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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올의 EBS 중용 강의에서 아쉬운 점 몇가지.

Date : 2011-11-19  05:28   유전


도올이라는 동양 철학교수가 세계의 종교들을 두루 접하면서 그동안 도교, 불교, 기독교, 유교 등의 종교 경전을 두고 강의를 여러차례 해 왔는데, 한번이라도 제대로 종교인의 입장에서 수행한 경험도 없이 학술적 철학만으로 종교를 헤아려 단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구나 이 종교 저 종교를 수시로 언급하면서 그것들을 모두 통합이라도 한듯이 발언하는 과정을 보면, 스스로의 통합에 대한 중심이 없기 때문에 어느 강의에서는 어떠한 관점에 대하여 확신하며 다짐 하듯이 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날의 강의에서는 언제 그러한 발언을 했냐는 듯이 전혀 다른 말을 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이번 중용 강의에서만 해도 그렇다. 강의 초반의 어느날에서는 길지도 않은 짧은 강의 시간의 대부분을 중용이나 유교와 거의 상관 없는 무속인 김금화의 신내림 과정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달인의 경지에 들어간 인간의 맛이나 멋이라고 하는 예술적 경지를 언급 했는데, 이번 21강의에서는 素隱行怪(색 - 소은행괴)를 설명하면서 "도인들이나 찾아다니고 주역이나 점괘...이런거 다 색은행교이다. 색은행교를 좋아하는 이들이 대개 사교(邪敎)를 따른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색은행교와 사교를 행하는 대표적 입장에 있는 자들이 바로 무속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교를 따르는 대표적 무속인을 언급하면서 작두 타는 모습을 감탄해 가며 설명한 일들은 무엇이었던가? 도올이 보기에 무속인은 그러한 작두 타는 일이 달인의 맛이나 멋을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로써의 가치 이외에, 즉 무속인의 본질에 속하는 행위들은 모두 사교이며, 사악한 미친 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두고 이번 중용 강의 이전의 다른 여러 차례의 강연에서 부터 지금까지 김금화를 언급해 왔던 것인가?


무속인들에게 가서 물어 보라. 그들의 작두를 타는 것이 과연 예술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이고 그러한 작두 예술을 원래 부터 좋아해서 스스로 무속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 모두라고 해도 좋을만큼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무속인이 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알 수 없는 신내림 현상에서 시작하여 많게는 수십년간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싸워가며 버티다가 결국 신을 받아들이는 내릿굿을 받고 멀쩡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교의 가장 낮은 급이 바로 무속인이다. 현재의 한국 무속인들 대다수가 여성들이 일반적이고 예전과 달리 박수(남자 무속인)가 적은 이유는 그 급수가 높아져 잡신에 대하여 버텨내는 힘이 강하고 작두를 타거나 신점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어서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닌, 내림 받은 신의 수준에 관한 문제로, 그러한 신내림을 받았다가도 더 높은 급수의 신을 다시 받게 되면 점차 무위無爲에 가까운 도인이 되기 때문에 작두를 타지 않거나 신점이 맞지 않기도 하여서 신기神氣가 빠져 보이기도 한다) 도인으로 불리게 되는데 모든 도인들이 사교(邪敎)를 만들거나 혹세무민 하는듯이 말하는 행태는 잘못이다.


불교나 기독교도 그들에 속한 악한 종교인들을 역사적으로 수 없이 겪어 왔고 그러한 현상들은 현재까지 진행중이어서 목회자나 중들의 일부 악한 행태는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들을 무수히 많게 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낮은 급수의 여성 무속인들이나 주역 또는 사주를 풀어 점괘를 설명하는 행위도 때로는 악한 마음으로 저지르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많은 무속인들과 점술가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양심 속에서,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문제의 요지는 어떠한 종교적 행위를 하는 이들의 마음가짐 상태에 있는 것이지 그러한 모든 행위가 사교이기 때문이 아니며 일부러 타인을 속여먹기 위한 혹세무민(誣 속일 무)은 아닌 것이다.


