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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로부터 진정한 법륜대법 수련생으로 되었다
서울 발산 수련생 고덕희
저는 강서구 발산동 수련생 고덕희입니다. 1998년 12월에 처음 법륜공을 만났습니다.
저가 법륜대법을 만나게 된 데는 일단락의 경위가 있었습니다. 15여년 전부터 위장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양방병원, 한방병원, 양약, 한약으로 안되어 운동요법, 수영, 국선도, 태극기공, 의료기공 등을 광범위하게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으니까 오히려 다른 장기까지 약해지기 시작하여 합병증이 생겨 건강이라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물질욕심만 커지면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의지할 곳이라면 종교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되어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기초교리공부를 6개월 간 한 후에 부처님께 나를 완전히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기복신앙에 불과한 것이지만 저에게는 인생노정의 커다랗고 밝은 등대가 되어 자신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고 마음의 안정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윤회설에 대한 믿음은 희망적이어서 다음 생을 위하여 금생을 희생하며 열심히 살자는 삶의 목표와 의미가 생겼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수는 있었지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기심, 재물욕, 명예욕, 이런 것들은 전혀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법회 때마다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없애라 하시지만 어떻게 비우는지 방법을 모르겠고 욕심은 더욱 커지기만 했습니다. 기도를 할수록 기도라는 것이 오히려 욕심을 부추기고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속인들에게 바르게 퍼지고 쉽게 받아 드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석가모니 부처님과는 반대현상이 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욱 수준 높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문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성불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108배를 하며 성불하겠다며 10여 년을 계속했습니다. 언젠가는 기도가 이루어지겠지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고 그 다음 생엔 스님이 되어 부처의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금 법을 공부해보니 그 마음이 반짝 반짝 빛이 났기에 대법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대법을 만나게 되어 처음 연공을 배울 때 엄청난 에너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어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앞으로 나는 계속 이 공법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의료기공을 월 20만원씩 내며 4개월 째 배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기의 실체를 느끼려고 노력을 했지만 별로 감각이 없어서 나는 안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법륜공을 수련하자 이렇게 엄청나게 강하고 확실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회비를 물어보니 없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여기엔 분명히 뭔가 큰 뜻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권해주기에 책을 보려고 했으나 한국에서 아직 정식출판이 안된 시기이기 때문에 연변 조선족들이 읽던 책을 받아와서 새벽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어려운 구절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을 음미하면서 읽었는데 너무나 반갑고 감사한 나머지 감탄이 갔습니다. 저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기에 불가의 8만 4천 법문중의 하나라는 글귀가 쏘-옥 들어왔습니다. 옳지, 스님들이 옛날에 하시던 수련방법인가 보구나. 제멋대로 상상하고 생각하며 아침엔 108배 저녁엔 연공, 책은 1번만 읽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다 알았다고 간주하여 이러기를 1년 3개월 보냈습니다. 연공만 했던 것입니다. 전일에 관한 것은 다른 기공을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수련생들의 모임이 있는 것도 몰랐고 이용섭씨라는 분은 처음 파룬궁을 한국에 전한 사람이라는 말만 들었지 만나보지도 못했으며 대화도 한 번 못하고 혼자서 집에서 열심히 연공만 했습니다. 지금도 저 같은 분들이 수없이 많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합류하게 되겠지만 혼자서 공부는 진전이 무척 느립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때가 왔습니다. 작년 2월에 조카가 봄방학이라 저희 집에 1주일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첫날 저녁에 수련을 해야겠는데 혼자 호젓하게 연공하다가 손님이 있으니 수련시간이 자꾸 지체되었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생겨 그냥 잘까 하다가 조카를 데리고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하자고 했더니 작은 아이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 저는 연공도 엉망으로 했었는데 그대로 아이에게 가르쳤습니다. 장법을 할 때 아이가 갑자기 뭐가 보인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보니 사부님이 천목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니 아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사람 잘 따르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는 똑똑한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너 굉장하군 대단해 라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아이도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순간입니다. 아이를 망쳐버릴 번했습니다. 어쨌든 그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간 하루에 세 번씩 연공했습니다. 연공할 때마다 천목이 열려서 여러 장면들을 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받아 적기도 하고 본 장면을 나중에 그리라고 했더니 법륜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애가 그린 법륜을 보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내가 가부좌할 때 다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파서 내리려고 할 때 까만 올챙이 같은 것이 수천 마리가 빠져 나와서 팡하고 터쳐져서 흰색의 뭉텅이로 되어 다시 내 몸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안 믿을 수 없어 아픈 다리를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책 전법륜에서 말하길, 5장 공법 신통가지법 결가부좌를 하는 동안 고통이 생길 때 견지하면, 검은 업력이 발로 내려나가서 하얀 덕으로 전화되어 다시 본체에 더해진다고 나옵니다.) 책에 있는 그대로 책을 보지 않는 아이가 그대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온몸이 전기 맞은 것처럼 돌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는데 이럴 수가 있을까?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저는 모시던 불상을 절에 보내고 여러 가지 올리던 기도문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부적도 뜯어내고 드디어 전일(수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수련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작년 3월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심성제고가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이기심, 재물욕, 명예욕, 교만심, 이런 것들을 어떻게 없앨 수가 있을까? 그렇게 기도해도 안 없어졌는데 정말 한심했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책을 여러 권 전해 받아서 읽다보니 서서히 나의 가치관이 바꿔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하! 이것이 심성제고 중인 것인가 보다. 그리하여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은 본체를 개변시켜 몸을 닦아주고 마음은 책을 통해서 닦아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책을 먼저 1시간 읽고 연공을 했습니다.
저의 소업과정은 엄청났습니다. 저는 몸으로 많이 겪었습니다. 매일 병든 사람처럼 괴롭고 졸리고, 아프고 얼굴은 꺼멓게 되어 남들은 좋은 기공한다며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설명할 수도 없고 난처했었습니다. 온몸에는 냉기를 품어대는데 5, 6월에도 추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남들에게 파룬궁이 좋다고 실컷 설명하고 헤어질 때 악수를 한 적이 있는데 내 손이 얼음처럼 차가 왔습니다. 상대방이 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좋은 기공을 하면 몸이 따뜻해야지 왜 손이 찹니까? 나는 몸 속에 있던 병기, 냉기를 정화하느라고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하니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냉기가 빠지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니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이렇게 차갑고 냉정했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어머님이 나에게 내가 화나면 찬바람이 솔솔 불었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너무 편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평화롭고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었습니다. 대법을 얻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황송한 마음이었습니다. 다음에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법 따라 공부하면 나도 금생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서서히 내 몸으로 체험을 느끼면서 책에 있는 대로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면서 꿈이 아니고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 갈 때 사부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우러나왔습니다.
무지 속에서 미혹 속에서 죄인지 모르고 끝없이 죄를 지어 고통을 받으며 괴로움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나를 건져 주셨구나. 이렇게 좋은 대법을 사부님을 도와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대법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홍법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대법수련에서 가장 고달픈 것은 심성수련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심성 고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전에 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벗어나 자만에 빠져 제 잘난 멋에 살았습니다. 자신감, 자부심, 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소신 있는 당당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의를 보면 항상 지적하여 고쳐주도록 노력했고 나 자신의 생각은 틀림없고 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혼자 똑똑하고 잘 났다고 도도했으니 자연히 주의 사람들에게 편안하지 못한 분위기를 조성했었나 봅니다. 아마 결혼을 했으면 12번도 더 이혼을 했을 것입니다. 동생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언니는 열심히 사는 것은 좋았지만 무서웠다고 합니다. 잘못한걸 보면 가차없이 지적하여 꾸중을 했고 화를 냈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언니가 많이 참는 모습이 보이고 온화하고 부드러워졌다고 합니다. 자신은 항상 옳다고 생각했던 교만심이 대법을 만나 대법의 '진선인'에 비추어 자신을 견주어 보니 나의 관념이 뒤집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늙었다가는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뻔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겼습니다. 그 자리는 부끄러움, 후회, 반성 등등..... 온통 부족한 나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새로운 사람이 탄생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도 옛적의 나쁜 습관이 많이 남아있지만 내 마음은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지금은 세상의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싹 없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러울 것 없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대법을 얻었으니까 열심히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일뿐입니다. 내 생각, 내 사고는 쓰레기 같은 이기심의 토대 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내세우는 습관이 베어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겠지요.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성명쌍수의 공법은 연공과 책을 읽는 것을 같은 비율로 안배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연공 1시간이면 책 1시간, 연공 2시간이면 책 2시간, 여력이 닿는 대로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책을 통해서도 깨달음이 열리기 때문에 책 읽는 것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닳아 떨어지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같은 뜻을 세우고 같은 길을 걷는 자들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국 방방곳곳, 아니 세계 각 곳에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 저는 정말 행복한 인간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어려운 고험과 시달림이 오더라도 모두 받아넘겨 공성원만 하여 정과를 얻기 위해 힘차게 정진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하나마 저의 체험담을 마치겠습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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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을 더욱 열심히
수련생 추 봉 기
제가 대법을 알고 수련을 시작한지 오늘로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고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을 하였다고 생각하였으나 돌이켜보니 명(名), 리(利), 정(情) 그 어느 하나도 내려놓은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각종 집착과 욕심과 오만과 성내는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터라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음의 결과라 생각되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연공인마다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과 두려움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저의 경우는 특히 보잘 것 없는 명예와 하찮은 두려움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습니다. 대법을 얻고 난 후 저에게 들려오고 보여지며 나타나는 현상 하나 하나는 수련과정 중에서 제가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각종 집착과 두려움을 들추어내어 없애버리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수련을 시작한지 15일만에 달걀 껍질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상태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일찍이 경험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제 자신은 다른 사람과는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되었고 이로 인하여 자만심에 빠지고 그에 집착함으로써 한 동안 정체현상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수련과정 중 특정 부분에 대한 수련 정도는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었으며, 원만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부를 내려 놓아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말법시기에 정법 아닌 것이 난무하고 있어 사람들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고 하였으나 제 자신은 대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되면 여러 가지 현상들로 인하여 저의 생각은 흐리게 되고 저는 대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한가를 시험받게 되었습니다. 이럴때면 더욱 열심히 책을 읽고 연공장에 나가 함께 수련하고 현상들에 대하여 토의함으로써 법에 대한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하여 업이 많은 편이었던지 결가부좌가 되지 않아 수련을 시작한지 10개월이나 지나서야 겨우 결가부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픔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가부좌상태로 수련을 해오다 지난 여름 휴가기간에 대사님 9일 강의테이프를 보고 열심히 수련한 후 휴가가 끝나는 일요일 아침부터 열이 나고 팔다리가 쑤시고 아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종일 누워지냈으나 이튿날 아침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그때부터 결가부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남들처럼 완전한 결가부좌는 아니지만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는데 가부좌가 되지 않는 사람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가부좌가 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고통에 대한 참음은 자신의 근기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능히 넘길 수 있다고 하는데 막상 수련에서 부딪치게 되면 가능하면 피해갈려고 생각하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층차에서 한번은 넘어야하는 것들로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하나씩 넘길수 있었습니다.
각종 집착심이 다 그렇겠지만 화를 내지 않는 마음도 하루아침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성고험을 시키기 위해 배치된 각종 시달림을 연공인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보통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하여 화를 내거나 참견하였습니다. 다음 번에는 참거나 참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점차적으로 시달림이나 언짢은 일을 만나도 화를 내거나 짜증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큰 고험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나 사소한 것은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넘기지 못하고 맙니다. 한번은 바쁜 시간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갑자기 끼여든 차량 때문에 깜짝 놀라 급정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순간 {전법륜}에 읽은 "차량에 부딪혀도 운전자를 원망함이 없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는 어느 수련생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이만한 것은 그에 비하여 아주 하찮은 것이라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것은 저의 수련을 위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5남매 중 장남인데 서울에 남동생이 살고 있습니다. 동생부부는 평소 집안의 각종행사나 명절 등 크고 작은 일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형인 저와 상의없이 일을 처리하여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저의 처는 형님인 제가 동생에게 따끔하게 충고하여 이런 나뿐 버릇을 고쳐놓아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였으며 저도 가끔은 제자신의 기준으로 보아 나쁘다고 생각되는 점을 고쳐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 자신은 대법을 만나고 수련을 하여감에 따라 그러한 것들의 인연관계를 알게되어 더 이상 동생부부에 대한 속상한 감정이 없었으나 저의 처는 동생부부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저에게 동생을 충고하여 시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의 처는 "무엇 때문에 장남만 집안 일을 책임져야 하는가" 고 저에게 따지면서 "당신 집안 일인데 왜 내가 나서서 동생부부에게 싫은 이야기를 해야 되고 혼자서 욕을 먹어야 하는냐" 고 화를 내면 저자신이 연공을 하지만 사실 답변하기가 막막하여 그저 웃으면서 고험을 넘겼으며 가끔은 넘기기가 힘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집안 사람이나 일들로부터 오는 고험을 그럭저럭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올 2월경 어머니 회갑을 맞이하여 가족이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고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넘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을 사정에 정해 놓았는데 갑자기 시골에서 여동생이 연락을 하여 서둘러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였으며 가족들이 모두 모여 어머니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만치 아무렇지 않는 듯 행동하였으나 다른 가족들의 행동이 웬지 그날 따라 저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던지 결국에는 서울 사는 동생에게 어머니 선물은 무엇을 준비하였는지, 왜 형과 상의하지 않았는지, 형제끼리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등 이것저것 따지며 앞으로는 잘하라고 충고하고 핀잔까지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생부부가 부모님에게 하는 예쁜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가식적으로 보였으나 다른 가족들에게는 동생부부를 아주 나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행동은 오히려 마음을 더욱 번잡하고 우울하게 할뿐 가슴이 탁 트이도록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날 있었던 제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면서 제 자신의 심성수련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집안 일로 흥분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처도 동생부부에 대하여 체념을 하였는지 더 이상 동생부부의 행동에 대하여 마음을 쓰지 않고 마음 아파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게 되었으며 동생부부도 이전보다 더욱 잘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험이 있은 후 동생부부에게 『전법륜』을 읽어보라고 선물을 하는 등 저희부부는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한층 자유로와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사소한 고험을 넘기지 못한 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평소 아주 절친한 직장 동료가 갑자기 사소한 일을 트집잡아 짜증을 내었습니다. 순간 당신이 나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거나 맞받아 나쁘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의 심성수련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바로 고험이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고 굳이 그 사람에게 해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고험은 자신이 처한 층차와 근기와 심성에 따라 가정과 사회와 직장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끊임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된 다음부터 웬만한 고험은 그냥 지나쳐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지금의 심정은 그동안 제가 얼마나 하찮은 것에 집착하여 큰 업을 짓게 되었는지 생각만 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부모, 형제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전하여 함께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도 집착이었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기(조사세간행)' 위하여 대법을 널리 전하여 인연 있는 사람은 법을 얻도록 하고 당장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앞으로 대법을 얻을 수 있도록 홍법하고 있으나, 오성이 낮음으로 인하여 수련자체를 부정하거나 대법은 인정하나 현실에 맞지 않고 실속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고, 뜻한 바 있어 수련을 시작해보지만 평소 {전법륜}을 읽지 않아 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지 않은 터라 시간이 나면 가끔씩 수련을 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련을 기피하다가 결국에는 수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홍법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적 특수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법을 먼저 얻은 보도원을 포함한 연공인들의 불법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못하며, 적극적인 홍법과 자원적으로 일을 하려는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는 상태이고 가정과 사회생활을 우선시하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어 적극 동참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 또한 크나큰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아직 수련이 너무 부족한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이번 심득교류회를 기회 삼아 더욱 용맹정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공성원만 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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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수련에서 용맹정진 하자
서울 석촌호수 수련생 송영진
저는 서울 석촌호수에서 수련하고 있는 올해 41세 되는 수련 생 송영진입니다. 大法을 처음 접한 지 약 8개월 조금 지났건만 이처럼 여러 同修 앞에서 심득소감을 발표한다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대법을 처음 접한 시점부터 말씀드릴까 합니다.
