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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법륜대법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육성시키고 있다



                                               수련생 박상사



  저는 직업군인 입니다. 제가 만약 법륜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불행 속에 처해있을지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저는 1998년부터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되어 나의 인생관을 확 바꿔버렸습니다. 다음으로 대법수련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게끔 한 경험담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 법륜대법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1989년에 완치된 줄 알았던 폐결핵이 10년만인 1998년에 재발했습니다. X레이 촬영 및 CT 촬영을 해 본 결과, 우측 폐에 구멍이 3개나 뚫려 있는 중한 상태였습니다. 일반병원의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군의관은 후송 입원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대 지휘관도 당장 후송하여 병치료에 전념하라고 권유했었습니다. 그때 저의 직책은 부대에서 통신에 관한 전반적인 임무를 책임지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으로는 내가 근무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께 입원하지 않고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병치료를 병행하겠다고 하였더니 지휘관은 한 달간 집에서 영양식도 하고 치료를 받은 후 근무하라고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1달간 집에서 쉬면서 생각하기를, 이렇게 그냥 무의미하게 한 달간 있을 게 아니라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기공을 배우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파주 연공장에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법륜공 연공을 따라 해보니 제2장과 제5장 공법을 할 때에는 마치 벌을 서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워서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기왕 시작했으니 1달만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매일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연공을 시작한지 1주일 정도 지나니까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을 하기 전에는 항상 피로하고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몇 번이나 깨어나곤 했으며 또한 독한 결핵 약 기운 영향으로 하루종일 누워 있었고 틈나는 대로 잠을 잤었는데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온몸이 상쾌하고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날부터, 그러니까 법륜공을 수련하지 1주일이 되어서 몸이 피곤하지 않고 약을 먹는 후에도 피로감이 없어졌으며 전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을 자도 피곤했었는데 이제는 6시간 정도만 자도 전에 12시간 잔 것보다 몸이 거뿐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환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상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그후로부터 저는 법륜공이 정말로 신기하게 좋다는 것을 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한 달이 되어 지휘관에게 그동안 배려에 인사를 드리고 근무하면서 저녁 퇴근 후 법륜공 수련을 계속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연공을 시작한지 4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연공장에 한 수련생이 중국 연변에서 출판한 한글판『전법륜』 복사본을 몇 권 갖고 왔습니다. 그는 법륜공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전법륜』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전법륜』책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는 말만 들었고 책이 없기 때문에 계속 연공 동작만 했었습니다. 그날 복사한 책을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본래 천주교 신자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불법" "부처" "보살" 등등 불교 용어가 가끔 나와서 약간 거부감이 나오기는 했었지만, 그 책을 읽을수록 흥미롭고 재미있었고 또한 뒤에 나올 내용이 궁금해서 밤새도록 끝까지 읽고 싶었지만 다음날 출근을 생각해서 새벽 1시 넘게 5강의까지 읽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서 어떤 사람 형체와도 비슷하고 또한 귀신같기도 한 어떤 괴물체가 검은 옷을 입은 채로 내 배 위에 걸터앉아 나를 꽉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아 내가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성당에 잘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가슴에는 천주교 신자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꿈에서도 이 귀신을 쫓아 버리려면 십자가를 그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십자가를 계속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겁을 먹고 도망갈 줄 알았던 그 괴물체가 도리어 나를 죽이려고 나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발버둥을 치다 보니 어찌하다가 나의 손이 괴물체의 목을 치게 되었는데 그의 목이 뒤로 젖혀지는 순간 갑자기 그 큰 물체가 어느 작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이 빨려 들어가면서 형체가 없이 사라져 버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깨어나 보니 온 몸에 식은땀이었으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겁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수련을 시작한 한 수련생에게 전화로 방금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오늘 받은 『전법륜』책을 좀 더 읽고 자라, 또 그런 상태가 나면 나는 법륜공 수련생이라는 의념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책을 좀 더 보다가 책을 내 머리 옆에 놓고 잠을 잤는데 그날은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이 아침까지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손과 발에서 아주 차가운 냉기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보름 정도 계속해서 밤낮 없이 내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고 나니 나의 몸은 그전보다 더욱 가볍고 가뿐해졌으며 군 병원에서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X레이 촬영을 해보니 X레이 상에도 내 몸이 아주 좋아진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날 밤에 겪은 현상은, 내가 법에 대해 확고한가를 고험한 것이자 내 몸을 청리 시켜 준 상황이 아닌가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몇 차례 꿈속에 그런 검은 옷을 입은 괴물이 계속 나타나서 나를 위협하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가 법륜공 수련생이라는 의념을 가지니 신기하게도 그 괴물은 물러가곤 했습니다.