낮은 급수의 道라고 하여도 노자의 도덕경에서 언급된 것 처럼 도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는 덕(德)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여 펼쳐지기 때문이며 이것은 한국 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화두와 같이, 보리라고 하는 진리는 높은 곳에 있지만 그 얻은 진리를 펼치는 곳은 낮은 중생에게 지혜로써 방편으로 화한다는 설명과, 기독교의 "낮은 곳(땅의 나라)에 임하옵시며" 와도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낮은 급수의 무속인들 또한 현세에서 그들의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일 뿐이며 그것이 덕을 베푸는 행위라 믿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언급된 사주나 주역 그리고 성명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먼저 사주(년,월,일,시를 각각 2개의 한자로 표현)라고 하는 여덟글자(팔자)에 따라서 태어난 년도와 계절(월일, 해와 달의 상태나 모양에 따른 영향) 그리고 낮과 밤 초저녁이나 새벽 등의 상황에 맞춰, 아이의 첫호흡을 한 전체적인 기운의 시기를 보아 그 당시의 기운이 갓난 아이의 몸 속에 들어 오고 그러한 시기적 계절적 영향에 따라 아이의 몸 상태의 구성이나 정신적 기운들이 일정한 동일율 속에 반복적이며 통계학적으로 일치함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수리(數理 단순히 아라비아 숫자와 같이 숫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뜻하는 한자의 통계학적 진법 변환 법칙의 수)를 응용하여 인간의 마음을 측정하고 연구하여 실생활의 평안과 희망을 주는 대표적 학문이 사주학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강의에서도 도올은 다른 여러 강의와 같이 한의사로서 사상의학을 또 언급 하였고 그렇게 알고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서는 대단한 일인양 박수를 받고 또 실제로도 누군가를 진맥하고 문진을 통하여 처방을 하며 침도 놓을 것이다. 인간의 복잡한 신체를 4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일이 과연 MRI나 초음파 영상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현재의 기준에서 볼 때 도올의 말대로라면 이것이야 말로 색은행괴이며 혹세무민을 몸소 실천하는 행위라 하겠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으로도 한의학의 신뢰는 오히려 퇴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점차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어 가는 현실적 측면이 있고 어떠한 학술적 설명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증세의 호전이나 치료가 가능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믿음으로 한의술을 행하는 것이지 이것을 마치 누군가 일부러 속이거나 해칠려고 하는 행위라며 TV 공중파에 나와 강의 한다면 도올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한의사로서 본인부터 수긍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을 수긍한다면 양심에 따라 한의사 자격증을 반납 했어야 옳다.


유교의 가장 대표적 경전은 논어이다.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편을 보면 첫 시작을 이렇게 한다.


堯曰 咨 爾舜 天之曆數 在爾躬 允執其中.
요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그대 순(임금)이여! 하늘이 정해진 뜻이 바로 그대에게 와 있으니, 진실로 중용의 도를 지키도록 하라.(번역 김형찬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철학과 졸업. 고려대 철학박사. 고려대 연구교수)


위 번역자가 독자들의 이해가 쉽도록 일부러 의역을 심하게 한 편이기는 하나, 여기서 필요한 부분은 "천지역수(天之曆數)"만 해당되기 때문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경전이라는 논어의 마지막 편에 천지역수가 들어 있다. 천지역수가 무엇인가?


주역(周易)은 8괘를 비롯하여 64괘가 있는데, 64괘를 구성하는 6개의 효(爻)를 육효라 한다. 사주학이 8자에 해당되는 한문으로 10천간과 12지지를 순서에 따라 교차적으로 사용한 시간적 해석이라면 주역은 공간적 해석 즉 방위에 관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주역의 8괘나 6효들이 처음 사용되는 방법을 보면 공간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 대하여 다소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의 3대 발명품이라고 하는 종이, 화약, 나침반 이라고 하는 주장이 공인된 입장에서 BC 2600년 황제 시대에 지남거(자석=지남철:쪽을 가리키는 철)가 있었다고 하며 그 나침반과 8괘 그리고 10천간과 12지지를 사용하여 한국의 삼국시대에도 풍수지리를 보는 지관들이 휴대하고 다녔던 패철(윤도)을 보면, 주역이 발전하여 그리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고대 수메르인들의 60진법에 따라 현재 6각형을 접하는 원(圓)의 각도가 360도로 세계 표준이 되었다는 것이 공식적 입장이다. 수메르인들의 기원이 척박한 사막의 땅이 아니라면 아시아 동쪽의 문명에서 갔을 수도 있으며 이것은 소금이 없으면 인간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대륙 깊숙이 들어가 염분 부족으로 죽게 될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고 따라서 일찍 부터 고대 사회는 해양 문명이 먼저 발달 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그 이후에 비(雨)로 부터 안전하고 배가 없이도 강을 넘을 수 있는 소금 보관의 문제가 해결 된 이후에 내륙 깊숙이 확산 되었을 것이다.


