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기도했다. 구원은 되지 않는다. 신에게 기도했다. 모든 창조물이 저주받기를.
신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실망과 증오뿐.
“우주가 더 있으면 그것이 행복일까, 불행일까.”
어떤 물질이 자동에서 빠져나와 물질을 구할 수 있다면 구원이다.
물질은 많지만, 공(空)이 그것보다 더 많고 광대하다.
이 막연하고 광대한 공이 살아 있다는 증명 때문에 두려움이 조금은 가신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우주가 복귀하고 회귀를 시작한다면 물질은 망했다.
언젠간 고통이 있는 물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윤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증거이다.
누군가가 우주에서 빠져나와 물질 없는 공에 머물러도 자신이 물질이기 때문에 윤회한다.
신앙에서는 증명이 중요하여 진실을 추구한다.
신앙은 결코, 신비에 대한 과학의 증명 없이는 환각이거나 신빙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지금의 인류가 증명할 수 없는 요소를 철학으로 증명하는 것도 있다.
학자의 창조설을 사고하자.
공(空)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며 다양한 물질을 창조됐다.
무(無)에서 물질이 창조됐다.
언젠가는 반작용으로 우주는 조그마하게 복귀한다.
엘이여,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가. 그럴 정도로 그대는 멍청한가?
만약에, 무에서 물질이 창조됐으면 그것은 신비이며 비물질이 연관됐다는 증명이다.
엘이여,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가. 그럴 정도로 그대는 멍청한가?
뻔하지 않은가. 무에서 돌연 물질이 생겨났는가, 물질이 폭발하더니 천차만별의 물질이 생겼는가.
진실로 물질은, 최초로 신이 창조한 것이다.
신화와 전설과 다른 기록은, 애초부터 어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 공공에 득실의 용도이다.
도무지, 누구도 그 존재를 알기가 매우 어렵고 대할 수가 없다.
그것은 아직도 창조물이 어리다는 증명이다.
물리, 비물리가 전부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있다.
나는 있는 모든 것인 그것을 어떤 확연한 기준으로 '이치'와 '진리'라고 분별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모든 것이 순리라고 표현한다.
자와 아...신과 창조물...자아는 순리일 뿐이다.