안 되는 비난은 대체로 자만,잔인,억압,위선을 향한 것이었다.
예수는 요한이 한 것처럼, 바리새인들조차 맹렬히 비난하지 않았다. 많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마음에는 정직(正直)함을 알았고, 종교적 전통에 노예처럼 매여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예수는 "먼저 나무를 좋게 만드는 일" 을 크게 강조했다. 어떤 몇 가지 특별한 미덕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평가한다는 것을 세 사람에게 강조하였다.
요한이 이 날의 가르침으로부터 한 가지 얻은 것은 예수가 가진 종교의 핵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도록 자극받은 성격과 함께 자비로운 인품을 얻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들이 바야흐로 선포하려는 복음은 온 인류를 위하여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을 깨달았다. 그는 이 인상을 나중에 바울에게 전했고, 바울은 이로부터 그리스도가 "둘째 아담" 이라는 신조를 지어 냈다.
야고보는 땅에서 자녀들이 마치 완성된 하늘나라 시민이 이미 된 것처럼 살기를 예수가 바란다는 감격스러운 진리를 깨달았다.
예수는 사람들이 다른 것을 알았고, 사도들에게 다르게 가르쳤다. 제자와 신자들을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추어 형식화하려고 애쓰기를 삼가라고 사도들을 항상 훈계하였다. 각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되는 독립된 개인을 개발하도록 버려 두려고 애썼다. 베드로의 여러 질문 중 하나에 대답하여, 주는 말씀했다:
"새롭고 더 나은 생활에 어린아이로서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해방하기를 내가 원하노라." 예수는 참된 선함은 의식(意識)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자선을 베풀 때 바른 손이 무엇을 하는지 왼손이 모르게 하기를 언제나 주장하였다.
주의 종교가 영적 자기 반성에 대하여 아무 규정이 없음을 깨닫고 세 사도는 이 날 오후에 놀랐다. 예수의 시절 이전과 이후에 있던 모든 종교는, 그리스도교조차, 양심적인 자아 검토를 조심스럽게 마련하였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종교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의 생활 철학은 종교적 내성(內省)이 없다. 목수의 아들은 결코 인격을 형성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인격의 성장을 가르쳤고,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는 거만한 자기 본위를 방지하는 수단으로 자아의 분석을 금지할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권리는 신앙, 몸소 믿는 데 달려 있다. 하늘나라로 진보하여 계속 올라가는 길에 치르는 비용은,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얻고자 하는 값비싼 진주와 같다.
예수의 가르침은, 약자(弱者)와 노예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이다. 그의 종교는 (그 시대에) 결코 신조(信條)와 신학 법칙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는 한 줄의 글도 뒤에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일생과 가르침은 어느 시대나, 어느 세계에도, 영적 안내와 도덕적인 가르침에 적당한 유산(遺産), 영감을 주는 이상적인 유산으로서 우주에 남겨 주었다. 오늘날도,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종교와 따로 구별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가르침은 각 종교에게 살아 있는 희망이다.
예수는 종교가 땅에서 사람의 유일한 추구 대상이라고 사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관한 유대인 관념이었다. 그러나 종교가 열두 사도가 전념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신자들의 진정한 교양의 추구를 막으려고 예수가 가르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는 전통에 묶인 예루살렘의 종교 학당들을 깎아내렸다. 그는 아낌없이 주었고, 마음이 넓고, 널리 알고, 너그러웠다. 자의식하는 경건은 올바르게 사는 그의 철학에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주는 그 시대나 후일 어느 시대의 비종교 문제들을 위하여,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예수는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어보는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고 생활의 독창성에서 주도권 쥐는 것을 자극하기 바랐다. 그는 인류의 기초에 있는 영구한 영적 필요에만 순전히 관심을 가졌고, 하나님과 동등한 선(善)을 드러냈다. 사랑-진리,아름다움,선-을 신다운 이상과 영원한 실체로서 높이었다.
