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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핔 :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
 

[신년인터뷰]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①

13.01.07 18:04l최종 업데이트 13.01.07 21:04l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에는 정의가 없다'는 패배주의는 안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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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특정한 국면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 정부 4년차에서는 반MB(이명박) 대안매체인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3인방이 선택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멘붕'(심리적 붕괴상태)에 빠진 이들이 '뜻밖의 인물'을 선택했다. 국내 경찰학 박사 1호이자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활약해온 표창원 경찰대 교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흐름에 속한 대중들이 표 교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가 범죄학을 전공했고, 그동안 현안에는 대체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보수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그런 표 교수가 지난해 12월 16일 자신의 블로그 '표창원의 범죄와 세상 이야기'에 올린 글('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요구하고 경고합니다')에서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 좌빨 주장은 집어치우라"라고 요구하면서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무한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주장해 큰 공감을 얻었다. 게다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가치가 '정의'다. 현재 '한국에서 정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전국 강연 투어까지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는 '평화'와 '신사'도 보수가 가져야 할 핵심가치다.

여기에 이르면 표 교수가 진보주의자인지 보수주의자인지 헛갈린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분배, 풍성한 자유와 건강한 평화'를 진보의 가치로 보는 관점을 따른다면 그는 분명 '진보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보수주의자'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는 분단체제 등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뒤틀리고 왜곡된 한국사회의 희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표창원 열풍'은 정의와 공정, 평화 등을 내세우면 '종북 좌빨'이라고 딱지붙여버리는 한국사회의 천박성을 향한 고발의 성격이 짙다. 단순히 대선패배의 힐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커밍아웃은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표 교수와의 신년인터뷰는 지난 3일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 오후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영화 <레미제라블>, 한국 보수와 정의, 대선 결과와 박근혜 당선인의 과제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주로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지만 "'한국에는 정의가 없다'는 패배주의는 안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정의는 대단히 천천히 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며 낙관론을 폈다.

 

"직업의 특성상 자베르 경감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 연말�연초는 바쁘게 보냈죠?


"정신없었다. 다들 저보고 살이 쫙 빠졌다, 다이어트 한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신종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일을 저질러라,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고민과 갈등으로 태우듯 지방을 다 태워 버려라, 그러면 일주일 내에 전혀 건강에 지장 없이 1kg 가까운 감량 효과를 볼 것이다."


- 그럼 지금보다 살이 좀 쪘다는 얘기인가?

"지금보다 좀 살이 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괜찮은 것 같다."


- '집단 힐링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영화 <레미제라블> 단체 관람을 제안했는데.

"제가 원래 <레미제라블>을 많이 좋아했다. 영국 유학 때부터 자주 봤다. 참 감동적이었다. 한국어 초연을 얼마 전에 우리 동네(용인)에서 했다. 그래서 가서 또 보고. 지난 10월 브레트 토베이라는 미국 프로파일러를 초청해 1주일 같이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했던 적이 있다. 일주일 내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레미제라블>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저한테 해줬다. 그래서 '아, 진짜냐, 나 아주 좋아하는데, 누가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가 나온다'고 했다. 제가 '그 사람들이 노래할 줄 아나?' 물었더니 '다 잘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이번 대선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예상치 않는 일에 말려 들어가고, 그런데 마침 <레미제라블>이 개봉했다. 그런 상태에서 저도 좀 치유가 필요했고, 또 워낙 보고 싶었던 영화고, 다른 분들에도 프랑스 시민혁명의 실패, 좌파의 실패를 보면 가슴 속의 응어리도 많이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한 자리에서 보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극장이란 게 묘하다. 동행한 사람 외에 다 타인들이고 낯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감정 교류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괜히 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학창 시절에 영화 단체 관람을 많이 했다. 그때는 주로 반공 영화이긴 하지만, 그게 참 재미가 있었다. 같은 친구끼리 같이 가서 막 탄성도 지르고 웃기도 하고. 그 느낌을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집단 힐링이란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도 개봉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영화를 예매하자고 했다."


- 영국 유학 때도 두 번이나 원작 뮤지컬을 봤는데, 그때는 느낌이 어땠나?

