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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마산님의 글 (양해바라며,감사드림)
시대가 바라는 해탈解脫의 의미
처음으로 글을 쓰는 갈마산 인사 드립니다.
해탈解脫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3천 년 전에 해탈하셨던 분이 주장하는 해탈의 의미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우주적 섭리와 맞물리면서 풀어야 할 해탈의 의미를 비교해 본다면 다를 리 없겠지
만, 이 시대는 우주적 섭리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이를 동시에 풀어가지 않으면 떳떳하
게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고 실천해 가는데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라면 의외로
해탈이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실 것입니다.
수 십 년 간 오른쪽 팔을 들고 사는 인도의 어떤 고행자의 모습이 텔레비젼으로
중계가 된 적이 있었는데 어떤 기자의 질문에 "육체에 극한적인 고통을 줌으로써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해탈하기 위해서다"라는 말로 답하는 걸 듣고
' 참으로 우직한 대장부로세~ 그것은 해탈을 목표로 하는 탐욕과 무지의 표현일
뿐으로서, 해탈은커녕 집착한 탐욕과 자연의 근본 속성인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베풀지 않음으로 인하여 밝은 빛을 보기 어렵겠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해탈이란 모든 구속을 풀고 벗는다는 말 그대로 삶을 영위하는 동안에 인간의
모든 비본질적 요소를 풀고 벗어나서 빛으로서의 본래 모습인 영혼의 상태로
귀환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고향[최고신神의 몸체= 우주 대자연= {음(땅)과 양(하늘)-이를
통칭할 때는 양원兩元- 이 나누어지기 이전인 태극의 빛} = 무극의 빛 = 一元界의 빛
= 생명의 빛 등]에서 탄생 과정에 완성 된 태아의 몸으로 영혼(빛)이 들어갈 때의 영
혼의 빛만큼의 밝기로 살다가 죽어 그 빛의 밝기를 유지한 채로 낙원의 동산(극락 또
는 천당이라고도 함)에 드는 것이 해탈입니다.
인간의 육체로 살다보면 태어날 때의 영혼의 빛만큼 밝기를 유지 못하는 이유가 많습
니다. 그것은 영혼, 육체, 마음 중 마음이란 것이 주인행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
은 순수의식으로서 자연의 속성을 가집니다. 자연의 속성은 아시다시피 무한히 베푸
는 어버이의 마음이요, 인간과 모든 동 식물을 낳고 길러주면서 한없이 희생하고 봉
사합니다. 인간들이 이를 모르고 자연을 도리어 해칠 지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으며,
중상모략(자연 훼손)하여도 그것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랑덩어리의 속
성인 대자연의 모습을 닮은 영혼이 주인행세를 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 마음이 주인행세를 합니다.
마음의 속성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분별하는 것”인데 이는 5욕 7정으로 인하여
생긴다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중 보통 맑고 밝지 못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을 생
활 속에서 찾아보면 “탐욕, 오만, 시기, 질투, 중상, 모략, 속임, 싫고 좋음을 가림, 미
추를 가림,........등등 부정적인 모든 행동이나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
니다. 이를 흔히 중생들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無心, 天心, 元心,
佛心 등등의 마음을 밝히며 마음(분별하는 것) 버리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맑고 밝은 영혼 지향적인 마음에는 “착함, 어짐, 사랑하는 마음, 청렴한 마음,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 희생·봉사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
음, 둥근 마음,......등등 모든 맑고 밝은 우주 대자연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지향해 가기 위하여 윤리와 도덕을 가
르치고 수행자가 생긴다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실천하며 살아 갈 때 나의 영혼은 맑고 밝아집니다.
이러한 마음의 속성 때문에 영혼을 맑고 밝게 가꿀 수도 있고 어둡게도 할 수 있는것
이며 오로지 개인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一切唯心造).