아시아 동쪽에서 바다와 강(식수가 필요) 그리고 열매가 흔한 산들이 많고 기후 또한 사계절로 여러가지 계절적 문화가 복합적인 부족들의 문명이 일찍 발달 하였을 것이라는 것도 감안한다면 중국의 나침반과 함께 주역의 갖가지 수리적 진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안전한 바닷길을 열고 그러한 해양문명이 전세계 전대륙을 돌아 다녔다는 사실도 가능한 일이다. 달나라에 일찍 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그러하듯이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는 던전에서 보물을 기대하는 심리 이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도달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점하는 이치이다.


그러한 주역이라는 시작에 인하여, 현재 과학이라는 이름이 득세하기 이전까지 양택(집)과 음택(묘지)을 사용함에 있어 지극히 가난한 이라 하여도 조상의 묘만큼은 성심을 다하여 모셔야겠다는 의지가 발현 되었을 것이다. 묘자리 하나 때문에 문중의 모든이들이 모여 격론을 넘어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풍수지리학 또한 현재의 과학에서 보면 누군가는 말도 되지 않는 학문이라 냉소할지 모르겠지만, 유교 가족사회에서의 집을 선택함에 있어 지리적 입장이나 구조상의 화두는 대단히 중요하여 주변 지형의 산세나 물길 바람의 세기나 태양을 향한 방향에 따라 그 집안의 인간들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한 가능한 범위의 모든 지혜를 발휘하여 풍수지리학적으로 설계되어 짓게 된다.


자신들이 살 집에도 그러한 것과 같이 죽은이를 위한 조상의 묘자리 또한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며 그러한 지극한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묘자리의 선택 또한 오히려 양택 보다 더한 비중을 두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정성스러운 마음이 어찌 색은행괴나 혹세무민으로 일도양단 하듯이 사교를 따르는 것이라 매도할 수 있겠는가? 도올은 다른 강연에서 "부모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며 도올 스스로도 어머니를 여읜 이후로 교회에 찾아가서는 강연이나 기자회견을 진행 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오른 적이 있는데 누구나 부모의 죽음이라는 일이 생겼을 경우의 심정으로 볼 때 과학에서 미신이나 색은행괴를 듣는 한이 있다 하여도 조금이라도 좋은 묘자리나 여건이 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좋고 깨끗한 화장터를 찾을 것이며 남은 화장 골분 조차 좋은 자리를 찾아 뿌리거나 그것을 차마 하지 못할 경우 가깝고 좋은 납골당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일이 바로 제사이다. 조선시대의 "종묘사직을 지킨다는 것"에서 나라의 왕에 오른 조상 신주(神主)를 모시는 종묘와 땅의 신(神)을 뜻하는 사(社), 곡식의 신을 뜻하는 직(稷)에 대한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자는 논어만 보아도, 옹야 편에서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 하였고, 위정 편에서 "자기가 모셔야 할 귀신이 아닌데도 그를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라고 하였으며, 단지 선진 편에서 계로가 "귀신의 일을 묻자(問事鬼神)" 답하기를 "인간의 일도 아직 모르거늘 어찌 귀신의 일을 알겠는가?(未能事人 焉能事鬼?)" 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신이나 귀신에 대한 것은 확실히 있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러한 세계의 일에 대한 경험이 없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이지 이것을 두고 공자가 신(神)이나 귀신을 부정했다고 하거나 아에 없는 것으로 말하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 도올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은근한 주입을 해 오고 있어 왔다는 것을 도올은 부정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과학만을 맹신하게 된 일부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종교를 무교라고 하면서도 유교의 제사 형식에 따라 기일을 정확히 지켜가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스무살 정도에 니체에 빠져 누구 못지 않은 강력한 무신론자였고 많은 세월이 흐른 최근 10년전 정도의 시기에는 그러한 신념으로 제사를 지내는 일 조차 필요 없는 행위라고 가족들에게 잠시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각 종교적 체험을 겪고 난 이후에는 그동안의 강력한 무신론적 방어력이 무너지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신은 없다" "풀 한포기 이상의 신비도 없다" 라고 아무리 자신의 신념에 대하여 누군가 정신 무장을 하였고 그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양 주변에 널리 알리고 주장하며 전도 하듯이 살아 왔다 하여도 그 모든 행위들이 어리석고 부질 없는 그야말로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내 지난 과오와 경험에 비추어서 지나치게 무신론을 주장하며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 자체가 고통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나의 과거 행적에서 타인을 괴롭혀 가며 무신론적 주장을 행해 왔던 것은 아니다. 이점에 대하여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또 참고적으로, 나는 이십년 전에 도올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란 무엇인가"를 그 출판 당시에 읽었으며 그 이후 노자 강연시 이경숙과의 논쟁의 때에도 그리고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 도올에 대하여 이렇게 직접적으로 비판을 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고 생각한다. 몇줄 정도의 코멘트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것도 배움을 좋아하는 학자를 존중하는 입장으로의 코멘트 였을 것이다.