주는 사람 속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의지를 창조하려고-진리를 알고, 동정심을 체험하고 선을 택하는 새 능력을 나눠 주려고-오셨으니, 그 뜻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한 것 같이 완전하게 되려는 영원한 욕구와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려 하는 의지이다.
8. 호수에서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사도들이 가르침을 완전히 새겨듣지 못했음을 잘 알았다. 베드로,야고보,요한에게 얼마큼 특별 교육을 주기로 작정하였고, 그들이 동료들에게 그 아이디어를 분명히 밝힐 수 있기를 바랐다. 열둘이 영적 하늘나라 관념의 어떤 모습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다윗의 왕좌(王座)를 회복하고 땅에서 현세의 권력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다는, 글자 그대로 하늘나라 개념, 오래 되고 뿌리 깊은 개념 바로 위에, 끈질기게 이 새 가르침을 붙이려고 고집하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목요일 오후에, 하늘나라의 일을 의논하려고 예수는 베드로,야고보,요한과 함께 배를 타고 물가를 떠나갔다. 이것은 네 시간 동안 가르치는 회의여서 수십 가지 질문과 대답을 포함했고, 시몬 베드로가 형 안드레에게 다음 날 아침에 준 대로, 이 중요한 오후의 요약(要約)을 다시 정리해서 이 기록에 넣는 것이 가장 유익할까 한다:
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하늘 아버지가 전반적으로 돌보심을 신뢰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운명론(運命論)이 아니었다. 이 날 오후에 어느 옛 히브리 속담을 인정하여 인용했다: "일하려 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지니라." 가르침에 대한 충분한 논평으로서 자신의 체험을 가리켰다. 아버지를 신뢰함에 대한 교훈은 현대나 어느 다른 시대의 사회 또는 경제 조건에 비추어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의 가르침은 어느 시대나 어느 세계에도,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이상적 원칙을 포함한다.
예수는 사도(使徒)와 제자가 되는 요건의 차이를 세 사람에게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나서도 열두 사도에게 신중함과 예견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선견(先見)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근심, 걱정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정신차리고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검소와 절약에 관한 많은 질문에 답하여, 다만 목수와 배 건축자와 어부로서 살았던 생활, 그리고 열둘을 신중하게 조직한 것을 주목하라고 했다. 세상을 적(敵)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생활 환경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란히 작용하는 신의 섭리의 일부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려고 애썼다.
개인적으로 무저항(無抵抗)을 실천한 것을 이해시키는 데 예수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아예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 않았고, 사도들의 눈에는 그들이 똑같은 정책을 추구한다면 주가 기뻐할 듯이 보였다. 악에 대항하지 말라고, 불법이나 권리 침해에 맞서 싸우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악행을 수동적으로 묵인(默認)하기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행악자와 범죄자들을 사회가 처벌하는 것을 승인한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을 집행하는 데 국가 정부가 때때로 무력(武力)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 날 오후에 예수는 분명히 밝혔다.
예수는 앙갚음하는 악습이 나쁘다고 제자들에게 그침 없이 경고하였다. 그는 복수, 앙갚음하는 관념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불평 품는 것을 딱하게 여겼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는 관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 몸소 앙갚음하는 개념 전체를 찬성하지 않았고, 이 문제를 한편으로 국가 정부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다. 그의 가르침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세 사람에게 뚜렷하게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 때까지 가르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너희의 적을 사랑하라-인간이 형제라는 도덕적 주장을 기억하라
악(惡)은 무익하다: 한 가지 악은 복수(復讐)로 고쳐지지 않는다. 악 자체의 무기(武器)로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믿음-신의 정의(正義)와 영원한 선이 궁극에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라.
2. 정치적 태도. 당시에 유대 민족과 로마 정부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된 관계에 대한 논평을 조심하라고 사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어떤 면에서도 그들이 이 난국에 말려드는 것을 금했다. 그는 적들이 놓은 정치적 덫을 피하려고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케자의 물건을 케자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물건을 하나님께 돌리라" 고 늘 대답했다. 구원받는 새 길을 확립하는 사명으로부터 주의(注意)를 빼앗기지 않으려 하였다. 자신이 어떤 다른 것에 관여하도록 버려 두지 않았다. 사생활에서 언제나 모든 국가의 법과 규칙을 마땅히 준수했다. 모든 대중 교육에서 시민, 사회, 경제 분야를 무시(無視)했다. 오직 사람의 속, 개인의 영적 생활의 원칙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세 사도에게 일러 주었다.