『전법륜』책을 접한지 두 달 정도 지나서 나는 지금 먹고 있는 결핵 약을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 봤지만 쉽게 약을 끊을 결심을 굳히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정대로 하면 약을 18개월 정도 먹어야 하는데 3개월 정도만에 약을 끊으려고 하니 잘못되면 나는 이대로 끝장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갈등을 겪던 차에 이용섭씨를 만나게 되어 나의 갈등을 이야기했더니 중국 수련생들의 수련이야기를 해주면서 책에 병업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므로 잘 보고 자신이 확신이 가면 약을 안 먹어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 나는 책을 보고 나서 우리 법륜공 수련은 일반 기공과 다르고 진정한 성명쌍수의 정법수련이기 때문에 수련생마다 이처럼 신기한 신체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약을 먹고 안 먹고는 본질적으로 말해서 법에 대해 확고한가 안 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련이 된다고 인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먹던 약을 다 버리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약을 끊고 난 이후에 며칠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계속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화장실 가는 도중에 설사가 날 때도 있었고, 저녁에 연공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그때부터 온몸이 쑤시고 뼈마디 마디가 다 아파 오며 열이 나고 추워서 집에 보일러를 때고도 모자라 이불을 3개나 뒤집어써도 추워서 밤새도록 떨면서 앓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약을 지어 오겠다고 하였고 나는 아내에게 이건 병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소업을 몇 차례 넘겼습니다. 어떤 때는 또 몸 여기저기가 가려웠고 특히 양쪽 폐 부위 근처에는 빨간 두드러기가 돋아져 나와 몹시 가려웠습니다. 또한 가끔 목에서 피가 몇 방울 올라오고 결핵 부위 근처 갈비뼈에 어떤 작은 벌레가 뼈를 깎아 먹는 듯한 느낌이 나며 뼈 주위가 따끔거리는 통증이 생길 때에는 혹시 약을 먹지 않아서 결핵 증상이 다시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법수련을 굳게 믿고 잘 견디고 지나갔습니다. 이렇듯 폐결핵 재발로 폐에 구멍 3개까지 뚫린, 당장 입원하여 치료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제가 3개월 정도만에 약을 끊고 반년 넘는 법륜공 수련으로 폐결핵을 완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이나 다름없는 사실 앞에서 군의관은 상상외로 빨리 치유가 되었다고 감탄했고, 군의관 선배가 되는 의사는 원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저의 사례에 감명 받아 『전법륜』 책을 읽고 나서 지금 호수공원 보도원 중의 한 사람으로 법륜대법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법륜대법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어찌 대법을 열심히 수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우리 이홍지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음으로 제가 수련을 하면서 두 번이나 생명위험에서 벗어난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 연공이 끝난 후 두 사람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오르막길에 차 속력을 높여 논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저녁이라 어두워진 상태였는데 옆자리에 탔던 사람이 "어어"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내 옆에 탄 사람은 맞은 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앞의 차 몇 대를 추월하고는 금방 우리 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오자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어" 소리만 질렀습니다. 나는 그가 "어어" 거리는 소리에 앞을 쳐다보니 바로 눈앞에 그 승용차와 충돌 직전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핸들을 우측으로 살짝 꺾어 비켰고 반대편 승용차도 그 순간에 추월하다가 다시 자기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비켜나갔는데 시간적으로는 0점 몇 초 사이였고 내 차와 그 차와의 거리는 불과 10cm도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짜고 연출해도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모면하고 나서 그 심각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이는 분명 내 목숨을 빼앗으러 온 것인데 법신이 나를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보호해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연공을 마치고 혼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던 도중에 어느 고등학교 남학생이 길가에서 나에게 차를 좀 태워 달라고 손을 들어 내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누가 차를 세워도 잘 태워주던 터라 그 날도 그 학생이 손짓으로 차를 세웠기 때문에 태워 주려고 차를 세웠는데 이상하게도 그 학생은 차를 세워 놓고는 타지 않고 반대쪽으로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싱거운 애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차를 몰아 나갔습니다. 100여 미터를 지나 모퉁이 길을 지나는데 순간적으로 눈앞에 승용차가 돌진해 왔습니다. 일주일 전과 똑같이 전혀 피할 사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차는 앞차 몇 대를 뒤따라 가다가 추월하려고 모퉁이 길에서 속력을 내어 나의 차선에 나의 차를 향해 정면 돌진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나는 전혀 당황되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위기를 비켜났지만 그 위기를 넘겨 놓고 나니까 그때처럼 등짝이 오싹해 왔습니다. 그 누군가 두 번째로 나의 목숨을 빼앗으러 왔는데 사부님 법신이 그 남학생을 시켜 차를 멈추게 함으로써 잠깐 시간을 지연시켜 위기를 면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부님이 또 한번 나를 보호해 준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승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2) 인간의 정을 버리고 나면 마음은 더 높이 열려져 있다