"뮤지컬을 봐서 알겠지만 일단 장발장 개인에게 방점이 가 있다. 그리고 코제트와의 연결, 마리우스 같은 혁명군은 양념적 요소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그쪽에 많이 감정 이입이 된다. 저는 직업적 특성상 자베르 경감에 많이 동일시된다. 그가 가진 고뇌, 그가 아주 냉정하고 지나칠 정도로 법과 원칙에 집착하는 것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시민혁명 부분은 제가 지내왔던 80년대 대한민국의 격동기와 맞물려 어느 정도의 공감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부분이 (공감이나 감정이입의) 주는 아니었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자살한 이유

-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은 아주 철두철미한 법치주의자, 형벌주의자, 보수주의자로 그려진다. 그런 자베르 경감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우리나라 처지에서만 본다면 (자베르 경감은) 교과서다. 이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도 그렇지만 앞서 디도스 사건 등 '권력형'만 들어가면 경찰이나 검찰이 갑자기 무력해진다. 용산 철거민이나 쌍용차 등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한 사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추상같다. 하지만 자베르는 안 그럴 거다. 자기가 모시는 상관인 시장이 (장발장으로)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자베르는 전혀 눈치 보지 않았고, 이 사람이 장발장으로 의심된다는 수사보고서를 상부에 올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잡히자 자베르가 시장에게 가서 사과한다. 상대방이 전혀 모른 상태에서 장발장으로 의심된다는 보고서를 올린 것인데도 바로 사과했다. 그런 자베르는 상대가 누구든, 그것이 상관이든 권력자든 '법을 어겼다', '범죄자다'고 한다면 사냥개처럼 무조건 수사한다. 그런 법 집행자에게서 휴머니즘을 찾고, 정치적 타당성을 찾고, 시대정신을 헤아려 이쪽 편을 들어라, 이렇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법 집행자는 공평하면 된다.

여든 야든 나쁜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은 수사하고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경영주와 노동자 중에 누가 파울 플레이를 더 많이 했느냐를 찾아서 엄정하게 처벌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서로 협약으로 풀고, 정치로 풀면 되지, 법 집행자에게 정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자베르는 교과서다."

- 자베르 경감은 결국 자살한다. 이것은 더 이상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아의 붕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자베르는 철저하고 원칙적으로 오로지 법과 진실을 정의라고 봤다. 그 위에 있는 메타(은유)적인 얘기나 광범위한 정의 부분은 모른다. 이것이 어떤 정치적 타당성이나 역사성을 가졌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자베르는 눈앞에 있는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범죄를 저질렀느냐 안 저질렀느냐, 이것만 보는 것을 정의로 알고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혁명군에게 잡혔다가 장발장에게 도움을 받는다.

자베르는 '나는 정의롭다, 나는 정의를 수행한다, 다른 것은 묻지 마라,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가 내 모든 기준이고 잣대, 정체성이고 가치'라고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사람이야, 너는 영원히 범죄자야'라고 규정했던 장발장이 아무런 이익도 없이, 이해도 없이 자기를 풀어줬다. 자베르를 풀어주면 자기한테 불리할텐데도 풀어줬다. 그것은 악의 모습이 아니다. 자베르는 거기서 첫 번째로 흔들렸다. 이제까지 자신이 규정했던 '법을 어긴 자', '범죄자'는 악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서 어떤 무거운 형벌을 내려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었고, 연민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 장발장이라는 존재가 그런 자신의 모든 신념을 뒤집어 버리고 흐트러뜨린 거다. 범죄자도 인간이고, 범죄자도 자신보다 더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자베르의 신념을 확 흔들어 버린 첫 번째 사건이다.

그 다음에 또 다시 장발장을 잡을 기회가 생겼다. 지하 하수구에서 마리우스를 업고 나오는 장발장을 보고 체포할 수 있었지만, 장발장이 호소했다. '이 청년을 바로 의사에게 보여야 하니 잠깐 나에게 시간을 달라, 그리고 내가 있는 주소를 말할테니 그리로 와 달라'고. 자베르는 거기서 얼어붙어 버렸다. 자신의 본래 모습이었다면 돌아볼 필요도 없이 수갑채워 끌고 가는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자기가 빚을 졌으니까. 자기가 저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자신의 신념과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기본 양심이 있다. 첫번째 자존감의 붕괴는 일단 고민거리로 남겨둘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행한 것(장발장을 바로 체포하지 않은 것)은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원칙을 깬 거다. 범죄자를 놔 줬으니까.

