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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34편. 과도기
과도기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에 예수는 만난 사람과 거쳐 간 나라들을 신중하게 연구했고, 이 무렵에 땅에서 여생(餘生)에 관하여 마지막 결정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도록 마련한 계획을 충분히 고려한 적이 있었고, 이제 마침내 승인하였으며, 따라서 대중(大衆)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일생의 일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려고, 생각 끝에 갈릴리로 돌아갔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렇게 하였다.
예수는 몸소 겪는 인간 체험을 통해서, 온 로마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이 땅에서 생애의 마지막 장(章)을 꾸미고,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임을 발견했다. 그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의 참된 성품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다운 신분을 드러내는 계획에 처음으로 만족(滿足)하게 되었다. 땅에서 일생을 마치고, 어쩔 수 없는 아기로서 인간의 체험에 들어간 바로 그 땅에서 필사자로 존재하는 생애를 마치기로, 분명히 결심하였다. 그의 유란시아 생애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비롯하였고, 그는 일생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마치기로 하였다.
1. 서른 살 되던 해(서기 24년)
카락스에서 (서기 23년 12월) 고노드와 가니드와 작별한 뒤에, 예수는 우르의 길로 바빌로니아로 돌아갔고, 거기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있는, 어느 사막 카라반과 합세하였다. 다마스커스에서부터 나사렛으로 갔고, 가버나움에서 겨우 몇 시간 멈추었으며, 거기서 세베대의 가족을 찾아보느라고 한숨 돌렸다. 거기서 동생 야고보를 만났는데, 그는 얼마 전에 세베대의 배 작업장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일하러 왔다. 야고보와 (또한 가버나움에 어쩌다 들린) 유다와 이야기하고 나서, 요한 세베대가 그럭저럭 샀던 집을 아우 야고보한테 넘겨 준 뒤에, 예수는 계속하여 나사렛으로 갔다.
지중해 여행이 끝났을 때, 예수는 대중 봉사를 시작할 때가 거의 되기까지 생활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제쳐 놓고, 세상은 그가 이렇게 여행한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가족은 그가 이 시간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보냈다고 언제나 믿었다. 예수는 이 생각이 결코 옳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오해를 드러내 놓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나사렛에서 몇 주 머무르는 동안, 예수는 가족과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아우 요셉과 함께 수선소에서 얼마큼 시간을 보냈지만, 배려의 대부분을 마리아와 룻에게 쏟았다. 룻은 그 때 거의 열 다섯 살이었고, 이 기회에 룻이 젊은 여인이 된 뒤에 처음으로 누이와 길게 이야기하였다.
시몬과 유다는 얼마 동안 결혼하고 싶었지만, 예수의 찬성이 없이 그렇게 하기 싫어했다. 따라서 이 일을 미루었고, 맏형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비록 모두가 대부분의 일에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겼어도, 결혼에 관한 문제에서는 예수의 축복을 바랐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초에 쌍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든 아이들은 이제 다 결혼했고, 오직 막내 룻이 집에서 마리아와 함께 남았다.
예수는 가족의 개별 구성원들을 아주 정상으로 자연스럽게 찾아보았지만, 모두 함께 모였을 때, 너무 할 말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대하여 한 마디 하였다. 마리아는 맏아들의 특별히 이상한 이 행동에 특별히 불안해하였다.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그 도시를 지나치고 있던 어느 큰 카라반의 안내자가 극심하게 앓게 되었는데, 예수는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청했다. 이 여행이 1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필요하게 만들 것이고, 형제들이 모두 결혼했고 어머니가 집에서 룻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 예수는 가족 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얼마 전에 야고보에게 준 집에서 살도록 어머니와 룻이 가버나움으로 갈 것을 제안하였다. 따라서, 예수가 카라반과 함께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옮겨 갔고, 거기서 예수가 마련해 준 집에서 마리아의 여생 동안 살았다. 요셉과 그 가족은 옛 나사렛 집으로 이사했다.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마음 속 체험에서 특별한 몇 해 중에 하나였다. 인간 지성과 깃드는 조절자 사이에 기초적 조화(調和)를 이룩하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 조절자는 당시로부터 멀지 않은 앞날에 있을 큰 일을 위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머리를 연습시키는 일에 활발하게 들어갔다. 예수의 인격은 세계를 향한 그의 태도에서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는 막간의 시절이었고, 사람으로 보이는 하나님으로서 일생(一生)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보이는 사람으로서 땅에서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그런 과도기였다.
2. 카스피까지 간 카라반 여행
카스피 바다 지역까지 카라반 여행 길에 예수가 나사렛을 떠난 것은 서기 24년 4월 1일이었다. 예수가 안내자로서 합세했던 카라반은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와 우르미아 호수(湖水)의 길로, 아씨리아와 메디아와 파샤를 거쳐서, 카스피 바다의 남동 지역까지 가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데는 만 1년이 걸렸다.