  제가 진짜로 마음먹고 수련을 시작하니 금방 심성수련의 고험이 들이닥쳤습니다.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착하던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아들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와 아내는 밤새도록 걱정하고 기다렸지만 큰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에도 종무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선지 이틀이 되도록 소식이 없자 아내는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고 저도 답답하고 어쩔 바를 몰라 이용섭씨를 찾아 이야기도 나누고 속으로 이 궁리 저 궁리도 해봤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런 일로 나더러 인간의 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고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금생에서는 부자관계이지만 전생에 내가 지금 내 애가 된 그 사람을 고달프게 해서 이런 기회에 빚을 갚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인간세속의 명, 리 정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과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우연한 것이 없다. 당신이 부딪친 어떠한 모순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은 수련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여러 번 생각하면서 이번 일은 나의 심성고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나는 수련자이다. 이 문제 역시 수련자의 입각점에서 인식하자. 여기에는 분명히 내가 제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 애가 금생에는 내 아들이지만 단지 내 아들이니까 여하여하 하다는 관념에서 좀 벗어나자고 생각하니 자연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방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모두 착하게 대하여야 한다. 하물며 당신의 친인이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에 대하여 관심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나는 큰애에 대한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고 수소문하던 끝에 애가 가 있었던 집과 연락을 하게 되어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오면 용서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연공장에서 연공을 끝마치고 집에 와 보니 큰애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며 매를 맞을까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애한테 집을 뛰쳐 나선 이유를 차근차근 물어보고 욕 대신 좋은 말로 타일렀습니다. 그 후로 별 문제가 없이 잘 지내던 애가 3학년에 올라가더니 또 친구 몇 명과 같이 가출을 했습니다. 아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눈물로 며칠을 보냈지만 나는 그래도 동요하지 않고 퇴근 후 계속 연공하러 갔습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아빠가 되어서 없어진 아들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연공만 하러 다니느냐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이 나의 심성을 수련시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찾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여기저기 수소문 한 끝에 약 1주일만에 찾아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이번에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며 아들에게 전법륜 책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학년 2학기가 되자 큰아들이 또 갑자기 가출해 버렸습니다. 3번째 가출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배신감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참고 며칠간 기다리다가 수소문하여 아들을 찾아오고는 또 다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이 되자 아들은 핸드폰과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며 사달라는 것을 안 사주자 자기가 벌어서 사겠다면서 4번째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어느 중국 음식점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몇 차례 타일러 보았지만 아들은 집에 들어오기도 싫고 또 학교를 그만두고 계속 배달 일을 하여 돈을 벌며 고등학교 진학도 안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방학 내내 몇 번이나 찾아가서 계속 타일러도 보고했지만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끝내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아들의 네 번째 가출은 나로 하여금 뭔가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그 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니 자연히 욕할 마음도, 원망할 마음마저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몇 차례 더 찾아가서 이번에는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등도 두드려 주고 거칠어진 손도 만져 주며 감기 조심하라고 격려를 해주곤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겨울방학이 끝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던 큰애가 졸업식 전날에 집에 돌아와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마음도 잡고 반에서 반장으로 선출되어 열심히 학교에 잘 다니는가 했더니 1학기 여름 방학이 끝나기가 무섭게 5번째 가출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를 포기하고 자기는 돈을 벌어서 장사를 하겠다며 나간 것이었습니다. 열흘이 넘어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도 완전히 체념한 듯 학교에 찾아가 자퇴서를 내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우리 시골 온 동네에서 우리 아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전 같아서는 창피스러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겠지만 이제는 누가 아들 이야기를 물어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지 2달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들이 이렇게 된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보고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혹시 내가 아들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있지 않았나? 나는 아들이 5번이나 가출하게 된 근본원인은 아직도 내가 아들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버리지 못하였거나 고비를 넘기는 것이 철저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자신을 좀 더 반성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아들이 밖에서 고생을 겪어보는 것도 그 애의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애가 마음만 바꾼다면 집에 돌아와 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다만 그 애가 나쁜 짓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때가 되면 가족 품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면서 자연적으로 되어감에 따르고자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아들의 다섯 번 가출을 통해 나는 그 애가 나의 아들이니까 라는 식의 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인연관계를 이해하고 처사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자비심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분명 수련전의 자식에 대한 정과는 다른 애에 대한 저의 마음이 더 열려져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3) 모순 속에서 자신을 찾고 반성하는 것이 바로 심성수련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내가 가장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일은 친지와의 금전거래에서 받은 타격과 압박이었습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아내는 처형에게 돈을 몇백 만원씩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처형은 포천 일동에서 여인숙 및 식당을 운영하면서 아파트 공사 현장 인부들에게 식사를 대어 주는 일을 했었는데 식비는 아파트 공사가 끝나면 건설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주는 것으로 하고 공사를 끝날 때까지 계속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그러자면 그 동안 돈이 많이 필요했으므로 처형은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가며 식당 일을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돈이 있는 대로 빌려 달라고 해서 그때 당시 몇백만원을 보냈지만 얼마 지나면 또 돈을 구해 달라고 연락이 오곤 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더 이상 보낼 돈이 없으니 보내지 말라고 했으나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동네 이집 저집에서 돈을 빌려 보냈고 우리 부대에 같이 근무하는 군인 가족에게서도 빌려 보냈고, 또한 곗돈 타서 보내고 은행에서까지 돈을 빌려 보내곤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처형도 빌린 돈에 대해서 이자도 보내고 했었는데 나중에는 원금 및 이자를 전혀 보내지 않았고 은행이자 및 다른 집에서 빌려준 돈마저도 우리가 고스란히 갚아야 했습니다. 우선 이자가 많이 나가는 동네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한 집 한집 갚아 갔고 아내와 내가 맞벌이해서 번 돈도 매달 매달 남의 돈을 갚아야 했는데 이렇게 10여 년 갚아가다 보니까 나는 살아갈 재미도 없어지고 희망도 없어지는 것 같아 그때부터는 방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매일 술, 담배, 화투를 즐기며 생활하다 보니까 내 몸은 황폐할대로 황폐해졌고 마침내 목에서 피를 토하는 폐결핵까지도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법륜공을 만나게 되었고 이 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그 동안 못 받은 돈 5천여 만원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잊어버리고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은행 빚 천오백만원에 대해서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속으로는 처갓집 형제들이 그 돈이나마 갚아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매달 은행 이자를 갚아 가고 있던 차에 98년 늦여름에 경기 북부 지역에 수해가 일어나 이곳 파주에 있는 처가집도 수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이 우리 부대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나는 부대에 처갓집 사정을 이야기하고 온 식구들과 함께 처갓집 수해 복구에 매달렸습니다.