어떤 하나의 종교적 신념이 지나치게 맹목적이어서 맹신을 하게 되는 것도 사회의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선량한 많은 대다수의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싸잡아 지칭하여, 과학 맹신에만 빠져 그러한 선입견에 비난 부터 준비하며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나중에 깨닫고 보면 커다란 참회의 대상이 되는 행위이다. 기독교에서는 회개라고 한다. 제행무상(無常)이 뜻하는 바와 같이 무신론적 자신감도 항상됨이 없는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시기, 아무도 알 수 없게 한 그 인간 존재의 그 때에 이르게 되면, 그토록 혐오하던 무속인이 되어 작두를 타고 올라서서 춤을 달인의 경지에 이르도록 춰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니 너무 자신하지 말라. 그 시기는 예수님도 알지 못 하는 때라고 하였다.


과학의 권능에만 집착하여 그러한 권능만이 전부인양 맹신적으로 신봉하는 무신론자라 하여도 영혼의 문제로 들어가면 약간의 사정이 달라진다. 신(神)과 영혼이라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영혼 즉 본인이 죽었을 때를 상상하거나 가장 가까운 친인이 사망하게 될 경우에는 영혼이라도 있기를 소망하게 되며 죽은 이후에라도 다시 만나기를 원할 것이다. 연로한 어머니가 자신 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식을 잊을 수 있을까? 죽을만큼 사랑했고 그래서 무수히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결혼을 하였는데 어느날 죽음이라는 이별을 겪는다면 영혼의 세계에서라도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일이 확실히 있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법칙이나 존재가 있다면 그러한 것에 매달리게도 될 것이며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에게 있어 진리가 된다. 학문이나 관념이 아닌 진리인 것이다. 학문에서 다룰 수 없는 또 다른 진리의 세계를 탐구하는 영역이 바로 종교이며 그것은 철학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체험되지 않은 철학이 어떻게 종교적 체험의 세계를 이해 하겠는가?


그토록 소원하던 간절한 상대에 대하여 죽음 이후의 만남을 불교에서는 간단하게 한마디로 설명한다. 윤회이다. 이러한 윤회에 대하여 아무나 쉽게 믿지 못하도록 세상에 내려진 장치들이 몇가지 있는데 석존 이전에도 윤회사상은 힌두교나 도교에서 존재 했으며(사실이 그렇다), 윤회를 설명하는 경전이 석존의 설법이 아닌 후세에 다른 누군가가 기술하여 전해진 경전 때문이라고들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전의 책이라고 하는 것이 누가 어느 시기에 지었던 불교 경전 전체의 뜻에 반하지 않으며 그 흐름과 관점과 사상과 목적이 하나로 일맥상통하고 있다면 그것이 모든 각각의 다른 인물들이 저술하여 각자 펴 냈다고 하는 사실은 오히려 더욱 기적과 같은 신비로운 현상으로 그야말로 부처님의 가피력이나 신적인 권능이 아니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소인들은 경전의 뜻을 헤아리려 하지 않고 단지 발견된 경전의 상태를 보아 제작 시기가 일치하지 않으며 단어의 사용 시점이 년대와 맞지 않다는 것과 환타지 소설과 같은 석존의 권능을 펼치는 내용만을 판단 등으로 믿을 수 없는 거짓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달을 가리키면 그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하는데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에 대해서 투정을 부리는 꼴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정이 약간 넘은 시각(2011.11.19 00:35)에 잠시 불교TV로 채널을 돌려놓고 보니 우학스님이 나와 8대지옥에 대하여 대중들에게 일일이 받아 적으라는 주문을 해 가면서 지옥의 처절함에 대하여 설법을 하고 있다. 도올이 달라이라마를 만난 시기가 있었는데, 우학스님은 그 보다는 약간 빠른 시기에 달라이라마를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친견한 장면을 그 당시에도 불교TV로 방영한 이후에 더욱 유명하게 된 스님으로 불교TV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신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스님이다.