그렇지만 현 시대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최고조를 이루고 있고, 황금 만능시대인지라
마음을 어질고 선하게 가꾸기가 너무나 어려우며, 탐욕하기 쉽고 오만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신앙생활을 주도해 가고 있는 단체들이 시위를 한다거나, 타
신앙 단체를 부정하는 모습은 사랑이 결핍되고, 탐욕스런 모습이라 생각 됩니다. 또
한 신앙생활을 영위 하는 것이 생계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은 직업화 되었다는 뜻
이니, 신앙생활을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도움
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수녀님 같이 일평생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면 본인 한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타를 사랑하고 희생하며 봉사하는 신앙생활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신앙은 곧 탐욕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하겠습니
다.
갈마산(범성일여)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해탈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본인 한사람 구원 받는 삶은 이기적인 마음이라 생각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며, 사람의 뿌리이며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
모님, 부모님의 부모님....나의 모든 조상님들도 더불어 해탈하여(이것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부활의 의미라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라는 우주적 섭리에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진리의 길이며, 이것이 옳은 길이라면 타인에게도 이 뜻을 알리는 것이 의로
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갈마산(범성일여)이 즐겨 읽는 경을 인용하여 한 개인이 해탈 할 수 있는 해탈
의 의미를 상세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람이 하늘의 사랑(능력)을 받고자 하면 우선 그 마음이 하늘을 향하여 열려 있
어야 하는 것이니, 최고신의 능력이라 하여도 사람의 마음이 최고신과 파장이 맞
지 않으면, 사랑(능력)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최고 신 = 조물주 = 내 영혼의 본체 = 그래서 인간을 부처요 작은 하느님이라 함.
사람들이 꽃같이 밝고 아름다운 하늘의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하늘
의 사랑(능력)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으나, 그 마음에 어두움이 끼고 고뇌하는 상태
에서는 하늘과 파장이 맞지 않아 하늘의 사랑(능력)을 흘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란 받기 위한 마음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니 자기 비우기인 것이라,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를 모두 드러내되, 마음 저 밑바닥까지 한군데도 그늘짐 없이 말끔히 비워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이 되니, 사랑하는 마음은 주고자 하
는 마음이라,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고자 하는 사랑으로써만 마음이 말끔히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 하여도 서로를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며 베풀어야 할 것이니,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지극히 아낄 때 하늘은 그 비워진 마
음에 하늘의 사랑(능력)을 다 하여 줄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이렇듯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음양의 화합과 조화 속에 질서를 이루
어 가는 것이니, 사랑이 능력이요 사랑이 기도입니다.
더우기 인간들은, 내 한 몸이 썩어 만 중생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크나큰 사랑의
마음으로 각자의 그릇을 비워갈 때 하늘의 큰 사랑(능력)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하게
되며, 큰 사랑은 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여도 보고 듣고 겪는 일체의 것에 대하여 마
음을 비우면 수행이 따로 없으며 수련이 따로 없으니, 그 때는 생활 자체가 수련이 되
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모든 것을 대하다 보면 사물의 본질이 그대로 다가와, 싫고 괴로운 것
도 고통스러운 그대로 공부하는 심정으로 대하게 되나니, 그러한 자세로 모든 일을
대할 때 삶이 곧 도道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활 속의 진리이니, 사람들이 즐겁고 편한 것만 좋다 하고 싫고 어려운 일을
굳이 피하려 드는 것은 빛만 좋다 하고 그림자는 부정하는 태도이니, 인간계는 음양
의 지배를 받는 세계이라,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슬픔도 따르는 법이나 양자兩者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들 앞에 닥치는 어떠한 일도 싫고 좋음을 구분하기 이전에 수행하
는 자세로 풀어가야 할 것이니, 인생의 달고 쓴 모든 공부는 각자의 수준만큼 주어지
는 것이라, 주어진 문제를 거부하거나 성실히 풀어가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도 같은
수준의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것이 자연법이니, 어른에게 있어 어린이의 시험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아니하
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모든 문제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성
숙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생의 다양한 면모와 타고난 조건의 차이도 알고 보면 각자의 그릇
과 천분에 따른 자연의 공정한 배분이니, 하늘이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스스로를 갈고 닦아 영원한 삶을 대비하며, 본질적인 향상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입니
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문제라도 정답을 내려고 노력하는
데 있으니, 한 사람이 시련을 시련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기회로 생각
하며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그는 결과에 대하여 담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최선을 다 하였다는 것은 자신을 섭리에 맡기는 일이 되며, 자신을 섭리에
온전히 맡기게 되면 일체의 두려움을 벗어 던지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환경이나 주어진 조건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인 것으로 전환시킨
것이니, 주체적인 인간이 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탈이니, 해탈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머리로만 깨닫는다고 되어지는 것
이 아니요 깨달은 인간이 매순간 최선의 행을 다 함으로써 온전히 자기가 비워져서,
눈 앞에 어떠한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태연히 그를 맞아들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자
세를 갖추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이니, 하늘은 일체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어떠한 의외意外도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매순간 진리를 생활화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니, 자기가 비워
진 그 자리에 하늘이 스스로를 나타내는지라, 이미 그는 섭리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
입니다.
