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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세이노의 가르침 (Say No)

세이노란 사람은.......
55년생으로 5년간 연평균 10억원을 소득세로 냈다. 가난 때문에 고교를 4년만에 졸업했고 이를 비관해 3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고교 3학년때부터 사업을 시작해 광고대행업과 입시영어학원 의류업 요식업 정보 컴퓨터 유통업 등에 손댔다. 평균 3년마다 주력업종을 바꿨다. 사업상 지금까지 70여개국을 여행했다. 사업이외에 개인적으로 굴리는 순수 투자자금은 100억원에 이른다. 주식 및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 사업과 투자를 위해 국내 종합지와 경제지 경제주간지 3종씩을 구독하고 해외 경제지 2종, 해외잡지 3종을 읽고 있다. 연평균 독서량은 25권정도.



12. 물건을 잘 사야 잘 산다.

SHOPPING MATH (쇼핑 산수)

A man will pay $2 for a $1 item he needs.
(남자는 필요한 $1짜리 물건을 $2에 산다.)
A woman will pay $1 for a $2 item that she doesn’t need.
(여자는 필요 없는 $2짜리 물건을 $1에 산다.)

당신은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돈 자체를 소유하기 위해 돈을 벌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돈으로 무엇인가를 사기 위함이다. 때문에 구매 행위는 돈을 버는 행위만큼 중요한 것이다. 여기 매월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두 사람이 있다. 이번 달 월급을 받았을 때 두 사람 모두가 똑같이 원하는 것은 세탁기를 새로 장만하고 집에 있는 깨진 세면기를 교체하는 것이라고 가정하자. A는 세탁기를 대리점에서 30만원을 주고 샀고 비슷한 성능의 제품을 B는 20만원을 주고 샀다. 세면기인 경우에는 A는 가까운 인테리어 업소에 부탁하여 10만원을 주고 교체하였다. B 는 세면기 판매 업소들을 찾아다니며 5만원에 구입하여 스스로 교체하였다. A는 골치 아프게 돌아다닐 필요 없이 편리한 쇼핑을 한 셈이다. B는 시간을 투자하여 세탁기들의 성능에 대하여 비교 검토하면서 공부하였고 세제가 자동 투입되는 기능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은 모두 동일한 세탁기를 20만원에 샀다. 또한 세면기 하나 구입하고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았다. 그 결과 A는 40만원을 사용하고 남은 돈이 60만원이 되었지만 B는 25만원을 사용하고 남은 돈이 75만원이 되었다.

이런 경우 나는 B의 봉급은 A 의 입장에서 볼 때 115만원에 상응한다고 계산한다. 왜냐하면 A 가 봉급을 115만원 받아야 세탁기와 세면기를 사고 남은 돈이 B의 75만원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물건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생활의 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상대방보다 수입을 가상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볼 때” 돈이 많다는 뜻 아닌가.

여기서 무시하여서는 절대 안 될 요소가 있다. 시간이다. 만일 A에게 있어서 모든 여유 시간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 A는 시간을 절약하고자 편리한 구매를 택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특별히 다른 할 일도 없으면서도 편리한 구매를 택한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걸어서 30분 되는 곳에서는 배추를 500원에 팔고 있고 집 바로 옆에서는 비슷한 품질의 배추를 2000원에 팔고 있다면 배추를 싸게 사러 걸어갔다 오는데 소요되는 1 시간의 값은 1500원이 된다. 결국 더 싸게 살 수 있는 길을 불편하지만 찾아 나설 것인지 아니면 편리한 구매를 택할 것인지의 선택 여부는 당신의 시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러한 선택은 물건구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을 구입하고 나서 등기를 직접 할 것인가 아니면 법무사에게 의뢰할 것인가 같은 서비스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불친절한 법원 공무원들에게 방법을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내 힘들게 직접 등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손쉽게 법무사에게 부탁할 것인가 하는 선택에 따라 비용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손쉽게 법무사에게 부탁하였을지라도 채권할인을 법무사에게 부탁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 채권을 판매할 것인가에 따라서도 비용 차이가 난다(나는 무슨 채권이건 간에 남에게 할인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손해를 보는 행동인지 도대체 모른단 말인가.) 당신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간을 투자해 직접 알아보고 결정한다면 언제나 당신의 지출은, 편리함을 택하는 사람들의 지출 보다 적게 이루어진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월급 이외에는 특별히 돈 나올 구멍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계발에 열심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돈이 절약되는 불편함 보다는 돈을 더 지출해야 하는 편리함을 택하는 경우들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이나 가정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기업의 구매 담당자들 역시 그런 태도를 갖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기업이건 가정이건 개인이건 간에 돈을 주고 상품이나 용역을 구매하는 행위는 예술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내가 경영자로서 갖고 있는 구매 원칙은, “사장의 친구가 와도 품질과 가격에 경쟁력이 없다면 절대 구매하지 말라”는 단 하나 뿐이다(친구들이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가져오는 경우는 솔직히 거의 없다는 것도 기억해라). “아버지가 파는 떡도 싸야 사 먹고 형이 파는 떡도 맛있어야 사먹겠다”는 정신이 당신에게 없다면 당신은 부자가 되는 길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하여야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1.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 나가라.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편리하게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일을 시키는 대신 불편하지만 본인이 직접 하는 법을 배워 나가라. 예를 들어, 자가용 운전자들은 엔진오일을 교환할 때 대부분 정비공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왜 정비공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는가?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부자가 아니라면 엔진오일을 사다가 직접 교환하는 것이 좋다. 그런 식으로 배워놓은 것들이 나중에 장사나 사업을 할 때 엄청난 자양분이 된다는 것도 알아 두어라.

2. 구매시점을 파악하라. 야채나 식품처럼 신선도가 문제가 되는 상품들은 문 닫기 얼마 전이 가장 싸다. 물건을 죽 늘어놓았다가 문 닫기 직전 정리하여야 하는 물건들 역시 정리 시점이 싸다. 각종 전시회에서 판매되는 물품들 역시 전시 마지막 날이 가장 싸다. 이 정도는 대부분 알 것이다. 보석은 어떨까? 설날이나 추석 직전, 혹은 말일 경이 싸다.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어음, 종업원 월급, 점포 임대료 등으로 인해 보석 상인이 그 때가 가장 돈이 필요할 때이기 때문이다. 전문인들과 가격 협상을 할 때도 직원들 월급날 하루 전이 유리하다. 어떤 제품들은 12월 말이 1월 초보다 더 유리하다. 12월 말에 연말 실적 합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3. 가격구조를 파악하라. 단일 상품 구매가 아니라 여러 물품과 용역이 동시에 제공되는 경우는 반드시 세부항목별 단가를 분석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30평 아파트에 도배를 한다고 치자. 사람들은 보통 인테리어 업체에 이걸로 하면 얼마에요 라고 묻는다. 콩나물 사는 식이다. 좋은 구매방법은 이 도배지는 한 롤에 얼마이고 도배사 인건비는 얼마이고 부자재 가격은 얼마냐고 물어보고 다른 곳들의 가격과 품목당 비교를 하고, 남는 도배지는 반품하는 조건으로 하며 도배사 인건비는 별도로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가격 구조를 파악하라는 말이다. (“견적서 받는 법” 항목을 참조하라.)

4. 유통구조를 파악하라. 위에서 언급한 도배의 경우, 인테리어 업체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도배지 회사의 대리점에서 물건을 받아다가 마진을 붙이고 도배공을 연결시켜 주고 다시 마진을 붙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유통 구조를 단순화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전화번호부나 인터넷을 뒤져 벽지 회사 대리점을 찾아내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서 신뢰할 만한 도배공을 소개 받게 되면 비용이 덜 나가게 된다. 언젠가 친구가 판촉용 손목 시계를 내가 경영하던 회사에 납품하고 싶다고 하였을 때 내가 한 말. “네가 시계를 직접 제조하니?” “그건 아니야.” “그런데 왜 내가 널 통해서 사야 되지? 직접 주문하면 될 걸 말이야.” “….그건 그래.” 나는 친구에게 구매하지 않았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방문 판매자나 다단계 판매자에게서 물건을 사본 역사가 거의 없다. 왜? 편리는 하지만 비싸니까. 아니 때로는 너무 비싸니까.

5. 판매자의 입장을 살펴라. 백화점 매장에는 백화점 직원과 제조업체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같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파견 직원은 실적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흥정이 가능한 때가 있다. (나는 여성복 코너에서 그런 흥정을 몇 차례 했었다). 장기 임대매장을 갖고 있지 않고 임시 특별 매장 형태로 들어온 사람들의 경우는 대부분 협상이 가능했다. 그런 경우 파견 사원에게 명함을 달라고 한 뒤 전화하여 어차피 내가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으면 수수료 25프로 내지 30프로를 당신들이 내야 하므로 그 만큼 가격인하를 해 달라고 협상하여 성공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협상이 끝나면 다시 현금으로 줄 테니 3프로 정도 더 깍아 달라고 하기도 했다.

6. 현금을 지불하라.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국세청은 좋아하지만 당신에게는 손해인 경우가 더 많다.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나온 최저가격을 직접 상점 주인에게 제시하면서 현금을 준다고 말해보라. 그 가격보다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현금지불을 싫어하는 주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카드나 현금이나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인이 아니라 월급 받는 점원이다. 주인과 직접 협상하면서 현금으로 지불하라. 카드는 판매 회사의 오너를 만나지 못하는 상품을 살 때나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카드는 돈을 돌려준다고? 그래서 현금을 쓰는 것 보다 유리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돌려주는데?

7. 마케팅 기법에 속지 말라. 벼룩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다 싸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물건을 쌓아놓고 팔거나 흰 종이에 큰 글씨로 파격세일이라고 써 놓았다고 해서 당연히 싸게 파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그게 다 당신 호주머니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이다. 광고 이미지에도 속지 마라. 당신이 어떤 상품을 좋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십중팔구 광고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 아닌가. 광고가 좋다고 제품도 좋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광고는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하여야 움직일 수 있는지만 연구하는 광고 전문가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광고에서 “우리 회사는 당신의 믿음직한 친구가 되겠다.”고 아무리 다정하게 말하여도 그저 광고니까 하고 흘려버려라. 광고와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예컨대 상가 분양광고가 과장된 말로 도배되어 있는 바람에 당신이 속아 넘어갔을지라도 법원의 판결은 절대 당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 약간 과장시켜 말을 한다면, 광고를 그대로 믿는 놈이 바보라는 것이 법원의 판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 판매자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말아라. TV 홈 쇼핑에서 진행자가 하는 말도 섣불리 믿지는 말아라. 지방 출장 중 호텔에서 밤에 우연히 CJ39 쇼핑 채널을 보았는데 샤프 50인치 PDP를 팔고 있었다(2002년 4월26일 새벽이었다). 진행자들은 설치 장소가 바닥이건 벽면이건 설치비는 무료라고 거듭 강조했다. PDP는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벽면 설치 시 별도의 브라켓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입 희망자인양 전화를 했더니 설치비는 무료이지만 벽면 설치 시에는 브라켓 값으로 40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개떡 같은 놈들. 방송에서는 벽면이건 어디건 돈 안 받고 해준다고 하더니 정정 방송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게 판매자들이다. 나는 복사기나 자동차 같은 기계를 살 때 영업사원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애프터서비스 전담 직원들에게 물어보아야 어떤 것이 튼튼하고 좋은지를 쉽게 알 수 있다.

9. 상품내용을 파악하라. 상당히 어려운 항목이다. 예를 들어 온열치료기나 돌침대를 살펴보자. 도대체 그게 몇 백 만원씩 할 근거를 나는 전혀 찾지 못한다. 이런 고가 정책 제품들은 건강 관련 제품들이거나 미용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 종류가 하나 둘이 아니다. 정수기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도대체 수돗물을 필터로 통과시켜주는 것뿐인데 비쌀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나는 정수기를 안 샀다). 이런 제품들은 본사에서 가격을 철저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대리점에서 싸게 팔게 되면 대리점 계약마저 취소시킬 정도이다.

10. 기본기능에 충실한 상품을 찾아라. TV를 예로 들어 보자. 화면 크기가 같고 화질 차이가 없지만 여러 가지 다른 기능들이 있다면 당연히 비싸다. 그렇다면 각 회사별 또는 모델별로 무슨 기능이 있는지 하나하나 비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전자제품들은 상대회사와 경쟁을 치열하게 하기에 저가품을 내놓고 있으며 고가품과 기본기능은 같은 경우가 많다. 비싼 제품들이 흔히 갖고 있는 부가기능들은 당신이 몇 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하는 것들일 수가 있다.

11. 평상시에 가격정보에 민감해라. 나는 광고 전단지도 종종 살펴보면서 물건 값을 알아 두려고 한다. 20년 전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을 갖추지 않은 한 직원이 들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그 가격을 알아 두어라. 휴일이면 남대문 시장과 숭례문 상가, 청계천 등에 정기적으로 가서 물건 값을 확인해라. 밀수품 가격도 알아두고 중고 가격도 알아두어라." 요즘은 인터넷에서 가격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므로 www.enuri.com 이나 www.omi.co.kr , 혹은 www.auction.co.kr 같은 곳에서 사고자 하는 상품에 대한 가격 정보를 미리 수집하면 된다. 적어도 그런 자료를 뽑아 들고 다닌다면 바가지 쓸 염려는 없다. 특히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나오는 월간 <소비자시대> 라는 잡지 혹은 사이트( www.cpb.or.kr )는 상당히 유익한 정보들을 많이 제공하여 준다.

12. 협상해라.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저지르는 대표적인 잘못은 가격 협상 시에 판매자가 기분 나빠할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아니 돈은 당신이 지불하는데 뭐가 미안한가? 정찰제라고? 협회 가격이라고? 남들 다 그렇게 받는다고? 그건 판매자들이 정한 원칙이지 당신과 협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절대 미안해하지 말고 협상하라.

하지만 나는 노점상의 물건은 절대 깎지 않는다. 물건이 같다면 큰 가게보다는 작고 초라한 가게에서 깎지 않고 산다. 한쪽에서는 멋진 쇼핑백에 넣어주고 한쪽에서는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주어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한 가지 더: 내 아내는 백화점에서 식료품 등을 미끼 상품으로 원가 이하 선착순 초특가 한정 세일 하는 곳에서는 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그런 상품들은, 절약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구입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3. 접대를 받지 말라

미국투자회사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의 한국계 미국인 직원이 서울에서 “왕처럼 살고 있다.”고 떠벌리는 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낸 사건이 2001년 5월에 있었다. 문제의 직원은 미국 국적의 20대로 1999년 7월부터 2001년 4월 까지 미국의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린치에서 일하다 5월에 칼라일 그룹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 근무를 해왔다. 서울에 온 지 불과 10여일 만에 그는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접대문화를 들춰가며 호화판 생활을 자랑하면서 “여러 은행의 임직원들로부터 거의 매일 골프와 저녁 술대접 등 향응을 받고 있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그 메일은 메릴린치 증권사를 비롯한 뉴욕의 투자회사 직원들로 급속하게 번졌고 결국 칼라일 본사에까지 알려져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불쌍한 은행 임직원들….” 은행에서 접대를 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나이가 적어도 40대는 되었을 텐데 새파랗게 젊은 20대를 접대하느라 속이 뒤틀려도 엄청 뒤틀렸을 것 같아서였다.

사업상의 모든 접대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나의 의견 및 내가 팔고자 하는 상품이나 용역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자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업무 중에는 서로 할 일이 있다 보니 일과 후에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그런 시간을 마련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접대는 상대방과 이른 바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십중팔구,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젊은 여자애들 끼고서 상대방 비위 맞춰가며 술 처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접대의 정점은 상대가 여자와 2차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차라리 그냥 창녀촌으로 가라).

상대방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하면서 포주 노릇을 하는 이런 식의 접대를 관행으로 여기지 않는 집단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종교계 일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초, 중고등학교와 대학도 물론 포함된다), 예술계(특히 미술계), 언론계(신문 방송 잡지 모두 포함), 의료계, 법조계, 연예계, 금융계, 군인 집단, 공무원 집단, 공기업(정말 기가 막히는 곳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민간 기업(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마찬가지이다)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그런 접대를 한편으로는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받는다.(참고로 대한상공회의소가 181개 기업을 상대로 “접대와 매출의 상관관계”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16%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고 68%는 “다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영향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불과 16%에 불과하였다.)

내가 장사, 사업을 하면서 부딪친 갈등 중 대표적인 것이 이 뒤틀린 접대 관행(접대 문화? 그게 문화냐?)이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나 용역이 가격과 품질에서 남들 것 보다 우수하다면 당연히 상대방이 구입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세상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가격은 비싸고 품질은 떨어져도 요령만 좋으면 팔아먹을 수 있는 게 이 세상이었고 그 요령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구매 결정자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워삶는 것이었다.(“구매결정 과정을 파악해라”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이 내 애인이 아닌 이상,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을 미리 알아내서 상대로부터 호감을 받아내는 것을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유치한) 행위라고 단정 짓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나는 룸싸롱에서 거래 상대방과 술독에 빠진 뒤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주선해주는 것을 개지랄 떤다고 생각하여왔지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과정으로 여긴 적이 전혀 없다. 순전히 이해관계로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 하면서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동백아가씨 노래에 손뼉을 치고, 신날 것도 없는데 춤도 같이 추어야 하는 것이 나는 싫다. 그런 사람들과 술잔을 머리 위에 터는 짓도 싫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짓도 싫다.
내가 그런 접대를 한 것은 “술 한 잔 사야 되지 않느냐”고 면박을 주는 공직자들 상대였는데 지난 20여 년간 예닐곱 번은 된다. 내가 골프를 안 배운 것도 공무원들 눈치를 보느라 일요일 마다 골프장에 끌려 나갈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내 생애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접대를 한 적이 없다.

나는 도대체 그런 식의 지랄을 접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의심스럽다. 자존심도 없고 배알도 없다는 말인가. 당신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지랄 아양 떨면서 돈을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고? 자~알 해 봐라.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에 접대하는 거라고? 영업상 필요하다고? 꼴깝 떨고 있네. 내가 볼 때 그런 지랄 수준의 접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핑계 김에 같이 즐기려고 하는 자들일 뿐이다. 이런 부류들은 언제나 접대비 규제에 대하여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청을 높이거나 별의별 핑계를 다 끌어당기며 반대한다. 그들은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고 룸살롱에 다니는 것을 폼 난다고 여기며 출세한 징표로 생각하는 것일까?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접대비로 사용할 금액만큼을 품질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에게는 없다면 접대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도 파는 물건이라면 품질이 달라야 하며 품질이 다르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파는 물건과 비슷한 물건을 파는 경쟁자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술 접대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강한 종교집단에 물건을 판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제공하는 용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내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접대를 해야만 상대가 구매를 해 준다면 나는 “더러워서”그런 장사는 하지 않겠다(차라리 나는 “거래”를 하는 게 더 좋다. 얼마를 리베이트로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양에 아부 떠는 것 보다는 그냥 봉투 하나 건네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내 적성에 더 맞는다. 하지만 사업상 이런 거래를 한 적은 없으며 공무원 상대로는 해 본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 항목에서 언급할 것이다).

수많은 물품들과 서비스를 팔아 보았지만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나는 영업사원에게 할당량이라는 것을 정해 준 적이 없으며 영업사원의 봉급을 판매량에 비례시켜 결정한 적도 없다. 물건이 안 팔린다면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경영자의 책임이지 영업사원의 책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영업사원의 자질을 평가하던 기준은 얼마만큼 팔았는가가 아니라 판매대금을 언제 얼마만큼 회수하였으며 평상시에 채권회수 방법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실천해 왔는가, 제품에 대한 지식과 경쟁자들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이었다. 영업사원 개인별로 접대비를 할당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으며 오직 영업부 담당 최고 임원에게만 약간의 영업비를 준 적이 있는데 매출 700억~800억 원 당시 그 영업비는 고작 월 100만 원 정도였다. 나는 오로지 식사 접대와 반주 정도 혹은 노래방 수준만 허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부장급 직원이 룸살롱 접대를 하였을 때 나는 그 부장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얼마 후 그는 사표를 냈다.

누군가가 내게 접대를 하겠다면 딱 잘라 거절하였다. 어느 지점장에게는 나를 위한 접대비만큼 신용장 수수료를 깎으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부류들은 가격을 100만원 낮춰달라는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200만원을 룸살롱에서 나에 대한 접대비로 날려 보내는 쪽을 더 좋아하였는데 회사의 규정상 가격인하는 불허하지만 접대비는 별도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한국에는 이런 웃기는 회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며 여기에는 공기업도 포함된다).

불시에 과다 접대를 받게 되면 반드시 계산해 주었다. 접대를 안 받으니 나 자신 혹은 직원들에게 뇌물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오래 전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 보세창고에서 창고사용 요금을 빨리 지불하여 주어서 고맙다고 경리 책임자에게 200만원을 보내온 것이었다(평소 나는 임직원들이 거래처에서 받는 모든 선물과 상품권을 보고하도록 했다. 추석이건 설날이건 예외가 없었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라면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보고 받자마자 나는 담당자들 모두에게 알렸다. “이 멍청한 녀석들아. 우리가 지금 확실하게 바가지 쓰고 있다는 증거니까 즉시 조사해 보아라.” 사실이었다. 회사는 이미 적정 요금보다도 1억 원이 넘는 돈을 초과하여 지불한 상태였고 그 보세 창고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믿을만한 곳”이라고 하여 소개하여 주었던 곳이었다. 즉 그 전직 공무원은 중간에서 적어도 수 천 만원을 커미션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명심해라. 사업상 당신을 접대하고자 애쓰거나 돈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판매하는 것의 가격을 더 깎을 수 있거나 품질이 경쟁자들 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접대를 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믿는다. 이 사회에서 접대를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꽤나 공부도 많이 한 새끼들이고 이른 바 일류대 다닌 새끼들도 엄청 많은데 도대체 당신이 접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을 접대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술을 사주고 심지어 2차까지 준비해 주는 이유를 당신은 모른다는 말인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당신하고의 돈독한 관계가 아니라 이득이다. 이득을 얻기 위한 “얼굴 익히기”이다. 그것을 “인간관계의 개발”이라고 미화시키지 말라. 목적이 뻔한 향응을 받는 것이 무슨 인간관계이고 “휴먼 네트워크의 개발”이란 말인가. 술을 좋아한다고? 당신 돈으로 친구들과 소주나 마셔라. 진심어린 접대는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이득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접대를 받는 당신이 공직에 있다면 이권을 팔아먹는 도둑이 된다. 당신이 의료계에 있다면 환자의 주머니를 후리는 것이며 법조계에 있다면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것이고 회사의 임직원이라면 회사 돈을 훔치는 것이며, 언론계에 있다면 스스로 사이비가 되겠다는 뜻이고 교육계에 있다면 위선의 탈을 쓴 것이며 예술계에 있다면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기업교육전문가 김찬배의 ‘개인과 회사를 살리는 변화와 혁신의 원칙’을 읽어라).

당신이 죽으면 당신 무덤에 “캭” 하고 가래침을 뱉을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 개새끼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당신 아버지가 접대를 받느라 바쁘다면 그가 당신 아버지라도 부끄러워해라.) 젊었을 때 세상을 더럽다고 욕하고 침 뱉던 당신 자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Metallica 의 노래 중 The Unforgiven 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What I"ve felt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What I"ve known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이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 나의 행동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니.
never free (나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never me (나는) 전혀 내가 아니다
….
He"s battled constantly 그는 끊임없이 싸워왔지만
This fight he cannot win 이길 수 없는 싸움.
A tired man they see no longer cares 지친 몸으로 이제는 싸움을 포기하고
The old man then prepares 그렇게 나이든 채
to die regretfully 후회 속에 죽을 준비만 한다.
That old man here is me 그 늙은이가 바로 나 ….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내가 10대 20대에 제일 싫어한 사람들이 40대 50대의 꼰대(아저씨)들이었다. 내 눈에는 모두 위선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꼰대 계층에 속한다. 나는 내가 젊었을 때 혐오하였던 능글능글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왔다. 내가 싫어했던 꼰대 모습이 싫어서인지 배가 조금만 나와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것을 아직도 좋아하고 그 때 싫어한 것들은 여전히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네가 침 뱉는 대상이 미래의 너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라. 젊었을 때 최루탄 가스를 맡아가며 기성세대에 분노하였던 새끼들도, 4.19 세대들이건 6.29 선언 세대들이건 간에, 세월이 지나 40대, 50대가 되면 똑같이 똥개가 되어 버리기 일쑤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똥개 변신에는 그 어떤 학벌이나 학력도 백신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서울대, 연대, 고대 나왔다고,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똥개가 안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가증스럽게 변하는 것일까? 바로 돈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소비생활을 통제하고 몸값을 높여 나가라. 그 길 만이 네가 지금 혐오하는 대상으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 룸살롱 아가씨들에게 물어보라. 그곳에서 “제일 좆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이 사회에서 이른바 존경 받는다는 직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올 것이다. 하나 더 물어 보아라. 그곳에서 제일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접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접대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무는 잘려 넘어져 있을 때가 그 크기를 가장 잘 잴 수 있는 법이다. 당신이 그 자리를 떠나면 개새끼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는다. 세상은 요령껏 살아야 한다고? 향응을 받고 멀쩡한 사람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이 당신 요령인가?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 뒤돌아서면 무엇을 생각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라. 상대방이 고마운 마음에 하는 접대라고? 밥이나 얻어먹고 일찍 헤어져라. 상대방이, 아마도 그 아내와 가족까지도, 평생 고마워할 것이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재벌들이 정치인들에게 굽실거리며 돈 주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돈을 더 벌려고? )

14. 아내들이여, 남편부터 변화시켜라

요즘 젊은 세대들이야 맞벌이가 흔하지만 나이 든 세대에서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전업 주부들은 어떻게 해야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투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우선 남편에게 달려 있다. 제 아무리 학벌이나 직장이나 직업이 좋아도 남편이 술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책을 읽는 것과는 담을 쌓았고 텔레비전 앞에 있기를 즐기며 어쩌다 책을 읽어도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고 자기 생활과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며 카드빚도 발생하는 상황이지만 남편 역시 부자로 살게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이다. 그 남편의 대갈통 속에 들어 있는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면 가난한 생활과 일찍부터 친해지던지 아니면 일찌감치 헤어져라(내가 대갈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게 가족을 책임지려는 사내새끼의 머리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애가 아직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여자들이 싹이 노란 남자들을 왜들 그렇게 끼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딸들이 나중에 그런 남자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바 “그놈의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면 깍두기들(조폭)을 시켜서라도 그 남자 녀석을 사라지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할 정도이다.

특히나 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편이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해서 혹은 자격증이나 면허증 소지자라고 해서 혹은 전문직업인이나 기술자라고 해서 자기 부부의 삶은 펴~ㅇ생 안정될 것이라고 믿는 아내들의 아둔함이다. 이 세상이 경쟁사회라는 것을 뻔히 경험하였을 텐데도 일단 이 사회에 발을 들여 놓고 자리를 잡으면 그 위치가 펴~ㅇ생 보장되는 것이므로 알뜰살뜰 절약하는 태도만 가진다면 살아가는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으려니 생각한다는 말이다. 특히 남편의 학벌이 비교적 괜찮고 직장도 번듯하다면 더더욱 그렇게 믿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학벌이 신통치 않은 남편들이나 하는 것이고 내 남편은 학벌도 나쁘지 않고 직장도 좋으므로 별 걱정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 세상에나… 자기 남편 주위에 있는 경쟁자들이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좀 알아라. 그러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경제적 압박을 받기 시작하거나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파트 값이라도 크게 오르면 그때서야 정신을 버쩍 차리고는 일단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부동산이나 주식에 관심을 갖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에게 메일을 보내는 30대 후반 이후의 그런 주부들에게는 희망을 갖고 살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당신 남편이 이 정글 속에서 무능력하게 되어 버린 데에는 그들 책임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젊은 아내들이여. 시댁이나 친정이 부자가 전혀 아니라면 내 말을 믿어라. 부자로 살고 싶다면 남편이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는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능력을 배가 시켜야 한다. 결혼 전 학벌 따위는 몽땅 무시해라. 대학원이고 나발이고 박사 학위고 나발이고 간에 당신 남편이 일하는 곳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남편과 오십보백보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임을 기억해라. 쉽게 말해서 100명 모두 쟁쟁한 학벌 소유자일 때 당신 남편이 그들과 비슷한 학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집단 내에서는 정말 개뿔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말이다. 게임은 학교를 마치고 나서부터 혹은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획득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왜 이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내로서 당신이 잘 살고 싶어 하면서도, 일에 미치고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남편에게 “그렇게 일이 좋으면 왜 나랑 결혼했어? 우리 기쁜 젊은 날이라는 데 이 아까운 시간, 사랑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노력해서 성공하면 뭐가 기쁘겠어? 나한테도 좀 관심을 좀 가져 줘.”라고 계속 툴툴거리는 타입이라면 당신은 남편에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신혼부부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곤 했다.

“남자는 삼십대 중반까지는 능력을 배가 시켜야 한다. 그때 까지는 아내가 남편을 홀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대개는 새콤달콤한 결혼 생활을 기대하기에 남편이 혼자 능력계발에만 몰두하게 되면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되고 대화할 시간도 없으니 이게 사는 거냐고 바가지를 긁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애를 날 예정이라면 빨리 애를 하나 낳고 3년 정도 터울로 하나 더 낳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5년 동안 아내는 아이 둘을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남편은 아내에게 꽃이나 향수나 손수건이라도 종종 선물하고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은 칼 같이 챙기면서 카드도 자주 보내고 틈나는 대로 스킨쉽을 하면서 사랑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방법은 아내가 직업을 갖지 않는 경우 유용한데 내가 사용한 방법도 그와 비슷하다.

젊은 아내들이여. 당신이 부자로 살고 싶다면, 아니 적어도 경제적으로 돈 걱정 만큼은 안 하면서 살고 싶다면, 아이들에게 남들 하는 것만큼은 해주고 싶다면, 신혼 초부터 바가지를 긁어야 하는 것은 남편의 나태함이고 안이함이며 게으름이다. 당신과 같이 있는 시간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조건 공부를 시켜라. 당신 혼자 제 아무리 새벽에 일어나 자기계발과 주식, 부동산, 경매 등을 배운다 할지라도 남편이 변화하지 않고 남편의 도움 없이 아내 혼자서 돈을 만들기는 한국적 상황에서 쉬운 것이 아니다.


15. 나는 평등주의가 싫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딸들에게 “저건 완전 기만이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제도나 그 어떤 정치도 그런 나라는 만들지 못했다.”라고 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권영길 후보가 외칠 때는 “나는 저 양반이 당선되면 이민을 가겠다.”고 가족과 친구들, 직원들에게 까지 말하곤 했다. 진심이다. 나는 노동자와 농민이 게으르건 아니건 간에 모두 평등하게 잘사는 나라는 끔찍하게 싫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가 좋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타난 바베우프(Gracchus Babeuf)는 평민선언(Plebian Manifesto)을 내걸고 “모두가 생산한 것을 다 같이 평등하게 똑같이 분배하자.”고 외치면서 정부 전복을 기도하다 결국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가 내건 구호는 “태양은 모두에게 똑같이 비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신도 그의 사회주의적 구호가 아주 마음에 들 것이다. 하지만 “태양은 모두에게 똑같이 비치지만 그 빛 아래에서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리지 않았으면서도 열매는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외친다면 강도나 거지이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다.

노력은 멀리한 채 즐길 것 다 즐기고 쓸 것 다 쓰며 살아온 사람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간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부자들은 위화감 조성하지 말라는 것과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말들이다. 나는 내 딸들이 그런 남자를 만날까 봐 걱정이다.

1979년 마거릿 대처는 총리 취임사에서 “이제 사회주의와 인연을 끊자”고 하면서 자신의 적을 사회주의라고 단언하였다. 더불어 “기회의 평등은 보장돼야 하지만 결과의 평등을 필요 이상 추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고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이 이 사회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사람들이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그들을 악덕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에 물론 수많은 노조들이 “가진 자들을 편든다.”는 이유로 물론 반대하였다. 어느 나라든지 가진 자들을 떫게 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삶의 결과가 평등하여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능력에 따른 연봉제나 구조조정을 끔찍이도 반대한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당연히 일 못하는 사람들이거나 경쟁 없이 편안히 일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일 이외의 다른 것들로 출세하려는 사람들이다. 노조는 노조 자체의 집단적 성격이 약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결사반대 한다(질문: 노조 간부들 중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기 몸값을 높이고자 외국어나 컴퓨터라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있거나 일에 있어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다면, 특히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간부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게 소개 좀 하여 다오. )

나도 봉급생활을 해 본 적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하였지만 성이 유씨였던 부장이 한다는 말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월급을 더 받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었고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6개월 만에 그 아부 잘하던 부장과 싸운 뒤 그만두었다. 열심히 하여도 대가가 늘어나지 않고 아부에 능하여야 한다면 도대체 그런 일을 내가 왜 하여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임금 시대에는 근로자의 최저 생활보장을 위해서라도 동일임금 제도가 필요하였지만 고임금시대인 지금은 당연히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적게 지불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 당신이 만일 부자로 잘 살고 싶다면 이제 삶의 결과까지 평등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당신이 부자가 되는 길은 연공서열이나 균등 임금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별 연봉제에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당신이 노력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나는 육신이 멀쩡한 노숙자들을 돕는 어떤 활동도 싫어한다.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일거리가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돈 많이 받고 편안한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3D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수십만 명인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휴머니즘 가득한 눈길로 그들을 이 경쟁 사회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정말 골 때린다. 절대 그들을 굶겨 죽여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도대체 돈 많이 받고 편안한 일만 찾는 놈들을 이 사회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태양과 달이 아무리 찬란하게 빛을 비추어도 엎어놓은 항아리 속을 밝게 하지는 못한다.”–강태공이 한 말이다.

물론 경쟁에서 탈락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관심과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게으름이나 나태함으로 인하여 약자가 된 처지라면 그에 대한 징벌은 당연히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되어야 한다. 결과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소득격차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알아라. 기회의 평등에 대한 말이 나올 때 나오는 반박 중 하나는, 부자집 자녀로 태어나 비싼 과외 받아가며 일류 대학도 들어가고 해외유학도 다녀와 출세한 경우와 가난한 집 자녀로 태어나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여 사회 밑바닥에 있게 된 경우를 어떻게 기회의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모든 부잣집 자녀들이 일류대학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과외를 아무리 시킨다고 해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한 자녀들만 일류대학에 들어간다. 둘째, 가난한 집 자녀들 모두가 일류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과외를 받지 않아도 들어간다. 셋째, 좋은 학벌도 없는 가난한 집 자녀가 학벌이 좋은 부잣집 자녀와 똑 같은 방식으로 기회를 찾고자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다. 어느 나라에서건 기득권 사회는 학벌로 그 문이 열리는 사회인데 왜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냐는 말이다. 기회는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그 다른 기회를 찾느냐 못 찾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생각에 의해 결정되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문제이다.

이런 반박도 있다. 부자집 자녀는 사회에서 출발할 때 이미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보조를 받는다. 가난한 집 자녀는 그런 것이 없다. 이게 무슨 기회의 평등이란 말이냐. 내 대답: 맞다. 그러니까 자신의 분수를 알고 남들 놀 때 놀지 말고 남들 잘 때 자지 말고 노력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처지는 가난한 집 자녀인데 노는 것은 부자집 자녀처럼 놀려고 한다면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과의 평등을 신봉하는 것이다. 부자는 가난한 환경에서 더 많이 배출되어 왔다는 것도 알지 않는가.
한가지 당신이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마. 재벌 가문이 아닌 이상 웬만한 부자집 재산은 그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녀들에게 재산이 쪼개지게 된다. 상속세나 증여세도 웬만큼은 내게 된다. 결국 자녀 1인당 재산 규모는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궁핍을 모르고 자랐기에 쉽게 돈을 쓴다. 그 결과 그 부자집 자녀들이 40대 초반이 되면 과반수 이상이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한다. 당신 노력 여하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바뀌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직접 목격하여 온 사실이다. )


16. 나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북한이 고향인 의사로서 6.25 때 남하하였다. 아버지의 원적 때문에 나는 공군에 입대한 당일, 신원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향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도 북한에는 얼굴도 모르고 생사도 모르는 형들과 누나들이 있지만 남한에서는 내가 나이 어린 장남이었고 친척도 없었다.

살림집이 딸려 있던 병원에는 의사 3, 4 명과 간호사 7, 8명이 있었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나의 놀이터는 골목이나 운동장이 아니라 병원 대합실과 치료실(칸막이가 쳐 있지 않았다)이었다. 1960년대 국민학교 시절 까지는“비교적 ”잘 살았던 것 같으나 의사라는 직업을 부자가 되는 도구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절대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아버지가 엄청난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재판에 휘말렸고 빨간색 차압 딱지가 은수저에 까지 세 번 붙더니 중3때, 말 그대로 길거리로 내쫓겼는데 가재도구가 손수레 하나도 안 되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몰락하였고 나는 환갑이 다된 아버지의 눈물과 한숨을 처음으로 보았다.

왕진 가방마저 압류 당했던 연로한 아버지는 약간의 정치적 연줄을 갖고 있던 덕분에 무의촌 보건소장이 되었으나 결국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월셋방 한 칸과 빚만 남았다. 구멍가게를 하면 가장이 세상을 떠나도 유가족이 생계를 꾸려 갈 수 있으나 전문직인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은 빚까지 있었으니 정말 쩔쩔 맸다. (어릴 때 있었던 그 파산의 영향으로 나는 현금 20억 원을 모을 때 까지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비를 피할 수 있는 튼튼한 우산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아버지를 나는 철없던 시절, 원망도 많이 하였지만 세상을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릴 때 받은 가르침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망치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망치만 가져가면 꾸중을 들었다. 뭘 하시려는지 눈으로 보고 못까지 크기별로 챙겨가야 했다. 담배를 사오라고 하여 담배를 사다 드리면 꾸중을 맞았다. 재떨이와 성냥, 물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겨울 그렇게 모든 것을 준비하여 갖다 드렸음에도 아버지는 혀를 쯧쯧 찼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떨어진 말, “사내새끼가 머리가 그것 밖에 안 돌아가면 어디에 쓰겠냐. 담배를 피면 연기가 나오지?”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라는 뜻이었다.

한번은 무릎에 상처가 났는데 머큐로크롬을 직접 발라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대강 바르는 것을 보더니 “사내새끼가 약 바르는 것을 수없이 보았을 텐데 눈뜬장님이었다.”고 꾸중하였다. 그리고 간호사를 한명 부르더니 약을 발라주라고 하였다. 치료가 끝나고 나가려는 데 아버지가 “뭘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했기에 야단을 또 맞았고 또다시 약이 발라졌다. 비로써 나는 약솜이 상처 위에 놓인 뒤 원을 그리며 밖으로 나감을 알았다. 그래야 세균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나는 불과 6살인가 7살이었다. 그런 교육이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수없이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내게 심어주려고 한 것이 어떤 일 전체의 뼈대를 보는 능력이었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세부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 방법론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가 남들보다 일을 더 잘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장난이 매우 심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한번은 카바이트 불이 신기해서 1리터짜리 링겔병에 카바이트를 담아 놓고 불을 붙였다가 “뻥”하는 소리를 내며 고무마개가 튀어나가면서 폭발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링겔 병속의 굵은 유리관을 카바이트 개스 토출관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불길이 병 안으로 역류되어 일어난 폭발이었다. 원래 카바이트 개스 토출구는 바늘 구멍 크기가 되어야 하는데도 나는 토출관이 굵으면 불꽃도 엄청 클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병에 실을 감고 석유를 실위에 뿌리고 불을 붙인 뒤 뜨거워졌을 때 찬물에 넣으면 병이 쩍 갈라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몇 차례 장난을 하다가 석유 대신 라이터 기름을 뿌린 것이 원인이 되어 집에 불을 냈었다. 흰색 양잿물 덩어리를 박하 사탕인줄로 알고 먹었다가 위를 세척하는 등의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다. 암실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엑스레이 필름통을 여는 바람에 필름을 못 쓰게 만든 적도 있었는데, 엑스레이 담당자는 기계고장으로 알고 난리를 쳤었다. 중학 1년 당시에는 딱총 화약을 전부 까서 가루로 만들기 위해 두 손으로 비비다가 그만 마찰열 때문에 화약이 폭발하여 열 손가락 모두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저지른 장난은 끝이 없다. (나이 50이 된 지금도 나는 종종 가족들에게 장난을 친다).

자상함은 전혀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저지른 장난에 대하여서는 결코 야단을 치지 않았다. 그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같은 장난을 또 하게 되면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 자식들에게 매를 드는 분은 아니었으나 당신이 하나를 말하면 내가 열을 알기를 바랐기에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는 두렵기도 했고 언제나 나를 가르칠 때 마다 빠지지 않은 서두는 “사내새끼가…” 였다. 지금도 내 귀에는 아버지의 강한 북한 사투리가 생생하다. “사내새끼가 머리가 그것밖에 안 돌아가면 어디에 쓰겠냐?”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는 나눠보지 못하였다. 워낙 성격이 무뚝뚝하기도 하였지만 대화라는 것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너무 연로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땡이”가 등장하는 만화를 대단히 좋아했으며 어른들이 물었을 때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지긋지긋하게 과외에 매달렸지만 일류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한 뒤 중간 정도의 중학교에 들어갔고 동계진학으로 같은 고교까지 가게 된다. 중고교 시절 내내 나는 공부를 등한시하였지만 아버지에게서 야단 한번 맞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질 때 어느 것이 좋겠냐고 여쭙자 답변은 그저 “기술자가 되라”는 것 뿐 이었다. 기술자만이 세상이 바뀌어도 살아남는다는 것이었고 의사도 기술자라는 것이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독일 나찌군이 유대인 기술자들은 살려주는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내게 해 준 또 다른 말은 “돈을 벌려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지금의 내 생각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아버지는 자신이 의사이면서도 다른 의사들(그 중에는 내 친구의 아버지도 있었다)을 “의새”라고 부르고 변호사를 “변호새”라고 부르곤 했는데 여기서 “새”는 새끼의 준말이었다. 같은 의사였던 내 친구의 아버지가 병원 건물을 수리하고 간판을 네온사인으로 달고 대기실을 화려하게 만든 것을 보고 내가 아버지에게 우리는 왜 그렇게 안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지 여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병원이 화려하면 결국 환자들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내게 가르쳤다.

의사라는 직업을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지 아버지는 별도의 돈 버는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수술할 때 조명 역할을 하는 무형등을 제조하여 다른 병원들에 판매하기도 하였고 간척지 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성공한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사기만 잔뜩 당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또 내게 해 준 말은 “많이 배워 높은 사람이 되면 세상이 바뀌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일제시대, 공산치하, 6.25, 4.19, 5.16 등을 거치며 세상이 여러 번 뒤집히는 것을 체험하면서 고위관리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내리신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공부 열심히 하여 높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재판에 휘말리며 고생을 하였지만 검사나 변호사가 되라는 말도 없었고 단 한 번도 당신의 직업인 의사가 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병원 대합실에서 노는 것을 허락하고 수많은 수술 장면들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의사가 뭘 하는지 잘 보아라.” 정도였지, 단 한 번도 내게 느낌 같은 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 출산 장면을 보여 주거나 수술 도중 환자의 창자에서 꿈틀대는 기생충들을 보여준 것,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게 음독자살을 시도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아름다운 20세 처녀의 음부에 요도파이프를 끼어 넣는 장면이나 물에 퉁퉁 불어 반쯤 썩은 시체의 뱃속을 보여준 것 등등은 좀 심했다 싶지만 아마도 인간 육체의 실상을 빨리 직시하라는 뜻이 강하였으려니 생각한다. 심지어 성병에 걸려 절단한 성기를 포르말린 병에 집어넣고 내게 구경 시키며 성교육을 시킨 사람도 아버지였고 매독균이 최장 10년 이상 잠복기를 갖는다는 것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병원 놀이터에서 육체의 실상만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60년대 그곳에서 학교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쌩 구라”라는 것도 알게 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늙은 할머니가 길을 안전하게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민중의 지팡이로 묘사된 경찰은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는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왔지만 돈 봉투를 받지 못하면 다른 병원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내게 보여 주었다. 교사들은 지극히 고마운 분들로 교과서에는 묘사되어 있었으나 육성회 회장이던 아버지에게 찾아 온 그들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문관의 제왕으로 교과서에 나오던 기자들은 병원에서 환자 한명이 죽으면 벌떼 같이 모여들어 돈 봉투를 받아가던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법과 정의를 지킨다는 검사와 변호사와 판사들을 어머니나 아버지가 재판 문제로 만나러 갈 때는 언제나 그 명칭 뒤에 “새끼”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고 보자기에는 현금다발이 가득 담겨 있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온 의사 부부 중 여의사는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의사는 자신의 신분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여자와 외도를 하고 이혼을 하였다. 키스는 아름다운 사랑의 표식이라지만 키스 하면서 남자에게 혀를 물려 잘려진 혀를 들고 입 주변에 온통 피를 흘리며 온 창녀도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 어린 나에게 이러한 인간의 짓거리들을 직, 간접적으로 모조리 보여 주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을 초등학교 시절에 보면서 나는 삶의 더러운 실상과 인간의 사랑과 증오마저도 조금은 엿보았던 것 같다.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옆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제로 엿보았던 주인공이 바로 그런 내용을 상상하여 소설로 발표한 소설가에게 “당신의 소설은 실상과 다르다”고 면박을 주는 앙리 바르비스의 소설 ‘지옥’은 그래서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배뱅이굿을 즐겨 들었던 아버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전에 부탁을 하였었는지 제사를 지내기는 하면서도 내게는 그 의미를 축소시켜 “나 죽으면 이런 짓 절대 하지 말라”고 강요하였다. 급한 환자가 오면 제사를 완전 취소하기도 하고 다른 날 지내기도 했으며 술 대신 사이다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제사상에 음식을 올려놓는 원칙조차 “편한 대로 하면 되지 무슨 격식이냐”고 하였던 분이다. 격식을 싫어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는 사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시무식이니 종무식이니 개업식이니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며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쌀밥을 먹으면 비타민이 부족하다”고 아버지가 내게 어릴 때부터 하루에 한 알 강제로 먹였던 비타민 삐콤을 아직도 내가 매일 아침 한 알씩 먹듯이(지금은 ‘삐콤씨’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17. 공인중개사에 대하여 (온라인 상태에서 간단히 쓰는 글)

부동산 중개업이란 물건을 사려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이고 이 두 사람 각각의 중개인을 업계에서는 A, B 라는 말로 표현한다. 공인중개사가 A, B 모두의 역할을 하게 되면 복비를 양쪽에서 모두 받으므로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A, B 어느 한 쪽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때문에 다른 중개업자들과의 정보 교환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당신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가게를 열었을 때 인근에 있던 기존 중개업소들에서 당신과 즐거운 마음으로 정보 교환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당신은 세상 고생 좀 더 해봐야 될 사람이다.

기존 중개업소들은 대부분 그들의 점포 중 하나를 당신이 막대한 권리금을 주고 샀을 경우에만 정보를 교환한다. 당신이 뭐 이쁘다고 그냥 친절하게 정보 교환을 한다는 말이냐. 권리금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당신이 짐작하는 금액 이상이 될 것이다.

때문에 당신이 들어 갈 곳은 오로지 새로 생길 신도시 , 즉 기존 점포가 없었던 곳이어야 될 확률이 대단히 높은 데 점포 마련하는데 상당한 돈이 필요할 것이다. 일부(?) 부자 공인중개사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어 왔다.

1. 구매자에게 판매자가 실제로 부른 가격 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게 한 뒤 차액을 갖는다.
2. 구매자에게 자기도 투자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구매자에게 된통 바가지를 씌우고 자기는 아주 조금만 투자하지만 등기 서류에서는 상당한 지분을 갖는다.
3. 엉터리 분양 대행을 하면서 건설사로부터 플러스 알파를 듬뿍 받는다.
4. 미등기 전매.
5. 특정 지역의 특정 물건 소유자가 주변 중개업소들과 단체 단합을 하여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게임에 참여하고 뒷돈을 받는다(오피스텔 몇 동 정도의 가격을 뒤에서 조정하는 것은 큰손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6. 지역 개발 정보를 상세히 알게 되어 선 투자하여 세월을 기다린 뒤 열매를 얻는다.

위의 방법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밝히겠지만, 당신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만사 젖혀 두고 있다면, 그 자격증을 갖고서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만 명에 달하는 내막을 좀 더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했었어도 공인중개사가 되라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왜들 그렇게 그 자격증을 따려고 만사 젖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18. 공대에 관하여 (온라인 상태에서 간단히 쓰는 글)

최첨단 보다는 로우테크(Low Tech) 분야가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서 로우테크라는 것은 사무실이나 연구실 보다는 현장에서 더 뛰어야 하는 분야들을 의미한다.

하이테크는 경쟁자가 너무 많고 투자비용도 많이 들어서 대기업의 부품화 되기 십상이고 들어갈 만한 회사들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다.

로우테크는 경쟁자가 많기는 하여도, 이론까지 겸비하고 최신 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는 공대 출신자들은 그 분야에 뜻밖에도 적다. 공대 출신자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날로그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라.

공대 출신자가 넥타이메고 앉아 있으려고 하는 순간 그의 앞날은 어두워진다는 것도 알아두어라.


19. 10분 이상 고민하지 말라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 Be Happy)’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나는 고민거리를 오직 두 가지로 나눈다. 내가 걱정해 해결할 수 있는 고민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우산을 준비하면 된다.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은 당신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신에게 맡겨라. 그리고 오직 당신이 걱정해 풀 수 있는 문제들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라.

나는 낙관론자도 아니고 비관론자도 아니다. 그저 고민의 핵심을 정확히 스스로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노력하는 쪽이다. 당신에게 어떤 고민이 있다고 치자. 머리를 싸매고 며칠 누워 있으면서 걱정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조용한 바닷가로 가서 며칠을 쉬면 방법이 생각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건 그것을 종이에 적어보라. 틀림없이 서너 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몇 줄 안 되는 문제에 대해 10분 안에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으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10분을 당신은 질질 고무줄처럼 늘려가면서 하루를 허비하고 한 달을 죽이며 1년을 망쳐 버린다. 머리가 복잡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해결방안도 알고 있으면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직을 당한 친구가 있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몇 개월을 고민하고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고민의 핵심은 간단하다. 취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안 될까? 경제가 어려워서? 천만의 말씀이다. 핑계를 외부에서 찾지 말라. 채용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나온다. 채용할 만한 사람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앤드루 매터스는 ‘마음 가는 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나는 올빼미 체질이어서 늦게 자기에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숨 쉬지 마라. 고민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라.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라. 고민하나 안하나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민은 10분만 하라.

 

 







2장. 내 삶이 힘들고 절망에 빠졌을 때

1. 삶이 그대를 속이면 분노하라

1948년 가난한 어촌에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가발공장, 식당 등에서 일하였고 총으로 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폭력이 심한 남편을 피해 단돈 100 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식모살이를 떠난 여자. 미국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며 대학을 다녔고, 76년 미 육군에 들어가 소령으로 예편, 50세가 넘은 나이에 하버드 박사과정에 다니는 여자, 서진규. 그녀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읽어라)에서‘이만큼 성공하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반항심과 복수심이다.’라고 쓰고 있다.

수차례 그래미상과 MTV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몇 개씩 수상한 미국의 백인 랩 가수 에미넴(Eminem). 그 역시 쓰레기 더미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살았다. 생후 5개월 만에 아버지는 도망갔고 마약중독자인 어머니는 완전 떠돌이였다. 에미넴의 삶을 그린 영화 8 mile을 보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동창생과 동거를 하면서 그 동창생이 오럴 섹스를 안 해준다고 아들에게 호소하는 골 때리는 장면도 나오고 자기 애인이 친구와 섹스를 하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도 나온다. 당연히 그의 노래에는 어머니나 애인에게 쌍욕을 퍼붓는 내용이 나오며 대부분의 가사는 아주 반항적이고 폭력적이고 외설적이며 욕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2000년 미국에서 ‘공공의 적’으로 꼽힐 정도였다. (50이 가까운 나이인 내가 에미넴의 CD를 싱글 포함 6 장이나 갖고 있으며 아주 즐겨 듣는다는 것을 알면 아마도 쇼크 먹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에미넴의 앨범을 즐겨 들었었음을 기자들이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심히 유감이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도 미운 사람이나 짜증나는 사회를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는가? 나는 학창시절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을 죽이고만 싶었다. 집에 돌아 와 자기 방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심정을 이해하는가?’

나는 이해한다. 나는 주먹으로 피가 나오도록 방바닥을 치고 거울을 깨부순 적도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이발소에는 대부분 푸쉬킨의 시가 걸려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나는 이 시가 참 싫었다. 내 삶은 수제비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 슬퍼하지도 말고 노하지도 말라니. 희망은 안 보이는데 견뎌내라니. 세상은 이른바 배웠다는 위선자들로 가득 차 있는데 기쁨의 날이 올 것을 믿으라니. 돈 봉투를 안 가져온다고 나를 책망한 담임은 어느 날 모범 교사로 칭송을 받고(나중에 교장까지 되었다), 나는 자원입대 하였는데 멀쩡한 부잣집 친구들은 징집 면제 되고, 그런데 지나가는 시간이 훗날 소중하게 된다니 그것을 나보고 믿으란 말인가. 나는 세상에 대한 나의 분노를 폭파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처럼 세상이 뒤집혀질 전쟁을 기다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나 세상을 욕하고 가래침을 줄곧 뱉었지만 정작 나 자신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 눈이 시뻘겋게 일확천금만을 노리며 한탕 할 기회만 노렸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꿈틀거리기만 했다. 카프카의 ‘변신’의 벌레처럼 나는 먹고 싸고 먹고 싸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었으며 내일은 다시 어제였다. 조그마한 차이도 없었다. 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는 혐오스러운 나의 삶이 너무나도 한심하였고 끝내는 저주스러웠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분노하였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혐오감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5월의 찬란한 햇살 밑에서 향긋한 꽃내음을 그대로 들이 마시며 어깨를 펴며 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내가 수집하는 것 중에 모형 자전거가 있다. 이미 50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당신의 발이지만 앞바퀴를 돌려 방향을 잡는 것은 당신의 손이며 눈이고 의지이며 정신이다. 당신의 발이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움직여는 주지만 정작 당신의 손은 호주머니 속에 깊이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당신의 눈은 당신 앞에 놓인 길을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과 스포츠카만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지도 모른다. 때문에 비록 열심히 페달을 밟고는 있지만 당신이 탄 자전거는 제 자리를 맴돌 뿐이다.

만일 당신이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것들에 현혹되어 채팅, 게임, 공짜 사이트, 복권, 유명 브랜드 상품, TV, 술, 도박, 경마 등 일확천금과 한탕주의의 망상에만 몽롱하게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이 바로 그렇게 제 자리를 맴도는 사람이다. 그렇게 삶에 질질 끌려 다니며 제 자리를 맴도는 사람들이여. 이제는 그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아라. 비겁하게 외면하지 말라. 그 삶이 자랑스러운가? 이제는 그 삶에 대해 분노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파충류와 포유류의 차이 중 하나는 파충류는 본질적으로 화를 내거나 기쁨을 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뇌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변연계가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악어 쇼에서 악어를 때려도 악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신의 삶이 분노할 대상임에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미 당신의 뇌는 썩어 버린 것이다. 차라리 강물에 빠져 죽어 버려라. 하지만 이제라도 삶이 당신을 속인다고 생각되면 그 삶을 던져 버려라. 내동댕이쳐라. 삶은 한번 뿐이다. 삶에 비굴하게 질질 끌려가지 마라. 명심해라. 당신이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이 아니다. 현재의 당신의 삶에 먼저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분노’라고 말하라(Say No!). 그리고 당신의 삶을 스스로 끌고 나가라. 당신이 주인이다.

돈 독이 들어야 부자가 되는 줄 아는가? 투자기법을 몰라서 부자가 못 되는 줄 아는가? 절대 아니다.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꿈 깨라. 쇠고랑을 찰 기회만 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광고만 보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여. 메일만 보내면 수 억 원을 벌 수 있다고 떠드는 자들이여.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한시라도 빨리 그 허황된 몽상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피와 땀과 눈물과 시간 없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물만 부으면 되는 컵 라면 같은 순간적인 인스턴트 재테크 지식만 찾는다. 마치 자기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투자 기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재에 밝지 못한 때문으로 치부해 버린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당신 생각대로라면 이른 바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이어야 하는데 그들의 평균 재산은 다른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나에게서 실전 투자기법을 배우면 돈을 더 벌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태도부터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당신을 한심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다. 자기 삶의 노예가 되어 자기 생활과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현재의 삶이 절망스럽고 괴롭고 암흑에 싸여 있는 것 같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제 분노하라. 분노를 느끼는 사람만이 닫힌 문을 세게 쾅쾅쾅 두드릴 수 있다. 용수철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의 삶을 이 거친 세상에서 우뚝 홀로 세울 수 있도록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피 튀기듯 노력하라. 그리고 이제는 자전거 손잡이를 제대로 잡고 정면을 바라보고 페달을 밟아라. 그렇게 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당신의 삶의 주인이 되게 되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돈이 당신의 노예가 되어 당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인생역전은 당신 스스로 현재의 삶에 분노하여 그 삶을 뒤집어 버릴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수백억짜리 복권에 이번에는 내가 당첨될 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지우개' (송순태)

잘못 써내려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
철썩철썩 제 몸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매듭이란 매듭은 다 풀어지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평안해지고 마는구나
잘못 쓴 문장이 있듯이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도 있다


2. 천재 앞에서 주눅 들지 말라

가스보일러에 사용되는 환풍기부품 등을 생산하는 종업원 50여명의 중소업체 파워텍. 이 회사가 2000년 1월 리타워인베스트먼트사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리타워인베스트먼트사의 회장은 불과 31살인 미국계 한인 최유신 회장. 미국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자딘플레밍 증권사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하다 스미스바니은행 한국지사를 거쳤으며 98년 하버드 후배들을 긁어모아 회사를 설립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경제계 유명인사이다. 최 회장은 파워텍의 경영권을 넘겨받자마자 그 회사를 아시아 지역 인터넷 벤처회사들을 인수합병하는 투자회사 리타워텍으로 탈바꿈한다고 발표했고 리타워텍은 현금 투자는 거의 없이 주식 스왑을 통해 여러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지주회사로 변신한다.

그리고, 리타워텍은 역사상 최대의 외자유치라고 하는 13억 5,000만 달러의 외자유치 계획을 발표한다. 2000년 7월 21일 13억5천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조5천 억 원)가 해외에서 들어왔지만 그 돈은 불과 3시간 만에 다시 해외로 빠져 나갔다. 그 자금은 하루0.3% 이자를 주기로 하고 3시간 빌린 초단기 외화자금이었다. 어쨌든 리타워텍의 주가는 2000년 1월4일 2,415원에서 35일 연속 상한가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5월18일에는 36만2,000원에 달하게 된다. 누군가 떼돈을 긁어모았다는 말이다. 주가는 얼마 후 곤두박질치고 2001년 금감원에서 검찰에 수사의뢰하고 어쩌고 하였지만 주목할 만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은 리타워텍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정리한 것이다 나는 리타워텍 관련 기사를 보면서 “참 대단한 천재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죽어다 깨나도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외화를 3시간 빌리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전에 리타워텍은 국내 최대의 법무법인인 김&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재경부에 그러한 해외투자 계획을 설명하며(내 짐작이지만 3시간 동안의 투자라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법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냈었고 재경부 관계자는 “검토 결과 하자가 없어 적법하다는 회신을 보냈다”고 한다. 치밀하다! 천재들이다! 물론 상투를 쥔 개미들은 엄청난 피박을 썼다. 불쌍한 개미들…. (나는? 도대체가 수상쩍어서 리타워텍 주식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며 관련된 놈들을 아주 좆같은 18새끼들로 본다).