  다음에 또 수해가 나도 문제가 없도록 1.5m 정도 축대를 쌓아서 콘크리트를 치고 그 위에 조립식 건물을 지으려면 돈은 2천5백만원 정도 소요되는데 그 비용은 큰처남과 작은처남이 반반씩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정대로 그 다음날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공사가 시작되는 동시에 나는 정신적인 고통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4일 동안 땀흘려 일한 보람이 헛되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심 기대하고 있던 희망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처형 때문에 5천여만원의 돈을 대신 갚아주고 아직도 1천5백만원의 은행 빚을 갚지 못해 이자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은근히 처갓집 식구들이 그 1천5백만원을 갚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처갓집 수재방지에 2천5백만 쓰다보니 그 희망이 일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로 인해 매일 혼자서 가슴 앓고 애통해 하면서 겉으로는 표현하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였습니다. 집을 함마로 부술 때 내 가슴도 같이 부서졌고 사방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흙을 채워 놓고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일할 때 내 마음속의 눈물도 같이 흘러 내렸습니다. 매일 그 날 일을 끝내고 우리 집에 올라가면 수해를 입지 않은 우리 집도 수해를 입은 만큼 복잡했습니다. 수해가 난 날로부터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잠자리와 식사 등 모두 우리 집에서 했습니다. 장인, 장모, 처제, 처남들과 그에 딸린 식구들이 모두 우리 집에서 자야 하니까 방, 마루 등에서 거의 1달 동안 뭉쳐 자곤 했습니다.

  우리 처갓집 식구들은 모두 천주교 집안이기 때문에 저녁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온 식구들이 천주교 형식에 맞춰 마루에 둘러앉아 기도하고 미사를 드렸고 나만 혼자 방에 들어가 연공음악을 틀어 놓고 5장공법 신통가지법을 연마했습니다. 연공을 하고 있으면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만 억울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금전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렇게 처갓집 식구들에게 시달려야 하는가를 생각하기만 하면 아내도 미워지고 모든 처갓집 식구들이 미워졌습니다. 가부좌를 하는 1시간 동안 다리에로 몰리는 고통보다는 내가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 때문에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매일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공사를 계속하던 어느 날 기진맥진하여 잠시 휴식을 하느라 땅바닥에 주저앉아 마음속으로 처갓집 식구들을 원망하면서 멍청하게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바닥에서 법륜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법륜 4개가 마치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는 것 같이 한참 동안 돌아갔습니다.

  나는 왜 법륜이 나에게 보였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날 잠자리에 누워 낮에 보인 법륜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생각한 끝에 내 마음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인데 언제까지나 그 돈 때문에 고통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이젠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처형에게 받지 못한 돈은 전생에 내가 처형한테 못 갚은 빚을 갚은 셈치고 은행 빚도 우리가 갚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수련자입니다. 사부님의 책을 읽어도 그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고 법륜대법이 좋다고 인식하면서도 일단 모순에 빠지고 난에 부딪치면 자신을 참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 어찌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본질적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건 가짜 수련이다! 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처갓집을 대신하여 10여 년간 빚을 갚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원망과 저주는 한 두 번 아니었고, 그로 인하여 마음에는 언제나 큰 산에 짓눌려 있는 듯 하였습니다. 나는 늘 남을 착하게 대하려고 해왔고 누굴 해친 적도 없는데 왜 이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전법륜』책을 읽고 나서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내가 왜 장장 10여 년간 처갓집을 대신하여 수천만에 달하는 돈을 갚아줘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전생으로부터 지어온 빚이며 의례히 갚아야 할 빚입니다. 제가 어느 한 시기 역시 상대방을 그처럼 고달프게 굴었으므로 지금은 그 인과보응에 따라 빚을 갚을 따름이다 라고 인식하니 그 어떤 욕도, 원망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은 돈으로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빚을 갚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그 돈 때문에 몸이나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그 돈이 우리에게 속하는 돈이 아니라면 내가 무슨 수단을 써서 돈을 받아도 집식구가 앓거나 또는 무슨 사고를 당해 그 돈을 다 날릴 것이며, 만약 그 돈이 내가 꼭 받아야 할 돈이라면 어느 날인가는 그 돈이 들어올 것이 아닌가? 이건 인간적인 마음으로 속을 태운다고 될 일이 아니고, 무슨 노력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는 수련자이므로 수련자에 입각하여 이 문제를 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자 10여 년 마음 속에 얼어붙었던 빙산이 녹아 내리면서 마음이 그처럼 고요하고 편안했습니다. 사부님은 『전법륜』에서 사람의 일념지차 (一念之差)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밝혔습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자 그날부터 정신적 부담이란 전혀 없고 모든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도 미워 보이지 않았으며 일을 할 때 땀을 흘려도 즐겁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1달 정도 고생한 끝에 집이 완성되고 처갓집 식구들은 새 집에서 수해 걱정 않고 지내게 되었으며 나는 마음 편안히 다시 연공장에 매일 나갈 수 있었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나는 은행돈 1천5백만원을 갚기 위해 그 동안 노후 보장을 위해 넣어 오던 적금과 운전자 안심 보험, 그리고 건강 보험, 암치료보험 등 모든 저축 수단을 다 해약하여 그 은행돈을 갚아 버리고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0에서 새 출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처갓집 일로 인하여 폐결핵까지 걸리며 그 많은 돈을 잃었지만 그 대신 나는 행운하게도 대법을 얻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법을 얻지 않았다면 어찌 이처럼 편안한 심태로 달갑게 수천만에 달하는 빚을 갚아주며, 어찌 처갓집을 이해하고 잘 대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대법수련은 우리 수련자들의 마음이 착해지게끔 변화시켜 주고 사회와 직장, 가정의 안정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처럼 마음이 변화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법륜대법의 위덕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4) 대법이치를 터득해야만 명리 앞에서 담담해질 수 있다