그렇게 모든 두려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우주 안에 자유롭게 노니는 대자유인이 되
는 것입니다.
이상이 한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해탈 할 수 있는 해탈의 의미입니다.
해탈의 길을 가면서 나와 무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조상
님들, 나의 이웃인 65억 세계 인류들~ 나만 해탈 하겠다 하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
고 고통을 수 없이 극복하고 나면 가능은 하겠지만, 종국에는 “이기적이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도 인류사의 새로운 한 주기를 맞이하여 해탈의 길을 열어 주고 있
으니 이것이 우주적 섭리라 하겠습니다.
우주적 섭리는 자연법으로 작용합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한 주기를 살아 오는 동안 지은 업을 모두 청정해야만 새로운 주기
로 진입 할 수 있습니다. 업이란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긴 물질(금전, 재산 등)로 인한
탐욕과, 나의 뿌리를 잊는 오만함 등으로 발생한 부정적인 모든 현상을 일컫습니다.
이를 청산해야 하니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 또한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
는 것이 자연법 입니다.
나만 해탈하면 되지 왜 조상님들이 함께 해탈해야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무 동생의 이치로서 나의 뿌리가 조상님이고, 나의 조상님도 포함 되어 있
을 확률이 매우 높은 가운데 지구를 가득 메우다시피 하고 있는 영혼들을 정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 천 년이 흐르는 동안 낙원의 동산(극락 또는 천당)에 들지 못한 모든 영혼들은 일
정한 기간 동안 내에 하늘이 내려 주는 불로써 후손의 몸을 빌려, 말끔히 해탈 청정
하여 하늘나라(낙원의 동산)에 들도록 영계에 머물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天命을
내려 놓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하늘의 불(天火)로써 인간과 인간들 조상님의 해탈을 돕는 것인데 혹자는 군
화(君火)라고도 합니다.
일정 기간 내에 하늘의 불로써 해탈(부활) 되지 못한 영혼들은 무저갱(無底坑) 속에 같
히는 신세가 된다고 합니다.
이 天火는 最高 神 만이 내릴 수 있는 까닭에 천화를 받아 조상님을 살리기가 어려워
지극히 적은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까지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길은 알
기 어렵고 찾기 험난한 길이며, 最高 神은 인류의 한 주기마다 지구에 오셔서 인간과
조상님의 해탈을 도우시는데 인간이 이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천화로써 조상님은 물론 나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청정 해탈 할 수 있으며 나아
가서 65억의 내 이웃에게 권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자 땅
의 영광이며 하늘 문을 열어서 인류에게 베풀어지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한 最高 神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최고신의 피조물이며 자식이기에, 이렇게까지 크신 사랑을 베푸시어 모
두를 해탈시켜 씨앗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해탈은 결국 사랑의 결정체라 하겠습
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6. 8. 8(음 7월 보름)일 입추일에
갈마산(범성일여) 올림
시대가 바라는 해탈解脫의 의미
처음으로 글을 쓰는 갈마산 인사 드립니다.
