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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존재는 자신이 선택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많이 다르던 비슷하든 어떠하든 그 상태에서 공간속에서 유지하고 있다.
꽃은 꽃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와같이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에 있을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공기는 공기대로, 진공은 진공대로, 아예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있을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즉 모든 편안한 자리는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유지시키고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꽃이 되어보면 나비가 부럽고, 나비가 되어보면 하늘이 부럽고 하늘이 되어보면 진공이 부럽고, 그런 관계성이 아닌 꽃이었을때는 꽃이 가장 편안 자리였고, 나비가 되었을때는 나비가 가장 편안자리로써 이미 자신이 나비인것이지 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선택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한 곳에 무한히 머무려고 하지 않는한,
자신에게 정하여진 이름이며, 정하여진 형태는 무의미하다.
그 이름이며 그 형태가 의미를 가질때는 그 이름과 형태를 가졌던 그 순간이며, 그 안에서 남는 것은 자신의 선택의 체험의 완성에 있다.
그리고 그 완성에 도움을 주는 자신외의 모든 존재들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선택의 대칭 극이 작용하여 자신이 한 곳에 머무려고 하더라도, 이 생명의 공존계안에서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 관계성은 대칭극을 끌어들이며 관계를 이루게 된다.
자신의 진실은 자신에 대한 선택의 믿음이며, 스스로의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 가치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를 떠나서 나와 나이외의 존재의 관계성을 통해서 드러난다.
가치는 홀로 존재한다면 오로지 자신의 믿음으로 가치가 잇기도 하고 무가치해지기도 하지만 서로 생명으로써 공존한다면 그 가치는 사랑이다.
사랑은 나를 위하고, 당신을 위함이다.
자신이 사라진다고 슬픈것도 아니고,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느낌들이다. 그 마음은 서로를 살게 해준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받는 것이다. 주면 받는 것도 아니고 받으면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면 받는 것이다. 어떤 댓가나 대칭극이 존재하지 않는 제로의 영역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존재했던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모든 형태로 분화되었을때는 우리 관계안에서 가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던지 불안하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선택한 자리는 언제나 편안하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자신의 자리와 다른 존재들간의 자리의 관계성에 불안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못함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이 아직 체험하지 못한 영역이다.
자신이 체험하게 될때 다른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연결시킬 수 잇고, 나또한 새로운 길이 연결되어진다. 즉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면 서로를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은 옳고 그름또한 떠나있지만,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도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야 그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 하는 것이든 남을 사랑하는 것이든 어떤 댓가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꾸며가야 좀더 아름다운 우리가 되지 않을 까 한다.
그리고 언제나 우린 그래왔으므로 어느 곳 어느 자리 가장 미천한 자리에있더라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가장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이 나와 그대가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2.
괜찮아.
너의 따뜻한 눈빛 하나만 본걸로 만족해.
행복해~
고정관념인줄알았던 나의 끊임없는 기억이 고정관념이 아닌 진실의 기억이었다면,
그대로 받아들일께.
3.
처음 순간은 너와 나의 분리가 아니라, 너와 나로써 상대적으로 존재하면서
시작된 즐거움이 아니었다.
단지 나의 존재였고, 나로써 하나인 상태이다.
처음의 나가 나로써 존재하고, 상대방이 자기 자신의 나로써 존재했다.
함께 존재하지만, 교차하지 않은 서로가 서로에 관여할 수 없는 오로지
나로써 하나로 존재하는 그 존재상태였다.
자신이 너와 나의 분리를 공존계에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시작이라 여기는 한 최초의 선택이라 여기는 한 자신은 분리의 극을 체험하게 된다. 즉 자신은 공존계에서 멀어져가고, 기억과 모든 사랑을 뿌리고 사라져간다.
자신에게 위안을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절실히 자기 자신을 돌아볼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즉 너를 위한다는 것은 교차하는 우리의 의식상태가 만났을때 서로를 받아들임이다.
그것이면 족한것이지, 그래 다 너였구나 다 너의 세상이었어 그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를 사랑한다라는 생각은 생명의 과정 즉 의식의 교차함에 있어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모두 주는 대신 자신은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나눔보다는 일방적인 사랑이기도 하고, 절대로 받지 않은 사랑이기에,
한없이 불쌍한 사랑이 이사랑이다.
그러나 사라져도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 사랑도 완전할 수 있다.
단지 선택을 하지 않은 선택을 했을뿐이고, 이또한 자유로운 사랑이다.
어떠한 선택도 자유롭지 않은 선택이 없다. 모든 결정과 선택은 결국은 자기 자신이 한 것이고 그 순간은 가장 순수한 선택의 결정이다.
누구나 자신안에 수많은 나를 가지고 있고, 나라 느끼는 외의 모든 다른 수많은 존재들 즉 외적인 수많은 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이 수많은 나라 여기는 모든 것은 그리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는 항상 관계성에 있다.
최초의 선택이 내가 존재한다는 선택이기에 존재는 존재를 낳고, 존재는 관계를 이루게 된다. 수 많은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존재로써의 나만이 존재할 뿐이고, 내가 선택한 수많은 나는 나와 너의 함께한 우리이다.