금년 (2000年) 1월24일, 문득 이상한 예감에 집근처 서점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파란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轉法倫이라는 표지를 본 순간 문득, 예전에 산속 수도생활에서 꿈꾸었던 환영이 다시금 눈앞을 가려 혹시나 하고 책을 접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氣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였던 터라 여타 기공 책을 살피던 중 『전법륜』을 손에 든 순간 다른 문파의 기공서적은 이미 나의 맘속에서 저 멀리 가버리고 정신없이 줄거리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읽어 내려갈수록 前에 나의 맘속 깊이 갈망했던 正法에 대한 의문과 수행 중 의문시 되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확연히 풀리는 기운이 저의 몸에 심한 전율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저의 심정은 세상에서 이처럼 논리 정연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증적인 법 해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 한 권의 내용이었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인내 속에 깨달음의 지름길을 찾았으나 한편으론 걱정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편안한 문화생활과 속인사회에서 수련하여야 하니 걱정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수련관념은 깊은 산골에서 자연과 벗 삼아 고통과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방편이라는 지배적인 인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이 우습게만 생각됩니다.
초기 수련과정에서 심한 심성제고와 사상업에 빠져 잠시 동안 갈등도 느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대법(전법륜)의 내용인즉, 한 사람이 펼쳤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과학적이며 논리 정연한 법 해석 및 우주의 실상 등등... 神이 아니면 그런 정도의 완벽을 이루지 못하기에 의문도 가졌으나 그런 사상업은 공교스럽게도 저의 아들과 조카를 통해 실증되었고,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봄방학을 이용하여 저의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함께 수련하던 중 처음 수련에서부터 두 아이들의 天目(천목)이 열려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며 이야기 해주는 것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남들은 깊은 산속 수련에서 오랜 수련 끝에 겨우 천목이 열릴까 말까하는 정도인데, 法輪功 수련 첫날에 두 아이가 다 열려 버렸으니 말입니다. 뒤로 안 자빠진 게 다행이었죠. 확실한 믿음을 못 가진 본인에게 사부님의 法身을 통해 증명해 보이신거라 믿습니다. 하여간 당시엔 무척 당황했었고, 본인 자신에게 창피스럽기도 하여서 심기일전 굳은 심신으로 정진하던 중 어느 날, 3일 동안 꼼짝 못하고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차에 저 또한 감기처럼 심한 열과 콧물을 흘리는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몇 년간 감기 아니라 그 어떤 독한 질병도 저의 몸엔 얼씬도 안 했었는데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러눕다니... 가만히 생각하니「淸理(청리)」현상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무작정「전법륜」을 읽었습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책을 손에서 놓으면 꼼짝못하고 또드러눕게 되고, 책을 읽으면 거동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3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허연 가래를 뱉어낸 것이 아마도 중형 쓰레기통 1통이 족히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이물질이 도대체 어디에서 그리 많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입니다.
1차 청리현상이 생긴 후, 집안 식구들의 심한 수련방해가 이어졌습니다. 평상시엔 그 누구도 제가 행하는 일에 대해 반박이 없었는데 正法 수련을 하고자 하니 외부의 사악한 세력이 갖은 방해로써 수련자를 괴롭히나 봅니다.
만약 이때 저 자신의 굳은 신심이 없었더라면 중도 탈락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첫 수련을 시작한지 1달이 조금 지났을 때 첫 심성고험이 왔습니다. 심성고험은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나 봅니다. 저희 집 옆집에 41살 노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2시경 심한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온 식구가 놀라서 나가보니 다짜고짜 절보고 음흉한 녀석이라고 하며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심한 욕설과 함께 정말 난리었습니다. 경찰차도 들이닥치고, 저를 범죄자로 모함하기도 하였지만, 참으로 이상한 점은 그녀를 딱 마주치고 본 순간 두 눈빛이 악마의 형상으로 보이며, 저의 마음이 아주 담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하루아침에 심한 인격손상이 일어나면 자기 방어하는 것이 마치 남의 이야기 듣는 것처럼 관망하는 자세였습니다.
근 한 달간 매일 아침마다 저희 집을 향해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지만 상관 안하고 그저 덤덤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즉 大法을 수련하고 난 후부터 외부의 어떠한 방해가 오면 올수록 더욱 제 자신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안정해지는 것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인간들에게 커다란 大法을 남겨주신 李洪志대사 님께 다시 한번 큰 고마움을 경해하는 바입니다.
두번째 청리는 7월경이었습니다. 근 한 달간 목에 갑갑하고 불편하던 중 단체 연공을 하고 집으로 오던 중 갑자기 재채기가 일어나자 목에서 검붉은 덩어리가 마치 거머리 같은 것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속에 살면서 나쁜 기운을 몰아 내준다 생각하니 보기에도 징그러웠으나 더욱 수련에 정진해야겠다는 신심이 생겨났습니다. 며칠 후 한번 더 검붉은 덩어리를 뱉어내니 가슴속이 시원하고 목소리가 한층 맑아지면서 기분이 무척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9월 23일 대전 장태산 교류회를 갔다온 직후 또 한차례의 신체 고험을 했습니다. 그날 직장에서 손을 다쳐 심하게 퉁퉁부어 올랐으나 수련 다음날 집으로 와서 보니 거짓말처럼 원래 상태로 되어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뜨거운 감회를 느꼈습니다. 올 추석(9月)은 저에게 잊지 못할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래의 저의 생활문제와 자식의 장래 학업 문제로 고민 내지 갈등을 느껴 현재보다 좀 더 좋은 여건의 회사로 이직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심히 이직을 결정하고난 후, 맘 한구석에서 약간은 찜찜한 느낌이 남아있어 고민하던 중, 추석을 맞이하여 수련생인 저의 아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의논도 할 겸 방화동 연공장의 고덕희씨를 찾아가 의논한 다음 다시금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날, 아들과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런 조언을 받은 것이 무척이나 고무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아들로부터 좋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현재 아빠의 봉급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까짓 돈 몇 푼에 유혹 당하지 말고 수련에 정진하세요. 자신은 장학금 받고 공부할 터이니 고민 마세요, 귀중하고 어렵게 얻은 法을 놓치지 마세요. 차후에 수련이 깊어지면 부모자신간의 情(정)도 담담히 봐야 되지 않겠어요 라는 등등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하교 5년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런 조언을 듣자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속인들의 입에서 이러한 조언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 수련인들 만이 이러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필경 사부 님의 法身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유혹으로부터 구해 내셨다고..
수련과정에서 心性 제고가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더욱 세차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우리 수련생들은 저마다 세속문명을 접하며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조금만 元神(웬썬) 이 허점을 보이면 금새 외부의 사악한 것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수련과정에서 心性(씬싱)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부님께서 들려주신 말씀 중 "행하기 힘든것도 행할 수 있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다." "공수련에는 길이 있거니 마음은 지름길 대법은 끝없는데 고생을 배로 삼으세" 등등 이러한 법문을 항상 되새기며 어려운 난관을 무사히 넘기곤 합니다.
우리 法輪大法(falundafa) 수련은 무척 쉬운 것 같으면서도 엄청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속인들과 부합되게 살면서 정백한 신체를 요구하니 항상 元神 (웬썬)을 굳게 지키지 않는다면 금방 외부의 탁한 기운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우리 수련 생들은 항상 굳건히 수련에 정진하면서 사부님께서 주신 고귀한 法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모든 집착심으로부터 탈피하여 하루빨리 "예의 원만"의 경지에로 올라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부님의 높은 은혜를 갚는 길은 이것 밖에 없다고 봅니다. 法이 乾坤 (건곤: 하늘땅)을 바로 잡는 이 시기에 正法을 얻었음을 소중히 알고 스승님을 도와 이지로써 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을 똑똑히 말하며, 자비로써 홍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수련시키겠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마음뿐입니다. 法輪大法은 나의 목숨입니다.
수련생 여러분, 굳은 신심으로 수련에 정진하여 모두다 功成圓滿 (공성원만) 합시다.
2000年 10月 29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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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은 파산되어 가는 나의 가정을 구원해 주었다
파주 수련생 강계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파주 수련생 강계순입니다. 제가 법륜대법을 수련한지 2년이 되는 기간에, 가정 주부인 제가 사회활동이 적은 탓인지, 겪은 심성수련은 주로 가정의 모순 속에서였습니다.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저의 수련에서 겪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대법수련은 나를 허무 속에서 구원해 주었다
제가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된 동기는 신체적으로나 가정생활에서 모두 너무나 힘겨워서, 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워낙 여유 없는 생활이었건만 그나마 조금 있던 것마저 몇 차례 걸쳐 남에게 뜯기우다 보니 갈 곳마저도 없고 생활이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부부사이에 장기적인 불화로 말미암아 다만 법정에서 이혼서에 도장만 찍지 않았을 따름이지 남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음도, 몸도 지칠대로 지쳐, 자꾸만 자리에 눕고만 싶었고 자리에 누워서도 팔들 맥마저 없고 살아나가겠다는 의욕이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 딸애를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혼자서 살면서 딸애를 키울 생각까지 가졌습니다. 그래서 기술이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 파주의 어느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집에는 저녁에 몇 사람 모여서 법륜공을 수련하였습니다. 처음에 나도 호기심이 생겨 뭐냐 하고 봤더니 법륜도형에 卍자 부호가 들어있어 보는 순간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저가 전에는 불교를 믿었었는데 집안에 자꾸 불행만 겹치고 해서 부처님께 빌고 비는데 왜 이럴까 하면서 거부감이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법륜도형을 보고 법륜공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 집에 2∼3개월 다니게 되어 법륜공이 신체건강에 여하여하하게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마침 장마가 들어 집에서 쉬고 있자니 갑갑하고 불안스러워 안절부절하며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법륜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법륜공을 수련하면 몸이 금방 좋아진다니까 그럼 나도 한 번 좀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법륜공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동작을 가르쳐 주신 분이 동작만 해서는 안되고 연공하면서 책을 읽어야 효과적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책을 읽어야 눈도 좋아지고 몸도 마음도 다 깨끗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기공이란 동작을 해서 신체를 건장하게 하는 게 아닌가. 이것 또 무슨 종교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는 소린가? 하고 거부감이 있었으나, 기왕 배운 바에야 일단 시킨 대로 해보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연공하면서 책도 조금씩 보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에는 가부좌가 제일 고통스러웠는데 처음 10분으로부터 20분, 30분 나중에는 1시간 버티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심성수련도 좀 하자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약 일주인가, 그러나 멎었다가는 며칠씩 걸렸습니다. 남들은 한 두 번이면 끝난다는데 저는 심성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업이 대단히 커서인지 끊어졌다 이어지곤 하는 설사를 1년 넘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따금 감기몸살처럼 춥고 떨리고 뼈마디마다 아파 참을 수 없는 정도에 도달하였습니다. 수련을 하면서 이런 현상은 분명히 업을 제거하는 현상이고 몸으로부터 흑색물질이 파열되어 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소업현상이 심하지 않을 때는 그럭저럭 참고 지나다가 막상 심해지면 두려움부터 생겼습니다. 소업 중에서 전화기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여 딸애보고 전화에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전달해 받을 정도였습니다. 증상이 이렇게 심한데 약을 안 먹어서 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신으로는 파악이 잘 가지 않아 함께 수련하는 수련생에게 전화로 문의까지 하였습니다. 그 수련생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해답은『전법륜』책에 있으니 책을 많이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전법륜』을 좀 더 읽고 나는 병업에 대한 인식을 똑바로 했습니다. 수련을 통해 어느 수련자든 겪어야 하는 신체적으로 당분간 겪는 불편을 병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업을 제거하는 과정의 필연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이것은 자신이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느냐 안 하느냐, 법에 대해 확고하냐 안 하냐 하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대법 수련자이다. 신체적인 불편과 고통은 사부님께서 나의 병업을 제거해주시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몸으로 오는 고통을 안심된 마음으로 조용히 참을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생선을 잘못 먹어 체한 만성병도 재발하였다가 없어졌고, 『전법륜』책을 계속 읽었더니 눈물에서 피가 나오면서 저의 눈도 청리해 주었습니다. 심한 소업을 이렇게 겪고 나니 그 후에 오는 소업을 모두 담담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매 한 차례 소업을 지나고 나면 신체적으로 한 번씩 청리되어 종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신체가 이렇듯 회복되자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 같고 너무나도 신기하고 좋아서 혼자 있을 때 이리저리 뛰어보기도 하고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법륜대법은 저를 육체적인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딸애를 데리고 혼자 살 생각을 하였겠습니까? 법륜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고, 늘 내가 남에게 못된 짓을 안 했는데 왜 이처럼 불행을 당해야 하는지를 생각했고,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고 상대방을 탓하는 불만만 커갔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지겹고 싫증이 났고 사람을 접촉하기가 싫어지고 권고 듣기도 싫어, 심지어는 산다는 자체가 창피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제가 대법수련을 하면서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고 내가 왜 불행했는가, 이 불행은 누구의 탓이 아닌 자신이 초래한 빚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참으로 자신이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나는 미혹 속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방황 속에서 자신의 갈 길을 올바로 찾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법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되자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했습니다. 그때로부터 나는 팔자를 탓하지 않았고 비록 어떤 때는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지만, 분명 나에게 들이닥치는 난이 왜 생기고 수련자인 내가 할 바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만년에도 얻기 어려운 대법을 얻었으므로 수련에서 용맹정진하여 정과를 얻고 원만을 이루자고 다짐했습니다. 법륜대법은 나의 불행을 행운으로, 나의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뜻을 얼마간 터득한 것 같습니다.