예수에게 이 카라반 여행은 탐험하고 개인적으로 봉사하는 또 다른 모험이었다. 카라반 일행(一行)-승객, 보초, 낙타 운전자들-과 그는 흥미 있는 체험을 겪었다. 카라반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수십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와 접촉한 결과로서 더욱 값진 인생을 살았고, 이들에게 그는 평범한 카라반의 비범(非凡)한 안내자였다. 친히 봉사한 이 기회를 즐긴 사람들 모두가 이익을 얻지는 않았지만, 그를 만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자들의 대다수는 자연스러운 여생(餘生)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모든 세상 여행 가운데 이 카스피 바다 여행은 예수를 동양(東洋)에 가장 가깝게 데려갔고, 극동 민족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유란시아의 남아 있는 종족들 하나하나와 가깝게, 친히 접촉했다. 이 다른 종족과 섞인 민족들 각자에게 몸소 베푼 봉사는 똑같이 즐거웠고, 이들은 모두 그가 가져온 생동하는 진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극서(極西)로부터 온 유럽 사람과 극동에서 온 아시아 사람들은 똑같이, 희망과 영생(永生)을 전하는 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들 가운데 무척 인자하게 실천한, 사랑으로 섬기고 영적 봉사를 베푸는 생활에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모든 면에서 그 카라반 여행은 성공이었고, 예수의 인간 생활에서 아주 흥미 있는 에피소드였는데, 그는 이 해에 집행(執行) 자격으로 활동했고, 그에게 맡겨진 물질에 대하여, 그리고 카라반 일행을 구성하는 여행자들의 안전한 행위를 책임졌다. 매우 충실하게, 능률 있게, 지혜롭게, 여러 가지 임무를 처리하였다.
카스피 지방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에서 카라반의 지휘를 그만두었고, 거기서 2주 조금 넘게 머물렀다. 나중에 가는 카라반과 함께 승객으로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는데, 거기서 낙타의 주인들은 그에게 남아서 계속 봉사하라고 청하였다. 이 제안을 물리치고, 카라반 행렬(行列)과 함께 가버나움까지 줄곧 여행했고, 서기 25년 4월 1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더 나사렛을 집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버나움이 예수,야고보,마리아,룻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다. 가버나움에 있을 때 세베대와 함께 거처(居處)를 정했다.
과도기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에 예수는 만난 사람과 거쳐 간 나라들을 신중하게 연구했고, 이 무렵에 땅에서 여생(餘生)에 관하여 마지막 결정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도록 마련한 계획을 충분히 고려한 적이 있었고, 이제 마침내 승인하였으며, 따라서 대중(大衆)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일생의 일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려고, 생각 끝에 갈릴리로 돌아갔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렇게 하였다.
예수는 몸소 겪는 인간 체험을 통해서, 온 로마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이 땅에서 생애의 마지막 장(章)을 꾸미고,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임을 발견했다. 그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의 참된 성품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다운 신분을 드러내는 계획에 처음으로 만족(滿足)하게 되었다. 땅에서 일생을 마치고, 어쩔 수 없는 아기로서 인간의 체험에 들어간 바로 그 땅에서 필사자로 존재하는 생애를 마치기로, 분명히 결심하였다. 그의 유란시아 생애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비롯하였고, 그는 일생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마치기로 하였다.
1. 서른 살 되던 해(서기 24년)
카락스에서 (서기 23년 12월) 고노드와 가니드와 작별한 뒤에, 예수는 우르의 길로 바빌로니아로 돌아갔고, 거기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있는, 어느 사막 카라반과 합세하였다. 다마스커스에서부터 나사렛으로 갔고, 가버나움에서 겨우 몇 시간 멈추었으며, 거기서 세베대의 가족을 찾아보느라고 한숨 돌렸다. 거기서 동생 야고보를 만났는데, 그는 얼마 전에 세베대의 배 작업장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일하러 왔다. 야고보와 (또한 가버나움에 어쩌다 들린) 유다와 이야기하고 나서, 요한 세베대가 그럭저럭 샀던 집을 아우 야고보한테 넘겨 준 뒤에, 예수는 계속하여 나사렛으로 갔다.
지중해 여행이 끝났을 때, 예수는 대중 봉사를 시작할 때가 거의 되기까지 생활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제쳐 놓고, 세상은 그가 이렇게 여행한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가족은 그가 이 시간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보냈다고 언제나 믿었다. 예수는 이 생각이 결코 옳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오해를 드러내 놓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나사렛에서 몇 주 머무르는 동안, 예수는 가족과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아우 요셉과 함께 수선소에서 얼마큼 시간을 보냈지만, 배려의 대부분을 마리아와 룻에게 쏟았다. 룻은 그 때 거의 열 다섯 살이었고, 이 기회에 룻이 젊은 여인이 된 뒤에 처음으로 누이와 길게 이야기하였다.