자기가 스스로, 그것도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이익, 개인적인 보은으로 말이다. 그것은 부패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고 나쁘다고 보는, 법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 원칙을 어기는 범죄자의 모습을 자기가 따라하게 된 것을 발견한 거다. 그러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기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없게 된 거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거다."

"현장에 계속 있었다면 '자베르적 정의'를 추구했을 것"

"저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보다 좀 인간적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다만 원칙주의자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직 정의를 구하겠다는 부분만큼은 닮고 싶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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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자베르 경감과 자신을 비교하면 좀 어떤가?

"저는 자베르보다는 좀 인간적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저라면 배고픈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쳤다는 장발장의 사정, 그리고 그 이후에도 버려져 있을 조카들 때문에 도주한 점,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그런 부분들까지 넣어 버리면 스테레오 타입(인물의 전형성)이 형성되지 않으니까 그것은 뺀 것이다. 다만 원칙주의자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직 정의를 구하겠다는 부분만큼은 저도 닮고 싶다."

- 자베르 경감은 법이나 형벌에 정의가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인데, 표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다. 저는 자베르보단 공부를 좀더 많이 했기 때문에(웃음). 아마 현장에만 있었다면 제가 추구하는 모습은 자베르적인 모습이었을 거다. 현장에서의 정의는 결국 피해자가 있고, 법이 어겨지고 있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고, 그것은 모두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을 하나라도 더 잡고 처벌하기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제가 현장에만 계속 있었다면 그런 자베르적 정의가 제 정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다행스럽게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공부하면서 '처벌이 꼭 정의일까'라는 다른 쪽 의견을 듣고 대안을 탐구했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폭넓게 보면 꼭 처벌만이 정의는 아니다. 그렇게 폭넓고 철학적인 인식이 더해진 것이 지금 제가 갖추고 있는 정의이고, 현장적 정의는 자베르적 정의일 것 같다."

- 다른 뮤지컬도 있는데 유독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일단은 <레미제라블>이 다루고 있는 시민혁명이라는 상황이 19세기다. 20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긴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동일하다 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총칼로 일어서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혁명을 해야 하는 때다. 모두 일어나서 투표율을 높이고, 색깔론이나 이념논쟁의 틀을 깨고, 독재의 잔재나 권력형 비리의 상황들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많이 고무되고 동기가 부여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처럼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의 국민들이 혁명군의 학생들처럼 패배했다. 그런 상황이 유사한 감정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거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거다. 비록 영화도 현실처럼 실패와 패배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역사에서도 그런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고, 결국 공화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레미제라블>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원제 자체가 '불쌍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지금 쌍용차나 한진중 등 다양한 노동계 현안들이 있고, 99%와 1%의 양극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본인을 서민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영화처럼 참혹한 상황은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는 참혹한 서민들의 모습을 자신의 처지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실직의 위험, 취직하기 어려운 젊은 층, 높은 등록금, 자녀 양육과 교육의 높은 부담, 아무리 노력해도 진입장벽 때문에 계층이동을 못 하는 상황을 영화와 동일시한다. 누군가 그런 상황을 다루어주고, 이야기해주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지 않나 싶다."

"혁명기에 혁명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 그런데 당시 프랑스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대선 패배라는 결과 때문에 과잉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나?

"분명히 과잉돼 있다. 다만 그게 (대선 패배와) 시기적으로 맞물리다 보니까 영화 배급사 쪽은 완전히 노난 거다(웃음.) 사실은 저도 한국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한국 영화의 발전을 돕고 싶고, 대형 할리우드 영화들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한국 영화를 돕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레미제라블>밖에 없다고 봤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과장되었지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물론 <26년>이나 <남영동 1985>도 있지만 그 영화들은 아주 직설적이다. 반면 영화 <레미제라블>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포장돼 있다. 장엄한 서사도 있고, 사랑도 들어가고. 그런 영화가 사람들 마음을 뻥 뚫어주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 혁명기에 혁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혁명기에 혁명을 하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 같나?

