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이야기, 윤회 이야기] 귀로조천(歸路朝天) - 하늘로 돌아가는 길
생명기실:귀로조천(歸路朝天)
작자:소연(小蓮)
【정견망 2008년 7월 3일】
윗글 ‘천우중화(天佑中華)’는 전체적으로 중화문명은 신이 직접 안배하고 보우하여 오늘날까지 걸어온 것임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지금 중화대지에 나타나는 각종 재난은 우리더러 반드시 덕을 닦아야 오곡이 풍성하고 편안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삼퇴를 권하는 것’은 바로 우리더러 서양에서 건너온 유령(공산악당)의 통제를 벗어나 다시는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이 되지 않고 중화 자녀의 행렬도 돌어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자체도 중화문화에 대한 일종 신의 가호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부디 이 만나기 힘든 역사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각설하고 아래에서 중화문화의 가장 신비한 부분인 수련문화에 대해 말해보자.
우리가 언급하려는 것은 ‘수련(修煉)’인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일종 기이한 것으로 느낀다. 당신들은 돈과 미녀가 있어도 즐기려 하지 않고 더욱 고상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니 정말로 불가사의 하다고 느낀다.
사실 중화문화 중에서 수련에 대한 기초를 다져준 것은 아주 멀고 오랜 역사가 있다. 황제(黄帝)는 도가학파의 창시인으로 존칭되며 나중에 춘추시대에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나타났다.
도가는 깨끗한 수련(淸修)을 말하며 유가는 어떻게 임금에 충성하고 어질며 효성스러운가 등을 말한다. 나중에 중국에 전해진 불가는 자비로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한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도덕표준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 일부 공능이 쉽게 나타났는데 이런 신의 흔적은 나중에 사람들에 의해 신화내지는 지어낸 이야기로 취급받았다.
사실 고대에 역대 군왕은 수련인을 몹시 중시했으며 어떤 이는 국사(國師)등 고관으로 봉해지기도 했다. 상(商)나라 말기에 강자아(姜子牙 강태공)는 주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을 받았고 나중에 아들인 무왕(武王)을 도와 주나라 8백년 사직의 기틀을 다졌다. 우리는 강자아가 원시천존(元始天尊)의 제자이자 오랫동안 도를 닦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국시기에 손빈(孫臏)은 일찍이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나중에 군사(軍師)가 되었다. 삼국시대 제갈공명의 신기묘산(神機妙算)은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死而後已-죽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하다)” 라는 전기적인 이야기를 낳았다. 수나라 말기의 위징 역시 수도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번리화(樊篱花)는 수도한 사람이 아닌가? 또 명나라 때의 유백온(劉伯溫)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우 많은 유명한 문인 묵객들이 자신을 모모 거사(居士)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태백거사로 불렸고 소식(蘇軾 소동파)는 동파거사로 불리는 등이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단지 중화 문화의 역사 중에 수련의 문화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당시 사람들은 수련자를 매우 숭상하고 존경했다.
당시에는 도덕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오성 역시 지금 사람들보다 아주 좋았다. 그러면 기회와 인연이 닿았을 때 득도한 고인의 점오를 받아 혹은 세간에서 혹은 사찰에서 각고의 수행을 했으며 최후에 자신의 해탈에 도달했다. 고대에 이런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曲径通幽處(곡경통유처),
禪房花木深(선방화목심)”
굽은 길 그윽한 곳으로 통하고
선방의 꽃나무 깊네
“南朝四百八十寺(남조480사),
多少樓臺烟雨中(다소누대연우중)”
남조 사백팔십 사찰
얼마나 많은 누대가 연기와 빗속에 잠겼는가.
옛 절의 깊고 그윽함을 노래한 이러한 시는 경치와 수련인의 심경을 적은 나타낸 것일 뿐 아니라 당시에 수련문화가 많이 보급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나는 이전에 사전문화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는 진화론에 대한 사람들의 미신을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다른 고층공간에서 온 것이다. 사람을 만든 신은 단지 사람의 신체만 만들었지 진정한 사람의 생명은 이곳에서 내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인간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며 천상의 부동한 공간이 우리가 온 곳이며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사회에서 일종 수련의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실천을 통해 하늘로 통하는 올라가는 길을 걸었다.
현재 정법의 각도에서 보면 과거 심산이나 민간에서 유전되던 모든 수련방식은 모두 인류에게 수련의 문화를 다져주기 위한 것이다. 그럼 반대로 말해 5천년을 지나온 중화 역사는 수련문화에 대한 다져준 것이고 오늘 많은 고층 생명 역시 각기 다른 고층차와 온갖 어려움을 겪고 인간 세상에서 무수한 윤회를 거쳐 비로소 무엇이 수련이며 무엇이 부처인지, 무엇이 영원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인지 등등 수련의 내포를 알게 된 것이다. 또한 대법수련을 통해야만 비로소 반본귀진(返本歸眞)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총론’ 부분은 여기까지다. 우리는 이어지는 ‘위풍전고(威風戰鼓)’에서 진정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해보자.
출처: 파룬따파 정견망 www.zhengji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