경향신문 2000년 2월 22일자에는‘사이버 투자왕, 대박 박정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5살 때 10만 자리까지 암산해 ‘수학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초등학생 때 아파트 평당 가격을 계산했다. 3수를 하던 때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평당 1천만 원까지 폭등하자 부모님에게 아파트를 빨리 팔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2년 뒤에 평당6백만으로 하락했고 IMF가 닥치자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6백만 원에 처분한 부모님은 아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2,191%, 2,057%. 99년 4월15일 1, 2회 한화증권 주최 사이버 투자대회 대학부문에서 올린 그의 경이적인 수익률이다. 1천만 원의 종자돈으로 사이버 매매를 통해 실전투자를 해 2억여 원을, 6백60만원을 투자해 1억4천여만 원을 벌었다. 지난 1월 증권 사이트 세르파 주최 밀레니엄 증권 수익률 게임에서는 1천 만 원 모의투자를 해 1,823%의 수익률을 올렸다.

대학생이 된 뒤 수학강사 자리를 얻어 1년 만에 1천 만 원의 ‘시드 머니’를 마련하였을 때 공모주를 중심으로 투자했다. 1천 만 원은 3년 만에 무려 1억5천 만 원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IMF가 닥쳤다. 결국 98년 1월에 2천 만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르자 베팅을 하기로 결심하고 2천 만 원 시드머니 중 1천 만 원을 투자했다. 한화증권에서 실시한 투자대회였다. 3개 대회에서 받은 상금만도 2억5천 만 원. 주식에 필요한 공부는 하루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경제신문을 즐겨봤지만 TV는 거의 보지 않았다. 지금도 신문의 경제면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본다. 그의 취미는 “주식투자.” 일이 아니라 취미로 주식투자를 즐기는 것이 남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원천’이라고 한다. 당신은 이런 기사를 보면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이 친구, 정말 돈 버는 천재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물론 나는 그가 계속해서 그렇게 돈을 벌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발명왕 에디슨이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으며 괴테는 “천재라는 것은 노력의 발명”이라고 하였음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범재들도 죽어라고 주식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면 1년에 2000% 가량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어렸을 때는 정말 노력만 하면 그렇게 천재 비슷하게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말들은 주로 “이미 1%의 영감을 타고 난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고 그저 천재가 둔재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당신들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보내는 격려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국어사전에서 조차 천재를 “타고난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할 뿐 “노력의 결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았는가? 죽도록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끝내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작곡하지 못하는 살리에르. 그리고 망나니처럼 생활하면서도 타고난 재능으로 인해 감동적인 음악을 아주 손쉽게 만들어내는 모차르트. 천재 모차르트 앞에서 살리에르가 느끼는 열등감과 시기심. 나 역시 천재들을 보면 언제나 열등감과 시기심을 느낀다.
영화 굿 윌 헌팅을 보았는가? 무지무지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 최고의 대학에 들어 간 학생들과 교수. 반대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청소부이지만 타고난 천재성 때문에 공부를 안 해도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윌 헌팅. 학생들과 교수는 그 천재 청소부에게 무엇을 느꼈을까? 시기심, 열등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좌절도 느끼지 않았을까.

모파상의 스승 플로베르는 “천재, 칭찬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일종의 정신병자이다”라고 혹평했지만 누가 뭐래도 천재는 우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과학자들은 천재아동 200명과 보통 어린이의 DNA를 분석해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고 천재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고까지 하는데 왜 나에게는 그런 유전자가 없다는 말인가.

천재 같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나는 나, 너는 너’라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시기심도 있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도 한다. 특히 천재가 저 먼 나라에 있다면 그저 찬사나 보낼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 보면 우리는 자신이 보잘 것 없는 듯 한 느낌에 빠지고 만다. ‘왜 나는 이 사람처럼 되지 못하고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까’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그래서 공상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천재가 되고 은행도 털고 슈퍼맨도 되고 억만장자도 되고 투명인간도 되어 이 세상을 누비고 다닌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그 돈으로 뭘 하겠다는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공상은 즐겁다.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그 공상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싫어진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돈은“1%의 영감을 타고난 천재”만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드 다섯 장을 쥐고 하는 포커판에서 나올 수 있는 카드패에는 2,598,960개 종류가 있다고 한다. 즉 최고의 카드패를 쥘 사람은 약 260만 명 중의 한명이다. 하지만 포커에서 그런 카드패를 갖고 있지 않아도 당신은 이길 수 있다. 그저 포커 게임에 참석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좋은 패를 갖고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최고의 카드를 받은 잘난 사람들은 무시해라. 그들의 포커판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

핵심은 천재들의 이야기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이지 당신보다 크게 잘난 사람들과의 게임이 아니다. 예컨대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하버드를 수석으로 나온 사람과 경쟁하게 될 까닭은 없지 않는가. 오히려 그 사람 주변에 더 무서운 경쟁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른바 공부 잘하고 머리 좋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학교나 연구소 혹은 법조계나 의료계 또는 유명 기업들에 있다. 이 얼마나 기쁜 사실이냐. 서울대 이공계 수석 입학생들의 80% 이상은 나중에 교수가 돼 있었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 역시 범재들에게는 너무나도 다행한 일 아닌가!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교수나 의사 혹은 변호사와 경쟁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자, 부자가 되는데는 신이 내린 어떤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벌도, 배경도, 자격증도 큰 도움이 안 된다. 부자가 되는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결국 그것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이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다른 보통 사람들과 경쟁하여 이기면 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놀 때 놀지 말고 그들이 잠잘 때 잠을 덜 자고 그들이 쓸 때 덜 씀으로서 목돈을 준비하고 기회를 찾으면 된다.

게다가 그렇게 노력하는 자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신 차리고 내 말을 새겨들어라. 보통 사람들은 학벌이나 배경이나 자본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학벌이나 배경, 자본 등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그런 것이 없으므로 노력하여 보았자 무의미하다고 믿고 아예 노력을 포기하고 만다. 현재의 위치에서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고 미리 포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당신 주변 사람들이며 그들은 그저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연예인이나 정치인, 스포츠 선수들, 컴퓨터 게임, 채팅, 명품 브랜드, 경마 등에 무지 관심이 많다. 당신이 하는 게임은 바로 그런 사람들과 하는 것이다. 기억하라. 이것 역시 당신에게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기쁘고 다행한 사실이라는 것을.

이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당신의 적군이 더 이상 싸울 생각을 갖지 않고 총을 내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적들과 싸울 때는 총도 필요 없고 그저 활이나 창 만 있어도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거창한 그 무엇도, 번쩍번쩍한 학벌도 대통령 친척과 친하게 지내는 배경도, 많은 자본도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달아라.

‘미래의 결단’,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미래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 역시 높은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사람,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중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앤드류 매터스는 ‘마음가는 대로 해라’(읽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원번역이 어색하여서 내가 고쳤다). 나는 올빼미 체질이어서 늦게 자기에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부자가 되는데 있어서의 경쟁자는 천재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의지라고 하는 이 지극히 간단한 사실이 독자들 마음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추신; 엄청난 부자들의 신화 같은 이야기에 초라해 할 필요도 없다. 특히 아무 아무개 경영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총액이 얼마라는 등의 기사는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 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일정 수의 주식은 계속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팔아버린다면 경영권을 잃게 된다. 즉 환전성이 약하다. 게다가 주식가격이 정찰가로 매겨져 있는 것도 아니다. 비상장 회사 주식인 경우에는 그 가치를 자기 마음대로 부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미공개 회사의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치자. 그리고 이 회사의 미래 가치를 5천 억 원이 된다고 뻥을 튀기면 내 재산은 졸지에 수천 억 원도 되고 1조원도 되게 된다. 그러나 미래가치라는 것은 순전히 말 만들기 나름이다. 시장에서 평가 받지 않은 주식의 가치는 아무도 모르며 그것마저도 현금화되기 전 까지는 실제 총액을 모른다.


3. 스트레스의 뿌리를 없애라

미국 잡지‘직업 등급 편람’에 의하면 미국의 2000년도 인기 직업 순위에서 대통령이 167위로 나타났다. “이는 대통령이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잡지는 매년 노동부와 통상단체들의 자료와 전화조사 등을 토대로 250개 직업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인기 직업순위 1위는 1999년 17위였던 전문 재산관리자가 차지했으며 가장 호감도가 낮은 직업은 어부인 것으로 조사됐다. 99년 1위였던 컴퓨터 웹 마스터는 2위로 떨어졌다. 교사는 119위, 경찰관은 200위로 나타났는데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여건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직업이 있을까? 암 치료 전문 의사들은 암 정복을 위한 필수 요소들 중의 하나로서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조언한다. 그들은 스트레스가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스트레스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욕망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또한 화를 내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지만 반면에 웃음은 우리 몸의 방어능력인 면역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은 크게 웃으라는 것이 그들의 충고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해소 방안을 제시하여 준다는 정신과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들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이미 독자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도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실패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주말에는 교외로 나가 신선한 자연을 벗하라. 일에 쫓기지 말라. 오늘 못한다고 내일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란 없다. 긴장을 풀고 살아라. 경쟁심을 버려라. 그들은 그들이고 당신은 당신이다. 실력과 능력이 다가 아니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건강을 생각하며 운동을 하라. 운동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자주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놀아라. 그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느긋하게 천천히 살아라. 그것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길이다.”

독일 풀다의 한 대학에서 건강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터 악스트 교수 역시 내과의사인 딸과 함께 쓴 ‘게으름의 즐거움에 관해’라는 책에서 “마라톤을 하는 대신 해먹(달아맨 그물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스쿼시를 하는 대신 낮잠을 자는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업상 받게 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장수하는 비결을 목표를 정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너무 일찍 일어나면 온종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런 조언에 충실히 따르며 살아간다면 장담 하건 데 몇 년 후에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하고 있는 일은 망한지 오래 이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이미 해고되어 구직 이력서를 서너 통 언제나 준비하여 갖고 다니는 몸 튼튼한 실업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건강이 최고라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을 지키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된다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자.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자. 왜 스트레스가 생기는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인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왜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일까? 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모르는가? 책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스스로 안 하는가? 게으르기 때문이며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최고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보고 공부는 학원이나 학교에 가야만 하는 걸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놀 것은 다 찾아다니며 논다. 그런 주제에 자기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하는데 주변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그러면서도 수입이 적다고 투덜투덜 댄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휴식을 충분히 갖고 쉬라고? 웃으라고? 한 달을 바닷가 해변에서 뒹굴어 보아라. 백날을 하하 호호 웃어보아라. 문제가 해결되는가? 웃기는 소리들 그만 해라.
기억하라. 제초제를 뿌리는 이유는 뿌리를 죽이기 위함이다. 뿌리를 살려두는 한 잡초는 다시 살아난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정확한 방법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뿌리 채 뽑아버리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 모든 원인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당신의 무지 그 자체이다. 즉 외부적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 상황을 어떻게 해야 헤쳐 나가는지를 모르고 있는 당신의 두뇌 속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무지함의 뿌리는 바로 게으름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빈 맥주병을 쌓아가지 말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라. 절대 회피하지 말라. 책을 읽고 방법론을 찾아내라. 그게 바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초제이다.

친구들과 상의하는 짓도 그만두어라. 당신이나 친구들이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며 그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답답함에 대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 아닌가. (여기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세이노는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시간을 자기 뜻대로 사용하면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으니까 스트레스도 해결 할 수 있겠지만 자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느냐.”
나의 대답: “아마도 당신은 남이 시킨 일을 하는 이상은 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왕년에 누군 남이 시킨 일을 안 해 보았는 줄 아는가. 내가 당신하고 다른 점은 나는 누가 시킨 일이건 아니건 간에 일을 해결할 능력 배양에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능력 배양은 언제나 일과 후에 있었으며 노는 날이라곤 거의 없이 30대를 보냈었다. 아마도 당신은 노는 날들을 악착같이 다 찾아 먹어 왔을 것이다.”)


4. 실패하면 제로 점으로 내려가라

왜 큰 부자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가난하였던 과거를 갖고 있을까? 어째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 사람들 보다는 하류층에서 태어나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난을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하였던 생활수준이 출발점이었기에 그곳으로 언제라도 “되돌아가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이 잘못 되어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다 날리는 실패를 당하게 되어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가” 재출발을 할 줄 안다. 수없이 많은 부자들이 사업이나 투자에서 실패하거나 홍수나 화재 등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가도 재기에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어려움이 닥칠 때 제로 점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제로 점에서 출발하였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제로 점으로 가는 것은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여야 하는 미지의 불안한 공포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실패 자체를 너무 두려워하다 보니 되는 일도 별로 없게 된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말 이전 까지는 넉넉한 환경에서 살았으나 그 이후에는 허름한 적산가옥(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의 2층 단칸방에서 가족 7명이 살았다. 고교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가마니가 문 가리개 역할을 하는 재래식 변소를 주인집 식구들과 같이 사용하는 그런 곳에서 월세로 전 가족이 살았다. 그 변소는 여름에는 파리 구더기들이 득실대는 모습이 적나라하였고 노크라는 것 대신에 인기척을 내야 하였던 그런 곳이었다. 집주인은 시장에서 순대를 파는 부부였는데 가게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순대를 작은 손수레에 끌고 다니며 파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 주인이 사는 집이라는 것도 높이 1미터 수준의 낮은 판잣집이었으며 매일 순대 삶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높이가 그렇게 낮은 이유는 높이 1미터 미만은 건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철거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곳에서 벌레처럼 살았다.

그 다음에 서울역 앞 양동의 쪽방 등 몇몇 곳을 더 거치게 되지만 가정집 차고에서도 살았었다. 나는 몇 년을 그런 곳들에서 혼자 살았고 주거 환경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차고 한 칸에 불과한 좁은 공간이었지만 예전 보다는 훨씬 더 나아진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보유 자금을 불리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가 28세에 집을 샀지만 1년 후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고 빚은 약 3천 만 원(당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가까이 있었다. 나는 제로 점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나는 주로 번역 일에서 수입을 얻었는데 번역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먹고 잤던 것이다.

부자로 살고 있는 지금도 내가 만의 하나 무슨 잘못 때문에 재산을 다 날리게 되어 빈털터리가 된다면(솔직히 그럴 리는 없다. 나는 비올 때를 대비하여 우산을 서너 개는 반드시 준비하기 때문이다), 즉시 나는 가족을 이끌고 제로 점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은 판잣집일 수도 있고, 남의 집 차고 일수도 있으며, 쓰러져 가는 무허가 비닐하우스 일 수도 있다. 나의 아내는 내가 빈털터리가 되어 망해버렸는데도 넥타이를 계속 걸치고 양복을 입고 다니면서 다단계 판매나 보험영업 같은 것을 하며 품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내는 내가 즉시 작업복을 입고 시장에서 노점이라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언제라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결혼하기 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틀림없이 부자로 산다. 돈의 생리와 부자가 되는 비결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 당시 나에게 빚이 아파트 한 채 값인 3천 만 원 정도 있었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순전히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시티 보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와 결혼하였다.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이미 나는 자가용 기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틀림없이 앞으로 더더욱 부자로 산다. 나는 딸들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고 싶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낮은 곳에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들이 중학교 수준이 되면 아빠가 갑자기 망했다고 말하고 거짓으로 재산을 몽땅 차압당하는 것으로 연극을 꾸미자. 그리고는 판잣집으로 이사 가서 단칸방 생활을 하자. 너는 파출부를 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뭐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모르겠다. 우리 둘은 허름한 옷을 입고 매일 아침 판잣집에서 나와 숨겨놓은 진짜 집에 가서 낮에 있다가 저녁에는 다시 애들이 있는 판잣집으로 돌아가자. 물론 애들에게는 돈이 전혀 없는 듯 처신하고 등록금은 일부러 늦게 주자. 맛있는 것이 먹고 싶으면 우리끼리 몰래 밖에서 외식하고 들어가고 딸들에게는 수제비나 먹이자. 봉투 붙이는 일 같은 것도 가져와 딸들에게 시키자.”이러한 계획은 아내의 반대로 인하여 실제로 실현되지는 못하였고(아내는 내가 농담하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그 대신 딸들에게 이 세상에서 대가를 얻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서의 삶을 체험하여야 나중에 경제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나는 지금도 믿는다.

중산층이나 상류층에서 태어나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실직이나 투자 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되면 대부분 빚을 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살았던 생활수준 보다 현저하게 낮은 곳으로는 내려가려고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2억 원 대의 30평형 자기 아파트에서 살던 사람이 주식투자나 사업에 실패하여 빚이 1억 생기게 되면 그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난 1억 원을 갖고 전세를 구하되 가능하면 비슷한 규모의 집을 구하려고 하며 이때 전세금이 모자라면 또다시 빚을 얻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집은 그대로 놔두고 빚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버는 족족 이자에 원금을 갚아나가니 사는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들은 생활수준을 저 낮은 곳으로 던져 버리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내 주변에 9천만 원의 전세를 살면서 빚은 1억 원을 지고 있는 30대 중반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연봉 2천만원대의 봉급생활자였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진퇴양난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권유한 방법은 있는 것을 다 처분하여 빚부터 갚고 달동네 월셋방 하나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판잣집에서 어떻게 애들하고 산단 말입니까?”라고 항변하였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 너는 지금 연봉의 절반 이상을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평생 빚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도 알 것이다. 너에게 보이는 해결책은 일확천금이기에 복권이나 주식 같은 것에 눈이 시뻘개지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요행수를 바라거나 무엇인가에 쫓기며 하는 투자는 언제나 허무하게 끝나기 마련이다. 생활비를 극도로 줄이고 자신의 몸값을 비싸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 밤에 포장마차라도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가난을 맛보는 것도 행운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하기 싫다면 개인파산을 신청하던지 불법적으로 콩팥 같은 신체의 일부라도 팔아 빚을 갚던지 해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너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이야 망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면 외국으로 온 가족이 다 야간도주하는 방법도 있다. 아내와 법적으로 이혼하면서 전세집은 넘겨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는 월급 차압이 들어올 것이므로 직장은 그만두고 세금 안내는 다른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 몰래 가족에게 전달해라.” “외국에서 살 자신은 없고 이혼은 아내가 반대할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글쎄다. 술 한 방울 먹지 말고 아주 예리한 면도칼 하나를 사고 가족사진을 앞에 놓아라. 그리고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거울 앞에 서서 네 목에 흐르는 핏줄 바로 위에 칼을 갖다 대라. 너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네 가족은 너를 평생 패배자로, 도망자로 기억할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해라. 그래도 죽고 싶다면 돼져 버려라. 그러나 죽은 뒤 그런 식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면 죽을 각오로 처음부터 빈손으로 다시 시작해라. 판잣집으로 가서 월세살이를 하란 말이다. 5년만 지나면 모두가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왜 재산을 갖고 이민을 간 사람들 보다는 빈털터리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 그 낯선 땅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은가. 밑바탕에서 아무 것도 없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낮은 생활수준으로 살아가며 돈을 모았기 때문이다. 제로 점에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플러스 희망으로 쌓여 만 간다. 돈이 쌓이고 희망이 쌓여 간다. 빚이 있는데도 삶의 질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들면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돈은 쌓이지 않고 희망은 갉아 먹힌다. 마이너스의 희망뿐이다. 그것이 절망이다.

나는 외국인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할 기회가 과거에 종종 있었는데 강의 중에 스크래치 scratch 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긁어서 내는 흠집, 긁다, 흠집을 내다”라는 뜻인데 “지운다.”는 뜻도 있다. 운동경기에서 땅에다 선을 그으면 출발선이 되기 때문에 “출발선, 출발점”이라는 뜻도 있으며 scratch along 은 “근근이 살아가다”, from scratch 는“출발점에서, 맨 처음부터, 무(無)에서”라는 의미이며, scratch up 은 “돈 같은 것을 긁어모으다, 푼푼이 저축하다”는 뜻이다. 미국속어에서는 “돈”이라는 뜻도 있다.

내가 말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수준이라는 것을 “지워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5. 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마라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 통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소외감이나 우울증으로 하게 되는 자살(이기적 자살), 자신이 속한 집단에 지나치게 융합 결속되어 집단을 위해 희생적으로 하는 자살(이타적 자살), 개인이 사회에 대한 적응이 갑자기 차단, 와해되면서 삶의 기준을 상실할 때 발생하는 자살(아노미anomy 자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은 아마도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 자살이 혼합된 것인 듯싶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로 꺼낸 것은 내가 20대 초에 그런 경험이 세 번 있기 때문이다. 약을 먹기도 했지만 며칠 후 깨어난 적도 있고 손목에 면도칼을 깊게 긋기도 했는데 깨어보니 병원 응급실이었고 그 덕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지기도 했다(혹시라도 세이노 행세를 하며 사기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왼쪽 팔목에 길이 6cm, 4cm짜리 칼자국 두개가 나란히 있다. 면도칼로 그었더니 피가 졸졸 흘러 다시 팍 그었기에 칼자국이 2개가 되었다. 그걸 확인하면 된다. ᄒᄒ )
우울증에 걸렸던 것 아니냐고?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극단적으로 우울해진 사건은 군 제대 후 압구정동에서 일어났다. 우연히 그곳을 부잣집 여자 친구와 지나가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결혼 후 어떤 곳에서 살고 싶으냐고 말이다. 그녀의 대답은 ‘얼마 전 결혼 한 막내 언니가 20몇 평에서 사는데 좀 좁게 느껴지므로 자기는 30평 정도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동네 아파트 가격을 알아보았더니 30평형은커녕 가장 작다는 20몇 평형 아파트의 전세조차도 나로서는 평생 못 가질 것이었다. 남산 꼭대기에서 바라다 볼 때 수없이 널려 있는 그 아파트들 중 정말 단 하나도 내 것이 된다는 것은 정말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게 벌써 근 30년 전 이야기이다.

십 몇 년 전 음향기기 사업을 했을 때,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아 출신의 한 젊은 직원을 고층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밤거리를 보여 주면서, ‘저기 저 성냥갑 같은 수많은 아파트들 중 네가 들어가 쉴 곳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 역시 같은 생각에 절망하고 있었다(어쩌면 당신도 강남의 수많은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절망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내 밑에서 3년 정도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고, 그 뒤 독립하여 줄곧 용산에서 1인 비즈니스를 하여 왔는데 5, 6년 전 결혼도 하고 아파트도 장만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용산 전자상가에 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건물 옥상에서 수많은 아파트 불빛들을 바라보며 바로 그 직원에게 내가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면 된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도대체 할 것이 없었다. 뭘 하면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군 제대 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대학생도 아니었고 홀로 세상에 던져진 가난한 청년에게 ‘하면 된다.’는 말은 정말 사기나 다름없었다. 아침 햇살을 가슴 벅차게 안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라면 살 돈도 없어서 라면 스프만을 얻어다가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연탄불 위에 끓인 뒤 거기에 다 식어 빠진 밥을 김치도 없이 계속 먹어 보아라. 무슨 희망이 있다고 살맛이 나겠는가.

그 시절의 나에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는 뜬 구름 잡는 책들을 책방에서 선 채로 다리 아프도록 읽는 것과 마스터베이션뿐이었다. 그나마 마스터베이션이라도 되었으니 다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발기가 안 되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결국 절망감, 고독감, 외로움, 열등감, 상황도피, 삶의 기준 상실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살을 생각하였고 그것이 거듭 실패하자 “이 좆같은 세상에서 이왕에 살아야 한다면, 내 팔목에서 쏟아진 피보다 더 진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피보다 진하게 살자”가 나의 좌우명 비슷하게 자리 잡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에 걸려 자살충동을 느끼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중증의 우울증 환자인 경우 머리에 강한 전기 쇼크를 주어 잠시 죽였다가 실험실 개구리 뒷다리처럼 온 몸에 발작이 일어나면서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하면 다시 살려내는 그런 치료법이 종종 사용되었다(그런 장면을 본 나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는 명랑한 척 하여 풀려났다. ᄏᄏ).

23살의 어느 우울한 봄날이었다. 다시 봄이 왔을 때 나는 남의 집 차고에서 살면서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미군 부대 물건 판매 등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그리고 28살의 어느 여름날 나는 허름하지만 마당까지 있는 집과 자가용을 처음 샀다. 융자를 낀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나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하지만 1년 후 나는 그 재산을 사업상의 이유가 아닌 개인적인 이유로 몽땅 날렸고 빚을 졌지만 3년 후 다시 일어섰다.)

살다 보면, 해도 해도 아무것도 안될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때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실망, 좌절이 절망 속에서 계속 쌓이면 자살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처한 고통이나 위기상황, 상실감 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자살이 그런 탈출구였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떨어지던 중 비쩍 마른 두 팔로 온 힘을 향해 세상 속으로 날갯짓을 시작하였을 뿐이다.“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추락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갯짓을 할 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절망의 골짜기에는 밑바닥이 없다.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절망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마약 중독자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주인공 마크 렌튼은 이렇게 말한다. “삶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미래를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빌어먹게 큰 텔레비전을 선택하라. 세탁기, 자동차, CD 플레이어, 전동식 깡통 따개를 골라라. DIY제품을 고르고,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회개하는 삶을 선택하라, 빌어먹을…. 하지만, 내가 왜 그런 것을 원해야 하지?(But why would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렌튼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비웃는 듯 보이지만 그의 독백 속에는 학벌이나 돈, 능력도 없으므로 평범하게 살래야 살 수도 없지 않느냐는 절망이 근저에 깔려있다. 그는 대안으로 마약을 선택하였을 뿐이다.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에서 기차가 처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생긴 말로,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 모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맞추는 게임을 뜻한다. 이 영화의 극작가 존 호지는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 즉 트레인스포터는 혼돈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행동 양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영국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결국 ‘트레인스포팅’은, 삶은 우리에게 달려오지만 우리는 삶의 번호를 알지 못하며 다만 번호를 맞추는 게임을 할 뿐이라는 의미를 던져 준다.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류대를 못 다닌다고 해서 10년 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의 빚을 5년 후에도 못 갚을 것이라고, 지금의 봉급으로는 평생 남들처럼 못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여 체념한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러저러하므로 5년 후, 10년 후에도 이러저러할 것이기에 희망이 없다고? 너무 계산이 빠른 것 아닌가?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신의 영역인 미래를 스스로 투시하고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려면 미래 방정식에 지금의 처지를 대입하면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안 된다.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트레인스포팅 게임처럼 우리에게 달려오는 삶의 번호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논두렁에서 군사를 일으켜 일약 군왕이 된 자가 있는가 하면 시장 거리에서 춤추던 무희가 하루아침에 황후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지 않은가. Don’t cry for me Argentina 의 주인공 에바 페론 역시 술집 종업원에서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나 절망적이었던 내가 부자로 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흔히 이야기 하듯 사람 팔자 시간문제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절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저 이 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언젠가에 무슨 일인가가 새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라. 절대로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하는 따위의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말라. 그것 역시 미래 방정식에 현재의 시간을 대입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며, 패자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뭘 배우던지 간에, 뭘 하던지 간에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하여라. 그렇게 할 때 미래는 그 암흑의 빗장을 서서히 열어주기 시작할 것이며 조만간 그 빗장 너머에서 비쳐지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몇 년째 살아 왔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그저 삶의 번호를 잘못 찍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다. 그 잘못된 길에서 절망하지 말고 빨리 깜박이를 키고 길을 바꾸어라. 내 말을 믿어라. 거기서 새 삶이 무섭도록 빠르게 달려온다. 정말 정말 그렇게 되느냐고?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하나만 이야기 하자.

신문에 칼럼을 기고를 할 당시, 절망감이 가득찬 독자로부터 메일을 계속해서 받았다. 이른바 괜찮다는 대학의 인문학과를 나왔지만 이혼하여 혼자가 된 상태에서 뚜렷한 기술이나 직업도 없는 30대 초의 독자였다.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약대나 한의대에 다시 가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게다가 중고생을 부업 삼아 가르치며 모은 얼마 안 되는 돈 마저 주식투자로 다 날렸지만 몰락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였다. 답변 메일에서 나는 생각의 방향전환을 강조하면서, 부업 삼아 하던 과외 일에 미칠 것을 권유하면서 프로가 되는 법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려 주었고 그 독자는 내 지시대로 하겠다고 하였다(나는 내게 메일을 보내는 모든 독자에게 똑같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절대로 나에게서 개인적인 친절함은 기대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즉각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머뭇거리면서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의 질문들은 정확히 표현하면 궁금한 점들이 아니라 안달이었고‘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세이노 말처럼 과연 될까’하는 끊임없는 의심이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이미 실제로 경험한 것을 말해 주는데도 믿지를 못할까? 정말 이러한 의심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유대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진리이다).

미래를 미리 계산부터 해보려는 그의 태도에 나는 짜증을 엄청 냈으며 결국 그는 내가 제시한 방법론을 받아 들였다. 1년이 지나자 그의 예금액은 수천만 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채 못 되서 그 금액은 2억 원이 되었고 거기서 다시 6개월여가 지나자 그가 내게 보고한 예금액은 3억 원에 달하였다. 물론 내가 아주 약간의 재테크 조언을 해 주기도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내 조언들을 의심하지 않았다(그 조언 중 하나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에서 나온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그 독자의 프라이버시와 세무서 때문에 안 된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 아니냐고? 야, 이 닭대가리야!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인 줄 아느냐? 쯧쯧.


6.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할 때는 피를 토하는 자세로 하라고 한다. 특히 30대 중반 이전에는(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적어도 2-3 년 동안은(길면 길수록 좋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없어야 하므로 최대한 일터나 학교에 가깝게 살면서 시간을 아끼고, 밥을 많이 먹으면 졸려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므로 밥을 굶거나 조금만 먹으라고 하고(내가 밥을 굶으라고 까지 하는 것은 실제로 쫄쫄 굶으라는 뜻이 아니라 밥 대신 다른 것을 간단히 먹으라는 뜻이다), 시간을 철저하게 아끼려면 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하므로 그냥 씹어 먹으라고까지 말한다(너무했나? 실제로 나는 5-6개월을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미리 삶아 놓은 계란 두개 혹은 라면 부스러기나 찬밥 물에 말아먹기, 저녁밥은 작은 공기 하나 정도로 때운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아침을 전혀 먹지 않으며, 오후의 식곤증을 없애고자 점심을 반만 먹을 때가 많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다가 건강을 해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말이다. 자기도 그렇게 해 보았었는데 위장병만 생기는 바람에 아직도 고생한다는 말도 하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요통만 생겼다고 하기도 하며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역시 건강이 최고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면 건강 걱정 하면서 그렇게 계속 튼튼하게 살아라.

81년부터 90년까지 10년간 언론에 게재된 자살기사 총 4백11건을 분석한 논문(중앙대 의대 박동철)에 따르면 자살 동기는 “경제적 가난”이 86건(21%)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정서적 갈등”79건(19%), “부부갈등”66건(16%), “학업문제”24건(6%) 등의 순이었다. 또 자살의 심리적 원인은 “절망 및 고독감”1백17건(29%), “열등감”52건(13%), “갈등 상황도피”47건(11%)의 순으로 조사됐다. 연령층별 자살률은 20대가 가장 높고 다음으로 30대, 10대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 통계청이 내놓은‘99년 한국인의 사망원인분석’에서도 자살자는 10~30대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고 그들 세대에서 자살은 교통사고 다음의 최대 사망원인으로 나타났다. 즉 자살자들은 젊고 싱싱하고 건강한 10대~30대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며 건강 상실이 동기가 되어 자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흔히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면 당연히 절망하여 자살할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인해 자살 하는 사람들 보다는 건강하고 탱탱한 몸을 갖고 있음에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 말이다. 건강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데도 왜들 그렇게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갖게 되어 고민 끝, 절망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아닌가.

어느 독자에게 프로 과외선생이 되는 쪽으로 삶의 방향전환을 권유했던 적이 있다(‘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말라’항목을 참조하라). 그때 일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서 빠지지 않은 사항이 있는데 농땡이 치지 말고, 학생을 손님으로 여기면서 하루 종일 가르치는 것과 관련된 일, 즉 교재를 준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만 미친 듯 몰두하라는 것이었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간에 쉬지 말라고 했다. 그가 내 지시대로 몇 개월을 하다가‘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고 싶다’고 하였을 때 내가 한 말은 ‘엄살떨고 있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였다.

1년 정도 지나 ‘피곤함에 쓰러져 며칠 동안 병원에 있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내가 한 말은 ‘당장 종합 비타민을 두 알씩 먹어라.’였다. ‘돈도 좋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지 않느냐’는 그의 말에 내가 한 말은 이랬다. ‘그 잘난 건강을 가지고 있었을 때 너는 당장 죽고 싶은 마음 뿐 이었지 않은가. 자살하는 사람들 중 99%는 건강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끓는다. 그러니 개소리 말고 밥이나 철저하게 제 때 찾아 먹어라. 차가운 샌드위치라도 제 때 먹기만 하면 죽지는 않는다.’ 내가 그에게 한 달에 하루는 푹 쉬어도 좋다(일주일에 하루가 아니다!)고 한 시기는 그의 예금액이 2억 원을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 였는데 메일을 주고받은 지 2년이 채 안된 시기였다.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신체적으로 병이 없는 상태이면서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안녕인 상태’라고 정의한다. 몸 건강한 노숙자는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는 아니므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몸 하나 튼튼하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가 아니면 육체적 건강은 위협을 받는다. 핀란드의 투루크시 직업병전문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경기가 침체 국면에 있을 경우 근로자들은 더 많은 질병을 앓게 되는데 고용불안과 일터에서의 분위기 변화 등으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하며, 실제로 실직하게 되면 사망률마저 높아진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연구팀은 25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업률이 낮을 때 실직하면 사망하기 쉬우나 실업률이 높을 때는 그럴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연구팀은 실업률이 낮을 때 실직한 사람은 본래부터 건강에 나쁜 생활습관과 성격 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에 사망률이 높은 것이며 실업률이 높을 때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도 실직할 가능이 높아지고 주변에 실직자가 많다 보니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어들어 사망률이 낮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학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중한 업무를 하게 되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면서 신경이나 관절 등 신체 조직이 긴장하여 면역력이 떨어지고 뇌출혈, 심혈관계 질환, 뇌경색,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능력을 키워야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능력을 키우려면 내가 권유하는 바대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낮에 일을 하게 될 때 느끼게 되는 피곤함이나 체력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할까?

나는 육체를 하루에 열 몇 시간씩 혹사 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육체에는 한계가 분명 있다. 때문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뇌의 활동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휴식 삼아 영화를 보건 음악을 듣건 뭘 하건 간에 두뇌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는 이상 두뇌는 계속 활동한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눈동자가 움직이고(REM) 뇌파의 변화가 있는 것을 보면 두뇌는 수면 중에도 완전히 쉬고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내가 피 토하듯 하라는 것은 어느 한 분야에 정신을 계속 집중시키면서 두뇌를 계속 사용하라는 뜻이다.

물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엄살은 부리지 말라. 나 역시 건강체는 아니다. 몸무게도 표준 체중보다 미만이고 나이 50에 허리둘레 30인치를 갖고 있을 정도로 말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고 큰 병도 몇 번 앓았던 경험이 있다. 번역일을 할 때는 하루 열 몇 시간 이상 원고지를 메꾸느라 어깨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아픔을 늘 갖고 살았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인한 시차 때문에 위장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한 적도 있고 몇 년에 한 번씩 재발하곤 하는 십이지궤양을 아직도 갖고 있다. 급성 폐렴에 걸린 줄도 모르고 지독한 감기에 걸렸나 보다 생각하며 돌아다니다가 병원에 초 응급으로 입원한 적도 있다. 심한 목 디스크로 고생하기도 했었다. 아프리카 깊은 산속에서 어깨에 벌레물린 물집 같은 것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엄청 아파 고생한 적도 있다(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진찰을 받아보니 대상포진이라는 병이었다). 게다가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 보니 파편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거의 실명 위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하지만 나도 늙어간다. 30대만 하더라도 코를 골거나 이를 갈거나 방귀를 뀌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를 갈거나 코를 골 때도 많다고 하며 가끔 저녁에 방귀도 뿡뿡 뀌는 것을 보면 몸이 확실히 예전과 같지는 않다. 내가 20대부터 40대 초까지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뭔가를 읽고 배워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신체리듬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한참 일하였던 시기에는 취미 생활을 위해 몸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였는데 그 다음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밤에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나는 세상없어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새벽까지 술을 마심으로써 다음날 엉망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10년에 한번 정도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직원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셔대는 사람들, 교회에서 철야예배를 마치고 출근하는 사람들, 일요일에 등산이니 뭐니 하면서 몸을 극도로 사용한 뒤 월요일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육체의 리듬을 깨는 일은 토요일에 할 것을 권유한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다가도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건강이 최고다”는 말에서 피난처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 노력의 결과가 즉각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기에 기쁨을 즉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생의 경우 죽어라고 공부한 결과 몇 개월 후 치룬 시험에서 성적이 쑥 올라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신이 나서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공부하게 되고 자기가 공부하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깨달음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에 변화가 없었다면 노력할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서 소화가 안 된다느니 등등 갖가지 질병을 달고 다니게 된다. 사람들이 노력을 열심히 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 몇 개월을 열심히 해 보아도 수입이 즉각 느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가시적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으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결국 싫증만 느끼게 된다. 쉬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가시적 결과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부에서 찾아라. 당신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하여야 할 주체는 타인이나 직장이나 사회가 아니다. 왜 상을 누군가로부터 받으려고 하는가. 상은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 진짜이다. 새겨들어라. 훌륭한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붓을 놓지 않는 법이다. 당신 역시 당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수준이 스스로 흡족할 때 까지 그렇게 해라. 스스로 얻게 되는 뿌듯함, 내가 여기까지 알게 되었구나 하는 벅찬 기쁨, 이런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둘째, 쉬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여 보라. 당신이 허약 체질이라도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은 쉬지 않고 24시간 이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를 느끼는데다가 육체적 에너지의 손실이 크지 않고 두뇌를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이 아닌 일에서 자꾸 쉬고 싶어지는 이유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이 비비 꼬이고 싫증이 날 때는 자기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재미를 느끼기만 한다면 스트레스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 일이나 재미있게 하라”항목을 참조하라).

셋째,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라. 문제는 그 시기가 당신이 생각하는 시간 보다 더 미래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나는 “보상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돈다. 가속도가 붙기까지는.”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노력을 해도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일도 물론 있다. 미련하게 무조건 한 우물을 파지는 말라는 말이다(“이런 일은 하지 말라” 항목을 참조하라).

넷째, 긴장감을 잃지 말라. 긴장감이 있다면 싫은 것을 오래 동안 억지로 하여도 탈이 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식사도 제때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병사들이 건강을 해쳐 죽었다는 말 들어 본 적 있는가?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긴장감 때문에 그럴 틈이 없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 것이다. 제 아무리 몸이 아파도 점호 시간에는 정신이 버쩍 든다는 것을. 결국 모든 것은 당신 정신 상태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르치기라는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배수의 진을 치라는 말이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육체의 건강을 우선으로 친다고? 아무도 안 말린다. 그러나 그 튼튼한 몸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그 육신의 존재 이유를 한번쯤 생각하여 보면 어떨까? 그저 오래 살기 위해서?


3장. 학력, 학벌, 자격증 등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

1. 학력이나 학벌이 빈약한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나

1. 학력(어느 수준 까지 공부했는가를 말한다)은 있는데 학벌(일류대를 나왔느냐를 따진다)이 떨어지는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학벌이 중시되는 집단은 가능한 멀리 해라. 한국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은 파벌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며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학벌이 신통치 않으면 학력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은 젖혀진다. 학벌 쟁쟁한 인사권자들이 2류대 졸업자들의 서류들을 거들떠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모르면 2류 학벌을 갖고서 기 쓰고 1류 학벌 집단에 들어가려고 애쓰다가 좌절하거나, 그 집단에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들어간다고 해도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은 스스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하여도 학벌로 인한 학연의 벽을 뚫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다니나 마나 한 대학을, 그것도 대학원까지, 기 쓰고 다니면서 취직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학벌이 약한 사람이 취직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1998년 초,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풍지박살 나면서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시절 내가 경영한 외국법인에서 신입 여직원들이 필요하여 이른 바 일류대 취업실에 공고를 부탁하였던 적이 있다. 자격은 영어와 컴퓨터 활용 능력이었다. 예상대로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제출된 이력서 중에는 내가 학교 이름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한 지방대 졸업자가 한명 있었는데 ‘영어나 컴퓨터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객관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흥미를 느껴서 면접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면접에서 나는 그 지원자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었는지를. 그녀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저는 지방대 출신이지만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은 일류대 졸업자 보다 더 많이 갖추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에는 면접 기회조차 안 주어집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서울로 밤기차를 타고 와 서울의 유명 대학교 취업 게시판들을 살펴보고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채용을 결정하였으며 다른 면접 대기자들은 만나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더 좋은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어 내 회사에는 나오지도 않았다.

예를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 오래 전 무역학과 출신들을 신규로 공개 채용하였을 때의 일이다. 물론 일류대 무역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자들이 뽑혔다. 그리고 얼마 후 내게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던 어느 지방대 출신 학생이 보낸 것이었다. 열어보니 두껍고 낡은 노트 몇 권이 들어 있었다. 그 노트들에는 그 학생이 학창 시절에 수년 동안 무역 회사들을 발로 찾아다니며 얻어 낸 무역 실례들과 각종 무역 서류들의 형태와 작성기법, 그리고 실무적 주의 사항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동봉된 편지에는 ‘저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900점 가까운 토익 점수 사본이 들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새로 이미 입사한 녀석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지만 어쩌랴. 결국 그 학생을 내가 알던 외국계 기업에 강력히 추천하였고 그는 당연히 채용되었는데 불과 7-8년 만에 부장이 되었다(그 뒤 회사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전공은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문학과였는데 학점은 전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 아무리 실업률이 높아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라 할지라도 막상 경영자들의 말을 들으면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공통된 고민이다. 대학 도서관들의 대출도서 목록에서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면접기법은 학원에서 배우고 자기 소개서는 대행업소에서 맡기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학연, 지연, 혈연이 있어야 한다고 핑계를 댄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은 전산학과 출신을 채용할 때 일류대를 뽑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을 판매하기도 했던 내 경험으로도 그렇다. 전 과목 모두 잘하는 사람은 정작 필요한 업무에서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히려 일류대가 아닌 이류대에 전산에 미친 사람들이 많다. 일류대 출신을 선호하는 회사는 이미 일류대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더 많다.

2. 학력이 없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코스닥 등록 기업들의 경영자들 중 대학 출신이 많은 이유는 그 기업들의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고졸자들도 분명 있음을 기억하라. 학벌이나 학연이 보잘 것 없다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 역시 그랬다. 분명히 말한다. 대졸자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4년과 동일한 기간을 어떤 분야에 홀로 파고든다면 그 어떤 분야에서건 대졸자보다도 더 큰 실력을 갖추게 된다.

나의 경험담. 군 제대 후 우여 곡절 끝에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높은 보수를 받으려면 고등학생을 가르쳐야 했고 영어실력이 필요하였다. 당시 나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영어도 못했다. 하지만, 영어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들이 하루에 2시간씩 4년간 공부한다면 도사가 된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2시간씩 4년? 하루에 4시간을 하면 2년? 8시간이면 1년? 16시간이면 6개월? 18시간이면 6개월도 안 걸린다는 말인데 …한번 미쳐보자.’ 그 기간 동안 나는 몸을 움직이면 피곤해지고 밥도 많이 먹게 되어 졸음이 오게 되므로 외출이나 목욕도 하지 않고 오줌통에 소변을 보고 하루에 두 끼를 최소량만 먹으며 혼자서 영어에 미쳤고 5개월 후 치룬 첫 토플(요즘의 토플과는 다르다)에서 570점 이상을 받았다. 얼마 후 나는 그 점수를 갖고서 미8군에 있는 미국대학 분교에 들어갔고(누가 미8군내에 있는 대학분교를 알아준다는 말인가) 그 점수를 학부형들에게 보여주면서 고3 학생도 가르칠 수 있었고 토플 점수를 계속 올려 나갔으며 닥치는 대로 갖가지 분야를 공부하였다.

학력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일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예를 들어 대리운전이 제 아무리 수입이 좋아 보여도 그 일은 시간 당 인건비는 많이 챙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면, 빚이 많다면, 땡전 한 푼 없다면, 그 일을 해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종자돈을 악착같이 모아라. 그리고 난 뒤에는 독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배워라. 봉급이 적더라도 기 쓰고 그 일을 해라. 거기서 기회가 주어 질 것이다.

3. 학력이나 학벌이 없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라. 학벌이 신통치 않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이 사회에서 일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칼과 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갈고 닦아라. 이러한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결국 이 문제는 한가한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일상에 쫓겨 시간이 모자란다면 과감히 6개월 이상을 그 일상에서 벗어나라. 휴학도 좋고 휴직도 좋다. 백수라면 더 좋다. 어딘가에 틀어 박혀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말고 배우고자 하는 분야에 100% 미쳐라.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라.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 라면 1개도 많다. 그냥 씹어 먹어라.

그리고는 스스로 독립하거나 중소기업 같은 작은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좋은 회사’라는 곳에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일 전체를 배우게 되며 ‘길거리지식’을 얻게 되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만이 중소기업의 천국인 이유는 직원들이 일을 배워 자꾸 독립하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하는 것은 체념과 게으름이다.

4. 학벌이 좋건 나쁘건 부자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게임(games people play)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그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아동도서 ‘팰릭스는 돈을 사랑해’ 같은 쉬운 책부터 읽어보라. 하루에 3시간 이상 자기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라. 학벌이나 학력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


2. 학벌 좋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일류 대학을 다닌다고? 외국 유명 대학에서 유학중 이라고? 최고의 학력과 학벌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봉급생활자로서 달리기를 해 볼 수 있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선 위치에 주어지게 된다. 당신은 당연히 학력과 학벌을 중시하는 집단으로 가야 한다. 배경도 있다면 공기업에 들어가면 더욱 좋다.

아시아 지역에서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엘리트 의식이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교육 방식은 암기식 위주이다. 암기식은 암기능력이 우수한 사람들만을 우수한 엘리트로 대접하고 창의력이나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열등감 속에 빠뜨리는 아주 잘못된 교육 제도이지만 그 제도에서 승리자가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엘리트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국내 대기업들 중 상당수는 그들이 입사하면 엘리베이터 타는 법, 인사하는 법, 명함 주고받는 법 등과 같은 것을 반드시 가르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고시 합격자들을 보자. 고시 지상제일주의로 인해서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로 자부하고 민간의 조언을 열등하게 본다. 오죽이나 하면 KDI 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왜 그럴까? 암기 능력의 탁월함을 판단 능력이나 리더십 혹은 수익창조 능력의 탁월함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의 능력이 문제가 된다. 김지룡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망해버린 야마이치 증권사 직원이 다른 외국계 증권회사에 입사하려고 인사부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야마이치 증권의 직원입니다. 귀사에 취직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도쿄대학 출신입니다’
‘학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무슨 일을 해 왔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묻는 겁니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나왔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어회화에 자신 있습니까?’
‘영어는 못하지만 도쿄대 법대를 나왔습니다.’
‘파생 상품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도쿄대 법대를 나왔습니다.’
‘PC 는 다룰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도쿄대 법대를 나왔습니다.’
‘도쿄대 얘기는 빼고 이야기 합시다.’
그 남자는 말이 없다가 전화를 끊었다고 하며, 신문에 실린 실화라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어느 대학원 졸업자를 면접하였을 때 있었던 일이다.
‘컴퓨터는 어느 정도 하는가?’
‘잘하지 못합니다’
‘외국어는?’
‘전공 공부하느라고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지원하게 된 동기는?’
‘컴퓨터를 잘 활용하고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엘리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회사에서 직원으로 당장 써먹기는 좋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뭔데?’
‘저는 대학원을 다닌 것이지 학원을 다닌 것이 아닙니다. 정보화 시대에는 그런 기능적인 능력 보다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아이디어를 제기할 수 있는 소양을 닦았습니다. 저는 한명의 아이디어가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O. K. 알았네. 그렇다면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전공과 관련된 것이건 아니건 간에 하나만 이야기 해보게나.’
‘아직은 없습니다.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자네가 그런 아이디어를 낼 능력의 소지자라는 것을 입증하여 보게.’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학점은 교수들에게 받았지?’
‘네.’
‘자네 교수들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면 말하여 보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그 학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지?’
‘저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 그런 엘리트 사원이 될 것입니다.’
‘글쎄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믿어주십시오. 저는 일류대학과 일류대학원을 졸업하였지 않습니까.’
‘(속으로) 이런 닭대가리.’

좌우지간,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일부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사업화 시켜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홀로 활동하는 전문직이 아닌 한 99%는 이른 바 ‘좋은 직장’을 원하기 때문에 대기업 같은 조직의 일원이 된다. 능력별 연봉제를 실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학력과 학벌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 당신은 절대 유별난 존재가 아니기에 월급의 차이가 큰 것도 아니다.

특히 조직 내에서 일차적 기회는 학력과 학벌 게임에서 최고의 졸업장을 갖고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거나 오너의 친족들이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배제 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대 조직 일수록 내부에 은연 중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가지는 않으며 아부도 좀 하고 줄도 잘 서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조직 내에서 계속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면 탈출하여 ‘길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체면이나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서 여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직장 내 파워 게임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필 포터가 쓴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먹힌다.>를 반드시 몰래 읽어라.)

특히 제 아무리 유명한 경영대학원 출신이라고 할지라도 경영 관리 기술을 이론적으로 배웠을 뿐이지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을 훈련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중간 관리자급 정도가 되어야 개인별 능력의 차이가 혁혁히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나는 미국 유명 MBA 소지자들 중 미국인이건 아니건 연봉을 더 주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보았지만 처음 입사 당시의 연봉을 반으로 깎아도 여전히 돈이 아까운 사람들도 보았었다. 대 조직에서는 일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 속에 숨어있기가 쉽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능력 배양을 등한시 하는 경향도 많다. 가장 한심한 경우는 대 조직에서 ‘얼마의 예산 혹은 매출을 주물렀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능력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조직이 일을 하는 것이지 개인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전문 직업인들을 제외하고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연봉을 누가 누가 더 받나’ 게임에서는 학력과 학벌이 좋을수록 처음에는 일단은 유리하지만 불행하게도 ‘홀로 독립하여 누가 먼저 부자 되나’ 게임에서는 그것들이 정말 별 의미를 주지 못한다. 부자가 되려면 미국인들이 ‘길거리 지식’(street knowledge)이라고 부르는 총체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대 조직에서 배우기는 대단히 어렵다. 언제나 일 전체 보다는 일부분만 배우게 되고 맡은 분야 이외에는 관심을 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실물 경제 속에서 돈 냄새를 잘 맡아야 하는데 학교 공부만 하였기에 실제 상황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지식들을 얼마나 자기 머릿속에 이전 시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과 응용력이 얼마나 개발되어 있고 부가가치 창출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가 결정 요인이다.

이런 능력을 기르려면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더 많은 대우를 찾아다니는 것 보다는 일을 총괄적으로 좀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평생을 직장인으로 살게 되는 빈도가 높고 소비 성향도 높다.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학벌 좋은 사람들이 내게 하여 온 말. ‘직장 때려 치고 빨리 사업해야 할 텐데…’ 그 말을 나는 1, 2년 들었던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을 똑같은 사람들에게서 계속 들어 왔다.


3. 부자가 되려면 학교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

예전에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세계 4백대 거부 가운데 58명은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중퇴했다. 그러나 이들의 재력은 평균 48억 달러로 전체 평균 18억 보다 훨씬 더 많았으며, 미국 동부의 사립 명문대 아이비리그 출신자들 보다 평균 2배 더 많았다. 즉 학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돈은 더 많이 벌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유명한 자수성가형 부자들을 보면 학력이 좋은 사람이 드물다. 국내재벌 1세들도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학력(어느 수준까지 공부했는가를 말한다)과 학벌(일류대냐 이류대냐를 따진다)이 화려한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애쓰는 회사들이 대부분 학력이 짧은 사람들이 만든 회사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부자가 되려면 학교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일까? 헛소리 하지 말라. 특출한 능력과 노력이 따로 없는 한 학교공부를 너무 안 하면 아예 기회가 박탈되어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는 더 높다.(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에디슨은 학교 무용론을 직접 실천하고자 자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그 아들은 나중에 사기꾼이 되어 감옥살이도 하였고 평생 비참하게 살았다.)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학교와 관련된 몇 가지 거짓말들이다. 첫 번째 거짓말은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진실은, 인격의 깊이와 지식의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 덕분에 어떤 전문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교양인이 되었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농경시대에는 교육의 목적이 인간형성에 있었고 때문에 가르치는 자는 ‘스승’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학교 공부는 인격함양을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저 지식일 뿐이고 배우고 나서 몇 년도 못 가 다 잊어버릴 것들이 태반이며 가르치는 자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일 뿐이다.

두번째 거짓말은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말이다. 고졸자들은 보통 초중고 12년 동안 70-100 명 정도의 교사를 만나게 되는데 고3 학생 1,084명에게 존경하는 교사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46.5%는 1~2명, 34.7%는 3~4명 , 8.1%는 5~6명, 7.6%는 없다고 대답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딸들이 존경할 만한 교사를 만날 확률은 10% 도 안된다는 뜻이다. 나는 실제로 내 딸들에게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고 한 적도 없고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말도 전혀 한 적 없다. 오히려 교사들 중에는 형편없는 연놈들이 더 많으며, 운이 아주 좋아야 존경할 만한 스승을 만나게 된다고 말해왔다. 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직도 정말 웃기는 연놈들이 ‘선생님’행세를 하는 게 부지기수다.(그래서 나는 교사평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으며 그 평가에는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반드시 참여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어쨌든 부모들이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득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반적인 봉급생활자 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전문 직업을 가지려면 갖가지 자격시험을 잘 치러야 하므로 공부를 잘해야 하고 좋다는 직장 역시 좋은 학교를 나와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공부 자체를 잘한다고 해서 또는 오래 공부하였다고 해서 경제적 수입이 언제나 정비례하게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학력자들이 종종 그런 오해에 빠져 있다). 가르치는 일이나 연구로 밥 먹고 사는 선생, 교수, 연구원 같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학교 공부 자체는 돈을 버는 게임을 수행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나 관계가 있는가. 순전히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고등학교까지의 교과 과목들에 대한 나의 평가는 아래와 같다.

국어 - 논리력, 발표력, 글쓰기 등을 개발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과목들도 그렇지만 학자가 되는데 필요한 내용들도 많다.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를 무조건 ‘조국의 광복’으로 외워야 하는 교육은 거지발싸개보다도 더 못하다.

수학 - 논리력을 키워주지만 1차 방정식과 간단한 기하 지식 정도 이외에는 돈 버는 게임과 별 관련이 없다. 연관 과목의 학자나 엔지니어가 될 지극히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면, 고교 때 열심히 공부한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 못하면 돈 벌 기회가 많이 줄어들며 해외여행도 단체관광으로만 다니게 된다. 하지만 영어를 가르칠 만한 자격을 가진 교사의 수는 아주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은 ‘무조건 외워라’고 가르치며, 자기 돈으로 자기 실력을 늘리려하기보다는 국가에서 교육을 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다.

제2외국어 - 영어 보다는 그 기회의 폭이 적다.

과학 - 실험을 많이 한다면 과학적 사고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분야에 종사할 사람들 이외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전기, 전자, 물리, 화학에 대한 기초지식은 쓸모가 종종 있다. 하지만 어느 중학교의 닭대가리 과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과서 단원 목차만 4시간 동안 외우게 한다(내 딸이 겪었다).

국사 - 한국인 혹은 애국자가 되는데 필요할 수도 있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졸업 후 다 잊어버릴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외워야 점수가 나온다.

세계사 - 역사는 결국 경제적 이득을 위한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배우게 된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를 배우면 좋지만 시시콜콜 외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 윤리 - 이런 것은 배웠다고 해서 자동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 역시 암기할 것들이 많지만 곧 다 잊어버리고 말 것들이다.

미술, 음악, 체육 - 어느 미술교사는 자기가 가르쳐 준 방식대로 그리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는다. 어느 음악선생은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것을 외우게 하는데 귀신이다. 어느 체육선생은 비오는 날이면 학생들에게 필기를 엄청 시킨다. 나는 그런 교사들의 머리(아니, 대가리라는 표현이 더 맞다) 속을 해부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다.

교장, 교감, 교육감 등등 - 이 사회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배울 수도 있다.

나는 고교 졸업 후 몇 년도 못 가 잊어버릴 내용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물며 1년도 못 가 까맣게 잊어버릴 내용들을 ‘기초 학력의 증대’니 “국민교양의 토대”니 하는 명분으로 강제로 가르치는 정책은 정말 쓰레기통에 쳐 박아야 한다고 믿는다.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1년 후에는 똑 같은 상태를 보일 텐데 그걸 가르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어느 나라 교육계에도 기득권층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과목을 고교 과정에서 학생들이 임의로 선택하는 과목으로 선정하려고 할 때 가장 반대가 심한 집단은 당연히 그 과목을 전공한 학자들이거나 교수들일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그 과목이야 말로 학문의 기초이며 고교생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과목이라고 침을 튀기며 강조할 것이다. 마치 그것을 안 배우면 삶의 질은 물론 국민의 교양이 떨어지게 되는 양 말이다. 결국 그 기득권자들의 입김에 그 과목은 고교과정에서 여전히 강제적으로 배워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남게 된다.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고교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그 과목과 관련된 분야로 진출하지 않을 99.99 퍼센트의 학생들에게는 그 10분의 1만 배워도 충분한 내용들이다. 즉 0.01퍼센트 미만의 학생들이 그 과목을 전공하게 되고 바로 그 극소수를 가려내고자 기득권자들은 자기 밥그릇이 적어지기 때문인지 모든 학생이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실례를 들어 보자. 교육인적자원부의 제7차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고 원하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상 가장 훌륭한 것이지만 2001년 6월 1903개 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학교사의 76.9%, 고교교사의 84.8%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고 16.5%(중), 15.7%(고)는 폐지를 주장했다. 심지어 전교조 교사 만 여명은 반대투쟁까지 벌였는데 그들의 반대이유는 ‘현장 실정을 무시했으며 교직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불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 입장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반대하였다는 말이다. 이게 대다수 교사들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떨까? 한국에서 ‘졸업 후 경제적 대가를 받는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대학에서의 전공과목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 보다는 조금 낫지만 대부분은 졸업 후 사회에서 새로 배워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전체 교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교수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구시대적 권위에 사로 잡혀 낡은 강의록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면서 뜬구름 잡는 ‘차원 높은 소리’(이를테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등의 듣기 좋은 말)에나 능하고, 갖가지 연구기금에 침을 흘리지만 정작 연구는 대학원생들을 부려먹으며 짜깁기 연구결과 발표에 능숙하고, 그 결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도 모르는 무능력한(그러나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고학력자들만 길러내는 주범들이기 때문이다(대학에서의 전공에 대하여서는 별도 항목을 참조하라).

[잠시 옆길로 나가자. 대학에 대한 나의 혹평에 대하여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대학은 출세지향주의를 가르치는 비인격적인 장소가 아니라 인간을 기르는 곳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냉혹한 적자생존의 사회논리에 맞춰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곳도 아니고 이 사회에서 혼자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다. 직장인을 길러내는 학원도 아니다. 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공동체 정신과 교양을 길러주는 곳이다. 또한 순수학문을 시장논리로 평가하면 안 되며 특히 대학원은 돈을 더 벌려고 가는 곳이 아니다. 학문을 향한 열정을 바치고자 가는 곳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이렇게 반박하고 싶어진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대학을 안 나오면 인간이 되지 못하나 보지? 인간이 되고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내게 데리고 와라. 너 직업이 교수지? 언제나 실력 없는 교수들이 그런 말을 그림같이 늘어 논다는 것을 내가 안다. 학교에서 인간을 길러? 대학이 무슨 청학동 서당이냐? 학연과 연줄로 줄줄이 엮여 있는 그 집단에서 인간을 길러? 연구비 한 푼이라도 더 타다가 연구는 뒷전으로 미루고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 놈들이 뻔히 있는데? 학문을 향한 열정? 아이구 장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적으로 수준이 그렇게 열등한 거냐? 한번 강단에 발을 넣으면 99%가 그 교수직을 평생 유지하는 해병대 논리를 고수하여 왔던 집단이 무슨 홍익인간이니 개소리냐. 순수학문을 시장논리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맞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라. 허버트 스펜서는 19세기 말 영국의 인문주의 교육을 장식 교육이라고 통렬히 비판하였었다는 사실과 네가 순수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그 시대의 인문주의 교육이나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간에 너는 순수한 열정으로 학문을 택했다며? 돈은 바라지 않은 것이었다며? 잘 먹고 잘 살자고 공부한 것은 아니라며? 그런데 왜 대학에 돈이 없어서 연구가 안 된다는 거니? 연구를 하려면 돈은 필요하다며? 돈? 그 돈 대부분은 세금 혜택까지 누리면서 너희들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 결국 연구를 더 해야 하는데 돈을 안주니까 안 한다는 말 밖에 더 되냐. 손님이 많아야 너희 지위가 안정되니까 이 사회에서 별 의미도 없는 대학원으로 학생들을 꼬드기고 학점과 논문통과를 무기로 학생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집단 역시 너희 아니냐. 일부만 그렇다고? 정말? 사족: 나는 고려대 같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수평가제도를 아주 좋은 제도라고 믿는다.]