해탈解脫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3천 년 전에 해탈하셨던 분이 주장하는 해탈의 의미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우주적 섭리와 맞물리면서 풀어야 할 해탈의 의미를 비교해 본다면 다를 리 없겠지
만, 이 시대는 우주적 섭리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이를 동시에 풀어가지 않으면 떳떳하
게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고 실천해 가는데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라면 의외로
해탈이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실 것입니다.
수 십 년 간 오른쪽 팔을 들고 사는 인도의 어떤 고행자의 모습이 텔레비젼으로
중계가 된 적이 있었는데 어떤 기자의 질문에 "육체에 극한적인 고통을 줌으로써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해탈하기 위해서다"라는 말로 답하는 걸 듣고
' 참으로 우직한 대장부로세~ 그것은 해탈을 목표로 하는 탐욕과 무지의 표현일
뿐으로서, 해탈은커녕 집착한 탐욕과 자연의 근본 속성인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베풀지 않음으로 인하여 밝은 빛을 보기 어렵겠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해탈이란 모든 구속을 풀고 벗는다는 말 그대로 삶을 영위하는 동안에 인간의
모든 비본질적 요소를 풀고 벗어나서 빛으로서의 본래 모습인 영혼의 상태로
귀환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고향[최고신神의 몸체= 우주 대자연= {음(땅)과 양(하늘)-이를
통칭할 때는 양원兩元- 이 나누어지기 이전인 태극의 빛} = 무극의 빛 = 一元界의 빛
= 생명의 빛 등]에서 탄생 과정에 완성 된 태아의 몸으로 영혼(빛)이 들어갈 때의 영
혼의 빛만큼의 밝기로 살다가 죽어 그 빛의 밝기를 유지한 채로 낙원의 동산(극락 또
는 천당이라고도 함)에 드는 것이 해탈입니다.
인간의 육체로 살다보면 태어날 때의 영혼의 빛만큼 밝기를 유지 못하는 이유가 많습
니다. 그것은 영혼, 육체, 마음 중 마음이란 것이 주인행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
은 순수의식으로서 자연의 속성을 가집니다. 자연의 속성은 아시다시피 무한히 베푸
는 어버이의 마음이요, 인간과 모든 동 식물을 낳고 길러주면서 한없이 희생하고 봉
사합니다. 인간들이 이를 모르고 자연을 도리어 해칠 지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으며,
중상모략(자연 훼손)하여도 그것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랑덩어리의 속
성인 대자연의 모습을 닮은 영혼이 주인행세를 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 마음이 주인행세를 합니다.
마음의 속성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분별하는 것”인데 이는 5욕 7정으로 인하여
생긴다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중 보통 맑고 밝지 못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을 생
활 속에서 찾아보면 “탐욕, 오만, 시기, 질투, 중상, 모략, 속임, 싫고 좋음을 가림, 미
추를 가림,........등등 부정적인 모든 행동이나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
니다. 이를 흔히 중생들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無心, 天心, 元心,
佛心 등등의 마음을 밝히며 마음(분별하는 것) 버리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맑고 밝은 영혼 지향적인 마음에는 “착함, 어짐, 사랑하는 마음, 청렴한 마음,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 희생·봉사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
음, 둥근 마음,......등등 모든 맑고 밝은 우주 대자연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지향해 가기 위하여 윤리와 도덕을 가
르치고 수행자가 생긴다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실천하며 살아 갈 때 나의 영혼은 맑고 밝아집니다.
이러한 마음의 속성 때문에 영혼을 맑고 밝게 가꿀 수도 있고 어둡게도 할 수 있는것
이며 오로지 개인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一切唯心造).
