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글 수 17,677
유란시아서.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32편. 로마에서 머무를 때
3. 진리와 믿음
나본은 그리스계 유대인이요, 로마에서 주요한 신비 종파, 미트라교의 지도자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미트라교의 이 대사제는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많은 회담을 가졌지만, 어느 날 저녁에 진리(眞理)와 믿음에 관하여 가졌던 토론에 아주 영구하게 영향을 받았다. 나본은 예수를 개종시킬 생각을 가졌고, 그에게 미트라 선생으로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라고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하늘나라 복음으로 초기에 개종(改宗)한 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예수가 그를 준비시키고 있음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현대의 말투를 빌려서 다시 말하면,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리는 말이 아니라. 오직 실천(實踐)으로 규명될 수 있다. 진리는 반드시 지식보다 더 크다. 지식은 지켜본 사물에 관한 것이지만, 진리가 지혜와 사귀고, 인간의 체험, 아니 영적이고 살아 있는 실체들과 같은, 저울로 잴 수 없는 것을 담기 때문에, 그렇게 순전한 물질 수준을 뛰어넘는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참된 철학에서, 진리는 영답게 사는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한다. 지식은 사실을 다루고, 지혜는 관계를, 진리는 실체 가치를 다룬다.
사람이 진보적 생활 투쟁에 적응하는 데 정신적으로 게으르고 한편 미지의 것을 또한 끔찍하게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은 과학을 구체화(具體化)하고, 철학을 형성하고, 진리를 교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인(自然人)은 생각하는 버릇과 생활기법에서, 변화를 시작하는 데 느리다.
계시된 진리, 몸소 발견한 진리는, 인간의 혼이 얻는 최고의 기쁨이다. 물질 지성과 깃드는 영이 합동으로 지어 낸 것이다. 진리를 분별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혼이 얻는 영원한 구원은 선을 간절히 바라고 목마르게 찾음으로 보장되며,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찾아내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개발하도록 이 필사자를 인도한다. 참된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결코 갈등이 없다. 지식과 인간적 관념 사이에는 갈등이 있을까 하며, 이것은 편견으로 물들고, 두려움으로 왜곡되고, 물질적 발견이나 영적 진보와 같은 새로운 사실에 부딪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관념이다.
그러나 믿음을 연습하지 않고서 진리는 결코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참말이니, 사람의 생각,지혜,윤리,이상은 그의 믿음, 숭고한 소망보다 결코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그러한 참된 믿음은 깊은 반성(反省), 진지한 자기 비평, 굽히지 않는 도덕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믿음은 영이 된 창조적 상상력이 주는 영감이다.
믿음은 신성한 불꽃, 불멸하는 씨눈의 초인간적 활동을 해방하도록 작용하며, 그 씨눈은 사람의 지성 안에서 살고, 영원히 살아남을 잠재성이다. 식물과 동물은 한 세대로부터 다른 세대로, 자체의 동일한 입자(粒子)들을 전해 주는 기법으로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다. 사람의 혼(성격)은 신성이 깃드는 이 불꽃과 함께 신분을 결합함으로써 필사자의 죽음을 견디고 살아남으며, 그 불꽃은 불멸하고, 연속되는 더 높은 수준의 진취적 우주 존재에서 인간의 성격을 영속(永續)시키도록 작용한다. 인간의 혼에 감추어진 씨앗은 불멸하는 영이다. 혼의 둘째 세대는 영적이고 진보하는 존재들이 가지는 일련의 성격 명시(明示)의 처음이요, 이것은 오직 이 신다운 통일체가 그 존재의 근원, 모든 존재의 성격 근원인 하나님, 우주의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에야 끝난다.
인간의 생명은 이어진다-살아남는다. 우주 활동을, 하나님을 찾아내는 과제를 가졌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활성화된 사람의 혼은 이 운명의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멈출 수 없다. 이 신성한 목표를 일단 이룩하면, 결코 그칠 수 없으니, 그 혼이 하나님처럼-영원히-되었기 때문이다.