  다음은 내가 나의 직장인 부대 내에서 겪은 두 가지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98년 수해 복구를 한참 해오던 와중에서 부대 내에서 내가 관리하고 있던 통신 선로에도 약간의 피해를 입어 전주에 올라가 전화 선로를 재 가설하고 있었는데 약 100m 전방에서 불도저가 우리 작업하는 방향으로 이동해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나의 승용차를 도로 좌측에 위치해 놓았는데 도로 폭은 10m 정도였기 때문에 불도저가 충분히 지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불도저 운전병이 부주의하면 자칫 내 승용차와 부딪칠 염려가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내 승용차를 50m 전방 안전한 곳으로 차를 피해 놓고 안심하고 하던 작업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나서 하던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도대체 이게 웬 일입니까? 그 불도저가 자기 차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 안전지대에 세워 둔 내 승용차 뒷부분을 덮친 것이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차 뒷부분 문짝은 우그러 들어갔고 뒤 유리창 및 오른쪽 뒷부분 유리창 및 창틀도 완전히 박살이 났습니다. 나는 순간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습니다. 혹시나 해서 안전하게 차를 피해 놓았는데 거기까지 쫓아가서 차를 망쳐 놓았으니 말입니다. 불도저를 살펴보니 불도저 삽날이 들려 있었습니다. 나는 운전병에게 장비를 운행하려면 우선적으로 삽날을 내려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안전하게 운행을 해야 하는데 왜 이처럼 안전한 곳에 피해놓은 승용차를 들이박느냐고 묻자 운전병은 자신도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르겠고 어차피 자기가 잘못했으니 차 수리비용을 변상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부님은 우리들더러 언제어디서든지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나의 심성 제고와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웃으면서 운전병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습니다. 자네가 일부러 내 차를 망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똑같이 수해 복구를 위해 일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니까, 차 수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자네는 염려하지 말고 수해 복구에 전념하라고 다음부터는 운행 시 오늘처럼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일러주고는 불도저 운전병을 보내고 내가 하던 작업을 마쳤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카센터에 가서 차 수리를 하고 부대에 돌아오니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왜 바보처럼 수리비를 물리지 않느냐고 하길래, 나는 속으로 '그 운전병이 나를 도와 작은 업을 갚도록 도와주었으니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며 그 사람들 앞에서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아 '박상사가 왜 저래?' 하고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 후에도 거리에서 다른 차가 신호 대기하고 있는 내 차를 박아 앞 라이트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그때에도 소업한다 생각하고 수리비를 물리지 않고 조심해서 운전하라며 그냥 보내 주었습니다.

  또 한번은 부대에서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부대에서 밤새도록 야간 일직 근무를 서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내 근무 날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근무를 하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내 근무 날짜와 서로 바꿔 내가 근무를 서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점호 행사를 끝내고 시간이 지나자 내무반에 병사들이 취침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부대울타리 경계초소 및 취약지역 안전점검을 위해 야간 순찰을 다녀왔습니다. 순찰을 끝내고 중대에 돌아와 보니 한 병사가 목욕탕에서 씻고 나오다가 목욕탕 문턱에 걸려 넘어져 턱을 다쳤다며 피를 닦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그 병사와 같이 목욕탕에 들어가 현장을 확인하고 넘어진 과정을 재현해 보게 하며 불침번을 불러 그 말이 사실인지도 확인해 보았는데 불침번도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믿고 나는 의무병을 불러 환자 상태를 보게 하였더니 사단 의무대에 가서 군의관과 상의해야 한다기에 환자를 짚차에 태워 밤 11시30분 경 사단 의무대로 갔습니다. 당직 군의관은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X레이 촬영을 해보니 턱뼈가 약간 금이 갔기 때문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군의관과 나는 혹시나 이 병사가 넘어져 다친 게 아니고 구타에 의한 사고가 아닌가 하고 이리저리 따지고 물어보았지만 그 병사는 끝내 자기가 넘어져 다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지휘관에게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보고 드리고 그 병사는 사단 의무대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그 병사는 의무대에서 자기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자기가 넘어져 다친 게 아니고 고참병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한 것입니다. 부모들은 부대에 연락해서 사고 내용을 조사하게 했고 조사 결과 내가 야간 순찰을 나가고 없는 그 시간에 고참병이 후임병을 목욕탕으로 불러내어 후임병이 평소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꾸지람을 하니까 후임병이 말대꾸를 했고 화가 난 고참병이 후임병의 얼굴을 두 대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부대 내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사고를 낸 고참병과 허위 보고한 불침번, 그리고 내가 순찰 나간 사이 이런 사고를 막지 못한 일직 하사와 비록 순찰은 나갔지만 야간에 중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는 나도 같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그 동안 22년 간의 군 생활을 해 오면서 여러 차례의 표창은 많이 받아 보았지만 이렇게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아 보긴 처음이고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고 또 처벌을 받게 되면 앞으로 군 생활하면서 진급 심사할 때에도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대법수련자란 생각에서 부대에서 처벌을 하면 불만 없이 달게 받으리라 마음먹고 징계위원회에 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헌병대 영창 15일간 조치되었고 이번엔 내 처벌 차례가 되었습니다.