그렇지만 현 시대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최고조를 이루고 있고, 황금 만능시대인지라
마음을 어질고 선하게 가꾸기가 너무나 어려우며, 탐욕하기 쉽고 오만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신앙생활을 주도해 가고 있는 단체들이 시위를 한다거나, 타
신앙 단체를 부정하는 모습은 사랑이 결핍되고, 탐욕스런 모습이라 생각 됩니다. 또
한 신앙생활을 영위 하는 것이 생계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은 직업화 되었다는 뜻
이니, 신앙생활을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도움
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수녀님 같이 일평생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면 본인 한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타를 사랑하고 희생하며 봉사하는 신앙생활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신앙은 곧 탐욕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하겠습니
다.
갈마산(범성일여)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해탈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본인 한사람 구원 받는 삶은 이기적인 마음이라 생각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며, 사람의 뿌리이며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
모님, 부모님의 부모님....나의 모든 조상님들도 더불어 해탈하여(이것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부활의 의미라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라는 우주적 섭리에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진리의 길이며, 이것이 옳은 길이라면 타인에게도 이 뜻을 알리는 것이 의로
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갈마산(범성일여)이 즐겨 읽는 경을 인용하여 한 개인이 해탈 할 수 있는 해탈
의 의미를 상세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람이 하늘의 사랑(능력)을 받고자 하면 우선 그 마음이 하늘을 향하여 열려 있
어야 하는 것이니, 최고신의 능력이라 하여도 사람의 마음이 최고신과 파장이 맞
지 않으면, 사랑(능력)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최고 신 = 조물주 = 내 영혼의 본체 = 그래서 인간을 부처요 작은 하느님이라 함.
사람들이 꽃같이 밝고 아름다운 하늘의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하늘
의 사랑(능력)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으나, 그 마음에 어두움이 끼고 고뇌하는 상태
에서는 하늘과 파장이 맞지 않아 하늘의 사랑(능력)을 흘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란 받기 위한 마음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니 자기 비우기인 것이라,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를 모두 드러내되, 마음 저 밑바닥까지 한군데도 그늘짐 없이 말끔히 비워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이 되니, 사랑하는 마음은 주고자 하
는 마음이라,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고자 하는 사랑으로써만 마음이 말끔히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 하여도 서로를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며 베풀어야 할 것이니,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지극히 아낄 때 하늘은 그 비워진 마
음에 하늘의 사랑(능력)을 다 하여 줄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이렇듯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음양의 화합과 조화 속에 질서를 이루
어 가는 것이니, 사랑이 능력이요 사랑이 기도입니다.
더우기 인간들은, 내 한 몸이 썩어 만 중생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크나큰 사랑의
마음으로 각자의 그릇을 비워갈 때 하늘의 큰 사랑(능력)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하게
되며, 큰 사랑은 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여도 보고 듣고 겪는 일체의 것에 대하여 마
음을 비우면 수행이 따로 없으며 수련이 따로 없으니, 그 때는 생활 자체가 수련이 되
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모든 것을 대하다 보면 사물의 본질이 그대로 다가와, 싫고 괴로운 것
도 고통스러운 그대로 공부하는 심정으로 대하게 되나니, 그러한 자세로 모든 일을
대할 때 삶이 곧 도道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활 속의 진리이니, 사람들이 즐겁고 편한 것만 좋다 하고 싫고 어려운 일을
굳이 피하려 드는 것은 빛만 좋다 하고 그림자는 부정하는 태도이니, 인간계는 음양
의 지배를 받는 세계이라,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슬픔도 따르는 법이나 양자兩者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들 앞에 닥치는 어떠한 일도 싫고 좋음을 구분하기 이전에 수행하
는 자세로 풀어가야 할 것이니, 인생의 달고 쓴 모든 공부는 각자의 수준만큼 주어지
는 것이라, 주어진 문제를 거부하거나 성실히 풀어가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도 같은
수준의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것이 자연법이니, 어른에게 있어 어린이의 시험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아니하
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모든 문제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성
숙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생의 다양한 면모와 타고난 조건의 차이도 알고 보면 각자의 그릇
과 천분에 따른 자연의 공정한 배분이니, 하늘이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스스로를 갈고 닦아 영원한 삶을 대비하며, 본질적인 향상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입니
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문제라도 정답을 내려고 노력하는
데 있으니, 한 사람이 시련을 시련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기회로 생각
하며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그는 결과에 대하여 담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최선을 다 하였다는 것은 자신을 섭리에 맡기는 일이 되며, 자신을 섭리에
온전히 맡기게 되면 일체의 두려움을 벗어 던지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환경이나 주어진 조건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인 것으로 전환시킨
것이니, 주체적인 인간이 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탈이니, 해탈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머리로만 깨닫는다고 되어지는 것
이 아니요 깨달은 인간이 매순간 최선의 행을 다 함으로써 온전히 자기가 비워져서,
눈 앞에 어떠한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태연히 그를 맞아들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자
세를 갖추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이니, 하늘은 일체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어떠한 의외意外도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매순간 진리를 생활화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니, 자기가 비워
진 그 자리에 하늘이 스스로를 나타내는지라, 이미 그는 섭리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
입니다.