(2) 법륜대법은 그늘진 나의 가정에 햇빛을 안겨주었다
제가 수련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남편과 겪는 심성수련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수련하기 2년 전만 해도 우리 가정은 겉모양만 있는 가정이었고 우리 부부는 남남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는 숨막히는 침묵이 아니면 차디찬 냉기가 돌아서 가정의 화목이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수련이 뭔지도 잘 모르고 동작만 어느 정도 할 때까지만 하여도 우리 가정은 여전히 냉냉한 분위기에 불과했는데 막상 책을 읽고 진정으로 수련을 하려고 하니까 가정모순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갈등을 겪었으며 화합을 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은 무척 많았고 생활하기가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보따리를 사주면서 이제부터는 갈라 살자고 한 적도 있고, 아니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법륜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남편이 이리저리 방해하여 나서서 이 면의 갈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보고 "지금 신문에 실린 기사를 좀 보라. 파룬궁은 사이비 종교가 되어서 중국에서 탄압 받고 있는데 왜 거기에 미치느냐?" 라면서 반대해 나섰습니다. 어느 하루 우리 연공장의 한 친구가 개업을 하게 되어 저는 개업을 축하드리고자, 우리 연공장의 수련생들도 만날겸 그곳으로 갔습니다. 평소에 우리 수련생들은 개업식을 하는 주인의 2층을 연공장으로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개업식에 모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층 연공장에서 우리 수련생들과 한참 수련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곳으로 찾아온 남편은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고함을 지르며 야단을 쳤습니다. 내가 급히 나가자 다짜고짜로 머리를 끄잡아 당기며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마당에서 개업식에 참석하러 온 분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남편은 '밥도 안해 주고 미쳐서 다닌다. 당신들도 마누라가 애도 안 보고 밖으로 다니면 어떠하겠냐' 라고 고함지르면서 나의 머리를 거머쥔 채로 잡아끌었습니다. 그때 나는 사부님이 『전법륜』책에서 "앞으로 모순에 부딪칠 때, 당신은 그것을 우연한 것이라고 보지 말라"는 말씀이 머리에 떠올라, 남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었지만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고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광경을 본 손님들이 남편을 욕했고 개업주인이 저의 남편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남편에게 강제로 끌리워 갔습니다. 정작 사전에 아무런 사상준비로 없이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실로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련자이다 라는 생각으로 말 한 마디 없이 꾹 참았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가 나고 억울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지차(一念之差)에 달렸다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맞았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수련자이다. 우리 수련은 '진선인' 수련이다 라고 생각하니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서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이번 겪는 일이 심성수련이라는 건 분명하나 수련자라고 해서 반드시 이런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는 없잖은가? 아무리 수련자이고 참는다 해도 이처럼 아내 된 사람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남편과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나는 그 날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친정으로 갔습니다. 이는 결혼이래 처음으로 되는 가출이었습니다. 친정에 온 그날 밤 나는 밤새 생각이 헷갈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 수련생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수련생은 우리는 대법수련인데 너무 극단으로 나가서 자신을 찾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전법륜』을 많이 읽고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 면으로 생각해 보면 남편이 더없이 괘씸하고 미웠으나, 내가 수련생이고 그런 창피를 당하고도 잘 참았는데 왜 그 후에 참지 못하고 집까지 뛰쳐나왔는가? 사부님께서 모순이 발생되면 우선 상대방부터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는데 나는 우리 가정생활에서 남편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남편을 이해한 적이 몇 번 있었는가? 남편이 어떻던지간에 아내가 된 나로서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했는가? 사부님께서는 모순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찾으라고 했는데 나는 왜 늘 남편만 탓할까? 나는 가정이 이처럼 불행하게 된 데는 나의 잘못과 책임도 있음을 찾았고, 내가 우선 해야 할 일은 가정에서 아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고 남편을 이해하는 입장을 취해야만 대법수련을 체현시키고 나는 수련자라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속인의 자존심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집으로 갔더니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잘 대해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간 후부터 나는 가정에서 전보다 가정주부의 책임을 다하기에 노력하는 한편, 남편의 입장을 많이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식으로부터 실천에 옮겨지기까지는 과정과 반복이 있었고 마음 속으로 내키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총체적으로 제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자 남편 또한 저에게 많이 접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남편은 대화를 차근차근 나눌 수 있었고 얼음장 같은 가정에 이따금씩 웃음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저의 남편의 변화를 두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저의 남편 회사의 경영이 적자가 나서 회사에서 무려 8백만에 달하는 월급을 남편에게 지불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도 생활난에 걱정되었지만 그럴수록 남편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회사측에서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 사용하던 승용차를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주장도 너무 무리는 아니겠지만 나는 수련자로서 남편 회사의 곤란한 입장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회사로부터 3백만을 받고 5백만을 못 받았지만 제가 남편에게 설득을 드려 그 차를 회사에 바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편이 원 회사에서 나와 취직에 응했는데, 그 회사는 사업조건이 좋고 월급도 높은 회사이어서 40대에 가까운 사람이 그 회사에 취직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국 저의 남편이 취직되었습니다. 회사 인사부문에서도 우리가 왜 나이가 많은 당신을 취직시켰는지 모를 일이라고 하였답니다. 남편의 또 한 가지 변화는, 제가 법륜공을 수련하기만 하면 한사코 반대하던 남편이 저의 변화에 어느 정도 감동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동적으로 법륜대법 자료까지 뽑아주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대법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파산이 되었을 우리 가정은 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점은 수련자인 저는 물론, 아직 수련을 안 하는 저의 남편도 잘 알고 있으며 법륜공이라면 사이비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하던 남편도 지금에 와서는 법륜공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의 수련은 초 시작에 불과합니다. 저의 심성수련은 아직도 멀고 멀었습니다. 법공부를 더 잘해야만 심성수련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수련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를 한 층 더 놓여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수련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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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제고 속에서 대법을 수련하다
저는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연공장에서 수련하는 신신범입니다.
저는 15년간 수백 권의 각종 기수련 책을 탐독하고 여러 가지 기 수련을 하면서 심성과 도의 수련을 하고자 했으나 나의 생각과는 점점 멀어만 갔습니다. 이른바 무슨 단전호흡, 초영역, 명상법 등등 여러 가지 수련에 몰두했고 기공에 관련된 강좌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 더욱이 도를 닦자는 굳은 결심에서 소주천, 대주천을 통하려고 동지섣달 긴긴 밤에 백척간두 절벽에 앉아 며칠 간 불면불식하면서 수련을 해봤고 또 이러루한 수련도 수년 간 견지해 왔지만 결국은 소주천, 대주천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기를 잘못 돌려 기의 병에 걸려 시달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도를 닦고 싶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진정한 도거나 수련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 2000년 3월 15일 일산 호수공원에 새벽운동을 하고자 나갔는데 멀리서부터 고유의 무예와 비슷한 동작을 하기에 아, 저 수련이 소문에 듣던 중국에서 수련하는 파룬궁이겠구나 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당시 파룬궁에 대해서는 개념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을 때었습니다. 즉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하고 중국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나는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데는 기필코 파룬궁이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두말없이 그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 배우게 되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그때 당시 꽃샘추위 속에서 제2장공법 포륜을 할 때 손끝이 너무 시려 연공을 포기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파룬궁에 마음이 끌려 좀 더 참아보자는 식으로 제2장공법을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연공할 때 그처럼 팔이 시큼해나고 시렸지만 연공을 끝마치자 몸과 마음이 그처럼 평온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십 몇 년간 이런 저런 이른바 수련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을 느꼈고 그러기에 1억이나 되는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였구나 라는 초보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며칠 하니 몸으로 체현되는 감은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나는 이처럼 대단한 공법이기에 꼭 이에 해당된 책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용섭선생에게 책을 문의하여 『전법륜』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관념적으로 자신은 십 몇 년간 수련했다는 생각에서 여전히 공법에만 신경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법륜』을 한 번 읽고 나니 사부님의 법륜대법 수련이란 동작을 연마하는 것보다 심성수련이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수련의 근본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법이고 진짜 수련법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짧은 시일 내에 『전법륜』을 몇 번 더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심성수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 속에서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심성을 지키자니 말처럼 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내가 심성수련 중에서 부딪친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00년 11월 말, 서울 동숭아트홀 소극장의 '애벌레'라는 작품에서 내가 아버지 역을 맡아 연극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이 시작하여 20여일 지난 어느 날 저녁, 그 날 공연은 한 차례의 중요한 공연이었습니다. 즉 각 신문사 기자, 언론인, 대학교수, 평론가 등 많은 분들의 관람이 있었으며 또한 이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제가 무대에 등장하여 연기를 하고 퇴장해야 하는데 생각지 못한 의외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날 따라 무대천장에서는 쿵당쿵당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는가 하면 제가 퇴장할 때에는 정확히 무대 조명이 꺼져야 하는데 조명이 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명이 꺼지지 않자 연극단 전원들이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랐고 조명기사는 땀을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이었는데 문제는 제가 할 연기는 다 끝났으나 조명이 꺼지지 않기에 퇴장할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조금 전의 연기를 되풀이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나는 대법수련자이며 이 일이 우연하지 않기에 이번 연기가 잘못되면 내가 얼마나 망신이겠는가 라는 이런 명리심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습니다. 그러는 순간 마치 담담하여라, 담담하여라 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제나름대로 연기를 하면서 천천히 퇴장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연극단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기생활 25년 간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조명기사가 컴퓨터가 되지 않자 비상용 대비로 설치되어 있는 수동기마저 작동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런 일이란 도무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놀란 이야기는 일단 무대에서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십상팔구는 관객들에게 탄로가 나고 물의를 빚기 쉬웠는데 이 문제를 잘 풀어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순간적으로 이 일에 부딪쳤을 때 나는 이 자체가 나에 대한 시련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명리에 대한 생각을 그 자리에서 담담하게 내려놓았습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였다면 꼭 다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며 관객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연극단에도 명예적인 피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관은 거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연극은 12월 26일에 가서 끝마치게 되었는데 저에게 해당된 출연료가 보통 때에 비하여 너무너무 적었습니다. 함께 출연한 후배 연기자들은 해당측에 신선배님을 어찌 이처럼 무리하게 대할 수 있냐며 항의할 정도였으니까 저에 대한 보수가 얼마나 적었는지를 가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 역시 나에 대한 심성적인 검증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속인과 같은 마음자세여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경고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자 일단 보수여하에 대한 마음이 담담해지며 오히려 마음이 조용했습니다. 그리하여 유관측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겉으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드렸고 후배들에게는 나는 출연할 기회가 많으니까 괜찮다는 것으로 그들의 정서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단번에 그리 높은 경지에로 도달하지 못하는 까닭에 사후에도 이 일을 한 번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불공평했고 또 이전 같으면 이에 관하여 논의를 하거나 불평을 하고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을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우리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일개 수련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수련하는 사람은 으레 이 모든 것을 속인과 같이 대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만이 수련이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도 이 일을 돌이켜 보는 순간에 어쨌든 나로서는 열심히 연기를 해왔지만 나에게 해당되는 보수가 적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며 심지어 우리 인간으로서 알지 못할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희는 수련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달갑게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번은 2001년 무안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평생 오토바이를 타본 적도 없고 해서 그런 촬영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올리니 몇 시간 전에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배우고 촬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역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방송국에서 굳이 저의 이름을 찍었습니다. 대충 오토바이 타는 것을 배우고 촬영현장에 갔는데 현장에 갖고 온 새 오토바이는 이상하게도 말썽을 부렸습니다. 문제를 찾아보니 새 오토바이에 기름이 없었고 촬영현장 주위에는 주유소도 없어서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고 촬영을 시작하려니 이번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동네에 가서 다른 오토바이를 빌려오고 몇 번 연습을 하고 막 촬영을 하려는데 오토바이를 빌려 준 주인이 급히 외출해야 된다면서 다짜고짜로 그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세 번째로 오토바이를 구하여 촬영에 들어갔는데 이 또한 웬일입니까? 이번에는 오토바이의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은 굉장히 흘러갔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어쩌려고 이리 말썽이 많은가? 당금 어떤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예감이었지만 사부님은 우리더러 집착을 내려놓으라 하였기에 담담히 생각하자,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감독님의 레디고 소리와 함께 2차선을 달리는 순간 한쪽에서는 웬 노파 4명이 뛰어들어와 저와 부딪치면서 노파 4명은 차선에 쓰러지고 저는 인정사정 볼것 없이 앞으로 달리는데 앞에 갑자기 콘크리트 벽이 보였습니다. 아! 어쩌려나! 급한 나머지 오토바이를 밀어버리고 우측으로 나뒹굴었습니다. 그 순간 감독, 스텦, 구경꾼들이 놀라 뛰어왔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구, 그러나 저는 웃으며 괜찮습니다, 다친 데는 없습니다 라고 상대방이 먼저 걱정할까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후 내 몸을 살펴보니 넘어진 오토바이 뒷바퀴에 제 발목이 끼워있었습니다. 앞바퀴 타이어는 펑크나고 찢어졌습니다. 이 순간에 나는 오늘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보호하여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든 사례가 모두 진실한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직업적인 관계로 우리 연기자 내부에서 늘 암투가 벌어지는 일이 바로 연극에서 주역을 맡는 일입니다. 이런 주역을 맡기 위하여 늘 시비가 생기고 쟁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인간세상입니다. 어느 한 번은 어느 한 극에서 내가 남자 주역을 맡기로 결정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연극준비에 들어가면서 연극계의 많은 인원들이 모인 장소에서 감독은 갑자기 나의 이름을 빼버리고 그 역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변에서도 그 이유를 묻게 되었는데 감독은 이유설명이 없이 다짜고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당신이 가장 친한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잃게 되는 경우에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를 본다는 말씀이 생각나면서 내가 이런 장면에 부딪치누나 라는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에 부딪친다면 속인치고는 야단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론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즉시 눈길을 나에게 돌렸습니다. 이는 참으로 나에 대한 심성수련이었습니다. 저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절대 속인처럼 다투고 싸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무능해 보이고 심지어 바보 같아 보였을지는 모르나 나는 이 모든 것을 담담히 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막상 생각지도 못하던 난이 갑자기 들이칠 경우, 뻥 하기도 하고 파악이 잘 가지 않기도 하지만 단 한가지 나는 수련자이다, 나는 절대 속인처럼 일을 대할 수 없다, 이런 일은 나 자신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생각을 갖게 됨으로써 비록 층차와 경지를 논할 입장은 아니지만은 본질적으로 속인과 다르게 이러한 문제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진선인 수련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하던 난과 갈등이 연이어 들이닥칠 때가 많으며 말처럼 그렇게 쉽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사부님을 생각하고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로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속인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정도이지만 어쩐지 사후에 늘 이런 일을 거듭 생각해 볼 때가 있으며 나의 참음이란 아직도 낮은 층차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법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자신의 층차를 끊임없이 제고하기에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1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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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대법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육성시키고 있다