교육계에 대한 내 불만은 이쯤에서 그치자. 오해하지 말라. 학교교육에 그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공부를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성공과 부를 잡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부자가 되지는 못할 수 있어도 적어도 가난에서 분명하게 탈출할 수는 있다.

첫째, 이 사회로부터 기회를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갈림길이 일단은 학력과 학벌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을 배워 독립을 하려면 어떤 조직이나 정보공유집단 속에 우선은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학력이 없으면 그 문턱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 고생 끝에 거대한 전기회사를 설립하였고 사원모집 광고를 냈다. 어떤 사람이 그 역시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사장 역시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그 회사에 입사 지원 원서를 냈다. 하지만 서류에서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회사 사장을 방문하여 항의하였다. ‘저는 초등학교만 나왔습니다. 사장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의 능력이 학력과 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에디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고 기다릴 시간이 나에게는 없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결국 우리는 일차적으로 검증된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일류 대학을 나오면 이른 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기득권 사회에서 학벌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일을 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학교교육을 무시한다면 사회로부터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확률적으로는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명심하여라. ‘학교에서 뭔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식해서’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학벌과 학력 이외에는 달리 사람을 판가름할 만한 방법이 없다 보니’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 여러 회사들에서 신입사원을 능력만 보고 채용을 하겠노라고 선언하였지만 도대체 그 능력이란 것은 일을 시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에 결국은 다시 학력과 학벌을 보는 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점도 기억하여라.

둘째, ‘일류대’ 졸업자가 되면 일단은 고졸자보다 인건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막노동꾼이었던 장승수.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술집과 당구장을 오토바이로 누비며 싸움꾼으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키 160센티미터, 몸무게 52㎏의 왜소한 체격으로 포크레인 조수, 오락실 홀맨, 가스와 물수건 배달, 택시 기사, 공사장 막노동꾼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대학에 수차례 도전하였으나 계속 실패하다가 결국 IQ 113의 보통 머리와 내신 5등급의 낮은 성적으로 서울대학에 수석으로 들어갔다. 오래 전 그가 쓴 책 제목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읽어라)>이다. 지금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고 하므로 그가 적어도 예전보다는 많은 보수를 받는 일을 할 기회를 쥐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에서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프랭크 레비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5~34세의 남성 노동자 중 대졸자와 고졸자간 소득격차는 98년 50%로 벌어졌다. 기업과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오히려 대졸자 선호 현상이 20년 전의 20%에서 30%에 가깝도록 늘어나고 있다 (단 여기서 명심하여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언급된 대졸자들은 일류대 졸업자들이다.)

셋째, 학력이나 학벌이 좋으면 능력마저 뻥튀기 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수 년 전 어느 고교 졸업자가 화려한 학벌과 경력의 경제분석 전문가로 위장하여 책도 몇 권 쓰고 TV에도 등장하고 재벌 회장들에게 정기 브리핑까지 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으나 모 기업체에 스카우트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학력이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몇 년 동안 그의 주변에 호화로운 학벌과 학력 소지자들이 즐비하였건만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게 세상이다. 능력이 있어도 학벌이나 학력이 없으면 인정받기 힘들며 능력이 없어도 학벌이나 학력이 있으면 일단은 숨을 수 있다.

넷째,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인맥 형성이 손쉽다. 기업체에서 원하는 사람은 수익을 창출해 내는 사람이고 문제 발생 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이다. 학벌이 좋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가 쉽다. 이것은 사업이나 장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미래 지도자 양성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을 때 지역과 인종을 고려하는 이유 역시 학생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배우고 졸업 후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휴먼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이득을 위한 친구관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우정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뒤 만나도 거리낌이 없다. 제 아무리 지위가 높은 친구라 할지라도 고교 동창이라면 전화를 걸 수가 있고 찾아가 만날 수가 있다. 대학 동창들은 전공이 비슷하다 보니 사회 진출 이후 교제의 폭이 넓지 못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학부모들이 자녀를 일류 중고등학교에 보내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게 되면 한국에서의 인맥은 아주 약하게 된다.

빌 게이츠가 Mt.Whitney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연설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인생의 법칙11가지 법칙 중 마지막 법칙, ‘공부만 하는 바보한테 잘 대해라... 나중에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이다. [아래에 인생의 법칙 원문을 실어 놓았다.]

다섯째,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그들이 배웠던 것들이 쓸모가 있건 없건 간에 일단은 적어도 학습 능력만큼은 인정받는다. 학벌과 학력이 화려하면 집단 내에서 지위를 획득하는데도 유리하다. 내 경영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하버드나 스탠포드 출신의 경영학석사(MBA)들은 정말 똑똑했다. 그들이 좋은 학교에서 배웠기에 똑똑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똑똑했기에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학벌이 사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기억해라, 일자리를 주는 집단에서의 일차적 잣대는 학력과 학벌이다. 가난에서 탈출하여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고 “공부에 소질이 있으면” 반드시 일류대에 들어가 ‘돈과 관련된 분야’를 공부하고 “환경이 허락한다면 공부를 더욱 더 오래 많이 해서” 그 분야에서 최고의 학력과 학벌을 갖추어라.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로 최고의 대우를 받으려면 공부에 있어서 반드시 극상위층에 속하여야 한다. 그 계층에 속하여 파워 엘리트가 되어라. 그렇게 한다면 연봉을 남들 보다 몇 배 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분명 존재한다. 전문직업인이 되려는 사람들 역시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는 것이 일단은 유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렇지만 명심해라.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첫 출발점에서 폼 나게 설 수 있으며 가난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다’ 는 뜻이지 자동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출발점에는 비슷한 학력과 학벌 소지자들이 다 같이 경쟁자로 서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결코 없으며 창피해 할 필요도 없다. 우선은 내가 위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교과목들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아라. 내가 말한 정도만 알고 있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 없으며, 학벌이나 학력 이외의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데 역시 전혀 어려움이 없다. ‘천재 앞에서 주눅 들지 말라’ 항목을 다시 읽고 ‘전공은 실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학력이나 학벌이 빈약한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나’ 등등의 모든 항목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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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말했다고 잘 못 알려져 있는 인생의 11가지 법칙은 본래, 미국 애들이 쥐뿔도 모르면서도 자기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교육학적으로 고찰한 Dumbing Down Our Kids(우리 아이들 바보 만들기)의 저자 Charlse J. Sykes가 신문에 투고한 글에서 한 말이라고 하며 본래는 14가지 법칙이고 아래 원문을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그의 책에서는 이 법칙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명감 있는 교사라면, 혹은 미국계 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면, 원서를 읽어보라. 나는, 자신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모든 유색 인종 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 웃기는 양놈들 때문에 이 책을 읽었는데 좀 지루하다. ).

Rule No. 1: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The average teenager uses the phrase "It's not fair" 8.6 times a day. You got it from your parents, who said it so often you decided they must be the most idealistic generation ever. When they started hearing it from their own kids, they realized Rule No. 1.
Rule No. 2: The real world won't care as much about your self-esteem as much as your school does. It'll expect you to accomplish something before you feel good about yourself. This may come as a shock. Usually, when inflated self-esteem meets reality, kids complain that it's not fair. (See Rule No. 1)
Rule No. 3: Sorry, you won't make $40,000 a year right out of high school. And you won't be a vice president or have a car phone either. You may even have to wear a uniform that doesn't have a Gap label.
Rule No. 4: If you think your teacher is tough, wait 'til you get a boss. He doesn't have tenure, so he tends to be a bit edgier. When you screw up, he's not going to ask you how you feel about it.
Rule No. 5: Flipping burgers is not beneath your dignity. Your grandparents had a different word for burger flipping. They called it opportunity. They weren't embarrassed making minimum wage either. They would have been embarrassed to sit around talking about Kurt Cobain all weekend.
Rule No. 6: It's not your parents' fault. If you screw up, you are responsible. This is the flip side of "It's my Life," and "You're not the boss of me," and other eloquent proclamations of your generation. When you turn 18, it's on your dime. Don't whine about it, or you'll sound like a baby boomer.
Rule No. 7: Before you were born your parents weren't as boring as they are now. They got that way paying your bills, cleaning up your room and listening to you tell them how idealistic you are. And by the way, before you save the rain forest from the blood-sucking parasites of your parents' generation, try delousing the closet in your bedroom.
Rule No. 8: Your school may have done away with winners and losers. Life hasn't. In some schools, they'll give you as many times as you want to get the right answer. Failing grades have been abolished and class valedictorians scrapped, lest anyone's feelings be hurt. Effort is as important as results. This, of course, bears not the slightest resemblance to anything in real Life. (See Rule No. 1, Rule No. 2 and Rule No. 4.)
Rule No. 9: Life is not divided into semesters, and you don't get summers off. Not even Easter break. They expect you to show up every day. For eight hours. And you don't get a new Life every 10 weeks. It just goes on and on. While we're at it, very few jobs are interested in fostering your self-expression! or helping you find yourself. Fewer still lead to self-realization. (See Rule No. 1 and Rule No. 2.)
Rule No. 10: Television is not real Life. Your Life is not a sitcom. Your problems will not all be solved in 30 minutes, minus time for commercials. In real Life, people actually have to leave the coffee shop to go to jobs. Your friends will not be as perky or pliable as Jennifer Aniston.
Rule No. 11: Be nice to nerds. You may end up working for them. We all could.
Rule No. 12: Smoking does not make you look cool. It makes you look moronic. Next time you're out cruising, watch an 11-year-old with a butt in his mouth. That's what you look like to anyone over 20. Ditto for "expressing yourself" with purple hair and/or pierced body parts.
Rule No. 13: You are not immortal. (See Rule No. 12.) If you are under the impression that Living fast, dying young and leaving a beautiful corpse is romantic, you obviously haven't seen one   of your peers at room temperature lately.
Rule No. 14: Enjoy this while you can. Sure parents are a pain, school's a bother, and Life is depressing. But someday you'll realize how wonderful it was to be a kid. Maybe you should start now. You're welcome.

누가 나대신 번역 좀 해서 올려 주었으면 …

※참고 : [살아가는 이야기] 471번 글에 올려진 “몬도”님의 번역본 입니다.

제1법칙 :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 져라. 평균적인 십대 청소년은 “공평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루에 8.6번 사용한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자주 하는 너희 부모로부터 그 말을 배웠을 것이고 그들이 가장 이상적인 세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들이 “공평하지 않아” 라는 말을 자신들의 자녀로부터 듣기 시작할 때면 그들은 제1법칙을 달성한 것이다.

제2법칙 : 사회는 너희들의 자존심에 대해서 학교가 했던 것만큼 배려해 주지 않는다. 사회는 너희들이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기 전에 무언가 성취하기를 요구한다. 이 사실이 아마 충격이 될 수도 있다. 보통 과대한 자존심이 현실을 만났을 때 애들은 “공평치 않아.”라고 불평한다. (제1법칙 참조)

제3법칙 : 미안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너희들은 바로 4만 불의 연봉을 받을 수 없고 부사장도 될 수 없고 카폰도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아마 갭 상표가 붙지 않은 작업복을 입어야 될 지도 모른다.

제4법칙 : 만약 너희들이 학교 교사가 지독하다고 생각한다면 직장 상사를 한번 만나 보아라. 직장 상사는 교사들처럼 평생직장이 보장되지도 않아서 더 신경질 적일 것이다. 너희들이 실수를 했을 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제5법칙 : 햄버거 가게에서 일한다고 너희들의 품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너희들 할아버지들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다르게 불렀다. 그들은 기회라고 불렀다. 그들은 또한 최저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말 내내 앉아서 커트 코베인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제6법칙 : 너희들 부모 실수가 아니다. 너희들이 실수를 하면 그건 너희들 책임이다. 이 말은 “이건 내 인생이야.”, “당신들은 내 상사가 아니야.” 그리고 너희 세대들이 듣기 좋게 자주 포장하는 주장들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이다. 너희들이 18세가 되면 너희들의 책임이다. 불평하거나 베이비 붐 세대처럼 말하지 마라.

제7법칙 :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에 너희 부모들은 지금처럼 따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희들의 양육비용을 지불하고 너희들 방 청소를 하고 또 너희들의 말을 들어주며 너희들이 얼마나 이상적인지를 말해주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들 말이야, 너희들 부모 세대인 흡혈귀 같은 놈들로부터 삼림을 보호하기 전에 너희들 방 옷장에 있는 이 부터 좀 잡아라.

제8법칙 : 너희들 학교는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을 없애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어떤 학교에서는 너희들이 정답을 찾을 때 까지 많은 기회를 준다. 너희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F학점을 없애고 학년 최우수 학생제도도 없어졌다. 노력이 결과만큼 중요하다고도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실제 사회생활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제1, 2, 4법칙을 참조)

제9법칙 : 인생은 학기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고 여름 방학도 없다. 심지어는 부활절 방학도 없다. 직장에는 매일 출근해서 8시간 씩 근무해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10주에 한번 씩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될 뿐이다. 말 나온 김에 몇 마디 더 하자면 너희들의 자기 표현력을 길러주거나 너희들이 자아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따위에 관심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아주 극소수의 직장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 뿐이다.(제1, 2법칙 참조)

제10법칙 : 텔레비전은 실제 인생이 아니다. 너희들 인생이 시트콤이 아니란 말이다. 너희들의 문제는 시트콤처럼 광고시간을 뺀 30분 안에 해결이 되지 않는단 말이다. 실생활에서는 사람들은 커피숍에서 나와 일하러 가야 한다. 너희들 친구들은 제니퍼 애니스톤 처럼 활발하거나 쉽게 남의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다.

제11법칙 : 컴퓨터나 공학에 미쳐 있는 쫌생이 같은 놈들한테 잘해 줘라. 너희들은 그런 놈들 밑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 모두 다 말이다.

제12법칙 : 담배 핀다고 너희들이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들은 바보스럽게 보인다. 다음에 외출할 때 11살짜리 남자 아이가 담배꽁초를 물고 있는 걸 한번 보아라. 20살 넘은 사람들한테 너희들은 그렇게 보일 것이다. “나 자신을 표현한다.”면서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 하거나 몸에 피어싱을 하고 다니는 놈들도 똑같이 보일 것이다.

제13법칙 : 너희들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걸 알아라. (제12법칙 참조) 만약 너희들이 빨리 인생을 마감한다거나, 젊을 때 죽거나 아름다운 시체를 남기는 것 따위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너희들은 싸늘하게 식은 친구의 시체를 아직 못 보아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제14법칙 : 가능할 때 이 시기를 즐겨라. 물론 부모들이 짜증나는 존재고 학교는 지루하고 인생은 우울하겠지만 어느 날 너희들은 한 때 너희들이 “아이”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라.


4. 고학력은 부자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가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학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교육제도권 내에서의 공부와 능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제도권 밖에서의 공부가 그것이다. 나는 제도권 밖, 즉 사회에서 여러 책들을 보며 하는 공부를 대단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제도권 내에서의 공부와 관련하여 말한다면, 학교공부를 ‘아주 잘하면’ 부자가 될 기회의 첫 단추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서 공부를 ‘오래 하는 것’, 즉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마치거나 박사 학위까지 얻는 고학력은 부자가 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먼저 대학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학을 나오면 고졸자 보다 취직하는데 유리하고 전반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로 일류대 출신들이 그렇다는 말이고 전체적으로 따진다면 예외도 꽤 많다. 예를 들어 미국 포브스지는 미국 전체 대졸자 중 21%는 고졸자보다도 평균 수입이 적다고 하였다. 즉 미국 대졸자의 적어도 21%는 대학을 가지 말고 차라리 그 돈으로 연 5% 이율의 채권에 투자하였다면 50번째 생일에 5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금액은 대부분의 대졸자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경제적 시간적 투자 측면에서 볼 때 대학을 안 가는 것이 오히려 좋을 사람들이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또는 자존심이나 얼어 죽을 체면 비슷한 것 때문에, 또는 대학에 가면 뭐 특별한 것이라도 배우게 되는 줄로 오해하여, 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혹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아마도 이게 가장 클 것 같다), 기 쓰고 대학을 가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본다. 미국의 통계 수치를 적용한다면 한국의 대학생 5명 중 1명은 길을 잘못 든 셈이 되는데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느끼기에는 그 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 같다.

대학원의 경우는 어떨까? 대학원에 가는 사람들 중에는 취직이 안 되니까 경제상황이 좋아 질 때 까지 도피처로 삼는 경우도 있고, 막연히 대학원을 나오면 뭔가 더 유리한 고지에 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는 경우도 있으며, 직장을 다니다가 뭔가 잘 안 풀리기에 대학원을 탈출구로 생각하면서 진학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유망한 투자일까?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제도권 내에서의 공부를 가장 장려하면서 학력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바로 대학의 교수들이라는 점이다.

대학은 종종 학생들에게 대학원도 나오고 학위도 따 놓아야 좋다는 식으로 학력 사회를 조장하는 주동자이다. 그래야만 대학원에 손님이 모이기 때문인데 학력 거품이 심한 한국이기에 대학원들의 학위 장사는 잘 되는 편이며, 그러다 보니 한국의 10개 대학 중 9개소는 대학원을 운영한다. 똑 같은 학력 중시 사회인 일본만 하더라도 10개 중 3개소 정도만 대학원을 운영한다.

취직이 목적이라면 어중간한 대학원에는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그런 곳에서 학위를 받는 것은 적어도 부자가 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물론 다녔던 바로 그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고 그 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는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지저분한 짓을 좀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중간한 대학원도 당사자가 이미 학력, 학벌 위주 집단에 취업하여 일을 하고 있는 중이거나 혹은 공무원이 좀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자 할 때에는 도움이 된다. 반면에 전직을 하고자 대학원을 다닌다면 정말 최고로 유명한 곳에 젊었을 때 다니는 것이 좋다.

경영자로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볼 때 대학원은 이 사회에서 최고로 인정해주는 학교와 잘 팔리는 전공을 선택하여야 경제적 투자 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세계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경영대학원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쟁쟁한 해외 유명 대학원 출신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정말 뻔할 뻔 자 아닌가. 해외 유명 경영 대학원은(지원자의 합격률이 20%도 안 되는 유명 대학원이다!!) 분명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나 외국과 교류가 있는 기업에서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해외교류가 없는 회사들에서는 국내 유명 경영대학원 출신이 오히려 환영을 받을 수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미국 내에서도 와튼이건 하버드이건 스탠포드이건 간에 취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졸업 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게 된다면 취직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학비도 만만치 않으므로 유학으로 인해 잃게 되는 기회비용도 따져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경제적 뒷받침도 되고 나이도 많지 않고 공부도 아주 잘한다면 유학을 다녀와라. 공부도 신통치 않은데 기 쓰고 유학을 가려고 한다면 글쎄다…. ( 출신 대학이 일류대가 아니어서 대학원을 통해 학벌을 세탁하고자 한다면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학벌 사회에서 일단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말 유명한 대학원이 아니라면 경제적 대가는 크게 기대하지 말라. )

일류 대학원을 나와 몸값을 올려 취업을 한 뒤부터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어느 정도나 실제로 창출해내는가에 따라 후속적인 대우가 결정되며 이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즉 입사할 때에는 환영을 받았지만 1년도 못 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내가 지켜 본 경험으로는 회사에서 일을 잘 못하던 젊은 직원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간에 경영 대학원을 다녀와도 일의 수행 능력에는 별 진보가 없었다. 국내이건 해외이건 어설픈 수준의 대학원은 학력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80년대에 고용하였던 기사 한명은 학력을 속이고 취업을 하였으나 알고 보니 대학원 졸업자였다. 이런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이미 1962년에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저서에서 학력 거품을 경제력의 소모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대학원 졸업자를 무조건 고급인력으로 보거나 사회의 두뇌로 여기는 태도는 정말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대학원의 연구 결과들 모두가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엉터리도 엄청 많다. 하지만 학교 먹물들은 오래 배운 사람들을 이 사회의 두뇌로 외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연구비도 주어야 하고 일자리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외친다.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대학원생들에게 연구비가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학원이 어중이떠중이 너무 많다. 포항공대 대학원 같은 곳은 대학원생 전원에게 장학금이 지급된다(하지만 들어가기가 힘들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학원은 들어가기 힘든 곳에 다녀야 가치가 있다.).

조지프 슘베터라는 학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취직을 못하여 사회 불만 세력으로 뭉치게 되면 자본주의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겁을 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윤을 만들기 어려운 순수학문 분야를 자기가 좋아서 배웠다면 진로나 생계 문제 역시 본인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여야 할 것 아닌가.

한편 공부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좋아서 교수가 되려고 하거나 또는 연구소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온 뒤 외국 유명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연 사회이기 때문에 대학원을 한국에서 나오지 않으면 이끌어 줄 교수가 없고 선후배 관계도 약하기 때문에 교수 자리 얻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을 지독히 이용해 먹는다.

게다가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 시간 강사가 되게 되면 월 평균소득은 40만원에 불과하다. 노동부의 직업분류에서는 ‘일용 잡급직 노동자’이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는 교수를 채용하여 강의를 맡기게 되면 적어도 월 400만원은 소요되는데 반해 강사는 싼 임금으로 부리다가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강사를 선호한다. 그나마 지원자가 많다 보니 임시직 시간 강사 자리에도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에 연줄이 있어야 유리함을 명심해라.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책 한 부분에서 한국의 대학과 교수사회의 치부를 제3자의 눈으로 아주 잘 보여 준다 (세이노 같은 부자들은 별로 안 읽을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인데, 공부를 오래 하려는 사람은 교수들에 대한 박노자의 글을 반드시 읽어라).

어쨌든 박사학위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나 투자 가치가 있을까? 딱 잘라 말해서 큰 도움은 안 된다 (그러나 실습을 무지 많이 하는 일류 공대 대학원은 지금이 들어가야 할 절호의 찬스라는 것도 알아 두어라. 승진이 무지 빠르게 이루어 질 것이다). 박사 학위가 있다고 돈 많이 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웬만하면 박사코스를 밟으라고 말할 것이다. 박사 코스 손님이 많아야 자기에게 유리해지기 때문에 그런 권유를 하는 교수도 꽤 있음을 염두에 두어라. 아, 물론 박사 학위 하나로 행복해 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박사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나 연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 학위이어야지 학위 자체가 목표라면 잘못된 것이다. 박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구 소련의 과학자였던 콘스탄틴 에쿠아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1857~1935)의 생애를 한번쯤 살펴보아라. 가난하였던 그는 혼자서 공부하고 10대 시절부터 우주여행의 꿈을 키우며 병아리를 빠른 속도로 돌려 봄으로써 중력가속도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도 하였고 다단 로켓의 이론도 마련하였다. 돈이 없다 보니 목수일과 대장장이일 까지 하면서 증기기관, 풍차, 펌프 등을 직접 만들어 연구에 사용하였다. 그의 논문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교사 일을 하거나 공상과학 소설을 집필하여 생계를 꾸려갔지만 아들은 자살하고, 홍수를 당하기도 하고, 딸은 반동으로 체포되는 등 불행의 연속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나이 60에서야 그는 비로써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대학원 박사 과정은 치올코프스키처럼 진짜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가라는 말이다.
(나는 80년대에 미국에서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는 대학원의 박사 논문을 영문으로 써 주고 꽤 많은 돈을 챙긴 적이 있다. 언제나 내가 의뢰자들과 의논하여 잡은 논문 제목은 ‘한국에서의 무엇 무엇에 대한 연구’였는데 미국에서 한국 실정은 어차피 잘 모르는데다가 한국 내에서 얼마든지 기초 자료들을 구할 수 있고 대학원생들의 논문들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기에 짜집기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2년 동안 5명의 고객을 얻었었는데 그 고객들 모두가 저명인사들이고 나중에 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당시 내가 가위로 논문을 짜집기 하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면 아마도 기절초풍하였을 것이다. 불법 아니었느냐고? 80년대에 사람들은 그런 것이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조차 몰랐다.)

결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공부를 상대적으로 ‘아주 잘하며’, 전공이 ‘돈 버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나이가 많지 않다면 고학력을 추구한 대가를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투자대가를 경제적으로 크게 기대하지는 말아라.


5. 자격증의 환상에서 벗어나라

미국의 종합 시사주간지인‘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에 실렸던 21세기 미국의 유망 직업들을 연봉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분  야 유 망 직 업 연봉(초임/달러)

인 터 넷 인터넷담당임원 150,000 ~ 250,000
의  약 미용치과의 104,100
법  률 기업법률전문가 82,900
공  학 컴퓨터엔지니어 55,500
보  건 의료보조사 52,750
경  영 물류전문가 50,000
개인서비스 생활관리사 40,000
세 일 즈 전자제품판매사 38,400
사회복지 비애치료사 35,000
정보통신 무선통신기술사 35,000
교  육 수학, 과학교사 33,000 ~ 35,000
인사관리 교육훈련전문가 31,000
회  계 기업가치평가사 30,000 ~ 37,000
환  경 오염방지전문가 30,000 ~ 34,000
자 영 업 트럭운전사 25,000 ~ 35,000
홍  보 위기관리 전문가 23,000
공공서비스 교도관 20,000
여  행 국내관광안내원 20,000
금  융 금융설계사 20,000
연예오락 애니메이터 800 (주급기준)

사람들은 어떤 자격증이나 유망 직종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며 자격증이나 면허 취득에 열을 올린다. 실제로 이 미국 잡지에 실린 21세기 유망 직업의 상당수는 자격증을 가져야 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21세기 유망 직업 중 가장 고액의 연봉을 받는 인터넷 담당임원이 되는 데는 아무런 자격증도 요구되지 않는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가 되는 데에도 자격증은 요구되지 않는다. 사장이 되는데 무슨 자격시험을 치룰 필요는 없다. 그 어느 백만장자나 재벌이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말도 들은 바 없다. 나는 자격증은 당신의 연봉을 제한시키고 당신이 부자가 되는 길에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운전면허도 없었다. 나는 나이가 만으로 마흔 여섯이 넘었던 2001년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운전면허를 땄다. 갑자기 운전면허를 원했던 이유는 순전히 영화에서 007이 스포츠카를 모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기사가 운전하는 스포츠카를 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30대 말에도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초경량 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동하여 조종술을 한 달 동안이나 배운 적이 있지만 제한된 지역에서만 비행을 하여야 한다는 게 매력을 반감시켜 면허시험을 보지는 않았었다.

아주 가난하여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20대 초 나에게도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첫 해 어느 겨울 날 3일을 굶은 채 담배꽁초를 피우고 동대문 근처의 길거리에 쓰러졌을 때에는 정말 운전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죽으면 죽었지 이 사회에서의 대가가 너무나도 뻔하게 고정되어 있는 그런 직업은 처음부터 피하려고 했다. 나는 내가 운전면허를 갖게 되면 운전사가 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운전 면허증에 의해 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대가가 평생 고정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싫어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어쩌다 한번 들어간 놀이판에서 평생을 놀게 될 가능성이 꽤 되지 않는가.

가난이 주는 절망에 3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던 나였다. 다시 가난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또다시 죽어버리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부자가 될 것 같지 않은 직업 분야에는 아예 나 자신이 들어가지도 못하도록 나의 주변에 철조망과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 직업도 없다면 일단은 아무 일이나 해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라도 몇 년 하면서 돈을 모으라는 말이다).

주변을 보면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던지 간에 몇 개월 학원에서 배워 획득한 자격증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는 사람들이 많다. 취직을 하기 위한 보조 도구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건 직업 선택으로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건 간에 그 자격증이 자신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자격증은 당신을 봉급생활의 쳇바퀴 속에 던져 넣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운신할 공간을 제한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과거에 무엇을 하였고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였던지 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의식적으로 부동산 중개업 방향으로만 기회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기회를 당신 스스로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군다나 국가나 민간단체에서 주는 자격증(이 두 가지 종류를 구분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의 상당수에는 엄청난 환상이 들어가 있다. 정부가 미래 유망직종의 하나로 선정하였던 직업상담사, 사회조사분석사를 살펴보자. 나는 도대체 그런 자격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1회 직업상담사 시험의 원서접수자는 2만5천6백 명에 달했으나 2회 시험에서 7천8백53명으로 줄어든 뒤 3회 시험에서는 1천7백52명으로 감소했다. 첫 시험 때의 15분의1로 급감한 것이다. 사회조사분석사도 첫 회에는 5천67명에 달했으나 2회 시험에서 3천2백51명으로 감소한 뒤 3회 시험에서는 1천8백8명을 기록했다.

IT벤처 열풍과 함께 최고의 자격증으로 평가됐던 전자상거래관리사 자격증도 마찬가지이다. 제2회 전자상거래관리사 시험 원서 접수자는 모두 3만34명, 첫 번째 시험의 9만2천6백 명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이미 줄어들었다. 왜 그렇게 감소할까? 자격증만으로 만사가 술술 풀리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업체인 인터파크 관계자는 “전자상거래관리자 자격증 보유자를 채용과정에서 우대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며 “이론 중심적인 자격시험 통과자보다는 업체에서 마케팅 경험이 있었던 사람을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 역시 그 어떤 자격증도 크게 믿지는 않는다. 직원이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저 참고만 할 뿐이지 그 실력을 크게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부분의 자격증은 보통 사람들보다 이론을 조금 더 안다는 의미이지 실무를 더 잘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격증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자격증이 있음으로 해서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직종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격증 소지자가 많다는 것은 결국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며 정작 기업에서 필요한 사람은 실무에 밝고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임을 잊지 말라. 입사 할 때 유리하게 작용하는 자격증이 있기야 하지만 실무 수행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한 곧 잊혀지고 말 것이다.

게다가 어떤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강제로 채용하라는 규정은 점점 사라지기 마련이며 업계 자율에 점차 맡기게 된다. 업계의 요청에 의해 정부에서 한때 식품영양사 강제 채용 규정을 대폭 완화시키려고 시도했었음을 상기하면 된다. 결국은 실력이 좌우하게 되는 것이지 자격증이 있다고 하여 영원히 안정된 직장이 생긴다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 공인회계사(AICPA), 미국구매관리사(CPM), 미국 홍보전문가(APR), 미국 재무분석사(CFA), 국제 금융위기관리전문가(FRM) 등의 자격증은 어떨까? 그런 자격증만을 갖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한다면 정말 꿈 깨라. 관련 분야에서조차 취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글쎄다.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등할 경우에 한해 유리할 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다고 할지라도 정작 영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에서의 세법도 제대로 모르고 경험도 없는 사람을 한국의 어떤 외국기업에서 환영하겠는가. 나부터도 그런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격증은 “이미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획득하였을 때” 비로서 자기 몸값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회사에서 볼 때 분명 해당 직원의 지식이 증가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이건 간에 자격증이나 면허증이 당신을 평생 편안하게 벌어먹게 해 줄 것이라는 환상은 조금도 갖지 말라.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진짜 실력이지 이론 나부랭이가 아니다. 교재를 판매하는 출판사나 자격증 대비 학원들의 과대광고에 현혹되어 자격증 하나만을 바라보며 목을 매달지도 말라. 나는 그런 광고들 대개가 사기에 가깝다고 단언하는 사람이다. 특히 민간단체에서 시행하는 수많은 자격시험들은 일단은 색안경을 끼고 보라. 민간단체에서 주는 자격증은 그 민간단체들이 돈벌이 삼아 주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 두어라 (번역사 자격증이니 무슨 상담사 자격증이니 모두 거의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음을 알아라).

혹시라도 당신에게 자격증이 있다면 그 자격증을 얻고자 갖추었던 단수의 지식(single knowledge)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복수의 지식(multiple knowledge)을 갖추어라. 자격증을 가진 사람과 자격증이 없는 사람 사이에는 대개 책 몇 권의 차이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아라. 아울러 수만 명의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들이 왜 그 자격증을 활용하지 않고 다른 일에 종사하는지도 생각해 보아라.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자격증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과 같이 그 숫자가 기득권 세력에 의하여 비교적 한정되어 있는 면허적 성격을 갖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서도 능력은 그 자격증을 딴 뒤 적어도 5~10년 이상은 되어야 배양되기 마련이며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써 관련된 업종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적 길이 보이게 되지만 그냥 그대로 살아도 대체적으로 수입이 썩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에 99%는 모험을 버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된다. 나쁜 소식: 그 자격증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도 언젠가는 무너져 버린다. 천정이 무너져 내릴 때가 오고 있으니 우산을 미리 준비하라는 말이다. )


6. 전문직에 종사하면 부자가 될까

돈을 잘 번다고 알려진 전문직업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은행에서 신용으로 기꺼이 돈을 빌려 주고자 하는 직업들이 아닐까?

2002년 현재 국민은행은 감정평가사, 변호사, 변리사, 법무사, 행정서사, 공인노무사, 손해사정인, 공인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기술사, 건축사, 도선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16개 업종의 자격증 소지자들에게 경력에 따라 최고 5천만 원까지 대출해준다. 우리은행은 변호사, 세무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의사, 약사 등에게 최고 1억원까지 신용으로 대출해주며 개업의사(한의사와 치과의사 포함)에게는 최고 2억원까지 신용으로 대출해준다. 외환은행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법무사 등에게 최고 1억원까지 신용 대출해준다.

(참고 1: 여기서 언급된 직업들 중 내가 보기에는 부자 되기에는 전혀 신통치 않은 자격증이 서너 개 있는데 은행에서 세부적인 실상을 모르는 것 같다. 그 자격증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고도 싶지만 그 자격증 소지자들의 체면을 생각하여 입을 다문다. 여기서 언급된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10년 이상의 선배들에게 실상을 물어 보아라. 현재 월 3백만원 버는 것도 쩔쩔매는 자격증 분야가 몇 개 있으니까 말이다.)

(참고 2: 도선사는 파이로트 PILOT 라고 하는데 이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수입이 너무나도 많아 오래 전 국회에서 논란이 되어 도선법을 개정시켰지만 아직도 상당한 고소득자들이며, 한국에는 수백 명이 있다. 내가 은행이라면 나는 앞에서 언급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배우자도 돈이 없다면, 자격증을 획득한지 10년 정도 되었다면 신용으로 3천만 원을 대출하여 주는 것도 좀 꺼려하겠지만 도선사에게는 1억원까지도 담보 없이 대출하여 줄 것이다.)

이러한 전문직들이 대체적으로 다른 직업들 보다 경제적으로 더 우월한 가치와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딱 잘라 말해서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 그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큰 부자가 나오기도 쉬운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 어떤 유망한 전문직이라도 동일한 자격증이나 면허를 보유한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 자격증에 대한 사회의 대가는 갈수록 적어지게 된다. WTO 체제하에 놓인 개방 사회에서는 그 어떤 유망 직종이라도 경쟁 때문에 몸값이 점점 더 하락하게 된다.
공부를 많이 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절대로 공부를 많이 하였으므로 돈을 많이 벌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갖지 말라. 이 세상에는 당신 보다 가방끈이 더 긴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당신이 갖고 있는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똑같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당신의 경쟁자들은 비자격자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과 똑 같은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직 종사자들의 여러 협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어떻게 해서든지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과잉공급 어쩌구 저쩌구, 서비스의 질 향상 어쩌구 저쩌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면서(원래 전문가 집단들은 속내를 숨긴 명분을 내세우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자격시험 합격자 수를 제한하려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들은 그러한 기득권 보호를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의 이름으로 철폐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그렇다면 전문직 종사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먼저 약점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첫째는 자부심이다. 자기를 대단한 전문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것은 다른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이지 같은 직종의 다른 전문가들과는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객이 볼 때는 “그 놈이 그 놈”일 수도 있다.

둘째, 직원들에 대한 대우가 일반적으로 형편없다. 자기의 면허증으로 직원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교육이나 고객 서비스에 대하여 무심하다. 그리고 그 직원들로 인하여 고객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셋째,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른다. 마케팅이나 경영, 고객만족, 재테크 같은 것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을 은근히 자랑으로 생각하는 풍조도 있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건물을 사면 대부분 바가지를 쓴다(새겨들어라. 나는 부동산을 팔 때 구매자가 전문직 종사자일 경우를 제일 좋아한다). 팔 때는 시세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싸게 내놓는다(그래서 나는 부동산 매입 시에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상대 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기 수입이 적으면 그저 세상 탓만 하고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넷째, 자기가 관련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속도가 뜻밖에도 느리다. 그저 자기가 공부하였을 때의 교과서에 담긴 지식만을 꽉 껴안고 사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실력들이 고만고만하게 된다.

어느 전문직이건 간에 언제나 ‘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이다. 승자 독점 시장이라는 말이다. 예컨대 바쁜 의사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환자들이 밀려들지만 그런 의사의 수는 얼마 안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들러리로 전락하게 된다. 변호사나 다른 전문직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한 책이 있다. 미국 코넬대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프랭크와 듀크대 공공정책 교수인 필립 쿡이 공동집필한 ‘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가 그것이다. 이 책의 번역판이 CM 비즈니스라는 출판사에 의하여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96년이었지만 이 책을 소개한 신문은 내 기억으로는 오직 한겨레신문뿐이었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책이 좀 두껍고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면도 다루기에 지루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잘 팔리지도 않는 바람에 결국 출판사는 그 책 한 권을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다(쯧쯧…). 하지만 이 책은 전문직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반드시 읽어야 할 좋은 책이다(단, 교수가 아니라면 전반부만 읽어라). 원서 제목은‘The Winner Take All Society: Why the Few at the Top Get So Much More Than the Rest of Us’ (Robert H. Frank , Philip J.Cook)이다.

전문직 종사자가 그 집단에서 승자가 되어 부자가 되려면 "관련된 다른 모든 분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토목기사 자격증이 있다고 안심하지 말라. 구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건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며 심지어 인테리어도 알아야 비로소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이것은 변호사이건 의사이건 마찬가지이다. 다중 전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수많은 면허증 소지자들 중에서 당신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고객에게 있음을 잊지 말라. 모든 고객에게 성심 성의껏 최대한 잘하라는 말이다. 예컨대 의사는 절대 반말을 하지 말라. 당신의 환자는 당신보다 열등하여 몸이 아프게 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돈을 받는 한 그는 당신보다 나이가 어려도 당신의 손님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직 종사자들은 갑자기 떼돈을 벌 기회가 거의 없다. 면허증 하나 믿고 섣불리 빚을 지지 말라는 말이다. 월수입이 다른 봉급생활자보다 많다고 해도 그 수입은 언제나 경기에 민감하게 변동한다. 그러므로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경제신문을 반드시 읽어라. 특히 부동산에 대하여 많이 배워두어라. 생명보험도 반드시 들어라. 당신이 갑자기 죽으면 당신 가족은 정말 살기 힘들어 진다(구멍가게는 가장이 죽어도 가족들이 가게를 꾸려 갈 수 있다).

(사족; 어느 소아과 의사가 양심을 속이지 않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법을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환자가 몰려들면 된다. 그렇다면 아줌마들에게 인기 있는 ‘의사 선생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아과 환자가 오면 그 보호자에게 남편의 직업이나 가족 관계 같은 개인적인 사항들을 물어 본다. 애들에게도 이것저것 물어 보아라. 그리고 진료기록에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문체나 영어로 그 내용을 기록하여 놓아라. 그리고 그 환자가 다시 오면 그 내용을 보고 ‘남편이 이러저러한 일을 하신다고 하셨지요? 요즘은 어떠세요? 둘째 아이는 요즘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아라.
말을 많이 하면서 관심을 적극적으로 보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1년만 해 보아라. 수입이 증가된다. 물론 인근의 다른 소아과 의사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걱정하게 되겠지만 모든 의사들이 이 글을 본다면??? 그래서 또다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내게 물어 보아라. 그때가 되면 상담비 명목으로 거액을 내야 하는데 돈으로 달라는 게 아니고 ‘세이노가 지정하는 곳들에 가서 무료 진료 몇 일’뭐 그런 식으로 해 달라고 할 것이다. )


7. 전공은 취직하는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할까

학력과 학벌을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하는 집단에서는 개인의 적성 보다는 일류대 졸업장이 더 중시되지만 전공과 상관없이 무조건 일류대 출신이라고 경제계로부터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취직을 하려면 일단은 학벌도 중요하지만 전공도 큰 영향을 미친다.(취직을 하지 않는다면 전공이나 학벌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할 것!)

채용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구직자 3,011명에게 물었을 때 응답자의 63.9%는 “현재 고3 입시생에게 본인의 전공학과나 출신대학의 입학을 추천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일류대학의 취직 잘되는 전공학과를 택하라는 말이다. 졸업 후 취직을 하여 몇 년 회사 생활을 하다가 독립을 하려는 사람이건 아니면 평생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려는 사람이건 간에 졸업 즉시 자기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공 선택은 심사숙고 하여야 한다. 그러나 먹물들은 입시생들에게 “세상을 위해 어떻게 하면 이바지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월급은 적더라도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며 적성에도 맞는 직업을 염두에 두고 전공을 선택하라”고 권유하면서 “일류대 졸업장 보다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를 배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다 “듣기 좋은 말”일 뿐이고 액면 그대로 따르다가는 나중에 취업전선에서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대학은 학문의 도장이라는 말도 절반 정도만 믿어라. 그런 말은 주로 교수들이 하는 말인데 그들은 이른바 그 학문이라는 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처럼 학문연구나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할 사람이 아니라면, 또는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학은 취업 준비 장소이다. 혹시나 학문연구 혹은 봉사활동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거나 그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취미로 공부하려고 한다면 나중에 딴 소리는 하지 말라. 예를 들어 이 사회의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자 사회사업학과를 선택하여 공부하였다면 나중에 월급이 적다느니, 또는 순수학문 전공자들이 취직이 안 되므로 국가적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가를 염두에 두고 한 공부가 아니고 자기 좋아서 한 공부 아니었던가.

어느 대학의 통계를 보면 신입생 40%가 대학 1학년 때 전공에 대한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그 갈등의 이유는 종종 “적성에 맞지 않아서”라고 답하지만 속에 담긴 진실은 “내가 도대체 이걸 배워서 뭘 하나”하는 회의감에 있다. 인기학과를 선택하였음에도 전공에 대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는 정말 희귀한 사례에 해당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공이 첫 기회를 잡는데 유리할까? 종종 입시생들은 학교 선생님이나 대학생 선배, 혹은 친구들과 어느 전공을 택할 것인가를 의논하는데 솔직히 학교 선생님들은 이 사회를 잘 모르는 분들이고(어떤 개떡 같은 고3 선생들은 그저 대학 합격률만 높이려고 학생들을 희생시킨다) 대학생들은 사회 경험조차 한 바 없으며 친구들의 생각은 서로 비슷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미래의 유망직종 같은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도 알아 두어라. 나의 조언은 부자가 되려면 자기 성격을 중시하면서 “돈 버는 일”과 직접 간접으로 반드시 연관된 전공을 택하라는 것이다(“성격에 맞는 일을 하라”항목을 참조하라).

한편 복수전공제는 대다수 기업들에서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이력서를 낼 수 있는 자격자 범주에 포함은 시키지만 뭘 제대로 배우기나 했겠느냐고 경시하는 태도가 인사 담당자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물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동일한 경쟁 조건에서는 제2전공으로 기업에 입맛에 맞는 전공을 가진 자가 유리하기는 하지만 제1전공자들 보다 우월적인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복수전공이라는 것이 대부분 기초과정 이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업에서 알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대단히 재미난 사실 하나를 알아야 한다. 비록 취업을 할 때는 전공이 영향을 미치지만 기업체에서 그 전공 지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대기업 인사담당 책임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신입사원이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이 기업체가 원하는 수준의 90% 이상이라는 의견은 2% 에 불과한 반면, 10% 이하라는 응답이 25%나 됐다.” “평균적으로는 신입사원의 지식과 기술이 기업체가 원하는 수준의 26% 에 불과, 기업들의 대학교육 불신이 심각하다.”서울대 최고자문위원단 보고서에서도 학생 89%가 “대학 교육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학벌과 전공을 따지지만 다른 선발 기준이 마땅한 것이 없다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지 학벌이 좋고 전공이 기업의 구미에 맞는다고 해서 졸업자들이 뭘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차 서류전형에서 통과한 자들 중 합격자를 가려내는 기준은 전공 관련 지식이 아니라 정말 엉뚱하게도(그리고 우스꽝스럽게도) 면접에서 파악된 “기본적인 인성이나 태도, 의사표현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같은 것이다. 정작 필요한 실무지식은 회사에서 재교육시키는 경우가 너무 많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대졸자의 67% 만이(인문계는 47%) 졸업 후 전공분야와 관련된 일을 한다. 기술계나 전문직업인 등을 제외한다면 상당수가 자기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른 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학벌도 좋고 전공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류대 갈 실력은 안 된다면? 일류대 수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서 “돈 버는 일”과 관련된 전공을 택하여라. 공부를 못해서, 혹은 안 해서, 일류대와는 거리가 먼 이름 없는 대학을 갈 수 밖에 없다면? 부모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면 그저 효도하는 마음으로 다니되 대기업에 취직하고자 생각하기 보다는 공무원 시험을 보던지 아니면 작은 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닦으면서 조속히 학벌을 세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돈이 있으면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라는 말이다(대학 학점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자존심만큼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기회를 보아 경력사원으로 재입사를 시도할 수도 있다. (공부를 “못하는데다가” 가정형편도 넉넉지 못하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이 기 쓰고 대학 가려하고 대학원도 가려는 태도를 아주 안 좋게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 장학금도 못 받을 것이고 가족들이 학비를 조달할 텐데 결국은 자신의 학벌 허영심을 만족시키고자 가족을 희생시키는 것일 뿐이므로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부를 “안 하는데다가” 가정형편도 넉넉지 못하다면? 일단은 공부에 전념해 보고 나서 생각해라.)

전공이 기초학문 분야라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봉급생활자로 살고 싶다면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 같은 것이 탈출구가 될 것이다. 교직과정을 이수해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임용률이 아주 낮다는 사실과 때로는 더티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오히려 프로급 과외교사로 나서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끝으로 이상야릇한 자격증에 혹하여 시간과 돈을 뺏기는 어리석음은 일찌감치 버려라. 그 보다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일을 배우며 경력을 쌓은 뒤 전직을 시도하여 보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이다. 중소기업에서는 기술계통이 아닌 한 전공에 대하여 크게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경영하였던 회사들 역시 중소기업 수준이었기에 언제나 직원모집 광고에서 전공불문이 명시되었으며 개인적으로도 직원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내 경험으로 볼 때는 순수학문 전공자들 중에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사족: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나서 군인들이 정권을 꽉 움켜쥐자 그 뒤 수년 동안 우수한 대입 수험생들은 사관학교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으니 그 뒤로 줄곧 사관학교 안에서, 그리고 졸업 후에도 줄곧, 경쟁이 너무나도 치열했다는 말이다. 요즘은 공대가 인기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이 공대에 갈 절호의 기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고시 공부에 매달리거나 의사가 되려고 하니 공대 쪽은 내부 경쟁이 그만큼 약할 수밖에 없고 10년 후에는 적어도 밥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게 될 것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대박을 터뜨리는 것도 보장된다. 반면에 지금 의대나 법대에 가는 학생들은 10년 후에 어떻게 될까? 지금 그 쪽 세계의 실상을 그 학생들이나 그 부모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 데 10년 후에는 아마도 과반수는, 아니 그 보다 더 많은 수가 후회할 것이다.


8. 전공은 실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간에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뭔가를 전공하였다고 해서 그 전공자가 그 분야에서 일을 잘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비전공자보다야 좀 나으려니 생각하면서 잠재능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는 재교육을 실시하는데 국내 대기업들은 대졸 신입사원에게 적어도 6주 이상 최대 6개월 까지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고, 교육기간에는 그저 예절교육과 지옥훈련 같은 것만 하고 실제 지식은 수개월 이상씩 직무교육을 통해 가르치기도 한다. 어떤 전산 관련 회사들은 전산 전공자들을 뽑아 놓고서 10주 이상 전산 재교육을 하기도 한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중견 기업 이상에 입사한 422명의 대졸신입사원 중 무려 65.4%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 및 기술의 수준과 기업현장에서 요구되는 수준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는 전공 졸업자들을 데려와도 당장은 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기다려야 하므로 점점 더 신입사원을 채용하기를 꺼려하고 경력자 위주로 인사정책을 펴게 된다. 신입 사원들에게 일을 할당할 때 종종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이 주어지는 이유도 “어차피 새로 가르칠 텐데” 전공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기업에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바라는 것은 실전 능력이다. 대기업 인사팀장들은 서슴없이 이렇게 고백한다. “교과서에서 10년 전 지식을 배워오는 국내 대졸자보다는 실전 교육을 받은 해외출신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최근 일부 전문대에서 기업이 주문하는 교육 과정을 실시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 그런 곳을 졸업하면 취직이 거의 100% 보장된다.
내가 제일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뭔가를 능숙하게 잘 하려면 그것을 전공하였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를테면 사업을 하려면 경영학과를 나와야 하는 것으로 안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그런 식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의사나 약사 같이 어떤 면허증이 필요한 특정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전공은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역을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보자. 무역이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해외에서 사오거나 해외로 파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 우선은 상품을 보는 눈과 시장 상황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은 전공학과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반추하고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굵게 예측하여 볼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돈이 되는지는 가르쳐 주지 못한다.

둘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외국어 능력이 탁월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서류 하나에도 오자가 없어야 하며 잘못된 해석이나 영작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국어는 전공과 상관없이 혼자 배워야 하는 영역이다.

셋째, 돈을 언제 어떻게 보내고 받는지를 배워야 한다. 서류상으로는 완전무결하였어도 상대방이 나쁜 놈일지도 모르므로 결국은 돈과 상품의 인도시기를 어떻게 맞추어 대비하여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는 사기꾼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클레임 처리하는 방법들인데 해결에 시간이 엄청 걸린다.

넷째, 관세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남미에 국산 화장품을 수출하는 친구가 내게 상대국의 관세 문제로 전화를 하였을 때 내가 제안한 방법은 화장품 내용물은 수입업자 A 에게 보내고 케이스는 수입업자 B 에게 보내면 경쟁자들 보다 관세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관세를 절약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섯째, 협상에 능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모든 상황을 예측하여 각각의 경우 어떻게 협상하라고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실례를 하나 들어 보자. 내가 무역을 처음 시작하였던 시기에 있었던 일: 신사의 나라 영국인들을 싱가포르 전자 박람회에서 만나 물품을 주문하였더니 선금으로 50%를 달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믿을 만 해 보여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돈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 전화를 하여도, 팩스를 보내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영국 대사관에 찾아가 조치를 부탁할 생각도 했었지만 나는 포기했다. 나쁜 놈들을 상대로 싸우려면 언제나 진이 빠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영국에 외화 밀반출을 한 것이 아니냐는 미치고 팔짝 뛸 의혹을 관세청으로부터 받았고, 세무서로부터는 손해가 입증된 것이 아니므로 비용으로 처리할 수 없는데도 비용처리를 하여 법인세를 포탈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소리 A 쌍….

자. 내가 말한 것들을 무역학과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꿈깨라. 차라리 KOTRA에서 하는 무역코스 같은 것이 더 실용적이고 저학년 때부터 무역실무에 대한 책들(교과서가 아니다)을 계속 읽고 배워야 하며 언어능력을 증가 시켜야 한다. 언젠가 독립하여 경영자가 되기를 꿈꾸는 자들 역시 경영학을 반드시 전공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민츠버그 교수는 경영자의 역할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째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상징적 대리인, 둘째 정보를 취합하고 분배하는 통로자, 셋째 자원을 배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자 역할이다. 이런 역할들은 이론으로 배워 머릿속에 있다고 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가면서 체득하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 비즈니스 스쿨들처럼 실무능력을 가르치거나 실전사례 중심의 스터디를 강조한다면 사정이 좀 나아지지만, 칼잡이는 직접 짚단을 베어 보아야 솜씨가 느는 법이다. 베어낼 짚단이 없다면 경험자들(학자나 교수들이 아니다)이 쓴 책들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경영자들이 경영을 하는 도중에 경영 대학원이나 최고 경영자 과정이라는 것을 다니는 이유는 우선은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를 비춰 보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인맥 형성을 위한 목적도 있다.( 교수들이 꼬드겨서 대학원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

결국 진짜 공부는 사회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자 요약을 하여보자.

1.학벌과 전공이 좋아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어도 실전 공부는 새로 해야 한다.
2.학벌은 안 좋지만 전공이 좋다면, 또는 학벌은 좋지만 전공이 돈 버는 것과 거리가 멀다면, 중소기업은 갈 수 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실전 공부는 새로 해야 한다.
3.학벌도 전공도 신통치 않지만 취직을 하여야 한다면 당연히 실전 공부를 미리 하고 그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4.학벌이고 뭐고 아예 없어서 독립을 하고자 한다면 실전 공부를 해야 한다.

문제: 위의 사람들 중 실전에서 먼저 승리할 사람은?

답: 학벌이고 전공이고 뭐고 개의치 않고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실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먼저 획득한 사람이다. 실전에 들어가고 난 뒤에는 실전을 치르느라 공부할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내가 젊었을 때 닥치는 대로 배우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을 공부하여야 하는가” 항목을 참조하라).

4장.

 

일은 어떤 일을, 어떻게, 어떤 사고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1. 성격에 맞는 일을 하여라

독자들이 보내는 질문들 중에서 내가 제일 한심하게 생각하는 질문이 있다. “여유자금 5천만원이 있어서 장사를 하려고 하는데 무슨 장사가 좋을까요?”라는 식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아니 내가 당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장사를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하면 무슨 장사이건 다 잘 하여 낼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또 여유자금 5천만원이 있을 때 하면 좋은 장사가 있다고 치면 대한민국에서 5천만원의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장사를 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장사건 사업이건 간에 똑 같은 자금을 갖고 똑 같은 장소에서 하더라도 성공하는 사람은 1명이고 망하는 사람이 9명이다. 또한 장사는 위치가 제일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장소라 할지라도 망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어설픈 이론이지만 나는 인간이 하는 일을 오직 네 부류로 나눈다. A: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 B: 기록된 것을 상대로 하는 일, C: 무생물을 상대로 하는 일, D: 몸으로 하는 일.

물론 무슨 일에서든지 D에서 언급된 몸은 필요하다. 그러나 당사자가 휴가를 가도 일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있고 반면에 몸에 무슨 탈이 새기거나 자리를 비우게 되면 수입이 없어져 버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자리를 비우면 환자를 만나지 못하지만 상인은 점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놀러 갈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육체적 현장성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의미에서 D 항목을 이해하면 된다. 이것의 중요성이 크면 클수록 자유롭지 못하다.

이 세상 모든 직업에는 이 네 가지 일들이 복합되어 있으나 핵심적인 부분은 각기 다르다. 사업가, 의사, 경영자, 음식점 주인, 상인, 영업사원은 A에서 두각이 나타나야 하고, 변호사, 회계사, 교수, 경리는 B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건축사, 피아니스트는 C에서, 농부, 축구선수, 발레리나, 성악가는 D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 즉 A 부류의 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성격이다. B 부류에서 일을 잘하려면 학구열과 응용력이 있어야 한다. C에서 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며 D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적 재능이다.

장사나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이다. 인간의 성격은 크게 내성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으로 나뉜다. 어느 성격이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단지 영어단어 introvert와 extrovert 에서 나타나듯 하나는 안으로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밖으로 향한 성격일 뿐이며 나처럼 양성적인(ambivert)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것이 사람을 주로 상대하여야 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성격이 외향적인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 장사를 한다고 치자. 고객에게 인사나 제대로 할 수 있겠으며 미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 망하기 직전의 가게들을 찾아내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신동엽의 신장개업’이라는 TV 프로그램(나는 이 프로그램을 녹화하여 직원 교육용으로 사용하였다)에서 장사를 못하던 사람들이 모두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음을 기억하라. 직장에서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드러나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내성적인 사람들은 성격을 변화시켜 보고자 웅변학원도 다니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성격을 개조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1976년도 영화중에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감독, 로버트 드니로, 조디 포스터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라는 것이 있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26세 청년 트래비스는 사회의 악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면증에 걸린 야간 택시 운전기사이다. 뉴욕의 뒷골목은 쓰레기 인생들로 가득하다. 그는 그 더럽고 추잡한 인생들을 욕하고, 언젠가 큰 비가 내려 모든 오물을 씻어낼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다닌다. 해병대 출신이지만 뉴욕에서는 소심하기만 한 그는 어느 날 권총 4 개를 구입하고 칼도 준비한다. 그리고 총 쏘는 법과 칼 쓰는 법을 연습하고 혼자서 거울 앞에 서서 누군가를 상상하며 말투와 행동을 연습한다. ‘Are you talking to me?’ ‘너 지금 나한테 씨부렁 거리냐? 그런 연습을 거쳐 그는 대통령후보를 암살하려고 하기도 하지만(그래서 국내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91년에 가서야 해제되었다) 우연히 만났던 12살짜리 창녀를 구하고자 사창가에서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을 벌이면서 포주를 죽이고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고 물을 때 마다 이 영화를 권유하면서 어떤 시비가 생기게 되면 욕으로 대응하는 법을 미리 연습하라고 한다. 누군가와 싸울 생각을 하게 되면 성격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폭행도 당하곤 하기 때문에 죽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 어느 내성적인 고등학생에게는 이렇게 충고하였다. 학교선생님이나 부모님과 상의하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너만 더 괴로워지니까 말이다. 네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먼저 일기를 써라. 네가 누구에게 어떻게 당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기록해라. 일기 속에서 복수하겠다느니 때려죽이고 싶다느니 그런 말은 절대 쓰지 말라. 그저 네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못된 놈들에게 불쌍하게 당하고 있는지를 눈물겹게 기록하라. 그렇게 한두 달을 쓴 뒤부터는 기회를 노려라. 그리고 어느 날 수업 중에 너를 왕따 시키는 주모자에게 갑자기 가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그 어깨를 몽둥이나 의자로 세게 내려 쳐라. 뼈가 부러져도 좋다. 시간이 된다면 다른 녀석들도 팔이건 다리건 뼈가 부러질 정도로 내려쳐라. 단 머리는 때리지 마라. 죽어버리면 살인이 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미리 남 몰래 연습을 많이 하여라. 네가 사용한 흉기는 미리 준비한 것이면 절대 안 된다. 너는 그저 우발적인 감정에 교실에서 눈에 띄는 것으로 내려 쳤을 뿐이다. 물론 너에게 맞은 녀석들이 너를 폭행죄로 고소하여 경찰서에 끌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네 일기장을 보여 주어라. 그리고 그들을 맞고소해라. 나한테 이런 코치를 받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 세이노는 커녕 세이예스도 모른다고 해라. 그래도 보복이 두렵다고? 절대 겁내지 마라. 한 번 더 수업 시간에 그들 뒤에서 한 녀석만 반쯤 죽여 버려라. 그리고 욕을 배워라. 다시는 그 어느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며 성격도 변하게 될 것이다. 폭력 전과자가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글쎄다. 그런 놈들에게 당하면서 질질 짜면서 사는 것 보다는 그게 더 낫지 않을까? 게다가 정상이 참작되어서 전과자가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성격을 바꾸기 위한 또 다른 시도는 여행 중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해 볼 수 있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한 번도 안한 해 본 짓거리를 시도하여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테면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나이트클럽에서 마이크를 달라고 한 뒤 미친 척하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 본다거나 한국에서는 전혀 입지 못하는 옷들을 태연하게 걸치고 다닌다거나 이 나이에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바르고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곳 사람들은 내가 원래 그러려니 생각할 것이다. ᄒᄒ

차림새를 바꾸면 행동이 바뀐다는 것도 알아 두어라. 제아무리 점잖은 녀석도 군복을 입고 술을 마시면 언제라도 개망나니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려면 옷에 변화를 시도하여라. 휴일에 양아치 같은 옷을 일부러 입고 다니는 것도 좋다. 인도 헤나 문신 같은 것으로 팔에 뱀이나 해골 같은 것을 그려 넣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헤나는 한 달 안에 저절로 지워진다. 나는 양팔에 진짜 문신과 비슷한 색의 헤나로 전갈 6마리를 그려 넣고 다닌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예전 친구들은 1년이고 2년이고 잠시 만나지 말라. 친구들은 당신이 당신답지 않게 행동한다고 지적하면서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변화의 발목은 언제나 친구들과 가족들이 붙잡는다는 것도 기억해라.) 그러므로 새 성격을 본래의 성격으로 인정하는 새 친구들을 사귀어라.

