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꿈이 세상이라는 전제로 답보 추리를 해보면 원인자가 끝없이 있는 그림을 상상할 수가 있다.
원인이 끝없이 있다는 것은 무한을 의미하는 게 아닌 단순한 이치를 의미할 수가 있다.
신이 고통을 창조하여 그 존재는 고통스러워 하며 고통을 창조하자 그 존재도 고통스러워 하며......
그러니까 물질과 비물질은 애초에 없으며 모든 것이 그것 뿐이다.
인간의 오감으로 느끼는 물질계라는 세계는 오랫동안 밀도높게 규칙이 잡힌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 나의 진실을 추가하면 고경지 존재가 인간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
무엇이든 망한다는 통용성과 가능성이 완전한 현상을 잊으면 재미 없다.
육체는 신의 꼭두각시... 결코 지성의 꼭두각시나 영혼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예상한데로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결과 그것이 진실이였다.
도대체 오감을 임의의 상황에서 통제당한 적이 없는 인간은 오감을 통제하는 비물질 기술을 결코 믿지 않는다.
그게 정신병같이 고급 논리에서 저급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최저의 요소라고 판단하면 완전한 조소거리다.
정신병이라는 설명의 근거가 제대로 양심을 날리고 쓴 것이라서 개그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요소라도 증명 과정이 사회에 남아있어야 혹시라도 모를 가능성의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
덧붙여, 제발 수행자나 무속인이나 영적인 것에 종사하는 인간에게 정신병이라고 말을 해라.
그러면 높은 확률로 그들은 양심 때문에 있는 죄책감의 속박에서 풀려 비물질 기술을 마구 사용한다.
그것은 속박을 풀어주는 기술이자 개그거리다. 문제는 진지한 것이라서 웃기가 어렵다.
하위 증명이 상위 증명의 요인이기 때문에 증명은 언제나 하위부터 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부터 구원해야 할까, 남부터 구원해야 할까?
이 논제는 결코 어떤 상황이라도 답이 같은데 효율성이 끝까지 관건이기 때문이다.
나부터 구해야 할까? 떠있는 먼지에게 행복이라는 비물질을 부여하면서 영광과 명예를 얻어야 한다.
ㅎㅎㅎㅎㅎㅎㅎ도대체 無는 어째서 극한의 답이 되는 것일까, 심지어 고통스럽지 않는 존재도 말이다.
한편, 나는 외부 존재 1명 증명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다.
그가 알려준 기술도 어쩌면 그가 꾼 가상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영능력, 그것은 재미있는 능력!
어쩌면 자신을 바꾸는 현상이 정체일지도 모르지만 잘 사고해보면,
1. 그 존재는 너에게 육화가 가능하다면서 어째서 약속 당일에 육화를 하지 않았는가.
2. 그 존재는 너의 꿈을 원하는데로 통제해준다면서 어째서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3. 그 존재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면서 어째서 이루어주지 않았는가.
4. 그 존재는 너의 통제를 따를텐데 어째서 배신했는가.
5. 그 존재는 너의 일부일텐데 어째서 반응이 없는가.
6. 그 존재는 너에게만 느껴질텐데 어째서 타인이 반응하는가.
있을지 모르는 비물질 존재가 어떤 경위와 수단으로 무엇을 어떻게 행하는지의 논리의 합리성과 절대성이 서로 모순되는 두 상황에서 궁극의 답이 될 수가 있다.
추론하면, 그는 인간의 오감을 지배하며 영혼을 지배하는 자이자 모든 상황에 적극적이지 않고 한낱 절대성을 가진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
거기에 진실일 확률이 있는 신학 이론을 모두 접목했을 때의 진실일 확률이 있는 근거의 유일한 요인은, 두 세계의 존재이다.
인간의 이원성같은 이론은 속일려고 작정한 어느 인간들의 개그거리고 두 세계는 아예 기정사실이다.
영능력은 어떨까? 예상이나 무의식의 초고속 논리든 무엇이든 이것들은 저급이다.
결국은 완벽한 통용성이 있는 능력이 고급이고 전혀 쉽지는 않고 복잡함의 극한이다.
인간은 외부로 나아가야 발전을 한다. 끝없는 초월의 끝에는 무한의 속임수가 아닌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를 속이는 끝없는 재미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