따라서 예수는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다. 세상을 다시 조직하려고 오지 않았다. 이렇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와 세대에만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최선으로 사는 길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으며, 어떤 세대(世代)에도 어떻게 자체의 문제에 예수의 생애를 최선으로 적용하는가 발견하는 수고가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어떤 정치 이론이나 경제 이론, 어떤 사회 체제나 산업 체제와 동일시하는 잘못을 결코 저지르지 말라.
3. 사회적 태도. 유대인 랍비들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예수는 와서, 적극적이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친절 관념을 제시하였다. 동포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진지해서, 그 사랑이 전 세계를 포함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을 자기 이웃으로 만들기까지, 이웃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 모두와 함께, 예수는 대중이 아니라 오직 개인에 관심을 가졌다. 예수는 사회학자가 아니었지만, 온갖 형태의 이기적 고립을 깨뜨리려고 수고했다. 순전한 동정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쳤다.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비에 지배를 받는 아들이다. 동정심은 바로 그의 성품이다.
주는 사람들이 결코 친구에게 식사를 대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추종자들이 가난한 자와 불행한 자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확고한 응보 감각을 가졌지만, 그것은 반드시 자비로 말미암아 부드럽게 되었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사회의 기생충이나 전문(專門)으로 자선을 바라는 자들에게 이용당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사회적 선언을 하기에 아주 접근한 것은 "판단을 받지 않도록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한 것이다.
그는 무차별한 친절이 여러 가지 사회악에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음 날, 그가 요청하거나, 두 사도가 공동으로 간청할 때를 제쳐 놓고, 사도의 기금을 하나도 자선금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유다에게 분명히 지시했다. 이 모든 문제에서 "뱀 같이 지혜로우나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늘 말하는 것이 예수의 버릇이었다. 모든 사회 상황에서 참을성,관용,용서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인 듯하였다.
가족은-여기서,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예수의 생활 철학의 바로 그 핵심을 차지했다.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을 가족에 기초를 두었고, 한편 조상을 지나치게 존경하는 유대인의 성향을 고치려고 애썼다. 가족 생활을 가장 높은 인간의 임무로서 높였지만, 가족 관계가 종교적 의무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가족이 이 세상의 제도요, 죽음 뒤에 살아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가족이 아버지의 뜻에 충돌했을 때 예수는 가족을 서슴지 않고 버렸다. 사람의 새롭고 더 큰 형제 정신-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예수의 시절에 팔레스타인에서,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이혼 관습은 흐리멍덩했다.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율법 세우기를 거듭 물리쳤지만, 초기에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은 이혼에 관하여 뚜렷한 의견을 가졌고, 그런 의견을 서슴지 않고 예수의 탓으로 돌렸다. 요한 마가를 빼고, 신약(新約)의 저자들은 모두 결혼에 대하여 좀더 엄격하고 진보된 이 관념을 지켰다.
4. 경제적 태도. 예수는 그가 발견한 세상에서 일하고, 살고, 물건을 교환했다. 경제 개혁가가 아니었지만, 재산의 불평등한 분배가 부당한 것에 빈번히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치유하는 방법으로 아무런 대안(代案)을 내놓지 않았다. 사도들이 재산을 지녀서는 안 되지만, 부와 재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재산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이 그릇되다고 설교한다고 세 사람에게 분명히 일러 주었다. 사회 정의(正義)와 산업의 공정이 필요함을 인정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아무런 원칙을 내놓지 않았다.