나도 본래는 아주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여 중학교 때에는 재봉틀이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남들 앞에 서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재래식 재봉틀의 발판을 밟는 다리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였는데 갑자기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 데 대한 반항심 비슷한 것이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학생 앞에서는 수줍어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업이랍시고 광고 대행업을 시작하면서 외향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어느 틈엔가 완전히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사람들에게 비쳐지기 시작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도저히 바꾸지는 못하겠으나 사업이나 장사를 하고 싶다면 외향적인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면 된다(물론 비용이 추가된다). 그렇게 할 상황이 아니라면 앞에서 말한 B, C, D 에 중점이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성격상의 문제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는 30대 독자는 B 분야(회계분야)로 일을 바꾸고 나서야 정신의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성격 자체는 어떤 일 혹은 환경 속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문제가 되는 것이므로 자기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원숭이는 모두 벗겨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앉아 있는 원숭이의 엉덩이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서 있지 못하겠으면 앉아 있으라는 말이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사람들은 직장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할 때 도중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할 것이고 긴장도 하게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말이다. 오래 전 나는 다국적 기업 국제회의에서 OHP 필름으로 발표할 경우는 각 필름에서 내가 반드시 말해야 할 것들을 미리 작은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 놓았다. 발표 시에는 필름을 프로젝터 위에 올려놓으면서 그 메모를 떼어내 손에 쥐고 맥을 이어 나갔다. 노트북에서 프로젝터로 투사시켜 할 경우에는 그 포스트잇을 노트북에 미리 붙여 놓았다. 농담은 물론 예상되는 질문도 미리 대비하였다. 심지어 적절한 참석자 한명에게 이러저러한 질문을 내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기 까지 했다. 아주 내성적인 사람들은 흔히 원고를 미리 만들어 놓고 발표 시에 그대로 읽어 나가는데 참가자들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거의 없기에 가장 형편없는 방식이다.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어 보고 연습을 수없이 거듭하여라. )


2. 무슨 일이든지 더 잘하는 방법이 있다

군대에서 겪었던 일이다. 자대로 배치된 바로 그 날 저녁 일등병 고참이 내게 시킨 일은 내무반 바닥에 물을 뿌리고 비로 쓸라는 것이었다. 내무반은 시멘트 바닥이어서 먼지가 잘 일어났다. 나는 물바가지에 물을 받아 와 그 물을 손으로 뿌렸다. 물론 나는 졸병이었기에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한 대라도 덜 얻어맞고자(70년대 초는 군대 내 구타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 시절이다) 최선을 다해, 정말 최선을 다해, 물을 조심스럽게 뿌렸다. 하지만 물뿌리개로 골고루 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뿌린 것이기에 어떤 곳은 물 자국이 크게 생기고 어떤 곳은 물이 묻는 둥 마는 둥 하는 꼴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고참은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몇 대 쥐어박은 후 물 뿌리는 법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손을 가볍게 움켜쥔 뒤 바가지 물속에 담근 뒤 재빨리 꺼내면서 다섯 손가락을 빠르게 좍 벌리면서 물을 사방에 튀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 시멘트 바닥에 생기는 물 입자의 크기는 모두 쌀알만 하였다. 그것은 정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 것보다도 더 입자가 고왔고 정말 예술이었다. 무슨 일이건 더 잘하는 방법이 있는 법이라는 것을 나는 군대에서 맞아가며 배웠다.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본 경험에 의하면 가장 골치 아픈 직원은 자기 기준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한다.(“바보들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그 책 제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읽어 보았는데 적어도 내가 개인적으로 기대하였던 내용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원제는 Mastering Self-Leadership 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뜬구름 잡기였다.)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실은 어리석음의 총체적 집합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 중 90% 이상은 자신을 다른 보통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 대학 교수들의 94%는 동료보다 자신이 연구를 더 잘 수행한다고 믿는다. 미국대학농구 선수들 중 60% 이상은 자기가 메이저 팀에서 뛸 것으로 믿지만 실제로는 5%만 그렇다.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의 업무수행 능력을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평균 20% 이상 더 높게 생각한다. 즉 자기 도취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내게 웬 책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을 때 마다 내가 준 대답은 “내가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자기도취에 빠진 것은 아닌지, 내가 똥 뭍은 개인데 겨 뭍은 개를 탓하기만 하는 건 아닌지, 내 눈 속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 속의 티눈만 보는 것은 아닌지, 내가 제대로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인지 등등이 불안 하다 보니 확인을 받으려고 읽는다.”는 것이었다.

자, 일을 좀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면 반드시 개선점을 찾아내라. 나는 같은 일이 수개월 동안 계속 반복되게 되면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를 생각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 개선하려고 무지 무지 애를 쓴다. 그리고는 상당한 분야에서 변화를 시도한다. 집에서도 나는 오만가지 물건들로 가득 찬 내 방을 정기적으로 정리하고 사물들을 새롭게 배치한다. 개선을 찾는 것이다.

둘째, 행동하기 전에 그 일에 필요한 지식을 반드시 흡수하여라. 전혀 모르는 분야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관련 지식을 공부하라. 섣불리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 마라. 반드시 관련 법규들을 찾아 공부하는 것도 잊지 마라. 법을 미리 확인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라면 하나도 제대로 끓이려면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셋째, 실수하지 말라. 중국 음식점에 짜장면을 시켰는데 배달원이 단무지나 젓가락을 안 가져오는 경우를 한 두 번은 경험하였을 것이다. 당신이 배달한다면 전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글쎄다. “사람의 발이 밟는 땅은 불과 몇 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 자가 넘는 다리에서도 잘 떨어진다.” (‘안씨가훈’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실수는 자만에서 나온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하지만 당신이 익히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세세한 것들을 적어놓은 체크 리스트를 반드시 만들어 책상 위에 붙여 놓고 그 일을 할 때 마다 확인하라. 그 리스트가 머릿속에서 스크린에 투영되듯 눈을 감아도 좍 비쳐질 때 까지 그렇게 하라.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리스트를 불필요하게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넷째, 효율적으로 일해라. 어제 밤 10시까지 일했다고? 이번 달 영업실적 통계 내느라고 그랬다고? 그런데 통계를 어떻게 냈지? 꼼꼼히 세금계산서들을 업체별로 분류한 뒤 합산하여 워드 프로세서로 만들었다고? 합산은 어떻게 했는데? 계산기로 했다고? 그럼 이 도표는 어떻게 그렸지? 워드로 만들었다고? 액셀은 사용할 줄 모르나? 알긴 아는데 잘 모른다고? 이거 액셀로 하면 어제 일과 전에 끝나는 일인데? 효율성은 언제나 당신의 지식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하긴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 남아 있으면 퇴근을 못하는 직장이 허다한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난 뒤 게임이나 하는 것 보다는 열심히 계산기라도 두드리는 것이 더 이뻐 보일지도 모르겠다.)

다섯째, 그 일을 이미 해 본 경험자들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라. 직장인들이 상사를 잘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에 속한다. 나는 경력사원을 뽑을 때 그가 예전 직장에서 누구 밑에서 일을 배웠는지, 그 상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반드시 묻는다. 무역 서류를 담당할 경력 직원이라면 그가 작성한 영문 문서들을 예전 직장에서 누가 살펴보았었는지도 확인한다. 혼자서 전권을 위임 받았었다면 그는 배운 것이 없으니 보나마나 일을 잘 할 리가 없다. 상사가 있었지만 별 볼일 없었다면 그 역시 별 볼일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상사가 당신에게 일 좀 똑바로 하라고 할 때 마다 고마움을 느껴라. 그가 큰 소리로 악악거린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훌륭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과의 사이는 불과 한 발자국의 차이다.”나폴레옹의 말이다.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과 어리석게 일하는 사람 차이는 한 발자국이 아니다. 그것은 부자가 될 사람과 가난하게 살 사람의 차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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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공장자동화 시스템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관련 분야를 알아야 할 필요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대개 사람들은 전문 집단에게 맡기려고 하지만 나는 내가 먼저 이해하기 전 까지는 하청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시스템들은 구매하기 전에는 내가 계약서 상‘갑’이 되지만, 일단 구매 설치한 뒤에는 기술적으로 그 업체에 완전 종속되어 실제로는 ‘을’의 위치로 바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지니어들은 실제 소요치 보다 오버 디자인된 제안을 하기 쉽기 때문에 불필요한 고가 장비가 장착되기 쉽다. 자, 나는 이 공장 자동화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여 왔을까?

먼저 공장자동화 관련 잡지들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전자신문은 이미 10년 넘게 구독하여 왔다. 잡지나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고 업체에 전화를 하여 이것저것 물어도 보았다. 자동화종합전시회도 구경하고 참가업체들을 귀찮게 하면서 카달로그들도 모았다. 구로동 공구상가는 물론 용산전자상가 지하 1층에도 직접 기웃거렸다. 이상의 일들을 나는 지난 6개월 간 간간히 하여 왔었다. 그리고 지난 6일 간 집중적으로 나는 축적된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인터넷 검색에 매달리며 지식을 총정리 하여 나갔다. 나는 내일 아침 지방으로 출장을 갈 예정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 있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가장 저렴한 방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2. 나는 일간지들은 물론 경제지들도 보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전자신문 같은 전문지도 보아왔다. 때로는 지방지들을 보기도 하는데 이를 테면 제주도에서 뭔가 돈벌이가 보이게 되면 제주도에서 발행되는 지방지들을 구독하는 식이다. 가장 신문을 많이 보았던 시절에는 30개가 넘는 신문들을 보기도 했다. 외국신문을 보기도 하지만 상세히 보는 편은 아니고 관심 있는 부분만 보게 된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분야에서 발행되는 잡지와 신문을 모두 찾아내 6개월 이전부터 구독하라. 돈이 없으면 물론 도서관에 가라. 헌책방에서 잡지의 과월호를 1년 치 사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월호를 사는 것은 내가 아주 즐겨 쓰는 방법이다. 예전에 3 륜 용달차가 있었던 때 나는 헌 잡지들을 2대 분량이나 산적도 있다. )


3. 이런 일은 하지 말라

채플린 영화 중 1936년에 발표된 <모던 타임스>는 <독재자>와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의 마지막 무성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이 그리는 현대는 냉혹하다.

지하도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공장으로 몰려 들어가는 노동자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양떼들에 비유된다. 자본가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그들을 감시한다. 최소시간 최대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은 숨 쉴 틈이 없으며 화장실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고 하면 대형 스크린에서 자본가가 불호령을 내린다. 주인공 찰리는 작업대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실어온 제품에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한다. 그는 눈앞에서 벌이 날라 다녀도 기계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그의 손이 조금만 늦어도 전체작업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나사를 조이던 그의 두 손은 작업대를 떠나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여직원의 치마 뒷단추를 보고 쫓아가기도 하고 길 가던 부인의 가슴에 있는 단추를 조이고자 하기도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의 점심시간도 아까워 작업 중에 급식할 수 있는 자동급식기계를 설치한다. 채플린은 자동급식기계를 시험하는 대상으로 뽑히지만, 고장난 기계는 그를 거대한 기계의 흐름 속에 빠져 들어가게 만든다. 자동화로 인해 실직자가 대량 생산되고 굶주림 때문에 빵 하나를 훔치는 사람도 있고, 시위를 하다가 총에 맞는 사람도 생겨난다. 주인공은 트럭의 꼬리에서 떨어진 깃발을 들고 뛰다가 시위대열에서 앞장을 서기도 하며, 고아 소녀를 만나 가정을 꿈꾸고 다른 직업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소녀와 함께 지평선을 향해 떠난다.

이 영화에 대한 먹물들(교수, 기자 등등)의 평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모습과 전체주의의 획일적 통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궁극적인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현대 사회에서 기계화, 표준화, 익명화된 노동자의 불행을 그린 가슴 아픈 영화, 대량생산 체제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기계의 한 부속품이 돼버린 인간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보여 준 작품, 대중사회에서 소멸되어가는 인간성을 고발하고 물질문명이 가져오는 속도전쟁과 효율우선 주의에 대한 비판을 그린 영화.

이 영화를 20대에 우연히 보고 먹물들의 평가도 들었을 때 내가 가진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맞다. 동의한다. 내가 태어나기 무려 20년 전의 영화이지만 여전히 미래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살이 떨린다. 그렇지만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냐? 그런 비평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너희들이야 먹물로 먹고 사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거냐? 주인공이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는 모습에서 그저 언젠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려니 하는 희망을 배우라고?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장땡이냐? 내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태일’처럼 분신자살 하지 않고서도 사는 방법이 뭔지 좀 알려주면 안되겠냐? 나도 일류대학을 나오면 된다고? 전 과목에서 귀신이 되는 것은 도대체 안 되고 공부에 소질이 많지도 않은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주인공 챨리가 허름하고 지저분한 옷일망정 모자와 구두까지 구색 맞춰 갖추어 입고 지팡이 까지 흔들며 양반걸음을 하듯이, 가난하여도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인간적 자존심과 존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여야 한다고? 그게 해법이냐? 엿먹어라!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1908년 헨리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을 위해 설치한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게 되었다. 물론 노동자들의 삶이 열악해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기계화되는 것에 회의를 느낀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자 포드는 임금을 단번에 두배로 올리기도 했고 그 덕에 미국에서는 중산층 노동자 계층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후기 산업화시대를 지나 정보화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는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이며 사회학자인 조지 리처는 그의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McDonaldization)>에서 여전히 고속(高速)의 컨베이어 벨트가 우리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나가 살 수 있을까? 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당신이 노력을 아무리 해도 대가를 남들보다 더 크게 얻기는 어려운 일들을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의 일들로 간주한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것과 유사한 일들은 구조적으로 육체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일들이지만 자격증이나 경험, 혹은 기술적인 지식이 필요하거나 두뇌를 써야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개중에는 컨베이어 근처에 머무는 일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부자가 되려면 무조건 한 우물을 파지 말고 우물을 잘 골라야 한다.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은 ‘작지만 안정된 수입을 계속적으로 확보하려면’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전제조건은 ‘만일 당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이다. 이 점을 오해하지 말고 아래 글을 읽기 바란다.)

우선, 어떤 서비스의 질에 대한 기대치가 고객과 회사 간에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경우 당신이 고객의 주문만 받는 일을 회사 안 혹은 밖에서 하거나 그 주문을 중간에서 시행하는 일만 하거나 그 고객으로부터 대금을 받기만 하는 일은 하지 말라. 또한 어떤 일에 대한 대가가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나이나 경험과는 크게 상관이 없이 이미 사회적으로 계산되어 숫자로 확정되어 있는 일은 하지 말라. 이런 분야의 일들 중에는 자격증이 필요한 경우도 많은데 세월이 지나가도 고객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자격증들도 상당히 많음을 염두에 두어라.

당신이 받는 대가가 고객의 수와 관련 없이 정하여 있다면, 또는 자신의 노력 여하 보다는 근무 연한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그 곳을 빨리 뛰쳐나와야 할 것이다. 일한 대가가 노동시간의 양과 비례하기만 하는 일 중에는 금으로 만든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부자가 되어 경제적 육체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조직 내에서 기계 장치를 관리 감독하거나 지나치게 연구 위주이거나 세분화되어 있는 일 역시 부자가 되기에 적합한 일은 아니다. 조직 내에서 이득 창출과 직접적 관련은 없이 그 조직을 유지 관리하는 일들 역시 부자 되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싶지만 직업의 종류가 몇 만개나 되기 때문에 나로서는 벅찬 과제이므로 그 골격 형태만 밝힐 수밖에 없다. 명심할 사실은, 형태는 컨베이어 벨트 앞의 일처럼 보이지만 본인의 생각에 따라서는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일들도 많다는 것이다. <모던 타임스>에서 주인공이 다섯 번 이나 실직하면서 가졌던 직업들은 공장 노동자, 조선소 노동자, 경비원, 철공소 정비사 조수, 웨이터 이었다. 조선소 노동자는 작업개선을 많이 연구하여 장인이 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철공소 정비사 조수는 경험을 축적하면서 나중에 철공소를 차릴 수도 있다. 웨이터는 틈틈이 요리를 배워 진로를 바꿀 수도 있다. 나는 단순 노무직이라고 하여도 나중에 독립하여 사장이 되는 데 있어 밑거름이 되는 분야들을, 봉급도 많이 주고 복지환경도 좋은 곳에서 단순 조립공으로 일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좋게 생각한다. 부자가 되려고 한다면 말이다.

하나 더 부언하면, 직업을 선택할 때 백만장자들의 현재 직업을 그대로 따라 하는 어리석음은 절대 갖지 말라. 그들이 현재의 일을 하기까지에는 그 전의 초라한 단계들이 있음을 명심해라.


4. 아무 일이나 재미있게 하라

VJ 특공대라는 TV 프로그램을 딸과 함께 자주 보았는데(나는 쇼, 드라마 등은 보지 않는다) 언젠가 어느 삼겹살집 주인이 삼겹살은 그 굽는 석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에 드는 석판을 구하고자 전국을 돌아다니고 그렇게 구한 돌들을 삶고 길들이는데 오래 동안 정성을 쏟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 주인에게 있어 삼겹살집 운영은 노동이 아니라 재미를 느끼는 취미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손님이 들끓었다.

많은 부자들은 일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한다. 재미있게 즐긴다는 뜻이다. 토마스 J. 스탠리는 ‘백만장자 마인드’에서 미국의 백만장자 733명을 표본 조사하여 얻은 자료들을 보여주는데 미국의 백만장자들 중 86%는 ‘나의 성공은 내 일과 직업을 사랑한 결과이다’라고 공통적으로 말한다.(투자를 잘해야 부자가 된다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 일이 우선이고 투자는 나중이다, 이 바보들아.) 그리고 81%는 “나의 일은 내 능력과 적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만을 찾아 나서는 것은 내가 볼 때는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머릿속에서 꿈꾸고 원하여 온 일’을 그 일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동일시하거나 ‘자기가 능력을 갖고 있는 일’, ‘자기 적성에 맞는 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믿는다. 그러나 능력이니 적성이니 하는 것들은 관련 분야의 지식을 갖춘 뒤 실제로 일을 경험하여 보기 전 까지는 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적성검사라는 것을 너무 믿지는 말라는 말이다. (나는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받을 때 마다 뭐 하나 유달리 적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온 분야가 전혀 없었다.)

정말 그러냐고? 미국 백만장자들의 경우를 좀 더 살펴보자. 그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일어나 자기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일은 천재들에게나 일어난다. 백만장자들이 일을 택하게 된 동기는 그저 우연한 기회(29%), 시행착오(27%), 예전 직업과의 관련성(12%), 이전 고용주가 놓친 기회(7%) 때문이다. 이 수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잘 해서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 직업인이 되어 부자가 된 사람들도 포함시킨 것이므로 그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대다수의 백만장자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며, 어쩌다 하게 된 일이 시발점이 되어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진실은 이것이다. 백만장자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하게 된 일”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그 일을 사랑하고 즐김으로써 “능력과 적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내 말을 믿어라. 마크 피셔(Mark Fisher)와 마크 앨런(Marc Allen)의 공저 ‘백만장자처럼 생각하라’( How to think like a millionare) 에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사랑한다’고 단언한다.

정말 그것이 부자들의 진실이다. (현대그룹 창업주 故 정주영 회장이 적성을 찾아 쌀 가게 점원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빌 게이츠가 적성에 따라 컴퓨터를 배워야겠노라 사전에 굳게 결심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라.) 내 말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혹시 ‘젊어서 은퇴하기’라는 책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가? 있다고? 나는 그 책을 펼쳐 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부자가 되면 일은 더 이상 안하고 젊어서 은퇴하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질문: 진짜 부자들이 일찍 은퇴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환갑이 아니라 70세, 80세, 아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죽을 때 까지 일에서 손을 완전히 놓지 않는 사람들이 부자들이다. 일 하는 것이 재미있어 죽겠는데 은퇴를 해? 그것도 젊어서 돈을 벌어 놓은 뒤 은퇴를 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이 재미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지겨운 일에서 좀 벗어나고 싶겠는가. 그렇게 일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것도 젊어서 부자가 되어 은퇴를 한다고? 투자를 잘해서? 무슨 돈으로 투자를 한단 말이냐. 개떡 같은 소리 그만들 해라.

나도 20대에는 그런 생각을 하였었다. 그리고 실제로 39살에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모인 것 같아 은퇴 시도를 했는데 곧 다시 일을 손에 잡았다. 왜 그랬을까? 일 하는 재미를 대체할 만큼 매력적인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나는 45세에 절반은 은퇴하였다. 절반이라고 함은 일을 하기는 하지만 취미생활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10가지 이상의 많은 분야에서 일을 하였다. 그 일들 중에서 내가 사전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일은 단 하나, 음향기기 분야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쩌다 보니 발을 내 밀게 된 일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 발을 내 밀던 간에 나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그 분야에서 귀신이 되고자 노력을 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무슨 일에 뛰어 들던지 간에 모든 관련 지식을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였다. 나는 그런 책들을 구입하는데 돈을 아낀 적이 없다. 하지만 낮에는 일 때문에 책을 볼 시간이 없으므로 자연히 저녁시간과 휴일을 이용하여야 했다. 시간을 아껴야 했기에 출퇴근 거리는 무조건 짧아야 하였고 차타는 시간도 아껴야 하였기에 기사를 일찍부터 두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노는 날들을 기다리기는 했지만 기다린 이유는 전혀 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건 내 생일이건 간에 나는 가리지 않았다. 특히 내 생일에 놀게 되면 나는 기분이 아주 찝찝해 지곤 했는데 열심히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알게 된 것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컴퓨터를 전혀 몰랐던 내가 MS-DOS도 알게 되고 d-Base 로 프로그램을 짜서 팔수도 있었던 것도 근 몇 개월간 저녁과 밤 시간을 몽땅 희생시켜 얻은 결과였다. 그 덕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시도한 광고대행업 이외에서는 사업에서 손해를 본 일이 없었다. 명심해라. 내가 믿고 있는 원칙은 단 하나, 모르면 괴롭고 알면 즐겁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생각하여 보아라.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과목은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만 잘 못하는 과목은 정말 지겨워한다. 무엇인가를 잘하면 재미를 느끼기 마련이고 잘 못하면 재미고 뭐고 없지 않겠는가. 즉 재미를 느끼느냐는 것과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데에는 비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잘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기에 가능하며, 잘하니까 재미도 생기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어떤 과목을 지겨워하였었는데 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미남 총각이어서(혹은 예쁜 여선생님이어서) 관심을 쏟아가며 열심히 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많이 알게 되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니 성적도 잘나오고 칭찬도 받으니 재미도 많이 느끼고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주변에 널려 있지 않은가.

결국 어떤 일에 대한 재미는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쏟고 관련된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갖고서 경험하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이다. 부자들은 초기에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우선은 그 일의 구조 전체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흡수하고 경험을 하다 보니 점점 더 많이 알아 가게 되고 더 많이 알기에 재미도 느끼고 돈도 벌게 되니 즐거움도 배가 된다. 하기 싫은 일이란 것이 적어도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반면에 대개의 사람들은 일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즐기지도 못한다.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억지로 한다는 생각을 한다. 경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평생 당신 목구멍은 포도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일을 재미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완전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직 종사자들도 면허증이나 자격증 하나를 따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지금은 임시로 남성복 판매사원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멍청하긴…. 바로 그 남성복 코너에서 옷감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안감, 양복부속의 종류, 단추, 지퍼 등의 가격 및 구입처 등은 물론 재단과정, 원가계산, 고객만족 등을 배워야 할 것 아닌가.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아니, 평생 가난하게 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은 자기에게 맞는 일이 아니며 임시로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다른 일을 하게 되기를 꿈꾼다. 그러면서 그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여러 종류의 학원들에 돈을 갖다 바친다(그 덕에 돈 많이 버는 학원 중 하나가 공인중개사 학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막상 그 다른 일을 하게 되어도 또 다시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다른 직업을 찾는다. 그 결과 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해하지 말라. ‘한 우물만을 계속 파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애당초부터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우물도 있다(“이런 일은 하지 말라”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처음부터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우물이 아니라면 어느 우물이건 그 우물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즉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엿 같이 생각되어도 그 구조체와 흐름을 완전히 파악하여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나가야 한다.

물론 근무 중에는 배울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일과 후의 시간들을 몽땅 바쳐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우물터에서는 귀신이 되게 된다. 부자가 되려면 이 원칙을 평생 잊지 말라.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격상의 문제나 기술적 분야가 아닌 이상 어느 한 분야의 일에서 새는 바가지는 다른 분야의 일터에서도 새기 마련이며, 어느 한 분야에서 귀신이 되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중복되는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른 시간 안에 귀신이 되게 된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 번은 질리고 다섯 번은 하기 싫고 일곱 번은 짜증이 나는데 아홉 번은 재가 잡힌다.” 재가 잡힌다는 말은 일에 리듬이 생겨 묘미가 생긴다는 말이다. 즉 피곤을 가져오는 ‘노동’이 더 이상 아니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 단계인 ‘일’이 되게 된다는 말이다. 당신이 하는 것이 ‘노동의 파편’으로 남아있는 한 당신은 언제나 ‘노동의 노예’로 남아 있게 되고 평생을 돈에 휘어 잡힌다. 두렵지 않단 말인가!


5. 허드레 일부터 제대로 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드레 일을 회사에서 시키면 아주 기분 나빠한다. 학력이 긴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다. 신입 여사원들 중에는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 심부름 같은 일을 하고자 취직한 것은 아니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다. 허드레 일들을 왜 사람들은 우습게 여길까? ‘나 보다 못한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일을 그들보다 훨씬 잘난 내가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커피 하나도 제대로 타려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원두커피나 그라운드 커피의 종류에 대하여 배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스턴트커피도 어떻게 타는가에 따라 향이 다르다.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헹궈 내어 컵의 온도를 따뜻하게 한 뒤 물을 깨끗이 털어 내고 인스턴트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만 넣어 완전히 잘 갠 뒤 그 다음에 비로소 나머지 물을 채워 넣어야 향이 살아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커피를 타다 준 사람들 각각의 기호 즉 커피와 설탕과 크림이 어떤 식으로 배합되어야 하는지를 기록하여 놓아야 할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했으니 이젠 됐냐고? 아니. 그 기록한 것을 탕비실에 붙여 놓아 네가 결근했을 때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누구에게 어떻게 커피를 타다 주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이것이 이른바 ‘지식경영’이다). 거기까지 하면 되었냐고? 아니. 커피, 설탕, 크림 등이 한 달에 얼마나 소요되는지를 통계로 만들어 현재 이러이러한데 이것을 저러저러하게 개선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 거기까지 하면 되었냐고? 아니. 종이컵을 사용하여 비용이 많이 사용되니 개인 머그컵을 준비하자고 하면 어떨까… 등등등

복사는 어떨까? 입사 몇 개월이 되었는데도 복사기는커녕 자기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에 붙어 있는 여러 버턴들의 기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대다수이다.(나는 신입사원들이 먼저 고참 사원들에게 복사기 사용 설명서나 키폰 사용 설명서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팩스는 또 어떤가. 팩스 기기에 달린 버턴들에 대해 완벽하게 알려고는 아예 하지도 않는다. 상대방이 팩스를 받았을 때 어떻게 보일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며 보내는 직원 역시 100명 중 한명 꼴 밖에 되지 않는다. 99퍼센트는 자기가 가진 서류 원본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낸다. 그 원본에 칼라 도표가 사용되어 있다면 팩스를 받았을 때 흑백으로 인쇄되면서 칼라 구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읽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신문 기사 같은 경우 작은 글씨들을 팩시밀리가 뭉개 버린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여 그 부분을 크게 확대해서 보내는 사람 역시 만나기 정말 어렵다.

아주 오래 전의 일. 선박 챠터 비용을 절약하고자 기존에 사용하던 뉴욕의 어느 해운 회사 대신 새로운 해운 회사들과 협상을 하던 중 거래 가능성 있는 곳에 대외비로 문서 하나를 보내야 하였다. 너무나도 중요한 문건이어서 나는 차장급 직원에게 직접 팩스 송신을 지시하였다. 그랬더니 얼마 후 절대로 그 문건 내용을 알아서는 안 될 기존 거래처가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원인을 파악하여 보니 팩스 기기에 달려 있는 단축 다이얼을 엉뚱하게 눌러서 잘못 발송된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회사가 입은 손해는 그 차장의 연봉 몇 년 치에 해당되었다.

은행 심부름? 나는 담당자가 법인이 내야 할 주민세를 제때 내지 않아 과태료만 천만 원 가까이 납부한 적도 있다. 과태료는 법인에서 세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없다. 때문에 과태료 천만 원을 납부하였다는 말은 그 천만 원에 해당되는 법인세와 주민세마저 추가로 납부하게 된다는 의미이므로 법인에서는 천 몇 백만 원을 손해 보게 된다. 애인 생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금 납부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은행 심부름을 하찮게 여겨 생긴 결과이다.

서류 정리는 어떨까?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우가 세상에 등장하기 오래 전 DOS시대의 이야기이다. 하드 디스크 가격이 너무나 비싸 DOS용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들은 1 바이트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에 문서제목을 붙일 때 글자 수의 제한을 받았다. 당시 대한민국 굴지의 법무법인에서 오래 일했던 직원이 경력 사원으로 입사하였다. 나는 전 직원 중 일부를 골라 불시에 컴퓨터 파일을 체크해 보곤 하였는데 반년 정도 후 그 직원의 파일 목록을 보곤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문서 제목이 모두 001, 002, 003 순으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답변은‘법무법인에서도 이렇게 했었는데요…’였다. 내 대답은‘이런 닭 대가리…’(속으로만 말했다). 도대체 그렇게 정리한다면 무슨 문서가 어디에 쳐 박혀 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허드레 일에서 생겨난 잘못은 종종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지만 담당자들은 기껏해야 시말서를 쓰거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기만 한다. 야단을 심하게 맞으면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 시킨다. 그러면서도 허드레 일 하려고 취직한 것은 아니라고? 그런 작은 것 하나 귀신처럼 하지 못하는데 더 큰일을 달라고? 웃기지 마라.

일본 교토에 있는 일본전산은 연간 매출액 3,000억엔 이상인 초소형 정밀모터 제조업체이다. 이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1년간 무조건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 나가모리 사장은“청소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청소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허드레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을 내 세운다. 내가 이런 일 하려고 취직한 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자존심? 뭔 자존심? 대학물 먹었다는 자존심? 꼴갑 떨지들 말고 주변을 살펴보아라. 자존심 센 사람을 우리는 다른 말로 콧대가 높다고 한다. 콧대 센 사람을 당신은 좋아하는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콧대를 세운다면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할는지 한번쯤 고려해 본 적이 있는가.

정말 자존심이 세다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성경에도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는 말이 나온다. 낮은 곳에서 걸레를 누구보다 먼저 잡고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면서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 치울 때 그 때 비로소 사람들은 당신을 인정할 것이다. 당신의 자존심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 의하여 당신이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추신: 나는 돈을 꽤 모은 뒤에도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되면 작업복을 입고 밑바닥 일을 하곤 했다. 그래야 일 전체를 구석구석 빈틈없이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허드레 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당신이, 허드레 일은 당신보다 못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으로 믿는 당신이, 사업이나 장사를 하겠다고? 돈을 벌고 싶다고? 꿈 깨라. )


6. 주5일제 근무 좋아하지 말라

주5일 근무가 시작되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정말 좋아하여야 할까? 삶의 질이 더 향상되므로 좋은 것 아니냐고? 음… 당분간은 그렇다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말이다. 만일에 말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 역시 이틀이나 되는 주말을 당신처럼 ‘재충전 내지는 삶의 질 향상’ 이라는 명목으로 쉬면서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 중 일부는 자기 계발을 위하여 그 주말의 황금시간을 거의 모두 바치면서 일과 관련된 능력과 지식을‘독하게’증가 시키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노력이 2년 정도 지속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무슨 말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보자. 여기 A, B두 사람이 있다. A는 주5일제가 시행되자 1년에 약 100일씩(주말 2일 X 50주로 계산함) 2년 동안 외롭게 자기 몸값을 높이고자 대학 입시생처럼 ‘독하게’ 노력하여 왔다. 2년 동안 그가 투자한 시간은 하루 10시간 만 치더라도 2,000 시간이다. 한편 B는 주말과 각종 공휴일에는 삶의 질을 따지면서 놀면서 혹은 쉬면서 보내지만 주중의 5일 동안은 매일 1시간씩 지식 증가를 위해 투자하는 ‘성실한’ (솔직히 그렇게 하루 1시간씩 만 투자하여도 성실하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들을 것이다) 사람이다. B가 투자하는 시간은 1년에 약 250 시간 정도 된다.
(주중 5시간X 50주로 계산함).

여기서 A의 2,000시간은 B가 8년 정도(그렇게 오래 할 리도 없지만) 바치는 노력의 시간에 버금간다. 때문에 A와 B는 처음에는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년만 지나면 각자의 역량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되고 사회로부터 얻게 되는 대가 역시 조만간 달라지게 된다. 게다가 A는 집중적으로 지식을 습득하였기 때문에 그 지식이 체계화되어 있어 실전에서의 적용도 할 수 있으나 B는 찔끔찔끔 습득하였기 때문에 전체 뼈대를 잡지도 못하고 뭘 공부했는지도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주5일 근무가 시작되고 10년 후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B가 몇 년 동안 ‘성실히’ 벌어야 하는 돈을 A는 1년 안에 벌게 된다. 물론 B는 여전히 돈 걱정을 하며 살게 된다. 반면에 A는 10년 전 이미 2년을 희생하여 B 같은 사람들과의 지식 세월 격차를 이미 5년 이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느긋한 여유도 누린다. 이것은 일부 철밥통 들을 제외한다면 봉급생활자이건 자영업자이건 사업가이건 장사꾼이건 학자이건 연구원이건 학생이건 다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른 비유를 통해 설명해 보겠다. 여기 두 나무가 있다. 하나는 2년 동안 그저 뿌리를 키우는데 만 전력을 다 하여 아주 넓고 깊게 그 뿌리를 내렸다. 다른 하나는 같은 시기에 예쁜 새들과 대화도 하고 바람과 함께 호프집에서 노래도 부르며 보통의 다른 나무들이 하는 것만큼만 뿌리를 내렸다. 2년후 전자는 뿌리가 깊고 많아서 쉽게 물을 흡수할 것이고 그 덕에 밑둥이 상당히 굵어졌고 줄기도 굵다. 후자는 그저 다른 보통 나무들과 비슷하게 자랐다. 두 나무의 높이는 종자가 같으니 전자나 후자나 다름없을 것이며 열매 역시 아직은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전자는 굵은 줄기와 넓고 깊은 뿌리를 통해 아주 손쉽게 물을 흡수하고 그 물을 모든 잎새에 손쉽게 보내게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여유도 생기기에 이제는 새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나무의 주인은 이 열매 잘 맺는 나무가 성장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주변에 있던 다른 보통의 나무들은 땅에서 뽑아내’ 다른 곳에 이식한다.

다른 나무들은 자기도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어 보려고 하지만 잎의 수도 적고 그나마 주변의 다른 보통 나무들의 뿌리와 서로 얽혀 경쟁하면서 빈약한 뿌리로 물을 흡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겨우 잎새에 물을 보낼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소모하는 바람에 뿌리를 좀 더 깊고 넓게 뻗쳐 보고자 노력할 여유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없는 처지이다. 열매는 그저 남들 맺는 정도만 생산할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계발은 일찍 하면 일찍 할수록 유리하다는 것이다. 20대에 먼저 한 사람이 30대에 하는 사람 보다 유리하고 30대에 먼저 한 사람이 40대에 하는 사람 보다 유리하다. 하물며 20대와 30대에 계속 노력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더 이 사회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예컨대 오피스 프로그램을 이미 20대 초에 완전히 마스터 하였다고 치자. 당신은 앞으로 영원히 그 프로그램을 제대로 알지 못해 쩔쩔매는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것이다. 결국 부자가 되는 게임은 먼저 실전 지식을 축적한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전 지식들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학교는 일부 전문대학 이외에는 거의 없으므로 학벌이나 학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 5일 근무 제도가 시행되면서 노는 날이 많이 생겼다고 너무 좋아 하지는 말아라. 그 어느 나라에서건 그 제도가 시작되고 난 뒤 중산층과 상류층의 소득격차는 제도 시행 이전 보다 훨씬 더 커지는 양상을 보여 왔고, 돈과 시간을 펑펑 쓰다 보니 중산층에서 하류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니까 말이다.


7.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

사람의 몸값은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일반적인 성인의 육체에 있는 지방분으로는 비누 7개를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인(燐)으로 성냥개비 머리 2천2백개와 마그네슘으로 설사약 한 봉지를 만든다. 인체에 포함된 철로 못 한 개와 탄소로 2천 자루의 연필심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5만원 정도 된다. 인체의 수분을 제거하고 화학약품을 만들면 수십억원 상당의 약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만드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게 소요되어 현실성은 없다.

국제아동구호기금(UNICEF·유니세프)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에서 농장으로 팔려나가는 어린이들의 몸값은 1명당 15달러에 불과하다. 인체의 장기는 매매가 금지되어 있으나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신장(腎臟)은 최대 15만 불 정도에 밀매된다. 미국 CNN방송은 인도와 필리핀에서 2천 달러 정도면 신장 1개를 살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신장 밀매가격은 수천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사형수들의 신장은 2만 달러, 각막은 5천 달러, 간은 4만 달러에 밀매가 이루어졌다. 미 LA타임스에 의하면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대 등 아이비리그 여학생의 난자는 최대 10만 불을 호가한다. 이러한 가격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성인의 육체는 밀매시장에서 억대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고를 당하였을 때 나오는 보상금은 사람마다 다르다. 지난 95년 초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시의 한 병원에서는 당뇨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환자를 의사의 실수로 멀쩡한 왼쪽 다리를 절단한 일이 있었다. 결국 이 환자는 두 다리를 모두 잃었고 피해보상으로 약 26억원을 받았다. 한편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의료사고 때 법원이 지급 판정한 보상금을 토대로 인체 각 부위의 값을 매겼는데 뇌손상이 15억원, 시력상실 2억5천만원, 폐기능 저하에 1억2천여만원 이었다.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대한항공으로부터 평균 2억5천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으나 미국 정부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던 피해자 14명은 1인당 평균 230만달러(30억원)를 받아냈으며 2001년 국내 법원에서는 조정사의 무모한 조정이 인정되어 7억여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항공사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국제조약에 의거 보상금은 1억5천만원선이다.

당신이 사고를 당하였을 때 당신의 몸값이 얼마로 계산되는지를 생각하여 보자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평등하다지만 인권이 평등하다는 뜻이지 세상에서의 몸값이 평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몸값이라는 말은 본래 연예인, 광고모델, 스포츠선수, 인질 등에만 사용되었으나 실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값은 인간 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람이 되면 몸값이 비싸지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많이 찾지 않는 사람이 되면 몸값이 싸진다. 노예시장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지만 이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그대로 직시하라.

자. 이제 당신의 몸값을 계산하여 보자. 당신이 자영업자이건 봉급생활자이건 간에 내년도 당신의 수입은 금년보다 올라 갈 것으로 생각하는가? 먼저 당신이 작년에 했던 일과 금년에 해 온 일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내년에는 어떻게 될는지도 생각하여 보라. 만일 당신이 하는 일에 양적인 변화도 없고 질적인 변화도 없으며 당신이 갖고 있는 지식의 양에 있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무슨 근거로 내년에는 수입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녀 교육비가 올라가서? 그건 당신 개인 사정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 자녀가 큰 수술을 받았으니 수입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물가가 올라가서? 물가가 오른 것과 당신의 수입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회사에서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하여야 되지 않느냐고? 아니, 회사가 무슨 자선단체인가? 회사가 무슨 양로원이나 고아원인가? 회사가 이득을 많이 냈으므로 당신의 봉급도 올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가? 그 이득이 당신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당신이 없었다면 그 이득이 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인가? 회사가 이득이 났으므로 봉급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회사가 손실을 보면 봉급을 스스로 낮추겠다는 말인가? 당신의 수입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부가가치의 창출 없이는 당신이 제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한다 하여도 당신의 수입이 올라야 할 근거가 없다. 만일 당신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면 당신은 회사나 고객이 볼 때 정말로 꼭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없어도 되거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 될 수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으로서 당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종이에 자세히 기록하여보라. 대부분 기껏해야 서너 페이지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데 몇 개월이 걸리는가? 서너 개월? 그렇다면 당신의 몸값은 당신이 몇 년을 그 일을 하여 왔던 간에 신입사원과 사실은 다를 바 없다. 무슨 얼어 죽을 연공서열이란 말인가. 이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이등병이 일등병이 되고 봉급도 더 많이 주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물론 그런 정부 투자기관들이 꽤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1996년 일본의 통신판매회사 (주)미스미는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에 따른 연봉산정 기준을 공개한 바 있다. 그 기준에 의하면 연봉 3백만엔을 받는 사원은 담당 업무의 처리방법을 알고 상급자의 구체적인 지시를 확실히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초급사원이다. 연봉 4백만엔의 직원은 담당업무의 체계와 흐름을 이해하면서 업무과제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검토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계획의 수립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봉 5백만엔의 직원은 업무의 독자적 추진이 가능하며, 교섭조정 등 타부서와 연계업무도 해낼 수 있고 사업계획의 작성도 일부 담당한다. 연봉 7백50만엔의 직원은 업무의 추진계획이나 특별임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으며 직원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정도의 신뢰를 받고 있어야 한다. 연봉 1천만엔은 팀의 리더로 신규, 기존 사업을 가리지 않고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며 생산에서 상품기획까지 폭넓은 판단력을 갖고 있는 경영자층이다.

결국 몸값의 핵심은 무슨 일을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몸값이 비싸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라면 제일 먼저 투자하여야 할 대상은 부동산도 아니고 주식도 아니다. 어떤 회사가 연구개발비나 교육비를 많이 투자하면 좋은 회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회사가 언제나 성공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투자를 하여 당신을 비싸게 만들어라. 그래야 몸값이 올라간다.

자기투자를 열심히 하여 일을 잘해냄으로써 연봉이나 연 수입을 5백만원 더 증가시켰다면 연리 5프로로 생각할 때 당신은 적어도 1억원을 추가적인 금융자산으로 굴리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에서 뚝 떨어진 1억원이 금융기관에 있는 것이나 연 수입 5백만을 더 증대 시킨 것이나 그 결과는 같다는 말이다. 다른 점은 현금 1억원이 있다면 금융기관에서 이자를 받게 되고 그 돈을 잘못 투자하면 이자는커녕 원금을 날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몸값을 비싸게 만들면 당신 자신이 매년 5백만원씩 돈을 더 찍어내는 조폐 공장이 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을 돈 찍어내는 기계가 되도록 만들어라.

자영업자 역시 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오도록 몸값을 비싸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이다. 시설을 투자하거나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것이 투자가 아니라 고객을 어떻게 섬기고 서비스를 어떻게 하여야 고객을 만족시키는지를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여야 하며 직원들의 생산성과 태도를 어떻게 하여야 증대 시키고 변화시키는지를 공부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학교를 더 다니라는 말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이론이다.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적용이다. 이러한 적용 능력은 결코 학벌이나 학위와 비례하지 않는다. 몸값은 이론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으로 잘 알아야 올라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하고 일에 대하여 귀신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은 지금 당장은 필요 없는 다른 일들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관리할 능력이 있게 된다. 그 어떤 투자 재테크보다도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몸이 피곤하다고? 월급이 적어서 공부할 마음이 안 생긴다고? 해 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노력이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노력이란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노력하라.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짐을 명심하라.


8. 돈 주머니를 쥔 올바른 사장을 골라라

당신이 회사에서 희생적으로 일을 하여 왔고 능력배양에도 최선을 다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 받는 대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원인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이다.

첫째, 미련하게 일을 하거나 생산성이 낮거나 육체로만 일하거나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또는 그렇게 일하여도 되는 일만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직 내에서 당신은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손쉽게 대체시킬 수 있다. 당연히 당신의 인건비는 싸게 책정된다. 일하는 방법 혹은 일의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둘째, 돈 주머니를 쥐고 있는 사장의 눈에는 당신이 당신의 상사들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사장이 월급쟁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당신이 아무리 일을 잘하고 스스로 능력을 배가시켜도 당신에 대한 대우는 서류화된 직급별 봉급제도 규정에 묶여 있다. 유명회사들이 대부분 이렇다. 물론 유명회사에 다니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 들으며 ‘좋은 회사에 다니시네요’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기쁨이 있다(특히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명한 회사에 다니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셋째, 돈 주머니를 쥔 사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이용만 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에 사업을 일으킬 때는 사장이 별의별 달콤한 말을 다 하였기에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하여 일을 하였지만 나중에 사업이 번창하게 되자 사장이 안면을 바꾸고 당신은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어떤 사장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돈주머니 뿐 아니라 인사권도 가진 오너 사장과 가깝게 일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부자가 되는 길에서’ 중요한 것은 월급이나 복지제도가 아니다(부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이런 것을 최우선적으로 따지며 직장을 구하는 멍청한 사람들이 많다). 평생을 평범한 봉급생활자로 지낼 생각이 없다면, 또는 봉급생활을 하더라도 연봉은 비싼 고급 인력이 되고 싶다면, 일을 어느 정도나 배울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사장을 고르는 법을 소개한다.

첫째, 사장이 오너인지 아닌지를 살펴라. 오너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피하라. 특히 정부의 입김이 강하여 사장이 낙하산을 타고 온 곳이라면, 언론에서 그 사람에 대해 아무리 그림같이 말한다고 하여도 가능한 피하라. 순수 민간기업에서는 어떨까? 오너가 아닌 사장들은 대부분 본인 자신만 스타로 남으려는 경향이 있다. 수익구조가 좋아져야 오너 혹은 주주의 신임을 계속 얻기 때문에 직원들 봉급을 쥐어짜기도 한다. 연봉이 수억에서 수십억 되는 사장이 폐지 활용이나 통신비 절약 등을 외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미국 대기업들을 보더라도 CEO는 연봉이 스톡옵션 등을 포함하여 수 천만 달러가 되어도 부사장은 그저 그렇고 그런 수준의 연봉만을 받는다. 수익이 감소하였을 때 자신의 연봉 절반만 희생하면 직원을 해고시키지 않아도 되는데도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스타급 사장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 일을 아무리 잘하여도 언제나 스타 들러리에 머물게 되고 기회도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장들이 당신과 함께 벌거벗고 사우나를 함께 하고 때도 밀어주며 당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당신 어깨를 두드리며 모범 사원으로 칭찬한다고 하여 감격해 하는 순진함은 갖지 말라.

둘째, 사장이 오너라고 할지라도 돈주머니를 가진 그 오너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곳은 피하라. 오너 대신 상사들이 겹겹으로 늘어서 있는 곳에서는 일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기업이 대표적으로 그런 곳이다. 부자가 되려면 사장의 마음을 배워야 하는데 사장과 거리가 너무 먼 그런 조직 내에서는 사장의 눈높이를 배울 수가 없다. 게다가 육체와 시간을 헌신하며 제 아무리 노력하여도 봉급표가 서류로 확정되어 있기에 수입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능력별 연봉제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아직은 연공서열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때로는 당신이 세운 공을 상사들이 차지한다. 그들이 임의적으로 당신의 몸값을 올려주지도 못한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밤잠을 설치며 능력을 배가 시킨다고 하여도 당신의 월급을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을 모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원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피자 조각과 같이 토막난 일만 배울 뿐이며(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정말 특출 나지 않는 한 고속 승진이 어렵다. 결국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권유하는 직장은 중소기업 이하 규모의 회사 혹은 가게로서 돈주머니를 쥔 사장과 자주 접하며 일하는 곳이다.

셋째, 똑같이 돈주머니를 갖고 있어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 밑에서 일하는 경우는 심사숙고해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에게는 공통된 생각이 있다. ‘나는 공부도 많이 하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므로 나의 인건비는 비싸다. 하지만 너는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내 손님들은 다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 너희들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사업가들 중에는 “직원들 덕분에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으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나 때문에 네가 먹고 산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병원장이 부자라고 할지라도 병원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넉넉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를 반드시 보고 그녀처럼 행동하면 된다. 물론 큰 스트레스 없이 그저 주어진 봉급에만 만족해하며 살겠다면 편한 일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면 저녁에는 다른 일에 대해 배워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어느 간호사에게 내가 준 조언; 우선은 영어에 미쳐라. 병원의 모든 행정과 의료보험 관련 일들, 의약품 납품 과정 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배워라. 그리고 외국계 병원이 들어오면 즉각 지원하여라. 의사 버금가는 대우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 밑에서 일할 때는 조심해라. 일은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장들 중 일부는 직원들의 삶의 질을 자신이 고생하던 시절의 눈으로 판단하기에 직원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고마워하지 않으며 대우가 형편없다. 자신이 예전에 고생하였던 수준의 눈높이로 직원들의 현재 생활을 바라보면서 “나는 너 보다 옛날에 훨씬 더 어려웠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에서 이득이 발생하여도 자신의 몫만 챙길 뿐 직원들에게는 야박하며 스크루지 영감처럼 본인 자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도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랐던 어떤 사장은 내게 “직원들 봉급은 겨우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주면 되며 그 이상을 주게 되면 딴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기존 직원들에게 사장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라. 사장의 그릇이 장돌뱅이 수준이라면 빨리 일하는 법만 배우고 뛰쳐나오는 것이 좋다.

다섯째, 일에 미치지 않은 사장은 피해라. 가장 바람직한 것은 돈에 미친 사람이 아니라 일에 미친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다. 미친 사장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사무실만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화려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사무실이 번듯하지 않으면 도대체 입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납품업자를 고를 때 화려한 사무실을 갖고 있는 회사는 전혀 상대하지 않는다.)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일에 미친 사람들 옆에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과 열정을 공유하여야 한다. 게다가 일에 미친 사람은 조만간 자기 혼자서는 일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일을 나눌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거기서 기회가 나타난다. 노력하는 직장인에게는 “직원들 덕에 내가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서 이익을 나누고 기회를 나누어주는 사장이 최고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그런 사장들 주변에 널려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일에 미친 사장들은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가진 사람들만” 소중히 여긴다.(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좀 못하고 게으르더라도 대우는 남들만큼 해 주고 실수가 많더라도 따뜻한 말로 위로하여 주는 온화한 인품의 사장을 원한다. 사장이 일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자선사업가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말: 네가 사장해라. 내가 그런 직원들 많이 보내줄 테니까.)

여섯째, 권위주의적 사장은 피하라. 이런 유형은 본질에서 멀리 떨어진 문제를 갖고 아래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결재 문서의 내용을 갖고 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글씨나 토씨를 고치는 것을 더 잘한다. 회식을 하여도 사또가 연회를 베푸는 식으로 한다. 명절에 직원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서 사장의 집에 찾아가는 직장이라면 사장이 십중팔구 그런 유형이며 아부가 승진의 지름길이다.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사장도 있다. 특히 이미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장은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일과 관련하여 사장의 생각에 반론을 제시하였을 때 나중에 듣게 되는 소리가 “건방지다”라는 말이었다면 즉시 사표를 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장의 역할은 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방향을 제시하고 일을 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르쳐주지 못하는 사장은 가능한 멀리 하여라.

일곱째, 품질과 가격 및 서비스를 통한 수익 이외의 것으로 돈을 벌려는 사장은 피하라. 기업을 계속 존속시키려면 수익 추구에 대한 명백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 수익의 기반이 코스닥 등록 등을 통한 주식 상장에서 생기는 이득에 두고 있다면 그런 사장은 언제라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기업을 버릴 수 있으며 경쟁력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직원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다. 이런 사장들은 납품을 받아도 꼭 자기 친구나 친척 등에게서 받으려고 하며 내부자 거래에 능숙하다. 가족들이 회사에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경쟁을 통한 구매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으며 결국 회사 전체의 경쟁력이 마비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자기 몫은 별도로 챙겨 놓기 때문에 기업은 망하여도 자기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덟째, 사장이 새로 사업을 시작하거나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가운데 당신이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면 심사숙고하라. 대부분 이런 경우는 서로 이미 아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사장이 어째서 당신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지 스스로 분명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덮어놓고 도와달라는 말에 인간적으로 이끌려 참가하지는 말아라. 당신의 가치가 그 사장에게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당신에 대한 대우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때 구두로 오고 가는 내용은 전혀 가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는 처지에 공증을 하여달라고 하는 것은 한국적 정서와 맞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주주로 참여 하는 것이 좋다. 명심해라. 돈 앞에서 인간관계는 언제라도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주의사항이 있다. 사장을 당신 혼자만의 생각으로 단시간에 판단하면 안 된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기업’에서“절대로 보스를 과소평가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적어도 몇 년 이상을 그 사장 밑에서 일을 하여온 다른 직원들의 말을 중시해라.


9. 8시간 근무에 집착하지 말라

일을 한 대가를 계산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 주면 얼마를 주겠다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을 하면 얼마를 주겠다는 방식이다. 전자는 책임과 결과가 중시되며 각자의 역량에 따라 일하는 시간의 양이 달라진다. 후자는 누가 그 일을 하건 간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같은 시간에 이룩하게 되는 일의 양이 비슷하기에 일하는 시간의 양이 중시된다. 물론 이 두 가지 방식이 혼합된 경우도 많다.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 시간의 양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예컨대 그 시대는 방직공장 기계 앞에서 노동자가 몇 시간을 일하는가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되던 시대이었기에 임금은 당연히 근무 시간의 양과 비례하여 지급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도 이미 일에 투여 되는 시간의 양 보다는 개인의 역량이 더 중요한 일이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일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 된다 .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느 전자 회사의 애프터서비스 요원이라고 치자. 아마도 당신의 보수는 근무 시간의 양과 비례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서비스 요원은 그 어떤 고장 난 가전제품도 자사 제품이건 아니건 간에 30분 안에 원인을 발견하고 수리하는데 비해 당신은 자사 제품만 고칠 수 있고 시간도 평균 두 배 이상 걸린다고 하자. 그리고 불행하게도 내가 당신 회사의 사장이라고 치자. 나는 당신이 일한 8시간을 절대로 다른 직원의 8시간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당신이 보기에 나는 정말 악독한 기업가일지도 모른다.) 즉 당신의 몸값은 쌀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말하는 것이지만 부자가 되려면 일단은 자기 몸값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종자돈을 남보다 빨리 더 크게 모은다. 여기서 문제는 당신은 누군가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당신이 어느 직장의 100명 중 1인이며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불행하게도 그 100명 중 틀림없이 당신보다 언제나 일의 결과가 객관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8시간 일하여 얻은 결과를 당신도 같은 시간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10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10시간씩 일하고 그 차이 2시간이 어떻게 해서든지 줄어 없어지도록 추가로 시간을 투여하여 지식을 습득하면서 스스로를 좀 더 훈련시켜야만 한다. 즉 당장 하루 열 몇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하여야 당신도 그 일 잘하는 사람과 비슷한 단계에 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왜 사람들은 무시하는지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직장인들을 위한 성공 지침서인 ‘더 많이 받고 더 빨리 승진하라(Get Paid More and Promoted Faster; 국내 미번역. 두껍지 않고 쉽게 쓴 책이므로 원서로 읽어도 된다)’에서 저자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 역시 자기 몸값을 높이려는 사람들에게 “일찍 출근해서 열심히, 늦게까지 일해라”고 조언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 고소득층 상위 10%는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한다. 상위 1%는 일주일에 평균 56시간 일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들은 일할 때는 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일찍 출근해서 즉시 가장 중요한 일에 착수하고 하루 종일 꾸준히 열심히 일한다. 이들은 동료와 잡담 하는데 시간을 버리지 않는다.” 나 역시 일을 할 때 그렇게 하여 왔다.

유럽 사람들은 어떨까? 일은 조금만 하고 삶의 여유를 즐긴다고? 웃기는 소리 작작해라. 나는 사업상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나라에서건 중류층과 하류층이 8시간 노동에 집착하는 법이다. 선진국들에서 하루 8시간 근무와 주5일 근무 제도를 지키는 것은 대부분 공무원, 육체노동자, 하급 직원들이다. 하급 직원들과 육체노동자들도 8시간 근무 중에는 신문을 보거나 잡담을 하거나 딴전을 피우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이나 담배 피는 시간, 커피 마시며 잡담 하는 시간 등은 자동으로 노동시간에서 제외 되도록 하는 전자카드를 근로자 개개인이 착용토록 하는 유명 기업들이 부지기수이다. (반면에 한국의 근로자들은 일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별 볼일 없다고 지적한다.)

외국의 경우 상급자들의 근로시간과 책임은 무한대이다.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다. 나는, 놀기 좋아한다는 프랑스에서조차 회사의 고위 간부들이나 사장이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휴일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지위 높은 사람들만 모이는 간부회의 중에 먹게 되는 점심은 샌드위치 일색이다. 외국 영화를 보면, 상급자들이 일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는 장면이 부지기수이고 사장의 책상에는 처리하여야 할 서류들이 가득한 경우가 많다. (책상이 깨끗한 경우는 마피아 보스이거나 사기꾼이다. 한국 영화를 보면 사장이나 이사들의 책상은 대부분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고 술 접대하러 다니다 알게 된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이혼을 당하면 당했지 절대 일 때문에 이혼을 당하지는 않는다.)

결코 오해하지 말라. 평생을 일 중독자(workholic)로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내가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한 말: ‘너희가 어제 밤늦게까지 일하였다고 내가 고마워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말아라.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사람일수록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라. 너희는 방직기계 앞에 서서 실을 뽑아내는 노동자가 아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희가 날이 갈수록 일을 빨리 마치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평생 일하는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일에 능숙해 져야 한다.’

처음에 8시간 걸리던 일을 6시간으로 줄이고 남은 2시간에 추가적으로 다른 일을 수행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비로소 몸값은 계속 올라가게 되며 경제적 자유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일을 빨리 마치려면 머릿속에 든 것이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발 좀 공부해라. 반복되는 일은 개선시켜라. 개선 없이는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가 없다. 빨리 일을 끝 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라. 그리고 제발 일이 끝났는데도 윗사람이 사무실에 있다고 눈치 보며 남아 있지 마라. 일은 없지만 남아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은 얼마든지 권장한다. 저녁은 회사에서 기꺼이 제공할 것이다.

고소득층이 일을 많이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하는 것을 즐길 뿐 아니라 자신의 경쟁자들을 이기려는 승부욕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를 볼 때 과로사를 당하는 사람은 고소득층이 아니라 40-50대의 평범한 봉급생활자들이며 대부분 일을 즐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다.