수련생 박상사
저는 직업군인 입니다. 제가 만약 법륜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불행 속에 처해있을지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저는 1998년부터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되어 나의 인생관을 확 바꿔버렸습니다. 다음으로 대법수련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게끔 한 경험담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 법륜대법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1989년에 완치된 줄 알았던 폐결핵이 10년만인 1998년에 재발했습니다. X레이 촬영 및 CT 촬영을 해 본 결과, 우측 폐에 구멍이 3개나 뚫려 있는 중한 상태였습니다. 일반병원의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군의관은 후송 입원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대 지휘관도 당장 후송하여 병치료에 전념하라고 권유했었습니다. 그때 저의 직책은 부대에서 통신에 관한 전반적인 임무를 책임지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으로는 내가 근무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께 입원하지 않고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병치료를 병행하겠다고 하였더니 지휘관은 한 달간 집에서 영양식도 하고 치료를 받은 후 근무하라고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1달간 집에서 쉬면서 생각하기를, 이렇게 그냥 무의미하게 한 달간 있을 게 아니라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기공을 배우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파주 연공장에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법륜공 연공을 따라 해보니 제2장과 제5장 공법을 할 때에는 마치 벌을 서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워서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기왕 시작했으니 1달만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매일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연공을 시작한지 1주일 정도 지나니까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을 하기 전에는 항상 피로하고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몇 번이나 깨어나곤 했으며 또한 독한 결핵 약 기운 영향으로 하루종일 누워 있었고 틈나는 대로 잠을 잤었는데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온몸이 상쾌하고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날부터, 그러니까 법륜공을 수련하지 1주일이 되어서 몸이 피곤하지 않고 약을 먹는 후에도 피로감이 없어졌으며 전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을 자도 피곤했었는데 이제는 6시간 정도만 자도 전에 12시간 잔 것보다 몸이 거뿐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환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상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그후로부터 저는 법륜공이 정말로 신기하게 좋다는 것을 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한 달이 되어 지휘관에게 그동안 배려에 인사를 드리고 근무하면서 저녁 퇴근 후 법륜공 수련을 계속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연공을 시작한지 4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연공장에 한 수련생이 중국 연변에서 출판한 한글판『전법륜』 복사본을 몇 권 갖고 왔습니다. 그는 법륜공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전법륜』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전법륜』책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는 말만 들었고 책이 없기 때문에 계속 연공 동작만 했었습니다. 그날 복사한 책을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본래 천주교 신자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불법" "부처" "보살" 등등 불교 용어가 가끔 나와서 약간 거부감이 나오기는 했었지만, 그 책을 읽을수록 흥미롭고 재미있었고 또한 뒤에 나올 내용이 궁금해서 밤새도록 끝까지 읽고 싶었지만 다음날 출근을 생각해서 새벽 1시 넘게 5강의까지 읽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서 어떤 사람 형체와도 비슷하고 또한 귀신같기도 한 어떤 괴물체가 검은 옷을 입은 채로 내 배 위에 걸터앉아 나를 꽉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아 내가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성당에 잘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가슴에는 천주교 신자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꿈에서도 이 귀신을 쫓아 버리려면 십자가를 그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십자가를 계속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겁을 먹고 도망갈 줄 알았던 그 괴물체가 도리어 나를 죽이려고 나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발버둥을 치다 보니 어찌하다가 나의 손이 괴물체의 목을 치게 되었는데 그의 목이 뒤로 젖혀지는 순간 갑자기 그 큰 물체가 어느 작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이 빨려 들어가면서 형체가 없이 사라져 버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깨어나 보니 온 몸에 식은땀이었으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겁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수련을 시작한 한 수련생에게 전화로 방금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오늘 받은 『전법륜』책을 좀 더 읽고 자라, 또 그런 상태가 나면 나는 법륜공 수련생이라는 의념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책을 좀 더 보다가 책을 내 머리 옆에 놓고 잠을 잤는데 그날은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이 아침까지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손과 발에서 아주 차가운 냉기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보름 정도 계속해서 밤낮 없이 내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고 나니 나의 몸은 그전보다 더욱 가볍고 가뿐해졌으며 군 병원에서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X레이 촬영을 해보니 X레이 상에도 내 몸이 아주 좋아진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날 밤에 겪은 현상은, 내가 법에 대해 확고한가를 고험한 것이자 내 몸을 청리 시켜 준 상황이 아닌가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몇 차례 꿈속에 그런 검은 옷을 입은 괴물이 계속 나타나서 나를 위협하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가 법륜공 수련생이라는 의념을 가지니 신기하게도 그 괴물은 물러가곤 했습니다.
『전법륜』책을 접한지 두 달 정도 지나서 나는 지금 먹고 있는 결핵 약을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 봤지만 쉽게 약을 끊을 결심을 굳히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정대로 하면 약을 18개월 정도 먹어야 하는데 3개월 정도만에 약을 끊으려고 하니 잘못되면 나는 이대로 끝장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갈등을 겪던 차에 이용섭씨를 만나게 되어 나의 갈등을 이야기했더니 중국 수련생들의 수련이야기를 해주면서 책에 병업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므로 잘 보고 자신이 확신이 가면 약을 안 먹어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 나는 책을 보고 나서 우리 법륜공 수련은 일반 기공과 다르고 진정한 성명쌍수의 정법수련이기 때문에 수련생마다 이처럼 신기한 신체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약을 먹고 안 먹고는 본질적으로 말해서 법에 대해 확고한가 안 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련이 된다고 인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먹던 약을 다 버리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약을 끊고 난 이후에 며칠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계속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화장실 가는 도중에 설사가 날 때도 있었고, 저녁에 연공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그때부터 온몸이 쑤시고 뼈마디 마디가 다 아파 오며 열이 나고 추워서 집에 보일러를 때고도 모자라 이불을 3개나 뒤집어써도 추워서 밤새도록 떨면서 앓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약을 지어 오겠다고 하였고 나는 아내에게 이건 병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소업을 몇 차례 넘겼습니다. 어떤 때는 또 몸 여기저기가 가려웠고 특히 양쪽 폐 부위 근처에는 빨간 두드러기가 돋아져 나와 몹시 가려웠습니다. 또한 가끔 목에서 피가 몇 방울 올라오고 결핵 부위 근처 갈비뼈에 어떤 작은 벌레가 뼈를 깎아 먹는 듯한 느낌이 나며 뼈 주위가 따끔거리는 통증이 생길 때에는 혹시 약을 먹지 않아서 결핵 증상이 다시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법수련을 굳게 믿고 잘 견디고 지나갔습니다. 이렇듯 폐결핵 재발로 폐에 구멍 3개까지 뚫린, 당장 입원하여 치료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제가 3개월 정도만에 약을 끊고 반년 넘는 법륜공 수련으로 폐결핵을 완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이나 다름없는 사실 앞에서 군의관은 상상외로 빨리 치유가 되었다고 감탄했고, 군의관 선배가 되는 의사는 원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저의 사례에 감명 받아 『전법륜』 책을 읽고 나서 지금 호수공원 보도원 중의 한 사람으로 법륜대법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법륜대법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어찌 대법을 열심히 수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우리 이홍지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음으로 제가 수련을 하면서 두 번이나 생명위험에서 벗어난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 연공이 끝난 후 두 사람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오르막길에 차 속력을 높여 논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저녁이라 어두워진 상태였는데 옆자리에 탔던 사람이 "어어"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내 옆에 탄 사람은 맞은 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앞의 차 몇 대를 추월하고는 금방 우리 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오자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어" 소리만 질렀습니다. 나는 그가 "어어" 거리는 소리에 앞을 쳐다보니 바로 눈앞에 그 승용차와 충돌 직전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핸들을 우측으로 살짝 꺾어 비켰고 반대편 승용차도 그 순간에 추월하다가 다시 자기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비켜나갔는데 시간적으로는 0점 몇 초 사이였고 내 차와 그 차와의 거리는 불과 10cm도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짜고 연출해도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모면하고 나서 그 심각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이는 분명 내 목숨을 빼앗으러 온 것인데 법신이 나를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보호해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연공을 마치고 혼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던 도중에 어느 고등학교 남학생이 길가에서 나에게 차를 좀 태워 달라고 손을 들어 내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누가 차를 세워도 잘 태워주던 터라 그 날도 그 학생이 손짓으로 차를 세웠기 때문에 태워 주려고 차를 세웠는데 이상하게도 그 학생은 차를 세워 놓고는 타지 않고 반대쪽으로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싱거운 애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차를 몰아 나갔습니다. 100여 미터를 지나 모퉁이 길을 지나는데 순간적으로 눈앞에 승용차가 돌진해 왔습니다. 일주일 전과 똑같이 전혀 피할 사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차는 앞차 몇 대를 뒤따라 가다가 추월하려고 모퉁이 길에서 속력을 내어 나의 차선에 나의 차를 향해 정면 돌진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나는 전혀 당황되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위기를 비켜났지만 그 위기를 넘겨 놓고 나니까 그때처럼 등짝이 오싹해 왔습니다. 그 누군가 두 번째로 나의 목숨을 빼앗으러 왔는데 사부님 법신이 그 남학생을 시켜 차를 멈추게 함으로써 잠깐 시간을 지연시켜 위기를 면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부님이 또 한번 나를 보호해 준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승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2) 인간의 정을 버리고 나면 마음은 더 높이 열려져 있다
제가 진짜로 마음먹고 수련을 시작하니 금방 심성수련의 고험이 들이닥쳤습니다.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착하던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아들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와 아내는 밤새도록 걱정하고 기다렸지만 큰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에도 종무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선지 이틀이 되도록 소식이 없자 아내는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고 저도 답답하고 어쩔 바를 몰라 이용섭씨를 찾아 이야기도 나누고 속으로 이 궁리 저 궁리도 해봤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런 일로 나더러 인간의 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고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금생에서는 부자관계이지만 전생에 내가 지금 내 애가 된 그 사람을 고달프게 해서 이런 기회에 빚을 갚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인간세속의 명, 리 정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과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우연한 것이 없다. 당신이 부딪친 어떠한 모순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은 수련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여러 번 생각하면서 이번 일은 나의 심성고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나는 수련자이다. 이 문제 역시 수련자의 입각점에서 인식하자. 여기에는 분명히 내가 제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 애가 금생에는 내 아들이지만 단지 내 아들이니까 여하여하 하다는 관념에서 좀 벗어나자고 생각하니 자연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방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모두 착하게 대하여야 한다. 하물며 당신의 친인이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에 대하여 관심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나는 큰애에 대한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고 수소문하던 끝에 애가 가 있었던 집과 연락을 하게 되어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오면 용서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연공장에서 연공을 끝마치고 집에 와 보니 큰애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며 매를 맞을까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애한테 집을 뛰쳐 나선 이유를 차근차근 물어보고 욕 대신 좋은 말로 타일렀습니다. 그 후로 별 문제가 없이 잘 지내던 애가 3학년에 올라가더니 또 친구 몇 명과 같이 가출을 했습니다. 아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눈물로 며칠을 보냈지만 나는 그래도 동요하지 않고 퇴근 후 계속 연공하러 갔습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아빠가 되어서 없어진 아들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연공만 하러 다니느냐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이 나의 심성을 수련시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찾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여기저기 수소문 한 끝에 약 1주일만에 찾아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이번에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며 아들에게 전법륜 책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학년 2학기가 되자 큰아들이 또 갑자기 가출해 버렸습니다. 3번째 가출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배신감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참고 며칠간 기다리다가 수소문하여 아들을 찾아오고는 또 다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이 되자 아들은 핸드폰과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며 사달라는 것을 안 사주자 자기가 벌어서 사겠다면서 4번째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어느 중국 음식점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몇 차례 타일러 보았지만 아들은 집에 들어오기도 싫고 또 학교를 그만두고 계속 배달 일을 하여 돈을 벌며 고등학교 진학도 안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방학 내내 몇 번이나 찾아가서 계속 타일러도 보고했지만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끝내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아들의 네 번째 가출은 나로 하여금 뭔가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그 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니 자연히 욕할 마음도, 원망할 마음마저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몇 차례 더 찾아가서 이번에는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등도 두드려 주고 거칠어진 손도 만져 주며 감기 조심하라고 격려를 해주곤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겨울방학이 끝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던 큰애가 졸업식 전날에 집에 돌아와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마음도 잡고 반에서 반장으로 선출되어 열심히 학교에 잘 다니는가 했더니 1학기 여름 방학이 끝나기가 무섭게 5번째 가출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를 포기하고 자기는 돈을 벌어서 장사를 하겠다며 나간 것이었습니다. 열흘이 넘어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도 완전히 체념한 듯 학교에 찾아가 자퇴서를 내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우리 시골 온 동네에서 우리 아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전 같아서는 창피스러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겠지만 이제는 누가 아들 이야기를 물어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지 2달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들이 이렇게 된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보고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혹시 내가 아들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있지 않았나? 나는 아들이 5번이나 가출하게 된 근본원인은 아직도 내가 아들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버리지 못하였거나 고비를 넘기는 것이 철저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자신을 좀 더 반성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아들이 밖에서 고생을 겪어보는 것도 그 애의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애가 마음만 바꾼다면 집에 돌아와 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다만 그 애가 나쁜 짓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때가 되면 가족 품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면서 자연적으로 되어감에 따르고자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아들의 다섯 번 가출을 통해 나는 그 애가 나의 아들이니까 라는 식의 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인연관계를 이해하고 처사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자비심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분명 수련전의 자식에 대한 정과는 다른 애에 대한 저의 마음이 더 열려져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3) 모순 속에서 자신을 찾고 반성하는 것이 바로 심성수련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내가 가장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일은 친지와의 금전거래에서 받은 타격과 압박이었습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아내는 처형에게 돈을 몇백 만원씩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처형은 포천 일동에서 여인숙 및 식당을
서울 발산 수련생 고덕희
저는 강서구 발산동 수련생 고덕희입니다. 1998년 12월에 처음 법륜공을 만났습니다.
