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알다시피, 수련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럼 사람 마음이 떠오를 것이며, 표현상에서 여러분은 모두 보게 된다. 그럼 사람 마음 중에는
각종각양의 사람의 생각, 각종각양의 사상 내원이, 모두 당신에 대해 교란할 것이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한 부류의 생명 상태에 부합되든지 막론하고,
어느 한 부류의 생명은 즉시 작용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 우주의 복잡한 정도, 그것은 사람의 언어로 형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데, 너무나도
복잡하다. 동등한 층차 중에도 허다하고 허다한 각종
요소로 구성된 공간이 있는데,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있다.
우주 중의 부동한 입자로 구성된 공간 중에는 또 허다하고 허다한 각종 유형(類型)의 원소로 구성된 각종 공간이 있고, 입자 자체의 특성과 부동한
유형(類型)과 부동한 대소 입자로 구성된 각 부류의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의 대소 종류가 무량무계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유형의 생명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는데, 당신은 오히려 당신 사상 내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당신은 여전히 자신이 이렇게 하려고
한 것으로 여긴다. 사실 단지 당신의 집착 때문에 그것들이 작용을 일으키도록 한 것인데, 이로써 당신의 집착을 강화시켰다.
사상의 내원을 말하자면, 많은 사람이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자도 연구하고 있는데, 사람의 대뇌의 공능과 사상은 어떻게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전에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대뇌는 실제상 바로 인류 이 한 층의 사유구조와 표현방식의
가공공장으로, 당신의 형체적인 동작이든, 당신의 언어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든, 당신의 언어가 말한 구조방식이든,
그것은 바로 이런 작용—모양을 가공해 내는 작용을 일으킨다. 어떤 염두는 금생금세에 형성된 관념에서 온 것이고, 어떤 것은 애호하는
집착에서 나온 것인데, 그러나 그런 좀 큰 일의 염두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의 기점은 어디인가? 이 공간에 있지 않다. 엄격히 말하자면, 관건적일 때 근본적인 자신이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정황 하에서, 관념과 애호를
강화하는 사상의 내원은, 어느 공간에든 다
있으며, 게다가 사람의 도덕 층차와 관계가
있다; 어떤 사람의 사상은 좀 높은 경지에서 왔고, 어떤
사람의 사상은 아주 낮은 경지에서 왔는데, 그러므로 사람의 도덕 층면이 부동함에 따라 일을 하고
문제를 생각하는 수준도 같지 않다. 공간의 복잡한 정도가 매우 많은데,
저층에서 고층에 이르기까지, 동등한 층차에도 또한 허다한 공간이 있으며, 게다가 횡적인 공간은 더욱
많고, 종적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많다. 각 부류의 생명
그것의 밀도도 대단히 커서, 모두 사람을 교란할 수 있는데,
법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수련인을 포함해서이다.
사람의 형체는 이 우주 중에서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큰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더욱 미시적인 입자일수록 에너지가 더욱 큰데,
현대과학은 방사성이 더욱 강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 원자로 구성된 생명, 그것의 입자가 작기 때문에, 그것으로 구성된 생명도 틀림없이
작다. 물론 더욱 미시적인 전반 층면의 그 큰 생명은,
역시 부동한 층차의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부동한 큰 생명이 있는데,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마치 인체를 구성하는 것처럼 같은 수량의 입자는,
그 입자가 크고 작음을 상관하지 말고, 수량만 말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많은 입자로 구성된 한 생명이라면, 상대적으로 말해 개체(個體)는 작다. 더욱
미시적인 것은 더욱 작을 것이며, 더욱 미시적인 것은 더욱 작고 더욱 작을 것인데, 하지만 지혜는 더욱 클 것이다. 왜냐하면 층차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떤 많은 극히 미시적인 공간 속의
부처와 신 역시 아주 미시적인데, 그러나 부처가 펼쳐 나온다면 대단히 클 것이다. 부동한 대소 입자로 구성된 공간에 모두 부처가 있으며, 일부는
아주 가능하게 그는 작은 공간에서 왔을 수 있는데, 심지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각 공간 대소는 같지 않으며, 대소 공간, 대소 입자로 구성된 불도신(佛道神)이 모두 있는 것으로,
나는 바로 이 뜻을 이야기한다. 그럼 미시적인 공간의 생명 또한 불도신만 있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여러분 알다시피 많은 각
부류의 각종각양의 생명이 있는데, 대단히 복잡하다. 우리
인간세상에도 각종 인종과 각종 부동한 민족이 있는데, 그럼 기타 공간은 더욱 복잡하고 역사가 더욱
오래고 멀다. 그러므로 당신이 누구에게 부합되든지 간에,
그것이 모두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한 가지이다.