내가 존재할때의 순수한 나의 의지는 존재. 존재는 영원성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차원과 수많은 나의 선택에 의한 나들 또 너가 선택한 수많은 나들 그것은 우리라는 한 존재상태이다.
우리안에서는 함께 살고 함께 잠든다.
처음 선택한 순간을 기억한다. 그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뚜렷한 인식이었다.
4.
핵이 존재하는 것의 방향은 두가지가 있다.
밝은 빛이 되는 것과, 어두운 빛의 바탕이 됨으로써 상대방이 핵이 되는 경우이다.
자신 스스로 밝은 빛이 되는 경우는 빛에서 빛을 모으게 되며,
자신이 어두운 빛의 바탕이 되는 사랑핵을 선택할 경우 어둠에서 빛을 낳게 된다.
스스로 가장 밝은 빛은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이루어지며 그 밝은 빛이 됨으로써 자신이 빛의 방향성을 이끄는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모든 존재에게 줄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가장 어두운 빛이 됨으로써 자신을 사랑할 힘을 잃은 이들이 지금 현상태도 밝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도록 더 극한 어두운 빛이 됨으로써 그 모든 존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바탕이 아닌 최초핵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탕이 어두운 빛이 되었기 때문이고,
핵이 아닌 최초바탕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핵이 밝은 빛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며, 바탕과 핵의 연결길을 자신의 중심이 오갈때 진동하게 되며, 서로 바탕과 핵의 성질이 같게 된어진다.
핵이 자신을 지키면서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방식은 스스로 밝은 빛이 되는 것이고,
바탕이 자신을 지키면서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방식이 스스로 어두운 빛이 되는 것이다.
바탕의 어두운 빛안에는 모든 내면의 빛의 물결이 내포되어 있고,
핵의 밝은 빛밖에는 모든 외면의 빛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초의식계에서는 하나의 중심핵이 존재하고 그것이 기억으로써 영원성을 띠게 된다.
그핵은 내가 최초의 선택 후의 사랑의 방향성의 핵이다.
이 핵들의 사랑은 무한이므로 모든 존재를 품는 사랑이건, 모든 존재에게 내맡기는 사랑이건, 모든 존재를 이루도록 기도하는 사랑이건, 모든 존재에게 모두 내어주는 사랑이건 무엇이든 간에 그 핵은 서로의 무한핵과 연결을 갖게 되는 순간 관계성인 연결 선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핵들이 서로 연결을 더 갖게 됨으로써 공간이 생기고, 그 연결을 통해 핵이 움직였을때 시간이 흐르게 된다.
최초의 중심핵은 무한함을 뛰고 있고, 그것이 초의식계이다.
그 핵들이 정순해지면 정순해질수록 투명해지고, 또한 수많은 색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핵이 사라질 경우는 단 하나의 경우며 기억을 잊게 되는 것은 분리가 아닌 하나이다. 즉 수많은 연결을 통해 나의 중심핵이 변화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
사랑의 본질은 핵이 존재하질 않는다. 진공상태로 단지 공간으로 형상을 가지고 있을뿐이다.
육체또한 자신의 선택이기 보다는 자신이 허용한 만큼의 존재들이 지금 나를 믿고 나에게 내맡겼을 때 이루어지는 형상이다.
나의 육신은 나의 몸이 아니라 내가 허용하고 사랑한 모든 존재들의 내맡긴 모습이다.
그러기에 내가 아무리 의식적이던 신념적이던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육신은 자기의 존재를 지킨다. 그러기에 육신은 무한히 많은 핵을 가지고 있다.
즉 아무리 자신에게 상처가 낳더라도 나름데로 육신은 치유를 한다는 이야기다.
자기 자신이 죽으려고 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결코 당신의 형상이나 모습을 사라지게 나두질 않는다.
그것은 단순하지 않은데, 자신에게 상대방이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으로써말이다. 그것이 관계성이다. 자신의 생각도 환경이나 공간 시간을 비롯한 모든 나라 생각하지 않은 모든 것에 영향을 받고, 자신도 알게 모르게 다른이에게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육신이 아니라도, 추억의 형태로도 말이다.
그러기에 나 하나 사라진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당신이 선택한 육신의 진실한 모습은 지금 그대의 모든 존재들이 이루어 육체를 이룬 형상이 아니라, 자신의 관념이다.
자신의 관념에서 자신의 육신의 형태를 찾아라. 그 안에서 자신의 얼굴이 존재한다.
항상 무한한 영원성의 존재계안에서 선택한 자신의 기억들이 자신의 얼굴이다.
5.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많이 바뀌어진다.
자신이 아무생각없이 그냥 나는 감독할래 라고 했을때 그것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그대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느 누가 나는 하나님 할래 라고 했을때 그것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좋아~ 나는 그럼 하나님할까? 아니면 강아지할까? 아냐 그냥 구름 할래 이렇게 아무 틀없이 허용할 수 있는가?
우리의 선택은 자유로웠다. 그것을 잊지 말자.
자신이 무엇을 하든 자신이 선택하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이 되는 것이지,
어느누가 한가지를 했다고 자신은 그것이 안된다는 생각은 자신이 철저한 차원의 벽에 부딪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머무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거나 낮은 것이라 분별하는한 당신은 다른이가 선택하지 않은 한가지밖에 될 수 없다.