  징계위원 6명과 나 자신을 포함한 7명이 나의 징계 의결을 투표로서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처벌을 투표하기가 곤란해 기권했고 나머지 6명이 징계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투표 결과 징계 처리 3표와 무혐의 처리 3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징계위원들은 찬성과 반대표가 반반씩 나왔으니 이것으로 결정하기가 곤란하니 재투표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책에서 스승님이 말씀하신 이 세상 어떤일이나 다 우연하지 않다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자이므로 이 일도 속인처럼 대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속인은 어떡하면 자신을 보호하겠는가고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지만 이 역시 내가 수련자인가 아닌가 하는 또 한 번의 고험이다 라고 생각하고 징계위원들에게 재투표를 하지말고 나를 처벌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징계위원들은 놀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내가 스스로 징계처벌을 받겠다고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징계처벌을 받았고 나에 대한 징계처리 결과가 군 법무부에 통보되고 나의 인사 자력에 좋지 못한 기록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우리 통신과에 있는 병사들이 말썽을 부려서 부대 내에서 내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병사 관리 잘못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일들도 발생했었지만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잘 참고 원망하는 마음 없이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 외에도 내 주변에서 여러 가지 심성 겪을 일이 많이 있었지만 잘한 일 보다는 잘못 넘어온 일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련과정 중에서 겪을 일이 많겠지만 나는 항상 수련생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모순이 생겼을 때 긍정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이 모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 고치고 자연적으로 되어감에 따르려고 합니다. 나는 자신의 수련을 통해 법륜대법이 얼마나 좋은 법이며 저같이 하찮은 인간을 인생의 참뜻을 알게끔 일깨워 준 사부님이 얼마나 위대하며 대법의 위덕이 얼마나 큰가를 마음으로 느껴봅니다. 저의 심성수련은 첫 걸음을 내디딘 데 불과합니다. 앞으로 책을 많이 읽고 모순 속에서 심성을 제고하여 "진선인" 특성에 동화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나라에서의 법륜공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시간의 발언을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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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평생 기다린 것이 바로 이 대법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에서 소기업을 경 영하고 있는 수련생 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을 만나 뵙고 여러분들의 수련경험담을 들을 수 있 는 것이 저로서는 행운이며 자신 수련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아래에 자신의 법륜 대 법 수련 2년 반에 걸친 수련상황을 요약하여 여러분들에게 보고드리오니 동문제자들의 조언이 있 기 를 바랍니다.

1. 내가 한평 생 기다린 것이 바로 이 대법이었다.

젊어서부터 사업을 시작 하여 정신없이 살아오다가 나이 40살이 넘자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나의 정신을 압박하였습니다. 독 실한 카톨릭 집안에 태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님과 접촉도 있었고, 허한 마음 달랠길 없어 붓글씨 와 단소도 불어보고 태극권과 단전호흡도 해보고 주문신유도 접했지만 기존의 종교를 포함해 모두 좋 기는 좋지만 그 무엇인가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10여년간 찾아 헤매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찾는 진리는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우리 직원과 열심히 일하며 살 다가 저 세상에 가야지 하고 술과 담배 기타 놀이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7년 4월 중 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온 우리 직원의 조카가 저의 공장에 오게 되어 저는 그 중국 유학생을 초대하 여 그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제딴에 나는 종교관이 있고 어느 정도 정통관념을 알고 있 다는 점에서 10여분간 윤리, 도덕관에 대한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 중국유 학생이 중국에도 그런 사상이 있는데요 하면서 지금 중국에 일체 종교설을 초월한 대단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나에게 법륜대법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너무나 감동적이라 “바로 내 가 찾던 것이 이것이다!”라는 환희가 차올라 그 식사좌석에서 바로 무릎을 끓고 “사부님”하 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국 유학생은 우리 사부님은 한 분만이시고 앞으로 권사장님께서 수련한다면 우린 다 수련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 사부님의 존함과 법륜공이라 는 수련공법 을 알았습니다. 그 중국유학생은 법륜대법 수련은 심성 수련이 관건이라며 1개월 후에 중 국 연변에서 출판한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갖고 다시 공장에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한 달 후 어느날, 그 중 국 유학생이 나의 사무실에 나타나자 나의 기쁨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책을 주는데 卍자 부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 이거 불교네!”내가 고함치며 나는 그 책이 필요 없다고 하자 그 중국 유학생은 웃으면서 법륜공 수련을 안 하시더라도 일단 한번만은 읽 어보고 그만 두 라고 하면서 그 책을 나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한달 전 나는 내가 일생에서 찾 아 헤매던 것을 찾았다고 무척 기뻐했던 것인데, 오늘 그 기대까지 무너지는 바람에 실망은 이만저만 이 아니었습니다 . 내가 진짜 법을 얻는구나 했더니 무슨 불교에서 나온 것이구나 라고 실망한 나머지 그날오후 부터 술 을 하도 많이 마셔서 의식마저 잃을 정도였습니다.