저가 법륜대법을 만나게 된 데는 일단락의 경위가 있었습니다. 15여년 전부터 위장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양방병원, 한방병원, 양약, 한약으로 안되어 운동요법, 수영, 국선도, 태극기공, 의료기공 등을 광범위하게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으니까 오히려 다른 장기까지 약해지기 시작하여 합병증이 생겨 건강이라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물질욕심만 커지면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의지할 곳이라면 종교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되어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기초교리공부를 6개월 간 한 후에 부처님께 나를 완전히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기복신앙에 불과한 것이지만 저에게는 인생노정의 커다랗고 밝은 등대가 되어 자신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고 마음의 안정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윤회설에 대한 믿음은 희망적이어서 다음 생을 위하여 금생을 희생하며 열심히 살자는 삶의 목표와 의미가 생겼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수는 있었지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기심, 재물욕, 명예욕, 이런 것들은 전혀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법회 때마다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없애라 하시지만 어떻게 비우는지 방법을 모르겠고 욕심은 더욱 커지기만 했습니다. 기도를 할수록 기도라는 것이 오히려 욕심을 부추기고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속인들에게 바르게 퍼지고 쉽게 받아 드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석가모니 부처님과는 반대현상이 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욱 수준 높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문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성불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108배를 하며 성불하겠다며 10여 년을 계속했습니다. 언젠가는 기도가 이루어지겠지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고 그 다음 생엔 스님이 되어 부처의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금 법을 공부해보니 그 마음이 반짝 반짝 빛이 났기에 대법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대법을 만나게 되어 처음 연공을 배울 때 엄청난 에너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어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앞으로 나는 계속 이 공법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의료기공을 월 20만원씩 내며 4개월 째 배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기의 실체를 느끼려고 노력을 했지만 별로 감각이 없어서 나는 안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법륜공을 수련하자 이렇게 엄청나게 강하고 확실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회비를 물어보니 없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여기엔 분명히 뭔가 큰 뜻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권해주기에 책을 보려고 했으나 한국에서 아직 정식출판이 안된 시기이기 때문에 연변 조선족들이 읽던 책을 받아와서 새벽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어려운 구절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을 음미하면서 읽었는데 너무나 반갑고 감사한 나머지 감탄이 갔습니다. 저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기에 불가의 8만 4천 법문중의 하나라는 글귀가 쏘-옥 들어왔습니다. 옳지, 스님들이 옛날에 하시던 수련방법인가 보구나. 제멋대로 상상하고 생각하며 아침엔 108배 저녁엔 연공, 책은 1번만 읽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다 알았다고 간주하여 이러기를 1년 3개월 보냈습니다. 연공만 했던 것입니다. 전일에 관한 것은 다른 기공을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수련생들의 모임이 있는 것도 몰랐고 이용섭씨라는 분은 처음 파룬궁을 한국에 전한 사람이라는 말만 들었지 만나보지도 못했으며 대화도 한 번 못하고 혼자서 집에서 열심히 연공만 했습니다. 지금도 저 같은 분들이 수없이 많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합류하게 되겠지만 혼자서 공부는 진전이 무척 느립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때가 왔습니다. 작년 2월에 조카가 봄방학이라 저희 집에 1주일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첫날 저녁에 수련을 해야겠는데 혼자 호젓하게 연공하다가 손님이 있으니 수련시간이 자꾸 지체되었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생겨 그냥 잘까 하다가 조카를 데리고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하자고 했더니 작은 아이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 저는 연공도 엉망으로 했었는데 그대로 아이에게 가르쳤습니다. 장법을 할 때 아이가 갑자기 뭐가 보인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보니 사부님이 천목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니 아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사람 잘 따르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는 똑똑한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너 굉장하군 대단해 라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아이도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순간입니다. 아이를 망쳐버릴 번했습니다. 어쨌든 그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간 하루에 세 번씩 연공했습니다. 연공할 때마다 천목이 열려서 여러 장면들을 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받아 적기도 하고 본 장면을 나중에 그리라고 했더니 법륜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애가 그린 법륜을 보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내가 가부좌할 때 다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파서 내리려고 할 때 까만 올챙이 같은 것이 수천 마리가 빠져 나와서 팡하고 터쳐져서 흰색의 뭉텅이로 되어 다시 내 몸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안 믿을 수 없어 아픈 다리를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책 전법륜에서 말하길, 5장 공법 신통가지법 결가부좌를 하는 동안 고통이 생길 때 견지하면, 검은 업력이 발로 내려나가서 하얀 덕으로 전화되어 다시 본체에 더해진다고 나옵니다.) 책에 있는 그대로 책을 보지 않는 아이가 그대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온몸이 전기 맞은 것처럼 돌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는데 이럴 수가 있을까?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저는 모시던 불상을 절에 보내고 여러 가지 올리던 기도문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부적도 뜯어내고 드디어 전일(수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수련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작년 3월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심성제고가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이기심, 재물욕, 명예욕, 교만심, 이런 것들을 어떻게 없앨 수가 있을까? 그렇게 기도해도 안 없어졌는데 정말 한심했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책을 여러 권 전해 받아서 읽다보니 서서히 나의 가치관이 바꿔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하! 이것이 심성제고 중인 것인가 보다. 그리하여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은 본체를 개변시켜 몸을 닦아주고 마음은 책을 통해서 닦아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책을 먼저 1시간 읽고 연공을 했습니다.
저의 소업과정은 엄청났습니다. 저는 몸으로 많이 겪었습니다. 매일 병든 사람처럼 괴롭고 졸리고, 아프고 얼굴은 꺼멓게 되어 남들은 좋은 기공한다며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설명할 수도 없고 난처했었습니다. 온몸에는 냉기를 품어대는데 5, 6월에도 추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남들에게 파룬궁이 좋다고 실컷 설명하고 헤어질 때 악수를 한 적이 있는데 내 손이 얼음처럼 차가 왔습니다. 상대방이 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좋은 기공을 하면 몸이 따뜻해야지 왜 손이 찹니까? 나는 몸 속에 있던 병기, 냉기를 정화하느라고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하니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냉기가 빠지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니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이렇게 차갑고 냉정했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어머님이 나에게 내가 화나면 찬바람이 솔솔 불었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너무 편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평화롭고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었습니다. 대법을 얻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황송한 마음이었습니다. 다음에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법 따라 공부하면 나도 금생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서서히 내 몸으로 체험을 느끼면서 책에 있는 대로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면서 꿈이 아니고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 갈 때 사부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우러나왔습니다.
무지 속에서 미혹 속에서 죄인지 모르고 끝없이 죄를 지어 고통을 받으며 괴로움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나를 건져 주셨구나. 이렇게 좋은 대법을 사부님을 도와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대법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홍법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대법수련에서 가장 고달픈 것은 심성수련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심성 고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전에 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벗어나 자만에 빠져 제 잘난 멋에 살았습니다. 자신감, 자부심, 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소신 있는 당당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의를 보면 항상 지적하여 고쳐주도록 노력했고 나 자신의 생각은 틀림없고 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혼자 똑똑하고 잘 났다고 도도했으니 자연히 주의 사람들에게 편안하지 못한 분위기를 조성했었나 봅니다. 아마 결혼을 했으면 12번도 더 이혼을 했을 것입니다. 동생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언니는 열심히 사는 것은 좋았지만 무서웠다고 합니다. 잘못한걸 보면 가차없이 지적하여 꾸중을 했고 화를 냈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언니가 많이 참는 모습이 보이고 온화하고 부드러워졌다고 합니다. 자신은 항상 옳다고 생각했던 교만심이 대법을 만나 대법의 '진선인'에 비추어 자신을 견주어 보니 나의 관념이 뒤집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늙었다가는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뻔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겼습니다. 그 자리는 부끄러움, 후회, 반성 등등..... 온통 부족한 나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새로운 사람이 탄생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도 옛적의 나쁜 습관이 많이 남아있지만 내 마음은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지금은 세상의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싹 없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러울 것 없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대법을 얻었으니까 열심히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일뿐입니다. 내 생각, 내 사고는 쓰레기 같은 이기심의 토대 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내세우는 습관이 베어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겠지요.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성명쌍수의 공법은 연공과 책을 읽는 것을 같은 비율로 안배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연공 1시간이면 책 1시간, 연공 2시간이면 책 2시간, 여력이 닿는 대로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책을 통해서도 깨달음이 열리기 때문에 책 읽는 것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닳아 떨어지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같은 뜻을 세우고 같은 길을 걷는 자들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국 방방곳곳, 아니 세계 각 곳에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 저는 정말 행복한 인간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어려운 고험과 시달림이 오더라도 모두 받아넘겨 공성원만 하여 정과를 얻기 위해 힘차게 정진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하나마 저의 체험담을 마치겠습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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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을 더욱 열심히
수련생 추 봉 기
제가 대법을 알고 수련을 시작한지 오늘로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고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을 하였다고 생각하였으나 돌이켜보니 명(名), 리(利), 정(情) 그 어느 하나도 내려놓은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각종 집착과 욕심과 오만과 성내는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터라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음의 결과라 생각되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연공인마다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과 두려움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저의 경우는 특히 보잘 것 없는 명예와 하찮은 두려움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습니다. 대법을 얻고 난 후 저에게 들려오고 보여지며 나타나는 현상 하나 하나는 수련과정 중에서 제가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각종 집착과 두려움을 들추어내어 없애버리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수련을 시작한지 15일만에 달걀 껍질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상태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일찍이 경험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제 자신은 다른 사람과는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되었고 이로 인하여 자만심에 빠지고 그에 집착함으로써 한 동안 정체현상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수련과정 중 특정 부분에 대한 수련 정도는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었으며, 원만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부를 내려 놓아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말법시기에 정법 아닌 것이 난무하고 있어 사람들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고 하였으나 제 자신은 대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되면 여러 가지 현상들로 인하여 저의 생각은 흐리게 되고 저는 대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한가를 시험받게 되었습니다. 이럴때면 더욱 열심히 책을 읽고 연공장에 나가 함께 수련하고 현상들에 대하여 토의함으로써 법에 대한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하여 업이 많은 편이었던지 결가부좌가 되지 않아 수련을 시작한지 10개월이나 지나서야 겨우 결가부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픔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가부좌상태로 수련을 해오다 지난 여름 휴가기간에 대사님 9일 강의테이프를 보고 열심히 수련한 후 휴가가 끝나는 일요일 아침부터 열이 나고 팔다리가 쑤시고 아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종일 누워지냈으나 이튿날 아침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그때부터 결가부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남들처럼 완전한 결가부좌는 아니지만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는데 가부좌가 되지 않는 사람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가부좌가 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고통에 대한 참음은 자신의 근기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능히 넘길 수 있다고 하는데 막상 수련에서 부딪치게 되면 가능하면 피해갈려고 생각하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층차에서 한번은 넘어야하는 것들로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하나씩 넘길수 있었습니다.
각종 집착심이 다 그렇겠지만 화를 내지 않는 마음도 하루아침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성고험을 시키기 위해 배치된 각종 시달림을 연공인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보통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하여 화를 내거나 참견하였습니다. 다음 번에는 참거나 참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점차적으로 시달림이나 언짢은 일을 만나도 화를 내거나 짜증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큰 고험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나 사소한 것은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넘기지 못하고 맙니다. 한번은 바쁜 시간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갑자기 끼여든 차량 때문에 깜짝 놀라 급정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순간 {전법륜}에 읽은 "차량에 부딪혀도 운전자를 원망함이 없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는 어느 수련생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이만한 것은 그에 비하여 아주 하찮은 것이라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것은 저의 수련을 위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5남매 중 장남인데 서울에 남동생이 살고 있습니다. 동생부부는 평소 집안의 각종행사나 명절 등 크고 작은 일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형인 저와 상의없이 일을 처리하여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저의 처는 형님인 제가 동생에게 따끔하게 충고하여 이런 나뿐 버릇을 고쳐놓아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였으며 저도 가끔은 제자신의 기준으로 보아 나쁘다고 생각되는 점을 고쳐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 자신은 대법을 만나고 수련을 하여감에 따라 그러한 것들의 인연관계를 알게되어 더 이상 동생부부에 대한 속상한 감정이 없었으나 저의 처는 동생부부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저에게 동생을 충고하여 시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의 처는 "무엇 때문에 장남만 집안 일을 책임져야 하는가" 고 저에게 따지면서 "당신 집안 일인데 왜 내가 나서서 동생부부에게 싫은 이야기를 해야 되고 혼자서 욕을 먹어야 하는냐" 고 화를 내면 저자신이 연공을 하지만 사실 답변하기가 막막하여 그저 웃으면서 고험을 넘겼으며 가끔은 넘기기가 힘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집안 사람이나 일들로부터 오는 고험을 그럭저럭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올 2월경 어머니 회갑을 맞이하여 가족이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고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넘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을 사정에 정해 놓았는데 갑자기 시골에서 여동생이 연락을 하여 서둘러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였으며 가족들이 모두 모여 어머니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만치 아무렇지 않는 듯 행동하였으나 다른 가족들의 행동이 웬지 그날 따라 저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던지 결국에는 서울 사는 동생에게 어머니 선물은 무엇을 준비하였는지, 왜 형과 상의하지 않았는지, 형제끼리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등 이것저것 따지며 앞으로는 잘하라고 충고하고 핀잔까지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생부부가 부모님에게 하는 예쁜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가식적으로 보였으나 다른 가족들에게는 동생부부를 아주 나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행동은 오히려 마음을 더욱 번잡하고 우울하게 할뿐 가슴이 탁 트이도록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날 있었던 제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면서 제 자신의 심성수련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집안 일로 흥분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처도 동생부부에 대하여 체념을 하였는지 더 이상 동생부부의 행동에 대하여 마음을 쓰지 않고 마음 아파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게 되었으며 동생부부도 이전보다 더욱 잘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험이 있은 후 동생부부에게 『전법륜』을 읽어보라고 선물을 하는 등 저희부부는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한층 자유로와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사소한 고험을 넘기지 못한 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평소 아주 절친한 직장 동료가 갑자기 사소한 일을 트집잡아 짜증을 내었습니다. 순간 당신이 나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거나 맞받아 나쁘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의 심성수련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바로 고험이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고 굳이 그 사람에게 해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고험은 자신이 처한 층차와 근기와 심성에 따라 가정과 사회와 직장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끊임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된 다음부터 웬만한 고험은 그냥 지나쳐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지금의 심정은 그동안 제가 얼마나 하찮은 것에 집착하여 큰 업을 짓게 되었는지 생각만 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부모, 형제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전하여 함께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도 집착이었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기(조사세간행)' 위하여 대법을 널리 전하여 인연 있는 사람은 법을 얻도록 하고 당장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앞으로 대법을 얻을 수 있도록 홍법하고 있으나, 오성이 낮음으로 인하여 수련자체를 부정하거나 대법은 인정하나 현실에 맞지 않고 실속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고, 뜻한 바 있어 수련을 시작해보지만 평소 {전법륜}을 읽지 않아 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지 않은 터라 시간이 나면 가끔씩 수련을 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련을 기피하다가 결국에는 수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홍법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적 특수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법을 먼저 얻은 보도원을 포함한 연공인들의 불법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못하며, 적극적인 홍법과 자원적으로 일을 하려는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는 상태이고 가정과 사회생활을 우선시하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어 적극 동참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 또한 크나큰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아직 수련이 너무 부족한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이번 심득교류회를 기회 삼아 더욱 용맹정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공성원만 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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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수련에서 용맹정진 하자
서울 석촌호수 수련생 송영진
저는 서울 석촌호수에서 수련하고 있는 올해 41세 되는 수련 생 송영진입니다. 大法을 처음 접한 지 약 8개월 조금 지났건만 이처럼 여러 同修 앞에서 심득소감을 발표한다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대법을 처음 접한 시점부터 말씀드릴까 합니다.