그렇게 모든 두려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우주 안에 자유롭게 노니는 대자유인이 되
는 것입니다.
이상이 한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해탈 할 수 있는 해탈의 의미입니다.
해탈의 길을 가면서 나와 무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조상
님들, 나의 이웃인 65억 세계 인류들~ 나만 해탈 하겠다 하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
고 고통을 수 없이 극복하고 나면 가능은 하겠지만, 종국에는 “이기적이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도 인류사의 새로운 한 주기를 맞이하여 해탈의 길을 열어 주고 있
으니 이것이 우주적 섭리라 하겠습니다.
우주적 섭리는 자연법으로 작용합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한 주기를 살아 오는 동안 지은 업을 모두 청정해야만 새로운 주기
로 진입 할 수 있습니다. 업이란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긴 물질(금전, 재산 등)로 인한
탐욕과, 나의 뿌리를 잊는 오만함 등으로 발생한 부정적인 모든 현상을 일컫습니다.
이를 청산해야 하니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 또한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
는 것이 자연법 입니다.
나만 해탈하면 되지 왜 조상님들이 함께 해탈해야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무 동생의 이치로서 나의 뿌리가 조상님이고, 나의 조상님도 포함 되어 있
을 확률이 매우 높은 가운데 지구를 가득 메우다시피 하고 있는 영혼들을 정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 천 년이 흐르는 동안 낙원의 동산(극락 또는 천당)에 들지 못한 모든 영혼들은 일
정한 기간 동안 내에 하늘이 내려 주는 불로써 후손의 몸을 빌려, 말끔히 해탈 청정
하여 하늘나라(낙원의 동산)에 들도록 영계에 머물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天命을
내려 놓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하늘의 불(天火)로써 인간과 인간들 조상님의 해탈을 돕는 것인데 혹자는 군
화(君火)라고도 합니다.
일정 기간 내에 하늘의 불로써 해탈(부활) 되지 못한 영혼들은 무저갱(無底坑) 속에 같
히는 신세가 된다고 합니다.
이 天火는 最高 神 만이 내릴 수 있는 까닭에 천화를 받아 조상님을 살리기가 어려워
지극히 적은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까지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길은 알
기 어렵고 찾기 험난한 길이며, 最高 神은 인류의 한 주기마다 지구에 오셔서 인간과
조상님의 해탈을 도우시는데 인간이 이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천화로써 조상님은 물론 나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청정 해탈 할 수 있으며 나아
가서 65억의 내 이웃에게 권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자 땅
의 영광이며 하늘 문을 열어서 인류에게 베풀어지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한 最高 神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최고신의 피조물이며 자식이기에, 이렇게까지 크신 사랑을 베푸시어 모
두를 해탈시켜 씨앗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해탈은 결국 사랑의 결정체라 하겠습
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6. 8. 8(음 7월 보름)일 입추일에
갈마산(범성일여) 올림
노대욱
- 2006.08.09
- 12:52:03
- (*.240.251.181)
나만 해탈하면 되지 왜 조상님들이 함께 해탈해야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무 동생의 이치로서 나의 뿌리가 조상님이고, 나의 조상님도 포함 되어 있
을 확률이 매우 높은 가운데 지구를 가득 메우다시피 하고 있는 영혼들을 정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 천 년이 흐르는 동안 낙원의 동산(극락 또는 천당)에 들지 못한 모든 영혼들은 일
정한 기간 동안 내에 하늘이 내려 주는 불로써 후손의 몸을 빌려, 말끔히 해탈 청정
하여 하늘나라(낙원의 동산)에 들도록 영계에 머물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天命을
내려 놓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하늘의 불(天火)로써 인간과 인간들 조상님의 해탈을 돕는 것인데 혹자는 군
화(君火)라고도 합니다.