이튼날 아침 출근하여 소 파에 앉으니 그 책이 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무심결 그 책을 들고 펼쳐 보았는데 “논어”가 나 왔습니다. 내가 그 “논어”의 첫 단락 다섯줄을 읽었는데 갑자기 망치가 나의 머리를 치는 것 같았습니 다. 나는 입으로 경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나는 어제 중국 유학생을 경솔히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 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그 중국 유학생에게 전화로 사과를 드리고 나서 단숨에 “논어”를 읽었습니 다. “논어”를 읽고 난 나는 “이것이 진짜 법이구나! 내가 찾은 것이 바로 이 법이었다!”라고 마음 속으 로 외쳤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때 내가 스승님의 책을 읽고 대법을 얻은 그 감격스러운 심정은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흥분된 나 는 “논어” 읽고 『전법륜』제 1강의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읽을수록 사부님의 매 한 마 디 말씀이 마음에 와 닿고 내 인생살이에서 해명되지 못했던, 사회적으로 판명되지 않았던 일체의 모 든 것이 풀리었고 읽을수록 이홍지 사부님이 내놓은 법이 진짜 법이고 지금까지 알고 있는 대각자들 이 가르친 것을 휠 씬 초월한 우주의 대법임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전법륜』을 읽 고 나의 인생관,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확 바뀌어졌습니다.

내가 수련한지 한달이 되 는 어느날 밤 11 시경, 집사람이 여행을 가서 마중을 나가느라고 밖에 나갔는데 뭔가 머리위에 감각이 있어 뒤돌아 쳐다보니 밤하늘에 동그란 오색찬란한 것이 막 돌았습니다! 나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 라 내눈이 잘못되었나 하여 또 보아도 역시 오색찬란하게 돌았습니다. 그때 나는 이건 아마 환각이겠 지 하고 별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 일을 그 중국 유학생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저가 그 날 밤 본 것이 법륜 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이건 사부님이 날보고 용맹정진하라고 고무 격려해 주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 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불가는 연분을 중히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나도 이 홍지사부님과 인연이 있 고 법륜대법과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로부터 나는 열심히 수련을 잘 하여 정과를 얻고 원만 을 이루리라 마음을 굳게 다졌습니다.

2. 수련이란 바로 속인 이 내려놓지못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법을 얻고나니 당장 무엇 이나 다 수련해낼 것만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착실한 수련으로 들어가자, 어떠한 고비나 다 심성수련이었고 고비마다 갈등과 고통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 서는 우리들더러 언제어디서 든지 자신이 하나의 수련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하며 우리들에게 다 음과 같이 가르치었습니다. “진·선·인 그는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당신이 이 특성에 동화되어야 만이 당신은 비로 소 공이 자랄 수 있으며 당신이 이 특성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당신은 공 이 영원토록 자라지 못한다. ”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마 음속에 세상을 가늠하고 자신 을 가늠하는 표준 “진, 선, 인” 이란 세 글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그 속인의 사상, 더러운 사상을 버리자니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실례 를 들겠습니다. 지금 대구에서 공장을 경영하다보니 사회적인 활동도 많습니다. 그리하여 술, 담배 심 지어 여자도 신이 나게 좋아했 던 것입니다. 『전법륜』을 읽고 수련을 시작하며 이러한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으나, 저의 업무 여건상 사회에 나가면 여전히 이러한 것을 면하기 어렵고 저 의 친구들로 말하면 이런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이런 과정이 있 었습니다. 이전에 법공부를 하 기 전에는 저도 이런건 남자로서, 사업하는 사람으로 마땅한 것으로 여 겼고 심지어는 죄책감마저도 없 었습니다. 수련에 들어서서는 이런 것이 너무나 잘못된 것이고 이런 악습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을 알지만, 친구들의 모임에 참가하고 활동하다 보면 술, 담배 등 을 끊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자책감을 받으며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있었지 만 여전히 이런 습관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 륜』에서 “당신에게 하나의 진리 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적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 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는 우리들에게 가르치었습니다. 또 경문 ‘진수’에서 “당신들은 기억하 라. 수련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관건은 속인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셨 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마음속으 로 여러 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천년에, 만년에도 얻기 어려운 진 짜 법을 얻고도 이런 속인의 집 착심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수련성취되겠는가? 만약 내가 술, 담배, 색 이런 고비를 넘기지 못 한다면 어떻게 수련성취하며 정과를 얻겠는가? 이렇듯 어느 정도 인 식하긴 했지만 수련 중에서 그 나 쁜 뿌리를 뽑아버리는데는 시간과 과정이 있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작년 8월에 싱가폴 교류회에 참석하 고 와서 술을 끊었습니다. 그전에 나는 거의 매일 새벽 1시, 2시 에 집에 들어갔고 거의 날마다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갔으며 담배도 하루에 3갑씩 피우던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련해서부터는 사부님의 법이 있기 때문에는 나는 법 륜공 수련자이다 라고 생각하니 자연히 항상 자신을 단속하게 되고 남을 편하게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은 우리 제자들보고 어디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정에서는 늘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던 사람이 지금은 일찍 집에 오고, 그 전에는 무슨 일이나 내 고집대로 하였고 사소한 일에도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는데 지금은 어떤 일로 아내가 잔소리를 하고 심지어 공장직원 앞에 서 나에게 화를 내도 나는 침착하게 앉아있고 차근차근 이해를 시키자 저희 집사람은 너무나 좋아했습 니다. 저희 집사람은 이 모든 것이 제가 법륜공 수련을 한 덕이라는 것을 알고있기에 처음에는 법륜공을 믿지도 않고 법륜공 이야기만 나오면 반대했던 것인 데 점차적으로 입장이 변하여 지금은 내가 법륜 공 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지지해 나서는데 까지 이르 렀습니다. 그 예로 금년 10월 10일 대구에 서 수원의 교류회에 이어 처음 한국내 전국각지에서 법륜공 수련생들이 모인 법륜대법 심득교류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저의 집사람은 적극적으로 여러분들과 함 께 준비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 게 저를 법륜공 수련을 했기에 딴 사람으로 변했다 고 하며 법륜공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합니다. 제 가 술, 담배를 끓은 사실이 친구들에게는 신기한 충격 적인 화제로 되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은 저를 만 나면 이 일이 진짜인지 문의했으며 어떤 친구는 저의 사무실에 찾아오기까지 하였습니다. 화제는 자연히 법륜공 이야기로 귀속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나 는 매번마다 그들에게 여러 권의 대법 저서 번역문 을 복사하여 주었고 한글판 『중국법륜공』, 『전 법륜』이 출판되자, 100부를 사서 인연 닿는 사 람들에게 무료로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예를 간단히 들 겠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 만 챙기다 나니 상대방에게 해를 줄 때가 많습니 다. 저도 공장을 경영하는데 남으로 인해 피해를 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지금 일단 이런 경우 가 나타나도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고 나에 대한 심성수련으로 간주하여 지난날처럼 남과 다투고 싸우지 않습니다. 심지어 공장에 큰 손실이 생겼는데 도 담담하게 생각하니까 저의 직원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또한 그전에는 우리 가 족과 잘 살아보려고 사업을 하였던 것이나 지 금은 그 의식의 표준이 바뀌어졌습니다.