또 하나는 바로 인체의 구조이다. 삼계 내의 모든 물질 입자는 모두 삼계 일체 물체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역시 인체를 구성하는 전부 입자인데, 그러므로 대단히 많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분자, 원자,
쿼크, 중성미자, 양성자는,
사실 모두 삼계 내의 입자이며, 게다가 삼계 내의 사람 이 한 층 표면공간을 구성하는
입자인 것으로, 삼계 안을 구성하는 입자인데, 삼계 밖의
그러한 입자와 다르며 구조도 같지 않다. 하지만 이미 굉장히 방대하고 복잡하며 굉장히 많다. 왜냐하면 당신의 신체는 분자로 구성된 것으로, 분자가 세포를
구성했고, 세포가 당신을 구성했기 때문인데, 그럼 당신
분자 이하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알게 되었듯이 원자로 구성된 것이고,
원자에서 더 내려가면 바로 원자핵, 양성자,
중성미자인데, 줄곧 인류가 또 새로운
발견이 있기까지이다. 바로 인류가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영원히 인체의 최종 구성입자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없는데, 다시 말해서 삼계 최고 한 층 입자인바,
하지만 그것은 우주 중에서 가장 낮고 가장 낮은 입자 중의 한 층에 불과하다.
방금 내가 말한 뜻은 바로
여러분에게, 사상 그것의 내원은 실제상 극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은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명의
과정을 향수(享受)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과거에 사람은 아주 가련하다고 말했는데, 사람은 이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활과정 중에 사람에게 가져다 준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비교적 정확하다. 무슨 뜻인가?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후천적으로 양성된 일종 애호 중의 습관과 집착인 것으로, 느낌을 추구하고
있는데, 단지 요만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배후의 요소는, 사람의 습관,
집착, 관념, 욕망 이러한 것을 이용해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진정한 인체는 바로 이러하며, 단지
생활과정 중에서 가져온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으로, 당신에게 단 것을 주면 당신은 단 것을
알고, 당신에게 쓴 것을 주면 당신은 쓴 것을 알고,
당신에게 매운 것을 주면 당신은 매운 것을 알고, 당신에게 고통을 주면 당신은 괴로움을
알고, 당신에게 행복을 주면 당신은 기쁨을 안다.
대법제자의 진아(眞我)는 모두 고층에서 온 것으로, 나는 다만 사람과 인체를 구성하는
구조를 말할 뿐이다. 나는 방금 사람의 사상 내원(來源)을 말했는데, 나는 정법 중에서 한 가지 정황을 보았다: 정법이 이르지 못한 공간 중에서, 어떤 때 대법제자의 한 가지
생각이 비교적 바르면, 바로 한 정신(正神) 혹은 요소가 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의 정념을 가지(加持)해 주고 있다.