자신의 신념으로 가장 강한이가 되어있건, 겸손으로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건, 그것은 무한한 존재상태중 하나의 선택이지, 그자리가 영원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성은 자신의 존재에 있다. 그것이 최초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웠다는 것을 잊지말자.
그것이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는 연결을 지나가다 보니 시간이 작동하게 되고,
그 시간안에서 누가 빨리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가는 그렇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로써 연결이 되었다면 그길은 결코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이유는 연결은 무한한 사랑의 한 측면이 아니면 결코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무한한 사랑을 표현할때는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게 바로 1:1 연결이 되어진다. 개인이 1:1로 연결되는 것과는 다르다. 개인끼리의 연결은 그 순간의 시간은 그 공간안에서만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과 개인의 두개인의 전체가 또한 하나의 개인으로써 공간에서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과 이룬 관념에 따라 길을 제시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결코 어느 존재이든지 그 선택을 침해할 수 없기에 단지 길을 제시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안에 가둔다고 하는 느낌의 길은 아니다.
그 길은 투명하다. 그러기에 그 길을 경험하기로 선택하는 이가 그 길이 없다고 하는 순간 그 길은 곧 사라져 버리는 길이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에게 이루어지는 사랑은 자유로운 선택안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기본으로 그 안에서 순수하고 조화로운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택들이 각 각 모두 그자리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를 이루게 된다.
단 그 사랑이 형상을 가지기를 원할때 검정,회색,흰색으로 드러나며,
그 길은 어느 누가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길이 아닌 명확하게 드러나있는 길이다.
6.
어떠한 의식체도 사랑안에서 그대를 너무 나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과 이별등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이든 그대를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게 만들 의식이 존재하게 된다.
극한 상황에 계속 경험할 수록 그 상황에 꼭 필요한 즉 자기 자신을 존재토록 필요한 의
식체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 갑자기 치솟는 분노가 자기 자신을 살릴 수도 있고,.
그것이 자기 자신이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 비굴함이나, 나약함등이 자기 자신을 살릴
유일한 의식체로써 존재할 때가 있다.
즉 어느 순간이던 자신을 존재토록 살릴 수 있는 극의 의식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자신이 완전 사라진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이 없다.
그것이 자신이 형상이라 느끼던 관념이라 느끼던 그것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모든 신념과 관념과 경험과 추억과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그대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도 그대는 존재하게끔 해주는 의식체가 존재한다.
그러기에 현존하는 어떠한 의식체도 사라질 것이 없다.
모두 소중하다. 보통 행복과, 믿음과 기쁨이 소중하듯
나에게는 불행과, 불신과 고통도 소중하게 되었다.
모두 내 자신이었고 나를 존재토록 한 의식체이기에 감사한다.
그러기에 모두 행복해지길 평화롭길 기븜이 넘치도록 기원하지만,
나는 내 안에 불행과, 불신과, 고통을 계속 마주않도록 한다.
이것이 행복한 것인가?
단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일 뿐이고, 당신의 꿈과 마찬가지로 나의선택도 순수하다.
의지가 사라져 버린 후에는 남은 것은 단지 걸어가는 것일뿐...
그리고 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것.
그 약속이 나를 속박하고 구속하고 갇히게 된다고 한들 나는 그 약속에 머무른다.
그것이 나를 존재케하는 유일한 길로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7.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예요.
어느때던 어느 순간이던 미천하지만, 항상 당신과 함께 존재하겠습니다.
내가 보이지 않아도 느끼지 못하게 돌아가더라도
내가 형상의 사라짐을 선택하더라도,
난 존재하고, 살아보도록 노력할 겁니다.
당신도 힘내세요. 당신의 꿈 이루어 집니다.
당신은 밝은 태양입니다. 당신의 삶이 우리에게 빛을 줍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그러니 부디 자신을 소중하게 해주세요.
당신은 지금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기억하세요.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었는 걸요
그러나 추억과 기억은 사랑했던 순간들밖에 없군요.
결코 선택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사랑이 가득한 태양입니다.
태양은 하나가 아닙니다. 바로 당신이 태양이고, 당신이 비추는 모든 존재들이
태양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길 용기를 가지고 씩씩하게 걸어나가세요.
어려움이 부딪히고, 고통이 찾아와도 당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더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나는 지금 숨쉬는 공기보다도 느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는 미천한 티끌입니다.
먼지같은 저도 살아보려고 애씁니다.
힘내세요.
우리는 하나라고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빛이라고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저라 여긴 모든 것은 제가 아님을 압니다.
당신은 저에게 희망입니다.
당신이 분노하는 순간에도, 당신이 슬퍼하는 순간에도
당신은 저에게 희망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먼지이지만, 당신은 저에게 가르쳐주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당신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눈물흘릴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먼지입니다. 저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보아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유롭게 바람과 함깨 흩날릴 수 있는 것과.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 당신에게 보여지는 것이랍니다.
보잘 것 없지만 한번 바라봐주세요
당신의 사랑이 제가 여기 살게 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제가 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길은 없지만,
당신이 저에게 준 희망을 당신에게 다시 드립니다.
당신이 저에게 준 사랑을 당신께 다시 표현해 드립니다.