그 우학스님이 지금 인간이 죄를 짓고 저승에 가면 그 영혼이 지옥에 떨어져서 그러한 고통을 겪게 된다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옥에 가는 일 또한 윤회의 한갈래 방편이기도 하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너무나 유명하게 된 문구 때문에 일부 어린 나이의 한국인이라면 지옥이 기독교에만 있고 불교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이 이 땅에 나오기 이전 부터 지옥에 대한 너무나 자세한 설명을 석존의 설법으로 경전이 나와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유교에서 보면 불교의 우학스님은 사교를 따르는 스님인가? 조선시대 부터 현재 까지 유교 전체의 모습으로 보면 확실히 불교나 기독교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교의 무리들이다. 그런데 도올은 김수환 추기경을 매우 정중하게 모시고 강의를 한 적이 있으며 절에서도 강의를 했으며, 지금 중용 강의를 하고 있는 곳도 기독교 목사들을 양성하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알고 있다. 도올이 사교의 무리라고 생각 했다면 그렇게 행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분명히 그러한 찌거기가 있음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찌꺼기가 있기 때문에 김금화에 대해서 여러번 감탄적인 설명을 하면서도 김금화의 무속인으로서의 본질인 귀신을 물리치거나 액운을 방지하고자 행하는 행위들에 대하여 속으로는 그야말로 무가치하며 그러한 김금화의 제자들이 행하는 갖가지 온갖 형태의 행위들이 색은행괴의 표본들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순을 도올은 아직 스스로가 정리 되어 있지 않다. 


이번에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발표한 "빛 보다 빠른 물질 중성미자"에 대하여 도올이 논평 하였는데 그러한 발견이 나타났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폐기 되는 것이 아니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진리"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도올이 아인슈타인을 맹신하고 있는 것인가? 이번 중용 강의에서 도덕경 1장 비상도(非常道)의 常을 설명하면서 항상됨에 대한 변화와 단절에 대한 관점을 설명을 하였는데, 무상이라는 "항상됨이 없음"이 그 상태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완전한 단절이 없다는 듯이 상대성이론이 이어져서 나갈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도올의 오해이다. 변화 되면서 앞의 상황과 단절을 하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 진리에 가깝다고 한다면 완전한 단절은 진리와 멀다고 할 수 있다.


진리라고 하는 말의 뜻이 영원성을 (물론 절대적 영원성을 주장하거나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한 영원성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인가에 따라서 "진리"라고 하는 단어 그 자체를 사용하고 있다면 과학은 그러한 진리와 관계가 매우 멀다. 이것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라면 알고 있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도올 또한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며 어린 학생들에게도 많이들 알려진 책이다. 그 책에 대한 설명을 백과사전 내용 그대로 옮겨 보겠다.


---(아래 네이버 백과사전 내용인용)
책의 내용은 부분적으로는 과학혁명을 주제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과학의 발전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과학발전의 객관적 보편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과학의 발전은 과학이 이상 현상의 출현으로 위기에 부딪혀 붕괴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그 결과는 새로운 과학의 출현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어떤 과학이론에 의해 과학적 지식이 발전하다가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현상이 나타나면, 그 시대의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의 혁명, 즉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새로운 과학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자연과학의 발전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이같은 패러다임이론은 다른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되어 20세기 후반의 대표적 문명관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과학계에서는 이 이론으로 말미암아 과학의 무한한 발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깨고 과학발전의 방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출처] 과학혁명의 구조 [科學革命─構造,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 |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위 인용문과 같이 "설명할 수 없는 이상현상이 나타나면"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 질 때, 그 이론을 근거로 파생되어 나온 다른 모든 이론들 또한 완전히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상대성이론의 공식이 E=MC^2 인데 이 공식을 구성했던 원리가 무너지면 이 공식 자체를 쓸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이 공식을 근거로 했던 다른 공식들 또한 마찬가지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에서 공식을 수정해서 쓴다는 것은 완전한 단절과 폐기를 의미할 뿐이며 그러한 원칙에 벗어난다면 그것은 이미 과학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인터넷을 잠시 살펴 보는 중에 위 내용과 관련 있는 기사가 새로이 올라 왔다. 아래 링크 참조.