물론 당신 인생에서 직장이나 일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면 일의 결과나 경쟁은 개의치 않는 채 8시간만 일하면서 느긋하게 살아도 좋다. 물론 당신은 승진도 느릴 것이고 자기 사업이나 장사를 한다고 해도 돈 벌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당신 가족은 당신을 착하기는 하지만 무능력한 사람으로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이 사회에서의 경력을 생각하고 세상에서 받는 경제적 대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8시간 근무는 이제 잊어버려라. 8시간 근무는 당신이나 노동조합이 원하는 기준이지 당신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세상이 원하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조 간부들 중에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던가? )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일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자는 회사를 버리든지 자기가 회사에서 버림을 받는다.” ‘사장의 제왕학’에서 이하라 류우이치가 하는 말이다(나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경제학자 랑그로와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빗대어 ‘보이지 않는 발’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당신이 세상이 원하는 기준을 무시한다면 그 보이지 않는 발이 당신을 성공의 대열에서 밖으로 차버릴 것이다. 8시간 근무를 고집하면서 느긋하게 살면서도 그 보이지 않는 발에 채이지 않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10.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어 일하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귀천’을 쓴 천상병 시인의 소원은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이었다. 심지어 그는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고도 했다. 그러나 1993년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은 “주인 말고도 세가구가 있는 집”이었고 열 네 사람이 몸을 부딪히며 살던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까지 했다. 왜 그는 가난했던가. 시를 좋아하였기에 시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다루는 상과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돈은 그의 아내가 찻집을 하여 벌었다고 하며 그 찻집은 2001년 현재 아직도 영업 중이다.

그가 가난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시집이 잘 팔리지도 않는 이 땅에서 시를 썼기 때문 아닌가. 시인으로서 시만 쓴다면 대부분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은 시인이지만 많은 책들의 편자 혹은 역자로 등장하기도 하는 류시화는 내가 짐작하기에 전혀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무슨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를 찾아내 상품화 시키는 유능한 편집자이며 세상에서 대가를 얻어내는 마케팅 기법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천 시인처럼 살 것인지 류 시인처럼 살 것인지는 당신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며 그 어느 쪽이 삶 자체로서 우월하다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직업을 가졌던지 간에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얻어내려면 그 대가를 결정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기 최면에 빠져 살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실패와 좌절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자들은 대부분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무시하면서 실패의 책임과 원인을 세상에게로 돌린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느니 세상이 썩었다느니 세상이 학벌이나 인맥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느니 등등, 실패한 자들의 핑계는 길고 긴 레퍼토리를 이룬다. 명심해라. 성공한 자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과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절대 세상 속에서 핑계를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자가용 기사를 한두 명 겪어 본 사람이 아니다. 연봉 2천만 원을 주건 3천만 원을 주건 간에 보통의 자가용 기사의 경우 “목적지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차량관리 잘하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잘 모신다는 기준은 순전히 자기들 기준이며 차량 관리 수준 역시 자기들 판단에 근거한다.
약 10수년 전 기사 한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 같이 화를 내었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 달싹 못하면 “이게 내 탓이냐?”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대부분의 자가용 기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다 읽었고 심심하다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여직원들에게 도와 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대다수 임직원들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당시 연매출 400억 원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반대가 극심하였던 이유는 내가 왜 그를 영업부 과장직에 앉히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모든 거래처에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 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회사 내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그는 사표를 들고 나를 찾아 왔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품 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여명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후기가 있다. 내가 그를 영업부 과장에 앉혔을 때 입사한 새 기사는 자기 선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 매우 신경을 씀은 물론 내 가족들에게도 아주 공손하게 처신하였다. 내게 종종 자신이 이미 예전에 영업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선임자가 영업부 과장직에서 사표를 내자 그는 내게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자신도 영업부에서 일하여 보고 싶노라고. 하도 귀찮게 조르기에 그를 영업부 평직원으로 보내면서 영업부 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개월만 데리고 있어라.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2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냈다.

왜 나는 선임자처럼 행동하고자 애를 무지 쓴 그를 무시하였을까? 세상이 원하는 자세로 일하는 태도는 뼈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눈앞의 홍당무가 탐이 나서 나오게 되는 행동과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임자가 모범을 미처 보이지 못한 분야에서는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수현상이 생기면서 탄로가 나기 마련이며,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기에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의 기준을 바꾸어라. 당신이 정한 기준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들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으로 일을 하여 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그러나 나는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기준을 아무리, 아무리 귀가 따갑도록 설명하여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안다. 그들은 오히려 “덜 먹고 덜 싸겠다”, “꼭 그렇게 까지 하면서 바둥바둥 거리며 살아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얻게 된 결론: 역시 가난하게 살 사람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11. 일의 대가는 질로 따져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받는 돈 만큼만 일할 것이며 그 돈은 내가 일한 시간과 비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샐러리맨들을 위한 사이트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일한다고 믿기에 남들이 받는 보수에 대단히 민감하다.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 대우도 같아야 한다고 여기며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으니 똑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사람들 간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산업화시대의 노동자들이 가졌던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그렇다. 피자헛을 들여와 한 때 엄청난 성공을 한 성신제는 “창업자금 칠만 이천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써봤다. 이중에는 ‘나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 꺼야, 공인 회계사가 될 꺼야 하면서 이까짓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니까 대충 시간만 때우다 가자’라고 생각하면서 건성건성 일하는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 중에서 단 한명의 디자이너, 단 한명의 공인 회계사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접시 닦는 일을 하더라도 이에 미치는 사람이 본업에 돌아가서도 그 일에 미치고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 중에서 졸업 후 정식으로 채용을 하고 싶다고 사장이 말할만한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돈주머니를 가진 입장에서 볼 때는 언제라도 즉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킬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일만 한다. 받는 대가가 얼마이므로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런 생각이 가난으로 가는 고속도로임을 명심하라.

스테이시 가델라는 대학 시절인 1994년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녀는 접시를 하나 닦더라도 물기 없이 깨끗이 닦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등 남다른 열정과 헌신을 보였다. 그 자세가 매장 지배인의 눈에 들어 졸업 후 정식 입사했고, 불과 5년 만에 본사의 마케팅 이사가 되었는데 미국 외식업계 4위인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다. 업계에서 신데렐라로 불리는 가델라는, 끈기(Persistence), 헌신(Commitment), 열정(Passion)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였다.

1992년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용인의 에버랜드에서 티켓을 파는 등등의 평범한 직원으로 입사한 이은예는 고객 서비스에 투철하였다. 한 가지 일화가 있다. 93년 추운 겨울 어느 날 저녁 무렵 4명의 가족 중 5살쯤 돼 보이는 어린아이가 매우 발이 시려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눈썰매장을 이용하느라 옷은 물론 신발이 모두 젖었기 때문이었다. 이은예는 어린이를 직원휴게실로 안내해 발을 녹이게 하고 자신의 신발을 기꺼이 벗어 주었다. “주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를 듣긴 했죠. 하지만 가족이라면 추운데서 떨고 있는 그 아이를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입사 후 1년 만에 ‘베스트 서비스 맨’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1호봉 특진혜택, 미소경진대회의 튜울립상, 역할연기 우수상, 삼성그룹의 품질 서비스 경진대회 회장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입사 4년 만에 서비스 아카데미 강사로 전격 발탁되었다(그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이었을까?)

톰 피터스(경영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사람의 모든 책을 반드시 읽어라: 내가 나의 글에서 인용만 하고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 책들은 안 읽어도 되는 책들이라고 보면 된다)가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 호텔의 한 여자청소부 버지니아 아주엘라(Vrginia Azuela). 하지만 그의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박태호 새너제이 주립대 경영학교수가 그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뒤 98년 5월 12일 매일경제에 기고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리핀 출신의 그녀는 74년 당시 27세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선택 가능한 직업은 호텔의 청소부였고 91년 리츠칼튼에 입사하면서 총괄품질경영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대다수 동료들은 청소라는 허드렛일에 무슨 품질경영이냐고 비웃었으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작은 메모수첩에 그녀가 서비스한 객실 고객들에 대한 특성과 습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그 고객이 다시 왔을 때 그들이 원하는 객실서비스를 하였다.

심지어 침대보 작업까지 개선시켰다. 본래 호텔측에서는 침대보 교체작업을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하여 2인1조의 작업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새 침대보를 침대 사이즈에 맞춰 침대보를 까는 순서의 역순으로 접어두면 작업속도를 더 높일 수 있음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녀는 고객만족과 관련된 문제해결에는 2,000달러를 임의로 쓸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 받았고 호텔직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파이브 스타(Five Star)상은 물론, 말콤 볼드리지 생산성 대상까지 받았다.

6.25 동란 당시 고아가 되어 구두를 닦다가 열일곱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세탁 같은 허드레 일을 하던 이철호. 그는 미군들이 맡긴 옷가지들에서 때가 잘 빠지지 않으면 삶아 빨았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포격으로 파편을 맞아 그 수술 때문에 여차여차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그는 배가 너무 고파 요리사가 되고자 하였고 주방에서 그릇 하나를 닦아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2-3년씩 감자만 깎는 일이 주어졌을 때 그는 요리의 종류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깎아 놓았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백만장자이다(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성공시대 프로그램을 MBC인터넷사이트에서 반드시 찾아서 보라. 책으로도 나온 것으로 안다.)

내 경험 하나를 이야기 하자. 미군 부대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먹고 살고자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화장품이나 식료품들을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며 부유층 아파트들을 돌아다니며 팔았던 적이 있다. 대부분 그런 물건들은 아줌마들이 팔았고 나 같은 남자 대학생은 전혀 없었기에 경비실을 통과하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문을 열어 준 고객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하였다. 우선 나는 모든 상품에 붙어있는 영문 라벨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모조리 외웠다. 바셀린 연고 하나를 팔더라도 눈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도 잊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눈 화장을 지울 때는 큐팁(면봉의 미국 상품명)을 사용하라고 하였고 큐팁도 팔았다. 스팸 햄을 팔 때는 새로운 요리법들도 알려 주었다.

결국 한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면 얼마 후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정말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사전 주문도 생겨났다. 그 당시 내가 알게 된 원칙 몇 개; 남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 절대 오늘의 이득에 눈이 멀면 안 된다는 것, 부자들은 끼리끼리 산다는 것, 한명의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 주변의 모든 부자들도 언젠가는 내 고객이 된다는 것. 내가 나중에 누구까지 만나게 되었는지 아는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당시 최고의 연예인 몇몇 까지 내 고객이었다. (나는 이 일을 몇 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그 일은 관세법 위반으로 단속 대상이었기에 께름칙하였을 뿐 아니라 압구정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몸값은 그렇게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노동을 하여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라. 당신이 일한 대가에 대한 법칙 두 개가 있다.

첫째, 당신이 먼저 보여주지 않는 한 국물도 없다. 대가를 더 많이 받는다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이 세상은, 당신이 열심히 성실히 일하겠다는 그 각오를 덥석 먼저 믿어 주는 세상이 전혀 아니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 홍당무가 적다고 징징거리는 말들 치고 제대로 달리는 놈이 없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고? 돈 몇 푼 벌겠다고 스테이시 가델라, 이은예, 버지니아 아주엘라, 이철호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도대체 있느냐고? 무슨 햄 쪼가리 하나 팔면서 요리법까지 알려 주느냐고? 그냥 편하게 일하고 조금 벌겠다고? 뭐 그렇게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좋다. 그렇다면 당신 생각대로 그냥 계속 살아라. 아무도 안 말린다. 단 조건이 있다. 절대로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하여간에 가난한 자들에게는 공통된 유전자가 있다.)

둘째, 보상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처음에는 천천히 돈다. 가속도가 붙기까지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겨우 몇 개월 열심히 하여 보고 대가가 즉시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여 곧 “일하는 본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런 얄팍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며칠 밤을 새워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월급이 그 다음 달로 인상되기를 바라는 이 조루증 환자들아. 세상은 이미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한 두 번 속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당신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신의 경륜의 수레바퀴도 천천히 도는 법 아닌가.

다 자란 한우 한 마리의 가격은 300만 원선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질병 없는 우수한 종자를 뭇 암소들에게 나눠주는 종우(種牛)는 최고 3억 원까지 한다. 사람도 몸값이 비싼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짐승과 비교하느냐고? 나는 소를 소와 비교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그것을 믿는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일 뿐이며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이 모두 평등한 경우는 생로병사와 신 앞에서 뿐이다. 내 말이 여전히 귀에 거슬린다면 사람은 모두 평등하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일의 결과들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하면 어떨까. 모든 중국 음식점의 주방장들이 평등한 인간이라고 해서 그들이 만드는 자장면의 맛과 가격이 똑같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당신도 맛없는 자장면보다는 맛있는 자장면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동일노동, 동일임금?’ 좋~아 하시네; 비꼬는 말투로 읽어야 함.ㅎㅎ)

자. 이제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는 잊어버려라. 일의 질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두어라. 몇 년 후에 받게 될 대우에 걸 맞는 일솜씨를 지금 먼저 보여주어라. 부자가 아니라면 가진 것은 몸과 시간 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들을 바쳐 일의 질을 높여라.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생활을 잘하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 자체가 아니라 일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대가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여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대가가 충분치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곧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것이며 당신의 몸값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있다. 그 몸값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투자의 종자돈이 된다. 동료들의 야유와 시기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콩쥐를 시기하는 팥쥐는 언제나 있는 법이므로 철저하게 무시하라. 적어도 5년 후에는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사항; 1.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대가를 더 받기 힘든 일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2. 일하는 능력 보다는 아부가 더 우선인 집단들도 많다(규모가 크고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게 보이는 곳들인 경우가 많다).


12. 일의 종류에 따라 부자 되는 길이 다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재테크 기법이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재테크 기법은 달라져야 한다. 나는 이 세상의 일을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만 볼 때 다음과 같이 나눈다.

첫째,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봉급이 인상되는 일이 있다. 공무원이나 교사, 군인 등과 같은 직업이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데 본인이 노력을 많이 하여도 경제적 대가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비슷한 대가를 받기 십상이다. 승진 역시 공정치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 계발에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하는 일들은 그 집단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 경제적 가치가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너무 오래 있다 나오게 되면 다리의 근육은 이미 마비된 상태에 가까울 수 있으므로 홀로서기를 시도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일에 종사할 경우에는 젊었을 때부터 남에게 돈을 주고 시키는 일들을 직접 배워서 실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도꼭지 하나도 직접 갈 수 있어야 하며 옷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다(나는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데 내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닌 적도 있으며 내가 여자였다면 아마 내 옷은 모조리 직접 만들어 입었을 것이다). 그래야 지출을 줄일 수 있고 투자의 종자돈을 빨리 만든다. 재테크에 일찍 눈을 떠야 하며 빚을 지면 절대 안 된다. 젊었을 때 악착같이 절약하고 투자는 보수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다. 모험적 투자가 잘못 되었을 경우 그 손해를 만회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재테크를 통해 종자돈이 마련되면 부업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공격적인 투자 보다는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투자가 더 좋다고 믿으며 때문에 주식 보다는 부동산 투자를 권유한다.

둘째,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이지만 일에 대한 대가가 사회적으로 거의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일이 있다. 경비, 운전기사, 건설 노동자, 농부, 식당 종업원, 급사, 말단사원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초보자와 경험자가 받는 보수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큰 것은 아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과 연관된 모든 일들을 스스로 배워나가야 몸값이 올라간다. 즉 한 사람 몫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몫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주어진 것만 하면 절대 안 된다.

이를테면 아파트 경비라면 냉난방기 수리 같은 시설물 관리도 배우려고 노력하고 하다못해 이삿짐센터의 일하는 모습도 눈 여겨 보아두어야 한다. 식당 종업원이라면 주방장이 하는 일을 배워야 하고 주인이 경영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야 한다. 어느 인테리어 업체의 현장 책임자가 내게 부자 되는 길을 물었을 때 역시 나는 이렇게 답하였다. "벽돌공이 일을 할 때는 바로 옆에서 같이 벽돌일을 하고 미장공이 일을 할 때는 미장일을 같이 해라. 타일공, 전기공, 페인트공, 도배공, 그 누가 일을 할 때에도 그 일을 옆에서 배워 나가라. 적어도 어느 한 기능공이 갑자기 안 나왔을 때는 당신이 대신 일을 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 수준이 되었을 때 독립하라. 어느 회사에 신입 경리 여사원으로 입사한 독자가 내게 성공하는 법을 물어 왔을 때 역시 나는 이렇게 답하였다. “경리 업무 뿐 아니라 세무, 회계, 컴퓨터 실무에 대해서도 도사가 되어라. 당신이 없으면 회사가 마비될 정도로 일을 하고 지식을 쌓아라.” 주어진 일 이상을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재테크 보다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같은 일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이 늘어 날 수도 있는 일이 있다. 능력별 대우를 실시하는 회사도 이 부류이고 의사, 변호사, 학원강사, 건축사, 영업사원 등처럼 한 가지 지식을 계속 울궈먹는 경우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수입이 고객의 숫자에 비례하여 늘어나므로 무엇보다도 고객에게서 신뢰감을 받아야 한다. 나는 실력은 없이 면허증이나 자격증만 하나만 믿고 건방을 떠는 전문가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영업사원이라면 자기가 파는 물건에 대해 도사같이 알고 사용법은 물론 경쟁사 제품들도 귀신처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영업사원은 한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복사기를 파는 영업사원치고 복사기에 대해 귀신인 경우를 보지 못했고 지게차 영업사원 중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는 사람을 못 만났다. 하나같이 모두 그저 회사에서 준 교육 자료만 시키는 대로 달달달 암기해서 말할 뿐이다. 그렇게 교육시키는 회사들이 한심하다. 그러니 고객이 감동할 리 없고 직원들에게 일이 재미있을 리가 있겠는가?

전문직업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도록 만들어야 하므로 때로는 언론 플레이도 필요하고 고객이 갖는 이미지를 호전시키기 위하여 책을 직접 출간하는 일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수익창출을 직접 이룩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여야 몸값이 비싸진다. 일을 통해 종자돈을 마련한 뒤에는 전통적인 포트폴리오(현금, 부동산, 주식에 골고루 투자하는 것)에 따라 재산증식을 꾀하는 것이 좋다.

넷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 곧 경쟁자에 의하여 잡아먹히게 되는 일이 있다. 열심히 경쟁자를 따돌려야 하므로 일에 미쳐야 한다. 사업가, 장사꾼이 이 부류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경험이 중시되며 돈의 흐름이나 속성에 대하여서는 물론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여야 한다. 이런 부류의 일은 혼자서 시작하여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 나갈 수도 있으나 처음에는 다른 사람 밑에서 배워 나가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의 청계천 전자상가나 남대문 시장에서 점원으로 일하였던 사람들 대다수는 봉급 때문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을 배워 나중에 독립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였다. 경쟁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으나 경쟁자들을 따돌릴 줄 안다. 이런 일에 종사하려면 실제 전투에 하루라도 빨리 참가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사람들은 일 자체를 통해서도 큰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 번 돈을 갖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여 부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만든 주식을 공개하여 부자가 되기도 한다. 부자들은 대부분 이 네 번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의 사항이 있다. 한참 잘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알거지가 되는 경우 역시 이 부류에서 제일 많다. 사업이 기반을 잡으면 가족이 살고 있는 집만큼은 사업의 승패와 무관하도록 만들고 아예 없는 재산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사업체의 시재(cash flow)도 직접 챙겨야 한다. 특히 가장 잘 될 때가 가장 망하기 쉬운 때라는 것도 잊지 말라.

다섯째,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 영역이 조금씩 더 넓혀지거나 하던 일이 다른 일로 바뀌는 일이 있다.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봉급생활자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자기 몸값을 계속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 첨단 직종이나 컴퓨터 관련 직종의 경우는 물론 다른 일반 직종에서도 신입 사원 당시에 갖고 있던 지식수준을 계속 유지하기만 한다면 퇴출 대상 1호가 된다. 우선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귀신이 되면서 상급자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사장과 눈높이를 맞추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직장이라고 하여 등한시하면 절대 안 된다.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사회에 나와 독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우도 신통치 않으므로 부업을 생각하지만 부업을 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일이다. 회사에서 새는 바가지는 회사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일하는 것에 자신이 없으므로 자연히 손쉽게 돈을 벌 것 같이 보이는 다단계 판매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 손해 볼 것도 없을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봉급 이상의 수입을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회사에서건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 운영할 수 있는 부업을 마련하거나 준 기술직인 경우에는 같은 종류의 일을 인터넷을 통해 구하고 야간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테크 방법은 첫 번째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동일하다.


13. 좋아하는 일이라고 섣불리 하지 마라

윈스턴 처칠은 일요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꽤나 좋아하였기에 “내가 천국에 가면 최초의 백만 년은 그림을 그리며 지낼 작정이다”라고 까지 말하였다. 그는 심지어 피카소를 자기보다 더 아마추어라고 말한 적도 있다. JP 김종필 역시 일요화가였었고 르네상스 당시의 화가 르누아르의 소품 “장미”이외의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민자당 대표위원으로 있을 때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를 유예시켜 미술인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쟝 폴 사르트르는 전업화가와 일요화가의 차이를 예로 들어 전문성과 딜레탕티슴(아마추어리즘)을 명확히 구분했다. 예술을 취미로 좋아하는 애호가들로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예술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일요화가가 전업화가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본래 파리의 증권 중개사였으며 일요화가였던 폴 고갱이 그 예이다. 다니던 증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그의 그림은 친구 고흐의 그림들이 그랬듯이 팔리지 않았다. 아내와도 헤어지고 고흐와의 우정도 깨져버리자 그는 타이티에서 원시 그대로를 찬미하며 유럽의 물질주의를 경멸한다. 전직 증권 중개사이었기에 물질주의의 종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대표작 제목은“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이다.

앙리 루소(1844∼1910) 역시 가난한 하급 세관원 출신으로 본래 일요화가였다가 49세부터 비로서 전업 화가가 되었다. 화가가 되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은 전혀 받지 않았던 그는 단순한 색채와 뚜렷한 윤곽으로 밀림 속 온갖 식물들의 잎새 하나까지 다 묘사해 내었고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선구자가 되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일요화가였다가 전업화가가 된 사람들을 나는 행복한 사람들로 믿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전문으로서가 아니라 즐겨서 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취미라고 정의한다. 좋아하는 취미가 직업이 되어 먹고 살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보도 셰퍼는“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 Der Weg Zur Finanziellen Freiheit )에서“사람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게 되고 그런 일을 계속하는 한 돈도 벌 수 없다”고 말하면서“몰두하고 있는 취미를 바탕으로 경력을 쌓으라”고 추천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면 일요화가로서 경력을 쌓아가다가 나중에 전업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몰두하고 있는 취미를 취미 이상의 단계로는 끌어올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고, 심지어 특별하게 좋아하는 취미조차 없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지 않은가.

다행히도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상당히 많은 취미들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중학생 시절부터 음악을 크게 듣는 것이다(현재의 나 역시 클래식이건 팝이건 랩이건 가야금 산조이건 메탈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듣는 잡식성이다). 그래서 좋은 오디오를 갖추고 마음껏 음반을 사는 것이 희망이었다. 하지만 배고팠던 시절 내가 음악 감상을 좋아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음악다방 디스크 쟈키 뿐이었는데, 그 월급 가지고서는 10년을 모아도 마음에 드는 오디오 세트 하나 장만할 것 같지 않았다. 즉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평생 고생문이 훤해 보였다는 말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를 좋아하는가? 여행을 좋아하는가? 골프를 좋아하는가? 만화를 좋아하는가? 춤을 좋아하는가? 게임을 좋아하는가? 채팅을 좋아하는가?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하는가? 그 좋아하는 일의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고 자신이 그 일을 남들보다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가를 반드시 생각하라.
물론 경제적 대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 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미친 듯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타쿠(お宅)가 그들이다. 오타쿠는 원래 일본어에서 “당신, 댁”을 뜻하는 이인칭 대명사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는“이상한 것을 연구하는 사람” “별 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을 광적으로 즐기는 마니아 수준을 훨씬 뛰어 넘으며 특정 분야에서 고도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 당신이 오타쿠이건 마니아이건 취미 애호가이건 간에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다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첫째, 그 분야에서 정말 최고 일인자가 되는 길이다. 예를 들어 게임을 최고로 잘하면 ‘쌈장’같은 게이머나 게임 평론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수명이 길지는 못할 것이다).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한다면 방송국의 유명 해설자가 될 수도 있다. 술을 좋아 한다면 술을 마신 뒤끝을 평가하여 주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채팅을 좋아한다면 “외로운 밤, 채팅에서 헌팅하는 법”이라는 책을 쓰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여행을 좋아한다면 한비야처럼 미국에서 석사까지 받고 외국회사에서 근무 잘 하다가 서른다섯 나이에 불쑥 사표를 내고 7년 간 세계의 오지들을 여행한 뒤 그 경험을 책으로 펴낼 수도 있다(“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어느 분야에서든지 일단 일인자가 되기만 하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말이다(단, 대부분의 경우 그 생활 기간이 결코 길지는 않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오타쿠는 어떨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작사 가이낙스의 대표이사였던 오카다 토시오는 저서 “오타쿠”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에 미친 놈들”(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이 직업적 전문가의 길을 가려면 다음 세 가지 눈을 갖추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작품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작가의 센스를 포착하는 ‘세련된 시각’, 작품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구조를 파악하는 과학자의 시각인 ‘장인의 시각’, 작가의 눈과 작품의 디테일을 간파하고 스태프들의 정열과 갈등의 드라마를 보는 “통달의 시각” 하지만 말이 쉽지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언제나 1등은 한명 뿐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

둘째, 최고가 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오타쿠처럼 자기만족을 위하여 빠져 사는 길이다. 그러나 명심하라. 그저 여행이 좋아서 일을 저질렀던 한비야의 말을 빌면, 이렇게 살고자 한다면 “우선 삶의 설계 기준을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철저히 맞춰놓고 살아야 한다.” 또 “이 일을 하면 내가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하여야 하고 “언제나 자신감 있는, 당당한 삶의 태도”도 있어야 하며 “무소유를 즐길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즉, 대다수는 가난한 예술가들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으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가치가 약한 분야에서는 1등이 아닌 2등이나 3등은 대부분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다. 한비야가 말하듯이, 잘살지 못해도 좋다는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야 하는데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셋째, 길은 다른 일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마련한 뒤 그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는 길은 바로 이 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에서 여행비를 마련하여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김동주 치과의원 원장 김동주 역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 역시 오지 여행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십 몇 년간 1년에 한 달은 여행을 하였다. 그의 홈페이지 www.drkimsworld.com 에 실린 60여 개 국의 수 천 장의 사진 자료들과 텍스트 자료들은 장난이 아니며 동영상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이렇게 생업을 영위하면서 거기서 얻은 자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하다가 전문가의 경지에 다다르는 사람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나중에 하기 위해 일단은 먼저 돈부터 악착같이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배수아의 소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에서 여주인공이 그런 경우이다. 그녀는 33살의 독신이고 “죽도록 성실한” 직장인이다. 동물원 산책을 좋아하고 아프리카로 가서 야생동물을 돌보는 것이 꿈이기에 직장에서의 모든 것이 괴롭지만 월급을 모아가며 저녁마다 수의사 공부를 한다.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을 좋아하지만 “통달의 수준”과 “장인의 경지”에 이를 정도의 오타쿠는 아니라면 섣불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안 된다. 곧 춥고 배고픈 상태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서 내가 보기에는 그 분야에 재능도 별로 없는데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계속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특히 그래픽 디자인이나 만화 등과 같이 창조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조차 성실과 끈기 하나 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을 볼 때는 그 어리석음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물론 혼자서 살면서“무소유”를 즐기겠다는 각오가 서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한비야도 아직은 독신이다). 그러나 춥고 배고픈 것은 딱 질색이라면,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서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이 사회에서 대가를 주는 일을 찾아 하고 그 대가를 받아 좋아하는 것을 하는 세 번째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돈부터 벌라는 말이다.

음악 감상을 좋아하였던 나 역시 그 마지막 길을 택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하여 대가를 받고자 하였을까? 어느 특정 분야에 뚜렷하게 재능을 갖고 있지도 못했기에 구체적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반드시 무슨 무슨 일을 하여야만 한다는 어떤 의식은 물론 전혀 없었다. 그저 돈 많이 버는 일이면 되었다. 범죄 빼고는 일의 종류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14. 장사를 할 때의 자세

장사는 무엇이고 사업은 무엇일까? 나 나름대로 그 차이를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장사는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근거리 원내의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사업은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가 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설렁탕집을 개업하였다고 치자. 당연히 주된 손님은 인근 주민들과 그 식당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즉 고객의 활동 반경이 당신과 물리적으로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설렁탕집을 잘 운영한 덕에 소문이 나서 설렁탕 육수를 전국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치자. 이 경우 고객들의 활동 반경은 이미 당신과 지리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고 이게 바로 사업이다.
63빌딩에 있는 수많은 회사들을 생각하여 보자. 63빌딩 지하에는 수많은 상점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옷 가게들도 장사이고 식당들도 장사이고 고층부에 있는 고급 식당들도 모두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빌딩의 사무실 층에 있는 회사들은 어떨까? 그들은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나 변호사, 약사, 법무사, 관세사 등과 같은 전문 직업인들의 업종은 장사일까 사업일까? 그들의 활동 반경을 생각한다면 장사라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외국의 유명 병원들처럼 여러 곳에 분원을 설립하고 경영한다면 그것은 사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사는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가 곧 고객과 만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업장소가 된다. 때문에 위치가 중요하다. 음식점이나 옷 가게를 할 때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장사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 올 정도로 유명해졌다면 어떨까? 고객과 만나는 장소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장사에 속한다.

반면에 사업은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를 벗어나 고객과 만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내고 상품화 시키는데 있어 그 작업 장소가 허름한 지하 창고이어도 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업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 역시 지리적 장소를 벗어나므로 사업에 속한다. 사업이나 장사를 구분할 때 그 법적 구성 형태, 이를테면 주식회사인가 아니면 개인 사업자인가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아 두어라. 장사와 사업을 내가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이 정도로 그치고 이제 “장사를 할 때의 자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사업을 할 때의 자세는 별도로 다룰 것이다.)

장사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난 사실은 돈만 노리면 돈을 절대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수많은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는 말로 표현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른다. 경험한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진리이다.

“돈을 벌고자 하는데도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 아니 세이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이제부터 내 말을 똑똑히 새겨들어라.

당신이 아주 작은 식당 하나를 개업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돈을 벌어야 하므로 4천 원짜리 된장찌개에 들어갈 재료들의 원가를 생각할 것이고 한 그릇을 팔았을 때 남게 될 이득을 계산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찌개 몇 그릇을 팔아야 월수입이 얼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새겨들어라. “이득 = 판매가 - 원가”라는 공식을 믿는 당신의 그 식당은 장담하건대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당신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맛이다. 고객이 찾는 것은 맛있는 된장찌개이기 때문이다. 그 맛을 창출하려면 당신은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된장을 직접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깡통에 담긴 공장제품을 사다 쓰려고 하고 새벽에 시장에 가서 직접 신선한 야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다는 핑계로 납품업자에게서 받아다 쓸 것이다. 그리고는 원가를 생각할 것이다. 거기서 무슨 차별화가 생긴단 말이며 무슨 맛이 생겨난다는 말인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유명하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일부러 가 본적이 있었다. 내가 업소를 잘못 찾아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 유명 연예인들이 왔다 가면서 남겨놓은 낙서들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나는 고추장 맛부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면서 주방 쪽을 살펴보니 그 고추장은 공장 제품이었다. 나는 그 이후 그 동네를 가지 않는다. 안 되는 식당일수록 밥맛도 형편없는데 원가 절감 차원에서 싸구려 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고객들이 올 리가 없고 장사가 안 되지만 메뉴에 문제가 있는 줄로 알고 메뉴만 늘리면서 더더욱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빚에 쫓기게 되고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한심한 사람들….

당신 입맛에는 맛이 그럴듯한데도 안 팔린다고? 부자들이 보기에도 맛이 있을까? 명동칼국수로 유명한 명동교자에 가보라. 칼국수 하나를 만들어도 일단은 배부른 부자들이 먹어도 맛이 있다는 말이 나오도록 하여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먹었을 때만 맛있는 음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명동교자에서는 독특한 칼국수 맛을 보존하고자 명동에 있는 두 곳을 제외하고는 지점 설치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현재 나이가 50대인 그는 20대 말에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연간 매출 수백 억 원 대의 건실한 회사를 졸지에 물려받았다. 몇 년 후 그는 사업 영역을 부동산 개발 같이 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분야로 확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룸싸롱에서 젊은 여자들만 찾다가 급기야 30대 중반에 회사는 부도가 났고 결국 쫄딱 망하게 된다. 곧 이어 아내로부터는 이혼을 당하였고 자식들도 여자관계가 복잡하였던 아버지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에 원룸에서 혼자 사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왕년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넥타이를 메고 여러 친구들의 사무실 한 귀퉁이를 전전하면서 빌붙어 지내기를 근 10년간이나 하였다.

그러다가 마음을 겨우 고쳐먹고 몇 년 전 아주 작은 삼겹살 음식점을 월세로 개업하였는데 개업 6개월 정도 후 내가 방문하여 보니 인테리어고 뭐고 없었지만 손님이 미어 터졌다. 그 북새통 틈에서 나도 겨우 식사를 했는데 모든 음식의 맛이 아주 좋았다. 손님들이 오면 그가 주문을 직접 받았고 아르바이트 학생들과 함께 빈 그릇을 치우고 행주를 직접 들고 드럼통으로 만든 식탁을 치웠다. 손님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떴을 때 겨우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도 없고 자식들도 없으니 음식점에서 자면서 새벽에 봉고차를 끌고 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오고 음식도 직접 준비해 놓는 것이 그의 아침 일과였다. 주방장이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해서 그가 아침에 잔뜩 준비한 것들을 조리하는 것이었기에 평범한 아줌마를 고용하고 있었다.

나는, 부도 이후에도 계속 허황된 꿈만 꾸던 그가, 왕년의 생활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고 해 본 적도 없는 먹는장사에서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였다. 그의 답은 이러했다:

“친구들에게 얹혀 지내기를 10년 정도 하고 나니까 친구들도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넥타이를 풀고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뭘 하여야 할는지는 몰랐다. 삼겹살집을 하게 된 동기는 별거 없다. 이혼 후 자식들도 없이 혼자 살면서 근 10년 동안은 한끼 한끼를 대강 때웠다. 하지만 부도 전 까지는 서울에서 잘한다는 고급 음식점들을 거의 모두 다녔었으니까 뭐가 맛있는 것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찬밥에 김치로 밥을 먹다가, 왕년에 화려하였던 내 고급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가 만들어 팔면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고기를 사다가 직접 포도주에 숙성 시켜보면서 소스 개발도 시도하여 보았다. 몇 개월 노력한 끝에 내 입이 만족하는 맛이 나오게 되자 친구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3천만 원을 갖고서 월세로 식당을 개업했는데 이제는 세무서 걱정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여기서 들려주고자 하는 교훈은 이것이다: “먹는장사를 하려면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의 입에 맛있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고 팔지도 말아라. 배부른 부자들이 먹었을 때 맛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음식을 미리 미리 준비한 뒤에 개업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돈방석에 앉게 된다. 호떡 하나를 팔아도 맛을 연구하여야 하고 버터는 좋은 것을 써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맛을 추구하다 보면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당연하다. 이익이 별로 남지 않을 것이므로 종업원 인건비를 아껴야 하고 따라서 인건비가 나가지 않는 자기 몸을 코피가 터질 정도로 최대한 움직여야 한다. 몸이 좀 피곤하므로 직원을 고용하여 새벽시장에도 다녀오게 하고 그러면 안 되느냐고? 아니 없는 살림에 시작한 장사일 것이므로 가진 돈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어느 식당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려면 시간이 상당히 필요한데 무슨 돈이 그리 많다고 월급 까지 줘가면서 사람을 부리겠다는 말이냐.( 주방장을 고용하여 음식점을 하려고 한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멍청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른 바 먹는장사를 예로 삼아 설명하였지만 다른 장사들에서도 그 원리는 그대로 통용된다. 무슨 장사를 하건 간에 우선은 월급을 많이 안 줘도 되는 당신 자신의 몸을 24시간 굴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 주변의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다. 경쟁자들은 자기 인건비, 종업원 인건비, 투자비용 등등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오버헤드 코스트(overhead cost)가 당신에게 있어서는 거의 최저 수준이 되고 그 대신 고객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소문은 반드시 나게 되어 있다.

물론 그 소문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무슨 사업이건 장사이건 간에 1, 2년 동안은 이를 악물고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개업 이전에 준비가 철저하여야 함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다. 원가고 나발이고 오로지 고객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야 한다. 고객 한명 한명이 너무나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개업 초기에 오는 손님들에게서 외면을 받는다면 조만간 당신은 쪽박을 차게 된다. 단 한명의 고객도 소홀히 대하지 말라. 그렇게 하다 보면 고객들이 신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손님이 줄을 선다. 그때부터가 돈이 들어오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재료 구입량도 많아지기에 원가도 절약된다.

함흥냉면으로 유명했던 종로5가 시계골목에 나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주인이 바뀌면서 맛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렇고 그런 식당에서 주인들은 저녁에 가게에서 TV연속극을 보고 있다.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결론을 내려 보자. 어느 장사이건 사업이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하며, 초기에는 당신이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생각을 가져야만 성공한다.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자 장사나 사업을 하고 싶다고 혹시라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장사니 사업이니 하는 것들은 까맣게 잊어 버려라. 자유시간? 휴식시간? 그럴 시간이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장사고 사업이니까 말이다.

아울러 고객이 왜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라.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여야 충족시킬 수 있는지 만을 연구하여라. 처음에는 힘들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믿어라.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늦어도 3년째부터는 돈이 쌓일 것이다. 절대로 “이득=판매가-원가”가 아님을 명심해라. 이득은 “고객의 신뢰도x 고객수”임을 결코 잊지 말아라.


15. 사업을 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사업을 할 때 가져야 할 자세는 상당부분 장사를 할 때의 자세와 공통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하여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폼 잡으려고 하지 말라. 수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고자 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에 그럴 듯한 사무실을 꿈꾸면서 사장실이라고 써 붙인 별도의 공간도 갖기 원한다. 나의 강력한 조언: 절대로 폼 잡는 짓 하지 말라. 사무실은 일하는 곳이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일하면 좋겠지만 사업 초기에 그럴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손님도 올 텐데 그래도 좀 꾸며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짓은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사업 방식일 뿐이다. 수십억 수백억 자본이 있어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는 안다. 벤처 바람이 불면서 테헤란에 몰려들었던 수많은 업체들 중 상당수가 월 임대료로만 수천만 원씩 납부하다가 결국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 1년에 3백 개 이상의 기업을 방문, 그 전망을 판단하고 투자한다는 일본 최고의 펀드 매니저 후지노는 2000년 2월 週刊文春에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높이 1m 이상의 관상식물, 니스 칠한 나무 그루터기, 동물 박제, 고급 술, 유명화가의 그림, 골프채, 우승 트로피, 저명인과 찍은 스냅 사진 같은 것들 중 4가지 이상이 사장실에 있으면 볼 장 다 본 회사이므로 투자를 삼가라. 또 사장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금빛 찬란한 호화시계를 차고 있어도 주의가 필요하다. 사장이 저명인과 친하다고 은근히 내비치거나 자랑하는 회사, 업적부진을 경기나 정부 탓으로 돌리는 회사, 화장실이 더러운 회사, 지나치게 예쁜 안내원이 있는 회사, 요정에서 손님 접대하려는 회사 등은 투자해봐야 별 볼일 없거나 망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후지노가 갖고 있는 판단 기준과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예를 들면, 중소기업 사장이 골프에 미쳐 있거나 제조업체 사장의 사무실이 호사스럽다거나 한다면 일단은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나의 경험담: 임대료가 싼 곳을 찾다 보니 옆 건물과의 거리가 1미터도 안되기 때문에 햇빛이 전혀 안 들어 지하실이나 다름없는 곳을 빌려 사용하였던 적이 있다. 책상 구입할 돈을 아끼려고 조립식 철제 앵글을 직접 사다가 책상 모양으로 조립하고, 그 위에 베니아 판을 잘라 책상처럼 만들고 다시 그 위에 흰 비닐을 깔아 놓았다. 내가 만들기 힘든 사무용 가구들은 모두 중고로 구입했는데 나중에 우연히 책상 밑을 보니 부적이 붙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쓸 스템플러들은 청계천 벼룩시장(내가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하면서 양은냄비 동태찌게를 사 준 곳이다)에서 미제 중고를 한 개 1천 원씩에 샀었다.

아, 물론 내가 발표하는 모든 글들이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즉 내가 한번은 넘어져 보고 난 뒤 알게 된 사실들임을,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들은 아니었음을, 독자가 짐작하고 있다면 나 역시 한때는 화려하고 폼 나는 사무실에 눈이 멀었던 적이 있었음을 눈치 챌 것이다. 30대초에 시청 옆 서소문 한복판에 있는 폼 나는 빌딩에서 거들먹거렸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돈 벌어서 모두, 그 멋진 빌딩을 소유한 회사에게 갖다 바치고 있음을 깨닫고는 즉시 사무실을 옮겼는데 그 규모를 5분의 1 정도로 줄였으니 내가 얼마나 공간을 줄였는지 짐작 할 것이다.
어쨌든 내 방의 벽을 투명 유리로 만들고 직원들이 나를 볼 수 있게 한 시절도 10년 이상 된다. 화려한 소파? 그런 거 나는 모른다. 외국계 회사의 경영을 맡기 시작했을 때 구입한 소파조차 중고품이었다. 나는 소파 보다는 회의용 탁자를 더 선호한다. 당신도 사업을 구상한다면 그런 자세로 해라.

둘째, 내가 수없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준비가 철저하여야 한다. 30년 이상 만남이 없었던 고교 동창 한명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뭔가 물건을 팔고자 하는 목적이었지만 그는 내게 동창으로서 조언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점심을 함께 하면서 그는, 대기업을 서너 곳 다니다가 2년 전 쯤 퇴직하였고, 곧 캐나다 이민을 가서 오퍼상을 하고자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캐나다에서 좋은 물건들을 찾아 내 한국에 보내면 유통을 맡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대화 내용:

“회사 다닐 때는 뭐 했었니?”
“XX회사에서 XX 담당이었지.”
“그런데 오파상을 하려고 한다고?”
“그래. 오파상이나 해보려고.”
“영어는 얼마나 하니? 토익이나 토플 본 적 있니?”
“토익은 대학교 다닐 때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형편없지 뭐.”
“회사 다니면서 영어 공부한 적 없니?”
“없지 뭐.”
“회사 다니면서 학원 같은 곳에 다닌 적 있니?”
“아니.”
“회사 다니면서 책은 주로 뭘 읽었니?”
“역사 소설을 좀 읽었지.”
“최근에 오파상에 대해 공부한 적 있니? 무역업무 관련 서적을 읽었거나 학원에 다닌 적 있니?”
“아니, 이제 해야겠지, 뭐.”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식사를 중단하고 수저를 팽개치다시피 내려놓았다.

“야, 이 10새끼야. 내 이야기 똑 바로 들어라. 나는 너 같은 새끼가 제일 싫다. 얼마나 싫어하냐 하면 이렇게 밥을 같이 먹다가도 지금껏 먹은 것 모두를 네 면상에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싫다. 이 18놈아, 현재까지 노력이라고는 개뿔도 안하고 살다가 이제 와서 ‘오파상이나’ 해보려고 한다고? 야 이 10새꺄. 오파상이나? 오파상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냐? 하다못해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공부할 게 많은 데 무역에 관한 책 한 권 안 본 새끼가 ‘오파상이나?’ 너, 미친 새끼 아냐? 영어도 좃도 못하는 게 이민을 가서 오파상이나 하려고 한다고? 캐나다 사람들이 영어도 좃도 못하는 네가 뭐 이쁘다고 너를 파트너로 삼는다는 말이냐? 너를 호구로 알고 그냥 재고품 처리하는데 이용할 테고 그런 쓰레기 더미들을 나보고 팔아달라고? 이 쌍놈의 새꺄. 내가 네 똥꼬나 닦아 줄 사람으로 보이냐? 너 같은 새끼는 이민 가서 10년 정도 칠면조 도살장이나 다니면서 칠면조 똥집이나 만지고 살아야 정신을 차릴 놈이다, 이 쌍놈아. 그런 개떡 같은 정신 자세로 얼마 전 까지 회사를 다녔다는 게 정말 신통방통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자, 독자들은 내가 뭘 말하는지 이미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언젠가 어느 독자(고시 출신의 공무원)가 미국에 가서 세탁소를 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준 조언은 지금 당장 우리나라 세탁소에 가서 인부로 일하라는 것이었다. 그게 사업이건 장사건 처음에 가져야 할 자세이기 때문이다.

셋째, 공부는 하되, 경영 관련 서적들의 내용을 섣불리 받아들이지는 말아라.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의 많은 수는“사업 = 경영”이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수많은 유명 경영자들이 저자로 표기된 책들을 읽는다. 실제로 대학이나 대학원의 경영학과에서 배우고 있는 많은 사례들 역시 유명 기업들과 그 경영자들에 대한 스터디이다.

당신이 사업을 꿈꾸고 있거나 사업을 이미 진행 중이라면 먼저, 유명 경영자들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책들의 대다수는 그 경영자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대필 작가들이 쓴 것이라는 사실을 뼈 속 깊이 명심하여라. 이것은 국내 경영자이건 해외 경영자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런 책들은 거의 모두 유명 경영자가 몇 시간 말한 것들 혹은 간략히 기록한 것들을 어떤 전문적인 대필 작가가, 그 경영자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보충 설명을 취한 뒤 그럴듯하게 조합, 각색, 창작하여 포장한 뒤 출판한 것들이다.

때문에 듣기 좋은 말들은 물론 예쁜 꿈과 이상들이 “아주 잘”(때로는 “대단히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책들이 실제 상황을 그대로 여과 없이 기록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즉 그 책들은 사업과 경영에서 어느 한 면 만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이지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으며 특히나 실전에서 부딪히는 여러 종류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내가 이 삼 십대에 누군가가 내게 그 사실을 귀뜸이라도 해 주었었다면 나는 상당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가정법과거완료).

또 하나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각종 경영학 관련 서적들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훌륭한 사례들을 있는 그대로 당신이 적용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MS, GE, HP, SONY, TOYOTA 등등의 사례들을 사업을 이제 시작하려는 당신이 신주 단지처럼 신봉하였다가는 큰 코 다닌다. 왜냐하면, A 라는 업종에서 a 라는 회사가 이룩한 성공적 경영 사례라고 하여, 같은 업종이기는 하지만 a 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회사에서도 그것을 따라 한다거나, 또는 B 라는 업종에 종사하는 회사에서 적용하고자 한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대중들(특히 청년기의 사람들이나 직장인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툭하면 어떤 회사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성공했다는 것에 사로잡힌다. 기억해라. 그 방법과 정 반대되는 방법으로 성공한 경우도 분명 있으니까.


16. 사업을 할 때 알아야 할 것들 (2) - 사람관리

넷째, 사람 관리이다. 장사에서 인건비를 줄이려면 당신이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혼자서 별 걸 다하여야 한다고 했다. 사업에서도 그 원칙은 초기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장사이건 사업이건 간에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직원을 어쩔 수 없이 채용하여야 한다. (물론 직원은 한명도 없이 외부 인력을 일당제로 고용하여 수년간 사업을 하여 온 사장도 내 주변에 있는데 사무실 조차 없지만 건설 회사들을 상대로 위생설비 공사를 꾸준히 도급 받아오고 있다.)
그런데 직원은 어떻게 채용하여야 하며, 또 월급은 얼마나 주어야 할까?

먼저 사람을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를 생각하여 보자. 당신으로서는 능력 있고 똑똑한 경력 직원을 뽑고 싶겠지만 뒷돈이 많지 않은 한, 사업 초기 단계에서 그런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 직원도 없고 사무실도 초라하고 일을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 작은 회사에 당신 같으면 취직하고 싶겠는가?

사업을 친구나 선배, 후배 등과 함께 하면 어떻겠느냐고? 착각하지 마라. 일이란, 같이 하여 보기 전 까지는 그 능력을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같이 놀러 다니며 술도 같이 마시면서 정을 키워 왔고 그러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를 알고 있기에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일의 본질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당신의 무지를 보여 줄 뿐이다.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가 모여 사업을 하여 성공을 하게 되는 경우는 주로 그들 모두가 “일단은 이 사회에서 학습능력이 검증된 경우”이다. 즉 참여자들 모두가 머리가 좋다는 것이 이미 학벌로 입증되어 있는 경우이거나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함께 해 본 경험을 공유한 동료들이 뭉친 경우이다. 군대 동료나 선후배는 어떨까? 잊어버려라.

어쨌든 내가 사업 초기에 취하였던 원칙은 대강 아무나 뽑는 것이었다(사업 초기에 한한다!). 아무나 뽑아서 어떻게 일을 시키느냐고? (소형 톱니바퀴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주켄 공업은 그 인력 관리 방식이 “선착순 채용, 명예퇴직 없음, 출퇴근시간 없음, 학력, 경력 등 채용기준 없음”이다. 서점에“주켄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으므로 경영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보기 바란다.)

사업 초기에 내가 언제나 써온 방법은 이러했다. 우선은 내가 북을 치면서 북치는 방법을 어느 정도 배워 놓은 뒤 적당한 사람을 뽑아 그 방법을 그대로 가르쳐 준다. 그래서 북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나는 장구를 치고, 그러다가 내 장구 소리가 궤도에 오르면 장구를 칠 사람을 뽑는다. 내가 나 스스로 전혀 일해 보지 않은 분야에서 사람을 뽑은 경우는 운전기사뿐이었을 정도로 나는 일단은 내가 먼저 해 보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을 때 사람을 뽑았다는 말이다. 내가 왜 그렇게 하였을까?

다른 사람을 고용할 때 당신이 모르는 것을 대신하여 줄 사람은 인건비가 비싸다. 하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하여 줄 사람의 인건비는 언제나 전자의 경우 보다는 싸게 책정된다. 즉 당신의 지식 부족을 메꿔 주는 데 사용되는 인건비는 당신의 시간 부족을 메꿔 주는 데 사용되는 인건비 보다 언제나 높게 책정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경리 업무에 대하여 백지라면 경리 직원을 뽑을 때 당연히 경력자를 뽑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사업 초기에는 할 일도 많지 않을 것이기에 다른 여러 가지 잡무들도 함께 처리할 것을 당신은 요구할 것이고 봉급도 넉넉하게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곧 그 경리 직원은 불만에 가득 차게 되고 기회만 생기면 사표를 내고자 할 것이지만 당신은 그 직원이 매일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것 같이 보여 아주 못마땅해 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일단은 기초적인 경리 지식을 혼자서 공부하고 최소한의 전표처리 등을 직접 하여 본 뒤 적어도 간단한 장부 정리라도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을 갖추었다면 막말로 아무나 채용하여도, 가르쳐 가면서 일을 시킬 수 있게 되고 그 직원이 하는 일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게 된다. 직원 입장에서는 일을 배워가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직원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관련 업무 지식을 자발적으로 증가시켜 나갈 것을 기대하지는 말아라. (하지만 혹시라도 그런 직원을 만났다면 봉급도 처음 약속한 것 보다는 대폭 올려주고 절대 놓치지 마라. 시키는 일만 하는 어중이떠중이 2~3명 보다는 그런 사람 한명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한 사람 봉급을 100이라고 할 때 150을 주면 된다.)

결국 사업 초기의 직원 고용의 핵심은, 반복적인 일을 대신 할 사람을 구하라는 것이지 두뇌를 빌릴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명심해라. 사업이건 장사이건 간에 그 초기 단계에서 당신이 모르는 일을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시키려고 하면 그 인건비는 생각보다는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당신은 전혀 판단하기 어려우며 그저 그 사람이 보고하는 말에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원칙은 외주(외부 발주)를 할 때도 그대로 통용된다.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원목으로 만드는 야외 데크 공사를 외부에 발주하였던 적이 있다. 데크 공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들이나 목수들에게 물어보면 평당 40~50만 원선을 달라고 한다. 이런 업체나 전문 목수들에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원목 데크에 대해 아는 바가 있지 않는 한, “좀 싸게 안 됩니까?”가 전부이다.

그런데 내가 목재를 사다 주고 목수를 도급제로 고용하면 얼마나 소요될까? 목재? 어떤 목재? 방부목? 어떤 방부목? 무슨 나무로 만든 거? 어떤 식으로 방부 처리된 것? CCA 처리? 그게 뭔데? 어떤 사이즈? 어떤 등급? 데크 판넬은 무슨 나무로? 방키라이? 말라스? 그게 뭔데? 못은 뭘 써야지? 아연도금? 전기도금? 길이는? 연결 금속은? 원목에는 뭘 칠해줘야 한다는데 그게 뭐지? 스테인? 종류는? 그나 저나 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장선, 그게 뭐지? 뼈대라고? 얼마 간격으로 그 뼈대를 놓아야 하지? 그나저나 그 나무들은 어디서 구입하는 건데? 목수는 어디서 구하고? … 자, 이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당신이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게 되면 비용은 얼마나 절약될 수 있을까? 절반 정도면 된다. (그런 지식을 흡수하는 원천이 된 인터넷에 감사하라. 아울러 인터넷에서 쓸 만한 정보는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음도 알아라. )

왜 그럴까? 당신이 모르는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면 상대방의 지식을 돈으로 사는 셈이 되고, 당신이 알고 있는 일을 부탁하게 되면 상대방의 시간과 경험적 숙련도만을 구입하는 셈이 되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업이나 장사 초기에 뒷돈이 별로 없는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단순 대행하여 줄 사람이다. 그래야 인건비가 싸다. (그리고 당신이 먼저 알아야 하므로 당신은 도대체 주말에도 놀 시간이 전혀 없게 된다는 것도 명심해라.)

사업 초기에는 설령 제 아무리 뒷돈이 많다 할지라도 정말 유능한 직원들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입사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입사 희망자들에게 회사와 개인의 미래를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유능한 직원들을 채용할 수 있겠지만 사업 초기에는 그런 것이 없지 않은가. 결국, 당신이 모르는 것을 대신해 줄 사람을 뽑는 시점은 사업이 궤도에 오른 단계에서부터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사업 초기 단계와 그 사업이 궤도에 오른 단계, 성장 단계에 따라 사람 관리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내가 사업에 관록이 붙은 후에 알게 된 사실들:
1)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실제로 그 사람에게 일을 시켜 보기 전 까지는 전혀 가늠하기 어렵다. 이른 바 스펙이라는 것이 제 아무리 화려하여도 일은 엉망으로 하는 직원들이 반드시 있으며(주로 성실한 “범생이”가 많고 암기에 강하다), 스펙은 별 볼일 없는데도 일은 아주 탁월하게 잘하는 직원들도 있기 때문이다.

2) 불알 두 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모든 여자들 보다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믿는 웃기는 남자들이 꽤 많지만 그런 남자 10명을 합친 것보다도 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여자들도 가끔 눈에 뜨였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경험이지만, 그런 능력 있는 여자들 중에서 남자들이 첫눈에 반하게 될 정도로 외모가 뛰어난 여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3) 상당히 많은 여자들이 직장에 대하여 낭만적, 혹은 동화적, 혹은 영화적 환상을 갖고 있으며, 남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폼 나는 일만 하게 되는 걸로 오해하는 경우도 꽤 된다.

4) 일을 잘하여 승진을 시켰더니 예상 외로 쩔쩔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그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말이다.

5) 친구나 가까운 친척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절대 아니다. 일을 못해도 그 사람에 대해 아무도 당신에게 조언하지 않을 것이고 직원들 대다수는 일을 잘하는 것 보다는 사장 개인과의 혈연이나 인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6) 큰 조직에서 일했던 간부는 가능한 채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입사 후 얼마 뒤 자신을 보조하여 줄 직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할 텐데 그 말은 곧 자기 자신이 사실은 실무를 잘 모른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

7) 직원이 자라난 가정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가 되는 가정환경은 집안이 콩가루이거나 이혼 가정이 절대 아니고, 오히려 넉넉한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귀하게 자라나 일하는 근성이 없는 경우이다.

8) 해고는 절대로 마음대로 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사표는 아무 때나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 ….등등

이제 월급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자. 사장인 당신이 직원들에게 아주 넉넉한 인건비를 지불하고자 한다면 당신 호주머니가 얇아 질 것이다. 반면에 직원 인건비를 엄청 짜게 지불한다면 당신 호주머니가 불룩해 질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그런데 당신이 사업이나 장사를 하려고 한 목적이 뭔가? 우선은 돈을 좀 벌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 이 사실을 예쁘게 포장하여 듣기 좋게 말하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마라. ) 직원들에게 돈을 펑펑 주다 보면 당신 호주머니는 언제 불러진다는 말인가? 반면에 직원들에게 정말 쥐꼬리만큼만 주게 되면 직원들이 수시로 사표를 낼 것이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 따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인건비 문제는 이처럼 당신이 갖게 될 이득의 크기와 직결된다. 직원이 10명이고 그들 모두의 월급을 각각 20만원만 더 낮춘다면 200만원이라는 돈이, 1년이면 2천4백만 원이라는 돈이, 당신 호주머니 속으로 더 굴러들어오게 되지 않는가. 경영학에서 말하는 인사관리법이라는 것도 사실 별 것 아니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모든 인사관리법의 핵심은 결국, 직원들에게 나가는 돈을 최소한도로 하면서도 최대의 이득과 최고의 능률을 얻어내는데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사장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직원들의 월급은 계속 쥐어짜기만 한다면 경영자로서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스쿠루지 영감이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인간상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은 시작 단계이므로 조금만 받아가고 나중에 회사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많이 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글쎄다. 주식이라도 나눠주고 법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한, 내가 볼 때 사람이란 원래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므로 사장 호주머니부터 먼저 불리고 싶어질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장들 치고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특히 대부분의 직원들은 10년 후의 금송아지 보다는 지금 당장 남들 보다 더 많은 월급과 더 좋은 복지제도를 원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사장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월급만한 값어치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 마련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래서 내가 내렸던 결론: 월급을 주는(혹은 결정하는) 사람과 월급을 받는 사람 사이에는 영원한 계곡이 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갈등을 불러 일으켰었다. 가난한 직원들을 도와주고도 싶었지만 나 자신도, 아니 나부터 먼저, 부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자, 새겨들어라. 작은 회사의 사장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직원 월급은 겨우겨우 남들 주는 만큼만 주지만(또는, 그렇게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직원들과 정말 허물없이 지내면서 김장도 같이 하고 목욕도 같이 다니며 소주도 자주 마시는 그런 “동양적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의 사장처럼 행동하지는 않지만 직원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입술로만 즐겨 하는”(즉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만 골라 하는) 사장들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이다. 성경에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있다면 보물도 가야 한다는 말인데 사장의 보물은 입술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장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돈이다. )

세 번째 부류는,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최소한도로만 주고 직원들과의 “동양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전혀 관심이 없거나 직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즉 철저하게 부속품으로만 생각하는 그런 사장들이다.

네 번째 부류는, 직원들에게도 넉넉하게 대우를 하면서 직원들과 정을 쌓아가며 “동양적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경우이다. 아시아에서는 이런 CEO들이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들에서는 사장이 직원들과의 “동양적 인간관계”를 유지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큰 관심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자, 당신이라면 어떤 사장이 되고 싶은가?

언론에서 자주 훌륭한 경영자로 등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정작 그 직원들에게서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안다. 내가 경영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회사들이 몇 개 있다. 어느 날 그 중 한 공장장이 내게 하급 직원들로 인해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하였다. 그 하급 직원들은, 내 표현방식으로 말한다면 정말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나는 공장장에게 물었다. “자네, 저 직원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내게 말해봐. 저들도 열심히 하면 자네 위치만큼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돼? 아니지? 아무리 저들이 일을 잘해도 못하는 직원들하고 봉급 차이가 별로 없지? 이 회사에서 주는 인건비도 다른 회사들과 대동소이하지? 그렇다고 뭐 특별한 복지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실들을 저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마당에 자네가 소리를 지르고 악악거린다고 해서 저들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돈과 지위를 위해 일하는 것만은 아니야. 돈과 지위를 보장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두 가지를 제공해 주어야 돼. 하나는 인간적 관계야. 동생처럼 형처럼 대하면서 발가벗고 목욕탕에서 등도 밀어주며 관계를 만들어가야 해. 술자리도 자주 가져야 하고 자네는 주로 듣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법이야. 자기 자신이 하나의 부속품이 아니라 인격체라는 것을 느끼도록 배려하라는 말이야. 또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보람이나 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해. 어려운 과제를 주고 해결하게 한다거나 교육을 시키라는 말이야. 그런데 그 교육이 회사에 도움만 되는 일방적인 것이 되면 절대로 안 돼. 개인의 삶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야 해. 그래야 일할 맛이 나게 되는 법이야.”