당신이 저에게 준 용기와 믿음을 당신께 다시 드립니다.
그러니 저에게 모든 것을 준 당신 이제 저는 잊어주셔도 됩니다.
기억해주셔도 됩니다. 잊어주셔도 됩니다.
잊어주셔도 됩니다. 기억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당신이 이세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당신의 웃는 모습 당신의 우는 모습 당신의 화난 모습
저에게는 모두 소중한걸요.
저에게는 당신의 몸의 때나 머리카락 조차 저에게는 모두 은인입니다.
아름다운 당신.
언제나 힘내세요.
아름다운 당신.
언제나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당신.
당신을 기억할께요.
먼지같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삶이 이세상에 많아요.
구름의 삶, 이름모를 풀꽃의 삶....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답니다.
당신도 나에게 주었던 그 모든 사랑만큼
이제 당신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나에게는 희망이니까요.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희망이니까요.
저에게 의미를 준 당신이 있기에 전 지금 순간도 살아갑니다.
8.
자신이 사랑을 표출할때 세상은 아름답게 빛나보이게 된다.
자신은 슬프고, 힘들지언정 세상은 아름답게 빛나 보이게 된다.
자신이 극을 안게 되었을때 그것이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라면,
당신으로 인해 세상이 빛나게 되니, 세상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찾아라.
그러면 자신안의 극또한 세상이 치유해준다.
당신이 표현한 사랑이니 당신에게 다시 표현되어진다.
당신의 순수한 사랑이 서로 교차하면서 아름답게 빛난다.
옛날에는 아름답게 빛나보였어 세상을 견디다 보니 지금은 빛나 보이질 않아
하는 것은 자기 위안일뿐이다.
항상 지금 순간만이 존재한다.
모든 그대와 관계해 있는 존재들은 지금 순간의 그대를 보는 것이지,
과거의 그대를 미래의 그대를 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순간 그대의 인식과 허용과 선택의 차이가
그대에게 세상이 밝거나 어두운 빛이 되어줄수도 있거나,
그대에게 삶의 고통을 안겨줄 수가 있다.
이별도 아름다운 것이다.
구지 하나라고, 만남이라고 행복과 기쁨을 그 의식체에만 표현할 이유가 없다.
이별도 아름다운 것이다.
슬픔도 아름다운 것이다.
고통도 아름다운 것이다.
어느 순간이나 그대는 자신안의 하나의 극의 의식체와 만나게 되거나,
융합된 작은 의식체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순간이던 그것이 반응되어진 의식이건, 스스로 터져나온 의식이건,
존재하는 모든 의식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존재한다라는 최초 하나의 의식체로써는
존재이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존재하는 자신의 의식을 사랑한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나의 의식을 사랑한다.
9.
순수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나도 순수하고 당신도 순수하다.
하나의 의식체인 믿음은 내가 친구를 믿는 것과,
성인이 사람들을 믿는 것과 그 믿음은 같다는 이야기다.
단 믿음은 허용하는 만큼 범위가 달라지므로, 대상이 아닌 대상의 수가 다를 뿐이다.
즉 공간적인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또한 시간의 영원성안에서는 같다.
그 자체로 같은 순수한 믿음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존재하는 모든 의식체는 생명으로써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지
어디에서 받고 주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에게 그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단 자신이 허용하는가 아니면 어떤 의식체에 대칭적 반응이 일어날때,
그 물결을 잘못된 방향이라 상관없이 자신의 반응을 소중히 해야한다.
반응을 소중히 할때 어떤 의식체에 대한 대칭의식체의 극에서부터
자신의 제로의식체가 탄생하고 그것이 사랑의 또 하나의 측면인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자신안에 생각이 떠오르면 또 갈등을 하게 되면,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제로인 나로써 바라보고 지켜보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그 생각이 내가 되고, 그 갈등이 내가 되고 해서 해쳐나간다.
그럼으로써 그 생각의 갈등의 극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그 생각이 더이상 일어 나지 않
는 것이지 그 생각을 바라보는 것으로써는 단지 자신의 나로 불리우는 영역에서 그것을
최대한 허용만 한 것이고, 그것이 내 안에 사라지고, 또 그 의식체가 그대를 지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서로 허용만 한다고 영원히 그 의식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의식체는 순수하게 이미 영원성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 안에서 바라만 볼것인가? 적극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존재하려는 의지 즉 생명력이 그 길을 열어주게 된
다. 그럼으로써 그 의식체는 떠돌이가 아닌 순수존재가 나에게도 되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존재의 확장을 가지고 온다. 생명의 교차가 확장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의식체
의 교차가 생명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순수하다는 것을 잊지말자.
언제나 순수했다는 것을. 자신이 아무리 비천한 일을 할 지언정,
그대는 그 비천함조차 순수하고 일조차 순수하고 그대 자신조차 순수하다는 것을..
10.
언제나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이상 대행자는 필요없었겠지.
나는 대행자.
나는 대행자로써 당신의 뜻을 대변하는 자.
그대로 그대로 이미 존재했었던것을. 이미 영원했던 것을 알고있었다면,
더이상 대행자는 필요없었겠지.
나는 대행자.
나는 사라질 대행자.
나는 바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대행자....