금년 (2000年) 1월24일, 문득 이상한 예감에 집근처 서점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파란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轉法倫이라는 표지를 본 순간 문득, 예전에 산속 수도생활에서 꿈꾸었던 환영이 다시금 눈앞을 가려 혹시나 하고 책을 접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氣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였던 터라 여타 기공 책을 살피던 중 『전법륜』을 손에 든 순간 다른 문파의 기공서적은 이미 나의 맘속에서 저 멀리 가버리고 정신없이 줄거리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읽어 내려갈수록 前에 나의 맘속 깊이 갈망했던 正法에 대한 의문과 수행 중 의문시 되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확연히 풀리는 기운이 저의 몸에 심한 전율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저의 심정은 세상에서 이처럼 논리 정연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증적인 법 해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 한 권의 내용이었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인내 속에 깨달음의 지름길을 찾았으나 한편으론 걱정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편안한 문화생활과 속인사회에서 수련하여야 하니 걱정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수련관념은 깊은 산골에서 자연과 벗 삼아 고통과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방편이라는 지배적인 인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이 우습게만 생각됩니다.
초기 수련과정에서 심한 심성제고와 사상업에 빠져 잠시 동안 갈등도 느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대법(전법륜)의 내용인즉, 한 사람이 펼쳤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과학적이며 논리 정연한 법 해석 및 우주의 실상 등등... 神이 아니면 그런 정도의 완벽을 이루지 못하기에 의문도 가졌으나 그런 사상업은 공교스럽게도 저의 아들과 조카를 통해 실증되었고,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봄방학을 이용하여 저의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함께 수련하던 중 처음 수련에서부터 두 아이들의 天目(천목)이 열려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며 이야기 해주는 것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남들은 깊은 산속 수련에서 오랜 수련 끝에 겨우 천목이 열릴까 말까하는 정도인데, 法輪功 수련 첫날에 두 아이가 다 열려 버렸으니 말입니다. 뒤로 안 자빠진 게 다행이었죠. 확실한 믿음을 못 가진 본인에게 사부님의 法身을 통해 증명해 보이신거라 믿습니다. 하여간 당시엔 무척 당황했었고, 본인 자신에게 창피스럽기도 하여서 심기일전 굳은 심신으로 정진하던 중 어느 날, 3일 동안 꼼짝 못하고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차에 저 또한 감기처럼 심한 열과 콧물을 흘리는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몇 년간 감기 아니라 그 어떤 독한 질병도 저의 몸엔 얼씬도 안 했었는데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러눕다니... 가만히 생각하니「淸理(청리)」현상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무작정「전법륜」을 읽었습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책을 손에서 놓으면 꼼짝못하고 또드러눕게 되고, 책을 읽으면 거동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3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허연 가래를 뱉어낸 것이 아마도 중형 쓰레기통 1통이 족히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이물질이 도대체 어디에서 그리 많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입니다.
1차 청리현상이 생긴 후, 집안 식구들의 심한 수련방해가 이어졌습니다. 평상시엔 그 누구도 제가 행하는 일에 대해 반박이 없었는데 正法 수련을 하고자 하니 외부의 사악한 세력이 갖은 방해로써 수련자를 괴롭히나 봅니다.
만약 이때 저 자신의 굳은 신심이 없었더라면 중도 탈락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첫 수련을 시작한지 1달이 조금 지났을 때 첫 심성고험이 왔습니다. 심성고험은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나 봅니다. 저희 집 옆집에 41살 노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2시경 심한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온 식구가 놀라서 나가보니 다짜고짜 절보고 음흉한 녀석이라고 하며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심한 욕설과 함께 정말 난리었습니다. 경찰차도 들이닥치고, 저를 범죄자로 모함하기도 하였지만, 참으로 이상한 점은 그녀를 딱 마주치고 본 순간 두 눈빛이 악마의 형상으로 보이며, 저의 마음이 아주 담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하루아침에 심한 인격손상이 일어나면 자기 방어하는 것이 마치 남의 이야기 듣는 것처럼 관망하는 자세였습니다.
근 한 달간 매일 아침마다 저희 집을 향해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지만 상관 안하고 그저 덤덤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즉 大法을 수련하고 난 후부터 외부의 어떠한 방해가 오면 올수록 더욱 제 자신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안정해지는 것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인간들에게 커다란 大法을 남겨주신 李洪志대사 님께 다시 한번 큰 고마움을 경해하는 바입니다.
두번째 청리는 7월경이었습니다. 근 한 달간 목에 갑갑하고 불편하던 중 단체 연공을 하고 집으로 오던 중 갑자기 재채기가 일어나자 목에서 검붉은 덩어리가 마치 거머리 같은 것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속에 살면서 나쁜 기운을 몰아 내준다 생각하니 보기에도 징그러웠으나 더욱 수련에 정진해야겠다는 신심이 생겨났습니다. 며칠 후 한번 더 검붉은 덩어리를 뱉어내니 가슴속이 시원하고 목소리가 한층 맑아지면서 기분이 무척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9월 23일 대전 장태산 교류회를 갔다온 직후 또 한차례의 신체 고험을 했습니다. 그날 직장에서 손을 다쳐 심하게 퉁퉁부어 올랐으나 수련 다음날 집으로 와서 보니 거짓말처럼 원래 상태로 되어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뜨거운 감회를 느꼈습니다. 올 추석(9月)은 저에게 잊지 못할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래의 저의 생활문제와 자식의 장래 학업 문제로 고민 내지 갈등을 느껴 현재보다 좀 더 좋은 여건의 회사로 이직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심히 이직을 결정하고난 후, 맘 한구석에서 약간은 찜찜한 느낌이 남아있어 고민하던 중, 추석을 맞이하여 수련생인 저의 아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의논도 할 겸 방화동 연공장의 고덕희씨를 찾아가 의논한 다음 다시금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날, 아들과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런 조언을 받은 것이 무척이나 고무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아들로부터 좋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현재 아빠의 봉급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까짓 돈 몇 푼에 유혹 당하지 말고 수련에 정진하세요. 자신은 장학금 받고 공부할 터이니 고민 마세요, 귀중하고 어렵게 얻은 法을 놓치지 마세요. 차후에 수련이 깊어지면 부모자신간의 情(정)도 담담히 봐야 되지 않겠어요 라는 등등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하교 5년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런 조언을 듣자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속인들의 입에서 이러한 조언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 수련인들 만이 이러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필경 사부 님의 法身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유혹으로부터 구해 내셨다고..
수련과정에서 心性 제고가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더욱 세차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우리 수련생들은 저마다 세속문명을 접하며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조금만 元神(웬썬) 이 허점을 보이면 금새 외부의 사악한 것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수련과정에서 心性(씬싱)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부님께서 들려주신 말씀 중 "행하기 힘든것도 행할 수 있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다." "공수련에는 길이 있거니 마음은 지름길 대법은 끝없는데 고생을 배로 삼으세" 등등 이러한 법문을 항상 되새기며 어려운 난관을 무사히 넘기곤 합니다.
우리 法輪大法(falundafa) 수련은 무척 쉬운 것 같으면서도 엄청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속인들과 부합되게 살면서 정백한 신체를 요구하니 항상 元神 (웬썬)을 굳게 지키지 않는다면 금방 외부의 탁한 기운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우리 수련 생들은 항상 굳건히 수련에 정진하면서 사부님께서 주신 고귀한 法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모든 집착심으로부터 탈피하여 하루빨리 "예의 원만"의 경지에로 올라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부님의 높은 은혜를 갚는 길은 이것 밖에 없다고 봅니다. 法이 乾坤 (건곤: 하늘땅)을 바로 잡는 이 시기에 正法을 얻었음을 소중히 알고 스승님을 도와 이지로써 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을 똑똑히 말하며, 자비로써 홍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수련시키겠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마음뿐입니다. 法輪大法은 나의 목숨입니다.
수련생 여러분, 굳은 신심으로 수련에 정진하여 모두다 功成圓滿 (공성원만) 합시다.
2000年 10月 29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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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은 파산되어 가는 나의 가정을 구원해 주었다
파주 수련생 강계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파주 수련생 강계순입니다. 제가 법륜대법을 수련한지 2년이 되는 기간에, 가정 주부인 제가 사회활동이 적은 탓인지, 겪은 심성수련은 주로 가정의 모순 속에서였습니다.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저의 수련에서 겪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대법수련은 나를 허무 속에서 구원해 주었다
제가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된 동기는 신체적으로나 가정생활에서 모두 너무나 힘겨워서, 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워낙 여유 없는 생활이었건만 그나마 조금 있던 것마저 몇 차례 걸쳐 남에게 뜯기우다 보니 갈 곳마저도 없고 생활이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부부사이에 장기적인 불화로 말미암아 다만 법정에서 이혼서에 도장만 찍지 않았을 따름이지 남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음도, 몸도 지칠대로 지쳐, 자꾸만 자리에 눕고만 싶었고 자리에 누워서도 팔들 맥마저 없고 살아나가겠다는 의욕이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 딸애를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혼자서 살면서 딸애를 키울 생각까지 가졌습니다. 그래서 기술이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 파주의 어느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집에는 저녁에 몇 사람 모여서 법륜공을 수련하였습니다. 처음에 나도 호기심이 생겨 뭐냐 하고 봤더니 법륜도형에 卍자 부호가 들어있어 보는 순간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저가 전에는 불교를 믿었었는데 집안에 자꾸 불행만 겹치고 해서 부처님께 빌고 비는데 왜 이럴까 하면서 거부감이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법륜도형을 보고 법륜공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 집에 2∼3개월 다니게 되어 법륜공이 신체건강에 여하여하하게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마침 장마가 들어 집에서 쉬고 있자니 갑갑하고 불안스러워 안절부절하며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법륜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법륜공을 수련하면 몸이 금방 좋아진다니까 그럼 나도 한 번 좀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법륜공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동작을 가르쳐 주신 분이 동작만 해서는 안되고 연공하면서 책을 읽어야 효과적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책을 읽어야 눈도 좋아지고 몸도 마음도 다 깨끗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기공이란 동작을 해서 신체를 건장하게 하는 게 아닌가. 이것 또 무슨 종교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는 소린가? 하고 거부감이 있었으나, 기왕 배운 바에야 일단 시킨 대로 해보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연공하면서 책도 조금씩 보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에는 가부좌가 제일 고통스러웠는데 처음 10분으로부터 20분, 30분 나중에는 1시간 버티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심성수련도 좀 하자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약 일주인가, 그러나 멎었다가는 며칠씩 걸렸습니다. 남들은 한 두 번이면 끝난다는데 저는 심성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업이 대단히 커서인지 끊어졌다 이어지곤 하는 설사를 1년 넘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따금 감기몸살처럼 춥고 떨리고 뼈마디마다 아파 참을 수 없는 정도에 도달하였습니다. 수련을 하면서 이런 현상은 분명히 업을 제거하는 현상이고 몸으로부터 흑색물질이 파열되어 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소업현상이 심하지 않을 때는 그럭저럭 참고 지나다가 막상 심해지면 두려움부터 생겼습니다. 소업 중에서 전화기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여 딸애보고 전화에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전달해 받을 정도였습니다. 증상이 이렇게 심한데 약을 안 먹어서 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신으로는 파악이 잘 가지 않아 함께 수련하는 수련생에게 전화로 문의까지 하였습니다. 그 수련생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해답은『전법륜』책에 있으니 책을 많이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전법륜』을 좀 더 읽고 나는 병업에 대한 인식을 똑바로 했습니다. 수련을 통해 어느 수련자든 겪어야 하는 신체적으로 당분간 겪는 불편을 병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업을 제거하는 과정의 필연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이것은 자신이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느냐 안 하느냐, 법에 대해 확고하냐 안 하냐 하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대법 수련자이다. 신체적인 불편과 고통은 사부님께서 나의 병업을 제거해주시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몸으로 오는 고통을 안심된 마음으로 조용히 참을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생선을 잘못 먹어 체한 만성병도 재발하였다가 없어졌고, 『전법륜』책을 계속 읽었더니 눈물에서 피가 나오면서 저의 눈도 청리해 주었습니다. 심한 소업을 이렇게 겪고 나니 그 후에 오는 소업을 모두 담담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매 한 차례 소업을 지나고 나면 신체적으로 한 번씩 청리되어 종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신체가 이렇듯 회복되자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 같고 너무나도 신기하고 좋아서 혼자 있을 때 이리저리 뛰어보기도 하고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법륜대법은 저를 육체적인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딸애를 데리고 혼자 살 생각을 하였겠습니까? 법륜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고, 늘 내가 남에게 못된 짓을 안 했는데 왜 이처럼 불행을 당해야 하는지를 생각했고,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고 상대방을 탓하는 불만만 커갔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지겹고 싫증이 났고 사람을 접촉하기가 싫어지고 권고 듣기도 싫어, 심지어는 산다는 자체가 창피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제가 대법수련을 하면서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고 내가 왜 불행했는가, 이 불행은 누구의 탓이 아닌 자신이 초래한 빚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참으로 자신이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나는 미혹 속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방황 속에서 자신의 갈 길을 올바로 찾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법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되자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했습니다. 그때로부터 나는 팔자를 탓하지 않았고 비록 어떤 때는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지만, 분명 나에게 들이닥치는 난이 왜 생기고 수련자인 내가 할 바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만년에도 얻기 어려운 대법을 얻었으므로 수련에서 용맹정진하여 정과를 얻고 원만을 이루자고 다짐했습니다. 법륜대법은 나의 불행을 행운으로, 나의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뜻을 얼마간 터득한 것 같습니다.