이제 사장의 입장에서 직원들과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나는 주변의 경영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소기업 수준의 제조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아내를 잘 만나야 한다. 제조업은 기본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다. 인건비를 넉넉히 지급한다면 회사에 남는 게 없고 사장이 먹을 떡이 작다. 그러므로 인건비는 그저 남들 주는 만큼만 주게 되는데 직원들 입장에서 볼 때는 다른 곳으로 옮겨도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애사심도 없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른 바 인간적으로 서로 얽히고 설켜야 하는데 결국 사장 아내가 공장에 와서 돼지고기라도 구어주고 사장이 직원들과 목욕도 자주 하고 소주도 마시며 잘 어울려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사장 가족과 직원들 가족이 서로 상대방 부엌 숟가락 개수도 알 정도가 되어야 인사 관리가 순조로운 법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 사장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게 되면 직원들 중 일부는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서 사장만 잘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 즉 차 하나를 사더라도 직원들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어쨌든, 여러 직원을 둔 사장이 직원 각각과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 유지시키고자 한다면, 퇴근 후에 직원들과 식사도 자주하여야 하고 술도 같이 마시며 노래도 불러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되는 시간은 직원의 수가 수 십 명만 되어도 거의 매일 있게 되고, 그 결과 사장 개인의 가정생활은 거의 사라져 버린다. 즉 애들이 학교는 잘 다니는지, 아내(혹은 남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등등 전혀 모르게 되어 결국 집은 마치 하숙집 같이 그저 잠만 자고 나가는 그런 장소로 전락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당신이 왜 사업을 하려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돈 좀 벌려고 아닌가. 왜 돈을 벌려고 한다고? 가족과 행복하게 살려고 아닌가. 그런데 직원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가족과의 행복은 언제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내가 취한 방침은, 일단은 최소한도의 인원만 채용하고 그들에게 남들 주는 만큼 이상을 주되 “동양적 인간관계”는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즉 사업 초기에 채용하게 되는 직원의 월급을 가장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은 이른 바 “시장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비슷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주는 월급 수준에 따르라는 말이다.( 실제로 이런 방식은 한국에 지사를 세우는 외국 회사들 대부분에서 채택되는데 그들이 참고로 하는 봉급결정 참고자료가 주한 외국 상공 회의소들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된다. )

하지만 그것도 햇수를 넘어가게 되면 직원들이 봉급 인상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에 회사의 이득이 점점 더 많아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즉 매년 사업이 성장하고 이득이 증가된다면 그만큼의 열매를 직원들과 나눠 가져갈 수 있겠지만 매출이 증가하지 않고 이득도 증가하지 않는다면 봉급 인상은 어렵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산업화시대의 산업 성장기에는 수많은 기업들이 초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기에 세월만 지나도 월급을 올려줄 수 있는 연공서열 방식의 임금 정책이 통할 수 있었으나 그런 기업들이 이미 기반을 잡고 있는 산업화시대 말기 및 정보화시대에서 내가(혹은 당신이) 소규모로 뭔가 벌린 일이 계속적인 수익뿐만 아니라 그 수익의 규모가 매년 증가되지 않을 경우 결국 내부적으로 직원들은, 그리고 사장도, 갈등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17. 사업을 할 때 알아야 할 것들 (3) - 사람관리

그 문제의 해결책은 너무나도 뻔 한 것이었는데 수익을 더 많이 창출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경쟁사들이 뻔히 있는데 가격을 더 올린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직원들에게 솔직히 토로하고 해결책을 제안하였다.

첫째, 광고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입소문이라는 것을 믿어라.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입소문이 나게 하려면 어쩌다 찾아 온 고객의 신뢰를 철저히 받아야만 한다. 고객의 신뢰는 감동에서 나온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법은 간단하다. 약속은 남들 하는 만큼만 하지만 실제로는 그 약속 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면 된다. (고객의 신뢰를 받는 법은 별도 항목에서 다룰 것이다. 내가 방송 음향기기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토요일 오후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A/S 접수가 들어왔다. 월요일에 직원을 보내겠다고 내가 말했을까? 아니다. 즉시 직원들 중 동원 가능한 인원을 수배하여 함께 광주로 가서-고속도로에서 쉬지도 않았다- 수리를 해 주었다. 후에 그 고객은 내게 다른 고객들을 부지기수로 소개하여 주었다.)

둘째, 경쟁이 없는 것들을 새롭게 찾아서 들어간다. 남들이 볼 때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로 한다는 말이다. 폼 나지 않는 것들에는 천재들이나 큰 회사들이 들어오지 않으며 일류대 출신도 오지 않는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들어올 뿐이므로 우리가 열심히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경쟁이 약할 때 최대로 수익을 창출한다. (나는 원가 5만 원짜리 기계장치를 만들어 50만원에 정신없이 판적도 있는데 나 밖에 그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 업종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 업종을 버리거나 또는 현상 유지만 하게하고 다른 업종을 추가한다. 기존 업종에서 오버헤드 코스트(직원 인건비 같은 필수적인 운영비)를 커버하게 되면, 새롭게 들어가는 업종에서 우리의 오버헤드 코스트는 제로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가게 될 새로운 업종의 경쟁자들은 오버헤드 코스트를 그 업종에서 마련하여야 한다. 당연히 우리의 가격, 품질, 서비스가 그 경쟁자들보다 더 좋을 것이며 따라서 1년만 원가 박치기를 하면 고객을 휘어잡을 수 있다. 고객의 신뢰가 확보되면 이득이 없는 과거 제품은 퇴역시키고 이득이 있는 신제품을 내 놓는다.

넷째, 오버헤드 코스트를 최대한 낮추어야 하므로 신규 인력의 채용은 최대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 직원들이 새 업종의 업무도 맡아야 한다. 즉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수익이 늘어나게 되면 그 수익은 직원들에게 돌아간다. 즉 직원이 개인적으로 투 잡(two jobs)을 갖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투 잡, 쓰리 잡을 만들어 나가면서 수익을 증대시킨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부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다섯째,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는 다소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겁내지 말라. 그 두려움은 지식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일 뿐이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나도 모르면 배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며 결국 능력개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부해라.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하는 사업은 기껏해야 책 한권의 지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진리로 믿어라.

여섯째, 한정된 시간에 복수의 일을 하려면 효율이 높아야 한다. 효율을 높이려면 끊임없는 업무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개선을 생각해라. 6개월간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개선을 못하게 되면 일에 치이게 된다. 컴퓨터 활용 능력은 업무개선을 꾀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지식임을 명심해라.

일곱째,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라. 예를 들어 사내 결재 보고 혹은 회람 목적의 모든 문서 작성에는 절대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라. 그저 텍스트만 입력하면 되며 문서를 보기 좋게 꾸미는 따위의 짓은 절대 하지 말라. 심지어 이면지에 볼펜으로 전혀 예쁘지 않게 끌쩍거려 올려도 전혀 상관없다. 회사 내부 결재를 받기 위해 결재 서류를 폼 나게 꾸미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파워포인트로 작성하는 것은 오직 외부용뿐이다.

여덟째, 각자가 개별적으로 지식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노력과 시간을 축소시키려면 자신이 알게 된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업무 메일을 관련자 모두가 송수신하여야 하면서 배워야 한다. 이게 지식 공유이고 지식 창고이다.

아홉째, 전체 회식이나 단합대회, 운동회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도대체 밥을 같이 먹고 술을 같이 마셔야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로 일을 하고 지식으로 일을 하자. 회사가 회식도 없어서 삭막하다고 생각되면 사랑이 충만한 종교 단체로 가서 사랑을 듬뿍 느끼며 거기서 평생 살아라. 다만 부서별 회식은 아주 가끔씩 할 경우 허용하지만 개지랄 떠는 술판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술은 절제하며 마셔라.

 


세이노의 가르침
5장. 돈의 성질과 돈에 대한 마음가짐


1. 돈에 대한 위선을 버려라

돈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대단히 이중적이다. 어느 종교에서는 돈이라는 말 대신에 물질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신성한 장소에서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기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돈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상스럽고 천하게 여기는 태도는 우리 사회 어디서나 나타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식의 초월적 가르침도 있고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를 베면 행복한 것”이라는 식의 안빈낙도가 교육의 한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이 사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깨끗하고 청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작가출신 정치인 김홍신의 말처럼 이 나라는 한 푼이라도 서로 더 빼앗기 위해 “서로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고, 그러한 탐욕으로 인해 한국의 부정부패지수는 에스토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등보다도 더 낮은 48위이며(국제투명성기구 2000년도 발표) 전 세계 수출주도 국가 19개국 가운데 한국의 뇌물공여지수는 최하위인 18위에 머물고 있고, 떡값과 리베이트가 어느 곳에나 만연하여 있다. 돈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상한 모순을 보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J.크놀린의 소설 ‘천국의 열쇠’는 두 청년 안셀모 밀리와 프랜치스 치셤의 삶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같은 성직자의 길을 가면서도 늘 가난한자의 편에서 검소하게 사는 프랜치스와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안셀모. 신학생 시절에 안셀모는 학생회 회장과 여러 모임의 회장직을 맡았었고 프랜치스는 조용하면서도 종종 풍파를 일으키는 문제 학생이었다. 출세를 하는 것은 안셀모였다.

프랜치스는 자신이 선교사로 활동하는 중국의 파아란 지방에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들어서자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사랑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단시 당함으로써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실패로 연속된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안셀모는 주교가 된다. 주교가 된 안셀모의 방문을 위해 프랜치스는 새로 성전을 준비하느라 정성을 다하지만 홍수로 인해 성전은 모두 무너진다. 그 자리에 거대한 행렬을 이끌고 멋진 말만 하러 온 안셀모. 그리고 보여줄 것이 모두 다 무너져 버린 프랜치스. 안셀모의 마차때문에 프랜치스는 진흙탕 물 까지 뒤집어 쓴다. 여전히 세상의 존경을 받는 쪽은 안셀모이다. 프랜치스는 사회적인 명예나 부는 원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것은 오직 사람들 간의 화목과 사랑이었다. 안셀모와 프랜치스는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탐내는 두 가지 욕심을 보여준다. 명예와 부와 편안함이라는 욕심과 자기를 희생하며 실천하는 사랑과 그로 인한 보람내지는 기쁨을 누리려는 욕심. 그 어느 쪽의 길도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독자들이 주목하기를 바라는 인간 유형은 “좋은 말만 늘어놓는” 안셀모이다. 소설에서 안셀모가 대중의 존경을 받았듯이 이 세상은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존경 비슷한 것을 받는(한국은 특히나 더 그렇다) 이상한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변호사; 나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위해 변론하는 것이다.
의사; 나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일한다.
정치인; 나 역시 돈이나 명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한다.
교수; 나는 돈은 없어도 그만이고 미래의 재목들을 키우는 것이 보람이다.
종교인; 나야 물론 돈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봉사하는 사람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엿먹어라! 나는 당신들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낸다.” 나는 돈에 대한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이나 보람으로 위장하여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데 능숙한 사람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저술가 김지룡은 ‘개인독립만세’에서 이렇게 말한다.“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낸다. 명분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자기에게 얼마나 유리한가가 판단의 근거이다.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고 사기꾼이기 십상이다.”(사족; 나는 김지룡의 책을 매우 좋아한다. 그와 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 아내는 그의 여성편력이 잘 나타난 책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ㅎㅎ)

예컨대 변호사가 매일 라면도 먹기 힘든 보수를 받으면서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만 하는 직업이라면 당신은 그 직업을 택하겠는가? 의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하여야 하고 과거 소련에서처럼 낮은 월급을 받을 뿐인 그런 직업이라면 당신은 하겠는가? 국회의원이 생기는 것 한 푼 없는 직책이고 힘도 없는 그런 직책이라면 그렇게들 하고 싶어 하겠는가? 대다수는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사실은 대가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변명한다. 그들이 빈민촌의 가난하고 헐벗은 자선사업가, 무보수의 자원봉사자라면 나도 그 말을 믿고 존경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저 그들을 자기 속내는 숨기고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평가 절하시키고 만다. 특히 툭하면 국민의 이익을 내세우며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 실속과 밥그릇을 따지는 집단들은 그 집단이 공기업 노조건 무슨 협회건 간에 나에게 있어 꼴 갑 떠는 놈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난하였을 때 이 사회에서 이른 바 존경 받는다는 사람들은 내게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어느 일을 하던지 간에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이 즐겨 들려주던 예화는 “두 명의 석공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은 부처님을 위한 석탑을 만든다는 보람을 갖고 일을 하기에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석공이 아니었다. 폼 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자기들은 챙길 것 다 챙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 그건 위선이며 자기기만이다. 보람을 느끼라고? 프랜체스처럼 자기를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나도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일한 대가로 받는 보수가 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면 그는 대가를 보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일을 하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은 꺼려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미화시키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는 아름답다. 프로 선수는 돈 때문에 뛴다. 또 돈 때문에 뛰기에 프로가 되게 된다. 더 많은 돈을 받고자 더 많이 노력한다. 프로 선수에게 돈은 그 노력에 대한 대가이며 자기만큼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별을 원하는 자존심이며 명예이다. 돈을 적게 받으면 당연히 그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명예에 금이 간다.

1970년에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어 보았는가? 조나단이라는 갈매기가 고기잡이 배와 해변 사이를 단조롭게 오고 가며 먹는 것에만 급급한 다른 갈매기들 사이에서 추방당했어도 자신의 꿈인 완전한 비행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아서 비행하는 조나단은 더 높이 나는 것을 통해서 완전한 자유를 찾아간다. 정말 멋지다. (자고로 책은 이렇게 돈이나 먹을 것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잘 팔리는데 정작 그런 책의 저자들 대부분은 국내의 류시화 시인처럼 인세를 많이 받게 되어 돈이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게 나로서는 좀 떨떠름하다. )

그러나 이 세상에는 벌레를 찾아 낮게 날면서도 자신이 높게 날고 있다고 착각하는 갈매기들이 넘쳐 난다. 그 갈매기들은 그 착각 때문에 위선자들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그런 위선자들 가운데서 능력 있는 프로를 보지 못했다.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간에 삶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낮게 날면서 벌레부터 먼저 잡아먹자고 작심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다. 월 스트리트 금융 기관들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 지원 사유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답하면 모조리 불합격이다. 돈을 벌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만 합격된다. 부자가 되려면 돈에 대한 가식을 버리고 프로가 되라. 배고픈 갈매기는 높이 날려고 해도 기운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


2. 돈과 먼저 친해져라

어떤 사람들은 이른 바 금융지식이나 투자지식을 돈을 운영할 수 있는 지식으로 믿는다. 물론 그러한 지식도 중요한 것 이기야 하지만 나는 그런 지식을 전문적으로 갖추고 있는 재테크 상담가들 중에서 부자를 만난 적은 없다. 돈을 운영할 수 있는 지식은 단순한 금융지식이나 투자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쏟아지는 정보를 이용하여 돈의 흐름을 볼 줄 아는 눈이며, 인간 심리를 알고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며, 시장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색하는 힘이다.

그러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으로서 나는 신문을 많이 본다. 수많은 기자들이 사방에서 수집하여 활자화 시키는 정보들은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지면을 통해 알려주는 정보 모두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읽는 여러 종류의 일간지와 경제지들 중에서 매일 어느 하나를 택하여 우선 경제란부터 상세히 본다. 경제 흐름을 알려주는 모든 기사는 정말 놓치지 않는다. (현재 나는 일간지 3개와 경제지 4개를 보고 있는데 내가 왜 그 비슷비슷한 내용들로 도배되어 있는 여러 신문들을 읽어 왔는지는 별도로 설명할 것이다. )

차 안에서 신문을 읽다가 원하는 기사를 칼이나 가위 없이 맨손으로 잘라내는 기법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하였고, 책상 위에 놓고 칼을 대고 자르면 신문 한 장의 두께 만큼 만 칼질이 되는 특수한 칼도 서너 가지 종류를 오래 전 외국에서 구입했을 정도로 나는 경제 기사를 소중히 여긴다. (그런 칼들이 교보문고에서 판매되고 있다. 단, 도서관의 책들을 오려 내는데 사용하지는 말 것.)
경제란 다음에 보는 지면은 문화란이다. 문화를 알아야 인간을 이해하고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도 대충은 본다.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연속극이라고 해도 나는 거의 안보기 때문에 대화중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기초적인 내용만큼은 알아두기 위해서 이다. 정치, 사회, 스포츠 등은 대충대충 본다. 어느 한 신문에서 그런 분야에 대한 기사들을 내가 훑어보는데 바치는 시간은 2분도 안 된다. 어느 연예인이 이혼을 했건 말건, 박찬호의 금년 실적이 얼마가 되건, 정치인들이 무슨 일로 싸우건 간에 나는 그런 기사들은 대강 제목만 보고 만다.

그런 지면들에서 내가 집중을 하며 보는 것은 광고이다. 광고는 사회의 단면이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어떻게 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유심히 본다. 이런 상품이 나왔구나, 이 동네는 부동산이 이정도 가격이구나, 사원모집 광고를 이렇게도 하는구나 등등을 재빨리 눈에 집어넣는다. 인터넷에서는 이것을 못 얻는다(PDF 형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너무 불편하다).

시내버스는 타 본지가 20년 이상 되지만 지하철은 1년에 몇 차례는 나도 타게 된다. 막상 지하철을 타보면 체육계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듯 느껴진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스포츠 기사나 연예 기사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샐러리맨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건 대부분 비슷하다.

나는 해외 출장을 갈 때 대부분 일등석을 탔다. 한일 노선에서는 일등석 손님들 중 야쿠자도 있을 정도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타기에 스포츠 신문을 찾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장거리 노선에서 일등석 승객들은 거의 모두 경제지를 찾는다.( 일등석 좌석에 있는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은 제외한다. 그들은 대부분 항공사에서 “알아서” 좌석을 업그레이드 시켜 준 것이지 돈 내고 탄 사람들이 아니므로 진정한 일등석 손님들은 아니다- 권력이 좋기는 하다.) 반면에 이코노미 클래스 즉 삼등석 승객들은 스포츠 신문이나 연예 주간지를 먼저 찾는다. 서로의 관심의 우선순위가 틀린 것이다. 일등석 승객들은 일차적 관심이 경제이며 그래서 돈을 더 번다. 삼등석 승객들은 일등석의 넓은 좌석을 부러워하면서도 일차적 관심은 경제가 아니라 재미난 기사거리들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 게임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대부분은 스포츠 기사나 연예 기사 같은 재미난 이야기 거리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깊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문사 인터넷의 자유토론장에 어쩌다 들어가 보면 정말 가관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침을 튀기며 말할 수 있는 분야는 정치, 스포츠, 연예 뿐 이다. 특히 여자들은 연예인들에 대하여 지독히 관심이 많다. 여성 잡지의 대다수가, 몰라도 되는 그렇고 그런 연예인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이 TV 앞에서 환호를 올릴 때 부자가 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TV 속의 주인공들임을 깨달아야 한다.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도 당신에게 생기는 것은 땡전 한 푼 없다.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며 당신 자신이 주인공인 경제 게임에서는 규칙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부자들을 도둑으로 싸잡아 비난한다. 십중팔구 당신은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 이름들은 줄줄 꿰지만 대차대조표는 볼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TV 앞에서는 넋이 나가고 신문을 읽으면 꼭 정독을 하면서, 5분도 안 돼 잊어버릴 뉴스거리들에 온 시간과 정신을 바친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고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부자가 되려면 돈과 친해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른 것들과 친하다. 돈과 친하여진다는 것은 경제 게임의 법칙을 안다는 것이고 경제의 피가 흐르는 증권, 부동산, 경영, 사업 등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는 뜻이다. 일간지에 나오는 경제란은 꼬박꼬박 챙긴다고? 경제지 하나와 경제 주간지(그 경제지를 발간하는 신문사에서 나오는 주간지 말고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좋다.) 하나 정도는 읽어야 무슨 감이 잡힐 것 아니겠는가. 신문 값이 부담스럽다면 일간지 대신 경제지만 읽어도 된다.

명심해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경제 지식은 당신을 절대로 부자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좀 읽으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정치, 문학, 역사, 종교 서적들을 본다. 교양이나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책들을 읽는다(아마도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한 달 이상을 소비한 적도 있고 “악마의 문화사”라든가 “황금 가지”같은 종교 서적들에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비율로 따져 본다면 그런 책들 보다는 돈 냄새 나는 책들을 더 많이 읽어왔다. 영혼의 양식 보다 일용할 양식을 먼저 챙겼다는 말이다.

기억해라. 교양인에게 돈 많이 주는 세상이 아니다. 부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당연히 일용할 양식부터 넉넉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교양을 닦아라. 미국 프로야구 선수 박찬호가 연습은 안하고 교양 증대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도 사회에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먼저 해라. 딱 1년만 미친 듯 하면 장담하건대 내년에는 벅찬 가슴을 갖게 된다. 교양이니 영혼의 양식이니 하는 것들은 그 다음에 해결해도 되지 않겠는가.

(사족; 당신이 성인인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면 당신은 가야 할 길이 아주 아주 먼 사람이다.)


3. 시간이 돈이 되게 만들어라.

헬라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두 개이다. 하나는 크로노스인데 흐르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대상으로서의 시간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보내게 되는 시간 같은 것이 이 크로노스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인데 의미 있는 시간, 가치 있는 시간, 보람 있는 시간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땅에서 “잘 산다”는 것은 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꾸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없는 시간은 그저 세월의 주름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간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이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돈이 되는 시간”이 그것이다. 흔히 시간은 금이니 돈이니 말들 하지만 크로노스로서의 시간은 전혀 돈이 안 된다. 출퇴근 길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이리 볶이고 저리 볶이는 시간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며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이라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월드컵에서 한국을 응원하느라 근 한 달 동안을 축구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으며 승리의 감격을 맛보고 패배의 아쉬움도 맛보았다면 그 시간은 카이로스는 될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부자가 되려면 “돈이 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았다면 그 노동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에 해당된다. “돈이 되는 시간”은 그 시간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크로노스가 될 수도 있고 카이로스가 될 수도 있다. 똑 같은 일을 하여도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무심하게 무성의하게 기계적으로 한다면 그 시간은 크로노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개선시키고자 하고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 부으며 최선을 다한다면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것이다.

“돈이 되는 시간”은 경제적 대가가 주어지는 노동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경제적 대가가 주어지는 지식을 얻는데 사용되는 시간 역시 “돈이 되는 시간”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최우수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다면 일단은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받게 되는데 이 경우 공부를 잘 하고자 바친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게임은 학교 성적으로만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받는 대가를 크게 함으로써 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 지불하여야 하는 대가를 적게 함으로써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세상에 지불하는 대가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돈을 받고 해 주는 일들”에 대하여 당신이 알고 있다면 지출하는 비율이 줄어들어 주머니에 남는 돈이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웬만한 컴퓨터 고장은 직접 수리할 줄 안다면 그 수리 지식을 얻는데 사용한 시간은 “평생” 컴퓨터가 고장날 때 마다 돈을 절약시켜주는 원천이 된다. “평생”말이다. 따라서 당신이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하여 일단 억지로라도 배워둔다면 그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이 된다.

나는 이 법칙을 남들 보다는 빨리 깨달았기에 시간이 날 때 마다 정치나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배우고자 하였다. 나는 길거리를 걷다가 도로 공사를 하는 것을 보아도 인부들이 어떻게 하는지 세심히 바라보고 배웠다.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없는 것들은 모두 책을 통해 감을 잡고 배워 나갔다. 그렇게 하는 시간이 바로 “돈이 되는 시간”이다. 사업 초기에는 하다못해 복사기가 고장 났을 때 마다 서비스 수수료 몇 만원이 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AS맨이 올 때 마다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옆에서 지켜보고는 나중에 수십 번 이상 내가 직접 고친 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배운 분야는 하나 둘이 아니다. 결혼 전 내가 아내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겸손함 없이 건방지게 하였던 말 중 하나 역시 “나는 별 걸 다 아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남는다고? 크로노스가 많다는 뜻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배워 나가라. 우선은 지금 하는 일과 관련된 것들부터 마스터하라. 그렇게 할 때 그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일과 관련된 책들은 솔직히 재미는 없다. 하지만 재미가 충만한 책들만을 읽는다면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수는 있지만 돈이 되기는 어렵다. 재미없어 보이는 지식들을 위하여 “돈이 되는 시간”을 먼저 투자하는 사람만이 크로노스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그래도 인생은 즐기며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장담하건대 당신이 재미있는 것만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당신의 삶 자체가 조만간 재미없어질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K.Galbraith)는 “인생에서 대부분의 물건, 이를테면 자동차나 연인이나 암은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만 중요하다. 그에 반해 돈은 그것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그 중요한 것을 위해 지금 시간을 투자하라. 지금의 시간이 미래에 돈이 되게 만들어라.

“인생이란 비스킷 통 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4. 돈은 오직 기회의 첫 단추만 채워준다

어느 책에서인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다람쥐도 도토리를 모을 때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이상을 모으지 않으며 어떤 참새도 다음 주 식량을 미리 모아놓지 않았다고 해서 슬프게 짹짹대지 않는다. 동물의 왕 호랑이도 부자 호랑이와 가난한 호랑이로 나뉘어 지지는 않는다. 그저 배부른 놈과 배고픈 놈으로 분류될 뿐이다. 어째서 인간만이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 세계만이 자본주의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 요건은 돈의 속성을 알고 이 세상에서 돈 버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며 그렇게 번 돈을 효과적으로 쓰는 일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떠한 속성을 갖고 있는가? 강태기씨의 모노드라마 ‘돈’에는 돈의 행방에 따라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마지막 재산 1천원을 털어서 산 복권이 당첨돼 벼락부자가 된 실직자. 그 돈을 탈취한 강도. 그 강도로부터 청혼을 받는 창녀. 강도가 목욕하는 사이에 돈가방을 훔쳐 병에 시달리는 애인에게 달려 간 창녀.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사창가에 내몬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한 애인. 이 연극에서 ‘돈’은 화폐로서의‘돈’을 비롯해 “윤회한다”는 의미의 “돈다”와 “미친다”는 뜻의 “돈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싸이코로 만드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고 있는 첫번째 기능은 의식주를 해결하여 준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성경 마태복음 6장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한 말을 내게 들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의 말은 앞날을 생각하는 당연한 걱정을 불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빈곤은 지나친 근심과 걱정을 가져오기에 하나님의 의를 자칫 무시하게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삶에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감당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게 되면 하나님이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호하듯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지 그냥 놀고 있어도 의식주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어떨까? 부처는 초기 불전인 ‘선생경(善生經)’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마땅히 먼저 기예를 익히라 그래야만 재물을 얻으리라. 재물을 얻어 이미 구족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지키어 보호하라”고 하기도 하고 “밭 갈고 장사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생업에 부지런히 전념하라”고 당부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게 하고 장신구를 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까지 말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어야 하고 아내는 재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시된다. 예수와 부처까지 내가 인용하는 이유는 어설픈 종교적 사고로 돈 자체를 터부시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두 번째 기능은 돈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단 통장에 돈이 넉넉히 있다면 안심이 되고 걱정거리도 웬만큼은 줄일 수 있지 않은가. 병에 걸렸을 때 불치병이 아니라면 돈을 갖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도 돈이 있으면 그 가족에게 위자료를 주고 합의서를 받아내서 형량을 적게 받을 수도 있다.

돈의 세번째 기능은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있다. 오 헨리의 단편 가운데 ‘황금의 신과 사랑의 사수’라는 것이 있다. 그는 전직 은행원이었으나 공금 횡령으로 인해 감옥에 있는 도중 소설을 쓰기 시작해 결국 유명해졌다. 그런 그였기에 당연히 돈에 대한 생각도 소설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 줄거리를 살펴보자. 돈 많은 아버지를 무척이나 경멸하는 아들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아직 말도 한번 건네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아들은 연극을 구경하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하는 그녀를 극장까지 마차로 안내하는 역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고작 칠, 팔분. 그는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돈으로 어떻게 사랑을 얻느냐고 푸념한다. 드디어 날짜가 되어 역으로 간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인사하고 마차로 안내한다. 극장을 향해 마차가 달리던 중 아들이 갑자기 당황해 하며 마차를 멈춘다.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떨어뜨린 것. 그는 마차 밖으로 나가 1분도 안되어 반지를 찾아 가지고 돌아왔고 다시 마차는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 1분 사이에 다른 차들이 길을 막아버렸고 넓은 광장이 수많은 짐마차, 승용차, 짐차 등으로 인해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탄 마차는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얘기를 하게 되고 아들은 사랑을 고백하며 여자도 그 사랑을 받아들인다. 다음 날 웬 사내가 아버지를 방문하여 돈이 생각보다 더 들어갔다고 보고한다. 그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아들의 마차가 지나갈 시각에 도시의 모든 탈 것들을 동원하여 길을 막아버려 두 사람이 이야기할 시간을 넉넉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자. 오 헨리가 이 소설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돈이면 사랑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닌 것 같다. 돈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는 있지만 반지가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고 그것을 찾느라고 1분을 소비하는 바람에 타이밍이 맞았듯이 “신의 어떤 도움”이 있어야 한다. 즉 운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아무리 두 남녀가 오래 이야기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사랑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필(feel)도 있어야 비로소 돈은 그 기회를 열매 맺게 한다는 뜻 아니었을까?

돈이 주는 기회를 생활에서 찾아보자. 우리의 여름밤은 무덥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아열대의 밤에는 더워서 섹스고 나발이고 귀찮아 질 것이다. 샤워를 하고 난 뒤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에어컨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방안이 써늘할 지경이라면 추워서라도 서로를 더 껴안게 된다. 그래서 어느 에어컨 회사에서는, “침실까지 시원해”라는 광고 카피로 오래 전 히트를 쳤다(에어컨을 설치할 때는 거실에 하지 말고 침실에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 그러나 에어컨 살 돈과 그것을 틀만한 돈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부부 금실이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랑이 기본적으로 있을 때 비로소 에어컨 바람도 제 구실을 하게 된다. 룸싸롱에서는 팁을 몇 십만 원씩 뿌리면서도 아내에게는 꽃 한 송이 사다 줄줄 모르는 남자들에게 돈은 오히려 파탄의 기회만 제공하지 않는가. 돈이 제 구실을 하려면 돈이 아닌 다른 가치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결국 돈이 행복의 첫 단추를 채울 기회를 주는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단추들은 모두 다른 요소들이 좌우한다는 말이다.

(내 주변에 준 재벌 2세들이 좀 있다. 나이가 4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분포되어 있는 그들 중 절반은 가정을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법을 전혀 모른다. 왜 그런지 아는가? 어릴 때부터 여자는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오면서 결혼 후에도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기를 중단하지 않으며 자연히 집안은 완전 콩가루가 되고 만다. )


5.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은행에 가면 여러 가지 안내장이 붙어 있다. 평균 잔고 얼마 이하는 이자를 주지 않겠다, 창구에서 공과금을 받지 않겠다, 동전을 교환해주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다. 반면에 거액 이용자들을 위해서는 프라이빗 뱅킹(PB) 코너라는 것을 만들고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은행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어떤 기업이든 돈만 쫓는 기업은 고객의 외면을 당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은행의 공과금 수납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은행들의 거만한 태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정말 은행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고액 예치자들에 대한 은행의 우대를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고급 인테리어에 대형 화분, 1대 1 데스크 등 일반창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PB코너는 은행의 주 고객인 일반 직장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점심시간에 직원이 식사 중이라 소수인원만 근무할 때 고객들이 밀려들어 대기하는 동안 PB코너는 한산해 파리 날리며 VIP를 기다린다. 돈 없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고객들이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이러쿵저러쿵.

어느 경제지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VIP고객들은 송금 액수와 상관없이 수수료가 면제된다. 부자도 아니고 인터넷 사용도 못하는 그야말로 서민들은 100만원 넘는 돈을 다른 은행에 보내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부자고객에게 각종 무료 서비스와 선물을 제공하는 데 따른 손실을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보전하는 셈이다. 나는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도 당신처럼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인력으로 돈 벌고자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은행이 거만하다고? 돈 많이 벌어주는 고객들에게는 친절하다. 당신도 당신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손님에게는 그럴 것이다. 정말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은행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다. 당신이 식당을 한다면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이겠다는 말이냐. PB 코너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당신은 지금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믿는 것이며 “인간은 돈 앞에서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정말 골 때린다. 게다가 부자에게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가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충당된다고? 정말 웃긴다. 그 서비스는 부자들로 인해 벌게 된 돈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당신이 저녁에 술을 파는데 단골손님이 와서 양주 몇 병과 안주 몇 개를 시켰다. 다른 손님은 맥주 몇 병에 팝콘 안주뿐이다. 당신 같으면 누구에게 신경을 더 쓰겠는가. 물론 장사건 사업이건 친절이 기본이다. 은행이 참으로 미숙한 것은 거절하는데 있어서도 미소를 가득 띄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 선술집에서 저녁에 밥을 시키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우면서 “찬밥밖에 없는데 찬밥을 드릴 수는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속내는 “술집에 왔으면 술하고 안주를 먹어야지 바빠 죽겠는데 왜 돈도 얼마 남지 않는 밥을 시키느냐”는 뜻이다.)

공연장에서 무대가 잘 보이고 음향도 좋은 자리는 당연히 비싸다. 유독 한국에서는 불이 꺼지고 공연이 막 시작되려고 하면 재빨리 자기가 산 좌석보다 더 비싼 빈 좌석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예전에 우리나라 비행기에서 일등석이나 이등석 좌석에 미친 척하고 앉아 있는 3등석 손님들도 보았다. 승무원이 자리를 옮겨 줄 것을 요구하면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지만 “비어 있는 좌석인데 좀 앉아 간다고 무슨 일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그냥 앉아 갑시다.”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디즈니가 직영하는 호텔에 투숙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입장을 1시간 이상 빨리 허용한다.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이다. 내가 만일 용인 에버랜드의 사장이라면 1등석 입장권을 매우 비싼 값에 별도로 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줄서기에서 1등석 입장객과 일반 입장객을 구분할 것이다. 런던 국제공항에는 1등석 승객을 위한 별도의 출입구 까지 준비되어 있다. 파리에서도 뉴욕행 콩고드 비행기 승객들은 출발 이전부터 완전히 분리된 대우를 받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9.11 테러 이후 미국 공항에서도 1등석 승객은 검색대에서 우선권을 부여 받는다. 이게 자본주의다. 스키장에서도 회원들이 이용하는 리프트와 비회원 리프트는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비회원이 비회원 전용 리프트를 타려고 길게 늘어 서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니 나 같으면, 줄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원하시는 시간에 조금도 기다림 없이 타실 수 있으며 24시간 전담 요원이 따라 다니는 초특급 회원권”을 가입비 10억 원에 연회비 1억 원 정도에 팔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은 인간인데 줄까지 차별하다니 너무 한다”, “돈 없다고 괄시하니 서러워 못살겠네”따위의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평생 부자로는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였을 때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본적이 없는데 왜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결국 “좀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다. 당연히 그 질적인 면은 지불하는 돈의 크기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

백화점에서도 구매실적이 저조하면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우수고객들은 바겐세일 기간이 아니더라도 특정품목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대다수 일반 고객들은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평균 5000만 원 이상 쓰는 특별고객을 위한 VIP 전용 휴게실은 당연히 일반 고객들은 출입 금지 공간이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별로 호텔요금의 계산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값만 내면 투숙하는 인원수는 상관없는 경우도 많지만 같은 방이면서도 그 인원수에 따라 방값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함께 투숙하는 자녀의 나이와 자녀수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 택시 요금 역시 짐을 얼마를 갖고 타든지 간에 미터 요금만 내면 되는 한국 같은 나라도 있고 홍콩처럼 가방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곳들도 있으며 심지어 승객의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나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당 요금 역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좌석 위치에 따라 요금이 다르기도 하고(파리에서는 길가에 놓인 좌석이 비싸다) 음식을 싸 갖고 갈 경우에는 앉아서 먹는 요금 보다 할인이 되는 나라들도 꽤 있다. 서울의 몇몇 특급 호텔들에서는 도시락을 주문하여 가져 갈 경우 10%의 봉사료를 붙이지 않는다. 이게 자본주의에서의 합리성이다.

그래도 호텔에서 도어맨이 고급차를 우대시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느냐고? 알려면 제대로 알아라. 고급차이어서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오니까 우대하는 것이다. 나부터만 하더라도 몇몇 호텔들에서는 도어맨들이 내 얼굴과 차를 기억한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선 호텔이나 신라 호텔 같은 곳에 어쩌다 가게 되었을 때 내 차가 좋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았던 경험은 전혀 없다.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소형차를 타고 호텔에 들락날락하면서 발리(valet) 파킹을 부탁하여 보아라. 한 두 달도 안 되서 도어맨들이 알아서 모실 것이다. 특급호텔 앞에 고급차들만 주차하여 있는 이유는 발리 파킹 비용을 내거나 팁을 주기 때문이지 차가 좋아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수고객에게는 특별 대접을 하고 불성실한 고객과는 의도적으로 거래를 줄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은 당연한 현상이다. 부자 마케팅의 이면에는 부자고객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민 고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차별적 구조가 감춰져 있다고? 아니 무슨 불이익?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이렇다. 더 편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하라. 지불할 돈이 없다고? 그렇다면 덜 편하고 덜 좋은 것을 가지면 된다. 그게 불이익이냐? 입석과 좌석의 차이가 없이 먼저 뛰어가 타는 놈이 앉아 간다는 원칙이 통용되는 곳은 절대로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그런 시스템을 “돈 앞에서 평등한 사회”로 믿을지 모른다. 기억해라. 그런 사회는 공산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정말 좋은 사회는 “대가를 많이 지불한 사람들”과 “이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 받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먼저 앉는 사회이다(은행에서도 장애인들 만큼은 특별대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족; 우리나라 항공사 직원들 중 탑승구 앞에서 표를 받는 직원들은 돈을 더 낸 승객들에 대한 차별적 서비스 제공에 아주 아주 둔감하고 미련하다. 탑승 순서에 대한 방송을 마이크 없이 하는 직원들도 많고 방송 멘트 역시 탑승 대기 줄은 하나이므로 1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손님들은 아무 때나 줄을 새치기하고 들어오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심지어 그런 멘트조차도 안 하는 닭대가리들도 부지기수이다. 도대체 일본 나리타 공항처럼 탑승로를 둘로 칼같이 나누어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의 오너였다면 아마도 사장부터 재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미국의 어느 항공사 직원 휴게실에서 내가 본 글—“잊지 마라, 우리들 월급의 절반은 일등석과 비지니스석 손님들이 제공한다”)


6. 돈을 모을 때는 날파리들을 조심해라

그 어느 나라에서건 쓰레기장, 해산물 건조장, 축사, 화장실 등 지저분한 곳이면 어디에나 파리들이 득실거린다. 파리의 종류도 다양한데 집파리, 똥파리, 벼룩파리, 광대파리, 쉬파리, 기생파리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 세계에도 파리떼가 있다. 이 파리들은 누군가가 돈을 모으고 있다거나 혹은 돈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몰려드는데 나는 이 파리들을 날파리라고 부른다. 땀 흘려 착실히 돈을 모아가는 과정을 밟는 사람들은 이 날파리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 인간 날파리에는 네 부류가 있다.

첫째, 가족 날파리가 있다. 이 가족 날파리들은 가족 중 당신이 월급을 꼬박꼬박 모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혹은 적금을 얼마 지나지 않아 타게 된다는 것을 듣게 되면 그 때부터 그 돈을 “빌리고자”파리가 앞발을 비비듯 별의별 회유와 간청을 하게 된다. 이때 가족 날파리는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고자” 빌려달라는 등 무슨 대단한 건수라도 있는 듯 당신을 설득할 것이다. 특히 일확천금을 꿈꾸기만 하는 가족 날파리들을 조심해라. 그런 날파리들은 밑빠진 항아리 같아서 빌려주는 돈 모두가 헛된 곳으로 새어 나갈 것이다. 이런 날파리들의 꼬임에 가장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여자들인데, 오빠나 남동생 혹은 아버지 또는 남편의 뜬구름 잡는 놀이에 모아 놓은 돈 모두를 허비하고 만다.

이런 날파리들을 피하려면 일절 자신의 재테크 상황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저축도 비밀리에 하고 월급도 낮추어 이야기하며 때로는 회사가 어려워서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울상을 지어라.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고? 한 가족이 부자가 되려면 우선은 작은 항아리에라도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정, 가족 날파리를 돕고 싶다면 일단은 악착같이 작은 항아리에라도 물을 채워 놓고 그 항아리를 감추어 놓은 상태에서 그 가족 구성원의 정신 상태를 냉정히 파악한 뒤 이자로 나오는 한 바가지 정도만 퍼주어라. 그게 현명한 방법이다. 명심해라. 장사건 사업이건 자기 땀을 흘리지 않으려는 경우 깨진 항아리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돈을 대준다면 당신의 삶은 곧 그 깨진 구멍을 막으려는 불쌍한 두꺼비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 더: 남에게 돈 까지 빌려 가족 날파리에게 주는 어리석음은 절대 범하지 말라. 그 빚 때문에 당신 삶이 곧 무너지게 된다.

둘째, 친척 날파리가 있다. 이 부류의 날파리들은 친척 중에 누가 어느 정도 산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찾아오는 부류인데 친척이 와서 돈을 빌리려고 할 때 그 이유가 수술비 마련이나 학비 마련 등이 아니라 사업적인 것이라면 그 친척의 평소 생활태도를 고려하여라. 값비싼 가구나 사치품 등을 갖고 있던 친척에게 사업자금을 빌려 주었다가 받아 낼 가능성은 크지 않음을 명심해라. 자고로 친척들의 돈을 많이 빌려 사업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날파리들은 가난한 친척은 멀리하는 경향이 강하며 오로지 돈 냄새가 나는 친척들만 찾아다닌다. 이들을 피하려면 몇 가지 핑계 거리를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 최근에 부동산을 구입하는 바람에 현금이 바닥이 났다거나 누군가에게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 주었는데 이자도 들어오지 않아서 속이 상해 죽겠다거나 등등의 이유를 갖고 있으라는 말이다. 장사로 어느 정도 돈을 모은 어느 독자가 이런 날파리들을 떼어 내는 기가 막힌 방법이 없겠느냐고 내게 호소하였을 때 내가 알려준 방안은 이러했다.“오늘 밤 당장 그 모든 친척들에게 전화를 해라. 그리고 돈이 급히 필요하다고 하면서 빌려달라고 해라. 모레까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고 말해라. 그리고 꼭 좀 부탁한다고 해라. 담보라도 제공하여 달라고 말해라. 그리고 내일 한두 번 또 전화해라. 대부분은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부담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거의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하면서 전화를 끊어라. 그 뒤 그들 중 열의 아홉은 전화를 걸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셋째, 친구 날파리들이다. 재미교포 사업가인 김승호는 ‘아들아! 인생의 지혜를 배워라’라는 글에서(조선일보 사이트에서 찾아내 읽어 보아라) 이런 말을 한다. “연락이 거의 없던 이가 찾아와 친한 척하면 돈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 분명하게 ‘노’라고 말해라. 돈도 잃고 마음도 상한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면 되돌려 받지 않아도 될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줘라. 그러나 먼저 네 형제나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해줬나 생각하거라.” 백번 맞는 말이다. 30대 이후의 나이에서 돈을 빌리려는 친구의 부류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 부류는 친구니까 그냥 빌려달라는 부류인데 이들을 조심해라. 이런 사람 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경우를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왜냐고? 돈 문제를 정(情)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부류는 각서나 공증, 혹은 담보를 제공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말하는 친구인데 이런 친구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한다. 상대로부터 신뢰를 받는 구체적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돈 거래가 꽤 많았던 나의 경험 법칙 하나: 돈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가깝게 모인다. 사고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들은 신용불량자들끼리 말이 통한다. 그러므로 당신을 돈 문제로 골탕 먹인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도 일단은 경계하라. 내 경험상 여기에 예외는 없었다.

법칙 둘: 자신의 신용을 생각하는 친구는 갚을 날자가 하루라도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전화라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친구 지간인데 이해해 주겠지”라고 자기 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100% 돈을 떼어 먹거나 골치를 썩인다. 장사를 해도 이런 사람들은 예외 없이 반드시 실패한다.

법칙 셋: 나는 이자를 언제나 은행 수준으로 저렴하게 책정하였는데 그것이 고맙다고 먼저 갚는 친구들도 있었지만(이들은 대부분 후에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이자가 싸기 때문에 약속된 차용기간을 넘기고 더 쓰게 해달라고 징징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내 돈은 맨 마지막에 가까스로 받게 되거나 떼어 먹히게 되는데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면 섣불리 싼 이자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지는 말아라. 내 경우를 볼 때 돈과 관련 된 약속을 지키는 친구들은 거의 모두 나중에 성공하였지만 약속을 어기는 친구들은 모두가 다 실패하였거나 지금도 어려운 상태이다.

넷째, 사기꾼 날파리들이다. 돈을 대신 맡아서 보관하여 주겠다거나 이자가 많이 나오는 곳을 아는데 돈을 불려 주겠다거나 어디어디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거나 자신의 부동산이 꽤 되는데 현금이 좀 급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녀석들은 모조리 100%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도대체 그런 사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당신 돈은 당신이 관리해라. (나도 사기를 당한다. 내가 당하는 사기는 언제나, 사정이 정말 정말 불쌍하고 힘들게 보여서 돈을 빌려 주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연락을 끊고 도망 가버리는 것인데 2002년에도 몇천만원을 그렇게 날렸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 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순진하고 착하게 보이나?”-- 설마. ㅎㅎㅎ )

사기꾼 날파리들은 원래부터 나쁜 놈들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가족 날파리, 친척 날파리, 친구 날파리들은 정말 주의하여야 한다. 그 날파리들은 대부분 당신에게 돈을 빌려갈 때는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이 말하지만 돈을 받고자 할 때가 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음을 기억해라. 나의 경험담: 은행 이자 수준에서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 주었던 고교 동창이 약 1년 후 담보를 은행에 넣고 돈을 대출하여 빚을 갚을 테니 담보를 해제하여 달라고 사정사정하기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담보를 해제하여 주었다. 그러나 막상 은행돈을 대출 받은 뒤부터는 완전 배째라는 식이었다(이 친구가 매일 입버릇처럼 내게 한 말은 자기가 아파트 세 채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나는 은행 금리가 내려가기에 이자를 낮춰 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은행 대출을 받아 빚을 갚는다는 이유로 담보를 해제하여 준 이상, 그 약속을 어긴 것은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됨을 알려주면서 구치소와 교도소 생활을 기꺼이 하겠느냐고 말했더니 그제서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당신은 도우려는 마음으로 가족, 친척, 친구에게 돈을 빌려 줄지 모르지만, 돈을 받지 못하게 될 때“이상하게도” 욕은 당신이 먹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돈을 받기 위해 재촉을 하기 시작하면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준다느니, 한번 믿은 거 계속 믿어 달라느니, 가족 간에, 친척 간에, 친구 간에 그것 하나 기다리지 못하느냐, 약속을 못 지켰을 뿐이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등의 말들이 어쩜 그렇게 사전에 입을 맞춘 듯 신기할 정도로 똑 같은 레퍼토리로 나오게 된다는 것을 뼈 속 깊이 명심해라. 그들은 모든 상황을 자기 입장에서 설명하고 이해하며 “내가 갚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사정이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고리대금업자처럼 굴지 좀 말라”는 논리로 스스로를 변호하는 공통적 본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당신이 이자를 받지 않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며 그들 중 열의 아홉은 자기들 돈 쓰고 다닐 것은 다 쓰고 다닌다는 것도 알아 두어라.

실화: 고교 시절 같이 낚시도 다니고 절친했던 새끼 한 명은 십 몇 년 전 나에게서 몇백 만원을 10일 만에 갚겠다고 빌려갔었지만 10일 만에 종적을 감추었고 2003년에 우연히 그 새끼의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를 했더니 하는 말이 무엇이었지 아는가? “내가 네 은혜를 입었음을 고맙게 여겨왔다.” 자기가 도망갔으면서도 은혜를 입었음을 고맙게 여긴다는 이 개새끼는 내게 십 몇 년 동안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고 내가 전화를 건 이후에도 계속 10새끼짓만 하고 있지만 자가용은 계속 끌고 다니고 술도 계속 처먹고 양복은 백화점에서 구입한다는 것을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서 들어서 안다.

명심해라. 이 세상에는 그런 잡놈, 잡년들이 무지 많다는 것을.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그들은 일을 하여도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논리로 접근하기 마련이며 자장면을 팔아도 “내가 파는 자장면이 맛이 없는 이유는 오늘 몸이 상당히 피곤할 뿐 아니라 납품 받은 밀가루가 질이 좀 떨어져서 그러므로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세상을 설득시키려고 한다. 기억해라. 작가 이외수는 “황금비늘”에서 “날파리는 날파리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했지만 인간 날파리들은 아름다운 혈연의 정이니 아름다운 우정이니 그럴듯한 것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당신에게는 고통만 줄 것이다. 당신 주변에 그런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일찌감치 면도칼로 도려내라.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경영한 회사에서 사내 결혼을 한 30대 초 부부가 있었는데 남자는 1남 3녀 중 둘째로서 외아들이고 여자는 3녀 중 장녀였다. 남자측 집안은 아버지가 안계셨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결코 아니었다. 출가한 누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자기 수입도 있었으나 친정을 돕지는 않았다. 여동생 부부는 둘 다 안정된 수입이 있는 장애우였고 친정에 들어와 살고 있었지만 생활비를 내놓지는 않았다. 막내 여동생은 무직이었다. 이런 가족 상황에서 그의 수입은 모두 어머니와 가족 뒷바라지 하는데 사용되었다. 한편 나와 십년 가까이 일했던 여자 측의 수입은 모두 친정 부모의 광신적인 종교 활동과 두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사용되었다.

이 부부는 더블 인컴이었기에 수입이 웬만큼은 되는데도 돈은 모이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했다. 나는 몇 년간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외환위기가 오자마자 그 부부의 부모에게 전화를 하였다. “사장인데 외환위기 때문에 도저히 월급을 제대로 줄 상황이 못 된다. 50%도 지급하지 못할 것 같으므로 이 못난 사장을 용서해 달라.” 그리고는 그 부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너희 두 사람 모두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어 왔다. 방금 전에 나는 너희들 집에 전화를 해서 회사가 무진장 어려워서 월급을 절반도 제대로 못줄 것 같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봉급도 깎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전화한 목적은 너희들이 집에 돈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제 집안에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모르는 척 하고 몰래 돈을 모아라. 지금이 기회이다. 너희부터 먼저 돈을 모아 기반을 잡아야 한다. 내 말을 믿어라. 깨진 항아리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절대 굶어 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내 조언을 받아 들였다. 그 뒤 2-3년 후 부부는 모아 놓은 종자돈으로 독자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2003년 현재 돈도 꽤 벌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들을 별 부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는 절대 하지 말라. 그 구멍을 몸으로 막아야 하는 두꺼비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 )


7. 은행 저축은 목돈을 만들 때 까지만 해라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누군가로부터 여러 가지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말들에 은연 중 세뇌되어 살아간다. 나는 어릴 때 국산품을 사용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서 느낀 것은 내가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과 내가 부자가 될 가능성과는 전혀 무관하였고, 정작 부자가 되는 것은 그 국산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전혀 몰랐고 내가 굶어 죽어도 그들에게 나는 언제나 타인이었다.

은행에 저축을 하여야 개인도 잘 살고 국가도 부강하여진다는 것 역시 우리에게 그렇게 세뇌되어 있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언젠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내게 “학교 숙제인데 집에 있는 은행통장의 종류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 달라.”고 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내 준 숙제였다. 내가 보통예금통장 두 개 뿐이라고 하였더니 아이는, “우리 집은 목돈마련도 없고 정기예금도 없느냐”고 이상한 듯 물었다. 사실 나에게 은행은 생활비를 잠시 맡기거나 자동이체를 위한 곳에 불과하다.

70년대 초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부잣집 친구들의 아버지는 은행 고위층 사람이거나(아마도 그 중 상당수는 대출 커미션을 받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돈을 빌려 사업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은행에 저축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저축을 한 돈을 갖고 다른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싫었고 지금도 싫어한다. 처음부터 나는 은행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말이다. 20대에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천만 원은 아줌마들과 함께 한 낙찰계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계는 위험하므로 정말 믿을만한 계가 아니라면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할 것을 권유한다. 단 목돈을 만들 때까지 만이다. 목돈을 오백만원이라도 만들면 그 돈은 수익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니라는 말이다.

은행에 저금을 많이 하여 저축상을 받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나는 그 많은 돈을 왜 은행에 계속 넣어둘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원금이 보호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종금사나 신용금고, 조합 등과 같은 제 2금융권에 분산시켜 놓고 이자는 매월 은행으로 자동이체 시키면 어떨까? 그런 곳은 불안하고 찾아다니기도 불편하고 시간이 소요된다고? 뭐가 불안하다는 말인가? 원금이 날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그렇다면 5천만 원 원금이 보장되는 한도 내에서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돈을 맡긴 곳이 문을 닫으면 몇 개월간 그 돈을 찾지 못하지 않느냐고? 그럴 수 있다. 몇 개월 이자를 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봤자 몇 %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도는 날릴 각오를 하고 나는 언제나 고금리만 따라 다닌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 법으로 보장이 되는 한도 금액으로 여러 곳에 쪼개 놓는다는 것과 이자는 매월 자동 이체로 수령한다는 것,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일정액은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곳에 예치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나의 좁은 생각인지는 몰라도 어느 나라에서든지 은행들이 부실해지면 정부에서 쓰는 수법이 예금 보장 한도액 제도인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비 맞은 참새처럼 불안감에 떨면서 자금을 제2금융권 보다는 그래도 더 안전하게 보이는 은행으로 옮기게 되고 은행들은 BIS 비율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맞추게 되어 안정화 단계로 들어가기 쉽다. 결국 불안감 조성은 은행을 살리기 위한 심리적 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즉 다른 금융 기관들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안정성을 담보로 하여 전략적으로 이자는 조금 줌으로서 예대 마진을 극대화 시켜 그 마진으로 부실을 털어내려는 속셈일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투신사나 은행 중 자기네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광고하는 곳은 이자를 가장 조금 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은행은 길 건너 가까이 있는데 제2 금융권 회사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간도 걸리고 불편하다고? 도대체 당신 시간이 다른 일들에 얼마나 값지게 쓰이고 있기에 시간이 걸린다고 시간을 아까워하는가? 시간은 금이지만 부자가 아니라면 시간이 금이 아닐 경우가 많다. 불편하다고? 편리함은 언제나 당신의 돈을 빼앗아가는 원흉이다. 금융기관과 거래할 때만큼은 불편함을 감수해라. 당신이 불편함을 느낄수록 돈은 쌓이기 마련이며 돈 찾기가 편리할수록 돈은 새나가는 법이다. 은행의 경우 우수고객이라는 말은 은행에 돈을 많이 기증한다는 뜻이다. 지점장실이나 VIP룸으로 안내되어 커피 한잔 마시는 대신 당신은 적어도 제2금융권보다 연2-3% 정도는 손해보고 있음을 기억하라. 가끔 은행에서 공연 티켓도 들어오고 무료건강진단도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수수료 면제 역시 큰 도움이 못 된다. 인터넷으로 처리하면 수수료는 절감된다. 어느 은행이건 간에 우수고객이 받는 추가 예금 이율은 잘해야 연 0.5% 정도이다.

은행의 우수고객에게는 대출금리가 최대 연3% 까지도 감면된다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대출 받을 때가 되어 봐야 안다. 특히 예금담보대출은 엄청난 손해이다. 정기예금이자로 연 4.5%를 받고 급전이 필요하여 예금담보로 7%로 대출을 한다면 2.5% 더 내는 것이 아니라 4.5%에 대한 세금 액 까지도 당신이 부담하여야 한다. 원 세상에나. 신용대출이니 정책자금 대출이니 그럴듯한 것들도 많지만 당신을 뭘 믿고 그냥 빌려주겠는가. 물론 당신이 이름 있는 직장에 다니면서 어느 한 은행을 계속 거래를 하여 왔다면 신용대출로 돈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그 액수가 몇 천만 원을 넘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으로 생각해 보아라. 당신이 대출담당자라고 치자. 당신 같으면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직장이 좋고 거래를 오래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몇 천만 원을 내 주겠는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당연히 담보를 요구할 것이다. 담보만 있으면 요즘은 어디서나 돈을 빌린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빚을 지지 말라고 외치는 사람임을 기억해라. 당신이 제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빌려 쓴 돈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는, 당신이 그 어떤 금융기관에서 굴리고 있는 자금에 붙는 세후 이자 보다 언제나 많은 법이다. 나는 적금은 적금대로 들고 대출금은 대출금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도대체 왜 그 쉬운 산수도 못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98년 초에 나는 은행에서 돈을 왕창 빌렸다. 나는 그 돈을 상호신용금고에 넣고 높은 이자를 받았는데 은행 대출 이자를 갚고도 돈이 남았다. 그때 이후로는 그런 재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기억해라. 그 어떤 금융기관이건 간에 그들이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는 자원 봉사자들은 절대 아니다. 금융기관의 정확한 표현은 금융회사이며 당신의 돈을 이용하여 스스로 부자가 되고자 애쓰는 영리 목적의 법인이다. 영리 목적으로 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금융기관의 창구 직원은 물론 금융기관에 소속된 재테크 상담가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은행에서는 자기들 상품에 가입하라고 하고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을 권유하고 증권회사는 자기들 상품을 권유할 것 아닌가.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저희한테 돈을 맡기지 마시고 이러 저러한 곳에 가셔서 이렇게 하시면 이자를 이만큼 더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당신에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다행히도 요즘은 인터넷 상에서 금융 상품들을 비교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여러 곳이 있다. 그런 사이트들을 수시로 방문하여 금리 변동 상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여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라. 당신이 모르면 모르는 만큼 호구가 되어 버리는 것이 머니 게임이다.

(당신이 금융기관이나 재테크의 “기본조차 모르고 있다면” 전직 은행원 출신의 일본인 요코다 하마오의 ‘부자는 20대에 결정 된다’를 나이와 상관없이 읽어라. 하지만 이 책의 내용 중 부자들의 특성으로 나오는 “배냇 저고리, 아기수첩, 초등학교 성적표 등을 간직해둔다”는 것은 일본의 부자들에게 물어보니 보편적인 특성 같지는 않으며 저자가 가난뱅이가 되는 지름길로 말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적용이 잘못되었음을 염두에 두어라. 이상건 기자의 '돈 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도 읽어라. 이 책은 재테크의 기초 원리를 다루고 있기에 내가 난생 처음 추천사라는 것을 써준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의 원고를 읽었을 때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심하게도 도대체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른단 말인가?”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저자의 말은 “대다수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쯧쯧 )

8. 나는 무소유의 삶은 살지 못 한다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질 수 있다? 맞는 말 같다. 도가의 태평경(太平經)은 말한다. “재물이란 천, 지, 중화의 소유로서, 그것으로 사람을 함께 기르는 것이다. 부유한 집은 단지 우연히 이를 모아둔 곳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창고 안의 쥐가 늘 혼자 배불리 먹고 있지만, 이 큰 곡간의 곡식이 본래 그 쥐의 소유가 아닌 것과 같다.” 성경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23)고 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장려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행무상(諸行無常: 一切有爲法無常)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 어느 종교이건 그 가르침대로 살았던 성인들은 모두 돈을 초월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저 성인들을 존경하며 그 마음이나마 조금 배워보고자 하는 속세의 나 같은 사람들은 돈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바람을 피우지도 않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정당하게 부를 획득한 자라고 하여도 종교 안에서는 안심하지 못한다. 예수는 그런 사람에게 그 부 “모두를 팔아” 이웃에게 나눠주지 않는 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였다(누가복음 18:18-30). 참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주문 아닌가. 그래서 나 같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리장 삭개오가 자신의 소유 모두가 아니라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을 때는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했다(누가복음 19:9). 왜 세무서 직원에게는 천국이 50% 세일가로 제공되는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재산의 절반 정도를 나누어 주는 조건이라면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성실하게 농사지어 부자가 된 농부가 이제는 좀 놀면서 쉬려고 하는데 예수는 그를 “어리석은 자여”라고 책망한다.(누가복음12:16-21)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요지는 베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행복해 질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일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성경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고 있다가 주인에게 돌려 준 종은 주인에게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는” 벌을 받는다(마태복음 25:14-30).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방관하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고” “있는 자는 그것마저 받아 더 풍족하게 된다.” 게으른 자들 덕분에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는 해석도 할 수 있고 부익부 빈익빈은 피할 수 없다는 말도 될 성 싶다.