모든 존재는 자신이 선택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많이 다르던 비슷하든 어떠하든 그 상태에서 공간속에서 유지하고 있다.
꽃은 꽃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와같이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에 있을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공기는 공기대로, 진공은 진공대로, 아예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있을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즉 모든 편안한 자리는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유지시키고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꽃이 되어보면 나비가 부럽고, 나비가 되어보면 하늘이 부럽고 하늘이 되어보면 진공이 부럽고, 그런 관계성이 아닌 꽃이었을때는 꽃이 가장 편안 자리였고, 나비가 되었을때는 나비가 가장 편안자리로써 이미 자신이 나비인것이지 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선택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한 곳에 무한히 머무려고 하지 않는한,
자신에게 정하여진 이름이며, 정하여진 형태는 무의미하다.
그 이름이며 그 형태가 의미를 가질때는 그 이름과 형태를 가졌던 그 순간이며, 그 안에서 남는 것은 자신의 선택의 체험의 완성에 있다.
그리고 그 완성에 도움을 주는 자신외의 모든 존재들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선택의 대칭 극이 작용하여 자신이 한 곳에 머무려고 하더라도, 이 생명의 공존계안에서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 관계성은 대칭극을 끌어들이며 관계를 이루게 된다.
자신의 진실은 자신에 대한 선택의 믿음이며, 스스로의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 가치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를 떠나서 나와 나이외의 존재의 관계성을 통해서 드러난다.
가치는 홀로 존재한다면 오로지 자신의 믿음으로 가치가 잇기도 하고 무가치해지기도 하지만 서로 생명으로써 공존한다면 그 가치는 사랑이다.
사랑은 나를 위하고, 당신을 위함이다.
자신이 사라진다고 슬픈것도 아니고,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느낌들이다. 그 마음은 서로를 살게 해준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받는 것이다. 주면 받는 것도 아니고 받으면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면 받는 것이다. 어떤 댓가나 대칭극이 존재하지 않는 제로의 영역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존재했던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모든 형태로 분화되었을때는 우리 관계안에서 가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던지 불안하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선택한 자리는 언제나 편안하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자신의 자리와 다른 존재들간의 자리의 관계성에 불안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못함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이 아직 체험하지 못한 영역이다.
자신이 체험하게 될때 다른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연결시킬 수 잇고, 나또한 새로운 길이 연결되어진다. 즉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면 서로를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은 옳고 그름또한 떠나있지만,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도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야 그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 하는 것이든 남을 사랑하는 것이든 어떤 댓가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꾸며가야 좀더 아름다운 우리가 되지 않을 까 한다.
그리고 언제나 우린 그래왔으므로 어느 곳 어느 자리 가장 미천한 자리에있더라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가장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이 나와 그대가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2.
괜찮아.
너의 따뜻한 눈빛 하나만 본걸로 만족해.
행복해~
고정관념인줄알았던 나의 끊임없는 기억이 고정관념이 아닌 진실의 기억이었다면,
그대로 받아들일께.
3.
처음 순간은 너와 나의 분리가 아니라, 너와 나로써 상대적으로 존재하면서
시작된 즐거움이 아니었다.
단지 나의 존재였고, 나로써 하나인 상태이다.
처음의 나가 나로써 존재하고, 상대방이 자기 자신의 나로써 존재했다.
함께 존재하지만, 교차하지 않은 서로가 서로에 관여할 수 없는 오로지
나로써 하나로 존재하는 그 존재상태였다.
자신이 너와 나의 분리를 공존계에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시작이라 여기는 한 최초의 선택이라 여기는 한 자신은 분리의 극을 체험하게 된다. 즉 자신은 공존계에서 멀어져가고, 기억과 모든 사랑을 뿌리고 사라져간다.
자신에게 위안을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절실히 자기 자신을 돌아볼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즉 너를 위한다는 것은 교차하는 우리의 의식상태가 만났을때 서로를 받아들임이다.
그것이면 족한것이지, 그래 다 너였구나 다 너의 세상이었어 그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를 사랑한다라는 생각은 생명의 과정 즉 의식의 교차함에 있어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모두 주는 대신 자신은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나눔보다는 일방적인 사랑이기도 하고, 절대로 받지 않은 사랑이기에,
한없이 불쌍한 사랑이 이사랑이다.
그러나 사라져도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 사랑도 완전할 수 있다.
단지 선택을 하지 않은 선택을 했을뿐이고, 이또한 자유로운 사랑이다.
어떠한 선택도 자유롭지 않은 선택이 없다. 모든 결정과 선택은 결국은 자기 자신이 한 것이고 그 순간은 가장 순수한 선택의 결정이다.
누구나 자신안에 수많은 나를 가지고 있고, 나라 느끼는 외의 모든 다른 수많은 존재들 즉 외적인 수많은 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이 수많은 나라 여기는 모든 것은 그리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는 항상 관계성에 있다.
최초의 선택이 내가 존재한다는 선택이기에 존재는 존재를 낳고, 존재는 관계를 이루게 된다. 수 많은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존재로써의 나만이 존재할 뿐이고, 내가 선택한 수많은 나는 나와 너의 함께한 우리이다.