영적 진화는 선을 점점 더, 자진해서 선택하는 체험이며, 여기에는 똑같이 악할 가능성의 점진적 감소(減少)가 뒤따른다. 선을 택하는 결의, 진리를 이해하는 완성된 능력을 얻음과 함께, 완전한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생기게 되며, 여기서 생기는 올바름은 잠재 악의 개념이 생길 가능성조차 영원히 억제한다.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혼은 신다운 선의 그러한 높은 영 수준에서 활동할 때, 의심하는 악의 그림자를 조금도 던지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 속에 파라다이스 영이 계심은, 우주의 아버지의 불멸하는 이 깃드는 영 분신(分身)과 동일성을 얻으려고 애쓰는 모든 혼에게, 신답게 진보하는 영원한 존재를 계시하는 약속이요, 믿음의 서약이다.
우주의 진보는 성격의 자유가 확대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 진보가 점점 더 높아지는 수준의 자아 이해와 그에 따라 자발적 자제(自制)를 점진적으로 얻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완전한 영적 자제에 이르는 것은 우주에서 자유와 성격의 해방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믿음은 그러한 광대한 우주에서 사람이 초기에 적응하는 혼란의 와중에서, 사람의 혼을 육성(育成)하고 유지한다. 한편 기도(祈禱)는 창조적 상상력에서 생기는 다채로운 영감, 그리고 깃드는 관련된 신성한 계심의 영적 이상과 동일시하려고 애쓰는 혼의 신앙 욕구, 이 두가지를 잘 통일하는 약이 된다.
예수와 이야기할 때마다 그런 것처럼, 나본은 이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 진리는 가슴 속에서 줄곧 타올랐고, 그는 예수의 복음을 가지고 나중에 도착한 전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3. 진리와 믿음
나본은 그리스계 유대인이요, 로마에서 주요한 신비 종파, 미트라교의 지도자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미트라교의 이 대사제는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많은 회담을 가졌지만, 어느 날 저녁에 진리(眞理)와 믿음에 관하여 가졌던 토론에 아주 영구하게 영향을 받았다. 나본은 예수를 개종시킬 생각을 가졌고, 그에게 미트라 선생으로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라고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하늘나라 복음으로 초기에 개종(改宗)한 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예수가 그를 준비시키고 있음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현대의 말투를 빌려서 다시 말하면,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리는 말이 아니라. 오직 실천(實踐)으로 규명될 수 있다. 진리는 반드시 지식보다 더 크다. 지식은 지켜본 사물에 관한 것이지만, 진리가 지혜와 사귀고, 인간의 체험, 아니 영적이고 살아 있는 실체들과 같은, 저울로 잴 수 없는 것을 담기 때문에, 그렇게 순전한 물질 수준을 뛰어넘는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참된 철학에서, 진리는 영답게 사는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한다. 지식은 사실을 다루고, 지혜는 관계를, 진리는 실체 가치를 다룬다.
사람이 진보적 생활 투쟁에 적응하는 데 정신적으로 게으르고 한편 미지의 것을 또한 끔찍하게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은 과학을 구체화(具體化)하고, 철학을 형성하고, 진리를 교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인(自然人)은 생각하는 버릇과 생활기법에서, 변화를 시작하는 데 느리다.
계시된 진리, 몸소 발견한 진리는, 인간의 혼이 얻는 최고의 기쁨이다. 물질 지성과 깃드는 영이 합동으로 지어 낸 것이다. 진리를 분별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혼이 얻는 영원한 구원은 선을 간절히 바라고 목마르게 찾음으로 보장되며,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찾아내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개발하도록 이 필사자를 인도한다. 참된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결코 갈등이 없다. 지식과 인간적 관념 사이에는 갈등이 있을까 하며, 이것은 편견으로 물들고, 두려움으로 왜곡되고, 물질적 발견이나 영적 진보와 같은 새로운 사실에 부딪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관념이다.
그러나 믿음을 연습하지 않고서 진리는 결코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참말이니, 사람의 생각,지혜,윤리,이상은 그의 믿음, 숭고한 소망보다 결코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그러한 참된 믿음은 깊은 반성(反省), 진지한 자기 비평, 굽히지 않는 도덕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믿음은 영이 된 창조적 상상력이 주는 영감이다.