나는 아직 자비란 무엇인 지를 잘 모르지만 돈에 대한, 재물에 대한 인식이 근 본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금년에 저의 공장직원 들의 복리후생문제로 저와 집사람이 불화를 겪게 된 일 입니다. 물론 수련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이해 가 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전이라면 내가 큰 소리 한 마디면 끝이지만 지금 수련자로서 그럴 수 없 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자, 집사 람은 집을 뿌리치고 나갔습니다. 이는 정말로 평 생토록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이전으로 말하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며 있을 수도 없 는 일입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려고 할 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이것도 나에 대한 한 차례의 심성고험이라는 것을 느끼고 우선 내 자신이 지나치지 않았는가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전이라면 당장 집사람을 집으로 끌고 들어와서 욕을 하며 주먹까지 날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참았습니다. 묵묵히 참노라니 고달프기만 하였습 니다. 다른 고비를 넘길 때도 그러했지 만 이번 고비를 넘기면서 역시 수련이란 이렇게 고달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집사람 이 스스로 집에서 들어섰고 대화를 통하여 우린 서로의 감정 을 풀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 비하 여 저는 신수련생에 불과하며 수련 역시 첫 시작에 불과합니 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의 수련은 하나 는 고생을 겪음에 의거하고 하나는 깨달음에 의거한다고 하셨 는데 고생은 어느 정도 좀 감당할 수 있 으나 여러면에서의 깨우침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것 은 늦게나마 깨달았지만 그 집착심을 제 거하는 데는 반복이 되거나 과정이 너무 깁니다. 뿐만 아니 라 자신의 일체는 법에서 찾아야 하는데 특 히 수련생 내부에서 모순이 나타났을 때 흔히 남을 탓하고 자신에 대한 반성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 다.

저의 수련을 통하여 낮 은 층차에서 체험된 점이라면 일단 자신의 속인적인 것을 당 장 버리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제거해야 되겠다는 생각만을 늘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수련을 통하여 나 자신도 자신이 변하고 있으며 자신이 수련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수련을 통하여 또 한 가지 체험된 점이라면, 진정한 대법수 련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높이 요구하기와 나는 수련 중의 연공인이 다 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느슨히 하기와는 천지지차라, 수련에서 용맹정진할 수 있는가 없는가, 높은 층차로 올라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만약 법륜대법 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홍지 사부 님께서 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인간 에게 소중하고도 소중한 법을 가르쳐 주셨고 수련의 길로 이끌었습 니다. 오로지 착실히 수련하여 사 부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 이 속인의 사상을 제거하며 심성수련을 중시하여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한다면 언젠가는 꼭 수련성취 되어 정과를 얻고 원만되리라 확신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한국 법륜대법이 전해진 상황을 요약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법륜대법이 한 국에 전해진지 4년 남짓 되었 지만 우리 한국수련자들이 법을 널리 전하는데 대한 인식상의 부족과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법의 전파가 이상적으로 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뒤늦게나마 이 점 을 깨우치고 여러 곳의 수련생들 과 토의하여 한국 법륜불법학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동시에 홈페이지 를 개설하여 사부님의 저서 를 올리는 등 수련생들의 수련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금년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중국사태에 대한 매스컴들의 보도로 전 한국사람들이 다 법륜공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가 있는 대구 앞산공원 연 공장을 예로 들더라도 금년 5월 저는 저의 딸을 포함한 다른 3명과 함께 수련했는데 첫날에 10명, 이 튼날에 20명, 제3일째는 30명으로 늘어나 지금 50∼60명 수련자 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울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우리 수련생들이 열심히 법을 전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연공장이 적고 여전히 초창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의 법이 있 는 만큼 한국에 인연 있는 사람들이 조만간 법을 얻으리라 믿으면서 우리 자신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법을 널리 전하는데 나설 것임을 다짐합니다. 그리하여 내년 적당한 시기에 우리 한국에서도 이런 법 회를 개최할 수 있으리라 전망하면서 여러 나라 도수제자들과의 교류를 기대하 겠습니 다.

마지막으로 이 법회를 개 최한 일본 수련생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법을 스승으로 삼아 수련의 길 에서 용맹정진 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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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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