종교적 차원을 떠나 자연 속에서 무소유의 삶을 산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것 같다. 무소유의 삶은 분명 소유를 위한 전쟁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에게는 대안적 삶이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법정 스님이나 디오게네스처럼 혼자 산다면 무소유의 삶을 살아도 된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이다. 그러나 가족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식의 행복 추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아니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법정스님 조차 돈 자체는 잘 번다. 99년 1월 국민일보 기사에는 법정 스님이 98년도에 인세로 받은 돈만 2~3억 원이라고 하였다. 디오게네스는 돈 대신 프리섹스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무소유의 삶은, 인간과 동식물과 자연이 공생하며 행복해지는 삶을 제시했던 일본의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영향을 받아 전 세계 50여 곳에 세워진 무소유 공동체들에서 엿 볼 수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소유될 수 없으며 다만 쓰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소유욕이 옭아매는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것 같다. www.yamagishism.co.kr 을 찾아보면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유냐 무소유냐의 길은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무소유의 길을 존경하지만 자발적으로 원하였던 적은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기에는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속인이라고? 물론이다. 성인인척 한 적도 없지 않은가. 나 같은 속인들을 위하여 이미 60년대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참 부자가 되려면 읽어라)에서,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소유형 인간이 되지 말고 존재형 인간이 되라고 하였다.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과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삶의 태도를 가진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인들의 삶에서 진정한 휴머니즘적인 존재양식을 제안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말이 우리의 이성을 움직인다 하여도 우리가 순식간에 소유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제러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에서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말하여도 무소유의 길을 택하지 않은 삶에서는 소유가 여전히 행복의 한 조건으로 남아 있다.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성인이다.

하지만 나는 눈이 오는 날, 길거리 어딘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은 사랑하는 아내와 향기 그윽한 원두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다. 바람 부는 날 나는 깨끗하게 다림질 된 셔츠를 입고 싶다. 비가 오는 날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 놓고 크게 듣고 싶기도 하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술 한잔 정도는 하고 싶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는 바람이 살랑거리는 창문을 열고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편안히 누워 팬티 바람으로 낮잠을 자고 싶다. 그곳이 바닷가 해변이라면 더욱 좋다. 매일같이 샤워도 하고 싶으며 샤워 후에 시원한 음료 한잔은 마시고 싶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버스가 왔다고 같이 뛰어가기 보다는 택시를 잡아 편히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었다. 손영란 시인은 이러한 나의 마음을 “별것 아닌 것을 그리워 함”이라는 시에서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생활의 격이란 별 것 아니다
때맞춰 뜨거운 물에 목욕할 수 있고
갓 구운 빵을 커피와 함께 먹는 것이며
아침에 가끔씩 모짜르트를 듣고
매일 아침 배달 된 신문을 읽는 것이다
버스를 타도 좋으나 어쩌다 한 번씩은 차를 혼자 모는 것이다
구겨진 옷이 아니라 깨끗이 다린 옷을 입고
돈은 반듯하게 펴서 지갑에 가지런히 넣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가끔씩은 집안이 환해지도록 꽃을 사는 것이다
나는 정말 별 것 아닌 것을 그리워한다
로마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몇 개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영화‘존 큐(John Q)’에서 주인공 존 큐는 가난한 흑인 노동자이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심장병으로 쓰러진다. 수술비 25만 달러가 있어야 하지만 자동차 할부금도 내지 못하여 차를 빼앗긴 처지이다. 결국 그는 아들을 살리려고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인다. 아들에게 심장을 주기 위해 권총 자살을 결심한 존 큐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도 많이 벌어. 남을 배신하더라도…. 아빠처럼 바보같이 살진 마. 돈이 있으면 모든 게 다 쉬워… ”

나 역시 내 가족이 수술비가 없어 죽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소유하고 싶은 본능을 어쩌란 말이며 황금이 돌로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무리 사랑이 넘쳐 나는 부부 지간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의 빚을 갚고자 아내가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지만 모두 냉랭하게 대할 때 아내는 서러워 질 것이다. 쪼들리는 살림에 쓰레기봉투 하나를 아끼려고 지나치게 꽉꽉 눌러 담다가 그만 비닐 봉투의 옆구리가 터지고 말았을 때 아내는 서글픈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내와 내 가족에게 그런 서글픔만큼은 주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존 큐’에서 주인공은 경기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카드빚은 생각하지도 않고 새 자동차를 구입하는 한심한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남을 배신하여야” 버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택한 삶은 소유의 삶이었으나 명심하라, 사업과 투자의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억제하였다. 즉 소유를 지향하면서도 절약을 미덕으로 삼고 “행복하게 돈을 모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모은 돈들은 점점 더 불어나더니 나를 부자로 더욱 더 만들어 주었고 그때부터 비로소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라. 소유를 더 하려면 무소유에 가까운 절약부터 하여야 한다는 진리를 말이다.

우리들 생활이 철학적 사고와 지고의 선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근본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당신이 내 가족의 수술비를 줄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당신이 간디처럼 크게 버린 사람도 아니라면, 내 글에서 아무리 돈 냄새가 물씬물씬(物神物神) 나더라도 “크게 버리면 크게 얻는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라. 크게 버릴만한 것을 가져 본 적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무소유 어쩌고 저쩌구 하는 것이 내게는 그들만의 자위행위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6장. 성공과 그 과정에서 혼란을 느낄 때

1. 젊을수록 돈을 아껴라

수입에 비해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 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놀러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돈 쓸 곳이 하나 둘이 아니고 멋진 이성 친구를 사귀고도 싶고, - 갖고 싶은 것들도 적지 않은 때가 20대와 30대이다. 결혼을 할 때도 기억에 남는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고 가구도 좋은 것으로 장만하고 싶고 뭐 그럴 것이다. 온갖 잡지들과 TV 광고 속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젊은 모델들처럼 살고 싶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부잣집 친구들에게 시샘과 부러움이 솟아나기도 하는 시절이 그 시절 아니겠는가.

그러나 명심해라. 당신이 돈 많은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수입에 비하여 가장 많은 저축을 가장 악착같이 하여야 할 때가 바로 그 시절이다. 20대와 30대 시절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수호하기 위하여서건 취미를 위하여서건 그 어떤 명분으로 사용하는 돈이건 간에 그 돈이 모여 적절하게 투자될 경우 10년 후에는 그 수익금만으로도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다. 20대와 30대에 모은 1억 원이 40대에 가서는 10억 원이 되어 그 수익금이 1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20대와 30대에 소비한 1억 원은 40대에 가서 그저 사진첩 몇 권 정도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30대에 1억 원을 모으는데 들어가는 노력은 40대에 1억 원을 모으는데 들어가게 될 어려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 쓸 곳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은 지출을 줄이는 대신 쉽게 떼돈을 벌어 자신의 욕구를 더더욱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기면서 주식이나 다단계의 미혹에 빠져 든다. 내가 독자들에게 받는 메일들 중 정말 대책이 안서는 경우가 바로 그렇게 해서 빚을 많이 지게 된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사람들은 고통을 받아도 싸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수술비 때문에 빚을 지게 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 빚이 가족의 잘못으로 인한 경우는 어느 정도만 안타깝게 여기며 친구나 타인의 잘못으로 인하여 빚이 생긴 경우는 조금만 안타깝게 여긴다. 본인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빚이 있는 경우 재테크 투자에 대한 공부는 언제나 무모함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은 오직 한 가지, 재테크에 대한 공부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거지처럼 살면서 빚부터 갚으라는 것뿐이다.)

물론 여기서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찬란한 젊은 날들의 그 아까운 청춘을 돈을 모으는데 만 집중하며 살다가, 즐길 수 있는 시간 다 지나간 뒤 죽기 직전에 부자가 되면 무엇 하겠는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늙으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돈 때문에 바둥거리며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병이라도 걸리면 누가 그 시절을 보상하여 준다는 말인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찬란한 젊음이라는 것을 ‘제 딴에는 찬란하게’ 보내면 보낼수록 중년 이후에는 쳐진 어깨를 감수하여야 할 것이다. 젊었을 때 신나게 노는데 돈을 다 써 버리고 늙어서 돈도 없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는 왜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조화와 균형을 부르짖으며 젊음을 보냈던 부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게 데리고 와 봐라. 젊음을 즐기면서도 부자가 되려는 것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다 잡으려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서 당신이 놓치기 싫어하는 그 청춘이라는 토끼에 대해 한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잘난 청춘 시절에 돈과 시간을 바치며 하고 있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한번 지금 당장 적어 보아라. 이웃을 위한 봉사라도 한다면 내가 말을 안 한다. 기껏해야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인터넷에서 채팅이나 하는 것이 젊음을 불사르는 고귀한 행위란 말인가?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이리비척 저리비척 하는 것이 젊음의 표출인가? MT 나 연수라는 명목으로 집단으로 몰려가서 고스톱 치고 술 먹고 토하고 여자 친구 자빠뜨릴 생각을 하는 게 청춘이라고? 친구 생일에 다 같이 술에 취하는 것이 젊은 우정의 표출이라고?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마저 유명 브랜드 상품에 쓰는 바람에 카드빚에 시달리면서도 ‘있는 놈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안 보인다.’고? 지랄들 하고 자빠졌네. 성공한 사람들이, 깨끗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너희처럼 청춘을 보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멍청한 놈(년)들.

부자로 살고 싶다면 젊은 시절에 철저하게 돈을 움켜쥐어라.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면 결혼식도 간소하게 하고 모든 허례허식을 물리쳐라. 나는 도대체 전세를 살고 있으면서도 아이 돌잔치를 호텔에서 하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돌잔치가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말은 하지도 말아라. 그 아이가 기억도 하지 못할 일을 하면서 아이를 위하여 한다고? 남에게 보이려고 혹은 부모가 즐기려고 하는 것이지 그게 어디 아이를 위해 하는 것이란 말인가. 부조금 받으면 큰 돈 들어가지 않는다고? 부조금 받지 않고 그냥 가족 끼리 조촐하게 하면 아이에게 큰일이라도 생기나 보지?

신혼부부들에게 주는 경고: 비빌 언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면 결혼 후 5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 시기에 돈을 모으지 못하면 당신들은 평생 부자가 되기 힘들다. 혼인 비용을 최대로 줄이고 현금을 보유해라. 가구도 가장 싼 것으로 장만하고 그 어떤 것이건 간에 중고 물품도 고려하여 보라. 호사스러운 혼수품도 5년 후면 고물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결혼예물? 부잣집 친구들을 절대 따라 하지 말라. 일생 한번 밖에 없는 결혼식인데 돈 좀 써야 하지 않느냐고? 글쎄다. 그렇게 시작한 부부들 3~4쌍 중 한 쌍은 이혼하며 대다수는 평생 돈 걱정 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총각시절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은 대부분 중고였다. 결혼 전 내가 아내에게 사준 첫 커피는 특급호텔 커피였으나 첫 음식은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끓여주는 천 원짜리 동태찌개였고 첫 선물은 그 시장에서 팔던 천 원짜리 목도리였다. 결혼 전 나는 빚도 많았었기에 아내에게 와인 한잔 사준 적도 없다. 당신이 처녀라면 그런 나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내게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했다. 그 당시 내 처지는 빚이 많았기에(당시 동부 이촌동 25평 맨션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여자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결혼 후 나의 월 수입은 결코 적지 않았으나 내가 진 빚부터 갚아야 했기에 우리는 전혀 돈을 쓰지 못했다. 결혼 후 2-3년이 지나자 나는 빚도 갚을 수 있었고 어느 상호신용금고에서 경매로 넘기기 직전의 아파트를 싸게 구입하였다. 하던 사업도 그럭저럭 되어 가면서 다시 1년 후 자가용과 기사도 마련하였고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억이 현금으로 모일 때 까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아내에게도, 내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말도 하지 않았고 티도 별로 내지 않았다(돈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언제나 날파리들이 몰려든다.) 자가용과 기사를 둔 것은 돈 있는 티를 낸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길거리에 허비하는 시간을 절약하려고 그랬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젊은 시절에 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특별한 재능도 없는 보통 사람이라면 당신 호주머니에 돈이 쌓이는 법칙은 단 하나라는 사실이다. ‘먼저 몸값을 올려나가면서 최대한 절약하고 최대한 먼저 모아라. 그러면 먼저 쌓일 것이다.’ 그 쌓인 돈이 부자가 될 종자돈이 된다. 젊었을 때 놀 것 다 찾아다니고 즐길 것 다 찾아다니며 카드를 긋고, 쉴 것 다 찾아 먹는 사람들이여. 당신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았던 덕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당신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젊음을 보냈던 사람들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라. 명심해라. 당신이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음 시 구절이 당신의 마음을 송곳처럼 찌르게 될 것이다.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 봐,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어릴 때부터 가난, 술, 여자, 동성애, 질병, 교도소 등의 단어로 얼룩진 지저분한 삶을 살다가 동거하던 창녀 앞에서 죽었던 Paul Verlaine 의 시 ‘하늘은 지붕 위로’에서 인용함.)

하늘은 지붕 위로

하늘은 지붕 위로
저렇듯 푸르고 조용한데,

지붕 위에 잎사귀를
일렁이는 종려나무.

하늘 가운데 보이는 종
부드럽게 우는데,

나무 위에 슬피
우짖는 새 한 마리.

아하, 삶은 저기 저렇게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 봐,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2. 변화가 없는 삶은 불행하다

부자들에게는 불행하고 가난하였던 과거가, 나의 경우도 그렇듯이 종종 훈장처럼 따라 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담은 불행한 상황을 자기 힘으로 역전시켜 행복한 상황으로 만든 사례로 종종 인용되곤 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난하여 끼니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는데 노력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곧 그들의 삶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었음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푸세식 변소에서 냄새를 참으며 용변을 보던 사람이 수세식 양변기에서 쾌적하게 용변을 본다고 해서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돈이 많아지면 불편하고 구차한 환경이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변할 뿐이다. 생활수준이 높다고 해서 높은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비슷한 예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여 유명한 대학에 들어갔다거나 수년간 어렵게 공부하여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성공담과 관련하여서도 나타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마치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사례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좋은 학력을 갖게 되었을 뿐이고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하였을 뿐이다. 그렇게 하여 이 사회에서 얻게 될 대가가 좀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행복의 필수조건으로 착각하지는 말라.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고 나서 “꿈을 가져라” 혹은 “야망을 가져라”고 말하는 것은 종종 마치 명예나 지위, 돈, 학벌 등에 대한 꿈과 야망이 성취되어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듯 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성공하게 되면 기쁨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쁨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잠시 뿐이며 그 어떤 성공이건 간에 결코 행복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성취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뿐이지 그 성취감이 행복과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갔다고 해서 행복해졌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TV 프로그램 ‘성공시대’(이미 방송이 끝났지만 인터넷에서 볼 수 있으므로 가능한 많이 보아라)나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본받아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저런 사람이 안 되면 내 삶은 불행하여 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분명히 말한다. 그 어떠한 실패도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 어떤 삶도 열등하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내가 가진 자로서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못 가진 자와 실패한 자를 “못난 놈”, “불행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철저하게 비난하고 꾸짖는 대상은 시간을 우습게 여기는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자기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서도 돈과 성공과 행복을 아주 ‘편안하게’ 꿈꾸는 사람들이다. )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반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유형의 것이건 무형의 것이건 상관없이 그 양과 질이 증가하는 과정이 계속될 때 얻어진다.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 David G. Myers) 역시 ‘행복의 추구’(The Pursuit of Happiness : Discovering the Pathway to Fulfillment, Well-Being, and Enduring Personal Joy)에서 ‘고정된 고소득보다는 소득이 증가하는 상태가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소득의 많고 적음 그 자체가 아니라 소득이 매년 오르고 있을 때 인간은 행복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매년 연봉 백만 달러를 계속 받는 사람보다는 10만 달러의 연봉이 매년 증가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의 말에 한 가지 더 붙이고 싶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스스로 일으켜 그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가치를 계속 증대시켜 나갈 때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말이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주인공인 25세 여성 안진진의 이모는 심심해하는 부유층 사모님이다. 돈도 잘 벌고 착실하기까지 한 멋쟁이 신사 남편을 둔 이모는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이 넘쳐 나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그 잘 살던 이모가 너무나 행복한 일상에 지쳐 자살한다. 부자였지만 삶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이 종종 자살하는 이유 역시 삶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고 나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나의 미래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오판하고 그런 자살 시도를 하였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행복의 추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했다. 그 권리를 누리려면 스스로의 변화를 먼저 주도하라.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다면 따라서 좋다고 박수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뿌듯하여 질 수 있는 주체적 삶을 찾아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은 이미 생명이 죽은 삶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에 익숙하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이 버는 돈의 액수가 작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신이 돈을 얼마나 벌든 간에 삶에 변화가 없고 뿌듯함이 없다면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증가시키는 노력을 할 때 행복은 매일같이 주어지는 법이며 덤으로 뿌듯함 마저 느끼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 변화의 방향을 어느 쪽에다 두는가에 있다. 그 방향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그 하나는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많이 받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지식들을 추구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사회에서 대가를 받는 것과는 관련 없이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을 지향하는 것이다. 참선을 하면서 자기를 바라본다거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생을 배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돈과 관련되지 않은 것에 그 방향을 두고 있다면 당연히 돈은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변화가 주는 뿌듯함은 곧 돈 문제로 인하여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실한 신앙인들처럼 자족과 감사의 생활을 영위하며 살 ‘자신이 있다면’(사도 바울 같이 말이다) 계속 그렇게 돈과 거리를 두고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의 한 형태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받는 쪽에다 변화의 방향을 두고 있다면 그 대가 자체 보다는 변화의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 관심을 두어라. 그렇게 하면 행복감과 뿌듯함을 매일 맛 볼 수 있고 돈은 저만치에서 뒤따라오게 된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여 삶과 생활 속에서 실천할 때 언제나 나는 뿌듯함과 행복감에 충만하였다. 30대 초에 내가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가 새벽 4시에 사무실을 나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던 집으로 가면서 어둠 속에서 느꼈던 그 가슴 뿌듯함을, 20대에 내가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새벽녘이 밝아오는 가운데 끝냈을 때 느꼈던 그 환희에 찬 뿌듯함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돈? 돈은 그 뒤에서 성큼성큼 따라왔다.

비록 당신은 돈이 뒤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정말인가 의심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겠지만 내 말을 믿으라. 내 귀에는 그 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이미 살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변화가 싫다고? 지금 그 상태로 있는 게 좋고 행복하다고? 내가 알기로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 무소유 신봉자, 신실한 신앙인 세 종류뿐이다.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변화 없이 사는 게 좋고 행복하다면 내게 그렇게 사는 비결 좀 알려다오. )


3. 전쟁터에서 휴머니즘을 찾지 말라

20세기 말,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하였을 때 미 해병대가 파견되었다. 게릴라들은 주민들을 나무 십자가에 묶어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에 숨어 총을 쏴 댔다. 미 해병대는 이런 상황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그 결과 미군이 들어갔던 지역들은 모두 게릴라들이 석권하였고 그곳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한편 프랑스는 외인부대를 파견하였다. 외인부대는 자발적인 의사로 프랑스 정부와 계약을 맺고 군인이 된 자들이다. 그들은 과연 십자가에 주민들을 묶어놓고 그 뒤에 숨어 공격하는 게릴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주민이고 뭐고 고려함이 없이 그냥 다 쏴 죽였다. 그리고 게릴라들은 적어도 외인부대에 대해서만큼은 자기들의 수법이 통하지 않음을 알았고 후퇴하였다. 그 결과 외인부대가 들어간 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당신이 만일 작전 사령관이라고 하자. 어느 쪽 방법을 택할 것인가. 무고한 양민들 뒤에 숨은 적군을 살해하고자 그 양민들도 쏴 죽일 것인가. 아니면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후퇴할 것인가. 대부분의 전쟁 소설과 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주인공은 무고한 양민을 죽이지는 못하여, 또는 적군조차 죽이지 못하여,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죽고 마는 사람이다(그 사람으로 인하여 부대 전체가 입게 되는 손실은 별로 묘사되지 않는다).

1898년 독일에서 출생한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줄거리도 마찬가지이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의 태풍 속에서 공습은 계속되고 폐허만 남은 세상에서 주인공 그래비와 운명적인 여인 엘리자벳은 찰나적인 사랑에 빠진다. 눈 덮인 러시아 전선에서 휴가를 받고 온 그에게 엘리자벳의 사랑은 존재의 이유가 될 정도로 강렬하다. 죽음의 거리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사랑은 인간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움과 동시에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다시금 부대로 복귀한 주인공 그래비는 엘리자벳이 보낸 편지를 읽다가 자신이 살려준 빨치산에 의해 오히려 저격당해 허무하게 죽어간다. 가수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 비디오에서는 군인 한명이 정글 속에서 베트콩을 경계하지 않고 나비를 구경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은 이것이다: 전쟁터에서 전쟁의 법칙을 무시하고 휴머니즘을 찾으면 당신이 죽는다.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있던 미국의 인기 TV 프로그램 ‘서바이버(Survivor)’에서 참가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경쟁하게 된다. 각 팀은 매 단계마다 자기 팀의 참가자 중 한명을 축출해 버려야 한다. 최후의 승자는 그러한 경쟁과 축출을 통해 끝까지 남은 사람이 되게 된다. 때문에 상대팀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역할을 하게 될 팀원은 남겨두어야 하였지만 역으로 그 팀원이 나를 축출해 버리면 나는 패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나는 아프리카 편을 보았다. 어느 한 팀에서 여자 환자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그 환자를 돌보겠다고 약속한 팀원은 환자에게 음식을 준다는 미명하에 몰래 자기도 음식을 먹었다. 훔쳐 먹은 것이었다. 윤리적으로 볼 때 동료들을 속이고 나쁜 짓을 한 그 팀원이 당연히 제일 먼저 축출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제일 먼저 축출된 사람은 여자 환자였다. 상대팀과의 경쟁에서 환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냉정한 논리가 팀원들의 판단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매 단계마다 각 팀에서 축출된 사람은, 인간관계에만 치중한 사람과 개인적인 공로 혹은 명예만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최후에 승자가 된 사람은 동료들과의 동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새겨들어라!)

당신이 경쟁과 축출의 게임이 싫다면 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적군을 죽이지 못하겠다면 군대에 가지 말고 대신 감옥살이를 하면 된다. 내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경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이 게임이 요구하는 차가운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휴머니즘을 찾는다는 것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 이득을 추구하는 경제 전쟁은 더더욱 심화되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어떤 휴머니즘 향기 그윽한 대안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경제 전쟁이라고 말을 하여도 시큰둥하게 듣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내 눈에는 지금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총탄들이 보이고 여기저기서 폭탄이 떨어져 땅이 움푹움푹 파이고 건물이 무너지는 광경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냉전 이후 더 이상 국가의 역할은 없으며 모든 사회적 문제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데(사회적 평등과 책임을 전제하고 있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별된다) 신자유주의는 당연히 빈부격차와 인종갈등, 지역갈등을 그 어두운 그림자로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그림자를 없애주고 살벌한 경제 전쟁을 종식시킬 앤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 같은 것은 과연 있는 것일까?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제3의 길을 “유럽의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화려한 수식어”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제 3의 길이 있건 없건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길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길이 마련되기 전에 나는, 어쩌면 당신도 ,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니 당신이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경제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변화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총체적 중산층 국가로 불리던 일본마저도 그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해 중류층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이 게임은 아주 지극히 단순하다. 이익을 누가 더 많이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그것뿐이다. 그것 이외 고려하여야 할 다른 이데올로기는 없다. 지역 경제를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특정 계층을 고려하거나, 기존 근로자들의 기득권이나 생존권에 신경을 쓰거나 하게 되면 그것은 곧 경쟁력 상실을 가져온다.

전쟁 중에 나비가 아름답다고 해서 구경하지 말라.
전쟁 중에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손을 내 밀지 말라.
전쟁 중에 하늘 노을이 아름답다고 해서 눈길을 보내지 말라.
그래야 총에 맞아죽지 않는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경제적으로 살아남으려면 휴머니즘이 아니라 손익계산서에서 이득이 나와야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행동하여야 하느냐고? 그래야만 경제 게임에서 이길 수 있고 자본이라고 하는 힘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지니지 못한 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외교관인 장 지로두가 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이 휴머니스트라면 경제 게임을 하지 않으면 된다. 축구팀에 농구 선수가 들어와서는 왜 손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징징대지 말고 돈 벌지 말라는 말이다.


4. 야망을 갖지 말라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 누구나 어릴 때부터 이 말을 들었을 것이다. ‘꿈을 가져라’는 말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꿈이 있었기에 성공하였다는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역시 바로 그렇게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는가.

경영 컨설턴트 James Champy 와 하버드대 Nitin Nohria 교수 역시 ‘이루지 못할 야망은 없다’(원제 The Arc of Ambition; 청소년은 읽어라)에서 야망이나 꿈이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라이트 형제나 넬슨 만델라, 월마트의 샘 월튼,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자동차 제조의 헨리포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CNN의 테드 터너 등등의 인물들이 야망을 일찍부터 품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행동하였기에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들에서 감동을 받고 나름대로 꿈과 야망을 품는다.

꿈 깨라. 꿈을 갖고 야망만 품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가? 꿈과 야망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누구나 성공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데 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라는 말인가.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은 야무지고 원대하게 품지만 그 꿈을 실현시키는 아주 작은 단계들은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고자 하는 사람이 망원경으로 부산만 바라보면서 집 밖으로 나서는 첫 걸음들은 무의미하게 여기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고 치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10년 안에 10억 원을 모으겠다’는 식의 꿈을 내게 피력한다(어떤 젊은이들은 한심하게도 100억 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꿈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소망에 지나지 않으며 너무 막연하다. 너무 원대하다. 당신은 어서 빨리 단번에 부자가 되고 싶은데 지금의 자기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그 꿈을 이룰 구체적인 방법도 없다. 그 결과 공상만 많아진다. ‘아, 나한테 돈이 몇 억 있다면, 나한테 이러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무엇 무엇을 해볼 텐데, 복권에 당첨되면 이런 걸 해볼 텐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에 사로잡히면 일확천금만 꿈꾸게 된다. 절약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당신은 현재 수입으로는 절약한다 하여도 백만장자가 되기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돈은 부자가 되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될 것으로 여기고 미련 없이 다 소비하고 만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돈을 빚내서 쓰게 되고 모든 것을 신용카드에 의존하면서 빚을 메꿔 나가는 그러한 카드 인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일확천금의 꿈이 당신을 오히려 도태시킨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나 야망은 버려라. 10년 후의 목표? 5년 후의 목표도 세우지 말라. 그 기간 동안 당신은 그만 지쳐버리고 만다. 그저 1년 정도 앞의 목표만을 세우되 1,000만원을 모으는 것 같은 소박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목표를 세워라. 그러한 목표가 정하여지면 당신은 이제 당신의 수입에서 얼마를 떼어내 얼마 동안이나 저축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계산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동 지침이 당신 자신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세워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 행동 지침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조만간 목돈을 쥐게 될 것이며, 바로 그 목돈이 종자돈이 되어 부자의 길로 접어드는 첫 계단에 올라 갈 수 있게 된다. (명심해라. 부자가 되는 게임의 첫 번째 승자는 누가 더 먼저 자기 몸값을 올리고 종자돈을 손에 쥐는가에 달려 있다.)

그 소박해 보이는 목돈이 손에 쥐어지게 될 시간이 언제가 될 것인지는 순전히 당신이 현재의 수입 가운데 얼마나 소비할 것이며 얼마나 저축할 것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기간을 6개월로 만들려면 어쩌면 월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저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간을 단축시키겠다면 그 길 밖에는 없으므로 그렇게 해라. 일단 , 6개월이건 1년이건 1년 미만의 가까운 미래에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면 절대, 절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 통장에 모인 돈을 뒤적거리며 안달하지도 말라. 그 모아진 돈을 부자가 되려는 꿈과 비교하고 계산하며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미래 투시 따위도 절대 하지 말라. 몇 개월 치가 모였는지도 잊어버리고, 그저 다음 달에 저축하여야 할 돈만 생각하여라.

이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백이면 백 모두 참고서의 앞부분만 새까맣다. 왜 그런가 하면 처음에 나온 부분을 지나 다음 부분에 가서는 다시 처음 부분을 들춰 보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 그저께 공부 한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감에 지나간 부분을 들춰 보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당연히 상당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므로 오늘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지난 주 것을 복습하게 된다. 이러니 앞부분만 자꾸 반복하게 되어 앞부분의 페이지들만 새까맣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 나오다가 뒤를 돌아 본 롯의 아내처럼 소금 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계속 전진만 하라. 앞을 바라보되 절대 저 높은 계단 꼭대기 위의 찬란한 태양빛을 성급히 찾지 말라. 오르페우스(Orfeus)처럼 에우리뒤케(Euridice)를 또 한 번 잃어버리게 될 뿐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오늘 지금 밟아야 할 계단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뿐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는 프로 풋볼팀 마이애미 샤크스 안팎의 인물들이 벌이는 삶의 혼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명작(내가 보기에는)이다. 영화 속에서 토니 다마토(알 파치노)는 노장 코치다. 그의 팀은 3연패의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내부적으로 팀은 분열되어 있다. 그들 앞에서 토니는 짧지만 감동적인 스피치를 한다. ‘인생이나 풋볼이나 1인치 씩 앞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 그 1인치에 얼마나 최선을 하느냐에 따라 거기서 승리와 패배가 갈라진다. 승리와 패배의 차이는 결국 1인치의 차이이다. 우리는 오직 1인치를 위해 달릴 뿐이다.’

미래의 야망은 던져 버려라. 꿈과 야망은 성공의 원동력이 아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1인치 전진을 위하여 오늘 외롭게 최선을 다하는 힘이 바로 성공의 원동력이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 피터 샘프라스 역시 성공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나는 결코 한 시합에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한 세트나 한 게임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한 점만을 따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솔직히 샘프라스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지만 나 역시 그 사람처럼 하여 왔다. 당신도 그렇게 하라.


5. Life 와 Living

나는 인생을 Life와 Living으로 구분한다. 번역을 한다면 삶과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Living은 경제적 대가를 얻고자 시간을 투여하는 대상 혹은 그런 목적으로 일하는 시간 자체를 그 영역으로 갖는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그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건 없건, 그 대가가 많건 적건 간에 무료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면 모조리 Living 에 속한다.

Life는 돈을 벌고자 하는 행위와는 관계없이 시간을 사용하는 영역이며 우정, 사랑, 희생, 보람, 가족, 자연 등이 그 중요 가치를 이루지만 게임이나 영화, 음악 등과 같이 자신이 재미있어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도 이 영역에 속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을 택하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도 있는데도 적은 보수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Living 속에 Life가 깊이 스며든 경우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봉사나 보람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대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Life를 위장한 위선적인Living 에 불과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예술가들처럼 Life 와 Living 의 영역이 상당 부분 중복되는 경우들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그 두 영역이 분리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Living 을 Life 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식당을 하는 사람에게 식당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히 Living 이 되겠지만 불우한 이웃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면 그 일은 Life 도 되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인생은 이처럼 Living 속에서 Life 를 추구하며 그 구분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Life는 Living 에서 얻은 돈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Living 이 나무의 뿌리와 줄기라면 Life는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뿌리도 없이 Life에 너무 치우치게 되면 Living이 흔들리게 된다. 예컨대 하루에 10 시간씩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되면 건강한 몸을 갖게 되어 Life는 튼튼해 질 수 있겠지만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은 춥고 배가 고파질 것이다. 신앙을 자신의 최우선 Life로 생각하는 직장인이 교회에서 철야 예배를 보고 아침에 출근하여 일터에서 꾸벅 꾸벅 존다면 그의 Living 은 조만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직장인이 공휴일 마다 가족과 함께 등산이나 낚시를 한다면 Life 는 튼튼할지 모르지만 Living을 Up Grade 시킬 시간을 투여하지 않기에 조만간 직장에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수도사들처럼 Living을 거의 무시한 채로 Life 만을 중시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한 가족의 가장이 기본적인 Living 마저 무시한 채 자신의 Life만을 찾고자 한다면 그 가족의 Living은 흔들리게 되고 결국은 가족의 Life 마저도 무너질 수가 있다.

반대로 Living을 중시하다가 Life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택시회사에 고용되어 있었다가 개인택시 면허를 받아 독립하게 되면 자신이 버는 돈 모두가 자기 수입으로 잡게 되어 처음에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느낄 정도로 운전을 하며 돈을 벌고자 한다. 그러다가 몸이 쇠약해지면서 코피를 흘리게 되면 그때서야, ‘아차, 돈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는다. Living 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건강이라는 Life를 놓치게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족의 가장이 자신의 바쁜 Living 을 핑계로 자녀에 대한 모든 문제는 아내에게만 맡겨 놓는 경우 역시 아버지로서의 Life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만다. 돈이 되는 환자들에만 매달리는 의사 혹은 수임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사건만 수임하는 변호사 같은 경우 Living은 성공적일 수 있으나 그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Life는 허약한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부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대부분의 부자들은 예술가들처럼 Living에 속하는 일을 자신의 Life로 생각하며 살아 온 사람들이다. 일은 일상에서 그들이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일하는 것을 그 어떤 가치 보다 우선시하며 즐겨왔다. 하지만 일 자체를 평생의 의무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평생 일만 하여야 하는 일개미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하곤 했다. 천국이나 유토피아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다. 인간이 바라는 이상향은 기본적으로 무노동의 세계이다. 평생을 일만 하다가 일벌레로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죽을 때, 일을 더하고 싶다고 말하며 죽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일, 일, 일’하며 살았느냐고? 일을 효율적으로 남들 보다 더 잘 하게 되면 세상에서 받는 대가가 커진다. 그 받는 대가가 쌓여 부자가 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일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된다. 즉 Living 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Life 가 가능하게 된다. 반대로, 젊어서 Life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면 중년 이후에는 Living 때문에 쩔쩔 매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우선은 Living 에 최선을 다하면서 30대가 끝나기 전에 Living 영역에서 뭔가 이룩해 놓고자 하였다. 즉 철저하게 우선순위를 Living 에 두었다. Living 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바빠진다. 정신없이 바쁘다 보면 문득 회의감이 찾아 올 것이다. Life와의 균형 문제로 인하여 갈등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콜럼버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1493년’에서 콜럼버스의 아내는 남편에게 제발 돈 좀 벌어오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쁘게 만든다.’ 맞다. 이것은 웬만큼 부자가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부자가 되게 되면 한가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로 만들어 준 구조체를 관리하여야 하기에 시간에 더더욱 쫓기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랬었지만 이미 지금은 그 굴레에서 벗어났다. 거미줄을 아주 크게 쳐 놓고 벌레도 많이 잡아 놓은 느긋한 왕거미이건 작디작은 거미줄을 쳐 놓고 한없이 벌레를 기다리는 작은 거미이건 간에, Living을 위한 거미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벌레가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부자가 된 뒤의 Living 과 Life 사이의 균형 문제는 부자들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여야 할 문제이다. 문제는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생각하여야 할 균형과 불균형이다. 흔히 돈과 관련하여 사람을 평가할 때 아래 네 마디 중 하나를 사용한다.

돈도 없다. (Living도 Life도 신통치 않다)
돈은 없다. (Living은 신통치 않으나 Life는 좋다)
돈은 많다. (Living은 좋으나 Life는 신통치 않다)
돈도 많다. (Living도 좋고 Life도 좋다)

아마도 누구나 ‘돈도 많다’는 말을 듣고자 할 것이다. 내가 조언할 수 있는 것은, 부자가 되어가는 단계에서 만큼은 Living과 Life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완벽하게 잡으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일단은 Living 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라(이것을 나는 일용할 양식부터 먼저 구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야 뿌리가 깊고 굵게 박히며 비바람이 쳐도 열매가 맺는다. 자신이 원하는 Life를 갖고자 한다면 우선은 Living 에 충실하면서 돈부터 모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부자가 되어가는 단계에서 Life를 모조리 무시하지는 말아라. 최소한도는 해라. 기혼자라면 이를테면 배우자의 생일, 처음 만난 날, 결혼기념일만큼은 카드도 준비하고 꽃도 사고 촛불도 켜라.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애들이 아니라면 멀리 해라. 그래서 친구들이 핀잔을 주고 따돌림을 한다고 해서 속상해 하지 말라.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함을 결코 잊지 마라. 어차피 당신 친구들 대다수는 평생 돈 걱정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라.

하지만 아무리 돈을 모으느라 눈코 뜰 새가 없어도 비가 오면 때로는 비도 맞아 보고 맨발로 잔디를 밟기도 하여라.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삶도 종종 살펴보아라. 자신이 왜 부자가 되려는 지를 정확히 되새기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7장. 가난은 어떤 것이고, 왜 가난한 지를 모를 때

1. 가난은 사회구조적 현상인가

어떤 먹물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벌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의 원인을 결코 게으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소득불균형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히 구조적인 현상이며,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많이 주는 풍족한 사람들이 만드는 구조의 부작용이다. 우리는 저소득층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구조적 현상”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그 답은 대부분 이렇게 주어진다. “부모가 가난하여 그 자녀는 기회의 평등에서 열외 되어 교육을 못 받았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조건의 평등에서도 열외 되어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구조적 현상이다.” 이런 고리를 가난의 원인으로 믿는 사람들은 가난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간주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빈곤해결 정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B.Jordan, M.Rutter, N.Madge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인데 사회주의자들이 되게 좋아한다).

질문: 그렇다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만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럼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운이었을까? 왜 수많은 부자들은 하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것일까?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부모 중 절반은 가난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도처에 널려 있음을 잊지 말라.)

가난한 집안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국민소득이 수천 달라 미만인 나라들의 경우에서는 저소득-저교육의 순환고리가 빈곤세습의 원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어린이 노동자 4명 중 3명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은 성인이 돼도 고소득 직업을 가질 수 없어 가난의 악순환에 빠진다. 국민 총생산량이 적다 보니 일자리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학력이 좋은 사람들 만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0년대 까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고 전태일이 분신자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시대에서 가난은 ‘절대적 가난’이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에서건 3D 업종에 대한 회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고소득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그 말이 맞지 않는다. 물론 고소득 시대에서도 학력이 낮으면 노동 시간은 더 많고 임금은 낮다. 2000년 기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3천2백55만 명의 25.2%에 해당되는 8백23만2천여 명이 고졸 미만의 학력을 갖고 있는데 4명 가운데 1명꼴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백24만 명은 중학교 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황이며 주로 50대 이상에 집중되어 있다. 고졸 학력 미만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26.1시간으로 고졸자 213.2시간과 대졸자 190.9시간에 비해 많지만 임금은 고졸자의 87%, 대졸자의 58%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 학력이 곧 실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D 업종에서는 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교육의 정도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직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현재 내 친구들이 경영하는 공장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건 한국인이건 간에 학벌과 전혀 관계없이 꽤 괜찮은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하고 월 130만원에서 월150만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한국인 직원에게는 보너스를 추가로 주고 있지만 여전히 직원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무학력자라고 할지라도 이런 공장에서는 환영하며 악착같이 모은다면 2년이 지나면 3천만 원은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일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 아니냐고? (‘이런 일은 하지 말라’항목을 참조하라) 맞다. 하지만 일을 골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우선은 아무 일이라도 하면서 돈을 모아야 할 것 아닌가. 3천만 원 갖고 뭘 하느냐고? 다른 컬럼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할 만한 것들이야 널려 있다. (물론 개 같은 사장을 만나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가정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고소득시대의 가난한 가정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 중 하나를 안고 있다.

첫째, 가족 중 어느 한명이 술이나 도박, 과소비 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빚을 지고 있고 다른 가족들은 그 빚을 갚아 주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주로 아버지나 장남이 그 원인제공자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빚을 만들어 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럴듯한 명목으로 다른 가족들의 수입을 갈취하며 집안에 돈이 모일 겨를이 없게 만들고 다른 가족들 모두의 희망을 검게 칠해 놓는다.

둘째, 가장부터 뭔가 손쉽게 돈 버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떼돈을 벌 기회만을 찾는다. 예컨대 아주 높은 이자 혹은 투자수익을 준다는 사기꾼들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다 사기꾼에게 갖다 주지만 곧 그 돈 모두를 날리게 된다. 때로는 어떤 사업이나 장사가 돈을 아주 잘 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서 돈을 박박 긁어모아 시작하지만 준비 부족과 정신자세 부족으로 인해 망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렇게 해서 생긴 빚을 갚느라 온 가족의 허리가 휜다.

셋째, 예전에는 그럭저럭 살았으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또는 친구나 친척의 빚보증을 서 주었다가, 있는 재산 몽땅 다 말아 먹는 바람에, 재기할 힘을 잃어버린 경우이다. 가장은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병에 걸리고 남은 가족들 중 일부는 과거 생활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에 절망하여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부분의 경우 실직 상태이면서도 평일에 양복을 입고 등산을 하면 했지 작업복을 입고 일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넷째, 가장이 자신의 일당을 얼마 이상으로 정해 놓고 그 이하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 이상한 자존심 때문에 가난한 가족이 있다. 거지같은 생활을 할지언정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거나 그런 일을 시도는 하였지만 힘들어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땀을 흘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그들은 편하면서도 돈 많이 주는 일을 찾아다니며 자기에게 직업이 없는 이유는, 가진 자들이 나쁜 놈들이어서 그런 것이며 정치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이고 경제 정책을 잘못 세우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정말 골 때리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가족들 모두가 돈을 벌지만 그 돈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고 각자 관리하면서 각자 소비하기에 가난한 가족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모두가 합심하여 목돈을 먼저 만들어야 주거 환경부터 개선시킬 수 있는데 가족들 각자 따로 따로 행동하다 보니 돈이 모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장녀는 장녀대로 자기 화장품과 옷가지를 사느라고 수입을 거의 다 사용하며 장남은 분수에 넘치게 자가용 하나를 끌고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느라고 수입 이외에 카드빚까지 지는, 뭐 그런 식이다.

여섯째,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하는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보내려고, 또는 그 자식들이 성적도 뛰어나지도 않은데 자신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기를 쓰고 대학을 가느라고, 가족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로 투자하는 바람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그 자식이 별 볼일 없는 대학이나 심지어 대학원을 마칠 때 까지 용돈까지 쥐어 주는 한심한 가족도 있다. 그 자식이 취직이라도 하면 가족 모두 이제는 고생이 끝났다고 여기지만 이미 성인이 된 형제자매를 그가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나이가 든 부모를 부양하기에는 힘이 너무나 벅차다.

일곱째, 가족 중 누군가가 병에 걸려 있음으로 인하여 빚을 지고 나머지 가족들의 수입 대부분이 그 빚과 치료비에 바쳐지는 경우이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 장애로 인하여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가난한 경우도 있다. 가족 중에 그런 장애우가 있는 경우 다른 한명의 가족이 그 장애우를 돌보느라고 일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가난한 경우도 있다. 병이나 장애가 없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아이를 돌봐 줄 곳이 없어서 남편 혼자만의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가난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하고 돌보아 줄 가족이 없는 노인들 혹은 남편 없이(혹은 남편이 있어도 개 같다) 어린 아이를 돌보며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주부 가장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소득시대에서 사회구조적 원인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로 내가 간주하는 것은 오직 일곱 번째의 경우뿐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건 3D 업종에서 근로자를 찾기 어려운 시기가 되면 일자리를 찾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소득 시대의 가난은 ‘절대적 가난’이라기보다는 ‘상대적 가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비생활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혹자는,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시작할 자금이 없다는 것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몇 년 만 이를 악물고 일을 한다면 얼마든지 수천만 원을 모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소비를 늘리기 때문에 돈이 쌓이지 않는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태도에서 무슨 목돈 마련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며 설령 목돈이 쥐어진다 할지라도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빈민들에게는 전월세금의 인상이 너무나 빨라 셋방살이 탈출은커녕 비슷한 수준의 셋방을 지키기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내가 제시하는 대안은 대단히 살벌하다.

가족 중 누군가가 빚을 지고 있다면 특히 그 빚이 이른 바 사업하다가 지게 된 것이건 도박으로 지게 된 것이건 병원비가 아닌 한은 아버지이건 자식이건 동생이건 형이건 절대 갚아 주지 마라. 빚쟁이에게 맞아 죽는다 할지라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어라. 절대 일확천금은 꿈꾸지 마라.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에 기회가 있음을 명심해라. 체면 따위는 던져버리고 남들 사는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당신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당신을 또다시 찾도록 열심히 일하라. 그게 장사와 사업의 성공 비결임을 잊지 말아라. 전쟁 피난민처럼 살면서 절약하고 절약하라. 가족 모두의 수입을 합치고 이자를 은행보다 2-3% 더 주는 곳에 저축하라. 이자를 상당히 많이 준다는 곳들은 모두 사기꾼임을 명심해라. 친척이건 친구이건 그 누구에게도 돈을 절대 빌려주지 말고 당신 가족이 혹은 당신이 돈을 얼마 모았다는 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하지 말라. 일류대에 갈 실력이 안 되는 자녀에게는 교육비를 절대 투자하지 말라. 그리고는 소주 한잔도 마시지 말고 돈을 모으고 또 모아라.

가난한 젊은이에게 주는 대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땡전 한 푼 없다면 침식을 제공하는 공장 같은 곳에 들어가 2-3년 있으면서 돈을 아귀처럼 모아라. 외출도 하지 말라.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어라. 연애는 꿈도 꾸지 마라. 외로우면 자위나 해라. 그 누구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마라. 집안에 무슨 일이 있건 간에 , 죽을병이 아니라면 신경 꺼라.

아…하지만 내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부부가 함께 일을 하여야 하는 처지이지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 혼자 사는 노인들, 남편도 없이 애가 딸린 아줌마 …등이다.


2. 가난이 세습되는 이유

1972년 영국의 K. Joseph 은 빈곤의 세습화와 관련하여 ‘박탈의 순환’(The Cycle of Deprivation) 을 설명하면서 “부적절한 부모가 부적절한 아동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부모의 부적절한 태도가 가난한 가정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나는 Joseph 의 의견에 동조한다. 내가 ‘가난은 사회구조적 현상인가’ 항목에서 열거한 가난한 가족들의 사례들 중 첫번째부터 다섯번째까지 모두가, 그리고 여섯번째에서도 부분적으로는, 부모의 태도가 적절치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어느 교육학자(레벤스타인)는 빈민층 어머니들에게 장난감 사용법을 상세히 가르쳐 주면 그 아이들의 인지발달이 증대되게 됨을 입증했다. 교육학자 고든 역시 부모가 알아야 자녀들의 과제 수행능력이 우수하다고 했다. 부모가 ‘제대로 알고 가르칠 때 ’자녀도 제대로 알게 되고 일도 잘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부모들은 도대체 그 자녀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기에 가난을 세습 시킨다는 말인가. 금융지식이나 투자지식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부모들은 자녀에게 직업이 좋아야만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못 배워서 이런 일 밖에는 하지 못하지만 너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부자로 잘 살아라’ 즉 자신이 가난한 이유는 직업이 엿 같아서 그런 것이므로 제대로 교육을 받아 현재 하는 일과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가난하게 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는 자기들 역시 부모가 갖고 있는 직업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되면서 가난을, 그 부모가 대부분 그랬듯이,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가난한 자들 중에는 운명론자가 엄청 많다).

물론 직업 중에는 부자 되기 어려운 직업들이 있다. 일한 대가가 사회적으로 정하여진 직업들이 대표적이다(‘이런 일은 하지 말라’는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그런 직업들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직업일 뿐이지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 탈출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직업은 결코 아니다. 부자 되기 어려운 직업에서도 종종 부자가 튀어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직업이란 식당의 메뉴 같은 것이다. 식당 주인들은 어느 한 가지 메뉴를 해보아서 잘 안되면 자기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메뉴 탓, 위치 탓, 인테리어 탓을 하며 다른 메뉴를 올려 보지만 그것 역시 될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메뉴 종류만 늘어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맛이 나는 것이 없다. 뭐가 잘못 된 것일까. 한 가지 일에서도 혼을 바쳐야 하는데 그렇게 할 줄을 도통 모르기 때문이다. 질문: 가난한 막노동자들 중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잘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이야 찾을 수 있지만 모두가 다 도토리 키재기이며 장인 정신을 찾아보기란 정말 어렵다. 일을 어떻게 하여야 잘하는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종류만 따지는 이러한 태도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유전되고 그 결과 가난이 세습되고 만다.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받는 길은, 일을 남들 보다 더 잘하는데 있음을 부모부터 모르고 있는 마당에 그 자녀들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는다고 해서 가난에서 모두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빈부간의 교육 불평등 및 학력격차를 없애고자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하여 온 수많은 선진국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미국에서의 상황을 살펴보자. 한때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계속 가난한 이유를 그들이 다니는 학교의 시설이 형편없고 교사의 질이 떨어지며 정부의 교육투자 역시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66년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제임스 콜먼 교수가 무려 60여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뜻밖의 사실을 보여 주었는데 학교 상황과는 상관없이 빈곤층 자녀들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빈곤층 문화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면서 결국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빈민층 자녀에게 제 아무리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준다고 해도 부모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정부가 생각한 해결책은 빈민층 자녀가 빈곤층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어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건 여러 계층이 섞이도록 법이 정하여졌고 흑인이나 백인만 다니는 학교 같은 것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가 조금은 상황을 개선시켜주었지만 여전히 가난한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특히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편부나 편모슬하에서 자라는 자녀가 충분한 교육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시아인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부모가 갖고 있고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때문에 이민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지만 미국으로 이민 간 부모들 대다수는 그나마 모국에서 교육을 받았던 계층임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과 병행하여 그 부모에게도 부적절한 사고와 행동을 제거하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한국의 빈민 계층에게 ‘당신 아버지가 가난한 이유, 당신 역시 가난한 이유, 당신의 자녀마저 앞으로 가난하게 살게 되는 이유는 당신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이 글러 먹었기 때문이며, 그 생각을 세습 받은 당신 역시 생각과 행동이 글러 먹었기에 당신 자녀 역시 마찬가지로 가난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일을 어떻게 하여야 남들보다 더 잘하는가를 생각하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그런 뜻의 말을 조심스럽게 몇 차례 하곤 했었는데 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랄하고 자빠졌네, 철저히 부려먹으려고 환장을 했구만’이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었고 언제인가 부터는 그런 자들을 보아도 침묵하게 되었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어떤 자녀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빈민 가정 자녀들 대부분은 제 아무리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도 가정이 가난하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미 낙망하여 자신의 미래를 어둡게 여기고 공부하여 봤자 별 볼일 없다고 단정하며 그저 빨리 부자가 되는 길만을 찾는다. 게다가 이 사회에서 일한 대가를 더욱 많이 얻어내는 방법은 무시하고, 그저 투자를 잘하여야 부자가 된다, 부자가 되는데 있어서 학교공부는 필요 없다는 헛소리가 세상에 퍼지면서 더더욱 돈 빨리 버는 길만 찾아 나서지만 결국은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고 만다. 여기서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 너희 부모가 가난한 이유는 학력이 없거나 직업이 후져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일을 통해 이 사회에서 대가를 얻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 부모가 이 사회에서 부자 되는 법을 진짜 알고 있으리라고 믿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가난에서 탈출하여 부자가 된 사람만이 그 비결을 제대로 아는 법이다. 내가 바로 그런 부자이며 나는 너희들 호주머리 속 푼돈을 노리고자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금융지식이 많고 투자를 잘해야 부자가 된다고? 너희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느냐? 그런 책을 써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거나 증권회사나 투자회사 같은 곳들이다. 그들이 너희에게 일 잘하는 법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더냐? 이것은 미국이건 어디건 마찬가지이며 그들은 모두 너희들이 그나마 모은 푼돈을 모아서 자기들이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이제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가난한 집 중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일단은 코피 터지도록 공부해라. 돈이 없어 과외를 못 받고 학원을 못 다닌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교육방송이나 인터넷 과외에 관심을 가져라.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을 붙들고 늘어져라. 집안이 제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도 신경 쓰지 마라. 부모가 이혼을 했건, 한쪽에서 소주병이 난무하건, 한쪽에서 통곡소리만 들리건 간에 귀를 막고 이를 악물고 공부만 해라. 엉엉 울고 싶은 상황이라면 울어라. 하지만 5분 이상 울지 말고 삼켜 버리고 하늘을 향해 ‘으악!’ 크게 한번 외치고 다시 공부해라. 친구들이 무엇을 갖고 있건 간에 그것을 부러워하지 말라. 휴대폰이 없다고 해서 우울해 하지 말고 그것이 없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라. 돈이 없어서 누군가로부터 괄시와 모멸을 당했다면 그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네가 받은 모멸감과 네가 흘린 눈물로 날카로운 비수를 만들어 마음속에 ‘나, 죽어도 죽어도 이 날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고 진하게 난도질 하고 다시 공부해라.

집안이 어려워서 학비라도 벌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 하겠다고 깝죽대지 말고 그냥 죽어라고 공부만 해라. 공부는 궁극적으로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임을 명심해라. 그리고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거나 최고의 장학금을 반드시 타라. 그게 아르바이트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짭짤한 좋은 돈벌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이성교제? 개소리 하지 말고 시간을 아깝게 여기고 바보처럼 공부만 해라. 명심해라. 이 사회는 학벌사회이고 이 학벌 사회에서 출세하는 가장 손쉬운 길은 일단은 최고의 학교를 나오는 것이다. 나를 믿어라. 일단은 공부하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1~2년 해도 도대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너희는 공부하고는 안 맞는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지는 말아라. 형편이 허락하는데 까지는 다니고 학교공부 대신 닥치는 대로 일하는 방법과 장사나 사업에 대한 책을 읽어라. 아르바이트도 해라. 기술학교에 다닌다면 배우는 분야에서 우선 진짜 귀신이 되어라. 졸업 후에는 학벌 사회 근처에는 얼씬 거리지 말라. 그리고 절대 너희 가난한 부모가 돈이나 직업, 혹은 일과 관련하여 하는 말은 믿지 말라.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려라. 절대 절망하지 말라. 너희에게는 다른 길이 있고 그 길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믿어라.


3.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고 선량한가

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인 1990년 봄 , 서울 천호동의 반지하 셋방에서 살던 엄모씨(40세)와 부인(38), 그리고 아들(8), 딸(6) 모두가 연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한 일이 있었다. 엄씨 가족은 4년 전부터 이 셋방에서 보증금 50만원 월세 9만원을 내고 살아왔는데 집주인이 집을 수리하여야 하므로 방을 비워 달라고 해 이사 갈 집을 물색했으나 오른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 것이었다.

서울에서 고교를 나온 엄씨가 처음 택한 직업은 군에서 배운 운전이었다. 그는 결혼 후 서너군데 직장에서 차를 몰았으며 모 국회의원의 자가용 운전사로 월 60만원을 받고 일하다 차를 망가뜨린 실수 때문에 그만 두었고 몇 개월 전부터 친구가 경기도 부천에서 하는 부동산 소개업을 도와줬으나 벌이는 한 달에 삼십만 원 선에 불과했고 일정치 않았다. 어쩌면 부동산 소개 일을 하면서 시세에 밝았다는 점이 그를 지레 주눅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엄씨는 2남1녀의 맏이였다. 그래서 서울 변두리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을 늘 괴롭게 여겼지만 죽기 며칠 전에도 노모에게 생활비로 15만원을 부쳤다. 부인은 집에서 자수 미싱을 하며 생계를 꾸렸으나 죽기 얼마 전 전세 목돈을 만들고자 재봉틀마저 팔았다. 그러나 이때 받은 76만원은 옮겨갈 방을 구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어린 아들은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가 미싱을 팔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TV소리가 잘 들렸기 때문이다. 방안도 참 깨끗해졌다.’

명성교회 신자였던 엄씨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주님께서 현숙한 처녀를 어머님 눈에 띄게 하셔서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 가지, 다만 한 가지 나에게 물질의 축복, 남들처럼 돈 잘 버는 재주만은 주지 않으셨다.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라도 허락하셔서 가엾은 부모님을 모시고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나님도 이제 없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어 그들에게도 방을 마련해 달라 … 집을 비워달라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고민에 빠져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집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는 무능한 가장. 이런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불평 한마디 해본 적이 없이 늘 쾌활한 아내, 당신은 정녕 천사이리라.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께 혼난다는 말을 종알거리는 아이들, 너희도 정녕 천사이리라…전세금 마련을 위해 추진했던 일들이 모두 제대로 안돼 이젠 방법이 없다. 나 혼자 세상을 떠나려고 했지만.…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떨어진 처자식의 앞날이 얼마나 고생스러울 것인가.…천사처럼 착한 아내의 모습도, 아이들도 이제는 볼 수 없겠구나.… 아버지때부터 시작되어 오고 있는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지게 될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도 없다. 폭등하는 부동산가격에 내 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정치하는 자들, 특히 경제 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 이상 조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서 없는 자들의 절망과 좌절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엄씨는 죽기 전 장례비용이라고 적은 봉투에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9장과 1만원권 지폐 10장 등 1백만 원을 담아 방안 책상 위에 놓아두었으며 부동산 소개일을 하면서 고객을 태우고 다니고자 월부로 산 프레스토 승용차를 팔아 장례비용에 보태달라고 까지 했다. (이상은 당시의 거의 모든 신문기사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 아닌가. 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왜 집 문제 때문에 자살하여야 하는가. 집주인이 나쁜 놈이다. --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당시 어느 경제학 교수는 모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잘못된 분배구조가 고쳐지지 않으면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참과 혼란은 비인간적 이기심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제도 개혁들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다시는 가난하기 때문에 죽는 일이 없도록 다 함께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정한 제도개혁이면 반대하지 않으며, 집주인이라고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느냐고? 그렇다. 첫째 나는 ‘듣기 좋은 멋진 말’을 하는 그 교수가 세를 놓고 있는 집이 있다면 당연히 시세에 따라 세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자기 딴에는 자기 마음대로 집세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세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둘째, 자살한 엄씨가 살던 셋방의 주인은 우체국 집배원이었고 그 역시 넉넉한 편은 전혀 아니었다. 집이 낡아 수리를 하고자 방을 빼달라고 한 그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셋째,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못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임대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기에 셋집의 수는 대폭 줄게 되고 임대가격은 대폭 올라버리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더욱 살기 힘들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증명된 바 있다.