결코 추종자들에게 세상의 소유물을 피하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다만 열두 사도에게 그렇게 했다. 의사(醫師)인 누가는 사회의 평등을 뚜렷이 믿는 사람이었고, 그의 개인적 관점과 조화되게 예수의 말씀을 풀이하려고 많이 애썼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계 공동체 형태의 생활을 채택하라고 친히 지시한 적이 없었고,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어떤 종류의 선언도 하지 않았다.
예수는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탐욕에 대하여 자주 경고했고, "사람의 행복은 물질 재산의 풍부함에 있지 않느니라" 선언하였다. 항상 되풀이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혼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으리요?" 재산 소유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지만, 영적 가치의 우선(于先)이 영원히 필수라고 주장했다. 후기의 가르침에서, 대중에게 봉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수많은 비유를 이야기함으로 유란시아의 그릇된 여러 생활 관점을 고치려고 애썼다. 예수는 결코 경제 이론을 만들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각 시대는 기존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자체의 처방을 진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예수가 오늘날 육체를 입고 살면서 땅에 계시다면, 대다수의 착한 남녀의 기대에 크게 어긋날 터인데, 오늘날의 정치나 경제 논쟁(論爭)에서 편을 들지 않으리라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순전히 인간적인 너희 문제들을 풀려고 도전하는 데 너희를 몇 배나 더 유능하게 만들도록, 마음의 영적 생활을 어떻게 완전하게 만드는가 가르치면서, 숭고하게 초연(超然)할 것이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처럼 만들고, 다음에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의 정치,사회,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이해심을 가지고 기다리려 할 것이다. 그가 비난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재산에 굴종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재산이 미치는 영향이었다. 이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고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5. 개인적 종교. 너희는 예수의 사도들처럼, 예수의 생애를 보고 그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 그는 완전하게 된 일생을 유란시아에서 살았고, 독특한 가르침은 오직 그 일생을 닥친 그 배경에서 상상할 때 겨우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의 신성한 성품과 사랑하는 성격을 드러내는 데 가장 도움이 될 것은 그의 일생이지, 열둘에게 준 가르침이나 군중에게 한 설교가 아니다.
예수는 히브리 선지자나 그리스 도덕가들의 가르침을 공격하지 않았다. 주는 이 위대한 선생들이 대표하는 많은 좋은 것을 인식했지만, 무언가 더 큰 것, "사람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자진해서 순종(順從)하기" 를 가르치려고 땅에 내려왔다. 예수는 다만 종교인, 종교적 느낌으로 온통 싸여 있고 오직 영적 충동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너희가 한 번 얼핏 뵐 수 있었다면, 예수가 이 세상일에 큰 경험을 가진 실재한 사람이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여러 세기를 통해서 계속,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많이 와전(訛傳)되었다. 너희는 또한 주의 온유와 겸손에 대하여 비뚤어진 생각을 지녀왔다. 그의 일생의 목표는 최상의 자존심이었던 듯하다. 사람이 참으로 높아질 수 있도록 오직 스스로 겸손하라고 충고했다. 그가 정말로 의도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겸손이었다. 그는 성실함-깨끗한 마음-을 높이 평가했다. 인격의 평가에서, 충실은 으뜸가는 미덕이었고, 한편 용기는 그의 가르침의 바로 그 핵심이었다. "두려워 말라" 가 표어요, 참고 견딤은 인격의 강건함에 대한 이상(理想)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용감,용기,영웅심의 종교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어째서 보통 사람 열두 명을 개인 대표로서 골랐는가 하는 이유이며, 이들의 대다수는 거칠고 튼튼하고 남자다운 어부였다.
예수는 그 시대의 사회악에 대하여 할 말이 거의 없었다. 도덕적 방탕을 언급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는 참된 미덕을 긍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가르침을 나누어 주는 부정적 방법을 세심하게 피했고, 악을 선전하려 하지 않았다. 도덕을 개혁하는 자가 아니었다. 인류의 육욕(肉慾)은 종교적 꾸지람이나 율법으로 금지함으로 억누를 수 없음을 잘 알았고, 그렇게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얼마 안 되는 비난은 대체로 자만,잔인,억압,위선을 향한 것이었다.