(2) 법륜대법은 그늘진 나의 가정에 햇빛을 안겨주었다
제가 수련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남편과 겪는 심성수련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수련하기 2년 전만 해도 우리 가정은 겉모양만 있는 가정이었고 우리 부부는 남남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는 숨막히는 침묵이 아니면 차디찬 냉기가 돌아서 가정의 화목이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수련이 뭔지도 잘 모르고 동작만 어느 정도 할 때까지만 하여도 우리 가정은 여전히 냉냉한 분위기에 불과했는데 막상 책을 읽고 진정으로 수련을 하려고 하니까 가정모순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갈등을 겪었으며 화합을 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은 무척 많았고 생활하기가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보따리를 사주면서 이제부터는 갈라 살자고 한 적도 있고, 아니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법륜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남편이 이리저리 방해하여 나서서 이 면의 갈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보고 "지금 신문에 실린 기사를 좀 보라. 파룬궁은 사이비 종교가 되어서 중국에서 탄압 받고 있는데 왜 거기에 미치느냐?" 라면서 반대해 나섰습니다. 어느 하루 우리 연공장의 한 친구가 개업을 하게 되어 저는 개업을 축하드리고자, 우리 연공장의 수련생들도 만날겸 그곳으로 갔습니다. 평소에 우리 수련생들은 개업식을 하는 주인의 2층을 연공장으로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개업식에 모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층 연공장에서 우리 수련생들과 한참 수련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곳으로 찾아온 남편은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고함을 지르며 야단을 쳤습니다. 내가 급히 나가자 다짜고짜로 머리를 끄잡아 당기며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마당에서 개업식에 참석하러 온 분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남편은 '밥도 안해 주고 미쳐서 다닌다. 당신들도 마누라가 애도 안 보고 밖으로 다니면 어떠하겠냐' 라고 고함지르면서 나의 머리를 거머쥔 채로 잡아끌었습니다. 그때 나는 사부님이 『전법륜』책에서 "앞으로 모순에 부딪칠 때, 당신은 그것을 우연한 것이라고 보지 말라"는 말씀이 머리에 떠올라, 남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었지만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고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광경을 본 손님들이 남편을 욕했고 개업주인이 저의 남편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남편에게 강제로 끌리워 갔습니다. 정작 사전에 아무런 사상준비로 없이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실로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련자이다 라는 생각으로 말 한 마디 없이 꾹 참았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가 나고 억울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지차(一念之差)에 달렸다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맞았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수련자이다. 우리 수련은 '진선인' 수련이다 라고 생각하니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서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이번 겪는 일이 심성수련이라는 건 분명하나 수련자라고 해서 반드시 이런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는 없잖은가? 아무리 수련자이고 참는다 해도 이처럼 아내 된 사람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남편과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나는 그 날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친정으로 갔습니다. 이는 결혼이래 처음으로 되는 가출이었습니다. 친정에 온 그날 밤 나는 밤새 생각이 헷갈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 수련생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수련생은 우리는 대법수련인데 너무 극단으로 나가서 자신을 찾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전법륜』을 많이 읽고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 면으로 생각해 보면 남편이 더없이 괘씸하고 미웠으나, 내가 수련생이고 그런 창피를 당하고도 잘 참았는데 왜 그 후에 참지 못하고 집까지 뛰쳐나왔는가? 사부님께서 모순이 발생되면 우선 상대방부터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는데 나는 우리 가정생활에서 남편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남편을 이해한 적이 몇 번 있었는가? 남편이 어떻던지간에 아내가 된 나로서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했는가? 사부님께서는 모순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찾으라고 했는데 나는 왜 늘 남편만 탓할까? 나는 가정이 이처럼 불행하게 된 데는 나의 잘못과 책임도 있음을 찾았고, 내가 우선 해야 할 일은 가정에서 아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고 남편을 이해하는 입장을 취해야만 대법수련을 체현시키고 나는 수련자라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속인의 자존심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집으로 갔더니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잘 대해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간 후부터 나는 가정에서 전보다 가정주부의 책임을 다하기에 노력하는 한편, 남편의 입장을 많이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식으로부터 실천에 옮겨지기까지는 과정과 반복이 있었고 마음 속으로 내키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총체적으로 제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자 남편 또한 저에게 많이 접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남편은 대화를 차근차근 나눌 수 있었고 얼음장 같은 가정에 이따금씩 웃음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저의 남편의 변화를 두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저의 남편 회사의 경영이 적자가 나서 회사에서 무려 8백만에 달하는 월급을 남편에게 지불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도 생활난에 걱정되었지만 그럴수록 남편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회사측에서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 사용하던 승용차를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주장도 너무 무리는 아니겠지만 나는 수련자로서 남편 회사의 곤란한 입장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회사로부터 3백만을 받고 5백만을 못 받았지만 제가 남편에게 설득을 드려 그 차를 회사에 바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편이 원 회사에서 나와 취직에 응했는데, 그 회사는 사업조건이 좋고 월급도 높은 회사이어서 40대에 가까운 사람이 그 회사에 취직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국 저의 남편이 취직되었습니다. 회사 인사부문에서도 우리가 왜 나이가 많은 당신을 취직시켰는지 모를 일이라고 하였답니다. 남편의 또 한 가지 변화는, 제가 법륜공을 수련하기만 하면 한사코 반대하던 남편이 저의 변화에 어느 정도 감동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동적으로 법륜대법 자료까지 뽑아주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대법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파산이 되었을 우리 가정은 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점은 수련자인 저는 물론, 아직 수련을 안 하는 저의 남편도 잘 알고 있으며 법륜공이라면 사이비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하던 남편도 지금에 와서는 법륜공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의 수련은 초 시작에 불과합니다. 저의 심성수련은 아직도 멀고 멀었습니다. 법공부를 더 잘해야만 심성수련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수련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를 한 층 더 놓여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수련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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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제고 속에서 대법을 수련하다
저는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연공장에서 수련하는 신신범입니다.
저는 15년간 수백 권의 각종 기수련 책을 탐독하고 여러 가지 기 수련을 하면서 심성과 도의 수련을 하고자 했으나 나의 생각과는 점점 멀어만 갔습니다. 이른바 무슨 단전호흡, 초영역, 명상법 등등 여러 가지 수련에 몰두했고 기공에 관련된 강좌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 더욱이 도를 닦자는 굳은 결심에서 소주천, 대주천을 통하려고 동지섣달 긴긴 밤에 백척간두 절벽에 앉아 며칠 간 불면불식하면서 수련을 해봤고 또 이러루한 수련도 수년 간 견지해 왔지만 결국은 소주천, 대주천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기를 잘못 돌려 기의 병에 걸려 시달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도를 닦고 싶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진정한 도거나 수련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 2000년 3월 15일 일산 호수공원에 새벽운동을 하고자 나갔는데 멀리서부터 고유의 무예와 비슷한 동작을 하기에 아, 저 수련이 소문에 듣던 중국에서 수련하는 파룬궁이겠구나 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당시 파룬궁에 대해서는 개념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을 때었습니다. 즉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하고 중국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나는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데는 기필코 파룬궁이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두말없이 그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 배우게 되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그때 당시 꽃샘추위 속에서 제2장공법 포륜을 할 때 손끝이 너무 시려 연공을 포기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파룬궁에 마음이 끌려 좀 더 참아보자는 식으로 제2장공법을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연공할 때 그처럼 팔이 시큼해나고 시렸지만 연공을 끝마치자 몸과 마음이 그처럼 평온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십 몇 년간 이런 저런 이른바 수련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을 느꼈고 그러기에 1억이나 되는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였구나 라는 초보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며칠 하니 몸으로 체현되는 감은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나는 이처럼 대단한 공법이기에 꼭 이에 해당된 책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용섭선생에게 책을 문의하여 『전법륜』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관념적으로 자신은 십 몇 년간 수련했다는 생각에서 여전히 공법에만 신경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법륜』을 한 번 읽고 나니 사부님의 법륜대법 수련이란 동작을 연마하는 것보다 심성수련이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수련의 근본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법이고 진짜 수련법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짧은 시일 내에 『전법륜』을 몇 번 더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심성수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 속에서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심성을 지키자니 말처럼 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내가 심성수련 중에서 부딪친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00년 11월 말, 서울 동숭아트홀 소극장의 '애벌레'라는 작품에서 내가 아버지 역을 맡아 연극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이 시작하여 20여일 지난 어느 날 저녁, 그 날 공연은 한 차례의 중요한 공연이었습니다. 즉 각 신문사 기자, 언론인, 대학교수, 평론가 등 많은 분들의 관람이 있었으며 또한 이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제가 무대에 등장하여 연기를 하고 퇴장해야 하는데 생각지 못한 의외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날 따라 무대천장에서는 쿵당쿵당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는가 하면 제가 퇴장할 때에는 정확히 무대 조명이 꺼져야 하는데 조명이 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명이 꺼지지 않자 연극단 전원들이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랐고 조명기사는 땀을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이었는데 문제는 제가 할 연기는 다 끝났으나 조명이 꺼지지 않기에 퇴장할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조금 전의 연기를 되풀이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나는 대법수련자이며 이 일이 우연하지 않기에 이번 연기가 잘못되면 내가 얼마나 망신이겠는가 라는 이런 명리심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습니다. 그러는 순간 마치 담담하여라, 담담하여라 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제나름대로 연기를 하면서 천천히 퇴장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연극단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기생활 25년 간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조명기사가 컴퓨터가 되지 않자 비상용 대비로 설치되어 있는 수동기마저 작동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런 일이란 도무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놀란 이야기는 일단 무대에서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십상팔구는 관객들에게 탄로가 나고 물의를 빚기 쉬웠는데 이 문제를 잘 풀어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순간적으로 이 일에 부딪쳤을 때 나는 이 자체가 나에 대한 시련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명리에 대한 생각을 그 자리에서 담담하게 내려놓았습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였다면 꼭 다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며 관객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연극단에도 명예적인 피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관은 거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연극은 12월 26일에 가서 끝마치게 되었는데 저에게 해당된 출연료가 보통 때에 비하여 너무너무 적었습니다. 함께 출연한 후배 연기자들은 해당측에 신선배님을 어찌 이처럼 무리하게 대할 수 있냐며 항의할 정도였으니까 저에 대한 보수가 얼마나 적었는지를 가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 역시 나에 대한 심성적인 검증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속인과 같은 마음자세여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경고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자 일단 보수여하에 대한 마음이 담담해지며 오히려 마음이 조용했습니다. 그리하여 유관측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겉으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드렸고 후배들에게는 나는 출연할 기회가 많으니까 괜찮다는 것으로 그들의 정서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단번에 그리 높은 경지에로 도달하지 못하는 까닭에 사후에도 이 일을 한 번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불공평했고 또 이전 같으면 이에 관하여 논의를 하거나 불평을 하고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을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우리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일개 수련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수련하는 사람은 으레 이 모든 것을 속인과 같이 대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만이 수련이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도 이 일을 돌이켜 보는 순간에 어쨌든 나로서는 열심히 연기를 해왔지만 나에게 해당되는 보수가 적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며 심지어 우리 인간으로서 알지 못할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희는 수련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달갑게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번은 2001년 무안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평생 오토바이를 타본 적도 없고 해서 그런 촬영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올리니 몇 시간 전에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배우고 촬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역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방송국에서 굳이 저의 이름을 찍었습니다. 대충 오토바이 타는 것을 배우고 촬영현장에 갔는데 현장에 갖고 온 새 오토바이는 이상하게도 말썽을 부렸습니다. 문제를 찾아보니 새 오토바이에 기름이 없었고 촬영현장 주위에는 주유소도 없어서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고 촬영을 시작하려니 이번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동네에 가서 다른 오토바이를 빌려오고 몇 번 연습을 하고 막 촬영을 하려는데 오토바이를 빌려 준 주인이 급히 외출해야 된다면서 다짜고짜로 그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세 번째로 오토바이를 구하여 촬영에 들어갔는데 이 또한 웬일입니까? 이번에는 오토바이의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은 굉장히 흘러갔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어쩌려고 이리 말썽이 많은가? 당금 어떤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예감이었지만 사부님은 우리더러 집착을 내려놓으라 하였기에 담담히 생각하자,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감독님의 레디고 소리와 함께 2차선을 달리는 순간 한쪽에서는 웬 노파 4명이 뛰어들어와 저와 부딪치면서 노파 4명은 차선에 쓰러지고 저는 인정사정 볼것 없이 앞으로 달리는데 앞에 갑자기 콘크리트 벽이 보였습니다. 아! 어쩌려나! 급한 나머지 오토바이를 밀어버리고 우측으로 나뒹굴었습니다. 그 순간 감독, 스텦, 구경꾼들이 놀라 뛰어왔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구, 그러나 저는 웃으며 괜찮습니다, 다친 데는 없습니다 라고 상대방이 먼저 걱정할까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후 내 몸을 살펴보니 넘어진 오토바이 뒷바퀴에 제 발목이 끼워있었습니다. 앞바퀴 타이어는 펑크나고 찢어졌습니다. 이 순간에 나는 오늘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보호하여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든 사례가 모두 진실한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직업적인 관계로 우리 연기자 내부에서 늘 암투가 벌어지는 일이 바로 연극에서 주역을 맡는 일입니다. 이런 주역을 맡기 위하여 늘 시비가 생기고 쟁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인간세상입니다. 어느 한 번은 어느 한 극에서 내가 남자 주역을 맡기로 결정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연극준비에 들어가면서 연극계의 많은 인원들이 모인 장소에서 감독은 갑자기 나의 이름을 빼버리고 그 역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변에서도 그 이유를 묻게 되었는데 감독은 이유설명이 없이 다짜고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당신이 가장 친한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잃게 되는 경우에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를 본다는 말씀이 생각나면서 내가 이런 장면에 부딪치누나 라는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에 부딪친다면 속인치고는 야단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론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즉시 눈길을 나에게 돌렸습니다. 이는 참으로 나에 대한 심성수련이었습니다. 저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절대 속인처럼 다투고 싸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무능해 보이고 심지어 바보 같아 보였을지는 모르나 나는 이 모든 것을 담담히 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막상 생각지도 못하던 난이 갑자기 들이칠 경우, 뻥 하기도 하고 파악이 잘 가지 않기도 하지만 단 한가지 나는 수련자이다, 나는 절대 속인처럼 일을 대할 수 없다, 이런 일은 나 자신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생각을 갖게 됨으로써 비록 층차와 경지를 논할 입장은 아니지만은 본질적으로 속인과 다르게 이러한 문제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진선인 수련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하던 난과 갈등이 연이어 들이닥칠 때가 많으며 말처럼 그렇게 쉽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사부님을 생각하고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로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속인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정도이지만 어쩐지 사후에 늘 이런 일을 거듭 생각해 볼 때가 있으며 나의 참음이란 아직도 낮은 층차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법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자신의 층차를 끊임없이 제고하기에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1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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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대법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육성시키고 있다
