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두 종류의 이치, 물질계와 비물질계외의 세계는 현실감이 부족하다.
도대체 수행에 얼마나 연륜이 쌓여야 그것을 현실이라고 느끼는가.
다신론, 유일신을 믿던 내게 다신론은 더이상 비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1명의 존재와 주로 소통을 했다고 믿는 한계는 안다.
세상은 어떤 실태일까?
어째서 소멸 혹은 경지상승과 독존이 답이 되는 것인가.
예상을 한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훨씬 상위의 존재다.
그렇다면 분명히 형태가 다르지만 인간은 고통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러니까 상위 존재가 닥치는대로 인간을 고문해도 그들은 전혀 멈추지 않을 수가 있다.
극단적인 세상의 형태.
1. 그저 있을 뿐인 세상에서 비롯되어 경지가 상승한 존재들은 신.
2. 불멸하며 권능을 가진 신과 1번의 존재들.
3. 불멸하며 권능을 가진 신들과 1번의 존재들.
옛날 일화에는, 불멸의 신이 어떤 존재들에게 권능을 나누어주어 그들은 특성의 신이 된다.
이 경우에 불멸의 신에게서 권능이 사라지는 것과 3번의 경우는 고통 없는 세상이 될 수가 없다.
당연히 1번도 될 수가 없다.
그러나 2번의 경우에서 불멸하는 신의 권능이 사라지지 않는 절대자라면 고통 없는 세상이 될 수가 있다.
유일신!(이하 유일신)
조건 : 불멸하는 신은 1개이며 그는 권능이 있으며 그에게서 권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권능은, 불변성이 없는 것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이룰 수 있는 신비에 능력이다.
결론은, 그런 이상이 세상의 실태가 아니라면 전혀 살 가치가 없으며 소멸無이 답이다.
합리화를 하자.
그런 능력이나 높은 쓰레기들은 기득권을 내주려 하지 않고 누군가가 내주면 누군가가 차지한다.
선을 자처해봤자 그들은 수행자이며 타락과 변절은 운명이고 한낱 인간은 희망이 없다.
그건 누군가에게 이상하지 않을까?
어째서 인간은 학문도 제대로 못배운 어린 시절에 벌써 그런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난 지금도 그게 진실이라고 아는가.
무엇이 어찌되든 불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마치 경지 높은 존재들이 최상위 존재가 만든 세계에서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다.
마치 경지 높은 존재들이 하위 존재를 절망시켜 괴롭히는 고문이다.
마치 경지 높은 존재들이 최상위 존재의 꼭두각시다.
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대부분이 안전과 효율이다.
혹시 다른 세계에서 무엇을 했다가 신한테 찍히면 안좋다.
어떤 성향을 가진 신에게 찍히면 안좋다.
세계는 200개 이상이고 사라졌다가 생성되는 것을 반복하고 이것을 내가 왜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치는 2종류뿐이 아닌 더 많을 수가 있다.
당해본 수행자는 순전히 두려워서 안하고 나는 했다가 당할까봐 매우 두렵다.
상위 존재에게 걸리는 것은 고문해달라는 것과 같다.
어설픈 행동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고로 나는 계속 상위 존재 1명에게 배행과 대항을 해가면서 수행을 해야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잘아는 존재가 그뿐이다.
한편, 상위 존재가 특정 세계에 갇힌 특성 신인 경우를 절대 논리라는 전제하에는 증명을 할 수가 없다.
예컨데, 인간의 감정이 감정계라는 세계의 일이며 그 존재는 자신의 어떤 것도 밝힐 수 없으며 감정을 주관하는 능력만 있다고 가정하면
어떤 존재든 그 존재가 고통받는지 어떤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고 존재유무를 증명할 수도 없다.
그런 희망이 없는 상황을 모르면 도대체 어째서 수행자가 경지상승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은 유일신이 진실이던가 천운좋게 독존할 정도로 경지상승이 되야 행복하다.
그런 희망이 없으면 소멸을 선택하지만 이것도 안되면 지옥이다.
구원은 재밌는 것이다.
그것은 경지만 높은 쓰레기들을 진실로 쓰레기라고 공증하는 행동이자
기득권자도 언젠가 망한다는 진실의 근거이며
복수할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