"저는 마리우스와 비슷했을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저도 보통사람의 정서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혁명은 아주 잔혹하고, 좀 무섭다. 다만 사랑이라는 개인 감정 때문에 중대한 사회적 부분들을 포기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값싼 감상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마리우스가 가진 고뇌가 그런 것이 아닌가. 자기에게 솔직하고 싶다, 본능에 솔직하고 싶다, 이런 거다.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랑의 대상을 찾았는데 이성을 발휘해서 이념과 혁명과 투쟁, 이것 때문에 나는 저런 값싼 감상주의에는 매몰되지 않아, 이랬다면 솔직하지 않다는 거다.그런 점에서 마리우스는 참 좋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어제는 혁명 전사였다가 오늘은 돈황이 됐구나' 하고 놀려대지만 그들조차도 (사랑을 하는) 그를 압박하지는 않는다. '너는 그러면 안 돼, 잘못됐어' 하고 압박하거나 밖으로 내쫓지 않고, 마리우스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결국은 그것이 순수하다는 것 아니겠나."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선생이 언젠가 "우리는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제대로 겪지 못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혁명을 겪지 못한 점이 지금의 역사인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필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예를 들어 동학혁명이 성공해서 일제에 복속되기 전에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민중국가를 수립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안 됐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인가? 동학혁명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고, 그들이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역사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조세희 선생의 얘기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독립혁명 와중에 계파와 이념별로 찢기고 결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독립을 불러 오지 못했다, 한국 전쟁도 마찬가지였고, 민주화도 6�29 선언까지는 이끌어 냈지만 이후 민주정부를 직접 수립하지는 못했다, 그런 주장인 것 같다. 4�19 때도 쫓아내기는 했지만 그 이후까지를 담보해내지 못했다, 결국은 또다시 정치가들과 야심가들과 독재자들의 잔치만 만들어준 것 아니냐, 그런 지적인 것 같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노력들이 허사였다거나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의 의미가 희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역사로 그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국정원 댓글 달기 의혹 사건에 무력한 경찰 보고 채무의식 벗어나"

- '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경고하고 요구합니다' 라는 글을 보면서 표 교수가 이런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범죄학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왜 그런 글을 쓴 것인가?

"쓰고 싶으니까 썼다(웃음). 그 글이 그대로의 제 마음이었다. 제가 사직서를 던지는 그 시점, 그 때의 선택에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의무감, 채무의식으로 살아왔다. 국민 세금으로 대학 4년을 공짜로 다녔고, 경찰간부라는 혜택도 누렸고, 유학도 다녀왔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그런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상해야 한다는 대단히 엄중한 채무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채무의식이 어떻게 발현되었느냐?

지금의 제 커밍아웃이나 글들도 (채무의식의 발현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좀더 좁게 봤다. 국가와 정부, 경찰이 저의 고용주이고, 저는 그들에게 채무를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요한 현안과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저는 경찰이나 정부, 국가를 위한 방패막이나 전도사로 나섰다. 하지만 늘 한쪽에서는 이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면에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도 꽤 있었다. 자유나 권리나 민주, 이런 부분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상황 자체가 한쪽에서는 인권과 자유라는 것을 가지고 경찰과 정부를 공격하고, 정부와 경찰은 법 집행이라는 것, 국가의 안녕과 질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방어해야 하는 처지였다. 저는 정부와 경찰에 고용돼 있고 (정부 등에) 채무를 진 한 사람으로서 (정부 등을) 도와줘야 했다.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왔다. 그런데 이번에 그동안 해왔던 모든 제 행동과 언행들에 쌓였던 부담감과 채무의식이 폭발한 것 같다. 이 부분이 국민적 선택,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아주 중요하고,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부터 나는 아무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정말 자유롭게 그야말로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싶다, 이것이 사직서를 던지게 된 당시의 생각이고 심리상태였다. 그 이후의 글쓰기는 그 전과는 다르다. 정말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 정말 어떤 이론과 증거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판단해봤을 때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틀렸느냐는 거다."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오피스텔 앞에서 경찰관이 벨을 누르며 문을 열어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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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무의식을 벗어던지게 된 계기가 인터넷 댓글 달기 의혹을 받던 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 앞에 경찰간부가 무력하게 서 있던 장면인가?

