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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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친구들이 이세상에 전부이다.
세상에는 친구밖에 없다.
모든 두려움은 육체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거의 모든이들이 늙고 죽는다고 생각하기에 늙고 죽는다.
생은 짧아지고, 무언가 하려한다.
무언가 하려함으로써 부조화가 발생한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롭다..
그렇다면 나는 바뀌려한다.
내 부모님이 생기고, 아내가 생기고, 자식이 생기고,,이 사실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모두 지구에 오기전에 나와 친구들이 이렇게 계획을 함으로써 경험을 하는 것
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모님, 아내, 자식 모두 나와 친구일뿐이다.
더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윤회를 믿는다면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많은 부모님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제사도 지낼 필요가 없다.
단지 친구로써 육체에서의 경험을 잘 마쳤다는 의미에서의 축복을 줌은 있을
수 있다.
진정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면 높임과 낮힘은 사라져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절대로 어느 존재든 우상화하지 말자..
위를 공경하지 말고, 아래로 자비를 주지 말자.
다만 육체를 가지고 이제까지 경험을 함으로써
이 경험의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그 의식을 알면되는 것이다.
사랑속에 평등과 자유만 있을뿐이다.
자비또한 희생적 사랑이다. 그것은 자비를 뿌리는 이는 온전치만, 받는 이에게
는 의식의 분열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비도 필요없다.
필요에 의해서 잠시 그 의식을 알필요는 있었다.
모든 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하나이고,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 존중하자.
우리는 원래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순간 순간 창조와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에서 분리됨으로써
또 의식에서 완전한 존재감으로써의 육체로 내가 변화함으로써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높임과 낮춤(차별) 이라는 의식을 지구에서 불러들였다.
그럼으로써 예가 생기고 그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
차별이 생긴이유는 우리가 개인 개인이 창조주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기에 높임과 낮춤이 생김으로써 내 무의식중에 창조주라는 사실에 나는 나
로써 그냥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전부가 되지만..이것은 조금은 다른차원의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안에서
평등속에 자유를 경험하고, 또다시 자유속에 평등을 경험한다.
순환을 하는 것이다. 모두 사랑하기 위한 변화이며 계획된것이다.
모두 완전한 것이다.
지금 순간도 완전하다. 당연히 지나가야할 순간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은 없다.
우리는 육체의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우리가 의식일때의 무를 간접적으로 경험
하는 것이다. 육체일때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으로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일때 무로 돌아가는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들(존재들)
이 그 무로 돌아간 의식을 보며 느끼는 감정인것이다.
그 감정을 우리는 생명으로써 육체를 가지고 느끼는 것이다.
한 의식(존재)의 사라짐은 우리(전체)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
이다.
내가 의식이었을때 내가 무로 돌아가는 것은 나에게는 아무런 고통과 아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생명을 가지고 간접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경험하
는 것이다.
죽음과 무는 존재치 않는다.
영원만이 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생명을 가지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영원한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이 영원한 시간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까?
세상에는 친구밖에 없다.
모든 두려움은 육체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거의 모든이들이 늙고 죽는다고 생각하기에 늙고 죽는다.
생은 짧아지고, 무언가 하려한다.
무언가 하려함으로써 부조화가 발생한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롭다..
그렇다면 나는 바뀌려한다.
내 부모님이 생기고, 아내가 생기고, 자식이 생기고,,이 사실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모두 지구에 오기전에 나와 친구들이 이렇게 계획을 함으로써 경험을 하는 것
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모님, 아내, 자식 모두 나와 친구일뿐이다.
더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윤회를 믿는다면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많은 부모님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제사도 지낼 필요가 없다.
단지 친구로써 육체에서의 경험을 잘 마쳤다는 의미에서의 축복을 줌은 있을
수 있다.
진정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면 높임과 낮힘은 사라져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절대로 어느 존재든 우상화하지 말자..
위를 공경하지 말고, 아래로 자비를 주지 말자.
다만 육체를 가지고 이제까지 경험을 함으로써
이 경험의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그 의식을 알면되는 것이다.
사랑속에 평등과 자유만 있을뿐이다.
자비또한 희생적 사랑이다. 그것은 자비를 뿌리는 이는 온전치만, 받는 이에게
는 의식의 분열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비도 필요없다.
필요에 의해서 잠시 그 의식을 알필요는 있었다.
모든 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하나이고,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 존중하자.
우리는 원래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순간 순간 창조와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에서 분리됨으로써
또 의식에서 완전한 존재감으로써의 육체로 내가 변화함으로써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높임과 낮춤(차별) 이라는 의식을 지구에서 불러들였다.
그럼으로써 예가 생기고 그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
차별이 생긴이유는 우리가 개인 개인이 창조주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기에 높임과 낮춤이 생김으로써 내 무의식중에 창조주라는 사실에 나는 나
로써 그냥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전부가 되지만..이것은 조금은 다른차원의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안에서
평등속에 자유를 경험하고, 또다시 자유속에 평등을 경험한다.
순환을 하는 것이다. 모두 사랑하기 위한 변화이며 계획된것이다.
모두 완전한 것이다.
지금 순간도 완전하다. 당연히 지나가야할 순간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은 없다.
우리는 육체의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우리가 의식일때의 무를 간접적으로 경험
하는 것이다. 육체일때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으로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일때 무로 돌아가는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들(존재들)
이 그 무로 돌아간 의식을 보며 느끼는 감정인것이다.
그 감정을 우리는 생명으로써 육체를 가지고 느끼는 것이다.
한 의식(존재)의 사라짐은 우리(전체)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
이다.
내가 의식이었을때 내가 무로 돌아가는 것은 나에게는 아무런 고통과 아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생명을 가지고 간접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경험하
는 것이다.
죽음과 무는 존재치 않는다.
영원만이 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생명을 가지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영원한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이 영원한 시간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