내가 존재할때의 순수한 나의 의지는 존재. 존재는 영원성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차원과 수많은 나의 선택에 의한 나들 또 너가 선택한 수많은 나들 그것은 우리라는 한 존재상태이다.
우리안에서는 함께 살고 함께 잠든다.
처음 선택한 순간을 기억한다. 그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뚜렷한 인식이었다.
4.
핵이 존재하는 것의 방향은 두가지가 있다.
밝은 빛이 되는 것과, 어두운 빛의 바탕이 됨으로써 상대방이 핵이 되는 경우이다.
자신 스스로 밝은 빛이 되는 경우는 빛에서 빛을 모으게 되며,
자신이 어두운 빛의 바탕이 되는 사랑핵을 선택할 경우 어둠에서 빛을 낳게 된다.
스스로 가장 밝은 빛은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이루어지며 그 밝은 빛이 됨으로써 자신이 빛의 방향성을 이끄는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모든 존재에게 줄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가장 어두운 빛이 됨으로써 자신을 사랑할 힘을 잃은 이들이 지금 현상태도 밝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도록 더 극한 어두운 빛이 됨으로써 그 모든 존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바탕이 아닌 최초핵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탕이 어두운 빛이 되었기 때문이고,
핵이 아닌 최초바탕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핵이 밝은 빛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며, 바탕과 핵의 연결길을 자신의 중심이 오갈때 진동하게 되며, 서로 바탕과 핵의 성질이 같게 된어진다.
핵이 자신을 지키면서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방식은 스스로 밝은 빛이 되는 것이고,
바탕이 자신을 지키면서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방식이 스스로 어두운 빛이 되는 것이다.
바탕의 어두운 빛안에는 모든 내면의 빛의 물결이 내포되어 있고,
핵의 밝은 빛밖에는 모든 외면의 빛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초의식계에서는 하나의 중심핵이 존재하고 그것이 기억으로써 영원성을 띠게 된다.
그핵은 내가 최초의 선택 후의 사랑의 방향성의 핵이다.
이 핵들의 사랑은 무한이므로 모든 존재를 품는 사랑이건, 모든 존재에게 내맡기는 사랑이건, 모든 존재를 이루도록 기도하는 사랑이건, 모든 존재에게 모두 내어주는 사랑이건 무엇이든 간에 그 핵은 서로의 무한핵과 연결을 갖게 되는 순간 관계성인 연결 선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핵들이 서로 연결을 더 갖게 됨으로써 공간이 생기고, 그 연결을 통해 핵이 움직였을때 시간이 흐르게 된다.
최초의 중심핵은 무한함을 뛰고 있고, 그것이 초의식계이다.
그 핵들이 정순해지면 정순해질수록 투명해지고, 또한 수많은 색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핵이 사라질 경우는 단 하나의 경우며 기억을 잊게 되는 것은 분리가 아닌 하나이다. 즉 수많은 연결을 통해 나의 중심핵이 변화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
사랑의 본질은 핵이 존재하질 않는다. 진공상태로 단지 공간으로 형상을 가지고 있을뿐이다.
육체또한 자신의 선택이기 보다는 자신이 허용한 만큼의 존재들이 지금 나를 믿고 나에게 내맡겼을 때 이루어지는 형상이다.
나의 육신은 나의 몸이 아니라 내가 허용하고 사랑한 모든 존재들의 내맡긴 모습이다.
그러기에 내가 아무리 의식적이던 신념적이던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육신은 자기의 존재를 지킨다. 그러기에 육신은 무한히 많은 핵을 가지고 있다.
즉 아무리 자신에게 상처가 낳더라도 나름데로 육신은 치유를 한다는 이야기다.
자기 자신이 죽으려고 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결코 당신의 형상이나 모습을 사라지게 나두질 않는다.
그것은 단순하지 않은데, 자신에게 상대방이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으로써말이다. 그것이 관계성이다. 자신의 생각도 환경이나 공간 시간을 비롯한 모든 나라 생각하지 않은 모든 것에 영향을 받고, 자신도 알게 모르게 다른이에게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육신이 아니라도, 추억의 형태로도 말이다.
그러기에 나 하나 사라진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당신이 선택한 육신의 진실한 모습은 지금 그대의 모든 존재들이 이루어 육체를 이룬 형상이 아니라, 자신의 관념이다.
자신의 관념에서 자신의 육신의 형태를 찾아라. 그 안에서 자신의 얼굴이 존재한다.
항상 무한한 영원성의 존재계안에서 선택한 자신의 기억들이 자신의 얼굴이다.
5.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많이 바뀌어진다.
자신이 아무생각없이 그냥 나는 감독할래 라고 했을때 그것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그대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느 누가 나는 하나님 할래 라고 했을때 그것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좋아~ 나는 그럼 하나님할까? 아니면 강아지할까? 아냐 그냥 구름 할래 이렇게 아무 틀없이 허용할 수 있는가?
우리의 선택은 자유로웠다. 그것을 잊지 말자.
자신이 무엇을 하든 자신이 선택하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이 되는 것이지,
어느누가 한가지를 했다고 자신은 그것이 안된다는 생각은 자신이 철저한 차원의 벽에 부딪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머무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거나 낮은 것이라 분별하는한 당신은 다른이가 선택하지 않은 한가지밖에 될 수 없다.