시몬과 유다는 얼마 동안 결혼하고 싶었지만, 예수의 찬성이 없이 그렇게 하기 싫어했다. 따라서 이 일을 미루었고, 맏형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비록 모두가 대부분의 일에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겼어도, 결혼에 관한 문제에서는 예수의 축복을 바랐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초에 쌍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든 아이들은 이제 다 결혼했고, 오직 막내 룻이 집에서 마리아와 함께 남았다.
예수는 가족의 개별 구성원들을 아주 정상으로 자연스럽게 찾아보았지만, 모두 함께 모였을 때, 너무 할 말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대하여 한 마디 하였다. 마리아는 맏아들의 특별히 이상한 이 행동에 특별히 불안해하였다.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그 도시를 지나치고 있던 어느 큰 카라반의 안내자가 극심하게 앓게 되었는데, 예수는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청했다. 이 여행이 1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필요하게 만들 것이고, 형제들이 모두 결혼했고 어머니가 집에서 룻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 예수는 가족 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얼마 전에 야고보에게 준 집에서 살도록 어머니와 룻이 가버나움으로 갈 것을 제안하였다. 따라서, 예수가 카라반과 함께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옮겨 갔고, 거기서 예수가 마련해 준 집에서 마리아의 여생 동안 살았다. 요셉과 그 가족은 옛 나사렛 집으로 이사했다.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마음 속 체험에서 특별한 몇 해 중에 하나였다. 인간 지성과 깃드는 조절자 사이에 기초적 조화(調和)를 이룩하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 조절자는 당시로부터 멀지 않은 앞날에 있을 큰 일을 위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머리를 연습시키는 일에 활발하게 들어갔다. 예수의 인격은 세계를 향한 그의 태도에서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는 막간의 시절이었고, 사람으로 보이는 하나님으로서 일생(一生)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보이는 사람으로서 땅에서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그런 과도기였다.
2. 카스피까지 간 카라반 여행
카스피 바다 지역까지 카라반 여행 길에 예수가 나사렛을 떠난 것은 서기 24년 4월 1일이었다. 예수가 안내자로서 합세했던 카라반은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와 우르미아 호수(湖水)의 길로, 아씨리아와 메디아와 파샤를 거쳐서, 카스피 바다의 남동 지역까지 가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데는 만 1년이 걸렸다.
예수에게 이 카라반 여행은 탐험하고 개인적으로 봉사하는 또 다른 모험이었다. 카라반 일행(一行)-승객, 보초, 낙타 운전자들-과 그는 흥미 있는 체험을 겪었다. 카라반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수십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와 접촉한 결과로서 더욱 값진 인생을 살았고, 이들에게 그는 평범한 카라반의 비범(非凡)한 안내자였다. 친히 봉사한 이 기회를 즐긴 사람들 모두가 이익을 얻지는 않았지만, 그를 만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자들의 대다수는 자연스러운 여생(餘生)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모든 세상 여행 가운데 이 카스피 바다 여행은 예수를 동양(東洋)에 가장 가깝게 데려갔고, 극동 민족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유란시아의 남아 있는 종족들 하나하나와 가깝게, 친히 접촉했다. 이 다른 종족과 섞인 민족들 각자에게 몸소 베푼 봉사는 똑같이 즐거웠고, 이들은 모두 그가 가져온 생동하는 진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극서(極西)로부터 온 유럽 사람과 극동에서 온 아시아 사람들은 똑같이, 희망과 영생(永生)을 전하는 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들 가운데 무척 인자하게 실천한, 사랑으로 섬기고 영적 봉사를 베푸는 생활에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모든 면에서 그 카라반 여행은 성공이었고, 예수의 인간 생활에서 아주 흥미 있는 에피소드였는데, 그는 이 해에 집행(執行) 자격으로 활동했고, 그에게 맡겨진 물질에 대하여, 그리고 카라반 일행을 구성하는 여행자들의 안전한 행위를 책임졌다. 매우 충실하게, 능률 있게, 지혜롭게, 여러 가지 임무를 처리하였다.
카스피 지방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에서 카라반의 지휘를 그만두었고, 거기서 2주 조금 넘게 머물렀다. 나중에 가는 카라반과 함께 승객으로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는데, 거기서 낙타의 주인들은 그에게 남아서 계속 봉사하라고 청하였다. 이 제안을 물리치고, 카라반 행렬(行列)과 함께 가버나움까지 줄곧 여행했고, 서기 25년 4월 1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더 나사렛을 집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버나움이 예수,야고보,마리아,룻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다. 가버나움에 있을 때 세베대와 함께 거처(居處)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