어떤 때 대법제자가 서로 협력을 잘 하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고 있을
때, 나는 일부 변이된 생명들을 보았는데, 어떤 것은 또
대단히 크며,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다. 게다가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저층차에 부합하면서 층층의 좋지
못한 생명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내가 선과 악 두 면이 사람에게 다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의 생각이 막 나갈 때면 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는 굉장히 복잡하다. 그러나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모두 하나의 진정한 자신이
있으며, 목적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얻고 조사정법을
하려는 것이든, 당신이 당신 그 이전의 세계 중생을 구도하려는 것이든,
이 일념(一念)을 품고 왔는데, 그 진정한 당신은 보호된 것으로, 진정한 당신 자신이 시작할 때는
주도적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분 알다시피,
삼계에 진입한 후에 마치 흙에 묻힌 것과 같이, 점차적으로 주도적 작용을 일으킬 수
없으며, 심지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신은 “내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중국인은 여와
역시 흙으로 중국인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천국세계에서 본다면,
지상의 모든 분자, 원자를 포함해서, 삼계
내의 입자,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그런 입자들은, 신의
눈으로 보건대 모두 더러운 것이며, 모두 흙인데,
신계(神界)의 물질입자는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순정(純净)하며,
에너지가 더욱 크다. 그들이 보건대, 사람
여기는 정말로 흙이고, 모두 진흙이다. 인체는 바로 신이
삼계 내에서 흙이라고 여기는 이러한 입자로 구성된 것이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그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고,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물론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신의 행위와 사람의 행위는 같은 개념이 아닌 것으로, 일념이면 바로 이뤄지고, 손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럼 이처럼 저급적인 인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당신의 사상 경지가 어떤 것에
부합되면, 어떤 것이 바로 당신을 지배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며 무엇에 집착할 때를 발견했을 때, 마침 그것에 부합되어,
그것은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
사람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화를 분출할 때, 부면적인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모두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며, 그것이 바로 증오이고, 그것이 바로 부동한 것인데, 그럼 그것은 자연적으로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정법 기간에, 모든 우주 중의 정부(正負) 생명은 모두 이번 정법 중에서 능히 구도 받으려 하는데, 최고의 층층의 무량하고
거대한 신을 포함하고, 특히 그것의 그런 세계의 중생을 포함하며,
이로써 그것들은 모두 세간과 삼계 내에 발 하나를 들여놓았는데, 그것들이 이
만겁(萬劫)에도 만날 수 없는 목숨을 구할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모두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러나
표현형식은 세간의 논리로 인식하는 그것과 같지 않은 것으로, 사람에게 요청을 할 때 아주 예의 바르게
해야 하며 아주 겸손해야만 비로소 되는: 당신이 나를 구해주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드리겠다, 내가
당신에게 편리를 제공하겠다,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내 이
층차에 도달할 수 있어야만 되고, 당신은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럼 그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곤두박질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며,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하고,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을
세워,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어야만,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이렇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전에, 대법제자는 한 수련인으로서,
문제를 봄에 있어 사람과 마땅히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언짢은 일에
부딪히면 기분 나빠 하는데, 그럼 당신은 바로 사람이 아닌가?
무슨 구별이 있는가? 언짢은 일에 부딪혔을 때가,
바로 당신 자신을 수련할 때이며 마음을 수련할 때이다. 과거 종교 중에서 안을 향해
마음을 닦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현재의 사람 그가 한 말을 듣지 말라, 그는 참 뜻이 어찌된 일인지 꼭 아는 것은 아니다.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수련하며, 모순에 부딪히고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이 어디에서 틀렸는지 살펴보고, 내가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법으로 가늠하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이 바로 수련이 아닌가? 당신이 출가하든지, 당신이 집에서 수련하든지, 속인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데, 당신은 자신을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 이익과
자아를 충격하는 일에 부딪힐 때, 당신이 능히 안으로 보고,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의 누락을 찾고, 모순
중에서 당신이 설사 무고(無辜)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오, 나는 알았다, 내가 반드시 무언가 잘하지 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더라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하고, 마땅히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이러한
일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수련한다. 그럼 만약
수련인이 이처럼 문제를 보고, 바른 이치(正理)로 자신을 수련한다면,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부딪힌 언짢은 일은 좋은 일이 아닌가?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고, 당신이 삼계를 이탈하고자 하며, 당신이 당신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당신이 당신 그 일방(一方)세계의 중생을 구도하려고 하며, 당신이 정말로 조사정법 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당신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이것이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그런 좋지 못한 일에 부딪힌 것은 바로 당신에게 길을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기분 나빠 하는가?
-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 2011년 워싱턴특구법회 설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