자신의 신념으로 가장 강한이가 되어있건, 겸손으로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건, 그것은 무한한 존재상태중 하나의 선택이지, 그자리가 영원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성은 자신의 존재에 있다. 그것이 최초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웠다는 것을 잊지말자.
그것이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는 연결을 지나가다 보니 시간이 작동하게 되고,
그 시간안에서 누가 빨리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가는 그렇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로써 연결이 되었다면 그길은 결코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이유는 연결은 무한한 사랑의 한 측면이 아니면 결코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무한한 사랑을 표현할때는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게 바로 1:1 연결이 되어진다. 개인이 1:1로 연결되는 것과는 다르다. 개인끼리의 연결은 그 순간의 시간은 그 공간안에서만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과 개인의 두개인의 전체가 또한 하나의 개인으로써 공간에서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과 이룬 관념에 따라 길을 제시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결코 어느 존재이든지 그 선택을 침해할 수 없기에 단지 길을 제시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안에 가둔다고 하는 느낌의 길은 아니다.
그 길은 투명하다. 그러기에 그 길을 경험하기로 선택하는 이가 그 길이 없다고 하는 순간 그 길은 곧 사라져 버리는 길이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에게 이루어지는 사랑은 자유로운 선택안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기본으로 그 안에서 순수하고 조화로운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택들이 각 각 모두 그자리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를 이루게 된다.
단 그 사랑이 형상을 가지기를 원할때 검정,회색,흰색으로 드러나며,
그 길은 어느 누가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길이 아닌 명확하게 드러나있는 길이다.
6.
어떠한 의식체도 사랑안에서 그대를 너무 나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과 이별등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이든 그대를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게 만들 의식이 존재하게 된다.
극한 상황에 계속 경험할 수록 그 상황에 꼭 필요한 즉 자기 자신을 존재토록 필요한 의
식체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 갑자기 치솟는 분노가 자기 자신을 살릴 수도 있고,.
그것이 자기 자신이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 비굴함이나, 나약함등이 자기 자신을 살릴
유일한 의식체로써 존재할 때가 있다.
즉 어느 순간이던 자신을 존재토록 살릴 수 있는 극의 의식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자신이 완전 사라진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이 없다.
그것이 자신이 형상이라 느끼던 관념이라 느끼던 그것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모든 신념과 관념과 경험과 추억과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그대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도 그대는 존재하게끔 해주는 의식체가 존재한다.
그러기에 현존하는 어떠한 의식체도 사라질 것이 없다.
모두 소중하다. 보통 행복과, 믿음과 기쁨이 소중하듯
나에게는 불행과, 불신과 고통도 소중하게 되었다.
모두 내 자신이었고 나를 존재토록 한 의식체이기에 감사한다.
그러기에 모두 행복해지길 평화롭길 기븜이 넘치도록 기원하지만,
나는 내 안에 불행과, 불신과, 고통을 계속 마주않도록 한다.
이것이 행복한 것인가?
단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일 뿐이고, 당신의 꿈과 마찬가지로 나의선택도 순수하다.
의지가 사라져 버린 후에는 남은 것은 단지 걸어가는 것일뿐...
그리고 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것.
그 약속이 나를 속박하고 구속하고 갇히게 된다고 한들 나는 그 약속에 머무른다.
그것이 나를 존재케하는 유일한 길로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7.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예요.
어느때던 어느 순간이던 미천하지만, 항상 당신과 함께 존재하겠습니다.
내가 보이지 않아도 느끼지 못하게 돌아가더라도
내가 형상의 사라짐을 선택하더라도,
난 존재하고, 살아보도록 노력할 겁니다.
당신도 힘내세요. 당신의 꿈 이루어 집니다.
당신은 밝은 태양입니다. 당신의 삶이 우리에게 빛을 줍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그러니 부디 자신을 소중하게 해주세요.
당신은 지금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기억하세요.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었는 걸요
그러나 추억과 기억은 사랑했던 순간들밖에 없군요.
결코 선택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사랑이 가득한 태양입니다.
태양은 하나가 아닙니다. 바로 당신이 태양이고, 당신이 비추는 모든 존재들이
태양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길 용기를 가지고 씩씩하게 걸어나가세요.
어려움이 부딪히고, 고통이 찾아와도 당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더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나는 지금 숨쉬는 공기보다도 느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는 미천한 티끌입니다.
먼지같은 저도 살아보려고 애씁니다.
힘내세요.
우리는 하나라고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빛이라고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저라 여긴 모든 것은 제가 아님을 압니다.
당신은 저에게 희망입니다.
당신이 분노하는 순간에도, 당신이 슬퍼하는 순간에도
당신은 저에게 희망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먼지이지만, 당신은 저에게 가르쳐주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당신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눈물흘릴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먼지입니다. 저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보아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유롭게 바람과 함깨 흩날릴 수 있는 것과.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 당신에게 보여지는 것이랍니다.
보잘 것 없지만 한번 바라봐주세요
당신의 사랑이 제가 여기 살게 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제가 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길은 없지만,
당신이 저에게 준 희망을 당신에게 다시 드립니다.
당신이 저에게 준 사랑을 당신께 다시 표현해 드립니다.