일정 기간 내에 하늘의 불로써 해탈(부활) 되지 못한 영혼들은 무저갱(無底坑) 속에 같
히는 신세가 된다고 합니다.
이 天火는 最高 神 만이 내릴 수 있는 까닭에 천화를 받아 조상님을 살리기가 어려워
지극히 적은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까지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길은 알
기 어렵고 찾기 험난한 길이며, 最高 神은 인류의 한 주기마다 지구에 오셔서 인간과
조상님의 해탈을 도우시는데 인간이 이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천화로써 조상님은 물론 나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청정 해탈 할 수 있으며 나아
가서 65억의 내 이웃에게 권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자 땅
의 영광이며 하늘 문을 열어서 인류에게 베풀어지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한 最高 神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최고신의 피조물이며 자식이기에, 이렇게까지 크신 사랑을 베푸시어 모
두를 해탈시켜 씨앗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해탈은 결국 사랑의 결정체라 하겠습
니다.
그것은 유무 동생의 이치로서 나의 뿌리가 조상님이고, 나의 조상님도 포함 되어 있
을 확률이 매우 높은 가운데 지구를 가득 메우다시피 하고 있는 영혼들을 정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 천 년이 흐르는 동안 낙원의 동산(극락 또는 천당)에 들지 못한 모든 영혼들은 일
정한 기간 동안 내에 하늘이 내려 주는 불로써 후손의 몸을 빌려, 말끔히 해탈 청정
하여 하늘나라(낙원의 동산)에 들도록 영계에 머물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天命을
내려 놓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하늘의 불(天火)로써 인간과 인간들 조상님의 해탈을 돕는 것인데 혹자는 군
화(君火)라고도 합니다.
일정 기간 내에 하늘의 불로써 해탈(부활) 되지 못한 영혼들은 무저갱(無底坑) 속에 같
히는 신세가 된다고 합니다.
이 天火는 最高 神 만이 내릴 수 있는 까닭에 천화를 받아 조상님을 살리기가 어려워
지극히 적은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까지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길은 알
기 어렵고 찾기 험난한 길이며, 最高 神은 인류의 한 주기마다 지구에 오셔서 인간과
조상님의 해탈을 도우시는데 인간이 이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천화로써 조상님은 물론 나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청정 해탈 할 수 있으며 나아
가서 65억의 내 이웃에게 권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자 땅
의 영광이며 하늘 문을 열어서 인류에게 베풀어지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한 最高 神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최고신의 피조물이며 자식이기에, 이렇게까지 크신 사랑을 베푸시어 모
두를 해탈시켜 씨앗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해탈은 결국 사랑의 결정체라 하겠습
니다.
답글 : 갈마산-- 오늘날 홀로 無爲로 無事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 하였다면 100점 중 100점을 맞은 것일까요? 물론 100점일 수도 있지만 50점이라 말하고 싶네요. 그 이유는 이시대에 필요한 무위로 무사한 경지에 다달으려면 最高 神이 인류의 한 주기마다 지구에 오셔서 인간과 조상님의 해탈을 도우시는 사연을 알아 최고 신의 부름에 따르면 완벽한 100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