예수는 요한이 한 것처럼, 바리새인들조차 맹렬히 비난하지 않았다. 많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마음에는 정직(正直)함을 알았고, 종교적 전통에 노예처럼 매여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예수는 "먼저 나무를 좋게 만드는 일" 을 크게 강조했다. 어떤 몇 가지 특별한 미덕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평가한다는 것을 세 사람에게 강조하였다.
요한이 이 날의 가르침으로부터 한 가지 얻은 것은 예수가 가진 종교의 핵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도록 자극받은 성격과 함께 자비로운 인품을 얻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들이 바야흐로 선포하려는 복음은 온 인류를 위하여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을 깨달았다. 그는 이 인상을 나중에 바울에게 전했고, 바울은 이로부터 그리스도가 "둘째 아담" 이라는 신조를 지어 냈다.
야고보는 땅에서 자녀들이 마치 완성된 하늘나라 시민이 이미 된 것처럼 살기를 예수가 바란다는 감격스러운 진리를 깨달았다.
예수는 사람들이 다른 것을 알았고, 사도들에게 다르게 가르쳤다. 제자와 신자들을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추어 형식화하려고 애쓰기를 삼가라고 사도들을 항상 훈계하였다. 각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되는 독립된 개인을 개발하도록 버려 두려고 애썼다. 베드로의 여러 질문 중 하나에 대답하여, 주는 말씀했다:
"새롭고 더 나은 생활에 어린아이로서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해방하기를 내가 원하노라." 예수는 참된 선함은 의식(意識)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자선을 베풀 때 바른 손이 무엇을 하는지 왼손이 모르게 하기를 언제나 주장하였다.
주의 종교가 영적 자기 반성에 대하여 아무 규정이 없음을 깨닫고 세 사도는 이 날 오후에 놀랐다. 예수의 시절 이전과 이후에 있던 모든 종교는, 그리스도교조차, 양심적인 자아 검토를 조심스럽게 마련하였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종교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의 생활 철학은 종교적 내성(內省)이 없다. 목수의 아들은 결코 인격을 형성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인격의 성장을 가르쳤고,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는 거만한 자기 본위를 방지하는 수단으로 자아의 분석을 금지할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권리는 신앙, 몸소 믿는 데 달려 있다. 하늘나라로 진보하여 계속 올라가는 길에 치르는 비용은,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얻고자 하는 값비싼 진주와 같다.
예수의 가르침은, 약자(弱者)와 노예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이다. 그의 종교는 (그 시대에) 결코 신조(信條)와 신학 법칙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는 한 줄의 글도 뒤에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일생과 가르침은 어느 시대나, 어느 세계에도, 영적 안내와 도덕적인 가르침에 적당한 유산(遺産), 영감을 주는 이상적인 유산으로서 우주에 남겨 주었다. 오늘날도,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종교와 따로 구별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가르침은 각 종교에게 살아 있는 희망이다.
예수는 종교가 땅에서 사람의 유일한 추구 대상이라고 사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관한 유대인 관념이었다. 그러나 종교가 열두 사도가 전념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신자들의 진정한 교양의 추구를 막으려고 예수가 가르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는 전통에 묶인 예루살렘의 종교 학당들을 깎아내렸다. 그는 아낌없이 주었고, 마음이 넓고, 널리 알고, 너그러웠다. 자의식하는 경건은 올바르게 사는 그의 철학에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주는 그 시대나 후일 어느 시대의 비종교 문제들을 위하여,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예수는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어보는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고 생활의 독창성에서 주도권 쥐는 것을 자극하기 바랐다. 그는 인류의 기초에 있는 영구한 영적 필요에만 순전히 관심을 가졌고, 하나님과 동등한 선(善)을 드러냈다. 사랑-진리,아름다움,선-을 신다운 이상과 영원한 실체로서 높이었다.
주는 사람 속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의지를 창조하려고-진리를 알고, 동정심을 체험하고 선을 택하는 새 능력을 나눠 주려고-오셨으니, 그 뜻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한 것 같이 완전하게 되려는 영원한 욕구와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려 하는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