믿음은 신성한 불꽃, 불멸하는 씨눈의 초인간적 활동을 해방하도록 작용하며, 그 씨눈은 사람의 지성 안에서 살고, 영원히 살아남을 잠재성이다. 식물과 동물은 한 세대로부터 다른 세대로, 자체의 동일한 입자(粒子)들을 전해 주는 기법으로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다. 사람의 혼(성격)은 신성이 깃드는 이 불꽃과 함께 신분을 결합함으로써 필사자의 죽음을 견디고 살아남으며, 그 불꽃은 불멸하고, 연속되는 더 높은 수준의 진취적 우주 존재에서 인간의 성격을 영속(永續)시키도록 작용한다. 인간의 혼에 감추어진 씨앗은 불멸하는 영이다. 혼의 둘째 세대는 영적이고 진보하는 존재들이 가지는 일련의 성격 명시(明示)의 처음이요, 이것은 오직 이 신다운 통일체가 그 존재의 근원, 모든 존재의 성격 근원인 하나님, 우주의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에야 끝난다.
인간의 생명은 이어진다-살아남는다. 우주 활동을, 하나님을 찾아내는 과제를 가졌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활성화된 사람의 혼은 이 운명의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멈출 수 없다. 이 신성한 목표를 일단 이룩하면, 결코 그칠 수 없으니, 그 혼이 하나님처럼-영원히-되었기 때문이다.
영적 진화는 선을 점점 더, 자진해서 선택하는 체험이며, 여기에는 똑같이 악할 가능성의 점진적 감소(減少)가 뒤따른다. 선을 택하는 결의, 진리를 이해하는 완성된 능력을 얻음과 함께, 완전한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생기게 되며, 여기서 생기는 올바름은 잠재 악의 개념이 생길 가능성조차 영원히 억제한다.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혼은 신다운 선의 그러한 높은 영 수준에서 활동할 때, 의심하는 악의 그림자를 조금도 던지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 속에 파라다이스 영이 계심은, 우주의 아버지의 불멸하는 이 깃드는 영 분신(分身)과 동일성을 얻으려고 애쓰는 모든 혼에게, 신답게 진보하는 영원한 존재를 계시하는 약속이요, 믿음의 서약이다.
우주의 진보는 성격의 자유가 확대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 진보가 점점 더 높아지는 수준의 자아 이해와 그에 따라 자발적 자제(自制)를 점진적으로 얻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완전한 영적 자제에 이르는 것은 우주에서 자유와 성격의 해방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믿음은 그러한 광대한 우주에서 사람이 초기에 적응하는 혼란의 와중에서, 사람의 혼을 육성(育成)하고 유지한다. 한편 기도(祈禱)는 창조적 상상력에서 생기는 다채로운 영감, 그리고 깃드는 관련된 신성한 계심의 영적 이상과 동일시하려고 애쓰는 혼의 신앙 욕구, 이 두가지를 잘 통일하는 약이 된다.
예수와 이야기할 때마다 그런 것처럼, 나본은 이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 진리는 가슴 속에서 줄곧 타올랐고, 그는 예수의 복음을 가지고 나중에 도착한 전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오성구
- 2006.02.03
- 22:39:08
- (*.49.71.153)
ufo,우주인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수명이 300~600살 정도 살수 있을 만큼 진화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우리 지구인과 같은 하늘 가는 필사자라는
사실 입니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에서 반란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고립된 행성이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의 사랑하는 군주가 십자가의 고난을 무릅쓰면서,
이 행성에 오쎴음을 명심 하시기 바랍니다.
계시가 내려온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던 많은 선지자들은 사라지고,
현대와 같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 훌륭한 영적 스승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찿을수 없을 지라도.......
수명이 300~600살 정도 살수 있을 만큼 진화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우리 지구인과 같은 하늘 가는 필사자라는
사실 입니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에서 반란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고립된 행성이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의 사랑하는 군주가 십자가의 고난을 무릅쓰면서,
이 행성에 오쎴음을 명심 하시기 바랍니다.
계시가 내려온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던 많은 선지자들은 사라지고,
현대와 같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 훌륭한 영적 스승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찿을수 없을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