넷째, 거의 모든 기자, 소설가, 방송작가, 교수, 종교인 등이 자살한 엄씨를 “착하고 선량하고 효자인데다가 가족도 사랑하였고 성실하였으나 가난하였기에 갑자기 오른 집세 때문에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자살한 사람”으로 묘사하였지만 실제 상황을 좀 더 파악하여야 한다. 아주 아주 차갑게, 얼음 보다 더 냉정한 판단력으로 그의 동반자살을 살펴보자. 그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실수를 했음에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 보인다. 운전기사의 임금은 결코 넉넉하지는 않지만 본인의 생활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저축이 가능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군 제대 후 무려 15년 이상 운전을 하였음에도 저축이 없었다. 그가 자가용 기사 생활을 하였다면 그 직업은 주인이 아무리 엿 같아도 한 곳에서 오래 있어야 대우를 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직장을 자주 옮겼다. 국회의원 자가용 기사를 하면서는 월 60만원의 봉급을 받았는데 1990년 당시는 근로자 최저임금이 16만5천6백 원이었고 월급 100만 원 이상을 받은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5~6 % 에 불과하였음에 비추어 볼 때 적은 봉급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에서부터 운전을 하였기에 운전에 능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차를 망가뜨렸고 그 일로 인해 또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는 친구가 하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나가면서 고객 접대용이라는 명분으로 프레스토 승용차를 월부로 샀지만 집은 천호동이었고 일터는 부천이었다. 그 먼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였다는 것은 그의 처지로 볼 때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고객 접대용이라는 것은 핑계이고 자가용을 갖고 싶은 욕망 혹은 자가용 출퇴근을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고 앞뒤 제대로 가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사를 준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와 부인이 다니던 교회가 천호동 근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교회에서 볼 때 신실한’ 교인이었다면 주일 근무는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의 고용주들은 일요 골프장에 가려고 하지 않는 그를 탐탐치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신앙 우선, 생활 나중’으로 사는 것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다. 특정 교회에만 은혜가 있다고 믿는 태도도 기복신앙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차를 월부로 산 것을 보면 신차였다는 말이며 프레스토보다 더 싼 차들도 있었는데 월부로 그 차를 구입하였다. 보증금 50만원 월세 9만 원 짜리 사글세 집에서 사는 처지에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을까? 여기서 나는 모방심리를 본다. 그리고 자동차 구입으로 인하여 당연히 운영비, 보험료 등으로 돈이 나갔을 것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업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친구가 한다니까 같은 일에 뛰어 든 것 역시 무모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가 그 일을 위하여 도대체 얼마나 준비했었는지 의심스럽다. 1990년은 이미 산업계에서 3D 업종 전체에 대한 근로기피 현상이 나타나 일당 3~4 만원에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정부에서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자 한국노총에서 대정부 규탄집회를 잇달아 개최하면서 총파업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시기도 그 해였다. 그가 다른 일을 하고자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잘 알지도 못하는 복덕방 사무실에 나간 이유가 도대체 뭘까? 돈도 잘 벌고 편해 보였기 때문 아닐까? 그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하고자 하려는 마음만 있었다면 그는 보다 더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능력과 지혜가 필요했던 사람은 우선은 그 자신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자기에게 물려진 원인은 그의 소비생활과 일하는 태도 때문이지 피할 수 없는 유전인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는 그를 ‘착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여기기보다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소비생활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절망을 초대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내가 십 몇 년 전의 가족 동반자살 사건을 언급하고 차갑고 싸늘한 눈으로 이야기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고 선량하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던 산업화시대의 보편적 사고가 90년대 이후의 고소득시대에서도 계속 수정 없이 이어지는 잘못이 우리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고소득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진실을 그렇게 감성적으로 왜곡시킨 최대 원인 제공자들은 일부 기자, 교수, 방송작가, 소설가 등 먹물들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난한 빈민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가난한지를 비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착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여전히 익숙하다.

말이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알았다. 하지만 흥분하지 말고 가까운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빈민층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의견을 들어 보아라. 그들은 빈민층을 누구보다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회복지사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빈민층을 만나보면 일하지 않으려는 부모들과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해서 지원금을 타먹을까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보통 가난한 사람들을 착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이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는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업을 시켜보면 게으름을 피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서 기껏 여러 일터를 만들어 주었지만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몇 년 전 세화섬유의 곽태환 사장은 ‘일할 사람을 구하고자 노숙자 수용소까지 가 보았으나 한 달 100만원 버는 것이 양에 차지 않을 만큼 배부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까지 했다.

가난한 자의 게으름이나 나태함은 누구도 비난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난한 자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부유한 자의 재산은 악으로만 비쳐진다. 심지어 가난 때문에 저지른 죄는 정상이 참작되어 처벌이 완화된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은 불법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에 대한 범죄만 아니라면 경찰도 종종 눈감아 준다.“가난이 죄지 내가 무슨 죄인이냐. 가난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사람까지 괄시하고 무시하는 거냐”고 꺼이꺼이 목 놓아 울게 되면 그 누구도 말을 못하게 된다. 가난은 죄가 아니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어거지를 써도 용납하는 것이 고소득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 국민정서라는 말이다. 행여나 그런 생각을 외국인들에게는 말하지 말라. 가난 때문에 죄를 지었으니 형을 감면하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 오히려 스위스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 자체를 죄라고 여기는 나라들이 있음을 기억하라.


4. 가난한 자의 특성은 버려라

군에서 나는 저녁에 도서관장을 하였다.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하여 질문하는 독자들이 있었기에 나의 군 생활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가난했던 나는 고교 졸업 후 이민을 염두에 두고 자동차정비학원을 잠시 다닌 뒤 공군에 기술병으로 지원 입대하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자대에서 받았던 보직은 정비와는 전혀 무관한 부동산 관리 업무였는데 고교시절에 광고대행업을 했던 경력이 고려되어 주어진 업무였다.

도서관장이라는 보직이 정식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새마을 운동 바람이 세게 불었던 시기였고 군대 내에서도 그 운동이 강제적으로 펼쳐지던 때였다. 부동산 관리라고 하는 업무의 ‘부패적 특성상’ 부대장과 가까이 지냈던 나는, 군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부대 도서관을 만들고 휴가 장병들은 무조건 책 2권을 가져오도록 하고 계급별로 월급에서 얼마씩 떼어내 매월 도서를 구입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명분은 ‘군 생활 중 사기를 진작시키고 인간 형성에 도움을 주며 전역 후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지만 내 속셈은 구타와 집합이 심심치 않았던 지긋지긋한 내무반에서 도망쳐 나오고 책이나 많이 읽고자 하는 것이었다(원래 명분이란 이처럼 개인의 욕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습성이 있으므로 언제나 명분에 속지 말고 그 속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부대장이 볼 때 나의 제안은 자신의 새마을 운동 실천 실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결국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저녁에는 도서관 관장이 되었고 도서관 당직이라는 핑계로 점호에도 불참한 채 도서관내 야전침대에서 혼자 잠을 자면서 밤늦도록 책을 읽었다. 주로 읽은 것들은 현대 소설과 실용 서적들이었고 무협지 등은 거의 읽지 않았다. 제대 후에는 그 당시 가장 컸던 종로서적 센타와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다.(어쩌다 남산도서관에 가면 그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찡하여진다. 도시락 찬밥을 말아 먹을 수 있는 우동 국물이 1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거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었던 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일까.) 성공에 대한 책들도 많이 읽었지만 실전 노하우는 하나도 없고 “희망을 갖고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열심히 살아라.”는 뜬구름 잡기들이었기에 읽을수록 실망이 컸다.

오히려 빈민들에 대한 책과 논문들이 손에 먼저 잡혔다. 하지만 가난을 묘사한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가 측은한 눈으로(혹은 따듯한 눈으로, 혹은 가난을 업보나 운명적인 것으로 믿는 마음으로, 혹은 가난은 착한 심성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등등) 묘사하기 때문에 가난의 현상만을 엿 볼 수 있었다. 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들은 논문이나 연구 보고서에서 얻을 수 있었는데(너무 오래 전의 일이어서 제목들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달동네에서 파는 요구르트는 이름도 못 들어 본 회사의 것이지만 부자 동네에서 파는 유명 요구르트보다도 더 비싸고 품질은 더 떨어진다는 것도 알았고 어떻게 행동하면 가난의 굴레에 빠져 들어가는지도 어렴풋이나마 배웠다. 서울역 앞 588 창녀촌으로 유명하였던 양동의 쪽방에서 잠시 살아 본 경험도 개인적으로는 큰 배움이었다.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에서 여주인공의 가족은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어머니의 허영심과 체면 때문에 급속히 가난하게 된다. 결국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판자촌으로 이사 온다. 그녀는 인형 옷을 만드는 일이라도 하지만 가족들은 가난을 껴안지 못한 채 연탄가스로 자살하고 그녀 홀로 남는다. 어느 날 그녀는 멕기 공장에 다니는 청년을 알게 되고 ‘같이 살면 하룻밤에 연탄 반장을 아낄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로 그와 동거를 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잣집 대학생 아들. 아버지가 빈민촌에 보내 가난을 경험시킨 것일 뿐 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이제는 부자들이 가난마저도 훔쳐간다”고 울부짖는다.

나도 소설 속의 그 부자 아버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것을 권유한다. 내가 부자가 된 것은 부자들에 대한 정보도 없었던 시절에 부자들을 따라 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따라 하지 않으려고 기를 썼기 때문이다.(70년대에는 부자 되는 법을 다룬 책도 거의 없었고 내 기억으로는 기껏해야 “소자본으로 부자 되는 법”이라는 책 한 권 만 있었을 뿐이다.) 왜 사람들은 백만장자들의 특성만 배우려고 하는가. 가난한 자들에게도 공통적 특성이 있다. 그 특성들은 ‘가난이 세습되는 이유’ 항목에서 설명하였듯이 부모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게 되지만 부모와는 상관없이 사회에서 보유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첫째, 돈 받는 것 이상으로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좀 더 많은 땀을 흘리거나 시간을 초과하여 일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고용주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자기를 좀 더 부려먹으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오늘 1시간을 더 하였다면 그날 저녁 당장 대가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돈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모두가 그놈이 그놈인 셈이므로 잘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고용주들의 이러한 태도를 가난한 사람들은 ‘있는 놈들이 더 지독하다’고 바라본다. ‘있는 놈들’이 ‘일을 더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며, 기회는 그 ‘있는 놈들’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둘째,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던 60년대와 70년대에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는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에 살면서 빈민층 연구를 하였고 흥미 있는 논문을 발표했었다. 그 내용은, 한국의 판자촌 주민들은 외국의 슬럼가처럼 숙명처럼 가난이 뒤따르는 곳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주택가로 옮겨간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6.25 동란 때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처음에는 빈민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에서 상당수가 탈출하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일자리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에서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다가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는 처지였기에 일을 가려서 한다거나 몸이 편한 일만을 찾는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지금의 수많은 빈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셋째, 자신이 받았던 돈의 액수 이하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에 오만 원을 받는 일을 해온 사람은 당장 일거리가 많지 않음에도 자신의 일당을 낮추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남의 새벽 인력시장이나 농촌 인력 시장에서 아주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 같으면 하루 오만 원 받는 일을 일주일에 3일 하느니 일단은 하루 3만원 일거리를 일주일 내내 할 것이고 나를 고용한 사람이 나를 반드시 다시 찾도록 만들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얼마를 받고 싶어 하는지를 말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 이치를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설픈 자존심 때문일까.

넷째,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예컨대 반포 고속 터미널 지하도 근처의 한 편의점(여기 예전 주인을 내가 조금 안다)에서 양주를 구입하는 고객들 중에는 그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아끼지 않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써 버린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비상금을 축 내지는 않는다는 중국인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술집으로 가거나 심지어 그곳 여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한심한 놈들도 자주 눈에 뜨인다. 이런 습성은 그 자녀에게도 물려지고 그 자녀들 역시 한 푼이라도 생기게 되면 오락실로 달려가거나 PC 방에 가서 진을 친다.

다섯째, 운명론을 받아들이고 사주팔자를 신봉한다. 정주영은 무엇을 했어도 부자가 될 팔자였지만 자신은 뭘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고무신을 신고 달려도 신이 벗겨지지 않지만 자신은 워커를 신고 뛰어도 신이 벗겨져 넘어질 팔자이며 부자 될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점술가들이 하는 말에 귀를 쫑긋거린다. 생각과 행동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난을 자초한다는 지적은 개 짖는 소리로 여기며 자신은 한다고 하는데 타고난 팔자가 더러워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실제로는 사주팔자를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여섯째, 세상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쉽게 흥분한다. 순박하여서가 아니라 전체적 상황을 보는 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흑백 논리에 아주 강하다. 세상은 회색인데도 말이다. 자기가 가난한 것은 못 배웠기 때문이거나 남들보다 약삭빠르지 못하기 때문이며 “있는 놈들이 돈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경우도 많다. 자기 판단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기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별로 없다.

일곱째, 경험자의 이야기 보다는 자기 판단을 더 믿는다. 예컨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나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내가 충고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한다.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할 것을 왜 아까운 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는데 내가 말해주면 뭣하랴. 또 다시 자기 생각대로 할 것이 뻔한데. 그들은 우주에는 총 3,201억 5,983만 7,647개의 별이 있다고 내가 말하면 믿지만(내가 알게 뭐냐),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주의 사항들을 말하면 믿지 않는다. 하긴 칠 조심이라고 써 놓아도 직접 손을 대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지 않은가.

당신이 미래에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난한 친구들을 찾아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라. 그들의 말에 당신이 공감을 한다면 당신도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아라.


5. 부자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영국 워릭대 연구팀은 돈이 얼마나 있어야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가를 연구하고자 매년 영국인 1만 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생활수준과 만족도를 분석하였다. 행복의 정도를 금액으로 측정하는 최초의 분석적 시도였는데 연구팀은 “가장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돈의 액수는 1백만파운드(약 18억 원)”라고 하였다. 국민 소득을 감안하면 우리 실정으로는 약 9억 원 수준이다. 연구팀은 “1백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고 일에서의 성취감, 만족스런 결혼생활, 건강 등이 행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들”이라고 결론지었다(이런 뻔 한 사실을 알아내는데 10년씩이나 소비하다니! 하긴 우리나라 교수들의 정부지원 연구결과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골 때릴 정도로 가관인 것이 많기야 하지만.)

그렇다면 돈 문제 이외에는 건강이나 가정이나 직장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이 생기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말인가? 잠시 동안만 그렇다. 왜 돈 문제 이외에는 걱정근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 돈이 영원한 행복을 안겨다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은 환경이 바뀌어 지면 재빨리 그 새로운 환경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는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른 바 “당연 심리”이다. 전세를 살던 사람에게 자기 집을 마련하였을 때의 기쁨이 몇 년 못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게다가 행복은 상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독립적인 행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비교심리”이다. 언제나 우리 눈에는 남들이 더 행복해 보이고 남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여기게 된다. 특히 주변에 세속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있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불행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해 한다. 나는 이것을 “주변인식”이라고 부른다. “당연 심리”는 개개인에게 상황을 진보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쁘게 보는 것은 “비교심리”이다.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 “비교심리”가 가져온 소비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신이 1년에 11만 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20만 달러를 버는 세계와 당신이 10만 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8만달 러를 버는 세계, 이 두 세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미국인은 두 번째 세계를 택한다. 왜 그럴까? 바로 “비교심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웃집에서 차를 갖고 있으면 나도 차가 있어야 비슷한 행복을 누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좀 무리를 하더라도 기어이 차를 사고야 만다. 추석이나 여름휴가 때 중고차 값이 오르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비교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 다 자가용 타고 가는데 우리도 그래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차가 없으면 남들이 나를 불행하다고 볼까 봐 두려워한다. “주변인식”이다. 마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물론 이러한 심리들은 자기가 현재 이 사회에서 잘 해 나가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스스로를 주변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심리적 방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인간이 주변 사람들에 느끼는 시기심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결혼을 코앞에 둔 남녀가 종종 갈라서는 이유 역시 부모들과 당사자들의 “비교심리”와 “주변인식”에 있다. 누구네 집 며느리는 이러이러한 혼수를 해왔는데, 누구누구는 예물로 다이아 1캐럿을 받았는데, 누구누구는 시댁에서 아파트를 사주었다는데 왜 나는 전세냐, 요즘 세상에 누가 20인치 TV를 보냐 30인치는 되야 한다….등등의 모든 갈등이 다 남들에게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시기심이 빚어낸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모일 겨를이 없다. 수입이 조금만 늘어도 쓰고 싶어 안달이 나며 빚까지 진다. 남들이 가진 것들을 자기도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혹시라도 그런 상대방을 만났다면, 또는 상대방의 집안이 그렇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빨리 헤어져라. 이미 결혼을 했다면 아이가 생기기전에 이혼하는 것이 현명하다.)

진정한 부자들은 이 세 가지 심리들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금융기관들에 가서 물어보아라. 진짜 알부자들은 전혀 부자같이 보이지 않는다. 사는 곳도 강남에서는 평범한 곳에서 살고 잠바 하나 걸친 사람들이 수십억의 현금을 움직인다. 고 정주영 같은 재벌 1세들의 모습이 TV에 비쳤을 때 도대체 부자같이 보이던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부자들은 남들이 어떻게 살건 간에 관심이 없다. 흉내 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다시 나빠 질 수 있음을 알고 대비하려고 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는다. 남들이 무엇을 갖고 있건 간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우선 돈을 모은다. 돈이 쌓이면 그 돈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나중에”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서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세 가지 심리 때문에 그 원금이 될 작은 돈들을 “먼저”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8장. 부자들은 누구이고, 어떤 사고와 어떤 소비를 하는가

1. 부자들의 쇼윈도 앞에서 서성이지 말라

나는 유명 브랜드에 미친 사람이 결코 아니다. 결혼 직전 처가에서 내 시계를 좋은 것으로 사라고 돈을 주었는데, 나는 아내와 같이 청계천 시계 골목에서 심플한 디자인의 저렴한 일제 세이코 밀수 시계를 각자 하나씩 샀다(나는 밀수고 나발이고 싸고 좋으면 산다). 아내는 내가 사준 그 시계 디자인을 좋아하여 지금도 종종 차고 다닌다(나는 예전에 잃어 버렸다). 왜 사람들은 부자도 아니면서 결혼할 때 그렇게 패물에 신경을 쓰고, 유명 브랜드 상품에 목을 매면서 부티를 내려고 할까?

남에게 보이기 위함 아닐까? 공산국가들이 붕괴되기 오래 전에 마르크스 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음을 단언하였던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저자 다니엘 벨은 ‘자본주의적 상품 교환에서는 실용성보다 외관이 중심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폼이 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른 바 명품을 본 따 만든 가짜들이 팔리는 이유 역시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에 있다. 가짜 핸드백이 워낙 정교해 진짜를 사봐야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정품이 안 팔린다는 세상. 하지만 가짜를 만들어도 진짜와는 눈으로도 쉽게 구분이 되는 값비싼 시계 같은 것들은 오히려 진품이 더 잘 팔린다는 세상.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등 다이아몬드를 주렁주렁 박은 시계를 사는 사람들이 돈 많은 사람들이라면 나는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잘 샀다고 말할 것이다.

문제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값싼 시계를 차고 다니면 손목이 부끄러워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어느 신문에서 친구들과 명품 계(契)를 한다는 여대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읽었다. “요즘엔 겨울철이라도 반팔 티나 블라우스 위에 외투를 걸치고 다니는 차림이 많다. 실내 생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계를 상대방에게 보일 기회가 늘어난다. 이제 계라도 해서 까르띠에 탱크 시계를 구입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트렌드다.” 트렌드? 트렌드 좋아하네. 트렌드가 밥 먹여주냐?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라고?

꼴갑에 지랄들 떨고 있네. 그게 아니다. 판매자의 상술에 녹아나 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판매자가 덮어씌운 이미지에 현혹된다. 수많은 상품들의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광고를 통해 쏟아져 나오면서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그래서 넥타이 하나를 사더라도 자기 자신의 느낌이 아니라 그 넥타이 뒷면의 상표를 더 중요시한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인격체는 당신이 소유한 상품과 동격이 절대 아니다.

나는 상품이 주는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나 자신의 판단을 더 소중히 여긴다. 나는 사람들이 아무리 갖고 싶어 하는 명품이라고 할지라도 그 흔한 버버리 제품 하나 없고(영국에서 살았던 가까운 친구가 선물한 목도리 하나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디자인이 싫어서 친구에게는 미안하게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로렉스, 오메가 시계도 없으며 죠지오 아르마니 양복도 없다. 그 디자인이나 질감이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물품들 중 명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몽블랑 만년필들과 워터맨 만년필(나는 끌적거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만년필 욕심이 있으며 모두 면세점에서 샀다), 던힐 라이터(가스를 한번 넣으면 오래가며 일본의 명품할인점에서 샀다), 금속제 불가리 시계(비싼 건 아니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 뭐 그 정도이다. 아 참, 가짜 로렉스 시계도 하나 있는데 어느 스승의 날, 나를 스승으로 여기는 예전 직원이 금속 디자인이 나와 잘 아울린다고 선물로 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걸치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 유명 브랜드 제품으로 믿는다. 1만 원짜리 시계들도 즐겨 차고 다니는데 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 이론가 혹은 본격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라 불리는 쟝 보드리야르는 이미 30여 년 전에 저서 ‘소비의 사회’(남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서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고자 원한다면 반드시 읽어보라)에서 광고, 매스미디어, 에로티시즘, 레저, 가제트(아이디어 상품) 등이 약속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행복한 삶은 거짓 신화에 지나지 않으나 현대인은 그 신화를 믿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광고와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그 상품의 사회적 이미지이며 현대인은 그러한 이미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때에도, 불행한 때에도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던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쇼윈도가 출현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30여 년 전에 말이다. (사족 :나는 이 책이 예전에 대학가 운동권에서 제국주의 타파 교육에 사용되기도 하였음을 지독히 한심하게 여긴다.)

부자들이 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가 뭔지 아는가? 광고와 쇼윈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너희들 이런 상품 갖고 싶지? 이런 걸 갖고 있어야 너희들 인생이 폼 나게 되는 거야. 이 모델들 좀 보렴. 얼마나 아름답고 폼 나니. 이게 다 이 물건 때문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한번 구입해 봐.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얼마나 부러워할까. 돈이 없다고? 카드 긁으면 되잖아. 얼마나 좋니, 카드 회사에서 12개월 무이자 할부도 해 준다는데. 무이자 행사기간이 끝나서 이자는 내야 한다고? 그깟 놈의 이자가 문제겠니. 사람이 쫀쫀하게 살면 안 되는 거야. 좀 대범해야지. 이자 걱정 하지 말고 너희의 인격이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해봐. 품위도 생기는 것 아니겠어. 그러니 결단을 내려, 빨리.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대한민국 1% 만 가질 수 있다니까. 그래도 이번 달 지출이 계획보다 늘어난다고? 사람이 왜 그러니. 다음 달에 절약하면 될 걸 가지고 말야. 게다가 두 달 후면 보너스도 나올 예정이잖아. 뭘 그렇게 걱정하니. 세이노 라는 사람도 걱정은 10분만 하라고 그랬다더라. 벌써 10분 지났다. 그러니 이제 걱정 그만하고 지금 구입하렴, 응? 너희도 이 모델들처럼 완전 킹카되고 퀸카 된다니까 그러네…’

부자들은 이렇게 속삭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데 귀신이다. 정작 자기들은? 졸부가 아닌 한 그런 속삭임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 쇼윈도 앞에서 서성대지 말라. 남들이 불어넣은 이미지에 세뇌되고 타인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타인에게 보이고자 소유하려는 태도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상품 뿐 만 아니라 돈, 명예, 지위, 학벌 등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가치판단 보다는 남들이 불어 넣는 이미지에 세뇌되고 타인의 판단을 우선시한다.

하지만 그런 꼬드김에 넘어가면 투자에 사용할 자금과 시간은 점점 더 제로에 가깝게 되어 오히려 삶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만 높다. 부자가 될 사람이 소유하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재화이지 남에게 지금 보이기 위한 물품이 아니다. 명심해라. 부자가 되려면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그 이미지의 망령들로부터 초월한 높은 경지에 초인처럼 굳건히 서 있으면서, 역으로 그 망령들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용하여야 하는 법이다.

2. 부자들에게는 금덩어리가 없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에 금모으기 행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지만 금덩어리라고 부를만한 것은 나오지 않자 금을 덩어리로 갖고 있을 부자들은 왜 금을 안 내놓느냐는 질타가 많았다. 정작 나눌 것이 많은 부자들은 놀부처럼 오장칠부로 ‘욕심부’가 하나 더 있어서 그런지 금궤도 안 내놓고 금송아지도 안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명심해라. 그런 글을 언론에 쓰고 방송에서 보도하는 방송작가나 드라마 작가, 기자, 앵커 등등이 실제로 부자들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부자들에 대해 정말 수박 겉핥기로만 안다. 과연 진짜 부자들이 금은보화를 많이 갖고 있을까? 졸부라면 그럴 지도 모른다. 졸부를 영어로 머쉬룸(mushroom: 버섯) 부자라고도 하는데 비가 온 뒤의 버섯처럼 갑자기 확 피어났다는 뜻이다. 이런 부자들은 투자와 수익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투자와 수익을 따지며 부자가 된 사람들이 과연 금덩어리를 갖고 있었을까? 외환위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 집은 부자인데 왜 금 반지 하나 제대로 없어?’

기축통화이던 금은 1971년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태환정지를 전격 선언하면서 세계통화시장에서 퇴장하였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90년대까지도 금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고 오일쇼크나 전쟁, 일본인들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금 사재기 현상 등이 있게 되면 금값은 요동을 쳤다. 71년 미국이 달러의 금태환 금지를 선언할 당시 1온스당 200달러선에서 형성되던 국제 금값은 80년과 81년 1,200달러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80년대부터 20여 년간 금값은 계속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97년 400달러 선이 무너진 뒤 99년 300달러 선까지 무너졌으며 2001년 2월 253달러로 떨어졌다가 8월에는 다시 올라 280달러 선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부터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금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부자가 금을 보유한다면 투자 목적이거나 전쟁 같은 위험 대비용일 것이다. 하지만 2001년 11월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태 직후 금값은 290달러가 넘어갔으나 다시 하락하였고 탄저병 파문이 전해졌을 때는 285달러였다. 대단한 폭등이 일어난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20여 년간의 자료를 찾아보라. 기본적인 대원칙은 미국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금값은 언제나 강세로 돌아섰고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금값은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달러화에는 이자가 붙을 수 있지만 금에는 이자가 없다. 투자수익을 계산하는 부자들이 그런데도 금을 사서 몇 년이고 계속 보유할까? 주식과 마찬가지로 쌀 때 구입하였다가 가격이 오르면 팔아 치울 수는 있어도 장기 투자용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금을 사고 팔 때는 언제나 수수료까지 붙는다. 또한 전쟁터에서 금덩어리로 하는 물물교환은 언제나 금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전쟁터에서도 달러는 1불 단위로 거래가 가능하지만 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가락지 하나 줄 테니 쌀을 달라고 하는 식이 된다는 말이다. 상속을 위한 방편으로 금을 사 둘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아니 현금을 이자까지 받아가며 숨길 수 있는 방법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왜 금을 보유한단 말인가. 오히려 재테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막연한 기대감으로 금을 산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면 금괴나 금송아지는 누가 갖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것들은 대부분 수표추적을 피하고 현금전달시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뇌물로 사용되는 것이다. 서울 중심가의 금은방에 물어 보아라. 십중팔구 손님들이 선물용으로 사간다고 할 테니까. 나 역시 오래 전에 어느 거래처로부터 금으로 만든 왕관을 뇌물로 받았던 적이 있다(즉시 돌려주고 거래를 끊었다). 99년에 절도범은 ‘훔쳤다’고 하는데, 피해자는 ‘도둑맞은 적 없다’고 잡아떼는 사건들이 많았다. 경찰이 찾아낸 금은보화를 찾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과연 금은보화는 누가 갖고 있었던 것일까? 부자라면 경찰에 가서 신분을 밝히고 찾아갔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고관이나 정치인이라면 나타나지 못한다. 뇌물로 받은 것일 테니까.

금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진짜 부자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금이나 보석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에서 주인공 마틸드는 하급 관리의 아내였지만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였다. 어느 날 장관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고 남편에게 옷이 없다고 탓하자 남편은 몰래 저금해 둔 4백 프랑을 내놓는다. 멋진 옷이 생겼지만 그녀는 보석이 없음을 다시 탓했고 친구인 돈 많은 폴레스체 부인에게서 목걸이를 빌렸다. 파티에서 마틸드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기품이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목걸이가 없어졌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파리 시내를 헤매며 가까스로 폴레스체 부인의 것과 같은 모양의 목걸이를 찾아냈다. 남편은 아버지가 남긴 1만 8천 프랑과 모든 물건을 담보로 3만 6천 프랑 짜리 목걸이를 샀다. 그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해 두 사람은 작은 셋방으로 옮겼고 닥치는 대로 일한다. 빚을 다 갚기에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제는 늙어버린 그녀가 어느날 샹젤리제에서 폴레스체 부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기가 빌렸던 그 목걸이가 사실은 5백 프랑 짜리 모조품이었음을 알게 된다.

모든 국어 선생님들은 이 이야기에서 허영심의 종말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강조하려는 부분은 마틸드의 허영심이 아니다. 돈 많은 폴레스체 부인이 갖고 있는 목걸이를 사람들은 왜 당연히 값비싼 목걸이일 것으로 믿느냐는 것이다.

참 부자들은 부자가 아니었을 때 보석이나 패물에 돈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소유의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물론 아니다. 그들은 소유 욕망의 대상에 대하여 분석하고 그 다음에는 우선순위를 파악한다. 왜냐하면 소유를 잠시 보류하면 돈이 쌓이고 그 돈에서 평생 여유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연예인도 아닌데 금은보석을 치렁치렁 몸에 감고 다닐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 내 아내는 어떨까?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라고 몇 있지만 모두 미국에서 산다고 그러고, 일가친척도 없고, 학벌도 뭐 보잘 것 없고, 미남도 아니고, 근육질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칼 같은 성격에다가, 빚도 왕창 있다고 하는 나이 서른의 남자를 그저 자기처럼 음악을 좋아하는-클래식 음악들로 내가 유혹을 좀 했다- 시티 보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프로포즈한 여자가 보석이나 명품을 좋아 하였을 리 있겠는가. 어쩌면 아내 전공이 사회사업과이었기에 대학생 때 실습을 다니며 빈민들의 삶을 많이 보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3. 부자는 불행한 도둑놈이 아니다

사람들이 부자에 대하여 갖고 있는 편견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부자는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손대는 것 모두가 황금으로 변하여 음식조차 먹지 못했던 미다스의 불행을 즐겨 인용한다. 많은 돈이 가져올 수도 있는 불행을 과장되게 극대화 시키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은 부자이기는 하지만 …’이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나쁜 내용들만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부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대, 자식이 공부를 못한대, 애인이 따로 있대, 성격이 괴팍하대, 당뇨에 고혈압이래, 탈세를 하였대, 위화감을 조장하여 국민 단합을 저해하고 있어…’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 사람은 부자인데다가 가족 모두 행복하게 잘살고 있대’라는 식의 표현은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서 중환자가 일반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지…불쌍해라”고 생각하지만 최고급 승용차에서 운전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내리는 중환자를 보면“돈이 있으면 뭐해. 건강이 최고야”라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마도 속으로는‘ 졸부구나’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할 것이다. 언젠가 어느 유명인이 자기 승용차 안에서 여자를 강간한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언론 매체들은 그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그랬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방송, 신문, 라디오 매체들이 이구동성으로‘자신의 벤츠 승용차 안에서 그랬다’고 말하였다. 왜 ‘벤츠’라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는 것일까? 부자들에 대한 시기와 함께 ‘있는 놈들은 원래 이래’라는 식의 편견이 기자들 마음속에 숨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땡볕 속에 땀 흘리며 일을 마친 후에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시시콜콜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고 두 다리 쭉 뻗고 단잠을 자는 사람이, 첨단 보안 장치 속에서 안전을 구걸하는 부자, 내일의 주가, 내일의 환율, 내일의 사업을 걱정하며 잠드는 부자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부자에 대하여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다고 그렇게 단정한단 말인가. 부자로 살아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부자에게는 시시콜콜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으며 부자는 두 다리 쭉 뻗고 단잠을 자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왜 부자가 안전을 구걸한다고 믿으며 왜 부자가 주가, 환율, 사업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짜 부자들은 경비 시스템이 철저한 곳에서 살고 있기에 안전이 보장되어 있고 주가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대박환상에 빠진 개미 투자자들이며 환율이나 사업 걱정을 하는 정도라면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런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인간관계에서 특히 가족 간의 정은 더 메말라 가고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여 가치를 비교하는 습관이 생겨 삶이 더 척박해 진다.” 왜 사람들은 부자의 가족들은 정이 메말라 있다고 생각할까? 왜 부자의 가족들이 다 같이 연주회장 특석에 앉아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나 해외의 리조트 호텔에서 여유롭게 가족 휴가를 보내는 모습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연속극 드라마 작가나 소설가, 시인, 기자, 방송작가 등이 부자도 아닌데 왜 그들이 추측하여 그려내는 모습들을 부자 가족의 삶으로 믿는 것일까?

왜 부자의 인간관계는 척박하다고 믿는 것일까? 돈을 아귀처럼 움켜쥐고 있으면서 만 원짜리 한 장에 바들바들 떠는 부자도 있고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도 있고 아흔아홉 가마 가진 놈이 한 가마 더 채우려고 혈안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부자들도 있음을 왜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

물론 부자들이, 많은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습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서일까?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경제의 속성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묻는다. “경제를 배우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더 벌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택을 현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같은 재화를 갖고서 얻을 수 있는 가치들을 비교 선택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 비교가 있어야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고르기 위해 따져 봐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해 겨울, 나는 가죽 자켓을 사고 싶었다. 백화점에 가 보니 세일 가격조차 백만 원이 넘었다. 양가죽이 제 아무리 좋아도 양가죽이고 바느질과 안감이 제 아무리 좋아도 백만 원이 넘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결국 상표 값이라는 말인데 전혀 내키지 않았다. 가족들과 명동 밀리오레에 갔을 때 물어 보니 비슷한 품질이 오십만 원대. 그래도 나는 사지 않았다. 1월경 홈쇼핑 잡지에서 나온 이태리산 양가죽 쟈켓은 25만원대. 납품가는 20만원미만으로 추정되었다. 2월경 가죽옷이 들어 갈 시기, 남대문 메사에서 나는 15만원에 아주 마음에 드는 무광택 양가죽 쟈켓을 하나 샀다. (홍콩에서 스포티한 디자인의 가죽 쟈켓을 60만원 주고 구입한 적도 있다.)

부자들은 종종 물품 값을 지불할 때 “당신이 보기에는 야박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물품이나 서비스에 대하여 “필요 이상으로 지불하는 것”을 멀리 하여 왔기에 부자가 된 것임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따뜻한 삶은 오히려 청빈한 생활, 겸손한 성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생기는 여유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만족할 줄 아는 내적 힘을 가진 사람,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물론이다. 그렇지만 인도의 인구 10억 명 가운데 90% 이상이 가난한 이유를 혹시 아는가? 현 세상은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며 내세가 진짜 인생이라고 믿는 힌두교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보고 나서 그런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철학에 빠져 있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돈이 아주 많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불행하여진다는 공식을 이제는 버려라. 돈을 신포도라고 미리 단정 짓고 뒤 돌아서는 여우가 되지도 말아라. 이것은 어떤 여자들이 아름다운 여자가 지나가면 “저 여자는 행실이 좋지 못할거야, 남자관계가 복잡할거야, 성질이 있을 거야, 화장발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부자를 흉본다고 해서 그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 수도 있듯이 돈이 많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당신도 부자가 되면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것이 목표이지 않은가.

부자들을 모두 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매도하거나 모두가 다 도둑놈들이라고 몰아 부치지도 말라. 물론 이 사회에는 정치적 결탁이나 부정한 방법을 써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십 배 노력하여 세금 다 내고 떳떳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부자들이 모두 다 어떤 부정한 사건과 연루되어 보도되는 부자들이기 때문이다. 땀 흘려 떳떳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부자들은 없다고 믿는다면, 언론에 보도되는 흉악범들은 모두 부자가 아니므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흉악범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자들을 일자무식 장돌뱅이로 여기는 어리석음도 버려라. 2000년도 삼성전자 등기이사 20명에게 지급된 보수는 298억 원으로 1인당 평균 14억9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6명을 빼면 사내이사의 평균 보수는 20억 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부자 계층이다. 일자무식이 전혀 아니며 당신보다 훨씬 더 엘리트라는 말이다.(물론 봉급을 많이 받는 이사들인 경우 그 봉급 중 일부가 회사의 비자금으로 다시 되돌려지는 경우도 때로는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부자를 불행한 도둑놈이라고 믿는 사람들 대다수가 내심으로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참 부자들까지도 모두 다 도둑으로 생각하고 불행한 삶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왜 부자가 되려는 것인가? 사람들 머릿속에 부자는 불행한 도둑놈이라는 공식이 박혀 있는 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곧 똑같이 불행한 도둑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사원이 문제 사원이다’(반드시 읽어라)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원이 과장의 생각을 알면 과장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이며, 부장의 생각을 알면 부장이 될 수 있는 수준이고, 사장의 생각을 알면 사장이 될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부유하다는 것이 죄는 아니다.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도둑으로 보인다면 당신은 결코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부자에 대해 억측하지 말라. 명심해라. 부자들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사실은 부자들이 쓴 고백서는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부자들의 삶을 강 건너에서 바라보고 추측하여 쓴 책들은 그 어느 것이든 무시하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억측만 하면서 아는 체를 하기 마련이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ester)’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숀 코네리가 하는 말이다. 참 부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배워라. 부자는 돈독이 들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가져올 때 부자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환희를 느끼며 살아 온 사람들이며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불행하지도 않고 도둑놈도 아니다.


4. 부자들에게는 과소비가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암초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과소비하는 생활 태도이다. 흔히 과소비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부유층의 과소비, 중산층의 모방소비, 하류층의 자포자기식 실망 소비가 그것이다. 하지만 과소비가 능력 이상의 소비를 의미하는 이상, 부유층의 과소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소비는 부자들이 하는 게 아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졸부들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분수 이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과소비이다. 나는 한 번도 부자들이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여 카드빚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능력에 맞지 않게 소비하였지만 과소비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에 먹고 입는 것에서 거의 거지 수준으로 살면서 엄청나게 절약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나는 과소비를 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멋지게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술 담배를 모두 끊고 그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에 몰두 하거나 이웃 사랑에 사용하는 사람 역시 삶을 지혜롭게 살 줄 아는 사람 아니겠는가.

내가 과소비라고 단정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입고, 걸치고, 마시고, 먹고, 놀고, 타는 데 있어서 갖가지 그럴 듯한 핑계를 대며 이루어지는 중산층의 모방 소비와 하류층의 실망 소비이다. 능력도 없는데 부자들의 소비를 흉내 낸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소비가 부자들을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소비하는 것들의 대다수가 실은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업체들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차재호 서울대 사회심리학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과소비 성향은 권력 욕구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는 것은 자신이 힘을 가졌다는 짜릿한 맛을 즐기기 위함이고 희귀한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은 권력욕구의 본질이 남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많은 수의 신용 카드를 소유하는 경향 역시 그것을 뽐낼 일로 생각할 뿐 아니라 그 카드로 호기 있게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소비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은 애리조나 대학 경영대학원의 애릭 린드플레이시 박사팀이 1997년 발표한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논문은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젊은이들은 물질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충동구매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힌다. 소비벽이 심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건이나 돈이 아니라 진실되고 따뜻한 인간관계라는 말이다. 버는 족족 돈을 쓰느라고 통장에 돈이 쌓이지 않는다고? 카드빚만 계속 쌓인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진실된 인간관계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남들 앞에서 우쭐거리고 싶어 하는 허세만 강한 정신적 미숙아일 수도 있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소비가 과소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주는 기준은 오직 하나이다. 자기 계발을 위한 지출이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기분 내느라고 사용했는가? 라이프스타일 유지? 문화생활을 하고자? 휴가를 즐기고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과소비로 몰아 부친다(명심해라.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한한다’는 조건이 있다).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특별한 천재적 재능도 없는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부자가 되려면 일단은 최우선적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할 것 아닌가. 쓸 것 다 쓰고 즐길 것 다 즐기고 무슨 돈으로 뭘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말인가.

지금 당신의 서랍과 장롱 속에 뭐가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라. 그리고 직접 확인해 보라. 평상시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을 당신이 상당히 많이 갖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것들을 살 때는 갖고 싶어서 샀을 텐데 왜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일까? 없어도 될 것들을 구입하였기 때문 아닐까? 없어도 되는 것을 구입하는 그 헛된 행동에서 벗어나려면 제일 먼저 신용카드를 없애 버려라. 당신에게 꿈을 주고 당신을 세상에서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카드? 당신에게 겁을 주고 삶을 텅 비게 만드는 카드만 있을 뿐이다. 언제나 앞서가는 카드? 빚에 있어서 앞서 갈 것이다. 당신에게 돈을 되돌려 주는 카드? 원숭이 같이 조삼모사를 기뻐하지 말라. ‘여러분 부자 되세요?’ 당신이 카드를 많이 쓸 때 부자가 되는 것은 그 카드 회사이고 그 회사 직원들이지 당신이 절대 아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sis Fukuyama)는 ‘역사의 종말’(원제는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다)에서 이제 역사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끝으로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는 완성된 상태에 도달했다고 까지 했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누구나 다 평등한 사회는 니체가 말하는 노예의 사회나 다름없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평등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역으로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반항하는 위험 요소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를 꿈꾸지 말라. 그리고 명심해라.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당신이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떻게 모으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신중하게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5. 있는 놈들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펑펑 쓸까?

사람들은 흔히 “있는 놈들은 돈을 펑펑 쓴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저 일하는 것이 취미이거나 그저 돈 모으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부자들 중에는 만원 한 장 쓰는데도 바들바들 떠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한국에서 최고 부자들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펑펑’ 쓸 수 있을까?

우선 최고급 주택을 구입하는 데는 얼마나 들까? 2004년도 발표 국세청 기준시가가 강남구 도곡동 타워 팰리스의 가장 큰 100평형 대 보다도 더 비싼 강남의 힐데스하임 , 트라움하우스 같은 160평형 대 이상의 공동주택 내부시설은 특급호텔 수준 정도이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 볼 때는, 언론에서 보도 되듯이 요란 뻑쩍찌근한 곳은 전혀 아니다(내가 그 중 한 곳을 두 차례 가보기도 했었고 경매로 나온 적도 있기에 구입도 생각했었으나 음악을 크게 듣기에는 전혀 적절하지 않아 그만 두었다 ).

강남의 유명 주상복합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들은 전망이야 좋지만 천정 높이가 아파트 수준 정도 밖에는 안 되서 내가 보기에는 답답했고 환기도 신통치 않아 나 같은 흡연자에게는 그저 그럴 것이지만 어쨌든 최고 좋다는 아파트들의 가격은 40억 원 대이다. (나 같으면 그 돈으로 수 년 후 외환자유화가 완전히 이루어 진 뒤 뉴욕 맨하탄에 투자하겠다. 참고로 나는 부동산 투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아파트 청약이라고는 하지도 않았었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주택은 한 채 이상 가져 본 적이 없다가 2000년도에 주상복합 아파트 하나를 경매로 사서 전세를 놓았고, 2005년도가 되면 주택이 하나 더 늘 예정이다. 오피스텔이니 뭐니 하는 것은 가져 본 적도 없고 구입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동산 부분에서만 100억 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었는데 대부분 경매로 번 돈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경매에 참여한 것이 부동산 투기는 아니지 않는가.

아 참. 욕먹을 짓을 한번 한 적이 있다. 용인에 농지를 샀던 적이 있는데 도대체 주민등록을 위장 전입하고 농민 흉내를 내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등기를 하지 못한 채 고민 고민 하다가 위장전입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그냥 팔아버렸는데 이게 이른 바 미등기 전매이다. 양도소득세를 안 냈으니까 말이다. 너무 욕하지는 말아라. 그 대신 안내도 될 세금을 더 많이 말없이 냈으니까 말이다. )

서울에서 내가 직접 가 보았던 최고급 단독 주택은 시가 100억 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빌라를 짓고 있고, 몇몇 재벌 회장들의 주택은 40억 원에서 70억 원 내외이다. 벤츠 Maybach 자동차는 수입을 한다면 8~10 억 원대 수준이지만 자동차 구입비는 회사에서 처리하고 그 뒤 몇 년간 감가상각으로 처리하거나 리스로 구입하여 그 경비를 비용으로 처리하면 된다. 최고급 골프장 회원권은 5-6억 원 수준이지만 이것도 법인에서 처리할 수 있다. 최고급 별장은 20~30억 원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을 법인에서 처리하려면 법을 위반하여야 한다. 가족 생활비는 어느 정도나 들까? 1년에 몇 억 정도면 뒤집어쓰지 않을까? 자, 또 뭐가 필요할까? (SK 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이 예전에 “한국에서 재산이 50억 원 넘게 되면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해진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부동산 가격 상승을 반영하여 지금 가치로 계산하면 100억 원 정도 될 것 같고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여기서 생활비나 자동차를 제외한다면 “있는 놈들이 돈을 펑펑 쓰는” 일차적 대상은 부동산이나 회원권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것들은 소비라기보다는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있는 놈들”이 경제적 투자가 아닌 목적에서 개인 돈을 “펑펑”쓰는 소비적 분야는 아마도 자기 취미 생활일 것이다. 골프에 미치면 몇 천만 원짜리 골프채 세트를 사고, 난에 미치면 난 한 촉에 천만 원도 주고, 젊은 여자에 미치면 집도 사주며 음악을 좋아하면 나처럼 억 이상을 오디오 시스템에 꼬나 박고 그러는 것이다.

젊은 여자 좋아하는 것은 취미 생활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내 주변의 백만장자들(한국에서는 100억 원대에서 1,000억 원대)을 살펴보면,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살았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갑부 2세들이 이쪽에 밝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51세의 어느 갑부 2세는 아직도 여자 2명에게 따로 살림을 차려주고 요일마다 찾아가는 여자가 다르다. 정력도 좋아…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50대의 갑부 2세는 근검절약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철저히 절약하며 사는 데 내가 종종 그에게 하는 말이 “자식 좋은 일만 시키지 말고 돈 좀 써라”이다.

국내 어느 유명 재벌 2세는 여러 대의 최고급 스포츠카들을 갖고 있는데 모두 관계 회사의 자산이며 내가 어림짐작으로 계산하여 보아도 십 몇 억은 되는 것 같다. 10억 원짜리로 조금은 뻥튀기 되어 알려진 어느 수입 스포츠카가 국내에서 팔렸다고는 하지만 좀 의심스럽고, 자동차 같은 것이야 회사에서 처리할 수 있으므로 개인 돈의 소비라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무슨 취미이건 간에 그것도 몇 년 해 보면 시들시들해진다.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리처드 얀 교수는 “상품을 통해 더 많은 만족을 추구할수록, 발견하는 것은 더 적어질 뿐”이며“만족감은 반감기(半減期)가 짧고, 빠르게 사라진다.”고 하였다. 소유가 주는 만족감은 곧 사라지는 기쁨이라는 말이다. 더 이상 소유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 부자는 허탈해진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음악 감상을 좋아하기에 처음에는 오디오를 업그레이드 시킬 때 마다 행복해 하였다. 그러다가 억대의 오디오로 바꾸었더니 얼마 안가 기계 자체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 졌다. 30대에는 처음으로 벤츠도 샀다. 그 당시에는 수입자동차 세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었기에 상당한 돈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 차의 뒷좌석에 처음 앉고 나서부터 몇 개월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왜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까? 더 이상 갖고 싶은 것이 없어졌던 것이다.

수천 년 전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던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탄식하였던 이유도 소유가 주는 기쁨이 종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어떤 독자의 말: “그렇게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말하게 되어도 좋으니 돈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나의 대답: “100% 이해한다.”). 허탈감과 공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돈은 그 소유자의 삶에서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 소유가 주는 만족감을 채울 만 한 것이 더 이상 없게 되면 권력이나 명예에 집착하기도 하고 더 큰 자극과 쾌락을 찾아 도박이나 마약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갖고 싶은 것이 없는 부자 수준이 되면 소유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초월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백화점에서 수천만 원씩 주고 밍크코트를 사거나 명품 쇼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쇼핑하는데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이 진짜 부자일리가 없다. 공허감 때문에 쇼핑중독에 걸리는 부자들도 분명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피땀 흘려 벌게 되면 자장면 한 그릇 사먹는 것도 아까운 법이고 부자가 되려면 우선은 구두쇠 같은 소비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 소비 생활이 부자가 되었다고 하루 아침에 낭비적으로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2세들과 졸부들이며 그들의 낭비벽을 비난하면 안 된다. 그들이 돈을 써야 돈이 돈다는 경제 원칙을 잊지 말아라.)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10여 년 간 연구한 토마스 스탠리(Thomas J. Stanley) 박사와 윌리엄 댄코(William D. Danco)박사가 ‘이웃집 백만장자’(The Millionaire Next Door; 반드시 읽어라)에서 부자들의 공통적 요소 중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밝힌 것 역시 그들이 수입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생활을 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백만장자들의 54.3%는 갖가지 정보를 토대로 가장 싼 가격에 차를 구입했고 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중고차를 구입했다. 이런 사람들이 쇼핑을 하는데 돈을 펑펑 쓸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몸을 치장하는 명품들을 구입하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은 졸부이거나 연예인이거나 아니면 검은 돈을 손에 쥐게 된 높은 분들이거나 인생관 정립이 전혀 되지 않아서 소유물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려는 사람들(개중에는 전문 직업인도 꽤 많다)일 뿐이다.

부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해 왔기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고 이러한 태도는 부자가 되고 나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 돈을 더 벌어도 특별히 쓸 곳도 없으므로 바둥바둥 대지도 않는다. 부자들은 오직 여유자금을 부동산이나 주식 중에서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투자할 뿐이다. 부자들 중에서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는 단타 매매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분양권 전매로 단기간에 프리미엄을 얻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투자 대상을 고른 뒤 장기적으로 그저 묻어 둔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자들은 그래서 돈을 더 번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소유 자체에 대해 초월적인 투자 태도”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소유 자체가 주는 만족감을 더 추구하고자 투자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이미 소유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초월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천만에. 부자들이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사치를 즐기고 소비를 왕성하게 하였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모두가 다 자기 수입 수준 보다는 덜 쓰고 살아 온 사람들이 부자들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다만 나는 부자가 된 이후부터는 돈을 쓰는 편이다. 죽을 때 공동묘지에서 부자 유령으로 소문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
(‘이웃집 백만장자’에서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들과 인터넷 경제로 부자가 된 경우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다. 부자들에 대한 책을 읽을 때에는 언제나 백만장자들의 현재 생활 보다는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배우는 것이 좋다. 토마스 스탠리의 다른 책‘백만장자 마인드’ 는 ‘이웃집 백만장자’를 보완하는 면이 강한데 지나치게 통계적이다.)


6. 부자는 검소하면 안 된다

2000년 초에 백만 원짜리 주문 도시락이 시판되기 시작하자 모든 신문에서 그 사실을 보도하였다. TV 에서도 앞 다투어 보도한 내용을 보니 은제 케이스, 은수저, 10만 원짜리 전복죽, 캐비어 등으로 만들어진 도시락이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의 반응은, 밥을 굶는 사람도 많은데 IMF를 벌써 잊었느냐는 것이었다. 기자들도 그렇게 합세하였다. 한 장에 7,000원 한다는 금박명함이 나왔을 때 역시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은 떫다는 분위기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호화사치품에 대한 질타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4,000만 원대 밍크코트, 3,500만 원대 사슴 털 코트, 1,000만 원대 악어가죽 핸드백, 프랑스제 300만 원대 라이터, 외제 자동차 등이 잘 팔린다는 천편일률적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부유층들이 정신을 못 차렸다, 한심하다, 그런 돈들이 세금이나 제대로 낸 돈인지 세무 조사하여야 한다. 등등의 논조가 언제나 나타난다. 그러면서 졸부들의 허세성 소비 생활에 서민의 꿈이 짓밟힌다, 졸부들의 무절제한 행태는 어려운 많은 이웃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되고 일부 불만계층의 극단적인 행동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대기업의 오너들이 3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살며 타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 허다하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 의식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등등의 논조가 뒤를 잇는다.

2000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이 집을 옮겼을 때 20년은 족히 넘었을 듯 한 옷과 가재도구들, 12년 된 국산 17인치 TV가 언론의 칭송을 받았다. 부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언론의 논조였다. 그런 논조에서 본다면 나는 전혀 검소한 부자가 아니다. 예컨대 나는 해외 출장 시에 1등석을 주로 탄다. 가족 여행에서도 그렇게 한다. 호텔 역시 나는 최고급만 이용한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비행기를 탈 때 3등석을 탄다네.” 그럴 때 마다 내가 하는 답은 이것이었다. “빌 게이츠는 자가용 제트 비행기가 있지만 저는 없습니다.”

일본 대기업 오너들이 3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산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을 한다. “일본의 평수는 전용면적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40평 이상이다. 일본 대기업 오너들 중에는 큰 집에서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일본의 유명 휴양지를 가보면 전부 부자의 별장들이다.”

한국의 재벌 총수들이 소박한 자택에서 살고 있다는 어느 신문기사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류상으로 사는 곳과 실제 사는 곳이 다른 사람도 많고 서류상으로는 한 채만 사용하지만 사실은 세금을 피하면서 두 채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으며, 겉으로는 소박한 양옥처럼 보이지만 지하에 엄청난 시설이 되어 있는 경우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일요일 점심은 언제나 농심 너구리 라면을 먹어 왔지만 내가 평상시에도 그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나는 때로는 한 끼에 일인당 수십만 원짜리 식사도 거리낌 없이 먹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어느 금융회사 직원들과 점심을 먹게 되었기에 순대국 잘하는데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 순대국도 드십니까 하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부자는 뭐 입에 금테 둘렀냐? )

대형 PDP TV도 있고 초대형 프로젝터도 있지만, 내가 욕실에 갖다 놓은 TV는 이웃집에서 버린 TV를 주워와 내 자신이 직접 수리한 것이다. 15년 된 세탁기가 고장 나 서비스 센터에서 버리라고 했을 때에는 버리기가 아까워서 나 스스로 고쳐보려고 8시간 이상 씨름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부자는 서울 잠실에 수백억 원 대의 빌딩을 순전히 보유 현금으로 건축할 정도로 부자이지만 식사는 잘해야 돼지 갈비이다. 소갈비는 비싸서 평생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술은 비싼 양주만 마신다.

내가 아는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가 있다. 현재 나이가 80에 가깝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 친구인데 그 억만장자가 이 회장을 만나러 한국에 자가용 비행기로 딱 한 번 왔었을 때 이착륙에 필요한 서비스들을 내가 주선했었다.(나는 이건희 회장을 모른다. 나는 재벌 2세들을 별로 존경하지 않지만 그는 존경한다.) 그 억만장자가 개인 집을 짓는다고 해서 몇 번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집은 별로 크지 않은데 정원에 있는 연못이 어마어마했고 뒷마당의 폭포가 완전 놀이공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는 렉서스를 중고로 구입하였다(물론 벤츠가 몇 대 있다). 거실 천정에 매달 상데리아를 구입하러 프랑스까지 가서 경매장에서 수십만 달러를 주고 구입해 오는 양반이 말이다. 이러한 모순된 소비 태도가 부자들에게 있음을 알아라. 부자들을 그들의 소비 생활 중 지극히 단편적인 면 하나를 떼어다가 평가하지는 말라는 말이다(이런 잘못된 평가를 언론이 제일 많이 저지른다).

요즘 미국 부자들의 생각과 소비 패턴을 잘 보여주는 책은 미국의 저술가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보보스(Bobos)”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을 합쳐 보보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나는 “보보스”를 읽으며 정말 상당히 많이 크게 웃었는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보라. 하지만 장담하건데 당신이 부자가 아닌 이상 공감을 하지는 못할 것이며 웃음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한국의 부자들은 미국 보보들과는 질이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부자들은 벤츠를 몰다가 티코가 끼어들면 건방지다고 티코 운전사를 마구 패는 족속”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녀석들은 모두 졸부이거나 졸부2세들이다. ( 나의 충고; 주변에 진짜 부자 한명 없으면서 부자들에 대하여 아는 척 하기는. 쯧쯧 )

어쨌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부자들이 검소하게 살아야 하고 돈도 쓰지 말아야 한다면 당신은 굳이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지금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중 아닌가?”

우리가 잘 아는 동화가 있다. 어느 부자가 나무 밑에 금을 숨겨 놓고 밤마다 찾아가 그 금을 보고 좋아하였으나 어느 날 도둑을 맞았다. 슬피 우는 부자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조언을 하였다. “쓰지 않고 보기만 할 것이라면 금이면 어떻고 돌이면 어떠냐. 돌을 파묻어 놓고 그것을 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아니냐.”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복권을 사고, 복권에 당첨되어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대로 다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돈 쓸 생각에 부풀어 잠도 못 이룬다. 그러면서도 부자들은 돈을 파묻어 두고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정말 골 때린다. 나는 부자들이 돈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쓰지 않을 돈을 모으는 사람이야말로 돈의 노예이다. 돈은 써야 한다. 한 달에 천만 원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에게 그 십분의 일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과 똑같이 소비하며 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요구가 아니다.

왜 자본주의 국가인데도 국민들 대다수는 공산주의식으로 경제적으로 똑같은 소비생활을 해야 애국애족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 달에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 10만 원 짜리 옷을 사 입었다면 1억을 버는 사람이 500만 원 짜리 옷을 사 입은 것과 소비 비율은 똑 같은 것 아닌가. 그래도 소비는 건전하게 합리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뭐가 건전한 소비인가? 낭비하지 말고 분수에 맞춰 하라는 것이 건전한 소비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 “낭비와 분수”의 기준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한국 최고의 연봉을 받는다는 필라 코리아 윤윤수 사장이 2억 원이 넘는 벤츠 600을 탄다고 해서 그가 분수 넘치는 소비를 한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아니 왜 낭비의 기준을 당신 수준으로 결정하려고 드는가.

젊었을 때 노는 것도 모르는 채 열심히 시간을 쪼개가며 잘 살고자 노력해 온 내가 만일, 놀기 좋아하고 편안한 것만 찾아 온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생활을 “국민정서”에 따라 강제로 하여야 한다면 나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차라리 이민을 가고 말 것이다(나는 세금을 많이 냈기 때문에 재산을 달러로 바꿔 얼마든지 갖고 나갈 수 있다.)

미국 니만 마커스 백화점 체인의 크리스마스 선물 카달로그에는 2인용 잠수함도 있었다. 위에서 말한 내가 아는 미국의 억만장자는 집 뒤 정원에 놓을 집 채 만 한 정원석들을 중국에서 가져 오기위해 아예 화물선 하나를 전세를 냈는데 그 돌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미국 부자들의 “돈 장난”은 상식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는 부자들이 돈을 못 쓴다. 부자들의 돈이 사회로 다시 돌려지도록 하는 방법들에 대해 한국은 무지하다.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졸부들의 허세성 소비가 서민의 꿈을 짓밟고 어려운 이웃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고? 왜?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천재는 둔재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므로 처단해야 하고 미스코리아는 다른 여자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였으므로 처단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 하우스 텐보스는 2003년에 부도가 나기는 했지만 네덜란드의 마을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곳이다. 재정이 부족하자 그들은 인공운하 옆에 자가용 요트정박 시설도 갖춘 최고급 별장촌을 만들고 부자들에게 팔아 재원을 마련하였다. 영종도에 신공항이 들어설 때 나는 혹시나 바닷가에 그런 고급 단지가 없는지 알아보았다. 그때 내가 공무원에게 들었던 말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맞아 죽어요.”였다. 나는 내가 굶어서 길바닥에 쓰러졌을 때조차 부자들의 소비에 대해 불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경험적으로 말해서 부자들의 소비생활에 대하여 왈가왈부 말이 많은 사람들치고 나중에 부자가 되는 경우를 나는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위화감? 단언하건데 그런 위화감을 침 튀기며 언급하는 사람치고 자기 개발에 열심인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은행 개인 예금의 3분의 1은 예금자들의 0.3프로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이 철저하게 근검절약하면 어떻게 될까? 그 돈들은 어디로 갈까? 아마도 많은 액수는 금융기관에 들어가 이자 소득을 증가 시킬 것이고 그렇게 해서 증가된 돈은 증여세나 상속세를 제외하고는 모두 2세에게 전달될 것이다. 게다가 부자들은 세금이나 재테크에는 귀신들이므로 아마도 세금도 최대한 절세 혹은 탈세하는 방향에서 상속을 하게 될 것이다.

부자들의 돈이 사회로 환원되게 하려면 자선을 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허세성 소비라 할지라도 돈을 쓰도록 분위기 조성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돈다. 돈이 돌아야 고용이 창출되고 투자도 이루어진다. 1억 짜리 밍크코트도 팔려야 하고 40억짜리 아파트도 팔려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의 돈이 나누어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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