수련생 박상사
저는 직업군인 입니다. 제가 만약 법륜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불행 속에 처해있을지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저는 1998년부터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되어 나의 인생관을 확 바꿔버렸습니다. 다음으로 대법수련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게끔 한 경험담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 법륜대법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1989년에 완치된 줄 알았던 폐결핵이 10년만인 1998년에 재발했습니다. X레이 촬영 및 CT 촬영을 해 본 결과, 우측 폐에 구멍이 3개나 뚫려 있는 중한 상태였습니다. 일반병원의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군의관은 후송 입원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대 지휘관도 당장 후송하여 병치료에 전념하라고 권유했었습니다. 그때 저의 직책은 부대에서 통신에 관한 전반적인 임무를 책임지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으로는 내가 근무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께 입원하지 않고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병치료를 병행하겠다고 하였더니 지휘관은 한 달간 집에서 영양식도 하고 치료를 받은 후 근무하라고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1달간 집에서 쉬면서 생각하기를, 이렇게 그냥 무의미하게 한 달간 있을 게 아니라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기공을 배우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파주 연공장에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법륜공 연공을 따라 해보니 제2장과 제5장 공법을 할 때에는 마치 벌을 서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워서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기왕 시작했으니 1달만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매일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연공을 시작한지 1주일 정도 지나니까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을 하기 전에는 항상 피로하고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몇 번이나 깨어나곤 했으며 또한 독한 결핵 약 기운 영향으로 하루종일 누워 있었고 틈나는 대로 잠을 잤었는데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온몸이 상쾌하고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날부터, 그러니까 법륜공을 수련하지 1주일이 되어서 몸이 피곤하지 않고 약을 먹는 후에도 피로감이 없어졌으며 전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을 자도 피곤했었는데 이제는 6시간 정도만 자도 전에 12시간 잔 것보다 몸이 거뿐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환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상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그후로부터 저는 법륜공이 정말로 신기하게 좋다는 것을 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한 달이 되어 지휘관에게 그동안 배려에 인사를 드리고 근무하면서 저녁 퇴근 후 법륜공 수련을 계속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연공을 시작한지 4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연공장에 한 수련생이 중국 연변에서 출판한 한글판『전법륜』 복사본을 몇 권 갖고 왔습니다. 그는 법륜공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전법륜』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전법륜』책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는 말만 들었고 책이 없기 때문에 계속 연공 동작만 했었습니다. 그날 복사한 책을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본래 천주교 신자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불법" "부처" "보살" 등등 불교 용어가 가끔 나와서 약간 거부감이 나오기는 했었지만, 그 책을 읽을수록 흥미롭고 재미있었고 또한 뒤에 나올 내용이 궁금해서 밤새도록 끝까지 읽고 싶었지만 다음날 출근을 생각해서 새벽 1시 넘게 5강의까지 읽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서 어떤 사람 형체와도 비슷하고 또한 귀신같기도 한 어떤 괴물체가 검은 옷을 입은 채로 내 배 위에 걸터앉아 나를 꽉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아 내가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성당에 잘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가슴에는 천주교 신자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꿈에서도 이 귀신을 쫓아 버리려면 십자가를 그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십자가를 계속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겁을 먹고 도망갈 줄 알았던 그 괴물체가 도리어 나를 죽이려고 나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발버둥을 치다 보니 어찌하다가 나의 손이 괴물체의 목을 치게 되었는데 그의 목이 뒤로 젖혀지는 순간 갑자기 그 큰 물체가 어느 작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이 빨려 들어가면서 형체가 없이 사라져 버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깨어나 보니 온 몸에 식은땀이었으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겁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수련을 시작한 한 수련생에게 전화로 방금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오늘 받은 『전법륜』책을 좀 더 읽고 자라, 또 그런 상태가 나면 나는 법륜공 수련생이라는 의념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책을 좀 더 보다가 책을 내 머리 옆에 놓고 잠을 잤는데 그날은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이 아침까지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손과 발에서 아주 차가운 냉기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보름 정도 계속해서 밤낮 없이 내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고 나니 나의 몸은 그전보다 더욱 가볍고 가뿐해졌으며 군 병원에서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X레이 촬영을 해보니 X레이 상에도 내 몸이 아주 좋아진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날 밤에 겪은 현상은, 내가 법에 대해 확고한가를 고험한 것이자 내 몸을 청리 시켜 준 상황이 아닌가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몇 차례 꿈속에 그런 검은 옷을 입은 괴물이 계속 나타나서 나를 위협하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가 법륜공 수련생이라는 의념을 가지니 신기하게도 그 괴물은 물러가곤 했습니다.
『전법륜』책을 접한지 두 달 정도 지나서 나는 지금 먹고 있는 결핵 약을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 봤지만 쉽게 약을 끊을 결심을 굳히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정대로 하면 약을 18개월 정도 먹어야 하는데 3개월 정도만에 약을 끊으려고 하니 잘못되면 나는 이대로 끝장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갈등을 겪던 차에 이용섭씨를 만나게 되어 나의 갈등을 이야기했더니 중국 수련생들의 수련이야기를 해주면서 책에 병업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므로 잘 보고 자신이 확신이 가면 약을 안 먹어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 나는 책을 보고 나서 우리 법륜공 수련은 일반 기공과 다르고 진정한 성명쌍수의 정법수련이기 때문에 수련생마다 이처럼 신기한 신체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약을 먹고 안 먹고는 본질적으로 말해서 법에 대해 확고한가 안 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련이 된다고 인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먹던 약을 다 버리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약을 끊고 난 이후에 며칠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계속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화장실 가는 도중에 설사가 날 때도 있었고, 저녁에 연공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그때부터 온몸이 쑤시고 뼈마디 마디가 다 아파 오며 열이 나고 추워서 집에 보일러를 때고도 모자라 이불을 3개나 뒤집어써도 추워서 밤새도록 떨면서 앓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약을 지어 오겠다고 하였고 나는 아내에게 이건 병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소업을 몇 차례 넘겼습니다. 어떤 때는 또 몸 여기저기가 가려웠고 특히 양쪽 폐 부위 근처에는 빨간 두드러기가 돋아져 나와 몹시 가려웠습니다. 또한 가끔 목에서 피가 몇 방울 올라오고 결핵 부위 근처 갈비뼈에 어떤 작은 벌레가 뼈를 깎아 먹는 듯한 느낌이 나며 뼈 주위가 따끔거리는 통증이 생길 때에는 혹시 약을 먹지 않아서 결핵 증상이 다시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법수련을 굳게 믿고 잘 견디고 지나갔습니다. 이렇듯 폐결핵 재발로 폐에 구멍 3개까지 뚫린, 당장 입원하여 치료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제가 3개월 정도만에 약을 끊고 반년 넘는 법륜공 수련으로 폐결핵을 완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이나 다름없는 사실 앞에서 군의관은 상상외로 빨리 치유가 되었다고 감탄했고, 군의관 선배가 되는 의사는 원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저의 사례에 감명 받아 『전법륜』 책을 읽고 나서 지금 호수공원 보도원 중의 한 사람으로 법륜대법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법륜대법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어찌 대법을 열심히 수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우리 이홍지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음으로 제가 수련을 하면서 두 번이나 생명위험에서 벗어난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 연공이 끝난 후 두 사람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오르막길에 차 속력을 높여 논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저녁이라 어두워진 상태였는데 옆자리에 탔던 사람이 "어어"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내 옆에 탄 사람은 맞은 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앞의 차 몇 대를 추월하고는 금방 우리 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오자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어" 소리만 질렀습니다. 나는 그가 "어어" 거리는 소리에 앞을 쳐다보니 바로 눈앞에 그 승용차와 충돌 직전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핸들을 우측으로 살짝 꺾어 비켰고 반대편 승용차도 그 순간에 추월하다가 다시 자기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비켜나갔는데 시간적으로는 0점 몇 초 사이였고 내 차와 그 차와의 거리는 불과 10cm도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짜고 연출해도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모면하고 나서 그 심각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이는 분명 내 목숨을 빼앗으러 온 것인데 법신이 나를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보호해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연공을 마치고 혼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던 도중에 어느 고등학교 남학생이 길가에서 나에게 차를 좀 태워 달라고 손을 들어 내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누가 차를 세워도 잘 태워주던 터라 그 날도 그 학생이 손짓으로 차를 세웠기 때문에 태워 주려고 차를 세웠는데 이상하게도 그 학생은 차를 세워 놓고는 타지 않고 반대쪽으로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싱거운 애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차를 몰아 나갔습니다. 100여 미터를 지나 모퉁이 길을 지나는데 순간적으로 눈앞에 승용차가 돌진해 왔습니다. 일주일 전과 똑같이 전혀 피할 사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차는 앞차 몇 대를 뒤따라 가다가 추월하려고 모퉁이 길에서 속력을 내어 나의 차선에 나의 차를 향해 정면 돌진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나는 전혀 당황되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위기를 비켜났지만 그 위기를 넘겨 놓고 나니까 그때처럼 등짝이 오싹해 왔습니다. 그 누군가 두 번째로 나의 목숨을 빼앗으러 왔는데 사부님 법신이 그 남학생을 시켜 차를 멈추게 함으로써 잠깐 시간을 지연시켜 위기를 면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부님이 또 한번 나를 보호해 준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승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2) 인간의 정을 버리고 나면 마음은 더 높이 열려져 있다
제가 진짜로 마음먹고 수련을 시작하니 금방 심성수련의 고험이 들이닥쳤습니다.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착하던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아들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와 아내는 밤새도록 걱정하고 기다렸지만 큰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에도 종무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선지 이틀이 되도록 소식이 없자 아내는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고 저도 답답하고 어쩔 바를 몰라 이용섭씨를 찾아 이야기도 나누고 속으로 이 궁리 저 궁리도 해봤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런 일로 나더러 인간의 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고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금생에서는 부자관계이지만 전생에 내가 지금 내 애가 된 그 사람을 고달프게 해서 이런 기회에 빚을 갚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인간세속의 명, 리 정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과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우연한 것이 없다. 당신이 부딪친 어떠한 모순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은 수련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여러 번 생각하면서 이번 일은 나의 심성고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나는 수련자이다. 이 문제 역시 수련자의 입각점에서 인식하자. 여기에는 분명히 내가 제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 애가 금생에는 내 아들이지만 단지 내 아들이니까 여하여하 하다는 관념에서 좀 벗어나자고 생각하니 자연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방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모두 착하게 대하여야 한다. 하물며 당신의 친인이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에 대하여 관심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나는 큰애에 대한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고 수소문하던 끝에 애가 가 있었던 집과 연락을 하게 되어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오면 용서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연공장에서 연공을 끝마치고 집에 와 보니 큰애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며 매를 맞을까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애한테 집을 뛰쳐 나선 이유를 차근차근 물어보고 욕 대신 좋은 말로 타일렀습니다. 그 후로 별 문제가 없이 잘 지내던 애가 3학년에 올라가더니 또 친구 몇 명과 같이 가출을 했습니다. 아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눈물로 며칠을 보냈지만 나는 그래도 동요하지 않고 퇴근 후 계속 연공하러 갔습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아빠가 되어서 없어진 아들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연공만 하러 다니느냐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이 나의 심성을 수련시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찾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여기저기 수소문 한 끝에 약 1주일만에 찾아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이번에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며 아들에게 전법륜 책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학년 2학기가 되자 큰아들이 또 갑자기 가출해 버렸습니다. 3번째 가출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배신감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참고 며칠간 기다리다가 수소문하여 아들을 찾아오고는 또 다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이 되자 아들은 핸드폰과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며 사달라는 것을 안 사주자 자기가 벌어서 사겠다면서 4번째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어느 중국 음식점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몇 차례 타일러 보았지만 아들은 집에 들어오기도 싫고 또 학교를 그만두고 계속 배달 일을 하여 돈을 벌며 고등학교 진학도 안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방학 내내 몇 번이나 찾아가서 계속 타일러도 보고했지만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끝내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아들의 네 번째 가출은 나로 하여금 뭔가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그 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니 자연히 욕할 마음도, 원망할 마음마저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몇 차례 더 찾아가서 이번에는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등도 두드려 주고 거칠어진 손도 만져 주며 감기 조심하라고 격려를 해주곤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겨울방학이 끝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던 큰애가 졸업식 전날에 집에 돌아와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마음도 잡고 반에서 반장으로 선출되어 열심히 학교에 잘 다니는가 했더니 1학기 여름 방학이 끝나기가 무섭게 5번째 가출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를 포기하고 자기는 돈을 벌어서 장사를 하겠다며 나간 것이었습니다. 열흘이 넘어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도 완전히 체념한 듯 학교에 찾아가 자퇴서를 내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우리 시골 온 동네에서 우리 아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전 같아서는 창피스러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겠지만 이제는 누가 아들 이야기를 물어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지 2달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들이 이렇게 된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보고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혹시 내가 아들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있지 않았나? 나는 아들이 5번이나 가출하게 된 근본원인은 아직도 내가 아들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버리지 못하였거나 고비를 넘기는 것이 철저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자신을 좀 더 반성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아들이 밖에서 고생을 겪어보는 것도 그 애의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애가 마음만 바꾼다면 집에 돌아와 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다만 그 애가 나쁜 짓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때가 되면 가족 품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면서 자연적으로 되어감에 따르고자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아들의 다섯 번 가출을 통해 나는 그 애가 나의 아들이니까 라는 식의 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인연관계를 이해하고 처사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자비심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분명 수련전의 자식에 대한 정과는 다른 애에 대한 저의 마음이 더 열려져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3) 모순 속에서 자신을 찾고 반성하는 것이 바로 심성수련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내가 가장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일은 친지와의 금전거래에서 받은 타격과 압박이었습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아내는 처형에게 돈을 몇백 만원씩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처형은 포천 일동에서 여인숙 및 식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