"빛보다 빠른 입자, 2차 실험서도 포착"
기사입력: 2011-11-18 18:08 / 수정: 2011-11-18 18:08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11188327t


끝으로, 이번 강의가 신학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신약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2천년 역사 동안 그리고 그 모든 기독교인들과 학자들이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오해를 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현재 기독교인들 모두가, 예수님의 사도 바울(바오로)이 다른 이름의 사울과 동일인물로 인식하고 있다.


(사전인용) 바오로 [Paulus, 10?~67?] 그리스도교의 사도로 본명은 사울이다. 3회의 대전도여행을 하며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명을 다하였다. 바울로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전도자였고 최대의 신학자였다.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있게 한 그리스도교 형성사상가 가운데 가장 중추적 인물이다. (사전 인용끝)


갈라디아서 1장을 보면 바울이 증언하기를, 성령을 받자마자 자신은 예수님 생존의 때에 먼저 제자된 다른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간 적이 없으며 (17절)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갔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님 사후 초기 기독교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인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왜 했을까?


유추해 보면, 갈라디아 교회의 누군가가 바울에 관하여 말하기를, 갈라디아 교회를 세운 바울이 처음 성령을 받는 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인으로서의 유리한 신분에 있었던 바울이기 때문에 그 신분을 이용하여 갇혀 있던 제자들을 구해낸 것이 사실이냐는 물음을 바울에게 전했을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어떠한 경로로 접했든 바울 자신은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편지로 답신의 형식을 빌어 증언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때 바울과 비슷한 형태로 성령을 받았으나 바울과는 다른 인물인 사울이 성령을 받는 순간에 눈이 잠시 멀었으나 며칠 후에 눈이 고쳐지고, 바로 예루살렘의 감옥에 갇힌 제자들을 구했는데, 그러한 사실은 초기 기독교회 여러 곳에 전파 되었을 것이며 갈라디아 교회에도 그러한 사실이 소문으로라도 전해져서 그것을 접한 누군가는 전언을 통하여 멀리 있던 바울에게 그러한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구해냈다는 그러한 사실이 없는 바울은 거듭 부인을 하면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간 것은 성령을 받고 3년이 지난 이후의 일이며(18절) 예루살렘에 가서도 제자라고 본 인물은 야고보 외에는 없었으니(19절) 감옥에 갇혔던 제자들을 구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설명을 하는 대목이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듯이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20절)" 이렇게 적었을 정도이다.


이렇게 확실한 바울의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천년 동안 바울과 사울이 이름에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동일인물로 초기 기독교 당시에도 바울과 사울이 각각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유사하기는 하나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일한 내용으로 전해졌을리는 만무한 일이다. 초기 기독교회의 교인들 간에는 서로 복음의 내용을 두고 의견이 달라서 다툼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울과 사울을 동일인으로 알고 따르는 과정에서 서로 각자 이교회 저교회를 돌아 다니면서도 바울과 사울이 서로 조우하지 못했고 각자 서신으로 멀리 있는 교회들에게 답변들을 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과 사울의 성령을 받는 장면이 각각의 기록대로 2대목이 나오는데, 그 성령 받는 내용 자체도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명은 눈으로 한명은 귀로 그 차이점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일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예수님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례는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며 그 내용도 매우 많기 때문에 대표적인 것만 이렇게 기술하는 것이다.


그 밖의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은 나의 블로그에 대부분 설명을 해 놓았는데,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자 하거나 단순한 비난만이 아닌 정당한 비판을 하고 싶은 경우에는 내가 개설해 놓은 "집단지성 토론방"이라는 카페의 "종교" 디렉토리로 게시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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