"그렇다. 그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전에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선언합니다'라는 글도 올렸다. 새누리당 측에서 저에게 국민안전 공약을 만드는 위원으로 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저는 정치에 몸담고 싶지 않았고, 한 쪽 편에 서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혹시 다른쪽에서도 요청이 올 수 있을 거 같아서 아예 '나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싶고 한 쪽 정치 세력에서 이런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고, 다른 요청에도 그럴 것이다, 혹시라도 인력풀을 만들려고 한다면 나는 빼달라'고 했다.

대선에서도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그 사진 한 장이 절 건드렸다. 그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주 애처롭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남녀를 떠나서 경찰서의 수사과장인데 그 얇디얇은 오피스텔 문 앞에서 마치 구걸하듯이 '문 좀 열어 주세요' 하는 것은 경찰의 모습이, 자베르 경감의 모습이 아니다. 상대방이 약자면 그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강자다. 강자 앞에 그런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경찰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채무의식이 확 터져 버렸다. 그래 나도 이제 이 사건을 좀 얘기해야겠다, 아무도 이야기할 것 같지 않고, 다들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니까, 나밖에 더 있어, 하지만 내가 이런 채무의식으로 무장된 경찰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그런 얘기를 못해. 그래서 사직하게 된 거다."

"현장에 자베르 경감이 있었다면 오피스텔 박차고 들어갔을 것"

- 결국 그 때 자베르 경감은 없었다는 말인가.

"없었다. 있었다면 부수고 들어갔다. '장발장 나와' 하고. 과거 경찰은 수배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의심되면 과감하게 박차고 들어갔다. 박종철군은 수배자도 아니고 아무런 혐의도 없었다. 단지 수배자인 선배를 숨겨주지 않았느냐는 것만 가지고 데려다가 고문해서 죽였다. 그런데 그 오피스텔 문 하나 부수면 그게 얼마나 손상이 갈까? 그게 무서워서... 인권 얘기는 난센스라고 생각하고."

- 당시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 국정원 직원이긴 하지만 여성이어서 공권력 행사의 강도가 낮아진 것 같다.

"그게 컸다. 그러니까 그 힘으로 대선 때까지 버틴 거다."

- 새누리당의 방어 논리도 그것이었다.

"저는 그런 논리를 깨려고 계속해서 '약자가 아니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가진 신분을 봐야 한다, 그 뒤에 있는 기관을 봐야 한다'고 얘기한 건데, 결국 안됐다."

- 스스로 "보수주의자이고 반공주의자다"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

"저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 현 체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적 경제기반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보수 아닌가?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서 벗어나는 관행과 행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고쳐야 하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것도 고쳐나가는 것이 보수라고 본다. 그런데 흔히들 자신이 보수라고 하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을 보수라고 하면서 보수의 핵심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개인의 인권을 유린해왔다가 국가권력에 속한 사람에게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이것은 보수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의 보수는 봉건주의를 타파할 당시에는 진보였다. 그 진보는 봉건주의의 반칙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 3성역이라고 불렸던 왕권, 성직자, 귀족의 유착에 의해서 진실이 덮여지고, 정의가 땅에 묻히고, 불의가 행해지는 것은 나쁘다고 해서 일어선 게 계몽주의이고 자유주의다. 그리고 그것이 현 보수의 가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옛날 절대왕정 때처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다. 그게 무슨 보수냐? 그래서 공정 경쟁해라, 과거의 앙시앙 레짐(구체제)을 반대하고 나왔다면 당신들을 앙시앙 레짐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도 그들에게 당당하라는 거다. '우리는 구체제가 아니다, 아직은 우리도 신체제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공정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릴 비난해? 왜 우릴 욕해? 넌 좌빨이야. 입 닫아'라고 한다. 이거는 보수로서의 당당함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 [표창원 인터뷰②] "정의 위해 나서면 지지 않는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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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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