당신이 저에게 준 용기와 믿음을 당신께 다시 드립니다.
그러니 저에게 모든 것을 준 당신 이제 저는 잊어주셔도 됩니다.
기억해주셔도 됩니다. 잊어주셔도 됩니다.
잊어주셔도 됩니다. 기억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당신이 이세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당신의 웃는 모습 당신의 우는 모습 당신의 화난 모습
저에게는 모두 소중한걸요.
저에게는 당신의 몸의 때나 머리카락 조차 저에게는 모두 은인입니다.
아름다운 당신.
언제나 힘내세요.
아름다운 당신.
언제나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당신.
당신을 기억할께요.
먼지같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삶이 이세상에 많아요.
구름의 삶, 이름모를 풀꽃의 삶....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답니다.
당신도 나에게 주었던 그 모든 사랑만큼
이제 당신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나에게는 희망이니까요.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희망이니까요.
저에게 의미를 준 당신이 있기에 전 지금 순간도 살아갑니다.
8.
자신이 사랑을 표출할때 세상은 아름답게 빛나보이게 된다.
자신은 슬프고, 힘들지언정 세상은 아름답게 빛나 보이게 된다.
자신이 극을 안게 되었을때 그것이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라면,
당신으로 인해 세상이 빛나게 되니, 세상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찾아라.
그러면 자신안의 극또한 세상이 치유해준다.
당신이 표현한 사랑이니 당신에게 다시 표현되어진다.
당신의 순수한 사랑이 서로 교차하면서 아름답게 빛난다.
옛날에는 아름답게 빛나보였어 세상을 견디다 보니 지금은 빛나 보이질 않아
하는 것은 자기 위안일뿐이다.
항상 지금 순간만이 존재한다.
모든 그대와 관계해 있는 존재들은 지금 순간의 그대를 보는 것이지,
과거의 그대를 미래의 그대를 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순간 그대의 인식과 허용과 선택의 차이가
그대에게 세상이 밝거나 어두운 빛이 되어줄수도 있거나,
그대에게 삶의 고통을 안겨줄 수가 있다.
이별도 아름다운 것이다.
구지 하나라고, 만남이라고 행복과 기쁨을 그 의식체에만 표현할 이유가 없다.
이별도 아름다운 것이다.
슬픔도 아름다운 것이다.
고통도 아름다운 것이다.
어느 순간이나 그대는 자신안의 하나의 극의 의식체와 만나게 되거나,
융합된 작은 의식체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순간이던 그것이 반응되어진 의식이건, 스스로 터져나온 의식이건,
존재하는 모든 의식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존재한다라는 최초 하나의 의식체로써는
존재이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존재하는 자신의 의식을 사랑한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나의 의식을 사랑한다.
9.
순수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나도 순수하고 당신도 순수하다.
하나의 의식체인 믿음은 내가 친구를 믿는 것과,
성인이 사람들을 믿는 것과 그 믿음은 같다는 이야기다.
단 믿음은 허용하는 만큼 범위가 달라지므로, 대상이 아닌 대상의 수가 다를 뿐이다.
즉 공간적인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또한 시간의 영원성안에서는 같다.
그 자체로 같은 순수한 믿음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존재하는 모든 의식체는 생명으로써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지
어디에서 받고 주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에게 그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단 자신이 허용하는가 아니면 어떤 의식체에 대칭적 반응이 일어날때,
그 물결을 잘못된 방향이라 상관없이 자신의 반응을 소중히 해야한다.
반응을 소중히 할때 어떤 의식체에 대한 대칭의식체의 극에서부터
자신의 제로의식체가 탄생하고 그것이 사랑의 또 하나의 측면인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자신안에 생각이 떠오르면 또 갈등을 하게 되면,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제로인 나로써 바라보고 지켜보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그 생각이 내가 되고, 그 갈등이 내가 되고 해서 해쳐나간다.
그럼으로써 그 생각의 갈등의 극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그 생각이 더이상 일어 나지 않
는 것이지 그 생각을 바라보는 것으로써는 단지 자신의 나로 불리우는 영역에서 그것을
최대한 허용만 한 것이고, 그것이 내 안에 사라지고, 또 그 의식체가 그대를 지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서로 허용만 한다고 영원히 그 의식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의식체는 순수하게 이미 영원성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 안에서 바라만 볼것인가? 적극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존재하려는 의지 즉 생명력이 그 길을 열어주게 된
다. 그럼으로써 그 의식체는 떠돌이가 아닌 순수존재가 나에게도 되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존재의 확장을 가지고 온다. 생명의 교차가 확장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의식체
의 교차가 생명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순수하다는 것을 잊지말자.
언제나 순수했다는 것을. 자신이 아무리 비천한 일을 할 지언정,
그대는 그 비천함조차 순수하고 일조차 순수하고 그대 자신조차 순수하다는 것을..
10.
언제나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이상 대행자는 필요없었겠지.
나는 대행자.
나는 대행자로써 당신의 뜻을 대변하는 자.
그대로 그대로 이미 존재했었던것을. 이미 영원했던 것을 알고있었다면,
더이상 대행자는 필요없었겠지.
나는 대행자.
나는 사라질 대행자.
나는 바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대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