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입니다.
여러분의 성장과 배움을 원조하는 존재로서 이해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인간은 자신의 본질에 눈을 뜨고, 빛이 되어 활동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매일마다 스스로 깨닫고 눈치채기 위한 여러가지 현상들이 매우 많은 밀도로 짜여져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배움의 방식과는 다른
현실의 체험 하나하나에 대해 일깨움을 가져오는 적극적인 에너지와 행동력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수동적인 배움이란 책이나 강의를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표현할 수 없거나, 머리로서는 알고 있어도 행동할 수 없는..
그리하여 자신이 이해한 영적 가르침과 현실의 실제 상황 사이에 괴리가 일어나게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제 아무리 영성서적을 읽거나 혹은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해도
계속 받기만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좀처럼 진척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영성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과정이기에
그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거나 스스로 잘못되었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단계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공부하고 이해한 가르침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현실에 하나하나 대입하여,
그 현상 안에 숨겨진 본질적인 의미를 스스로의 힘으로 눈치채가는,
그러한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공부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신이 공부한 가르침에서 스스로 얻어낸 여러가지 아이디어나 느낌들
이것을 어떻게 자신의 실제의 삶의 방식에 적용시켜 나갈 것인가.. 이것은 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사회와 교육, 종교를 통해, 또 훌륭한 스승을 통해
모범적이고 상식적인..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자신을 맞추고 따르는 것에 안심감을 느끼고
거기에 맞으면 올바른 것이고, 맞지 않으면 잘못된 방식이라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방식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각자의 현실이 스스로의 배움의 테마에 맞추어 점점 다르게 짜여지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공통된 대답을 얻거나, 또 섯불리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고 판단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과 자신의 것을 비교해 보더라도 맞지 않고,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결국 각자의 삶의 현상이나 상황들을 스스로 잘 살펴보고, 그 안에서 숨겨진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고 눈치채가면서
점점 자신을 성장시켜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집약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오라소마의 빛깔의 관점으로 이야기한다면
각자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배우는 교훈이
스스로 영혼의 레벨에서 가져온 빛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겉으로는 완전히 같은 현상처럼 보이는 것 안에서도
각 사람이 체험을 통해 배우고 알아차리는 포인트가 전혀 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양극대립의 에너지가 강한 이 나라의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고 싶다, 훌륭한 것을 다른 사람보다 빨리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채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은 오라소마적으로 레드적인 가치관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고 싶다는 마음은 동시에 자신보다 뒤쳐지는 사람을 자신의 현실에서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속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길을 방해하고 끌어내리는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훌륭한 것을 빨리 손에 넣고 기뻐하면, 그것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간다는 것은 좀더 빨리 깨어나 자신의 삶의 목적을 실현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취적인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도 깨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마음 깊이 눈치채가면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일깨움의 에너지를 제공할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
한편 자신이 무엇을 성취하더라도 타인과 비교함을 통해서 만족감을 얻고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것에 불복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쁨이나 만족으로 여기는 일들이
그들에게 불쾌함이나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자신이 매우 당당하게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엇이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
이것을 삶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옐로우 광선이 지닌 건설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입니다만... 다른 사람은 자신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쉽고
그에 따라 자신 혼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해서 스스로 잘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는 좀처럼 맡기기 어렵게 됩니다.
이 경우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도 접해오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타인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기 쉽기 때문입니다.
한편 반대로 자신은 언제나 물러나있고 나서지 않으면서
전체에게 자신을 맞추고, 때로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에 따라 서로가 잘 되어가는 삶의 방식을 추구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바이올렛 광선 가운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하고 선한 사람의 미덕입니다.
이 경우 그 사람과 접하는 사람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경우에는 보이지 않게 매우 훌륭한 기능을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강한 불쾌감을 내면서 그들을 자신의 바라는 대로 하려는 강한 집착의 에너지를 내게 됩니다. 혹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자신의 잘못이나 탓으로 돌리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강한 에너지를 내기도 합니다.
본래 이 사람은 본인 자신이 현실에서는 배후에 있으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공헌하는 역할을 하곤 하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상황이나 전체적인 흐름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보이지 않게 강한 자학과 부정의 에너지를 내어, 전체적인 흐름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는 레팅고우(Letting Go),
즉 자신의 방식과 사람들의의 방식에 다름이 느껴졌을 때에는,
무리하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보내는 방식을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가지 영혼의 빛깔을 적용해 삶의 주제와 방식을 언급해 보았습니다만,
실제로는 굉장히 다양한 빛깔들이 존재하고, 또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또 같은 광선이라도 반드시 같지는 않고 그 종류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결국 인간 한사람 한사람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테마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만의 올바른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가야 할까요?
우선 최초에는 자신이 그동안 배우고 이해한 것을 통해,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한 삶의 방식이 있다면,
자신을 가지고 실천하고, 현실에서 표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했음에도 현실에서 여러가지 곤란함과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 현실 안에 어떤 배움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교훈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영성계에서 여러가지 가르침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해오신 많은 분들은 이런 배움의 단계에 와 있습니다.
자신의 고유한 의사와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잘 만들어가고 싶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에너지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이 자신의 바람대로 잘 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알아차리리 않은 나의 마음의 어떤 부분에 원인이 있었을까?" 이것을 스스로 발견해가는 것, 이것은 영성을 실천해가는 훌륭한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겪은 괴로움이나 곤란함의 원인을 마음 속에서 찾아가고 이해해 나가면,
자신이 어떤 마음을 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면 어떤 방식으로 흘러 가는지, 이것을 점점 구체적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것은 붓다가 시범으로 보여준 것이며,
오라소마를 공부하는 분들은 클리어광선의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주제로 공부하셨을 것입니다.
붓다의 팔정도의 반성의 지관이 모범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마음 가운데 그러한 괴로움의 이유를 찾아내고자 여러모로 반성하고 궁리해
대우주의 마음, 대자연의 마음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으로 매순간 바꾸어 간다...
이 지점까지 도달한 사람은 상당히 성장한 것이며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라한, 미스테리스쿨 관점에서는 제3 이니시에이션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같이 현실을 잘 다루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해 간다 하더라도
현상의 드러난 양상만을 이해하고, 그 현상만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변화시키려는 사람과
현상의 드러난 양상만이 아니라, 현상 속에 숨겨진 본질을 이해해
즉 왜 우주가 이런 현상을 자신의 눈 앞에 가져다 주었는지, 현상 안에 있는 대우주의 마음을 눈치채가는 사람 간에는
성장의 속도가 매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즉 단지 현상에만 주의를 향하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현상이나 체험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수정해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대우주의 마음과 법칙과 연결되기 쉬워지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확실히 바꾸어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일상의 작은 체험에서도 많은 것들을 꺼내어 가져올 수 있어,
점점 동일한 것을 반복적으로 체험하는 일은 줄어들고, 매순간 창조적이고 생생한 체험이 들어오게 됩니다.
사실 현상의 배후에 있는 숨겨진 의미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실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매일마다 나타나는 많은 현실 가운데에는 실제로 다양하고 복잡한 법칙과 구조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마음의 에너지만이 아니며, 여러 사람들간의 상념과 구상의 부닺힘이나 통합, 본래의 자신의 스피릿의 계획,
현상화를 위한 적절한 시간과 장소 등 여러가지 변수의 영향에 의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하게 "~~하기 때문에 ~~게 된다" 는 식으로 성급히 판단하면, 본래와는 다르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 현상적인 면에 아직도 의식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때에는 좀더 근본이 되는, 본래의 것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현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고정적인 시스템을 활용하는 분들이 실제로 그러한 오류에 빠지는 경향이 꽤 있습니다.
동양의 사주나 천문, 음양오행, 서양의 타롯과 카발라, 점성학.... 이러한 모든 것은 현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성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에 이러한 것의 도움을 받아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것에 의지하거나 갇혀서는 안되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사용하여, 좀더 근본적인 부분까지 스스로 들어가는 도구로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상의 의미를 하나 하나 해석해 가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만
어느 시점부터는 더이상은 좀처럼 성장이 진행되지 않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여러가지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의 하나 하나를 일일히 듣거나 분석하지 않아도
그 안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맥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면 단 몇개의 현상들을 확인함을 통해서, 그곳에 흐르고 있는 본질적인 맥이나 핵심을 캐치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나머지는 어떠한 현상들이 일어날지라도 곧바로 스스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옛말이 있는 거처럼
이것이 최종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배움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